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속신앙의 굿당, 인왕산 국사당 (仁旺山 國師堂, 중요민속문화재 제28호)

  인왕산 국사당 (仁旺山 國師堂, 중요민속문화재 제28호)은 서울 인왕산 기슭에 위치하여 무속신앙에서 섬기는 여러 신을 모신 당집으로 요란한 굿판을 벌이기 쉽도록 인가에서 멀리 떨어진 산 속에 세운 ‘굿당’에 속한다. 원래 이 사당은 조선시대에 나라에서 남산을 신격화한 목멱대왕(木覓大王)에게 제사를 지내던 곳이다. 이곳은 목멱신사로도 불렀다. 정대부는 물론 일반 백성도 이곳에서 제사를 지낼 수 없었다. 이곳은 나중에 굿당으로 변하였는데, 헌종 대 학자 이규경(李圭景, 1788∼?)이 지은 〈오주연문장전산고(五洲衍文長箋散稿)〉란 책에는 국사당이란 명칭과 함께 현존하는 무신도의 기록이 있다. 남산 꼭대기 팔각정 자리에 있었던 것을 일본인들이 남산에 조선신궁(朝鮮神宮)을 지으면서 이전을 강요하자 건물을 해제하여 1925년 현재의 인왕산 기슭에 옮겨 원형대로 복원한 것이다. 인왕산을 택한 이유는 이곳이 풍수지리설에서 명당에 속하고 현재 무속신으로 모셔지는 조선 태조와 무학대사가 기도하던 자리이기 때문이다.

  국사당 건물은 자연 암반 위에 앞면 3칸·옆면 2칸이고 양끝의 2칸은 이곳으로 이전한 후 새로 지은 것이다. 1칸은 4쪽의 여닫이문으로 되어 있고 지붕은 옆에서 볼 때 사람 인(人)자 모양인 맞배지붕이다. 내부의 3면에는 무신도가 걸려있고 마루에는 제상을 차리고 굿을 하는 공간으로 이루어져 있다. 일반 건물보다 구조는 간단한 편이나 그 규모는 더 크다.

  1925년경에 새로 지어진 국사당은 영·정조때의 건축기법을 바탕으로 한 원래의 국사당을 그대로 복원한 것이다. 내부의 대들보가 아치형으로 된 것이 특이한 이 건물은 조선 후기 관청에 소속된 장인(匠人)의 간결한 솜씨를 보여 주는데, 명백한 건립 시기는 밝혀지지 않았다. 전체적으로 구조가 간결하면서도 목재의 짜임새가 튼튼한 것이 목공의 솜씨가 돋보인다. 인왕산 국사당은 다른 당집에 비해 건물이 견고하고 많은 국사당 무신도(國師堂 巫神圖, 중요민속문화재 제17호)를 볼 수 있으며, 현재도 국사당을 무대로 내림굿, 치병굿, 재수굿 같은 굿판이 벌어지고 있다. 국사당 뒤로는 무학대사 또는 태조 부부의 모습이란 전설이 깃든 선바위(禪庵, 서울특별시 민속문화재 제4호)가 있고, 암자도 여럿 있어 명당 인왕산의 면모를 보여준다. (문화재청 문화유산정보)

* 문화재 소재지: 서울 종로구 통일로18가길 20 (무악동)

* 한국문화재보호재단 문화유산채널:

http://www.k-heritage.tv/hp/hpContents/photo/view.do?categoryType=1&contentsSeq=10467

 

이영일/ 한국문화재재단 문화유산채널 사진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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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님의 장삼(長衫)을 닮은 선바위(禪庵)

  선바위(禪庵, 서울특별시 민속문화재 제4호)는 서울 인왕산(仁旺山) 기슭에 위치하여 신성한 대상물이 되고 있는 바위로, 아이를 갖기를 원하는 부인들이 이곳에서 기도를 많이 하여 ‘기자암(祈子岩)’이라고 부른다. 마치 스님이 장삼(長衫)-검은 베로 만들어진 품과 소매가 넓은 스님의 웃옷-을 입고 있는 형상이라 하여 불교의 참선(參禪)한다는 ‘선(禪)’자를 따서 이와 같이 부르고 있다. 이 바위가 태조와 무학대사의 상(像)이라는 설화와 태조 부부의 상이라는 설화가 전한다.

  옛 문헌에는 조선 태조 때 한양으로 천도할 무렵 선바위에 관한 설화가 전한다. 조선 태조 이성계(太祖 李成桂)가 한양에 도성을 쌓을 때 당시의 문신이었던 정도전(鄭道傳)과 왕사였던 무학대사(無學大師)가 이 바위를 성 안에 두느냐 성 밖에 두느냐로 크게 의견대립을 보였다는 일화다. 만일 이 바위를 성 안에 두면 불교가 왕성하여 유학에 조예가 깊은 문신들은 힘을 못쓰고, 성 밖에 두면 반대로 승려가 힘을 못쓰게 된다는 주장이었다. 결정을 못 내리고 다음날 아침이 되었는데 특이하게도 눈이 녹지 않은 자리가 있어 태조는 이것을 성터라고 생각하였고 결국 바위는 성 밖으로 밀려났다 한다. 무학대사가 탄식하기를 ‘이제부터 승도들은 선비들의 책 보따리나 지고 따라다닐 것이다.’라고 말했다는 것이다. 인왕산을 볼 때면 이 바위가 가장 눈에 띄는데 조선 초기에도 많은 사람들이 이 바위를 인상 깊게 보았다는 것이 이 설화에도 나타난다.

  사람의 모습의 자연석으로서, 직접적인 신앙대상물은 아니지만 불력(佛力)을 지닌 존재처럼 신성시 되었던 점이 주목된다. 일제가 국사당(國師堂)을 이 바위 곁으로 옮긴 뒤부터는 이 바위와 국사당이 함께 무신(巫神)을 모시는 신앙의 대상이 되었다. (문화재청 문화유산정보)

* 문화재 소재지: 서울 종로구 통일로18가길 26 (무악동)

* 한국문화재보호재단 문화유산채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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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일/ 한국문화재재단 문화유산채널 사진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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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공민왕 친필, 청량사 유리보전 현판(淸凉寺琉璃寶殿)

  청량사유리보전(淸凉寺琉璃寶殿,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47호)은 동방유리광 세계를 다스리는 약사여래를 모시는 법당으로 약사전이라고도 한다. 동이 아닌 서방은 아미타여래불이 계신데 아미타여래를 모신 전각을 아미타전, 미타전, 무량수전 등으로 부른다. 청량산 연화봉 기슭에서 남향으로 배치되어 있는데 늘 바람이 세찬 산골짜기의 한쪽에 나즈막하게 지어졌는데, 법당 앞이 절벽이라 마당이 좁은 편이다. 좌측에 지장보살, 우측에 문수보살이 협시하고 있다. 

  유리보전 건물은 막돌 허튼층쌓기를 한 기단 위의 막돌초석에 기둥을 세우고 지은 것으로 앞면 3칸·옆면 2칸 규모이며, 지붕 옆면이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의 다포계(多包系) 형식이며 처마의 짜임이 예스럽고 소박하며, 앞면의 중간 기둥 위에는 용머리와 용꼬리가 장식되어 있어서 이 건물이 조선 후기에 건축된 것임을 알 수 있고 건물의 대들보 밑에 사이기둥을 세워 후불벽을 설치한 것은 다른 곳에서는 보기 힘든 특징으로 중요하게 평가되고 있다. 유리보전 현판은 고려 공민왕의 친필로 전해온다.

  청량산에 위치한 청량사는 신라 문무왕(文武王) 3년(663)에 원효대사(元曉大師)가 지은 절이다. 청량산에는 연대사(蓮臺寺)라는 절을 중심으로 크고 작은 26개의 암자가 있어서 당시 신라불교가 크게 성행하여 요람을 형성했던 곳이다. (문화재청 문화유산정보)

* 문화재 소재지: 경북 봉화군 명호면 청량산길 199-152 (북곡리)

* 한국문화재보호재단 문화유산채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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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앵자/ 채널A 보도제작부 스마트리포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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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공 스릴 만점, 봉화 청량산 하늘다리 (奉化 淸凉山, 명승 제23호)

  봉화 청량산(奉化 淸凉山, 명승 제23호)은 낙동강 가에 우뚝 자리 잡은 명산으로 자연경관이 수려하여 예로부터 소금강이라고 전하여 왔으며, 조선후기 실학자 이중환의「택리지」에서 보면 백두대간의 8개 명산 외에 대간을 벗어난 4대 명산 중 하나로 평가되어 온 한국의 대표적 명산으로 ‘한 떨기 바위꽃’이라 해도 좋을 정도로 밀도 높은 바위명산으로 손꼽힌다.

  청량산은 해발 870m 내외에 12개 암봉(六六峰 : 장인봉, 선학봉, 자란봉, 자소봉, 탁필봉, 연적봉, 연화봉, 향로봉, 경일봉, 탁립봉, 금탑봉, 축융봉)과 청량산 12대(독서대, 어풍대, 밀성대, 풍혈대, 학소대, 금강대, 원효대, 반야대, 만월대, 자비대, 청풍대, 송풍대, 의상대), 청량산 8굴(김생굴, 금강굴, 원효굴, 의상굴, 반야굴, 방장굴, 고운굴, 감생굴) 및 청량산 4우물(총명수, 청량약수, 감로수, 김생폭)이 어우러져 아름다운 자연경관을 보여준다.

  청량산에는 중생대 백악기에 퇴적된 역암, 사암, 이암층이 융기·풍화·차별침식 등의 작용으로 다양한 지형이 나타나고 있는데, 봉우리들은 모두 역암으로 이루어져 저각도 수평층리구조를 이루고 있으며 V자곡이 발달된 계곡 주변엔 소규모의 수직·수평절리에 의한 풍화혈과 타모니 등이 발달하여 특별한 경관을 보여줄 뿐 아니라 학술적 가치 또한 뛰어나다.

  청량산은 또한, 고려말 공민왕이 홍건적의 난을 피해 안동 몽진 시 머무르며 축조하였다는 산성 흔적과 마을 주민들이 공민왕을 추모하기 위해 만든 사당이 남아 있으며, 원효, 의상, 김생, 최치원, 이황 등 역사적 인물과 관련된 장소와 설화들이 많이 남아 있는 등 이 곳은 불교의 도량으로, 그리고 16세기 사림파의 등장 이후 산수경치를 사랑하고 유교와 퇴계를 숭상하는 선비들의 유교적 순례지가 되어 왔다.「봉화 청량산」은 이렇듯 역사적 유래가 깊은 명산일 뿐 아니라 공민왕을 기리는 당제가 아직까지 이어져 내려오는 등 민속적 가치가 크고, 자연경관이 매우 뛰어난 명승지로 평가된다.

  청량산에 얽힌 이야기로 ‘여인에게 무너진, 김생의 청량산 9년 공부 설화’는 통일신라 때의 명필 김생이 청량산의 한 굴에서 글씨 공부를 9년 동안 한 후 스스로 ‘명필’이라 자부하고 하산하는데 한 여인이 나타나 자신도 길쌈을 9년 했으니 솜씨를 겨뤄보자고 했다. 컴컴한 어둠 속에서 서로 솜씨를 겨루었는데 불을 밝혀보니 여인이 길쌈한 천은 한 올의 흐트러짐도 없었는데 김생의 글씨는 엉망이었다. 이에 김생은 자신이 부족함을 깨닫고, 1년을 더 정진한 뒤에 세상에 나와 ‘명필’이란 칭호를 얻게 되었다고 한다. 그 후 김생의 정진을 도운 이 굴은 ‘김생굴’이라 불리게 되었다.

  청량산 하늘다리는 국내에서 가장 긴 산악현수교량이다. 90m로 국내 구름다리 중 가장 길다. 해발 800m 지점에 선학봉과 자란봉을 연결하는 다리로 폭은 1.2m, 지상에서 높이 70m에 이른다. 하늘다리는 2008년 완공되던 해부터 화제가 되며 등산객을 비롯해 많은 관광객을 청량산으로 끌어들여, 지금은 봉화의 명물로 자리 잡았다. 그러나 워낙 튼튼하게 만든 탓에 출렁거림이 덜해 공포감을 느낄 정도는 아니다. 다리 중간에는 1m 크기의 강화 유리가 바닥에 있어 허공에 있는 듯한 스릴을 맛볼 수 있다.  (문화재청 문화유산정보)

* 문화재 소재지: 경북 봉화군 명호면 북곡리 산 74번지 등

* 한국문화재보호재단 문화유산채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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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일/ 한국문화재재단 문화유산채널 사진작가

고앵자/ 채널A 보도제작부 스마트리포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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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화청량사목조지장보살삼존상(지장보살.도명존자.무독귀왕, 보물 제1666호)

  봉화 청량사 목조지장보살삼존상-지장보살상(奉化 淸凉寺 木造地藏菩薩三尊像-地藏菩薩像, 보물 제1666호)은 지옥중생의 구제를 위해 깊은 사유에 잠긴 듯 고요하게 처리된 상호(相好)에서 높은 종교성을 읽을 수 있고, 불신의 구성 요소요소가 상호 유기적이고 이지러짐이 없어 조각적 완성도도 높다.

  불신에 표현된 선 역시 불필요한 선들은 최대한 배제하고 힘과 강약이 있는 직선과 곡선을 적절하게 구사하여 유려하면서도 탄력 넘치는 세련된 선묘를 보여준다. 형태가 다소 둔중한 느낌이 없지 않으나 이러한 점이 오히려 중후한 안정감을 주어 보살상의 종교적 완성미를 이루는데 공헌하고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따라서 이 삼존상은 현존하는 16세기 불상 중에서 종교성과 조각적 완성도를 두루 갖춘 보기 드문 작품으로 판단된다.

  비록 이 불상을 봉안한 사찰이나 작자, 다양한 시주층 등이 밝혀지지 않아 유감스럽지만, 다행스럽게도 복장에서 발견된 발원문과 양식분석을 통해 이 삼존상의 제작연대를 1578년으로 추정할 수 있다. 이 지장보살삼존상과 비교할만한 상이 없을 정도로 이 시기에 조성된 불상이 매우 드물고, 뿐만 아니라 1578년이라는 제작시기에서 알 수 있듯 조선전기와 임진왜란 이후 전개되는 조선후기 불교조각의 흐름을 파악하는데 매우 귀중한 기준자료이다. 또한 불상에서 보이는 개성이 있는 표현이라든지 우수한 조형성 등을 통해서 볼 때 당대 최고의 조각가가 조성한 불상임을 알 수 있다.

  유리보전 우측의 탱화 동서에 봉화 청량사 목조지장보살삼존상-도명존자상(奉化 淸凉寺 木造地藏菩薩三尊像-道明尊者像, 보물 제1666호)과 봉화 청량사 목조지장보살삼존상-무독귀왕상(奉化 淸凉寺 木造地藏菩薩三尊像-道明尊者像-無毒鬼王像, 보물 제1666호)이 봉안되어 있다.

  도명존자(道明尊者)는 지장보살의 왼쪽에 시립해 계시는데 중국 양주 개원사의 승려로서 778년 우연히 사후세계를 경험하게 된다. 저승의 관리 실수로 동명이인의 다른 사람 대신 저승에 잘못 끌려갔던 것이다. 그는 지옥사자를 따라 지옥에 가서 명부의 이곳저곳을 구경하며 지장보살을 만났다고 한다. 이승으로 돌아와 자신이 저승에서 본 바를 그림으로 그렸는데 사찰에서 볼 수 있는 지장보살님 모습, 지옥과 명부의 그림은 그때의 모습이라 하며, 이 이야기는『환혼기』라는 중국의 영험설화에 나온다. 이런 연유로 무독귀왕과 함께 도명존자는 지장보살의 협시로 등장하며, 지장보살. 도명존자와 무독귀왕을 일컬어 지장삼존이라 한다. 형상은 일반적으로 젊은 스님의 모습으로 묘사되는데, 때로는 얼굴이 검고 눈이 부리부리한 노승의 모습을 하기도 한다. 주로 고려불화에선 노승의 모습으로, 조선시대엔 젊은 스님의 모습으로 묘사되고 있다.

  무독귀왕(無毒鬼王)은 사람들의 악한 마음을 없애주는 귀신의 왕으로 <지장경 도리천궁신통품>에 나온다. 경전에 의하면, 한 바라문의 딸이 그의 어머니가 삿된 것을 믿고 항상 삼보를 업신여기므로 여러 가지 방편을 베풀어서 어머니에게 권유하여 바른 생각을 내게 하였건만 그 어머니는 온전한 믿음을 갖지 못한 채 죽어 무간지옥에 떨어졌다. 바라문의 딸은 어머니를 지옥에서 건지기 위해 집을 팔아서 탑과 절에 크게 공양을 올리며 지극한 정성을 다하여 기도해 어머니가 떨어진 무간지옥에 들어간다. 거기에 한 귀왕이 있었는데 이름이 무독으로, 바라문의 딸에게 여러 지옥에 대한 설명과 안내를 해준 인연으로 지장보살의 협시가 되었다. 그 바라문의 딸이 지장보살의 전신이며 무독귀왕은 재수(財數)보살의 전신이다. (문화재청 문화유산정보)

* 문화재 소재지: 경북 봉화군 명호면 청량산길 199-152 (북곡리)

* 한국문화재보호재단 문화유산채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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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앵자/ 채널A 보도제작부 스마트리포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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