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 공민왕신당이 조선왕조 최고 사당 종묘에 왜

  공민왕신당(恭愍王神堂)은 고려(高麗) 제31대 공민왕(恭愍王)과 왕비인 노국대장공주(魯國大長公主)의 영정(影幀)을 모신 사당이다. 정식이름은 ‘고려공민왕영정봉안지당(高麗恭愍王影幀奉安之堂)’이다. 공민왕은 밖으로 원나라를 물리쳐 나라의 주권과 영토를 되찾고, 안으로 개혁정치를 펼쳤으며, 개인으로서 예술적 재능이 뛰어난 임금 이였다. 사진처럼 공민왕과 부인 노국공주의 영정이 한 그림 속에 있는 것이 특이하고 왼쪽에 보이는 그림 세 폭은 공민왕이 친히 그렸다고 하는 말 그림인 준마도(駿馬圖)가 사당 안에 있다.

  종묘의「공민왕 신당」에 봉안된 영정은 어느 시대 누가 그렸는지 그 작가(作家)나 제작연대(製作年代)가 바르게 밝혀진바 없다는 것이 현재의 일반적인 견해다. 하지만 그 그림의 화풍(畵風)으로 보아 조선시대 초기의 도화서(圖畵署)의 화가가 그린 것으로 학계에서는 추정하고 있다. 이 영정(影幀)은 매우 오래된 그림이어선지 색이 바래져 있으며 그림을 자세히 살펴보면 공민왕의 복장이 어색하다. 복두를 쓰고 둥근 깃에 소매가 매우 넓고 옷깃과 수구(袖口)에는 짙은 색 선(線)이 둘러져 있는 홍포(紅布) 단령(團領)을 입은 공민왕의 복장은 전통적인 고려왕(高麗王)의 복장이 아니며, 특히 조복(朝服)을 입은 신하가 들던 홀(笏)을 들고 있는 모습이 고려왕의 복식과는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이 모습은 왕의 복장이 아닌 사신(使臣)의 복장을 하고 있는 모습이기 때문이다. 영정 앞에는 제상(祭床)과 향상(香床)이 1개씩 비치되어있다.

  조선왕조의 최고의 사당인 종묘(宗廟, 사적 제125호)의 향대청(香大廳) 일원 망묘루(望廟樓) 동쪽 별당으로 종묘 창건 시에 건립하여 고려의 왕을 모셨다는 점이 특이하지만 그 이유는 정확히 알 수 없다. 공민왕은 조선의 태조(太祖) 이성계(李成桂)에게 왕조(王朝)를 빼앗긴 고려조(高麗朝) 왕이며, 환관(宦官) 최만생(崔萬生)에게 무참히도 죽음을 당한 불운한 공민왕의 신당이 종묘에 안치된 ‘아이러니컬’한 이야기다.

- 공민왕(恭愍王): 고려 제31대 왕(재위 1351-1374)으로 호는 이재(怡齋)·익당(益堂)이며 이름은 전(전)이다. 초명은 기(祺)로서 몽골식 이름은 빠이앤티무르(伯顔帖木兒)이다. 충숙왕의 둘째아들이며 충혜왕의 동복 아우이다. 비는 원(元)나라 위왕(魏王)의 딸 노국대장공주(魯國大長公主)다. 공민왕은 그림에 뛰어나 고려의 대표적 화가의 한 사람으로 일컬어지고, 작품으로는 천산대렵도(天山大獵圖), 노국대장공주진(眞), 석가출산상(釋迦出山像), 아방궁도(阿房宮圖), 현릉산수도(玄陵山水圖), 동자보현육아백상도(童子普賢六牙白象圖), 등이 있다고 전해진다. 또한 글씨에도 능하며 특히 대자(大字)에 뛰어났다고 알려져 있는데, 강릉 임영관(臨瀛館), 안동 영호루(映湖樓), 영주 부석사(浮石寺)의 현판도 썼다고 한다. 그리고 능은 현릉(玄陵)으로 북한 개성 봉명산 중턱에 쌍릉(雙陵) 형식으로 노국대장공주의 능인 정릉(正陵)과 함께 나란히 조성되어 있는데, 쌍릉 석실 사이에 통로를 만들어 혼(魂)과 혼(婚)이 오갈 수 있게 한 유혼혈(遊魂穴)이 있으며, 고려 왕릉 가운데 가장 아름답고 뛰어난 능으로 평가 받고 있다.

- 노국대장공주(魯國大長公主): 고려 공민왕(恭愍王)의 왕비로서 보탑실리공주(寶塔實里公主)라고도 한다. 중국 원(元)나라의 황족인 위왕(魏王)의 딸로서, 1349년(충정왕 1) 원나라에서 공민왕과 결혼하여 승의공주(承懿公主)로 책봉되었다. 1351년 12월 공민왕과 함께 귀국하였고 공민왕은 그 달에 즉위하였다. 1365년(공민왕 14)에 난산(難産)으로 죽었다. 그 해 4월 대신들은「인덕공명자예선안왕태후」라는 칭호를 올렸고 이듬해 원나라에서「노국휘익대장공주」라는 시호를 내렸으나 공민왕의 명에 의해「노국휘의대장공주」로 고쳐졌다.

- 준마도(駿馬圖): 공민왕의 애마(愛馬)를 그린 그림으로 전해지며, 원본은 국립고궁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종묘 문화유산정보, 두산대백과 사전)

* 문화재 소재지: 서울 종로구 종로 157 (훈정동 종묘 망묘루 동쪽 별당)

* 한국문화재재단 문화유산채널:

http://www.k-heritage.tv/hp/hpContents/photo/storyView.do?categoryType=4&contentsSeq=10100

 

자료: 이영일/ 채널A 보도제작부 스마트리포터

사진: 고앵자/ 채널A 보도제작부 스마트리포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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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동 은입사 포류수금문 정병(靑銅 銀入絲 蒲柳水禽文 淨甁, 국보 제92호)

  청동 은입사 포류수금문 정병(靑銅 銀入絲 蒲柳水禽文 淨甁, 국보 제92호)은 고려시대 대표적인 금속 공예품의 하나로 높이 37.5㎝의 정병(淨甁)이다.

  정병의 어깨와 굽 위에 꽃무늬를 돌리고, 그 사이에 갈대가 우거지고 수양버들이 늘어진 언덕이 있으며, 주위로 오리를 비롯하여 물새들이 헤엄치거나 날아오르는 서정적인 풍경을 묘사하였다. 먼 산에는 줄지어 철새가 날고 있고, 물 위에는 사공이 조각배를 젓고 있다. 이들은 모두 청동 바탕에 은을 박아 장식한 은입사(銀入絲)기법을 썼으며, 은상감무늬이다. 물을 따르는 부리에는 뚜껑이 덮혀 있는데 구멍을 뚫어 장식하는 기법으로 덩굴무늬를 새기고, 그 옆면에는 연꽃무늬를 배치하였다. 목 부분에도 뚜껑이 있는데 은판(銀板)을 뚫을새김으로 장식하였다.

  이 정병은 형태에 있어서 안정감 있고 유려한 곡선미를 보여주며, 무늬를 표현함에 있어서도 고려 전기부터 크게 발달된 입사기법(入絲技法)의 기술을 유감없이 발휘하고 있다. 현존하는 고려시대 은입사정병은 여러 점이 알려져 있으나, 이 정병은 잘 조화된 우아한 모습을 보여 가장 뛰어난 작품으로 알려져 있다. (국립중앙박물관 문화유산정보)

* 문화재 소재지: 서울 용산구 서빙고로 137, 국립중앙박물관 (용산동5가)

 

자료: 이영일/ 채널A 보도제작부 스마트리포터

사진: 고앵자/ 채널A 보도제작부 스마트리포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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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청사기 구름용무늬 항아리(粉靑沙器 象嵌印花 雲龍文 壺, 국보 제259호)

  분청사기 구름용무늬 항아리(粉靑沙器 象嵌印花 雲龍文 壺, 국보 제259호)는 높이 48.5cm, 회청색의 도자기 표면에 백토를 입혀 장식하는 방식에 따라 크게 상감(象嵌), 인화(印花), 조화(彫花), 박지(剝地), 철화(鐵畵), 귀얄, 분장(粉粧)으로 나뉘는데, 그 중 상감과 인화 기법은 분청사기 장식의 골자를 이룬다. 본래 상감은 바탕이 되는 재질에 다른 재료를 박아 넣어 장식하는 방법으로, 고려시대 은입사 공예나 나전칠기에서 시도되었고 상감청자에서 만개했던 독창적인 공예 기법이다. 상감 청자에서 보듯이 무늬를 음각으로 새기거나 파내고 여기에 붉은 색의 자토나 백토를 메운 뒤 유약을 입혀 구워내면, 흑색과 백색이 절묘한 대조를 이루게 된다. 나아가 일일이 새겨서 표현하는 방식에서 진일보하여 도장을 찍어 보다 효율적인 공정으로 처리한 것이 인화 기법이다. 

  고려시대부터 제작되던 형태를 몸체로 한 이 항아리는 백색의 넝쿨 무늬 ‘당초문(唐草文)’과 흑색의 윤곽선으로 이루어진 3단의 무늬 띠를 경계로 하여 그 사이에 4단의 무늬가 장식되었는데, 가장 중심인 무늬는 흑백색의 상감으로 표현된 두 마리의 용이다. 좌향(左向)으로 여의주를 전력하여 쫓는 용을 묘사한 것으로, 전체적인 형태는 세련미가 떨어지지만 비늘이나 갈기와 같은 부분 처리는 세밀한 선으로 성의 있게 상감하였고, 구름 속을 뚫고 나아가는 힘찬 기세만은 놓치지 않고 잘 살렸다. 그 중 한 마리가 아래쪽 넝쿨 무늬 띠를 발로 살짝 밟은 듯이 처리한 모습은 용을 다소 낮게 배치한 구도를 재치 있게 승화시켜 시각적 묘미를 더한다. 특히 용은 왕권의 상징으로 용 무늬 항아리 ‘용준(龍樽)’은 궁중의 여러 의례 시에 사용되었는데, 이 용 무늬 항아리도 왕실과 관련된 용도로 짐작해 볼 수 있다. 일부 수리가 된 항아리의 입 안쪽에서 목 바깥쪽으로 촘촘하게 찍은 작은 국화 무늬는 조선시대 인화 기법의 면모라 할 만하다. 빈틈없이 도장을 찍어 도자기 바탕의 색깔이 아닌 무늬와 더불어 하얗게 면을 처리한 방식은 조선시대 인화 기법의 전형적인 특징인 것이다. 이는 어깨 부분을 감싸듯이 펼쳐진 여의두 무늬(如意頭文) 주변에도 화사하게 장식되어 눈꽃 같은 인화 장식의 그윽한 아름다움을 드러낸다. 흑색의 윤곽선 안에 백색의 선을 살려 두 겹으로 표현한 여의두 무늬는 안쪽으로 반원형의 도안화된 파도 속에 작은 연꽃과 수금(水禽)으로 추정되는 부정형(不定形)의 면이 상감으로 처리, 여의두 무늬 주변의 인화 장식과 어우러지면서 용이 배치된 공간과 대비를 이룬다. 끝으로 맨 아래쪽에는 역시 흑백의 조화를 이루는 연꽃잎 무늬 ‘연판문(蓮瓣文)’이 돌아가며 장식되고 그 안에는 연꽃잎을 돋보이게 장식하는 화려한 무늬가 상감되어, 항아리의 위쪽 공간을 보다 안정감 있게 떠받치고 있다. 한편 이 항아리가 갖고 있는 한 가지 내밀한 특징은 밑바닥이 없이 뚫려 있다는 점이다. 

  분청사기 구름 용 무늬 항아리는 조선 문화가 새롭게 꽃피기 시작한 순간의 시대성을 발현하고, 조선 왕실의 권위를 표명한 도자기의 하나이다. (국립중앙박물관 문화유산정보) - 장성 금곡 영화마을 -

* 문화재 소재지: 서울 용산구 서빙고로 137, 국립중앙박물관 (용산동5가)

 

자료: 이영일/ 채널A 보도제작부 스마트리포터

사진: 고앵자/ 채널A 보도제작부 스마트리포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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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유산 석회암 카르스트 지형인 단양 석문

  단양 석문(丹陽 石門, 명승 제45호)은 석회암 카르스트지형이 만들어 낸 자연유산으로 석회동굴이 붕괴되고 남은 동굴천장의 일부가 마치 하늘의 무지개를 따다 걸어놓은 듯힌 구름다리처럼 형성된 것으로 추정되며 석문 자체의 형태도 특이하고 아름답지만, 커다란 석문을 통해 바라보는 남한강과 건너편 농가의 전경이 마치 사진프레임을 보는 듯이 아름답다.

  구름다리 모양의 돌기둥 자연경관자원 중 동양 최대 규모로 알려져 있으며 석회암 카르스트 지형의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어 학술적 가치도 클 뿐만 아니라, 석문 안에 살았다는 마고할미의 전설이 전해져 내려오는 등 희귀하고 아름다운 경승지이다. (문화재청 문화유산정보)

* 문화재 소재지: 충북 단양군 매포읍 하괴리 산20-35번지 등

 

자료: 이영일/ 채널A 보도제작부 스마트리포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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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개국공신 정도전 탄생 설화가 전하는 단양 도담삼봉

  단양 도담삼봉(丹陽 島潭三峰, 명승 제44호)은 절경이 특이하고 아름다워 단양팔경 중 으뜸으로 손꼽히며 단양군수를 지낸 이황을 비롯 황준량, 홍이상, 김정희, 김홍도, 이방운 등이 많은 시와 그림을 남긴 곳이다.

  이곳에는 조선시대 개국공신인 정도전 탄생에 관련한 설화가 전해 내려오는데 정도전은 자신을 삼봉이라 자호할 정도로 이곳을 사랑했다고 전한다.

  도담삼봉은 석회암 카르스트지형이 만들어낸 원추 모양의 봉우리로 남한강이 휘돌아 이룬 깊은 못에 크고 높은 장군봉을 중심으로 운치있는 육각정을 머리에 이고 있는 남편봉을 비롯해서 처봉, 첩봉 등 세 개의 봉우리로 이루어져 있는데 가만히 보면 첩봉은 아이를 잉태한 자태로 남편봉을 바라보고 있고, 처봉은 마음이 상한듯 뒤돌아 앉아있는 형상으로 우뚝 솟아 그 형상이 기이하고 아름다우며 남한강과 어우러져 뛰어난 절경을 보여주고 있다.하지만, 보는 이의 상상력에 따라 더 무궁무진한 이야기가 쏟아질 것 같다.  (문화재청 문화유산정보) 

* 문화재 소재지: 충북 단양군 단양읍 도담리 195번지 등 

 

자료: 이영일/ 채널A 보도제작부 스마트리포터

사진: 고앵자/ 채널A 보도제작부 스마트리포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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