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7대 괘불 중 유일한 국보. 진주 청곡사영산회괘불탱

  청곡사 영산회 괘불탱(靑谷寺 靈山會 掛佛幀, 국보 제302호)은 석가가 영취산에서 법화경을 설법하는 장면인 영산회상도를 그린 괘불이다. 괘불이란 절에서 큰 법회나 의식을 행하기 위해 법당 앞뜰에 걸어놓고 예배를 드리는 대형 불교그림을 말한다.

  괘불탱 길이 10.4m, 폭 6.4m 크기의 이 괘불은 본존불인 석가를 중심으로 양옆에 문수보살과 보현보살이 배치되어 있다. 화면 중심에 꽉 차게 배치되어 있는 석가는 얼굴이 둥글고 원만하며, 예배자의 시선을 의식한 듯 당당하게 표현하였다. 두 어깨를 걸친 옷은 중후하게 묘사하였고, 가슴 중앙에 ‘卍’ 자를 크게 그려 넣어 눈에 띈다. 옷은 붉은색과 녹색으로 채색하였고 옷깃에도 변화를 주었으며 전면에 걸친 꽃무늬 장식이 밝고 선명해 보인다. 석가 좌우에 있는 문수보살과 보현보살은 연꽃가지를 들고 서 있다. 본존보다 약간 작은 신체, 화려한 보관, 둥근 얼굴, 정면을 향한 자세 등이 매우 당당하고 화려하며 본존 뒤로 물러서게 배치해 원근감을 나타냈다. 청색, 하늘색, 연분홍색 등이 다양하게 나타나고 복잡하고 화려한 꽃무늬와 장신구가 보살을 더욱 돋보이게 한다. 보살의 머리 위에는 석가의 제자인 아난, 가섭을 비롯해 여러 불상이 그려져 있다.

  청곡사 창건은 신라 헌강왕 5년(879) 도선국사가 남행 중 푸른학이 월아산터에 날아와 앉으니 성스러운 기운이 충만한 명당이라 하여 이곳에 청곡사를 창건 하였다. 전설로는 고려말 1380년경 남해에 노략질하러 출몰하는 왜구들을 소탕한 이성계 장군이 청곡사를 참배하러 왔다가 마을입구 우물가에 말에게 물을 먹이고 자신도 목을 축이려 했는데 그 때 물바가지에 나뭇잎을 띄어서 이성계 장군에게 건네준 아름다운 여인이 있었으니 훗날 조선 태조의 둘째왕비인 신덕왕후였다. 당시 청곡사 마을 이름이 ‘갈마정’으로 목마를갈(渴), 말마(馬), 우물정(井)이었으니 지명에 나타나듯 전설을 이야기기해 준다. 수백 년이 지난 오늘날은 ‘갈전’으로 변했다. 신덕왕후는 그 후 고향마을의 청곡사를 대대적으로 불사하고 조선왕실의 비보사찰이자 원찰로 삼았으며 조선왕조 대대로 이어져 왔다. 조선시대 광해군 4년(1612)에 건립된 대웅전(경남 유형문화재 제51호)의 경남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이며, 업경전(경남 유형문화재 제139호), 목조석가여래삼존불상(보물 제1688호), 업경전 지장보살 및 23구(보물 제1689호), 제석천왕및대법천왕상(보물 제1232호), 괘불함(경남 유형문화재 제261호) 등의 보물을 소장하고 있는 대한불교 조계종 1000년 고찰이다.

  조선 경종 2년(1722)에 당대 최고의 승려화가인 의겸화사(義謙畵師) 등이 제자들과 더불어 조성한 것으로 80여 명의 스님과 수많은 신도들이 염불 속에서 제작된 이 괘불은 석가불, 문수보살·보현보살을 화면 가득 배치한 구도, 당당하고 건장한 체구, 둥글고 원만한 얼굴, 화려하고 밝은 색채와 꽃무늬 장식 등에서 18세기 초반의 불화 가운데 뛰어난 작품으로 평가된다. 석가·문수·보현의 삼존불입상이라는 점에서 예천 용문사의 괘불도와 비교되며, 의겸의 작품 가운데 가장 우수한 작품 중 하나로 여겨져 불교회화 연구에도 귀중한 자료가 되는 매우 가치있는 작품으로 우리나라 7대 괘불 중 유일한 국보다. (문화재청 문화유산정보)

* 문화재 소재지: 경남 진주시 금산면 월아산로1440번길 138, 청곡사문화박물관 (갈전리)

* 한국문화재재단 문화유산채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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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일/ 채널A 보도제작부 스마트리포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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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소싸움경기 주말에 오면 즐거웠던 2014년 대미 장식

  진주소싸움경기가 11월 29일 오후. 지난 3월부터 매주 토요일 시민과 관광객들에게 볼거리를 제공하던 대미를 장식하고 2015년 3월 다시 만날 것을 약속하며서 마무리 되었다. 이 날 경기장에는 진주시 팸투어에 참여한 중앙일간지 기자단도 함께 하였다.

  진주소싸움은 삼국시대부터 시작되어 우리나라 민속놀이로 언급될 정도로 그 유래가 깊고 우리나라 소싸움 대회의 발원지라고 할 수 있다. 천년 역사를 간직한 전통 소싸움 발원지로서 위상을 정립하고 소싸움을 전통민속놀이로 전승.발전시키기 위해 진주시가 전국 최초로 진양호 내에 전통소싸움경기장(진주시 판문오동길 100)을 건립하였다. 매년 1회 전국대회(개천예술제)와 3월부터 11월까지 매주 토요일마다 오후 1시 30분부터 가수 초청공연과 경품추첨 등 이벤트도 마련하고 상설 소싸움 대회를 개최하여 진주를 찾는 관광객에게 색다른 볼거리를 제공하고 있다.

  진주전국민민소싸움대회는 1897년 첫 대회를 시작으로 1971년부터는 전국 최초로 대회 요강(要綱)을 만들고 체급별 계량(計量)을 시작하는 등 소싸움 규칙을 만들어 체계적으로 시행하고 있으며 싸움소를 키우는 우주들에게는 선망의 대회이자 참가하고 싶어 하는 우리나라 최고의 명품 소싸움대회로 자리잡고 있다.

  소싸움 기술을 알고 보면 더 즐겁다. 들치기는 머리를 상대 소의 목에 걸어서 공격하는 것으로 싸움소의 노련미와 체력을 동시에 요하는 기술, 목치기는 상대 소의 틈을 노려 목부분을 공략하는 것으로 싸움소가 신경전을 벌이다가 공격하는 기술, 머리치기는 정면에서 상대 소와 머리를 부딪치며 공격하는 기술, 밀치기는 온 힘을 다해 서러 밀어붙이는 기본기술로 싸움소의 기초 체력과 특유의 뚝심이 필요한 기술, 뿔걸이는 상대 소의 뿔을 걸어 누르거나 들어 올리는 공격으로 잘 단련된 뿔을 이용하는 적극적인 공격 기술, 뿔치기는 뿔을 좌우로 흔들어 상대 소의 뿔을 치며 공격하는 기술로 직접적인 공격보다는 상대 소를 제압하며 다음 공격을 준비하는 기술, 연타는 뿔치기 뒤에 머리치기로 이어지는 연속 공격으로 상대 소에게 틈을 주지 않고 공격하는 기술로 승률이 가장 높은 기술, 옆치기(배치기)는 크게 옆으로 돌아 상대 소의 옆구리쪽 배를 공격하는 기술로 경기를 마무리할 때 쓰는 결정적인 공격 기슬이다.

  진주소싸움대회를 지역 무형유산의 목록화와 무형유산 조사, 지역 무형유산 활성화, 학술회의 등 경상남도 진주 지역 무형유산 협력사업 추진을 위한 문화재청 국립무형유산원(원장 김홍동)은 진주시(시장 이창희)와 11월 13일 진주시청 기업인의 방에서 업무협약(MOU)을 체결한바 있다. 경기안내문의는 (사)한국민소싸움협회 진주시지회: 055-747-6159)

* 한국문화재재단 문화유산채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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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일/ 채널A 보도제작부 스마트리포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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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하나 밖에 없는 목공예. 진주 단원공방으로 오셔요.

  정진호(鄭鎭昊, 경상남도 무형문화재 제29호 목공예 소목장 기능보유자)는 단원공방을 열어 전통의 멋이 현대에 거스름이 없이 오히려 미적감성을 불러일으켜 창작의 예술가로 평가받고 있다. 전승공예대전, 불교미술대전 등 각종 전통공예전에서 수상함으로써 소목장 기능보유자로 2004년에는 경상남도 무형문화재 제29호 소목장 기능보유자로 지정되어 진주지역의 소목 가구분야의 전통문화를 보호와 계승 발전시키는데 중추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단원공방에서 제작되는 작품들은 기능적인 면에서 전통방식을 고스란히 지키고 있고, 나무는 호두나무, 피나무, 오동나무, 느티나무, 먹감나무, 가죽나무 등 자생목을 사용하여 나무가 지닌 자연적 색상과 무늬 등을 접목하고, 기목장농, 반닫이, 애기장, 경상, 소반, 문갑, 찻상, 장기판, 괴목공예 등 제품의 제작방식도 전통적인 치목기법과 짜임기법, 상감기법 등으로 전통문양을 현대인의 기호에 알맞게 제작한 생활 공예품은 창작 예술적 솜씨를 한눈에 보여주고 있었다. 특히 불단이나 불상의 좌대 법상 등에서 나타나는 조각기능은 여타의 소목장들이 갖고 있지 않은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마무리 단계인 칠에 있어서도 전통적인 들기름, 콩기름, 잣기름, 호두기름, 옻 등을 사용한다.

  단원공방의 이러한 일련의 제작과정이 모두 공방 자체에서 이루어진다는 점에서 작품을 만드는 제작자이 의도를 온전히 드러난 작품들이다. 단순한 기능의 보호와 전승에 머무르지 않고 세계적인 명품으로 태어나길 기대해 본다.

* 단원공방 연락처: 경남 진주시 명석면 우수리 711-44번지 (055-744-3441)

* 한국문화재재단 문화유산채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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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일/ 채널A 보도제작부 스마트리포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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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신라시대 중원문화를 대표하는 충주 탑평리 칠층석탑(국보 제6호)

  충주 탑평리 칠층석탑(忠州 塔坪里 七層石塔, 국보 제6호)은 남한강의 아름다운 경관과 잘 어우러져 있는 통일신라시대의 중원문화(中原文化)를 대표하고 신라석탑 중 유일한 칠층석탑으로, 당시에 세워진 석탑 중 가장 규모가 크며, 우리나라의 중앙부에 위치한다고 해서 중앙탑(中央塔)이라고도 부르는 이 탑은 2단의 기단(基壇) 위에 7층의 탑신(塔身)을 올린 모습이다.

  석탑의 높은 탑신을 받치기 위해 넓게 시작되는 기단(基壇)은 10여 개의 크고 긴 돌로 2중으로 쌓아 올렸다. 탑 전체의 높이는 12.95m 정도로 높이에 비해 너비가 좁아서 가늘게 치솟는 느낌이 강하여 안정감 보다는 상승감이 두드러지는 탑이다. 각 면마다 여러 개의 기둥 모양을 새겨 놓았고, 탑신부(塔身部)의 각 층 몸돌 역시 모서리마다 기둥 모양의 조각을 두었다. 몸돌을 덮고 있는 지붕돌은 네 귀퉁이 끝이 경쾌하게 치켜 올려 있어 자칫 무겁게 보일 수 있는 탑에 활기를 주고 있으며, 밑면에는 5단씩의 받침을 새겨 놓았다. 탑 정상의 머리장식은 보통 하나의 받침돌 위에 머리장식이 얹어지는 신라 석탑의 전형적인 양식에서 벗어나, 이중으로 포개어진 똑같은 모양의 받침돌이 머리장식을 받쳐주고 있다.

  건립시기에 대해서는 여러 주장이 있으나 대체로 8세기 후반에서 9세기 초로 추정하고 있으며, 기단에서의 기둥조각 배치, 탑신의 몸돌과 지붕돌의 짜임수법으로 보아 통일신라 후기인 8세기 후반에 세웠을 것으로 추측된다. 1917년 탑을 해체와 복원 시 6층 몸돌과 기단 밑에서 훼손된 고서류 일부와 구리거울 2점, 목제칠함과 은제사리함이 나왔고 기단부에서는 청동함이 발견되었는데, 특히 6층 몸돌에서 발견된 거울이 고려시대의 것으로 밝혀져 탑 조성 이후 고려시대에 와서 2차 봉안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전체적으로 규모가 커서 웅장하기는 하나 너비에 비해 지나치게 높은 듯 하여 안정감은 덜하며, 세부수법이 약화되고 있어, 여러 차례 해체와 복원과정과 일제당시 보수하면서 일부 원형과 달리 변형되었다는 논란이 있다. (문화재청 문화유산정보)

* 문화재 소재지: 충청북도 충주시 가금면 탑평리 11-0

* 한국문화재재단 문화유산채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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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주 마곡사 오층석탑(公州 麻谷寺 五層石塔, 보물 제799호)

  공주 마곡사 오층석탑(公州 麻谷寺 五層石塔, 보물 제799호)은 고려 말기에 원나라 라마교의 영향을 받아 세워진 탑으로 다보탑이라고도 부리고 통일신라시대에 창건된 마곡사 대광보전 마당에 우뚝 서있는 탑이다.

  이 탑은 전체의 무게를 받쳐주는 기단(基壇)을 2단으로 쌓고, 그 위로 5층의 탑신(塔身)을 올린 후 머리장식을 올린 모습이다. 1층 탑신(塔身)에는 자물쇠를 새겼으며, 2층 탑신에는 부처, 보살 등 사방을 지키는 사방불(四方佛)을 조각해 놓았고, 지붕돌은 네 귀퉁이마다 풍경을 달았던 흔적이 보이는데, 현재는 5층 지붕돌에만 1개의 풍경이 남아 있다. 청동으로 만들어진 꼭대기의 머리장식은 이 탑에서 가장 눈에 띄는 부분으로, 중국 원나라의 라마탑과 그 모습이 비슷한 풍마동(風磨銅) 장식을 두었는데, 전 세계적으로 희귀한 사례이다.

  석탑은 길쭉한 감이 있어 안정감은 적으나 당당한 풍채로 버티고 서있다. 만들어진 시기는 머리장식의 독특한 모습으로 보아 원나라의 영향을 받았던 고려 후기 즈음으로 여겨진다. 즉 고려 후기 당시 원나라와의 문화 교류가 활발히 이루어지면서 라마교 계통의 문화도 고려에 들어오게 되는데 이 탑은 그 문화의 한 예라고 할 수 있다. 임진왜란을 겪으면서 탑 안의 보물들을 거의 도난당하였으나, 1972년 해체하여 수리하는 과정에서 동으로 만든 향로와 문고리가 발견되었다. 대광보전 화재 때에 훼손되어 원래 탑재가 아닌 화강암으로 보수한 곳이 있으나 전체적으로 보존상태가 양호하여 고려시대 특징을 잘 보여준다.

  마곡사는 구한말에는 독립운동가 김구와도 인연이 깊었던 사찰이다. 김구는 명성황후 시해에 가담했던 일본인 장교를 죽인 후 인천형무소에서 옥살이를 하다가 탈옥하여 이 절에 숨어서 승려로 지냈는데, 지금도 대광보전 앞쪽에는 김구가 심었다는 향나무가 자라고 있다. (문화재청 문화유산정보)

* 문화재 소재지: 충남 공주시 사곡면 마곡사로 966, 마곡사 (운암리)

* 한국문화재재단 문화유산채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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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일/ 채널A 보도제작부 스마트리포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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