경복궁의 옛 영화를 짐작할 수 있는 광화문과 궁궐 담장

  경복궁(景福宮, 사적 제117호)은 옛 영화를 짐작할 수 있는 궁(宮)의 담장(簟匠)과 4대문이 있다. 바깥을 두른 담장의 길이는 2,404m에 달하고, 평균 높이는 5m, 두께는 2m 정도이다. 담장의 사방에는 4대문을 만들고, 1426년(세종 8)에 건춘문(建春門-동), 광화문(光化門-남), 영추문(迎秋門-서), 신무문(神武門-북)이라 이름 붙였다. 이는 각각 봄-여름-가을-겨울과 나무-불-쇠-물을 상징하는 것으로, 가운데 자리한 근정전(勤政殿)을 중심으로 사방을 둘러싸고 있어 전통적인 오행설에서 유래한 명칭이다.

  경복궁의 정문인 광화문은 3개의 홍예문(虹霓門)이 나 있는 높은 석축 위에 중층의 문루(門樓)가 높이 앉아 있는 장려(壯麗)한 건물이다. 전면 담장의 두 끝 모퉁이에는 망루(望樓)인 십자각(十字閣)을 세워 조선의 5대 궁궐 가운데 유일하게 궐문(闕門) 형식을 갖추었다. 서십자각(西十字閣)은 일제강점기 때 철거되었고, 동십자각(東十字閣)은 도로 확장으로 인해 담장 안으로 들어가면서 궐 밖의 길 한가운데 홀로 서 있게 되었다.

  광화문은 일제가 조선총독부청사(朝鮮總督府廳舍)가 완공되자 경복궁의 얼굴이라 할 수 있는 문을 없애려 하였다. 그러나 극심한 반대 여론에 부닥치자 마지못해 경복궁 동편 건춘문(建春門) 북쪽으로 옮겨 놓고 말았다. 그 후 한국전쟁 때 폭격으로 석축만 남고 부서진 것을 1968년에 철근 콘크리트로 다시 지었으나, 당시 도로와 주변 건물의 축에 맞추었기 때문에 원래 모습이나 위치와는 차이가 있었다. 재건한 광화문은 2006년에 철거하고 복원공사를 시작하여 세 번의 이전 끝에 드디어 2010년에 원형으로 복원되었다.

  광화문을 들어서면 동쪽에 협생문(協生門), 중앙에는 근정전(勤政殿)으로 드는 흥례문(興禮門), 서쪽에 용성문(用成門)이 있고 이 문 밖에는 경복궁, 창덕궁, 창경궁, 덕수궁, 경희궁의 소중한 왕실의 문화유산들을 소장하고 전시하는 국립고궁박물관(國立古宮博物館: http://www.gogung.go.kr)이 있다.

  광화문 좌우에 가까이 앉아 있는 해태상[獬豸像]은 조선시대에는 광화문에서 약 80m 떨어진 육조거리에 세워져 있었다. 육조거리란 당시 광화문 앞으로 조선의 중추적인 관서들이 늘어서 있어 붙은 이름이다. 상상 속의 동물인 해태는 옳지 않은 일을 한 사람에게 달려들어 뿔로 받아 버린다는 영물로 알려져 있다. 1890년대 사진을 보면 해태상 앞에 ‘ㄴ’자 모양의 돌이 놓여 있었는데, 이는 왕보다 지위가 낮은 사람은 여기에서 탈것으로부터 내려야한다는 하마(下馬) 표지였다. 해태상에서 광화문까지는 남녀노소 불문하고 걸어서 궁으로 들어갔던 것이다.

  경복궁 동십자각(景福宮 東十字閣)은 광화문에서 연결되어 오는 경복궁 외궁성(外宮城)이 건춘문(建春門)을 향하여 꺾이는 부분에 세운 망루(望樓)이다. 석단(石檀)을 국초(國初)의 유구(遺構)로 추측되나 누각은 대원군 시대의 건립으로 추측된다. 궁성(宮城)의 동남 모퉁이에 세웠던 망루와 같은 돈대(墩臺) 건물의 기능을 갖고 있던 것인데 궁성 원장(垣墻)이 헐리면서 현재와 같이 길가에 독립된 건물같이 되었다. 이 건물은 궁성 전면 양모서리에서 궁내외를 감시할 수 있게 하였던 것이다.

  건물의 평면은 정면과 측면이 모두 3칸 방형(方形)이며 축부(軸部) 구성은 하방(下枋)과 창방(昌枋)만을 짜아 돌리고 주간(柱間)에는 무벽(舞壁)의 개방식이며 바닥은 흙바닥으로 되었다.  하부기단은 장대석을 7단으로 쌓아 네모난 축대를 만들고 석 줄의 십자형이 투각된 아담한 성위에 벽돌로 쌓은 전축여장(塼築女墻)을 둘렀다. 북쪽에는 조그만 편문(便門)을 내고 그 안에 앞·옆면의 길이가 똑같은 방형의 누각을 세웠다. 지면에서 이 누각으로 통하던 석조계단은 민족항일기 때 철거되었고, 토상사주(土床四周)로 돌린 화강장대(花崗長臺)의 각 면에는 서수(瑞獸)의 머리장식으로 꾸민 돌로 만든 홈통인 석루조(石漏槽)를 2개씩 설치하였다. 사모지붕의 추녀마루는 회덧칠을 하고 용두(龍頭)와 잡상(雜像)을 배열하였으며, 정상부에는 연화노반형(蓮花露盤形)의 지붕마루의 가운데 세우는 탑모양의 기와로 된 장식 절병통(節甁桶)을 올려놓았다.

  본래 경복궁 외궁성(外宮城)이 영추문(迎秋門)을 향하여 꺾어지는 부분에 있었던 서십자각(西十字閣)과 같은 규모로 그 위치가 서로 대칭되도록 지어졌던 것이다. 규모는 적으나 조화로운 예술적 조형미로는 경복궁내 뛰어난 건축물중의 하나라고 할 수 있다. (자료출처: 문화재청 경복궁 해설집 문화유산정보)

* 문화재 주소지: 서울특별시 종로구 세종로 (사간동)

* 경복궁 사대문 천장 그림의 장식체계:

http://blog.donga.com/yil2078/archives/7660

* 한국문화재재단 문화유산채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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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일∙고앵자/ 채널A 보도본부 스마트리포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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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기동 해풍부원군 윤택영 재실(祭基洞 海豊府院君 尹澤榮 齋室)

  제기동 해풍부원군 윤택영 재실(祭基洞 海豊府院君 尹澤榮 齋室, 서울특별시 민속문화재 제24호)은 조선 순종(純宗, 1874∼1926)의 장인(長人) 해풍부원군(海豊府院君) 윤택영(尹澤榮)이 그의 딸 순정효황후(純貞孝皇后,1894~1966)가 순종의 계후(繼後)로 들어갈 때 1907년에 지은 고택이다. 순종이 제사하러 와 머물 때 불편함을 덜어주기 위해 만든 재실이다. 지금 있는 건물은 동대문구 제기동에 있던 것을 1996년 남산골한옥마을을 만들면서 이곳으로 옮긴 것이다. 집 뒤에 있는 사당은 4·19 때 소실된 건물을 복원한 것이다.

  본채, 행랑채, 사당 등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가장 중요한 사당을 제일 위 터에 두고 사랑채와 안채가 대칭되게 만들어서 전체 건물의 배치가 으뜸 원(元)자 모양으로 꾸민 이 집은 제일 위에 사당을 배치하고 본채를 두었으며 본채 앞에는 대문을 두고 그 옆에 행랑채를 두었다.

  본채는 부엌·안방·대청·건넌방·누마루 등을 배치하였고 사당은 1칸 집으로 본채보다 두 단 높여 지었다. 원래 사당은 임금이 제사를 지내던 곳으로 윤덕영이 경운궁을 헐 때, 그 재료들을 이용하여 지었다고 한다.

  대체로 살림집 기능보다 제실 분위기에 맞게 지은 한옥으로 우리나라에서 보기 드믄 형태이다. (자료출처: 문화재청 문화유산정보)

* 문화재 주소지: 서울 중구 퇴계로34길 28, 일원 남산골한옥마을 (필동2가)

* 한국문화재재단 문화유산채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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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일∙고앵자/ 채널A 보도본부 스마트리포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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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한양도성의 남산길에서 조상들의 슬기를……

  만추의 서울 한양도성(서울 漢陽都城, 사적 제10호) 남산길을 느림으로 걸으며 퇴계 이황 선생, 다산 정약용, 대한국인 안중근 의사, 백범 김구 선생, 성재 이시형 선생, 김유신 장군 등의 동상에 만남을 통하여 조상의 애국정신과 슬기를 다시 되새겨보는 시간을 가졌다.

   퇴계 이황(退溪 李滉, 1501~1570)은 조선시대 성리학의 기초를 세운 선비였다. 주요 저서는「논사단칠정서변(論四端七情書辨)」,「천명도설(天命圖說)」및 후서,「전습록논변(傳習錄論辯)」,「계몽전의(啓蒙傳疑)」,「자성록(自省錄)」,「심경석의(心經釋疑)」,「송계원명이학통록(宋季元明理學通錄)」,「성학십도(聖學十圖)」등이 있다.

  다산 정약용(茶山 丁若鏞,1762~1836)은 조선 후기 학자 겸 문신이었다. 사실적이며 애국적인 많은 작품을 남겼고, 한국의 역사·지리 등에도 특별한 관심을 보여 주체적 사관을 제시했으며, 합리주의적 과학 정신은 서학을 통해 서양의 과학 지식을 도입하기에 이르렀다. 주요 저서는「목민심서(牧民心書)」,「경세유표(經世遺表)」등이 있다.

  대한국인 안중근(大韓國人 安重根, 1879~1910) 의사는 대한제국의 항일 의병장 겸 정치 사상가 이었다. 만주의 하얼빈 역에서 초대 한국통감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를 사살하고 그 일행 등에게 중상을 입혀서 뤼순 감옥에서 사형이 집행되었다. 의사의 실천적인 삶 속에서 민권의식에 철저했고 국가와 민족을 누구보다도 사랑했으며, 민족의 삶을 유린하고 평화를 깨는 무도한 자를 응징했다. 그는 우리 민족에게 하나의 신앙의 대상이 될 정도로 숭앙을 받고 있다.

  백범 김구(白帆 金九, 1876~1949) 선생은 한국의 정치가·독립운동가 이었다. 상하이(上海)로 망명, 대한민국임시정부(大韓民國臨時政府) 조직에 참여하고 1944년 대한민국임시정부 주석(主席)에 선임되었다. 신민회(新民會), 한인애국단(韓人愛國團) 등에서 활발하게 활동하였다. 저서로는「백범일지(白凡逸志)」1962년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이 추서되었다.

  성재 이시형(省齋 李始榮, 1869~1953) 선생은 대한제국 초대부통령(初代副統領)이었으며 독립운동가(獨立運動家)이었다. 선생의 가문은 경술국치(庚戌國恥)가 일어나자 친족과 함께 조상이 이룬 명동 일대 전 재산, 현재 시가 육백 억 원에 이를 정도인 전답과 토지는 물론, 조상 제사를 위한 묘답까지도 처분한 돈을 가지고 만주(滿洲)로 망명(亡命), 신흥무관학교(新興武官學校)를 설립하여 수많은 독립군 장교를 양성하였다. 대한민국이 빚진 가문으로 민족을 위해 바친 선생의 뜻과 공을 기려 1948년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을 수여하였다.

  김유신 장군(金庾信, 595~673)은 신라(新羅)의 삼국통일(三國統一)에 중심적인 역할을 담당했던 장군이며 대신(大臣)으로 1,400년이 흐른 지금에도 추앙 받고 있는 인물이다.

 

이영일∙고앵자/ 채널A 보도본부 스마트리포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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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실의 필요로 내전에 가까이 건축한 경복궁 흠경각과 함원전

  흠경각(欽敬閣)과 함원전(含元殿)은 왕실의 필요에 의해 왕과 왕비가 일상생활을 하던 내전인 강녕전(康寧殿)과 교태전(交泰殿) 가까이 지었던 건물들이다.

  경복궁 흠경각(景福宮 欽敬閣)은 농업 발전을 위해 천체의 운행을 이해하고 시간을 정밀하게 측정하고자 했던 왕의 고민과 노력이 깃들어 있는 건물이다. 이수광의『지봉유설(芝峯類說)』에는 왕의 침전(寢殿)인 강녕전(康寧殿) 옆에 세워졌다고 기록되어 있고, 세종실록에는 천추전(千秋殿) 서쪽에 세워졌다고 적혀 있다. 흠경(欽敬)이라 한 것은『서경(書經)』의 요전(堯典)에 ‘공경함을 하늘과 같이하여, 백성에게 절후(節候)를 알려 준다(欽若昊天, 敬授人時)’에서 따 온 것이다. 다시 말해 하늘을 공경하여 백성에게 시간을 알려주는 관상수시(觀象授時)를 실천하는 집인 셈이다.

  세종은 1438년에 천문관측소(天文觀測所) 흠경각 건립을 명하고 여기에 물시계인 옥루기륜(玉漏機輪), 해시계인 앙부일구(仰釜日晷) 등의 시간 측정기구와 천문관측기구인 간의(簡儀)를 만들어 설치했다. 옥루기륜은 해시계의 단점을 보완한 자동 천문 물시계이다. 물의 흐름에 따라 여러 가지 인형들이 시각에 맞춰 정확하게 움직이면서 목탁, 북, 징, 종을 자동으로 치게끔 만들어졌다.

앙부일구(仰釜日晷: 오목 해시계, 보물 제845호)는 세종 16년(1434)에 장영실, 이천, 김조 등이 만들었던 ‘솥 모양의 해시계[仰釜日晷]’로 시계판이 가마솥같이 오목하고, 이 솥이 하늘을 우러르고 있다고 해서 이런 이름을 붙였다. 이것은 둥근 지구 모양을 표현한 것이고 작은 크기로도 시각선, 계절선을 나타내는데 단순히 시간만 알려 주는 것이 아니라 바늘 끝만 따라가면 시간과 절기를 동시에 알 수 있는 다기능 시계로 효과적이다.

  큰 것은 시계의 지름이 35.2㎝, 높이가 14㎝이고, 17세기 후반에 제작된 것이며, 작은 것은 시계의 지름이 24.3㎝이며 18세기 전반에 제작되었다. 오목한 시계판에 세로선 7줄과 가로선 13줄을 그었는데 세로선은 시각선이고 가로선은 계절선이다. 해가 동쪽에서 떠서 서쪽으로 지면서 생기는 그림자가 시각선에 비추어 시간을 알 수 있다. 또 절기마다 태양에 고도가 달라지기 때문에 계절선에 나타나는 그림자 길이가 다른 것을 보고 24절기를 알 수 있다. 특히 세종실록에 글을 모르는 백성들을 위해 12지신 그림으로 그려서 시간을 알게 했다는 기록이 있어 주목할 만하다. 또한 이것은 대궐에 두었을 뿐만 아니라 종로 혜정교와 종묘 앞에 설치한 우리나라 최초의 공동시계였다는 점에도 의의가 크다.

  앙부일구가 반구 모양으로 된 점에 비추어 볼 때 당시 학자들은 태양의 움직임을 정확하게 읽었으며, 지구가 둥글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2개의 해시계는 작고 오목한 가마솥 모양에 네발이 있는 우아한 모습을 가진 것으로 작풍과 제작기법이 같다. 청동으로 몸통을 만든 뒤, 검은 칠을 하고 글자와 선을 은상감으로 새겨 예술품으로도 손색이 없으며 정확한 수평을 잡기 위한 십자형의 다리가 있다. 조선시대의 대표적인 해시계이며, 과학 문화재로서도 가치가 큰 유물이다. 현재 국립고궁박물관이 소장하고 전시 중에 있다. (자료출처: 문화재청 문화유산정보)

  경복궁 함원전(景福宮 含元殿)은 왕실의 불교행사(佛敎行事)가 자주 행하여졌던 건물이다. 왕비의 침전인 경복궁의 교태전(交泰殿) 서쪽에 위치하며 협문(挾門)으로 연결된 정면6칸, 측면4칸의 팔작지붕 전각이다. 함원(含元)은 ‘원기(元氣)를 간직한다’는 의미이다.

  조선 왕조는 유교 국가인데도 여러 왕과 왕비가 불교(佛敎)에 심취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세종 때 불상(佛像)을 모셔두고 불교의식(佛敎儀式)과 행사를 열었던 곳으로 전해진다. 이후에는 단종이 머물렀던 곳이며 임진왜란 때 화재로 소실되었다가 1888년(고종 28)에 흥선대원군이 경복궁을 중건하면서 다시 지어졌다. 하지만 일제강점기 때 화재로 소실된 창덕궁을 복원하기 위해 이건되었다가 1995년 제자리에 다시 중건되었다.

* 문화재 소재지: 서울 종로구 사직로 161 경복궁

* 한국문화재재단 문화유산채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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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일∙고앵자/ 채널A 보도본부 스마트리포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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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과 최순실 게이트 속, 서울 남산 만추에 숲길을 걷다.

- ‘최순실 게이트’와 박근혜를 조롱하는 만평,

미국 3대 일간지, 뉴욕타임스, 6일(현지 시각)판 -

  박근혜 대통령과 최순실 게이트, 그들 때문에 대한민국이 지구촌에서 웃으게로 회자되고 있다. 그 권력의 주변 인물들도 너무나 무지하고 철면피하다. 어제 광화문 촛불 집회에 다녀왔다. 오후 5시 광화문역에서 내려서 세종문화회관 앞의 광화문광장에 가늘길은 촛불 집회 참가 인파에 밀려서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조금씩 밀려서 현장에 도착 하였다.

  잠이 오지 않는다. 조국의 미래를 위한 걱정이 앞선다. 오늘 아침 단비가 끝난 후에 서울 남산의 만추에 숲길을 걸었다. 인간은 아름다운 놀빛을 보면서 깊은 생각에 잠긴다는데, 자연의 가을빛이 이리도 아름답다. 이 숲의 단풍들도 잠시겠지, 낙엽으로 떨어져 분해되고 오염되지 않은 자양분 되어 흙으로 되돌아가는 지혜를 배웠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우리 국민들은 어려울 때마다 슬기롭게 해결해 내는 저력이 있다. 각자의 위치에서 하고자 하는 일에 전념하는 그 날이 빨리 오기를 기대해 본다.

  만추의 단풍속에서 잠시, 시끄러운 세상사에 시름을 털고 … …

 

이영일/ 채널A 보도본부 스마트리포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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