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산 통도사 가람각(梁山 通度寺 伽藍閣)

  양산 통도사 가람각(梁山 通度寺 伽藍閣)은 큰 사찰에서만 볼 수 있는데 통도사 가람을 수호하는 신을 모신 공간으로 본래의 불교의 신이 아니기 때문에 천왕문 좌측 옆에 조촐하게 세웠다. 건물 담의 안쪽에 있지만 천왕문보다는 바깥쪽에 위치한다. 이것은 사찰에서 함께 수용하고 있지만 진정한 사찰의 부분은 아니기 때문에 밖으로 내 놓은 듯 느껴지는 것이다.

   가람이란 인도어로 Sangaram라고 하며, 한문으로 승가람마(僧伽藍摩)라고 표기하고 승려들이 사는 사찰을 의미한다. 가람신(伽藍神)은 부처와 상관없이 가람을 지켜주는 신이 모셔져있는데, 절에 함께 있다는 것은 산신각(山神閣)이나 칠성각(七星閣)처럼 불교가 한반도에 들어오면서 토속신앙과 융화를 했다는 증거이기도하다. 대체로 가람신은 마을의 성황당(城隍堂)과 유사한 역할을 한다. 그래서 국사당(局司堂), 성황각(城隍閣) 이라고도 한다. 우리나라에는 황룡사의 호법룡(護法龍)과 통도사의 독룔(毒龍)이 문헌상에 나타난 최초의 가람신들이다. 토속신앙의 측면에서 보면 가람신이 절의 진짜 주인이다.

  우리나라에는 예부터 땅을 신성시하여, 땅이 사람들의 삶의 터전이었다. 따라서 토지신(土地神)과 관련된 최초의 기록은 삼국사기에 고구려 고국양왕(故國壤王, 요동과 백제를 정벌하여 국토를 넓혔으며, 불교를 널리펴서 문화를 발전시키고 국사(國社)를 세우고 종묘(宗廟)를 수리하는 등 국가 체제 확립에 크게 이바지한 고구려 제18대 고국양왕(故國壤王) 때(392년) ‘국사(國社), 즉 사직을 세우고 종묘를 수리하기도 하였다.’라고 나온다. 사직(社稷)의 社는 토지신(土地神)을, 稷은 곡물신(穀物神)을 의미한다. 예부터 하늘과 땅 그리고 산은 신앙의 대상 이였으며 그것은 민간인이나 국가적 차원에서 모두 숭배의 대상이 되었다.

  사직에 대한 제사는 조선 말기까지 존속되어온 뿌리 깊은 신앙이었다. 왕이 즉위하면 맨 먼저 종묘사직(宗廟社稷)에 예를 올렸다고 한다. 통도사 본래의 건물은 숙종32년(1706)에 세웠으나, 현재 건물은 최근에 세운 것이다. - 양귀비과 매미꽃 한국특산식물 Coreanomecon hylomeconoides  -

* 문화재 소재지: 경남 양산시하북면 통도사로 108, 통도사 (지산리)

 

Hch 이영일/ 문화재청 헤리티지채널 사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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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산 통도사 만세루(梁山 通度寺 萬歲樓.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193호)

  양산 통도사 만세루(梁山 通度寺 萬歲樓.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193호)는 법회나 법당의 주요행사를 열 때 사용하던 누각이다. 부처의 설법이 만세를 누린다는 뜻으로 만세루라 이름을 지었다. 세운 시기는 알 수 없으나 조선 인조 22년(1644)에 영숙대사(靈淑大師)가 보수했다고 알려져 있다.

  앞면 5칸·옆면 3칸으로 기둥의 높이가 길고 기둥 사이가 넓어 대규모의 건물로 느껴진다. 가운데칸 양쪽 기둥 위에 밖으로는 용머리를, 그 안쪽으로는 용꼬리를 새겨 출입구를 강조했다. 내부 역시, 기둥 위와 그 사이에 꽃모양 받침의 장식이 있어 위엄이 느껴진다. 원래 누각은 땅에서 높이 들려 있는 것이 일반적이나 이 건물은 돌기단 위에 세워져 있다. 그 이유는 건물이 높으면 많은 승려나 신도가 오르내리는데 불편함이 있기 때문이다. 이 건물은 원래 벽이 없고 기둥만 있던 것으로 보인다. 내부 바닥이 우물 정(井)자 모양의 우물마루라는 점을 빼고는 누의 모습을 찾아볼 수 없다.

  현재의 건물은 누각의 형태는 아니지만 누(樓)라고 명명한 것으로 미루어 보아 처음 건립 당시에는 누각 형식의 건물이었던 것으로 추정되며 전체적 짜임의 구조로 보아 조선 후기의 건축양식이다. (문화재청 문화유산 정보)

* 문화재 소재지: 경남 양산시 하북면 통도사 

 

Hch 이영일/ 문화재청 헤리티지채널 사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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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산 통도사 극락보전(梁山 通度寺 極樂寶殿.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194호)

  양산 통도사 극락보전(梁山 通度寺 極樂寶殿.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194호)은 극락세계에 머물며 중생을 위해 자비를 베푸는 아미타불을 주불로 모신 전각으로 1369년(공민왕 18)에 성곡대사(星谷大師)가 창건하였고, 1801년(순조 1) 지홍(智鴻)스님이 고쳐 지은 후 20세기 초에 다시 수리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이 건물은 일반적인 건물과 달리 측면의 어칸(御間)에 출입문을 두는 점이 특징이다.

  극락보전은 앞면 3칸·옆면 3칸으로 지붕 옆모습이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으로 되어 있다. 지붕을 받치기 위해 장식하여 만든 공포는 기둥 위와 기둥 사이에도 있는 다포계 양식의 건물이다. 비교적 규모가 작지만 짜임새와 외관이 뛰어난 건물로 18세기 후반의 양식을 나타내고 내부에는 아미타불상을 모시고 있으며 벽은 모두 불화와 산수화로 그려져 있다.

  건물의 뒤쪽 외벽에 험한 바다를 건너 극락세계로 향하는 모습의 반야용선도(般若龍船圖)가 그려져 있어 극락전의 건축세계를 잘 보여준다. (문화재청 문화유산 정보)

* 문화재 소재지: 경남 양산시 하북면 통도사로 108, 통도사 (지산리)

* 문화재청 헤리티지채널:

 

Hch 이영일/ 문화재청 헤리티지채널 사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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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도사 관음전과 통도사 석등(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251호와 제70호)

  통도사 관음전(痛度寺 觀音殿.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251호)은 통도사의 중로전(中爐殿)에 있는 3개의 법당 중 하나로 가장 앞쪽에서 남향하고 있으며 그 뒤로 용화전과 대적광전이 있다. 조선 영조 원년(1749) 용암대사가 지었고 그 뒤 여러차례 보수를 해서 오늘에 이르고 있다.

  앞면 3칸·옆면 3칸의 규모로 지붕은 옆모습이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이다.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한 공포는 기둥과 기둥 사이에도 있는 다포양식이다. 내부는 관세음보살상을 모셨으며 벽에는 보타락가산(補陀洛迦山)에 있는 관음보살과 남순동자(南巡童子), 32응신(應身)을 상징하는 여러 형태의 관음상이 표현되어 있는 석가모니의 일생을 그린 벽화가 있다. 또한 따로 기둥을 세우지 않아 공간을 넓게 꾸몄다. 관음전은 낙가전(洛迦殿), 원통전(圓通殿)이라고도 하는데, 통도사 관음전도 1701년 이전에는 낙가보전(洛迦寶殿)으로 불렀다. 전체적으로 조선 후기의 건축양식을 잘 갖추고 있는 문화재이다.

  통도사 석등(通度寺 石燈.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70호)은 우리나라 3보사찰(三寶寺刹) 중 하나인 선덕여왕 15년(646)에 자장율사가 지은 통도사 관음전 앞에 놓여 있는 석등이다.

등불을 밝혀두는 화사석(火舍石)을 중심으로, 아래에는 8각의 받침돌을 3단으로 쌓고, 위로는 지붕돌과 머리장식을 얹었다. 아래받침돌의 옆면에는 안상(眼象)을 얕게 새겼고, 윗면에는 엎어놓은 연꽃무늬를 조각했다. 가운데기둥은 중앙에 3줄의 테를 둘렀다. 윗받침돌에는 위로 솟은 연꽃무늬를 장식하였다. 4각의 화사석은 각 면에 네모난 창을 크게 뚫어 불빛이 퍼져나오도록 하였다. 지붕돌은 귀퉁이마다 꽃장식을 달았다. 꼭대기에는 노반(露盤:머리장식받침)과 보주(寶珠:꽃봉오리 모양의 장식)가 놓여 머리장식을 하고 있다.

  통일신라의 석등양식을 따르고 있으나 꽃장식이 세밀하지 못한 점으로 보아 고려시대의 작품으로 짐작된다. (문화재청 문화유산 정보)

* 문화재 소재지: 경남 양산시 하북면 통도사로 108 (지산리)

* 문화재청 헤리티지채널:

 

이영일/ 채널A 보도본부 스마트리포터 press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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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산 통도사 영산전의 보물. 팔상도와 벽화

  통도사영산전팔상도(通度寺靈山殿八相圖. 보물 제1041호)는 부처가 태어나 도를 닦고 열반에 이르기까지의 일생을 8부분으로 나누어 그린 팔상도이다. 가로 151㎝, 세로 233.5㎝의 비단에 채색하여 그린 이 팔상도는 모두 8폭으로 액자에 끼워 벽에 붙여 놓아 보관하고 있다.

  이 팔상도는 석가모니가 도솔천에서 코끼리를 타고 사바세계로 내려오는 장면인 도솔래의상, 석가모니가 룸비니공원에서 마야부인의 옆구리를 통해 출생하는 모습을 그린 비람강생상, 태자가 성문 밖의 중생들의 고통을 관찰하고 인생무상을 느끼는 장면의 사문유관상, 부모의 반대를 무릅쓰고 출가하는 장면을 묘사한 유성출가상, 설산(雪山)에서 신선들과 수행하는 모습을 그린 설산수도상, 태자가 수행 중 온갖 유혹과 위협을 물리치는 수하항마상, 부처가 녹야원에서 최초로 설법하는 모습을 나타낸 녹원전법상, 부처가 쌍림수아래에서 죽음에 이르는 모습을 표현한 쌍림열반상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각 폭은 거의 빈공간을 남기지 않고 건물과 나무, 구름 등의 배경으로 적절하게 구도를 나누어 해당되는 장면을 잘 표현하였다. 또한 각 묘사된 장면의 내용을 구체적으로 설명하는 글을 써 놓아 이해를 돕고 있다. 산악이나 바위는 뛰어난 필치로 처리되었고 인물의 묘사도 생동감이 넘친다.

  이 그림은 조선 영조 51년(1775)에 여러 화가에 의해 그려졌는데, 보존상태가 양호하고 제작연대도 확실하여 조선시대 불교 회화연구에 귀중한 자료이다.

  양산 통도사 영산전 벽화(梁山 通度寺 靈山殿 壁畵. 보물 제1711호)는 벽체와 포벽은 물론 내목도리 윗벽과 대량ㆍ창방 등 내ㆍ외부 전체에 고루 그려져 있으며, 그 내용 또한 매우 다양하게 구성되어 조선후기 사찰벽화의 백미라 할 수 있다.

  외벽에는 총 17점의 벽화가 남아 있으나 현재 훼손이 심한 편해 윤곽이 뚜렷하게 드러나지는 않는다. 그러나 내벽에서 가장 많은 내용을 담고 있는 것은 총 48면으로 이루어진 『석씨원류응화사적』 벽화이다. 이들 48점은 내부 운룡도를 제외한 동벽과 남ㆍ북 벽의 포벽 및 내목도리 윗벽, 견보탑품도(見寶塔品圖)협시청중도(脇侍聽衆圖) 2점을 제외한 서벽의 일부에 묘사되었다. 동벽의 경우 불상과 후불도, 운룡도가 있는 중심벽면을 제외한 좌우 4면의 공간에 묘사되었다. 남벽과 북벽의 경우에는 포작의 수에 따라 만들어진 포벽의 상ㆍ하단에 그려져 있는데 남벽에는 상 12점, 하 12점, 북벽에는 상 9점, 하 9점으로 남ㆍ북 벽면 모두 총 42점의 벽화가 있다. 서벽에는 『묘법연화경』 「견보탑품」의 내용이 담긴 중심벽면과 권속들을 그린 좌우 하단의 벽면을 제외한 상단의 장방형 벽면 2면에 『석씨원류응화사적』의 이야기가 그려져 있다. 주제별로는 내목도리 윗벽의 대부분이 『석씨원류응화사적』의 1ㆍ2권에 나오는 석가모니의 행적들이 그려졌으며, 동ㆍ서측의 하단면을 제외한 남ㆍ북측의 하단에는 3권에 나오는 고승들의 사적들을 묘사하였다. 우선 <법화경 견보탑품>벽화는 석가여래가 영취산에서 설법할 때 다보여래의 탑이 땅에서 솟아나 설법을 찬탄하니 그 탑안으로 석가여래가 들어가 다보여래와 같이 앉았다는 『묘법연화경』제11품 「견보탑품」의 내용을 장엄하게 묘사한 국내 유일의 <견보탑품>벽화이다. 특히 세밀한 인물표현, 유려한 필선, 안정된 구도, 부드럽고 장엄한 색조 등에서도 뛰어난 화격을 보여준다. <석씨원류응화사적벽화>는 영산전 내부 동서남북의 상벽과 포벽에 그려졌다. 상벽의 직사각형 화면에 그려진 25장면의 벽화는 모두 석가모니불과 관련된 것들이고, 이에 대응되게 그려진 하단의 凸자형 포벽에 그려진 벽화는 주로 고승들의 행적과 관련된 것들이다. 이러한 수직적인 배치는 붓다와 제자간의 위계를 고려한 배치로 여겨진다. 필선, 인물의 묘사, 채색 등 화풍에서 <견보탑품도>와 동일시기에 그려진 것으로 생각된다.

  영산전 내벽에 그려진 <법화경 견보탑품>벽화는 국내유일의 견보탑품 벽화라는데 그 가치를 높게 평가할 수 있다. <석씨원류응화사적> 벽화 역시 조선후기 팔상도에 포함된 <석씨원류응화사적> 목판의 설화내용 보다 비교적 풍부한 내용을 담고 있어 <팔상도>의 부족한 도해 내용을 보완해 주고 있다는 데서 큰 의의가 있다. 또한 화면마다 화제를 남기고 있어 벽화의 도상 이해 제고에 자료적 가치를 더 해준다. 이들 내부 벽화들은『영산전천왕문양중창겸단확기문(靈山殿天王門兩重創兼丹雘記文)』의 현판을 토대로 살펴보면, 1715년에 총안(聰眼) 외 14명의 화사들이 그린 것으로 보인다. 1792년에 영산전의 단청을 중수한 기록이 남아있으나 내부 벽화들에서는 개채나 보수 흔적을 살필 수 없고, 훼손 시 떨어져 나온 벽화 층을 살펴봐도 동일한 1개의 안료층을 보이기 때문에 1714년부터 1716년까지 3년간 새로 영산전 건물을 중창할 당시에 조성한 것으로 판단된다.

  영산전 벽화는 화풍에서도 밝고 부드러운 중간 색조를 사용한 점이나 단아하고 세밀한 인물묘사, 끊김 없이 처리한 유려한 필선, 안정된 구도 등에서 17세기 초반의 불화들과 비교되고 분명한 소의경전과 예술적 작품성, 종교적 감수성, 시대성 등을 두루 갖춘 18세기 초 벽화의 기준자료이자 이 시기 벽화를 대표할 수 있는 작품이다.

  양산 통도사 영산전(梁山 通度寺 靈山殿.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203호)은 앞면 3칸·옆면 3칸으로 지붕 옆모습이 사람 인(人)자 모양인 맞배지붕으로 되어 있다. 지붕을 받치기 위하여 장식하여 만든 공포는 기둥 위와 기둥 사이에도 있는 다포계 양식이다. 내부에는 석가모니불를 모시고 있으며 그 주변에 부처의 일생을 그린 팔상도가 있다. 이것은 영조 51년(1775)에 그려졌는데 당시의 불화화풍을 이해하는데 귀중한 그림이다. 또한 영조 10년(1734)에 그려진 벽화도 있는데 그 중 18세기 후반의 것으로 보이는 ‘법화경 견보탑풍변상도’는 국내에서 유일한 것으로 기교가 특이하고 우수한 작품으로 당시의 불화화풍을 이해하는데 귀중한 벽화와 팔상도를 가진 소중한 문화재이다.

  통도사는 우리나라 3대사찰 중 하나로 경내는 크게 상로전, 중로전, 하로전의 3영역으로 나눌 수 있다. 영산전은 하로전에서 가장 중심이 되는 건물로 좌우에 극락보전과 약사전이 배치되어 있다. 세워진 시기는 알 수 없으나 조선 숙종 30년(1704) 송곡선사가 보수했다고 전해진다. (문화재청 문화유산 정보) - 어치 Eurasian jay -

* 문화재 소재지: 경남 양산시 하북면 통도사로 108 (지산리)

 

Hch 이영일/ 문화재청 헤리티지채널 사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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