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순 운주사 쌍교차문칠층석탑(和順 雲住寺 雙交叉紋七層石塔)

  화순 운주사 쌍교차문칠층석탑(和順 雲住寺 雙交叉紋七層石塔,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277호)은 광배를 갖춘 석불 좌상 앞에 위치하며 높고 큼직한 1석의 방형 돌덩어리인 석괴형 기단 위에 높이 7.75m로 석괴형 기단 상면에 1단의 방형 괴임대를 마련하여 세운 탑이다.

  석탑 초층 탑신은 4매의 판석으로 짜 맞추고 앞·뒷면에는 쌍교차문을 두툼하게 양각하고 좌우 양면에는 양쪽 귀퉁이에 우주와 중앙에 탱주를 마련하였다. 1층의 탑신이 길쭉하여 1층 옥개석을 기단 갑석으로 오해하기도 하나 층급 받침이나 지붕골 같은 지붕 형식이 뚜렷한 경우는 옥개석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이들 우주와 탱주는 각각 보조 우주와 보조 탱주를 안쪽과 좌우에 새겼다. 2층 탑신도 4매의 판석으로 짜 맞추고 앞면과 뒷면에는 교차문을 2개씩 가늘게 직선으로 음각하고 좌·우면에는 마름모꼴을 하나씩 음각하였다. 3층 탑신석은 한 돌로 조성되었으며 각 면에는 2층의 앞·뒷면과 같은 쌍교차문이 음각되어 있다. 4층 탑신석은 4매의 판석으로 이루어졌는데 2층 탑신석의 각 면과 같이 앞·뒷면에는 쌍교차문이 음각되고 좌·우면에는 마름모꼴을 하나씩 음각 장식하여 2층, 4층을 같은 모양으로 표현한 것 같은 느낌을 준다. 5층 이상의 탑신석은 모두 한 돌로 조성하고 각 면에는 쌍교차문을 장식해 놓았다. 옥개석은 층마다 한 돌로 이루어졌고 아랫면은 받침을 표현하였다. 초층과 2층, 3층은 5단씩이고 4층은 4단이며 5층과 6층, 7층은 3단씩이다. 옥개석 처마 끝의 절단면은 비스듬하며 네 귀퉁이 옥개석 모서리의 들림도 뚜렷하여 평박한 낙수면과 잘 어울려서 비교적 세련된 모습을 보인다. 7층 옥개석의 정상에는 노반석과 보주형의 상륜 부재가 놓였다.

  날렵하면서도 안정감을 주는 칠층석탑으로, 큼직하게 잘 다듬은 1석의 사각 기단석 위에 1단의 사각 괴임대를 만들고 그 위에 탑신부를 얹어 가운데는 텅 비어 있다. 석탑의 외형을 보면 신라 전형 양식을 따르고 있으면서도 각층 탑신석에 ‘쌍교차문(XX)’과 측면의 ‘마름모꼴(◇)’의 형태를 장식해놓아 국내 석탑에서는 유례가 없는 개성있는 양식을 보여주고 있다. (자료출처: 두산백과,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 한국학중앙연구원 문화유산정보)

* 문화재 소재지: 전남 화순군 도암면 천태로 91-44 (용강리)

* 한국문화재재단 문화유산채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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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일/ 채널A 보도본부 스마트리포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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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순 운주사 수직문칠층석탑(和順雲住寺垂直紋七層石塔)

  화순 운주사 수직문칠층석탑(和順雲住寺垂直紋七層石塔, 전라남도 문화재자료 제257호)은 운주사 동쪽 산중턱의 높직한 암반 위에 있는 전체 높이는 7.2m이며 고려시대 석탑이다.

  석탑은 지대석 등의 별다른 시설 없이 암반 위에 방형단을 만들어 기단부를 대신하고 탑신부를 얹었다. 모서리 기둥사이의 면석에는 가늘게 층에 따라 7~11선의 수직 종선문(縱線紋)을 음각하였는데 각 층이 똑같은 형태이다. 각 층의 옥개석 하면에는 받침을 생략하고 대신 마름모꼴을 음각하였다. 현재 6층까지 탑신이 남아있지만 원래는 7층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1층의 탑신이 길쭉하여 1층 옥개석을 기단 갑석으로 오해하기도 하나 옥개석 하면이나 상면의 모습이 그 위층의 옥개석과 동일할 뿐만 아니라 기단 갑석의 형태 보다는 지붕의 기능에 충실한 모습이어서 옥개석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4매의 판석으로 조립된 1층 탑신부 면석에는 네 면의 좌우에 우주가 표현되었고 면석 중간에는 보조 우주를 얕게 새겼다. 2매의 판석을 좌우에 세우고 그 사이에 면석을 끼워 넣는 방법을 썼다. 옥개석은 방형 기와지붕 모양이며 처마 밑에는 옥개 받침 대신 사선 무늬를 서로 교차하여 마름모 문양을 표현하였다. 추녀와 처마가 직선이고 네 귀퉁이의 모서리의 들림도 표현되어서 평박한 낙수면과 그런대로 조화를 이루었다.

  2층 이상의 탑신부에 있어서는 탑신과 옥개석이 1석이나 2층 탑신석만은 4매의 판석이다. 현재 북면의 면석을 잃었다. 2층 이상의 탑신석에는 네 귀퉁이에 수직선으로 파서 그 경계를 나누었을 뿐 우주를 돌출되게 표현하지 않았다. 이 우주처럼 구획된 곳에서 바깥쪽을 향해 ‘⟩’ 모양을 양쪽 우주에 걸쳐 새겨서 두 면의 모서리가 마치 하나의 마름모꼴을 이루었다. 즉 두면을 펴면 하나의 마름모꼴이 생기게 하였다. 우주 사이의 면석에는 2층은 11개선, 3층은 9개선, 4층~6층은 7개선을 수직으로 새겼다.

옥개석의 모서리는 얇은 편이며 네 귀퉁이에는 반전이 아주 약하게 표현되어 있어 평박한 낙수면과 잘 어울린다. 낙수면의 네 귀퉁이 우동은 두툼하다. 6층 옥개석의 정상에는 노반석 위에 원형의 부재 3석이 상륜 부재를 이루었다. 노반의 측면에는 탑신석의 사례에서처럼 ‘〉’ 모양을 양쪽 면에 걸쳐 새겨서 두 면의 모서리가 마치 하나의 마름모꼴을 이룬 것 같은 모습을 보이지만 그 사이의 수직선문은 없다.

  체감률이 자연스럽고 옥개석 모서리의 들림이 가벼우며 문양이 화려하다. 기단부가 없고 다소 고준한 느낌을 주는 모습으로 보아 전반적으로 고려 석탑의 형식을 하고 있다. (자료출처: 문화재청, 두산백과 문화유산정보)

* 문화재 소재지: 전남 화순군 도암면 천태로 91-44 (용강리)

* 한국문화재재단 문화유산채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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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지묵서묘법연화경(白紙墨書妙法蓮華經, 보물 제278호)

  백지묵서묘법연화경(白紙墨書妙法蓮華經, 보물 제278호)의 우리나라 천태종(天台宗)의 근본경전이며, 부처가 되는 길이 누구에게나 열려 있다는 것을 기본사상으로 하고 있다. 화엄경(華嚴經)과 함께 우리나라 불교사상(佛敎思想)의 확립에 크게 영향을 끼쳤으며, 우리나라에서 유통된 불교경전(佛敎經傳) 가운데 가장 많이 간행된 경전이다.

  이 백지묵서묘법연화경(白紙墨書妙法蓮華經)은 묘법연화경(妙法蓮華經) 원 명칭 법화경(法華經) 내용을 흰 종이에 먹으로 옮겨 쓴 것으로, 모두 7권(七券)으로 되어 있다. 각 권은 마치 병풍처럼 펼쳐서 볼 수 있는 형태로 만들어져 있고, 접었을 때의 크기는 세로 36㎝, 가로 14㎝이다. 권7(券七)의 끝에 있는 기록(記錄)에 의하여, 조선 태종 15년(1415)에 이씨부인이 남편 유근(柳謹)의 명복(冥福)을 빌기 위하여 만든 것임을 알 수 있다. 표지에는 책의 명칭을 중심으로 꽃무늬가 장식되어 있으며, 책 첫머리에는 불경(佛經)의 내용을 요약(要約)하여 묘사(描寫)한 변상도(變相圖)가 금색(金色)으로 그려져 있다.

  완전하고 깨끗하게 보존된 보기드문 작품으로, 고려 후기에 만들어진 것에 비하여 글씨 솜씨는 떨어지지만 정성을 들여 만든 것이다. 현재 불교중앙박물관 ‘붉고 푸른 불전 장엄의 세계’ 특별전에서 전시 중이다. (문화재청 문화유산정보)

* 문화재 소재지: 서울 종로구 우정국로 55 조계사 (불교중앙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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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산 보원사지 철불좌상(瑞山 普願寺址 鐵佛坐像)

  서산 보원사지 출토 철불좌상(瑞山 普願寺址 出土 鐵佛坐像)은 높이 1.5m, 충남 서산시 운산면의 보원사지(普願寺址, 사적 제316호)에서 출토(出土)되었다고 전한다.

  철불좌상(鐵佛坐像)은 둥그런 소발(素髮)의 머리에 육계(肉髻)가 낮고 팽팽한 원만형의 얼굴, 탄력 있는 가슴의 표현, 벌어진 어깨, 무릎 너비가 넓은 육중한 다리 등 존안은 젊고 밝은 표정이며 장대한 체구와 함께 9세기 말에서 10세기까지의 불상형태를 반영하고 있다. 불의(佛衣)는 우견편단(右肩偏袒)의 착의법으로 간결한 옷주름을 형성하며, 자연스럽게 흘러내리고 있다. 군의(裙衣)로 덮힌 두 다리가 굵고 좌폭도 넓다. 양손은 절단되었지만 항마촉지인(降魔觸地印) 손모양인 것 같다. 이런 특징들은 신라 중기(650∼775)의 석굴암본존불상(石窟庵本尊佛像)의 양식을 따르고 있는데, 체구가 당당하고 세부의 도식화가 심화되지 않아서 광주철불좌상(廣州鐵佛坐像)으로 이어지는 신라말과 고려 초기의 불상으로 추정된다.

  보원사지(普願寺址)에 있는 법인국사(法印國師) 탄문(坦文)의 비문(碑文)에 의하면, 고려 광종 즉위년인 949년에 석가삼존금상(釋迦三尊金像)을 조성하고, 또 광종 6년(955)에는 왕의 만수무강을 위하여 삼존금상을 주조하도록 하였다는 기록이 있는데, 그 불상들이 모두 보원사지에 봉안되었다고는 생각할 수 없으나, 이 철불좌상과 관련하여 생각해 볼 수 있는 중요한 사료라고 여겨진다.

  서산 보원사지(瑞山 普願寺址, 사적 제316호, 충남 서산시 서산리 운산면 용현리 105)는 사찰에 관한 기록이 전하지 않아 정확한 내력을 알 수는 없으나, 통일신라시대 또는 삼국통일 이전 백제시대 건립된 사찰로 추정된다. 신라시대 최치원(崔致遠)이 쓴《법장화상전(法藏和尙傳)》에 따르면, 화엄사·해인사 등에 더불어 신라 10산 10사찰의 하나임을 알 수 있다.

  보원사지(普願寺址)의 면적은 10만 2886㎡이다. 일대의 절터는 모두 경작지로 변하였으나 기와조각 등이 넓게 산재해 있어, 많은 사찰 전각들이 있었음을 짐작하게 한다.

  보원사지(普願寺址)에 현재 남아 있는 유물로는 서산 보원사지 석조(瑞山 普願寺址 石槽, 보물 제102호), 서산 보원사지 당간지주(瑞山 普願寺址 幢竿支柱, 보물 제103호), 서산 보원사지 법인국사탑(瑞山 普願寺址 法印國師塔, 보물 제105호), ·서산 보원사지 법인국사탑비(瑞山 普願寺址 法印國師塔碑, 보물 제106호), 서산 보원사지 오층석탑(瑞山 普願寺址 五層石塔, 보물 제104호) 등이 있으며, 이러한 유물을 통해서 통일신라시대의 사찰로 추정된다. 하지만 이후 이곳에서 백제 때에 조성된 것으로 보이는 금동불입상(金銅佛立像)이 출토되었고, 부근 가야산 층암 절벽에 거대한 ‘백제의 미소(百濟의 微笑)’로 유명한 서산 용현리 마애여래삼존상(瑞山 龍賢里 磨崖如來三尊像, 국보 제84호. 용현리 2-10번지)이 석가여래입상(釋迦如來立像)을 중심으로 오른쪽에 미륵보살입상(彌勒菩薩立像), 왼쪽에 미륵보살반가사유좌상(彌勒菩薩半跏思惟坐像)이 조각되어 있어, 삼국통일 전 백제시대부터 사찰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기도 한다. (자료출처: 문화재청, 두산백과,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불교미술대전 문화유산정보) – 갯메꽃, Calystegia soldanella -

* 문화재 소재지: 서울 용산구 서빙고로 137, 국립중앙박물관 (용산동6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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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양주 흥국사 소조석가여래삼존좌상(南楊州 興國寺 塑造釋迦如來三尊坐像)

  남양주 흥국사 소조석가여래삼존좌상 및 16나한상 일괄(南楊州 興國寺 塑造釋迦如來三尊坐像 및 十六羅漢像一括, 보물 제1798호)은 흥국사 영산전(靈山殿)에 봉안된 불상들이다. 소조석가여래삼존좌상 크기의 높이는 본존 석가여래상(本尊 釋迦如來像) 54.5㎝, 좌협시 미륵보살상(左脇侍 彌勒菩薩像) 51.8㎝, 우협시 제화갈라보살상(右脇侍 提和渴羅菩薩像) 50.5㎝이다.

  석가여래삼존상(釋迦如來三尊像)은 고개를 약간 숙인 자세에 턱이 좁은 갸름한 얼굴형, 상반신이 길고 무릎이 넓고 낮은 길쭉한 신체비례 등이 특징이다. 본존불(本尊佛)인 석가여래상(釋迦如來像)은 왼손은 배 부분에 두고 오른손은 무릎 위에 손끝을 가지런히 둔 항마촉지인을 취한 자세로 앉아 있다. 머리는 육계와의 경계 없이 둥그스름한 타원형 중간계주만 표현하였으며 얼굴은 눈 아래 광대뼈가 강조되었고 눈꼬리가 올라간 작은 눈, 작은 입 등을 표현하여 고요하고 침울한 인상을 풍긴다. 착의법은 변형 편단우견식으로 대의를 왼쪽 어깨 위에 살짝 걸치고 왼쪽 팔을 드러내었고 밋밋한 가슴 아래에는 자연스럽게 주름 잡힌 승각기가 보인다. 옷주름들은 간결하고 굴곡이 깊어 볼륨감이 있으며 흙 재질적 특성으로 부드럽게 처리되어 특히 무릎 부분의 옷주름이 도드라지게 표현되었다.

  석가의 좌우측 보살상들은 머리에 보관을 쓰고 좌협시 미륵보살(左脇侍 彌勒菩薩)은 왼손을 가슴 부위에, 오른손을 배 부분에 두었고 우협시 제화갈라보살(右脇侍 提和渴羅菩薩)은 그 반대의 손 모습을 취하였다. 신체비례, 얼굴 표현 등은 본존불상과 유사하다. 정수리에 상투형 머리를 올렸으며 어깨 위의 머리카락은 생략되었다. 신체에는 화형 귀걸이, 수식이 세 줄 드리워진 목걸이, 간결한 팔찌 등을 착용하였다. 착의법은 편삼 위에 대의를 걸친 변형 통견식이나 옷주름 세부 표현은 본존불상과 같다.

  석가여래삼존상과 16나한상은 이마가 넓고 턱이 좁은 역삼각형의 얼굴 형상에, 얼굴은 작고 늘씬한 신체비례를 보인다. 조선전기 15세기 후반에서 16세기 초에 조성된 불상들과 양식적으로 상통하면서, 인물의 표현, 신체의 비례, 양감, 선 등에서 변화의 요소도 감지된다. 따라서 이 상들은 조선전기 16세기 불교조각사 연구 및 나한상 연구에 귀중한 자료로 판단된다. 석가여래삼존불흥국사 영산전에 봉안되어 있고 16나한상, 제석천상, 사자상 2구, 인왕상 1구 등의 권속상들은 남양주역사박물관에 모셔져 있다. 남양주 흥국사 소조석가여래삼존좌상 중 본존불은 현재 불교중앙박물관 ‘붉고 푸른 불전 장엄의 세계’ 특별전에서 전시 중이다. (자료출처: 문화재청, 한국민족문화대백과 문화유산정보)

* 문화재 소재지: 경기도 남양주시 별내동 2331 흥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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