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혹이지난사진가’들 경남 남해 출사기

 포토클럽 4월 남해의 봄나들이 출사

  

   불혹이지난사진가들 포토클럽 회원들이 4월 12일밤 서울을 출발하여 13일 새벽에 도착한 남해 다초지의 튤립밭과 유채밭에서 맞는 아침 햇살은 싱그럽고 모처럼 맞는 남녘에 봄의 이야기를 들려 주었고, 상주해수욕장 부근의 두모다랭이마을 유채밭 풍경 속에서 만난 노부부의 농촌 일손과 들꽃들과의 만남, 유채꽃 핀 남해 늑도 창선대교와 함께 어우러진 유채밭과 남해바다 경관은 환희의 밝은 빛이였다. 

   남해군 삼동 창선면 지족해협 일원의 명승 제71호인 죽방렴(竹防簾)은 시속 13-15km의 거센 물살이 지나는 좁은 물목으로, 멸치를 대표어종으로 하는 이 일대의 어로작업은 ‘죽방렴’ 으로 불리는 고유한 어획법을 시행하고 있으며, 현재 23개소의 죽방렴이 설치되어 있는 우리나라 전통적 어업경관의 모습을 잘 보여주는 곳이다. 죽방렴이란 명칭은 대나무 발 그물을 세워 고기를 잡는다는 의미에서 비롯된 것으로 대나무 어살이라고도 하며, 물때를 이용하여 고기가 안으로 들어오면 가두었다가 필요한 만큼 건지는 재래식 어항으로 이곳에서 잡힌 생선은 최고의 횟감으로 손꼽히고 있으며, 물살이 빠른 바다에 사는 고기는 탄력성이 높아 그 맛이 뛰어나다.

   지족항의 손도죽방장어집(남해군 삼동면 지족리 266-15. 신성환 010-9662-4234)의 멸치회.쌈밥도 한 잔 술과 곁들여 갈칠맛이 났다.

    마음의 여유로운 분위기가 있는 실안카페에 드는 가족들의 정겨운 표정과 주변에서 만난 조개캐는 어촌 아낙들의 정겨움을 만날 수 있어 남도 해변의 여정에 더 많은 기쁨을 주었다. 

   두모다랭이 마을 산길과 논밭에서 갯장구채, 보춘화, 연지골무꽃, 으름덩굴꽃, 흰민들레, 자운영꽃, 거문딸기꽃, 망개나무꽃 등 모처럼 만나는 들꽃들과 만남에 시간의 행복, 창선대교 주변 농가에서 만난 배꽃, 사과꽃, 봄까치꽃도 봄의 향기를 전해 주는 즐거운 출사였다.

   이번 출사는 가비, 구름나그네, 남한강, 느컷, 들풀, 들풀2, 려심, 로라, 마리아, 만해, 맑은샘물, 무궁화, 물안개, 뭉개구름, 민들레, 민철, 벨라, 쁘레송박, 사노라면~, 사포니, 산야로, 산야로2, 석노, 선죽, 세인, 수향, 아이원, 아침햇살, 안개, 여정, 와이엠, 위원장, 유심, 일송, 자청, 제로, 청옥산, 카라, 태평양, 한겨레, 허수아비, DI 등 43명이 참여 하였다. 

 

* 문화재청 헤리티지채널:  

남해 지족해협 죽방렴 (竹防簾. 명승 제71호)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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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앵자/ 채널A 보도본부 스마트리포터  press258@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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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신각터 (普信閣址. 서울특별시 기념물 제10호)

보신각터 (普信閣. 서울특별시 기념물 제10호)

 

    보신각은 일명 종각이라고도 하며 고종 32년(1895) 보신각이란 사액을 내린데서 이름이 지어졌다. 태조 4년(1395)에 처음 지어진 후 4번이나 불타 없어지고, 8번에 걸쳐 다시 지어졌다. 현재의 건물은 1979년 8월에 서울시에서 지은 것으로, 동서 5칸·남북 5칸의 2층 누각으로 되어있다. 

    보물 제2호인 보신각종은 조선 세조 14년(1468)에 만들어져 원각사에 있다가, 절이 폐사된 후 광해군 11년(1619)에 현재의 보신각 자리에 옮겨졌다. 보신각종은 오전 4시에 아침을 알리는 파루(罷漏)에 33번을 이는 불교의 33천(天)을 의미, 저녁을 알리는 인정(人定)오후 7시에 28번을 울려 이는 별자리 28수(宿)를 의미로 도성의 문을 여닫고 하루의 시각을 알리는 역할을 해왔다.

   오랜 세월이 흐르는 동안 몸통에 균열이 생겨 더 이상 종을 칠 수 없게 되자, 국립중앙박물관에 있다. 지금 보신각에 걸려 있는 종은 1985년 국민의 성금에 의하여 새로 만들어 그해 광복절에 처음 타종하였다.(문화재청 문화유산정보)

* 문화재 소재지: 서울 종로구 종로2가 102번지일대 

 

* 문화재청 헤리티지채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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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일/ 문화재청 헤리티지채널 사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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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덕궁 금천교 (昌德宮 錦川橋. 보물 제1762호)

창덕궁 금천교 (昌德宮 錦川橋. 보물 제1762호)

 

    금천교는 창덕궁의 돈화문과 진선문(進善門)사이를 지나가는 명당수(明堂水)위에 설치되어 있다. 창덕궁의 명당수, 즉 금천(禁川)은 북쪽에서 남쪽으로 흘러내려 돈화문 오른쪽까지 와서 궐 밖으로 빠져나가는데, 이 어구(御溝)물가에는 화강석 6∼7단을 가지런하게 쌓은 축대를 설치하였고, 여기에 금천교를 설치하여 궐내로 들어갈 수 있게 하였다.

금천교는 창덕궁이 창건되고 6년 뒤인 태종 11년(1411)3월 진선문 밖 어구에 설치되었는데, 그 후 숱한 화재와 전란에도 불구하고 창건 당시의 모습을 보존하고 있다. 현존하는 궁궐 안 돌다리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이다.

   규모는 의장(儀杖)을 갖춘 국왕의 행차 때 노부(鹵簿)의 폭에 맞도록 설정되었으며, 상면은 길이12.9m, 너비 12.5m로 정사각형에 가까울 정도로 폭이 넓다.

구조는 하천 바닥의 중앙과 물가에 놓인 기반석을 토대로 홍예를 2개 튼 형식으로 물가의 축대는 부벽(扶壁)구실을 하고 있으며, 홍예 위에는 장대석 모양의 멍에돌을 얹었다. 다리의 상면은 불룩하게 곡면으로 만들고 바닥을 3칸으로 구분하여 칸마다 장대석을 고르게 깔았으며, 다리 가장자리에는 그 위에 동물상을 조각한 이주석(螭柱石)이 세워져 있다.

   난간은 머리 부분을 연화보주형(蓮花寶珠形)으로 장식한 법수와 그 사이에 세운 판석으로 이루어져 있다. 판석은 하엽동자기둥(荷葉童子柱)모양의 부조를 중심으로 2칸으로 분절되었고 칸마다 안상을 투각하여 놓았다.

   법수 밑에는 멍엣돌 위치에서 돌출된 석재에 짐승머리모양을 환조(丸彫)로 조각하였다. 다리 측면의 홍예 사이 벽에는 귀면형(鬼面形)이 부조되어 있고, 그 아래쪽의 홍예 기반석 위에는 남쪽에 해태상, 북쪽에 거북이상 등 환조로 만든 동물상들이 배치되어 있어서 금천의 분위기를 상징적으로 연출하고 있다.

   현재 서울에 남아있는 가장 오래된 돌다리이며, 궁궐의 위험을 보여주는 상징적 조각상과 아름다운 문양, 견고하고 장중한 축조 기술 등이 돋보이는 이중 홍예교로서 역사적, 예술적, 건축적 가치가 뛰어나다. (문화재청 문화유산정보)

* 문화재 소재지: 서울 종로구 와룡동 2-71번지 창덕궁(사적 제122호)

 

* 문화재청 헤리티지채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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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일/ 문화재청 헤리티지채널 사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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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덕궁 성정각 일원 (昌德宮 誠正閣. 사적 제122호)

창덕궁 성정각 일원 (昌德宮 誠正閣. 사적 제122호)

 

   성정각(誠正閣)은 세자의 일상이 숨쉬던 동궁으로 세자의 교육장이 였으나, 일제강점기에 내의원으로 쓰기도 했다. 성정각은 단층이지만 동쪽에 직각으로 꺾인 2층의 누(樓)가 붙어 있어 독특한 모습이다. 누각에는 희우루(喜雨樓), 보춘정(報春亭) 이라는 편액들이 걸려 있다. 성정각 뒤편에 있는 관물헌(觀物軒)은 왕이 자주 머물면서 독서와 접견을 했던 곳으로, 현재는 ‘집희(緝熙)라는 현판이 남아 있다.

    현재 성정각과 낙선재 사이, 후원으로 넘어가는 넓은 길은, 원래 높은 월대 위에 당당하게 자리한 중희당(重熙堂)이 있었던 곳으로, 이 일대가 왕세자의 거처인 동궁(東宮)이였다.

   동궁일대에는 많은 건물들이 있었으나 중희당은 1891년(고종28)에 없어졌고, 중희당과 연결된 칠분서(七分序), 6각 누각인 삼삼와(三三窩)와 승화루(承華樓)등이 남아 있다. 이들은 서로 복도로 연결하여 서고와 도서실로 사용하였다.

    세자는 유아 사망률이 높았던 때여서 왕자는 네 살 정도까지 자란 후에 세자가 될 수 있었다. 10여 세 전후하여 성인이 되는 관례를 치르고 이어서 혼례를 치른다. 세자 교육은 시강원이라는 관청에서 담당했다. 하루 세 차례 교육과 독서, 틈틈이 활쏘기와 말타기 등 문무를 겸비한 수련을 쌓았다. 세자는 떠오르는 태양과 같아서 궐 안 동쪽에 거처를 마련하여 동궁(東宮)이라 했다. (문화재청 문화유산정보)

* 문화재 소재지: 서울 종로구 율곡로 99 (와룡동)

 

* 문화재청 헤리티지채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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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일/ 문화재청 헤리티지채널 사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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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양 관방제림 (潭陽 官防堤林. 천연기념물 제366호)

담양 관방제림 (潭陽 官防堤林. 천연기념물 제366호)

  

   담양읍을 감돌아 흐르는 담양천의 북쪽 언덕에 따라 관방제림이 조성되어 있는데 제방을 따라 각종의 노거목이 줄지어 서 있다. 표고 약 500m되는 곳이다. 이 관방제림은 담양읍 남산리 동정(東亭) 마을부터 시작해서 담양읍 천변리(川邊里)까지 이어지는데 현재는 수북면 황금리를 거쳐 대전면 강의리까지 길게 이어져 있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말하는 관방제(官防堤)는 천변리의 우시장까지를 말하고 그 길이는 약 2㎞에 이르고 있다.

    관방제림을 구성하고 있는 나무의 종류로는 푸조나무(111그루), 팽나무(18그루), 벚나무(9그루), 음나무(1그루), 개서어나무(1그루), 곰의말채, 갈참나무 등으로 약 420여 그루가 자라고 있다. 현재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구역안에는 185그루의 오래되고 큰 나무가 자라고 있다. 전하는 말에 의하면 관방제림은 큰 나무는 300∼400년 전인 1648년에 성이성 부사(成以性 府使)가 해마다 제방을 수축하면서 수해를 방지를 위해 심어진 것이고, 작은 나무는 철종(哲宗) 5년(1854)에 황종림(黃鐘林) 담양부사(潭陽府使)가 심은 것이라고 한다.

   담양 관방제림은 홍수피해를 막기 위해 제방을 만들고 나무를 심은 인공림으로 우리 선조들의 자연재해를 막는 지혜를 알 수 있는 역사 및 문화적 자료로서의 가치가 크므로 천연기념물로 지정·보호하고 있다. (문화재청 문화유산정보)

* 천연기념물 소재지: 전남 담양군 담양읍 객사리, 남산리 일원

 

* 문화재청 헤리티지채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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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일/ 문화재청 헤리티지채널 사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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