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국대학교의 정각원은 경희궁 숭정전이였다.(慶熙宮 崇政殿)

  경희궁 숭정전(慶熙宮 崇政殿.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20호)은 조선 광해군 9년(1617)부터 12년(1620) 사이에 지어진 궁궐로 임금이 항상 머무르던 곳이 아니라 본궁을 떠나 잠시 머무르던 이궁이다.

  광해군 10년(1618)에 지어진 숭정전은 경덕궁(慶德宮, 영조 때 慶熙宮으로 개칭), 경희궁의 정전(正殿)으로, 임금이 신하들의 조례를 받고 공식적인 행사를 하던 곳이다. 그러나 1910년 일본인들이 다닐 경성중학교(京城中學校)를 이곳에 설립하면서 강제로 철거되어 심하게 훼손되었다. 숭정전은 다른 건물보다 비교적 늦은 1926년 남산 기슭의 조계사로 옮겨 세워졌다가 1976년에 현재는 동국대학교(東國大學校) 안의 정각원(正覺院)이라는 법당(法堂)으로 쓰이고 있는데, 내부에 있던 어좌(御座)는 없어졌는데, 대신 불단(佛壇)을 설치하여 불교의례(佛敎儀禮)를 행하기에 알맞게 변형되어 있다. 경희궁에 있던 건물 중 가장 크고 화려하게 지어진 장엄한 건물이었을 것이다. 궁궐정전(宮闕正殿)에 어울리도록 이중 월대를 쌓고 그 위에 앞면 5칸·옆면 4칸 규모로, 지붕 옆면이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이다. 지붕을 받치면서 장식을 겸하는 공포가 기둥 위에만 있는 주심포 양식의 건물로 정전다운 품격을 갖추고 있다.

  서울시에서는 1985년부터 5차례의 발굴조사를 실시했고, 경희궁지(慶熙宮址, 사적 제271호)에 경희궁 복원공사 때 승정전을 옮겨 지으려고 했으나 변형이 심해 이곳에 두기로 하고, 발굴 결과를 토대로 경희궁에 새로 숭정전을 6년에 걸쳐 복원했다. 숭정전 주변은 원래 사방에 문을 내고 남쪽에는 숭정문(崇政門), 동쪽에는 여춘문(麗春門), 서쪽에는 의추문(宜秋門), 북쪽에는 자정문(資政門)이 있었다. 경희궁 모습은 서궐도안(西闕圖案, 보물 제 1534호)을 통해 짐작할 수 있다. 경희궁 숭정전은 창경궁 명정전과 함께 조선 중기 궁궐건축 연구에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 (문화재청 문화유산정보) - 경희궁 숭정문. 경희궁 숭정전으로 현, 동국대학교 법당으로 쓰이는 정각원. 경희궁지에 복원한 숭정전. 석물결나비 -

* 문화재 소재지: 서울 중구 필동3가 26번지 (동국대학교)

 

이영일/ 채널A 보도본부 스마트리포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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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대구 동화사 비로암 삼층석탑 납석사리호(보물 제741호)

  전 대구 동화사 비로암 삼층석탑 납석사리호(傳 大邱 桐華寺 毘盧庵 三層石塔 蠟石舍利壺. 보물 제741호) 민애대왕석탑사리호(敏哀大王石塔舍利壺)로 동화사 비로암 삼층석탑(桐華寺 毘盧庵 三層石塔, 보물 제247호) 내에서 발견된 통일신라시대의 사리 항아리이다.

  사리를 탑에 보관하기 위해 사용된 이 항아리는 높이 8.3㎝, 아가리 지름 8.0㎝, 밑지름 8.5㎝이다. 현재는 크고 작은 4개의 조각으로 깨졌고, 뚜껑도 없어졌으며 몸통도 완전하지 않은 상태이다. 이와 같은 손상은 도굴 당시에 입은 피해로 보인다. 아가리가 넓고 어깨가 부풀어 있으며, 아랫부분이 좁은 항아리 모양으로 작고 아담하다. 이러한 형식은 법광사 삼층석탑, 취서사 삼층석탑에서 출토된 사리 항아리와 같은 것으로 9세기 중엽 신라에서 유행하던 양식이다. 항아리 표면 전체에 흑칠을 한 점이 특이하다. 어깨부분에는 꽃 구름무늬와 촘촘한 빗금 꽃무늬를 두 칸에 나누어 새겨 둘렀다. 몸통에는 가로, 세로로 칸을 내어 7자 38행의 글자를 해서로 음각하였다.

  명문은 ‘민애대왕추숭복업조석탑기(敏哀大王追崇服業造石塔記)’로 시작되고 끝은 ‘함통사년세재계미(咸通四年歲在癸未)’로 되어있다. 글 중에는 이 항아리가 신라 44대 민애왕(敏哀王, 재위 838∼839)을 위하여 건립된 석탑과 연관이 있으며, 민애왕의 행적들이 꼼꼼하게 적혀있다. 또한 탑을 만든 시기가 통일신라시대 경문왕 3년(863)임을 알 수 있게 하는 내용이 있다. 비록 완형은 아니지만 통일신라 절대편년을 가진 귀중한 사례이다. (문화재청 문화유산정보) - 천남성, Serrate Amur Jackinthepulpit, 보호, 비밀, 현혹, 전화위복 -

* 문화재 소재지: 서울특별시 중구 장충동2가 필동로 1길 30 동국대학교박물관

* 한국문화재재단 문화유산채널:

http://www.k-heritage.tv/hp/hpContents/photo/view.do?categoryType=1&contentsSeq=10167

 

고앵자/ 채널A 보도본부 스마트리포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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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협인석탑(寶篋印石塔. 국보 제209호)

  보협인석탑(寶篋印石塔. 국보 제209호)이란『보협인다라니경』을 그 안에 안치하고 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종래에 볼 수 없던 특이한 모습인데, 중국 오월(吳越)이라는 나라에서 그 유래를 찾을 수 있다. 오월국의 마지막 왕인 충의왕 전홍숙(錢弘淑)은 인도의 아소카왕이 부처의 진신사리를 8만 4천기의 탑에 나누어 봉안하였다는 고사를 본따 금, 동, 철 등의 재료로 소탑 8만 4천기를 만들고 그 속에 일일이『보협인다라니경』을 안치하였다. 이와 유사한 형태의 탑을 보협인탑이라고 하는데, 우리나라에서는 유일한 이 석조 보협인탑이 동국대학교 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원래는 천안시 북면 대평리 탑골계곡의 절터에 무너져 있던 것을 이 곳으로 옮겨 세운 것이다. 절터에는 자연석으로 쌓은 축대와 주춧돌의 일부, 기와조각들이 남아 있어 고려시대의 절터로 추정되나, 이 곳에 대한 기록은 전하지 않는다.

  복원된 탑의 현재 모습은 5개의 돌만 남아 있어 완전한 형태는 아니다. 우리나라 석탑의 일반형식과는 전혀 달라서 기단(基壇)과 탑신(塔身)의 구분이 뚜렷하지 않고 완전한 형태를 짐작하기도 어렵다. 뚜껑을 덮은 듯한 네모난 상자 모양의 돌 2개를 포개어 놓은 후, 그 위로 귀를 세운 머리장식을 얹어놓은 모습이다. 불상(佛像)이 새겨진 육면체 위에 4각형의 받침돌을 놓고, 다시 그 위에 육면체가 놓이는데 4면에 부처님의 전생설화가 새겨있다. 이 탑몸돌 윗면 중앙에는『보협인다라니경』을 안치했던 것으로 보이는 둥근 사리구멍이 남아있다. 당나귀 귀처럼 솟은 맨 윗돌에는 그 안에 석가의 일대기가 상하로 나뉘어 새겨져 있다.

  전면에 조각이 가득한 이 탑은 중국 보협인탑의 영향을 받은 듯 하고 외형도 거의 비슷하다. 고려시대에 건립된 것으로 보여지며, 우리나라에 하나밖에 없는 보협인석탑으로서 매우 귀중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 (문화재청 문화유산정보)

* 문화재 소재지: 서울특별시 중구 장충동2가 필동로 1길 30 동국대학교박물관

 

 자료: 이영일/ 채널A 보도본부 스마트리포터

사진: 고앵자/ 채널A 보도본부 스마트리포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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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치2년명 청화 백자 송죽무늬항아리(국보 제176호)

  홍치2년명 청화 백자 송죽무늬항아리(弘治二年名 白磁 靑華 松竹文壺, 국보 제176호)는 원래 화엄사 각황전(覺皇殿)에서 꽃 공양에 사용되었던 한 쌍의 화병으로서 그 가운데 하나는 파손되어 망실되었고, 이 화병(花甁)도 구연부(口緣部)가 파손되어 수리되었다. 구연의 안쪽에는 `홍치2년(弘治二年)`이란 명문이 있어 1489년(성종20년)에 제작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 청화백자는 높이 48.5㎝, 몸지름 30.0cm, 밑지름 18.0cm의 항아리로 현존하는 조선전기 청화백자 가운데 가장 규모가 크다. 몸체 윗부분이 당당하게 벌어져 있고, 아래 부분은 잘록하게 들어갔다. 조선전기의 전형적인 백자 형태로 그림의 솜씨나 고르게 칠해진 유약으로 보아 왕실에서 사용된 최상품의 도자기임에 틀림없다. 정갈하고 깨끗한 태토(硬質白磁) 위에 노송과 대나무를 코발트로 표면 가득 그렸는데, 그림의 수준으로 보아 왕명에 따라 분원(分院)에 파견된 도화서(圖畵署)의 화원화가(畵員畵家)가 그린 듯하다. 이를 계기로 표면장식이 중국의 장식적 문양 구성에서 정통화풍의 회화로 변화되었다. 이는 이후의 조선청화백자의 조형성을 결정하게 한 주요 요인이 되었다. 기형을 비롯하여 송죽의 배치나 청화의 처리 등은 조선백자의 진수를 보여주는 명품이다.

  지리산 화엄사에 전해져 온 유물인데 두 번이나 도난당했던 것을 찾아 1960년대 동국대박물관에 기증했다. 백자 위에 푸른 코발트 안료로 그림을 그려 넣기 시작한 때는 기록과 현존 사례로 볼 때 세조(世祖) 때인 1450년대부터이다. 따라서 우리나라에서 제작 연대가 명확한 가장 오래된 청화백자로 조선시대 도자 연구에 매우 중요한 자료이다. (문화재청 문화유산정보) - 기린초, 소녀의 사랑, Sedum -

* 문화재 소재지: 서울 중구 필동 동국대학교박물관

 

 고앵자/ 채널A 보도본부 스마트리포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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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조필 파초도(正祖筆 芭蕉圖. 보물 제743호)

  정조필 파초도(正祖筆 芭蕉圖. 보물 제743호)는 조선시대 정조(正祖, 재위: 1776∼1800)가 그린 그림으로, 바위 옆에 서 있는 한 그루의 파초(芭蕉)를 그렸다. 정조는 시와 글에 능하였을 뿐만 아니라 그림에도 뛰어났다고 한다.

  이 그림은 가로 51.3㎝, 세로 84.2㎝ 크기로 단순하면서도 균형적인 배치를 보여준다. 먹색의 짙고 옅은 정도 및 흑백의 대조는 바위의 질감과 파초잎의 변화를 잘 표현하였다. 그림 왼쪽 윗부분에 정조의 호인 ‘홍재’가 찍혀 있다.

  형식에 치우치지 않은 독창적인 묘사가 돋보이는 이 그림은 글씨와 그림 및 학문을 사랑한 정조의 모습과 남종화의 세계를 보여주는 것으로, 국화도(보물 제744호)와 함께 조선 회화사 연구에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 현재, 동국대학교박물관에서 공개 전시 중에 있다.  (문화재청 문화유산정보)

* 문화재 소재지: 서울 중구 필동로 1길 30 동국대학교박물관

 

 고앵자/ 채널A 보도본부 스마트리포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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