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계사 팔상전신중탱(雙磎寺 八相殿神衆幀)

  쌍계사 팔상전신중탱(雙磎寺 八相殿神衆幀,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385호)은 ‘쌍계사 고법당 제석신중탱(雙磎寺 古法堂 帝釋神衆幀)’이라 명명되기도 한다.

  신중탱(神衆幀)은 세로가 긴 직사각형(181.4cm×128cm)으로 1폭(4부(副) 1포(鋪))이다. 화면 하단 향좌측과 향우측에 화기란(畵記欄)이 각각 설정되어 있으며, 위태천 향좌측의 호법신의 착의는 주색과 녹청색으로 채색하였고 향우측 호법신의 착의 표현은 위태천의 모습에 표현된 것과 마찬가지로 호분을 두텁게 발라 금분을 도드라지게 표현하였다. 탱화에 그려진 인물은 거의 여백 없이 조밀하게 표현되었으며 그 주위는 황록의 채운과 화려한 문양이 장식되어 복잡한 느낌을 준다.

  신중(神衆)은 불법(佛法)과 수행자의 수호를 서원한 신들로서, 고대 인도신으로부터 비롯되어 중국을 거쳐 우리나라에 들어오면서 그 나라의 토속신들을 호법신으로 수용하였다. 조선 후기에는 인도와 중국과 우리나라의 신들이 결합된 신중신앙이 성행하였다. 신중은 불·보살보다 낮은 지위에 있지만 육도중생보다 위에 자리한다. 따라서 사람들은 부처님을 가장 가까운 곳에서 보필하며 그들의 소망을 빠르고 올바르게 전달하는 자로서, 신중을 향해 예배를 드리며 수호에 대한 감사를 표하고 깨달음을 얻기를 염원하는 것이다. 신중탱은 특정한 전각에 봉안되는 것이 아니라 불·보살이 모셔진 전각이라면 대부분 걸리기 마련이어서 조선시대 불화 가운데 전해지는 수가 가장 많다. 현존하는 신중탱은 거의 18세기와 19세기에 제작된 것들이다. 주존탱의 엄정함과는 다르게 신중탱은 비교적 자유로운 형식으로 그려지며 그 표현도 다양하다. 신중탱의 주요 신들은 제석천, 범천, 위태천을 중심으로 이루어지며 때때로 대자재천과 예적금강이 등장하기도 한다. 제석천(帝釋天)은 번개를 의인화한 고대 인도신 인드라(Indra)로 불교에 흡수되면서 불법수호의 역할을 맡았다. 욕계 도리천에 머물면서 여러 천중과 사천왕을 거느린다. 우리나라에서는 환인(桓因)과 동일시하면서 제석신앙이 성행하였다. 화려한 보관을 쓰고 있으며 꽃을 지물로 들고 있거나 설법인 혹은 합장인을 한 모습으로 표현된다. 범천(梵天)은 인도 브라만교의 우주 창조신인 브라흐만(Brahman)으로 제석천과 함께 불교에 귀의하면서 호법신이 되었다. 제석천과 마찬가지로 꽃을 들거나 합장을 한 보살형의 모습으로 그려진다. 드물게 이마에 세로로 된 눈 하나를 더 그려 3개의 눈을 가진 얼굴로 표현되기도 한다. 위태천(韋駄天)은 동진보살(童眞菩薩)로 널리 알려져 있다. 인도 브라만교의 신으로 시바 또는 아그니의 아들인 스칸다(Skanda)이며 천군의 대장이자 모든 악을 소멸하는 신이다. 불교에 귀의하면서 남방증장천의 8대장군의 하나가 되었고 32장군의 우두머리로서 석가모니가 열반할 때 출가인을 보호하고 불법을 호지할 임무를 맡았다. 갑옷을 입고 머리에는 새 깃털장식의 투구를 쓰고 보봉(寶棒)이나 칼, 금강저 등을 주로 팔 위로 가로지르고 합장한 형상을 하고 있다. 대자재천(大自在天) 또는 마혜수라천(摩醯首羅天, Mahasura)으로 불린다. 원래는 인도 브라만교 최고의 신인 시바(Siva)로, 불교에 귀의하면서 색계의 색구경천 주재자이자 불법을 수호하는 호법신이 되었다. 보살형의 모습에 3개의 눈과 8개의 팔을 갖고 있다. 손은 합장을 하거나 해와 달, 창, 금강령 등의 지물을 들고 있다. 때때로 시바가 타고 다니는 흰 소 난디(Nandi)를 탄 모습을 하고 있다. 예적금강(穢跡金剛) 또는 오추사마(烏樞沙摩)로 불린다. 여래의 화현이며 일체의 더러움과 악을 제거하는 위력을 가진 명왕(明王)이다. 19세기 초에는 붉은 머리카락을 곤두세운 험상한 얼굴에 손에는 금강저를 들거나 공수인(拱手印)을 하고 있다. 19세기 후반에는 얼굴 3개에 눈도 3개이며 이를 드러내며 분노한 표정을 짓고 있다. 8개의 팔을 갖고 있으며 손은 합장을 하거나 금강령, 뱀, 부적, 칼, 밧줄, 창 등의 지물을 들고 있다. 또한 온몸을 불에 휩싸이게 그려 보다 극적으로 분노존(忿怒尊)을 표현하기도 한다.

  신중탱(神衆幀)은 1781년에 제작된 쌍계사 국사암 신중도를 모본으로 하여 조선 정조 14년(1790) 4월에 제작되었는데, 금어(金魚) 평삼(評三), 홍원(弘愿), 지순(智淳), 극찬(極贊) 등을 비롯하여 찰민(察旻), 양수(揚修) 등 여러 사람들이 편수(片手)에 참여하였다. 전통적인 도상을 계승하여 제작된 것으로서 차후 호남지역 신중도의 전형적인 도상이 된 불화이다. 현재 쌍계사 성보박물관에 소장되어 있으며, 보존상태가 양호하다. (자료출처: 문화재청 문화유산정보)

* 문화재 소재지: 경남 하동군 화개면 쌍계사길 59, 쌍계사

 

이영일∙고앵자/ 채널A 보도본부 스마트리포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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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계사 팔상전팔상탱(雙磎寺 八相殿八相幀, 보물 제1365호)

  쌍계사 팔상전팔상탱(雙磎寺 八相殿八相幀, 보물 제1365호)은 쌍계사 팔상전(경상남도유형문화재 제87호)에 모셔져 있는 불화로, 석가의 생애를 여덟 장면으로 나누어 묘사한 팔상탱이다.

  팔상탱(八相幀)의 여덟 장면은 석가모니가 도솔천에서 코끼리를 타고 사바세계로 내려오는 장면인 도솔래의상, 석가모니가 룸비니공원에서 마야부인의 옆구리를 통해 출생하는 모습을 그린 비람강생상, 태자가 성문 밖의 중생들의 고통을 관찰하고 인생무상을 느끼는 장면의 사문유관상, 부모의 반대를 무릎쓰고 출가하는 장면을 묘사한 유성출가상, 설산(雪山)에서 신선들과 수행하는 모습을 그린 설산수도상, 태자가 수행 중 온갖 유혹과 위협을 물리치는 수하항마상, 부처가 녹야원에서 최초로 설법하는 모습을 나타낸 녹원전법상, 부처가 쌍림수 아래에서 죽음에 이르는 모습을 표현한 쌍림열반상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팔상탱은 모두 8폭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각 폭의 장면은 건물과 구름·나무·산을 이용하여 구분짓고, 각 장면마다 이에 따른 내용을 적어 놓고 있어 그림을 이해하기에 쉽다는 특징이 있다. 그 가운데에서도 각 상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수목의 표현은 도식적이지 않고, 일반회화 속의 나무와도 같아 매우 자연스럽고 사실적이다.

  각 폭마다 동일하게 화면의 아랫부분에 그림에 대한 내력을 적어 놓았는데, 이 기록을 통해 옹정 6년, 즉 1728년에 일선·후경·명정·최우·원민·처영·신영·영호 등 8명의 승려화가들에 의해서 조성되었음을 알 수 있다. 패널형식의 각 폭 모두 주요 내용만을 중점적으로 나타낸 간단한 구도로, 전체적인 구성이 1725년에 그려진 순천송광사팔상도와 비교할 때 색채만 약간 다를 뿐 거의 같은 도상을 보여주고 있어 동일본을 사용하여 그려졌을 것으로 추정된다.

  현존하는 석가팔상도 가운데 ‘예천용문사 팔상탱(醴泉龍門寺 八相幀, 보물 제1330호)’이 1709년 제작시기에 이어 빠른 편에 속하며 공간감과 색채의 조화 등 그에 상응하는 화풍상의 특징도 보여주고 있다. 여유로운 경물의 배치와 함께 일반회화에서 볼 수 있는 수목의 자연스럽고 사실적인 표현기법 또한 18세기 전반의 팔상도나 감로왕도 등에서 종종 보여지고 있어, 당시 또는 앞선 시기 일반회화와의 관계까지도 미루어 짐작해 볼 수 있다는 데 자료적 가치가 있다. (자료출처: 문화재청 문화유산정보)

* 문화재 소재지: 경남 하동군 화개면 쌍계사길 59, 쌍계사

 

이영일∙고앵자/ 채널A 보도본부 스마트리포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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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계사 팔상전영산회상도(雙磎寺 八相殿靈山會相圖, 보물 제925호)

  쌍계사 팔상전영산회상도(雙磎寺 八相殿靈山會相圖, 보물 제925호)는 석가가 영취산에서 설법한 내용을 묘사한 영산회상도이다.

  영산회상도(靈山會相圖) 크기는 길이 410㎝, 폭 273㎝이다. 석가불(釋迦佛)을 중심으로 사천왕상(四天王像), 여러 보살, 제자 등의 무리가 석가불을 에워싸고 있는 모습이다. 석가불은 오른쪽 어깨가 드러난 우견편단의 옷을 걸치고 중앙에 앉아 있으며 얼굴은 둥글고 이목구비는 작으며 신체는 건장하고 당당하다. 사천왕상과 여러 보살, 제자들의 모습은 석가불처럼 당당한 모습니다. 색채는 밝고 부드러운 중간색을 주로 사용하였다.

  조선 숙종 7년(1681)에 그려진 이 불화는 비교적 큰 편이지만 짜임새 있는 구도를 보여주고 공간의 처리방법과 회화기법 등 이 매우 뛰어나며 17세기 중반의 특징을 잘 보여주는 우수한 작품이다. (자료출처: 문화재청 문화유산정보)

* 문화재 소재지: 경남 하동군 화개면 쌍계사길 59, 쌍계사 

 

이영일∙고앵자/ 채널A 보도본부 스마트리포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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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동 쌍계사 천왕문과 사천왕상(河東 雙磎寺 天王門 · 四天王像)

  쌍계사 천왕문(雙磎寺 天王門,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126호)은 조선(朝鮮) 숙종 30년(1704)에 박봉스님이 지었고 순조 25년(1825)에 고쳤으며, 현재의 건물은 고산스님이 1978년에 다시 수리한 것이다.

  사천왕(四天王)을 모시는 문으로 앞면 3칸·옆면 2칸의 규모이며, 지붕 옆면이 사람 인(人)자 모양인 맞배지붕집이다. 가운데 칸은 개방해서 통로로 사용하고 있고, 양 옆칸은 벽으로 막은 후 사천왕상(四天王像)을 모시고 있다.

  천왕문(天王門)의 주련(柱聯)은梵王帝釋四天王-범천왕과 제석천왕 그리고 사천왕이/ 佛法門中誓願堅-불법을 수호하는 서원이 견고하여/ 列立招提千萬歲-가람주위 늘어서서 천만년을 수호하니/ 自然神用護金仙-자연스런 신통묘용 부처님을 보호하네.이 걸려있다.

  천왕문(天王門)은 금강문(金剛門)보다 충실하고 튼튼하며, 다소 격이 높지만 금강문과 거의 비슷한 건축양식을 잘 나타내고 있다.

  하동 쌍계사 사천왕상(河東 雙磎寺 四天王像,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413호)은 쌍계사 천왕문(雙磎寺 天王門)에 안치된 목조 사천왕상(木造 四天王像)은 조선후기(朝鮮後期) 1705년에 제작된 475cm 규모의 대형작품이다. 사천왕(四天王)은 부처님께 의지하여 불법을 수호하고 수도하는 스님과 선량한 사람을 돕는 4명의 수호신이다. 수미산(須彌山)에 거주하면서 동방(東方)을 비파(琵琶)를 들고 다스리는 지국천왕(持國天王), 서방(西方)을 용(龍)과 여의주(如意珠)를 들고 다스리는 광목천왕(廣目天王), 남방()을  삼지창()과 보탑(寶塔)을 들고 다스리는 증장천왕(增長天王), 북방(北方)을 칼을 들고 다스리는 다문천왕(多聞天王)이 있다.

  목조사천왕상(木造四天王像) 중에 조선전기부터 17세기에 이르는 현존작품은 ‘장흥 보림사 목조사천왕상(長興 寶林寺 木造四天王像, 보물 제1254호, 1539년 제작)’을 비롯한 10여점이 알려져 있다. 그 중에서도 현재 ‘적천사 목조사천왕의좌상(磧川寺 木造四天王椅坐像,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153호, 1690년 제작)’ 다음으로 쌍계사 사천왕상은 불교조각 중에 그 규모가 상당히 돋보이는 작품일 뿐만 아니라 현존 상태가 비교적 양호하며, 신체의 당당함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하동 쌍계사 사천왕상(河東 雙磎寺 四天王像)은 천왕문에 나무로 만들어 안치된 규모가 대형으로 조각 솜씨가 뛰어나고 조선시대의 사천왕탱(四天王幁)과 도상 비교연구에 중요한 문화재이다. (자료출처: 문화재청 문화유산정보)

* 문화재 소재지: 경남 하동군 화개면 쌍계사길 59, 쌍계사 (운수리)

* 한국문화재재단 문화유산채널:

http://www.k-heritage.tv/hp/hpContents/photo/storyView.do?categoryType=4&contentsSeq=12904

 

이영일∙고앵자/ 채널A 보도본부 스마트리포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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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법수호와 속세의 더러움을 씻어내는 쌍계사 금강문

  쌍계사 금강문(雙磎寺 金剛門,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127호)은 일주문 다음에 통과하는 문으로 천왕문과 함께 절에 들어오는 공간으로 불법을 수호하고, 속세의 더러움을 씻어내는 의미가 있는 장소이다.

  금강문(金剛門)의 건축양식은 앞면 3칸·옆면 2칸으로 1층이다. 지붕은 옆면이 사람 인(人)자 모양인 단순한 맞배지붕이다. 가운데 칸은 개방하여 통로로 사용하고, 양 끝 칸은 벽으로 막아서 금강역사를 모시고 있다. 신라 문성왕 2년에 혜소 진감선사(慧昭 眞鑑禪師, 774~850)가 지었고, 인조 19년(1641)에 벽암선사(碧巖禪師, 1575∼1660)가 다시 지었으며, 현재의 건물은 1979년에 수리한 것이다. 문 앞에는 벽암스님이 쓴 ‘금강문(金剛門)’이란 현판이 있다.

  금강문(金剛門)에는 금강역사(金剛力士)를 모시고 있는데 금강역사는 불교(佛敎)를 수호(守護)하고 악(惡)을 벌(罰)하는 천신(天神)으로 문의 왼쪽에는 금강저(金剛杵)라는 무기를 가지고 늘 부처를 호위하는 야차신(夜叉神) ‘밀적금강(密迹金剛)’이 있고 오른쪽에는 천상계의 역사로서 힘이 코끼리의 백만배나 힘이 센 ‘나라연금강(那羅延金剛)’이 있다.

  쌍계사는 통일신라 성덕왕 21년(722) 대비(大悲), 삼법(三法) 두 화상(和尙)이 절을 지은 뒤 문성왕 2년(840년) 중국에서 선종의 법맥을 이어 귀국한 혜소 진감선사(慧昭 眞鑑禪師, 774~850)가 퇴락한 삼법스님의 절터에 옥천사(玉泉寺)를 중창하여 선(禪)의 가르침과 범패(梵唄)를 널리 보급하였다. 후에 정강왕(재위 886∼887)이 두 개의 계곡이 만나는 절 주변의 지형을 보고 쌍계사로 고쳤다고 한다. 임진왜란 때 절이 불에 탔던 것을 벽암선사(碧巖禪師, 1575∼1660)가 인조 10년(1632) 다시 고쳐 세워 오늘에 이르고 있다.

  쌍계사 금강문(雙磎寺 金剛門)은 전체적으로 부재 크기가 다소 작아서 가냘프고, 약한 느낌을 주는 건물이다. (자료출처: 문화재청 문화유산정보)

* 문화재 소재지: 경남 하동군 화개면 쌍계사길 59, 쌍계사 (운수리)

* 한국문화재재단 문화유산채널:

http://www.k-heritage.tv/hp/hpContents/photo/view.do?categoryType=1&contentsSeq=12902

 

이영일∙고앵자/ 채널A 보도본부 스마트리포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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