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평도호부청사(富平都護府廳舍)와 그 주변의 문화재들

  부평도호부청사(富平都護府廳舍, 인천광역시 유형문화재 제2호)는 관아건물 중 하나로 중심업무를 보던 동헌, 관리나 외국사신이 묵던 숙박시설인 객사, 죄를 다스리던 포도청 등 수많은 건물이 있었다.

  부평부읍지(富平府邑誌)에 의하면 동헌(東軒), 객사(客舍), 근민당(近民堂), 내아(內衙) 등으로 총 23동 238칸의 웅장한 규모였다고 한다. 그러나 이곳에 1909년 부평초등학교를 세우면서 대부분의 건물은 헐어버리고, 현재 건물만 교정 모퉁이로 이축하였다. 원래 남은 건물은 ‘ㄱ’자형이었으나 1968년 현재의 위치로 옮기면서 ‘ㅡ’자형으로 개조한 것이다. 이 건물은 예전 형태로 보아 동헌(東軒)이나 현감(縣監)의 살림채였던 내아(內衙)로 추측한다. 규모는 앞면 6칸, 옆면 2칸이며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팔작지붕(八作–)으로 되어있다.

  부평도호부 청사는 언제 세웠는지 정확한 년도는 알 수 없으나, 조선 태종 13년(1413)에 부평도호부로 승격되면서 청사가 건립된 것으로 추정된다. 인천도호부를 능가하는 규모로 보존해야 할 문화재다.

  욕은지(浴恩池, 인천광역시 문화재자료 제1호)는 인천시 계양구 부평초등학교에 자리한 부평도호부청사(富平都護府廳舍, 인천광역시 유형문화재 제2호) 앞쪽에 있는 어사대(御射臺)와 함께 있다.

  원래 다른 곳에 있던 것을 조선 고종 24년(1887)에 새로이 고쳐 지으면서 이곳으로 옮겼다. 긴 돌(長臺石)을 이용해 단을 쌓고 네모 형태로 만들어 조선시대 연못의 전형적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가로 18m, 세로 16m의 크기로 가운데에 둘레 7m의 돌산을 만들어 풀과 나무를 심고, 다리를 만들어 남쪽과 연결하였다. 연못 동쪽에 쌓여진 돌 가운데에는, 고종 24년에 고쳐지었다는 기록을 새긴 돌이 끼어 있다.

  정조 21년(1797) 왕은 김포 장릉(金浦 章陵)을 참배하고, 부평(富平)을 경유하여 생부를 모신 수원 현륭원에 갔다고 전해진다. 이 때 부평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며서 활을 쏘고 손을 씻은 것으로 여겨진다.

  어사대(御射臺, 인천광역시 문화재자료 제3호)는 부평도호부청사(富平都護府廳舍, 인천광역시 유형문화재 제2호) 앞쪽에 욕은지(浴恩池)와 함께 자리하고 있다.

  조선 정조(正祖, 재위 1776∼1800)가 아버지인 사도세자(思悼世子)의 융릉(隆陵)에 참배하러 가는 도중에 잠시 들러 휴식하던 곳으로 정조는 활쏘기를 즐겨 신하들에게도 활을 쏘게 하였다는데, 어사대에서 활을 쏘고 손을 씻었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예전에 동쪽방향 정자가 있었다고 하는데, 지금은 흔적을 찾을 길이 없고, 고종 24년(1887)에 증수하였다는 표지석만 남아 있다.

  계산동은행나무(桂山洞銀杏나무, 인천광역시 기념물 제11호)는 부평초등학교 안에서 자라고 있는 은행나무로 나이가 500년 정도로 추정되며, 높이 25m, 둘레 10m에 달하는 노목이다.

  은행나무는 살아 있는 화석이라 할 만큼 오래된 나무로 우리나라에는 중국에서 유교와 불교가 전해질 때 같이 들어온 것으로 사찰이나 향교의 뜰에 많이 심었다고 전해지고 있다. ‘은행(銀杏)’이란 이름은 열매가 겉으로 보기에는 살구같이 생겼으나 과육을 제거하면 은백색의 종자가 나온다는 뜻에서 붙여진 이름이다.

  이 나무는 본래 부평도호부청사(富平都護府廳舍, 인천광역시 유형문화재 제2호) 주변 환경을 아름답게 하기 위한 풍치목(風致木)으로 심었다고 한다. 부평초 교정에는 또 다른 한 그루의 은행나무가 수령 600년, 수고 20m, 나무둘레 6m로 1882년 9월 29일 인천시 보호수로 지정되어 자라고 있다. 오랜 세월동안 조상들의 보살핌 속에 살아온 나무로 생물학적 자료로서의 가치가 인정되어 기념물로 지정하여 보호하고 있다. (자료출처: 문화재청 문화유산정보)

* 문화재 소재지: 인천 계양구 어사대로 20 (계산동, 부평초등학교 교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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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들이 참선(參禪)하는 선방(禪房)-봉은사 선불당(奉恩寺 選佛堂)

  봉은사 선불당(奉恩寺 選佛堂,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64호)은 1939년에 화재로 전소된 것을 1941년에 중건한 것으로 대중들이 참선(參禪)하는 선방(禪房)이다. 명종 7년에 봉은사에서 스님이 되기 위해 치러야하는 시험인 승과(僧科)를 실시하였다는 기록이 확인되고 있어 선불당(選佛堂)이라는 이름이 붙게 되었다.

  봉은사는 고려시대 견성사(見性寺)로, 조선 연산군(燕山君) 4년(1498) 정현왕후(貞顯王后) 윤씨(尹氏)가 성종(成宗, 재위 1469∼1494)의 선릉(宣陵) 원찰(願刹)로 견성사를 중창하면서 이름을 봉은사로 고쳤다. 조선 최대의 명찰 중에 하나였고 불교중흥(佛敎中興)의 역할이 컸으나 임진왜란(壬辰倭亂) 등 전란으로 불타 몇 차례 중건 및 중수된 바 있다.

  심검당(尋劍堂)이 있던 자리에 정면8칸, 측면3칸 규모의 단층 목조 기와집으로 초익공 양식을 이루고 있으나 내부의 실제구조는 정면5칸으로 되어 있어 특이하다. 동서로 4칸, 남북으로 3칸 규모인 큰방을 중심으로 내부 삼면이 방으로 둘러있는 모양새이며 지붕 옆면이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집이다.

  지은 연대가 오래되지 않았고 내부의 천장과 뒷편이 수리되면서 조금 변형이 되었으나 서울 시내에 이와 같은 양식과 규모를 가진 유례가 드문 귀중한 목조건물로 평가 된다. (자료출처: 문화재청 문화유산정보)

* 문화재 소재지: 서울특별시 강남구 봉은사로 531 (삼성동, 봉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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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은사 판전 신중도(奉恩寺 板殿 神衆圖,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230호)

  봉은사 판전 신중도(奉恩寺 板殿 神衆圖,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230호)는 판전(板殿)의 향 좌측 벽에 봉안되어 있는 불화(佛畵)이다.

  신중도(神衆圖)는 세로 237cm, 가로 224.4cm의 정사각형에 가까운 화면에 신중들을 4열로 정연하게 배치하였다. 1열과 2열에는 중앙에 흰 소를 타고 있는 대자재천(大自在天)을 비롯하여 모두 20명의 신중, 3열과 4열에는 집금강신(執金剛神)을 중심으로 18명의 천인을 좌우로 배치하였다. 화엄신중(華嚴神衆) 39位를 도설한 39위신중도(39位神衆圖)의 형식을 취하고 있다.

  제1열 중앙에 위치한 대자재천은《화엄경》제1세주묘엄품(第一世主妙嚴品)에서 부처님이 마가다국(摩伽陀國)의 아난약법보제도장(阿蘭若法菩提道場)에서 설교하실 때 보현보살을 비롯한 수많은 보살들과 부처를 수호하기 위해 모여든 39위 신중 가운데 하나로서 마혜수라(摩醯首羅)라고도 하는데 형상은 삼목팔비(3目8臂)로 흰 소를 타고 있으며 합장을 하거나 해와 달, 창, 금강령 등의 지물을 들고 있다. 대자재천(大自在天)의 주위로는 2열 좌우의 일천자(日天子)와 월천자(月天子)를 비롯하여 천룡팔부와 산신을 비롯한 여러 신들이 질서정연하게 배치되어 있다. 3, 4열은 금강저를 집금강신(執金剛神)을 중심으로 18명의 천인을 배치하였다. 중앙에 위치한 금강신은 앙발(仰髮)에 두 손으로 큼직한 금강저(金剛杵)를 들고 있으며 주위에는 천녀들이 합장을 하거나 간단한 지물을 들고 정적인 모습으로 시립하고 있는데, 이들은 기존의 천녀의 복식이 아닌 독특한 복식을 착용하고 있어 39위 신중도 중 천왕(天王)을 표현한 것이 아닌가 생각되지만 도상 상 특징이 없어 확언하기 어렵다.

  전체적으로 화면에 꽉 차게 39명의 인물들을 표현하였지만 4열로 질서있게 배치해서인지 화면이 정돈된 느낌을 준다. 채색은 특히 아래 부분이 많이 박락되어 손상이 있지만 적색을 주조로 하고 녹색과 청색 , 흰색, 금니 등을 함께 사용하였다. 천인들은 얼굴을 흰색으로 칠하고 음영 없이 간단하게 이목구비를 묘사한 반면 천룡팔부 등 신장들은 흰색 또는 육색으로 칠하고 눈과 코, 입주위에 음영을 넣어 처리하여 대비를 이루고 있다. 필선은 섬세한 편이며, 부분 부분에 세밀한 문양이 돋보인다.

  이 불화는 초의선사 의순(草衣禪師 意恂)이 증명으로 참여하여 선율(善律), 유진(有進), 법인(法仁), 진조(進浩) 등이 제작한 것이다. 현재 화기 앞부분이 떨어져 나가 정확한 조성연대가 알 수 없지만 시주자인 박용석(朴龍石)이 봉은사개금탱화시주목록(奉恩寺改金幀畵施主目錄, 1857년)에도 그 이름이 올라있고, 불량답매입기(佛糧畓買入記)에 1857년(철종8) 영기대사(永奇大師) 등이 권화(勸化)하여 판전에 신중탱화를 조성했다는 기록이 남아있어 1856년 판전을 건립하고 그 다음해인 1857년에 조성한 것으로 추정된다. 화엄경 39위 신중을 묘사한 드문 형식 가운데 하나로서 많은 인물들을 화면에 꽉 차게 배치하면서도 4열로 질서정연한 배치를 보여줄 뿐 아니라 섬세한 필선과 세밀한 문양이 돋보인다. (자료출처: 문화재청 문화유산정보) - 봉은사 미륵대불 -

* 문화재 소재지: 서울특별시 강남구 봉은사로 531 (삼성동, 봉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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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은사 비로자나불도(奉恩寺 毘盧舍那佛圖,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232호)

  봉은사 비로자나불도(奉恩寺 毘盧舍那佛圖,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232호)는 현재 판전의 후불탱화로 봉안되어 있는 불화로 등운수은(騰雲修隱)이 화주가 되어 상궁 8인의 시주로 조성하였으며, 영명영기(影明影機)의 주도 하에 경선응석(慶船應釋)이 출초를 하고 동호진철(東昊震徹), 연하계창(蓮荷啓昌), 종현현조(宗現賢調), 혜능창인(惠能彰仁) 등이 함께 1886년 제작하였다. 세로 302.3cm, 가로 236cm의 면본채색화(棉本彩色畵)다.

  본존인 비로자나불(毘盧舍那)은 수미단 위의 연화대좌 위에 지권인을 결하고 안정감있는 자세로 결가부좌하고 있다. 화염에 둘러싸인 이중륜광(二重輪光)을 두르고 있는데, 신광의 내부는 금색으로 칠하여 마치 비로자나의 몸에서 빛이 퍼져 나가는듯한 느낌을 준다. 둥글고 원만한 상호에 작은 이목구비가 단정하며 육계는 높고 뾰족하며 정상계주와 중간계주가 묘사되었다. 신체는 지권인을 결하여서인지 어깨가 좁아 보이지만 결가부좌한 자세가 안정감이 있고 균형있는 모습을 보여준다. 착의법은 통견으로, 붉은 대의 가장자리에는 잔잔하게 화문이 장식되어 있다. 본존의 아래에는 문수보살과 보현보살이 연꽃 위에 반가좌한 자세로 앉아있다. 문수보살은 여의(如意), 보현보살은 백련(白蓮)을 들고 본존을 향했는데 이들 역시 본존과 같은 모습으로 둥근 얼굴에 이목구비가 작다.

  본존의 좌우에 가섭존자(迦葉尊者)와 아난존자(阿難尊者)가 두 손을 모으고 본존을 향해 서있다. 두 존자 모두 녹색의 두광을 두르고 붉은 가사를 걸치고 있는데, 주름이 깊고 백발이 성성한 가섭존자는 오른손으로 왼손을 감싸 쥐고 있는 반면 젊은 사미승같은 아난존자는 두 손을 가지런히 모으고 있는 모습이 대조적이다. 화면의 가장자리에는 좌우 각 2구씩 사천왕이 배치되었다. 사천왕(四天王)은 보통 화면의 하단부에 2구씩 묘사되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여기에서는 아래, 위로 배치되어 불, 보살을 외호하는 호법신의 모습을 잘 표현하였다. 향우측 상단부의 천왕은 비파를 연주하고 있으며 아래쪽의 천왕은 비스듬히 칼을 들고 서있다. 반대편에는 용과 여의주를 든 천왕, 위쪽에는 7층탑을 받쳐 든 천왕이 그려져 있다. 보관을 쓰고 붉은색의 옷을 입은 천왕은 수염이 더부룩하고 두 눈을 부릅뜬 모습이 신장으로서의 용맹함을 나타내고 있지만 놀란 듯한 동그란 두 눈은 19세기 후반 경기도지역 불화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것으로, 해학적인 느낌을 준다. 적색을 위주로 하여 녹색과 황색, 흰색 등을 사용하였으며, 특히 청련 대좌를 비롯하여 하늘, 보살과 천왕의 옷에 부분적으로 청색을 가하여 마치 청색과 적색이 주조색인 것처럼 보인다. 또 비로자나의 신광 내부를 금색으로 칠하여 장광상(丈光相)을 효과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이 불화는 일반적인 후불탱화와 달리 비로자나삼존(毘盧遮那三尊)과 가섭존자(迦葉尊者), 아난존자(阿難尊者), 사천왕(四天王)만을 그린 간단한 구도를 취하고 있는데, 음영이 묘사된 권속들의 얼굴과 신광내부를 금색으로 처리한 수법 등은 19세기 말 서울, 경기 지역에서 특히 유행한 불화양식을 잘 보여주고 조선말기 왕실 발원 불화의 하나로서 가치가 있다. (자료출처: 문화재청 문화유산정보)

* 문화재 소재지: 서울특별시 강남구 봉은사로 531 (삼성동, 봉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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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방광불화엄경 수소연의초목판(大方廣佛華嚴經 隨疏演義初木版)

  대방광불화엄경 수소연의초목판(大方廣佛華嚴經 隨疏演義初木版,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84호)은 봉은사(奉恩寺) 판전에 봉안되어 있는 경판이다. 대방광불화엄경은 줄여서 화엄경이라고도 부르기도 하며, 화엄종의 근본경전으로 법화경과 함께 우리나라의 불교사상을 확립하는데 크게 영향을 끼쳤다.

  이 화엄경판(華嚴經板)은 철종 7년(1856) 동방의 율사로 이름을 떨친 전라도 고부 출신 남호영기(南湖永奇, 1820∼1872) 스님이 화엄경의 내용을 24.7 * 50.9cm 크기로 반곽(半郭)하고 한 면에 10줄씩, 각줄 20자씩 3,175매의 판에 “화엄소초(華嚴疏鈔)”라 새기고 그 아래 권차(卷次), 장차(張次) 및 시주자(施主者) 이름을 새겼다. 남호영기 스님이 1854년 망월사(望月寺)에서 화엄경을 설법하면서 대승불교의 대표적인 경전 화엄경을 판각하는 작업을 시작하여 당시 많은 불교신자들의 후원아래 방대한 분량의 완성한 것이다. 당시에 사용한 저본(底本)은 성총(性聰, 1631∼1700) 스님이 명나라 판본을 입수하여 1690년(숙종 16)에 간행하였다고 한다. 이 화엄경판을 봉안하기 위해 법당을 신축하고 추사(秋史) 김정희(金正喜)의 글씨체로 판전(板殿) 현판을 걸었는데, 우리나라에서는 네 번째로 화엄경판을 만들어 봉안한 것이라고 한다.

  대방광불화엄경 수소연의초는 7세기 말 당나라 실차난타(實叉難陀)가 번역한 80권의 ‘대방광불화엄경’에 대해 징관(澄觀: ?∼839)이 주석(註釋)한 것을 말한다.

  이 화엄경판은 19세기 중기의 것이지만 대승불교의 대표적인 경전인 화엄경의 주석본으로서는 규모가 크고 희소성이 있는 불교 유산이다. 봉은사 판전(板殿)에는 귀중한 경판을 완벽하게 보관하기 위해 바닥을 온돌로 만들어 습기를 방지하고 있다. (자료출처: 문화재청 문화유산정보)

* 문화재 소재지: 서울특별시 강남구 봉은사로 531 (삼성동, 봉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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