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지은니묘법연화경 권7(紺紙銀泥妙法蓮華經 卷七, 보물 제352호)

  묘법연화경(妙法蓮華經)을 줄여서 ‘법화경’이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우리나라 천태종의 근본경전으로 부처가 되는 길이 누구에게나 열려 있다는 것을 기본사상으로 하고 있다. 화엄경과 함께 우리나라 불교사상의 확립에 가장 크게 영향을 끼쳤으며, 우리나라에서 유통된 불교경전 가운데 가장 많이 간행된 경전이다.

  감지은니묘법연화경 권7(紺紙銀泥妙法蓮華經 卷七)은 검푸른 색의 종이에 은가루를 사용하여 불경의 내용을 옮겨 쓴 것으로, 묘법연화경 전 7권 가운데 마지막 권 제7이다. 병풍처럼 펼쳐서 볼 수 있는 형태이며, 접었을 때의 크기는 세로 33.5㎝, 가로 11.5㎝이다. 고려 우왕 12년(1386)에 죽산군부인(竹山郡夫人) 김씨 등이 시주하여 각보(覺普)의 주선으로 각연(覺連)이 만들었다는 내용이 책 끝부분의 간행기록에 자세하게 적혀있다.

  다른 경전에 비하여 간행기록이 구체적이고 완전하게 작성된 것이 특징인데, 시주자의 가족만을 위한 기원이 아니라 보편적으로 국왕과 국가를 위한 기원이 앞서고 있다. (문화재청 문화유산정보)

* 문화재 소재지: 서울 서대문구 이화여대길 52 이화여자대학교박물관

 

자료: 이영일/ 채널A 보도제작부 스마트리포터

사진: 고앵자/ 채널A 보도제작부 스마트리포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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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자 청화송죽인물문 항아리(白磁 靑畵松竹人物文 立壺, 보물 제644호)

  백자 청화송죽인물문 항아리(白磁 靑畵松竹人物文 立壺, 보물 제644호)는 조선 전기에 만들어진 높이 47㎝, 아가리 지름 15.4㎝, 밑지름 16.7㎝의 청화백자 항아리로, 목은 짧고 어깨가 올라가서 긴장감이 느껴지는 그릇 모양을 하고 있다.

  밑 부분은 좁게 내려가다가 굽에서 나팔모양으로 퍼졌는데, 이러한 모양은 짧게 수직으로 내려가는 굽을 가진 초기 청화백자에서 흔히 보이는 형태이다. 목 윗부분에는 가로줄 하나를 그린 다음 그 밑에 구름을 그려 넣었고, 굽 부분에도 가로로 한 줄을 그렸다.

  그릇의 몸통 전면에는 소나무 한 그루와 대나무 몇 그루를 그렸다. 소나무 밑에는 책상에 팔을 괴고 있는 인물을, 대나무 밑에는 거문고를 든 동자를 거느린 한 선비가 거닐고 있는 모습이 묘사되어 있다. 구도나, 인물의 배치 및 묘사가 16세기 후반의 화풍과 매우 유사하여, 이 항아리의 제작시기는 대체로 16세기 후반 경으로 추정하고 있다.

  그릇을 구우면서 굽이 두꺼워 터진 곳이 있고, 아가리 부분과 굽 부분에 약간 수리를 한 흔적이 있으나, 보기 드문 조선 전기의 걸작이다. (문화재청 문화유산정보)

* 문화재 소재지: 서울 서대문구 이화여대길 52, 이화여자대학교박물관 (신촌동)

 

자료: 이영일/ 채널A 보도제작부 스마트리포터

사진: 고앵자/ 채널A 보도제작부 스마트리포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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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인의 혼이 담긴 강서대묘 고분벽화의 사신도

  강서대묘((江西大墓)는 평안남도 대안시 삼묘리(옛 이름은 강서군 강서면 삼묘리)에 있는 고분벽화의 사신도로 동서남북 4방위 수호신 동의 청룡(靑龍), 서의 백호(白虎), 남의 주작(朱雀), 북의 현무(玄武)를 뜻한다. 이들은 상상의 동물이다. 청룡과 백호는 서로 그 모습을 구분하기 어려울 정도로 비슷하며, 주작은 때때로 수탉으로 표현되기도 한다. 또한 현무는 거북과 뱀의 조화로운 형상을 띄고 있다. 사신도는 초기 고구려 고분벽화에서 천장 부분에 작은 형태로 그려져 있었다. 그러나 후기의 고분벽화에서는 사신도가 고분 전체의 주제가 되면서, 고분의 4방위마다 각기 한 면을 차지하는 큰 그림이 그려져 있다. 이들의 사신도는 뛰어난 생동감과 화려한 색채로 예술적 가치가 대단히 높은 것으로 정평이 나 있다.

  고구려 사람들에게 사신은 저승세계로 가는 길을 호위해 주는 신으로 여겨졌다. 그리하여 저승으로 가는 길에 나쁜 기운이 들어오지 못하게 사신도를 벽화 전면에 그린 것이다.

  사신도가 그려진 벽화고분은 현재 34기로 알려져 있다. 사신도는 무용총·장천1호분 등에도 그려져 있으나 사신도가 벽화고분의 대주제로 나타난 것은 6세기 이후의 일이었다. 사신도가 그려진 무덤으로는 강서대묘·강서중묘·오회분(다섯무덤)4호묘·오회분(다섯무덤)5호묘·통구사신총 등이 있다.

  강서대묘((江西大墓)는 부근의 다른 두 무덤과 함께 우현리삼묘·강서삼묘라고도 불린다. 봉분의 직경이 51.6m, 높이는 8.86m에 이르는 대형 봉토석실분으로 널길과 널방으로 이루어진 남향의 외방무덤이다. 장방형인 널방의 동서폭은 3.12m, 남북길이는 3.17m이며 바닥에서 천장까지의 높이는 3.5m이다. 널방은 잘 다듬어진 화강암 판석으로 축조했으며 천장은 평행삼각고임 방식으로 쌓아 올렸다. 널방 바닥에는 동서에 나란히 돌로 만든 2개의 관대를 설치했다. 널방벽과 천장부의 석면에 직접 벽화를 그렸는데, 필선이 힘차고 생동감이 있어 고구려 벽화의 걸작으로 손꼽힌다.

  널방 벽화의 주제는 사신(四神)이며 천장부 벽화의 주제는 신선세계이다. 널방 동벽의 청룡과 서벽의 백호는 널방 입구를 향하여 포효하고 있는데, 세부묘사가 치밀하고 필치에 생동감이 있으며 채색이 화려하여 환상적이고 신비한 느낌마저 준다. 널방 입구인 남벽의 좌우에는 널방문쪽을 향하여 마주보며 막 날아오르는 순간의 주작 1쌍을 그렸다. 연꽃 봉오리 가지를 입에 물고 있는 두 주작의 좌우로 펼친 양날개와 위로 뻗은 긴 꼬리는 팽팽한 원을 이루고 있다. 두 주작의 발밑에는 여러 개의 봉우리로 이루어진 산들이 묘사되어 있다. 이는 풍수지리설과 관련된 표현으로 보인다. 널방 북벽의 현무는 강서대묘의 사신도 가운데 그 뛰어난 작품성으로 인하여 특히 유명한 그림이다. 현무의 뱀과 거북은 거북의 등 부분에서 머리를 마주하고 위로 제끼고 입에서 화염을 뿜어내고 있다.

  천장부의 평행고임 제1단은 화려한 연속 인동당초무늬[忍冬唐草紋]로 장식되었다. 제2단에는 산악도와 선인(仙人)과 비천(飛天)들이 묘사되어 있다. 고임돌 동쪽받침과 서쪽받침에는 중앙에 산악도를 그리고, 그 좌우에는 서조(瑞鳥)를 타고 있는 인물들을 표현했다. 남북받침에는 머리를 삭발한 천인(天人)을, 북쪽받침에는 4명의 비천을 그렸다. 비천의 자태는 남북조시대 석굴사원에 등장하는 비천과 여러모로 유사하여 상호영향관계를 짐작하게 한다.

  제2단 고임돌에 그려진 인물과 동물들은 모두 자신의 왼편을 향하고 있다. 선인과 비천 및 상서동물들 사이의 공간에는 3엽연꽃과 구름을 그려넣어 공간배치의 균형을 꾀하고 있다. 고임돌 동서측의 산악도는 색조의 농담과 필치의 강약으로 토산과 암산을 구분하고 구름과 나무 등으로 산의 원근과 입체감을 나타내려고 하는 등 높은 수준의 회화적 기법을 보여주고 있다. 삼각고임 제1단과 제2단 고임돌에는 봉황·기린·영지(靈芝) 등 각종의 상서로운 동식물을 그렸다.

  천장뚜껑돌 밑면에는 오행(五行)의 중심에 해당하는 황룡을 묘사하였다. 황룡은 시계 반대방향으로 힘차게 몸을 틀었는데, 주변의 구름으로 인해 신비감을 자아내고 있다.

  강서대묘는 널방의 축조방식이 정교하고 치밀하며 벽화의 구상이 장대하고 기법이 세련되어 그시기 고구려 건축기술상의 수준과 회화기법상의 발전정도를 잘 드러내는 고분이다. 널방축조 및 벽화의 제작연대는 6세기 후반에서 7세기 전반에 이르는 시기일 것으로 추정된다.  (문화재청 문화유산정보)

* 강서대묘 사신 모사도 문화재 소재지: 서울 용산구 서빙고로 137, 국립중앙박물관 (용산동6가)

 

자료: 이영일/ 채널A 보도제작부 스마트리포터

사진: 고앵자/ 채널A 보도제작부 스마트리포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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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평 보리사지 대경대사탑비와 탑(보물 제361호와 보물 제351호)

  양평 보리사지 대경대사탑비(楊平 菩提寺址 大鏡大師塔碑, 보물 제361호)는 통일신라 말에서 고려 초에 활약한 승려인 대경대사의 탑비로, 보리사터에서 발견되어 경복궁으로 옮겨졌다가, 현재는 국립중앙박물관 경내에 있다.

  대경대사(862∼930)는 통일신라 경문왕 2년(862)에 태어나 9세 때 출가하여 교종을 배웠으나, 19세에 승려가 지켜야 할 계율을 받았다. 그 후 교리보다는 참선(禪)에 뜻을 두어 성주사의 무염대사에게서 수행하기도 하였다. 중국 당나라로 건너가 수 년 동안 정진하다가 효공왕 13년(909)에 귀국 후 경순왕의 스승이 되었으며, 고려 태조의 부름으로 보리사의 주지가 되었다. 68세로 입적하니, 태조는 그의 시호를 ‘대경대사’라 하고 탑 이름을 ‘현기’라고 내렸다.

  탑비는 여의주를 물고 일어선 납작한 돌거북 받침과, 거대한 비머리돌이 서로 조화를 이루지 못해 균형을 잃고 있다. 그러나 머릿돌에 새겨진 구름과 용의 무늬가 매우 힘차게 조각되어 눈여겨볼 만하다. 비문에는 대사의 생애·공적 등이 새겨져 있는데, 당시의 문장가였던 최언위가 글을 짓고, 이환추가 글씨를 썼으며, 대사의 제자인 최문윤이 글씨를 새겼다. 글씨에는 획의 모서리를 날카롭게 살린데서 오는 강인함이 묻어나는데, 고려 전기의 특징이 잘 담겨져 있는 부분이다.

  탑비를 세운 시기는 고려 태조 22년(939)으로, 대사가 입적한 지 10년이 지난 후의 일이다.

* 탑비 문화재 소재지: 서울 용산구 서빙고로 137, 국립중앙박물관 (용산동6가)

  (전)양평 보리사지 대경대사탑(傳 楊平 菩提寺址 大鏡大師塔, 보물 제351호)은 통일신라 말과 고려 초에 활약한 승려인 대경대사의 사리탑이다.

  탑은 1913년 경기도 양평군 보리사터에서 서울로 옮겨왔는데, 이때 바닥돌이 떨어져 나가 현재는 새로 만든 바닥돌 위에 놓여 있으며, 기단부(基壇部)위에 탑의 몸돌을 올리고 지붕돌을 덮어 놓은 전형적인 8각 사리탑이다. 기단의 아래받침돌은 여러 단이 8각으로 구성되어 있고, 사자상과 구름, 연꽃조각 등을 돌아가며 조각하였다. 가운데받침돌은 구름조각으로 나뉜 각 면에 사람의 머리에 새 몸을 한 상상속의 새를 1구씩 도드라지게 새겼다. 윗받침돌은 아래에 비해 넓고, 위로 3단의 받침을 두었다. 탑신의 몸돌은 앞뒤 2면에 문짝모양을 새겼으며, 그 양옆으로는 사천왕상(四天王像)을, 나머지 2면에는 보살상을 조각하였다. 지붕돌은 밑면에 비천상과 꽃장식을 번갈아 도드라지게 조각했고 각 경사면은 움푹하다. 탑의 머리장식부분에는 연꽃봉오리모양의 장식만이 남아 있다.

  전반적으로 각 부 구조가 가지런하여 품위가 있으며, 조형과 균형미가 뛰어나다. 같은 터에서 발견된 대경대사의 사리탑비가 고려 태조 22년(939)에 세워졌으므로, 이 탑 역시 그 즈음에 만들어진 것으로 여겨진다. 이 탑은 국가 보물인데도 이화여대대학교 소유로 본 대학교 본관 뒤편의 총장공관 비공개지역에 위치하여 국민들은 문화재에 접근과 감상을 할 수 없는 아쉬움이 있다.  (문화재청 문화유산정보)  - 닭의장풀꽃, Common Dayflower, 소야곡, 순간의 즐거움. 주홍날개꽃매미(중국매미). 대경대사탑은 문화재청 정보 자료임 -

* 탑 문화재 소재지: 서울 서대문구 대현동 산11-1번지 이화여자대학교 총장 공간 비공개지역

 

정보: chA 이영일/ 채널A 보도제작부 스마트리포터

사진: chA 고앵자/ 채널A 보도제작부 스마트리포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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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우장식 장경호(土偶裝飾 長頸壺, 국보 제195호)

  토우장식 장경호(土偶裝飾 長頸壺, 국보 제195호)는 토우란 흙으로 만든 인형이라는 뜻으로 어떤 형태나 동물을 본떠서 만든 토기를 말한다. 토우는 장난감이나 애완용으로 만들거나 주술적 의미, 무덤에 넣기 위한 목적으로 만들어진다. 흙뿐 아니라 동물의 뼈나 뿔, 나무들로 만든 것도 있고, 짚이나 풀로도 만들기도 하지만, 많은 수가 흙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토우라는 말로 표현한다.

  토우장식 목항아리(장경호)는 국립경주박물관(1점), 국립중앙박물관(1점)의 2점으로 계림로 30호 무덤 출토 목항아리는 높이 34㎝, 아가리 지름 22.4㎝이고, 노동동 11호 무덤 출토 목항아리는 높이 40.5㎝, 아가리 지름 25.5㎝이다.

  미추왕릉지구 계림로 30호 무덤 출토 목항아리는 밑이 둥글고 아가리는 밖으로 약간 벌어진 채 직립(直立) 되어 있고, 4개의 돌출선을 목 부분에 돌렸다. 위에서 아래로 한번에 5개의 선을 그었고, 그 선 사이에 동심원을 새기고 개구리·새·거북이·사람 등의 토우를 장식했다. 몸체 부분은 2등분 하였고, 윗부분은 목 부분과 같이 한 번에 5개의 선을 긋고, 그 사이에 동심원을 새겼다. 어깨와 목이 만나는 곳에 남녀가 성교하는 모양과 토끼와 뱀 및 배부른 임산부가 가야금을 타는 모양의 토우를 장식했다.

  노동동 11호 북쪽 무덤 출토 목항아리의 아가리는 밖으로 약간 벌어진 채 직립이 되다가 끝부분에서 안으로 꺾어졌다. 목 부분은 돌출선에 의해 2부분으로 나눠지는데, 각각 한번에 5개의 선을 이용한 물결무늬를 겹치게 새겼고, 그 사이사이에 원을 찍었다. 몸체에도 역시 5선을 이용한 물결무늬를 새겼다. 토우는 계림로 30호 토우와 같은 형태이나 목 부분에만 있고 그 수도 적은 편이다.

  이러한 토우들은 생산, 풍요, 귀신을 물리치는 의미를 담고 있다. 토우들은 소박함 속에 뛰어난 예술성을 인정받고 있고, 시대적인 신앙과 풍부한 감정 표현을 보여준다. (문화재청 문화유산정보) - 대나무, bamboo -

* 문화재 소재지: 경북 경주시 일정로 186, 국립경주박물관, 서울 용산구 서빙고로 137 국립중앙박물관

 

자료: 이영일/ 채널A 보도제작부 스마트리포터

사진: 고앵자/ 채널A 보도제작부 스마트리포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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