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 350년 전 계획된 핑크시티와 여인들의 슬픔 어린 하와 마할

  인도 라자스탄 주 자이푸르(Jaipur)는 350년 전에 계획된 도시 핑크시티(Pink City)와 이 도시의 중심가에는 옛 여인들의 슬픔이 어린 곳인 하와 마할(Hawa Mahal)이라는 일명 바람의 궁전이 있다. 영상에는 핑크시티와 하와 마할 그리고 시가지와 인도인들에 삶의 모습을 담았다.

  자이푸르(Jaipur)는 인도 라자스탄 주에 1728년 이 지방에서 세력을 떨쳤던 번왕국(藩王國) 왕 마하라자 자이 싱 2세(Jai Singh II)에 의해 만들어 졌는데 그 왕의 이름을 따서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성벽으로 둘러싸인 도시’라는 뜻이란다. 7개의 문을 가진 성으로 구시가는 성벽으로 둘러싸여 있고, 내부는 정연한 바둑판 모양의 넓은 거리로 구획되어 있는 계획도시이다. 궁전과 옛 건물들도 잘 보전되어 있다. 시가지 건물들이 분홍색으로 통일되어 있는 것도 이 도시의 독특한 점이다. 그래서 핑크시티라고 불리며 화려한 인상을 준다.

  자이푸르는 델리, 아그라와 함께 인도의 골든 트라이앵글로 불리는 도시이며 라자스탄 주의 주도이다. ​​허브 시티 (Hub City)로 알려져 있는 북인도 평원에서 사막지대로 진입하는 관문도시로도 유명하다. ​이 일대를 지배한 카츠츠와하 왕조는 인도 역사에서 가장 뛰어난 외교력의 주인공인데, 무굴제국 시대에는 동맹혼인으로 ​영국 식민지 시대에는 뛰어난 외교력으로 명목상 독립국의 신분을 유지했다. ​자이푸르가 핑크시티(Pink City)로 유명한 이유는 영국의 왕세자(에드워드 7세)가 이 도시를 방문할 당시에 환영의 색인 핑크색으로 온 도시를 칠했기 때문이다. 위와 같은 역사를 지닌 자이푸르가 21세기 관광 생존 전략으로 핑크시티 내의 건물들은 핑크색 외의 색깔로 건물을 칠하는 것을 법으로 금지할 만큼 관광지로써의 명성을 유지하려고 나름 노력하고 있다. 구시가 안에는 유적이 많으며, 자이 싱이 만든 잔타르 만타르(Jantar Mantar) 천문대, 정원이 있는 유명한 고궁, 라자스탄대학, 박물관, 도서관 등이 있다.

  하와 마할(Hawa Mahal)은 1799년(350년 전)에 건축가 랄 찬드 우스타드가 라자스탄 주의 아이콘으로 꼽히는 일명 바람의 궁전으로 자이푸르의 번잡한 시가지 한복판에 홀로 고요히 서 있다. 자이푸르 궁전의 규방 확장의 일환이었던 이 건물은 원래는 전망용 스크린으로 지은 것이었다. 이 스크린-일종의 건축적 베일-을 통해 왕실과 하렘의 여인들은 모습이 겉으로 드러날 염려 없이 시장과 그 활기 넘치는 광경을 마음껏 즐길 수 있었다.

  ’마할(mahal)’이라는 이름이 이 경우에는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 이 건물은 처음부터 거주용으로 지은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5층짜리 건물이긴 하지만 꽤 낮고, 그 깊이가 방 하나로 쓸 만큼도 되지 않는 위쪽 세 개 층에는, 여성들이 앉아서 밖을 내다보았던 기묘한 모양의 방들만이 있다. 자이푸르의 ‘분홍색 도시’의 시각적 언어와 보조를 맞추기 위해 하와 마할도 붉은 사암을 사용하여 햇빛이 핑크빛으로 반짝이게 했다.

  라지푸트 양식으로 알려져 있기는 하지만 파사드의 대칭에서는 무굴 양식의 영향이 강하게 나타난다. 높이가 15미터에 이르는 파사드에는 950개가 넘는 창문이 있으며, 각각 하얀 석회로 모티프를 그려 넣었다. 주 출입문은 건물 뒤쪽에 있으며, 일련의 경사로를 통해 위층으로 갈 수 있는데, 이는 팰런킨(palanquin, 어깨에 메는 가마)의 출입을 용이하게 하기 위해서였다. 하와 마할은 그 이름이 암시하듯 혹독한 날씨에 대응하고 있다. 바람이 잘 통하는 365개의 격자무늬 수많은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바람이 사막의 열기로부터 실내를 서늘하게 유지할 수 있었다. 알라딘의 마법사도 이보다 환상적인 건물은 만들어내지 못했을 것이다.

 

 

사진: 이영일/ 채널A 보도제작부 스마트리포터

영상: 고앵자/ 채널A 보도제작부 스마트리포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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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주 청룡사지 보각국사탑 앞 사자 석등 (보물 제656호)

  충주 청룡사지 보각국사탑 앞 사자 석등(忠州 靑龍寺址 普覺國師塔 앞 獅子 石燈, 보물 제656호)은 청룡사는 언제 창건되었는지 뚜렷하게 알 수 없고, 현재 절의 옛 모습을 짐작해 볼 방법이 없다. 옛터에는 석등과 함께 보각국사의 사리탑과 탑비만이 서 있을 뿐이며, 현재의 청룡사는 옛터의 북쪽에 자리를 잡아서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 석등은 보각국사(普覺國師, 1320∼1392)의 명복을 빌어 주기 위해 그의 사리탑 앞에 세워진 것으로, 불을 밝혀두는 화사석(火舍石)을 중심으로 아래에는 이를 받쳐주는 3단의 받침을 두고, 위로는 지붕돌과 머리장식을 얹었다. 현재 상륜부를 제외하고는 거의 모든 부재가 완전하게 갖추어져 있으나 모든 부재가 사각형인데 비하여 하대석이 3단의 받침 가운데 아래받침돌은 앞을 향해 엎드려 있는 사자를 조각하였는데, 이 때문에 일명 ‘사자석등’이라 부른다. 한 장의 돌로 이루어진 지대석은 윗면에 사자를 안치하기 위하여 사자모양의 윤곽이 패어져 있으며 거북모양의 사자 한 마리가 하대석 대신 놓여 있다. 툭 불거진 눈과 코, 날카로운 이를 드러내놓고 잇는 사자상은 울퉁불퉁한 근육과 함께 내딛고 있는 앞.뒷다리가 매우 힘있게 표현되었으며, 옆으로 비낀 꼬리 또한 유려하게 조각되었다. 정면을 향하여 구부리고 있는 사자의 등에는 초화문이 조각되어 있는 말안장 모양의 장식이 표현되어 있는데, 그 위에 중대석인 간주석을 떠받들 수 있도록 1단의 네모꼴받침이 마련되어 있다. 1매의 돌로 낮게 조성된 각주석의 네 면에는 아자(亞字) 모양의 안상이 두 겹의 선으로 조각되어 있으며, 각 안상 내부에는 삼각형을 이루는 세 개의 원형무늬와 함께 그 주의를 감싸고 있는 불꽃무늬가 선각되어 있다. 사자의 등에 얹어진 가운데받침은 기둥모양으로 4각의 낮은 돌을 두었다. 지대석과 같이 네모꼴을 한 상대석은 아랫부분에 1단의 각형 받침이 각출되었고 8엽의 복판앙련대가 마련되어 있다. 1매의 돌로 만들어진 화사석(火舍石)은 4각으로, 네 모서리를 둥근기둥처럼 조각하였고, 앞뒤로 2개의 창을 내었다. 지붕돌(屋蓋石) 역시 한 장의 네모난 돌로 만들어졌는데, 밑부분에는 1단의 각형받침과 함께 네 개의 서까래 모양이 모각되었고, 네 귀퉁이마다 자그마한 꽃을 돌출되게 조각해 놓았으며, 낙수면의 경사가 급하고 추녀 끝은 약간 치켜 올라갔다. 상륜부는 보주를 설치하였던 흔적만 남아 있다. 네 모서리선이 두터워 고려시대의 지붕돌 양식을 잘 보여준다. 경기도 양주 회암사지 쌍사석등과 더불어 조선시대 사자석등의 대표적인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절터에서 석등을 사리탑, 탑비와 나란히 세운 것은 조선시대의 배치방식이다. 탑비에 새겨진 기록으로 미루어 이 석등은 조선 전기인 태조 1년(1392)부터 그 이듬해인 1393년에 걸쳐 세워진 것으로 추측된다. 지붕돌은 두툼한 방석처럼 만들어져 있어 고려시대 양식을 계승하였음을 알 수 있으며 경기도 양주 회암사지 쌍사석등과 더불어 조선시대 사자석등의 대표적인 작품이라 할 수 있다. (문화재청 문화유산정보)

* 문화재 소재지: 충북 충주시 소태면 오량리 산32-2번지

* 한국문화재재단 문화유산채널:

http://www.k-heritage.tv/hp/hpContents/photo/storyView.do?categoryType=4&contentsSeq=11169

 

이영일/ 채널A 보도제작부 스마트리포터

고앵자/ 채널A 보도제작부 스마트리포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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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세기 마법의 천문관측 인도 잔타르 만타르(Jantar Mantar) 천문대

  인도 자이푸르(Jaipur) 잔타르 만타르(Jantar Mantar, 산스크리트어(語)로 ‘마법의 장치, Magical Device’라는 의미) 천문대는 18세기 초에 무굴 제국 말인 1728부터 1734년 사이에 번왕국(藩王國)의 마하라자이자 수학자·천문학자였던 자이싱 2세(Jai Singh II)에 의해 세워졌다. 과학자들을 외국에 보내 잔타르 만타르를 짓기 위한 연구를 수행하게 하였고 이후 델리, 우자인, 바라나시, 마투라, 자이푸르에 5곳에 세웠다.

  자이푸르의 잔타르 만타르는 그중 가장 규모가 크고 1940년대까지도 천문대로 이용하였고 1948년 국가기념물로 지정 되었다. 이곳에 있는 20개의 주요 천문 계기는 건축물처럼 땅에 고정하여 설치하였으며 맨눈으로 천문학적 위치를 관찰할 수 있게 설계하였다. 이 계기들을 사용해 시각을 계산하고, 천체 높이, 일식·월식, 행성의 기울기를 예측·계산하거나 별자리, 행성들의 위치를 보는 등 다양한 천체 관측과 연구가 가능하다. 지역에서 나는 석재와 대리석로 계기들을 제작했으며 가장 큰 계기인 삼라트 얀트라(Samrat Yantra, 해시계로 삼각형의 벽의 그림자로 시간을 측정하는 천문기구)의 경우 높이가 27m에 이른다.

  해시계도 절기와 오전 오후의 그림자 방향에 따라 관측 활 수 있도록 설계 되었으며, 별자리도 절기에 따라 그림자의 위치가 다른 측정 기구로 만들어 졌다. 우리 일행도 마침 햇빛이 있어 해시계의 시간을 계측 확인한 결과 분까지 오차가 거의 없이 정확하게 관측 되었다. 돌을 다듬고 문질러서 대리석을 만들고 홀을 내고 수직으로 십자로 곡선 줄을 그어서 시간을 만들어 가름 해 보는 것을 인도인들의 천문에 관심을 알 수 있었다. 300여년 세월에의 흐름에도 그림자가 가리키는 시간적 위치는 현재와 일치를 이루고 있으니 자연의 법칙은 변함이 없나 보다. 별자리도 각기 다른 별자리에 따른 관측기구로 관측 할 수 있도록 별도로 각기 설계되어 있었다. 인도인들이 해와 별자리의 움직임을 관측하기 위해 먼 우주를 바라볼 생각을 하였을 그 시대의 과학적인 생각을 하여본다. 우리의 조상들은 7세기에 경주 첨성대에서 천문관측을 시작 했었다.

  자이싱 2세(Jai Singh II)는 11세에 성주가 되어 일찍부터 무굴 황제로부터 인정받아 큰 도량이라는 의미에서 샤와이라는 칭호를 부여받았다. 무사, 왕, 정치가로써 뛰어난 그는 힌두나 이슬람을 가리키지 않고 양쪽의 고전과 영어, 종교사상, 전통의학을 공부했다. 그가 입안한 계획도시인 자이푸르는 그 후 각종 전통공예의 중심지로 번영했다. 자이싱 2세는 그중에서도 천문학과 수학에 정열을 쏟았단다. 이 기묘하고 마법의 장치인 잔타르 만타르(Jantar Mantar)라 불리는 천문대는 종교를 뛰어넘어 동서양의 지식과 연구를 집대성한 것이다. 거대한 규모의 해시계, 별좌의, 자오선의, 황도의, 천체경위 등이다.

  자이푸르는 1728년에 이 지방에서 세력을 떨쳤던 자이 싱 2세에 의해 만들어 졌는데 그 왕의 이름을 따서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성벽으로 둘러싸인 도시’라는 뜻이란다. 자이푸르는 7개의 문을 가진 성으로 궁전과 옛 건물들이 잘 보전되어 있다. 구시가지 건물들이 분홍색으로 통일되어 있는 것도 이 도시의 독특한 점이다. 그래서 핑크시티라고 불리는 이 도시는 화려한 인상을 준다.

  자이푸르의 잔타르 만타르(Jantar Mantar)는 인도에서 가장 중요하고 포괄적이며 잘 보존된 유서 깊은 천문 관측소이며, 무굴제국 말기에 학문적 소양이 깊은 군주가 궁중이 보유했던 천문학적 우주의 과학기술과 철학적 개념을 잘 보여주고 있다. 이는 인도 역사와 함께 세계사에 길이 남을 천문대로 보존이 아주 잘되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 되어 있다.

 

 

사진: 이영일/ 채널A 보도제작부 스마트리포터

영상: 고앵자/ 채널A 보도제작부 스마트리포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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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주 청룡사지 보각국사탑비 (忠州 靑龍寺址 普覺國師塔碑, 보물 제658호)

  충주 청룡사지 보각국사탑비(忠州 靑龍寺址 普覺國師塔碑, 보물 제658호)는 청룡사 옛터에 남아 있는 비로, 고려 말 공임왕과 공양왕 및 조선 초 태조의 국사(國師)를 지냈던 보각국사(普覺國師)를 기리기 위해 세웠다. 그 내용은 고려 우왕 9년(1383)에 국사가 되어 73세에 입적한 사실과 보각국사의 덕과 지혜를 추앙하고 기리기 위하여 왕명(王命)으로 세운다는 것이다.

  보각국사는 풍양 조(豊壤 趙)씨로 속명이 혼수(混脩, 1320∼1392)다. 도를 지킴에 조심하고, 특히 계율을 따를 것을 강조하였으며, 문장과 글씨에도 능하였다. 전해지는 저서 4편이 모두 보물로 지정되었다. 1378년에 저술된『선림보훈(禪林寶訓)』 2권 2책은 보물 제700호, 1378년에 저술된『금강반야경소론찬요조현록』〈권 상·하〉 2책은 보물 제720호, 1379년에 저술된『호법론(護法論)』은 보물 제702호, 1381년 저술된『선종영가집(禪宗永嘉集)』은 보물 제641호로 지정되어 있다. 12세에 출가하여 22세 때에는 승과에 급제하였으며, 재상 조쌍중(趙雙重)이 지은 휴휴암(休休庵)에 초빙되어 3년간 능엄의 법요를 강연한 후 충주 청룡사 서쪽에 연회암을 짓고 머물렀다. 공민왕이 회암사 주지가 되어 주기를 요청했으나 사양하고 오대산 신성암에 머물면서 나옹(懶翁) 화상과 불도(佛道)를 논했다. 1361년(공민 10) 공민왕의 요청으로 궁궐에서 법회를 열었으나 도중에 도망친 후 명산과 사찰을 주유했다. 29세 때에는 금강산으로 들어가 여러 명산을 두루 돌아다니며 수도하다가 조선 태조 1년(1392) 청룡사로 돌아와 1392년(공양왕 4) 73세에 입적하니, 태조는 시호를 내려 ‘보각국사’라 하고, 탑의 이름을 ‘정혜원융(定慧圓融)’이라 하였으며, 청룡사에 대사찰을 조성하도록 하였다. 왕의 부름에 쉽게 응하지 않은 것은 속세의 명리에 초연한 참된 구도자의 길을 걸었음을 말해 준다. 목은 이색, 도은 이숭인 등 당대의 유학자들과도 교유했다.

  탑비는 높이 322cm, 너비 115.5cm, 두께 20.5cm인 화강암 1장의 돌로 된 네모난 받침돌 위에 비몸돌이 서 있는데, 비 윗부분의 장식물인 가첨석을 놓는 대신 위로 머릿돌을 따로 얹지 않고, 몸돌 양 귀퉁이를 접듯이 깎아 마무리해 놓았다. 이는 고려 말 조선 초기의 특징적인 모습이다.

  조선 태조 3년(1394) 문인(文人) 선사(禪師) 희달(希達)이 왕의 명을 받아 세운 것으로, 권근(權近)이 비문(碑文)을 짓고, 승려 천택(天澤)이 글씨를 썼다. 각자의 이름은 마멸되어 알 수 없다. 글씨에서는 힘이 느껴지고, 예스러운 순박함과 신비스러움이 함께 어우러져 있어 중국의 어느 명품에도 뒤지지 않을 만큼 품격을 지니고 있다. 이는 이후 조선시대를 통하여 이에 대적할 만한 것이 없을 만큼 뛰어난 필체를 보이고 있다. (문화재청 문화유산정보)

. 청룡사 창건설화: 어느 화창한 봄날 한 도승이 이 근처를 지나는데 갑자기 소나기가 쏟아졌다. 도승이 나무밑에서 비를 피하고 있는데 하늘에서 용 두 마리가 여의주를 갖고 놀다가 땅에 떨어뜨렸다. 용 한 마리가 여의주를 향해 내려오다가 청계산 위로 올라갔고 여의주는 큰 빛을 내다가 사라지고 용도 사라지니 비가 멎었다. 선세를 자세히 살펴본 도승은 이것이 飛龍上天形의 길지임을 깨달았다. 용의 힘이 꼬리에 있음을 상기한 도승은 용의 꼬리에 해당하는 곳에 암자를 짓고 청룡사라고 했다고 한다.

* 문화재 소재지: 충북 충주시 소태면 오량리 산32-2번지

* 한국문화재재단 문화유산채널:

http://www.k-heritage.tv/hp/hpContents/photo/storyView.do?categoryType=4&contentsSeq=11165

 

이영일/ 채널A 보도제작부 스마트리포터

고앵자/ 채널A 보도제작부 스마트리포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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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려한 색채의 모자이크와 벽화로 가득한 암베르 성 (Amber Fort)

  암베르 성(Amber Fort)은 인도 자이푸르(India Jaipur)에서 11km 떨어진 높은 산 정상을 따라 성벽이 둘러져있는 카츠와하(Kachwaha) 왕조의 성이다.

  이 성은 원래 11세기 초 미나(Meena)왕에 의해 건축되었으며 1592년 자이푸르의 라자 만 싱(Rajr Man Singh) 왕이 건축하기 시작해 약 150여년에 걸쳐 18세기 중엽 스와이 자이 싱(Sawai Jai Shingh) 왕에 의해서 현재의 모습으로 완성되어 새로운 성을 건설하고 옮기기까지 약 700년 동안 카츠와하(Kachwaha) 왕조의 성이었다. 높은 산에 둘러싸여 마오다(Maotha)호수와 무굴양식의 정원이 내려다보이는 언덕에 위치하고 호수 속에는 무굴양식의 정원도 건축하였다.

  성은 붉은 사암과 대리석을 이용해 힌두와 이슬람 양식이 조화를 이루었다. 쉬시마할은 왕과 왕비의 침실로 화려한 색채의 모자이크와 벽화들로 가득 채워서 내부를 아름답게 장식하고 창문은 스테인드글라스로 한 거울궁전이 있다. 이 거울궁전은 채광이 좋아 촛불 하나로 반사를 이용하여 방 전체를 밝힐 수 있었다고 한다. 여자들은 밖을 나갈 수 없었기에 정교하고 아름다운 무늬의 대리석 창살은 통하여 밖을 구경 했다고 한다. 이 창살을 통하여 세상 구경을 했을 여인들의 마음을 헤아려 본다. 또한 궁전은 여름 더위를 식히기 위해 커튼에 물방울이 이슬처럼 흐르게 하는 가느다란 관을 설치했다. 500여 년 전 건축물인데도 대리석을 파낸 자리에 돌가루와 보석가루를 채워 문양을 만들었기 때문에 색바램이나 지워짐이 없어 볼수록 감탄스럽다. 성 오르는 길에는 코끼리를 타고 갈려고 했으나 대기시간이 길어서 지프차를 이용하여 골목길을 따라 성으로 올랐다.

  인도가 영국식민지에서 독립하면서 공화국이 되고 왕(인도어로 마하라자)들과의 강요된 협정 속에 1970년 인도법 개정으로 재산은 존속하되 마하라자의 특권과 지위는 상실되었다. 성은 자이푸르 지방정부에 기부하고 일부만 마하라자 후손이 관리한다. 지방정부에 기부한 암베르성을 찾아오는 많은 관광객을 보고 왕의 후손들은 매우 후회했다고 한다. 규모가 어마어마하고 성은 산지의 구릉지대와 마오다 호수와 어우러져서 그런지 경관이 상당히 수려하며 인도에서 가장 아름다운 성으로 손꼽힌단다.

  주변에는 마하라자 람싱 2세(위대한 Maha+왕 Raja Ram Singh-2)의 묘가 있다. 무덤이라 하기엔 너무 아름다운 정자처럼 보였다. 천장 기둥에 아주 섬세하게 새겨진 문양과 조각들은 정말 그 왕이 어느 정도의 권력을 가졌던 왕이었는지를 가늠할 수 있게 해주었다. 이 묘는 인도에서는 유명했던 왕이라 인도사람들은 가끔 찾는데 외국인들은 가끔 보는 여행지란다.

  물의 궁전이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는 잘 마할(Jal Mahal)은 라자스탄(Rajasthan)의 수도인 자이푸르에 있는 만 사가르 호수의 중앙에 세워져 있다. 18세기에 마하라자 자이 싱 2세에 의해 개조, 증축 하였다. 자이푸르는 날씨가 섭씨 50도 이상 올라가기도 하는 더운 지방으로 더위를 피해서 호수 한가운데에 궁전을 지었단다.

 

 

사진: 이영일/ 채널A 보도제작부 스마트리포터

영상: 고앵자/ 채널A 보도제작부 스마트리포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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