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佛法)을 수호하는 여러 신들(神衆圖)

  신중도(神衆圖)는 부처(佛陀)와 불법(佛法)을 수호(守護)하는 여러 신들(神衆)의 모습을 나타낸 조선시대(朝鲜时代) 18∼19세기의 불화(佛畵)이다.

  신중도(神衆圖) 화면의 위쪽에는 일궁천자(日宮天子)와 월궁천자(月宮天子), 주악천인(奏樂天人)들이 둘러싸여 있고, 아래쪽에는 위태천(韋駄天)과 무장신(武將神)들이 그려져 있다. 이와 같은 신중도는 조선시대 사찰의 주(主) 전각(殿閣)에 봉안되는 예배의 대상 이였으며 19세기부터는 불교 일상의례가 보편화되면서 신중(神衆)을 중단의례(中壇儀禮)로 예경(禮敬)하게 되면서 불전(佛殿)의 중단(中壇)에 걸었다.

  신중(神衆)은 원래 인도(印度)의 재래신(在來神)들이 부처(佛陀)의 자비심(慈悲心)에 감동되어 불교에 귀의한 후, 불법(佛法)의 유통과 옹호를 맹세한 성중(聖衆)을 말한다. 우리나라에서는 불교의 수용과 함께 신중신앙(神衆信仰)이 전래되었는데 예로부터 범천(梵天), 제석천(帝釋天), 인왕(仁王), 사천왕(四天王), 팔부중(八部衆), 십이지신(十二支神) 등이 주로 신앙(信仰)되어 조각(彫刻)과 회화(繪畵) 등으로 많이 조성되었으며 고려시대부터는 주로 불전(佛殿), 탑(塔), 부도(浮屠) 등의 외호상(外護像)으로 조형된 것이 많다. 조선시대의 경우 대웅전(大雄殿), 극락전(極樂殿)을 비롯한 모든 불전(佛殿) 오른쪽 또는 왼쪽으로 모셔서 봉안되는 필수적인 불화이다.

  신중도(神衆圖)는 4가지 유형으로 분류되는데, 첫째는 대예적금강신(大穢蹟金剛神)을 중심으로 왼쪽에 제석천(帝釋天), 오른쪽에 대범천(大梵天), 아래쪽에 동진보살(童眞菩薩)을 도설(圖說)하고 주위에 성군(星君), 명왕(明王), 천녀(天女) 등을 묘사한 불화이고, 둘째는 제석천(帝釋天)과 대범천(大梵天), 동진보살(童眞菩薩)을 중심으로 한 불화이며, 셋째는 제석천(帝釋天), 대범천(大梵天)을 중심으로 그린 불화, 넷째는 동진보살(童眞菩薩)을 중심으로 그린 불화이다. (자료출처: 국립중앙박물관 문화유산정보) - 제26회 2011 불교미술대전 대상 양선희 作 ‘神衆圖’ -

* 문화재 소재지: 서울특별시 용산구 서빙고로 137 국립중앙박물관

* 문화재청 헤리티지채널:

http://www.k-heritage.tv/hp/hpContents/photo/view.do?contentsSeq=12553&categoryType=1&pageIndex=1


이영일∙고앵자/ 채널A 보도본부 스마트리포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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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도군(군수 신우철), 제8회 한국관광대상 수상

  완도군(군수 신우철)은 19일 서울 프레지던트호텔에서 한국관광클럽(회장 이충숙)이 주최한『제8회 한국관광대상 시상식』에서 관광객 유치 관광상품을 개발하여 국내관광 활성화에 기여한 전국 최고의 지자체로 선정되어 상패와 금메달이 주어지는 대상을 수상했다.

  신우철 완도군수는 “변화하는 관광 트랜드에 발맞춰 보다 많은 관광객들이 청정바다 수도 완도를 찾을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 하겠다”고 수상소감을 밝혔다. 완도관광 500만 달성을 위해 청정완도 축제와 언론인 및 중국 총영사 관계자, 한국관광클럽 등을 초청해 팸투어를 실시하여 관광활성화를 위해 힘써왔다.

  한국관광대상은 국내 100여개 우수여행사 대표와 관광전문 언론인, 관광 전문 교수 등으로 구성된 한국관광클럽이 전국 지방자치단체를 대상으로 매년 엄정한 심사를 거쳐 국내 관광활성화와 지역 관광발전을 위한 정책을 펼친 자치단체에게 주는 상이다.

  또한 국내 지방자치단체에 관광객을 많이 보내 지역 경제 활성화에 많은 도움을 주었던 여행사 대표에게 지방자치 단체장의 시상도 있었다. 완도군은 뭉치마이스 김영훈 대표이사, 순창군은 이충숙 (주)센타투어 대표이사한국광광클럽회장과 이용기 푸른바다여행사 대표이사, 담양군은 민정애 동백여행사 대표이사, 달성군은 이애선 믿음여행사 대표이사와 이충숙 (주)센타투어 대표이사한국광광클럽회장이 수상하였다.

  한국관광클럽 발전에 공헌한 한익환 한국관광클럽 명예회장과 송재열 부회장에께 한국관광클럽의 공로패와 행운의 열쇠 증정이 있었고, 한국관광클럽 홍보대사에는 지난해에 이어 엄용수 희국인협회 회장에게 관광홍보대사 임명장이 주어졌다.

 

이영일/ 채널A 보도본부 스마트리포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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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자 상감운학문 매병(靑磁 象嵌雲鶴文 梅甁, 국보 제68호)

  청자 상감운학문 매병(靑磁 象嵌雲鶴文 梅甁, 국보 제68호)은 중국 송(宋)나라 매병에서 유래된 것이지만, 12세기경에 이르러서는 고려(高麗)만의 풍만(豊滿)하면서도 유연(柔軟)한 선의 아름다움이 나타난다. 이러한 고려 매병(梅甁)의 양식은 이 작품에서 세련미(洗煉味)의 극치(極致)를 보여주고 있다.

  매병(梅甁)은 높이 42.1㎝, 입지름 6.2㎝, 밑지름 17㎝의 크기의 구연부(口緣部)는 작고 낮으며 밖으로 살짝 벌어져 있다. 어깨는 넓고 당당한 모습을 보여준다. 구연부의 아랫부분에는 꽃무늬를 둘렀으며 굽 위로는 연꽃무늬를 둘렀다. 몸통 전면에는 구름과 학을 새겨 넣었는데, 흑백상감(黑白象嵌)한 원 안에는 하늘을 향해 날아가는 학과 구름무늬를, 원 밖에는 아래쪽을 향해 내려가는 학과 구름무늬를 새겼다.

  학(鶴)의 진행방향을 다르게 표현한 것은 도자기 표면이라는 일정한 제약을 넘어 사방으로 공간을 확산시켜 짜여진 구획으로부터의 자유로움을 추구한 듯하다. 이와 같은 표현상의 변화 추구와 함께 문양처리의 능숙함에서 고려 도자기의 우수함과 고려인(高麗人)의 창의력(創意力)을 엿볼 수 있다. (자료출처: 문화재청 문화유산정보)

* 문화재 소재지: 서울 성북구 성북로 102-11, 간송미술관 (성북동)

* 동아닷컴[고려호일(高麗好日)]: http://news.donga.com/3/all/20150805/72876384/1

 

이영일/ 채널A 보도본부 스마트리포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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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물(財物)의 신, 관성제군도(關聖帝君圖)

  재물(財物)의 신(神), 관성제군도(關聖帝君圖)는 조선시대 불화(佛畵)이다. 관성제군(關聖帝君)은『삼국지연의(三國志演義)』의 영웅(英雄) 관우(關羽, ?~219) 장군을 신격화(神格化)한 신(神)이다. 관우(關羽)는 용맹하고 의리 있는 장수였고 문무(文武)를 겸비한 성인(聖人)으로 인식되었기 고향인 산시성(山西省)의 상인들에 의해 재물신(財物神)으로 모셔졌다.

  관우(關羽)의 인기가 원대(元代)를 거쳐 명청대(明淸代)에 높아지자 전쟁(戰爭)의 신이자 상인들의 재물신(財物神)으로 각 지역에서 숭배(崇拜)되었다. 우리나라도 임진왜란(壬辰倭亂) 이후 관우신앙(關羽信仰)이 확산되었으며, 특히 상인들이 재물신으로 많이 섬겼다. 지금도 서울의 성재묘(聖宰廟) 등지에서 상인들이 관우제사를 지내는 등 그 명맥이 이어지고 있다.

  관우(關羽)는 산서성 출신이지만, 하북성으로 망명해서 촉한(蜀漢)건국한 유비(劉備, 161~223)와 장비(張飛, ?~221)를 만나 의형제를 맺었다. 그리고 쇠망한 한(漢) 왕조를 부흥시키기 위해 유비에게 힘을 보탰다. 이 세 사람의 관계는 말 그대로 형제와 같은 것이었다. 수많은 전투에서 승리를 거두면서 세 사람의 꿈은 곧 실현될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승상 조조(曹操, 155~220)가 이들을 배반하고 위(魏)를 건국하게 된다. 강력한 군사력을 자랑하는 위나라와 손권(孫權, 182~252)이 이끄는 오(吳)와 맞서 싸우면서 유비는 자신이야말로 한 왕조의 정통 후계자임을 내세우며 촉(蜀)의 황제로 등극하게 된다. 관우는 오와 연합해서 위의 군대를 적벽(赤壁)에서 크게 물리치지만, 이후 오와 위의 연합군의 공격을 받아 전사하고 만다. 그의 무장으로서의 늠름한 모습은『삼국지』에 잘 표현되어 있다.

  중국인들은 그를 중국 역사상 가장 뛰어난 무장인 ‘2대무성(二大武聖)’의 하나로 꼽고 있다. 그는 대단한 애국자인데다 우정과 의리가 있으며, 금전 관계도 깨끗하고, 성격마저도 침착한 아주 이상적인 사나이였다. 이런 영웅이 이유야 어떠하든 비극적인 죽음을 맞았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아주 강렬한 인상을 심어주어서 사람들의 마음을 끓어오르게 만들었다. 관우(關羽)는 불교와 도교, 유교에서도 신으로 숭배를 받는다. (자료출처: 국립중앙박물관, 도교의 신들)

* 문화재 소재지: 서울특별시 용산구 서빙고로 137 국립중앙박물관

* 서울 동관왕묘(서울 東關王廟. 보물 제142호): http://blog.donga.com/yil2078/archives/7857

* 문화재청 헤리티지채널:

http://www.k-heritage.tv/hp/hpContents/photo/view.do?categoryType=1&contentsSeq=12538


이영일∙고앵자/ 채널A 보도본부 스마트리포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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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탑골공원(서울 塔골公園, 사적 제354호)과 문화유산

  서울 탑골공원(서울 塔골公園, 사적 제354호)은 조선시대 원각사터(圓覺寺址)에 세운 서울 최초(最初)의 근대식공원(近代式公園)으로 파고다 공원이라고도 불리운다. 원각사(圓覺寺)는 고려 때 흥복사(興福寺)라 불린 절로, 조선 전기에 절을 넓히면서 원각사로 이름을 바꾸었다. 그러나 불교를 억누르는 정책(崇儒抑佛)으로 인해 연산군과 중종 때 절이 폐사(廢寺)되었다. 그 후 영국인(英國人) 브라운의 건의로 이곳에 서양식공원(西洋式公園)을 세웠으나, 그 이유와 시기에 대한 정확한 기록은 없다.

  공원에는 서울 원각사지 십층석탑(서울 圓覺寺址 十層石塔, 국보 제2호)서울 원각사지 대원각사비(서울 圓覺寺址 大圓覺寺碑, 보물 제3호)가 있고 독립선언문(獨立宣言文)을 낭독하고 만세를 부른 팔각정(八角亭)·독립만세부조판()·의암(義菴) 손병희선생(孫秉熙先生)의 동상(銅像)들도 있다.

  석재유구(石材遺構)들은 탑골공원 내에 도시개발과정에서 출토된 부재들이 있다. 인물상 3점은 원각사 탑(圓覺寺 塔)의 주의를 호위하던 신장상(神將像)이나 보살상(菩薩像)으로 추정되고, 연화문(蓮花紋)이 새겨진 난간석(欄干石)은 원각사 탑 외각을 둘린 부재로 여겨진다. 복청교(福淸橋)라고 음각된 교명주(橋名柱)는 원래 교보문고 뒤편의 광화문우채국 북측지점에 있었던 혜정교(惠政橋)인데, 탐관오리들을 공개적으로 처형하던 다리로써 중학천(中學川)이 청계천(淸溪川)으로 합류하기 전의 하류에 걸쳐져 있었다. 일제강점기하(1926)에 혜정교를 개축하면서, 다리 이름을 복청교라고 새로이 개명(改名)하며 만든 것으로 보인다.

  발굴출토 우물(發掘出土井)은 2001년 탑골공원 재정비 사업 때 발견된 원통형으로 직경 1.3m이며 잔존 깊이는 5.2.m에 달한다. 내부는 회색을 띤 직사각형 벽돌이란 사용재료, 축조 방법으로 미뤄 조선말기(대한제국기)에 조성한 뒤 일제강점기까지 사용된 우물로 판단된다. 서울 4대문 안에서 민간용 우물이 발견된 사례가 드문 사정에 비출 때 이 우물은 조선후기 한양의 생활사 연구에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앙부일구 대석(仰釜日晷 臺石) 부재는 조선시대 운종가(雲從街, 지금의 종로)에는 두 곳에 해시계를 설치하여 시간을 알려줬다. 1437년(세종 19)에 처음 시설하였는데 하나는 혜정교에, 다른 하나는 종묘 앞에다 두었다. 임진왜란 때 유실된 해시계는 조선후기에 다시 제작하였으며, 보물로 지정된 두 점이 전해지는데 세종 때의 구조와 형식을 계승한 작품으로 평가한다. 이 대석은 둘 가운데 종묘 앞에 있던 해시계 받침돌로서 대한제국기인 1898년과 1899년 사이에 벌어진 종로를 통하는 전차궤도 부설 공사를 인해 받침돌만 이곳으로 옮겨졌다고 알려져 있다. 옮긴 시기에 대해서는 1930년대라는 설도 전해진다.

  서울 탑골공원은 1919년 3월 1일 처음으로 독립선언문을 낭독하고 독립만세를 외친 3·1운동의 출발지로서, 우리 민족의 독립 정신이 살아 숨쉬는 유서 깊은 곳이다.

  탑골공원 팔각정(塔골公園 八角亭,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73호)은 조선 고종(高宗, 1852~1919, 재위 1863∼1907) 때 영국인 브라운이 조성한 현대식 공원으로 공원 안에 있는 원각사 10층 석탑으로 인하여 파고다공원 또는 탑동공원이라 불리웠으며, 이때 팔각정도 함께 지었다. 황실공원으로 제실, 음악연주 장소 등으로 사용하였으며, 1913년부터는 일반인에게 공개되었다. 1919년 3.1운동 당시 학생들과 시민이 이 앞에 모여 학생대표의 독립선언문 낭독에 이어 대한민국 만세를 외치고 시위행진을 벌였던 곳으로 유명하다.

  일제시대에는 시민들이 울적해진 심정을 달래기 위하여 이곳을 많이 찾았다고 한다. (자료출처: 문화재청 문화유산정보)

* 문화재 소재지: 서울 종로구 종로 99, 외 탑골공원 (종로2가)

* 서울 원각사지 십층석탑: http://blog.donga.com/yil2078/archives/6101

* 서울 원각사지 대원각사비: http://blog.donga.com/yil2078/archives/6189

* 한국문화재재단 문화유산채널:

http://www.k-heritage.tv/hp/hpContents/photo/view.do?categoryType=1&contentsSeq=12537


이영일∙고앵자/ 채널A 보도본부 스마트리포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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