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창 선운사 도솔암 나한전(高敞 禪雲寺 羅漢殿. 전라북도 문화재자료 제110호)

  고창 선운사 도솔암 나한전(高敞 禪雲寺 羅漢殿. 전라북도 문화재자료 제110호)은선운사의 산내암자인 도솔암에 있는 법당이다.

  정면3칸 측면1칸에 맞배지붕으로 되어 있으며, 현존하는 건물은 건축수법으로 보아 조선 말기에 세워진 것으로 보인다. 나한전 내부에는 흙으로 빚은 석가모니불을 중심으로 가섭과 아난이 협시하였고, 1910년 용문암에서 옮겨온 16나한상을 모시고 있다.

  도솔암은 선운사의 산내암자로서 대웅전 서쪽 150m정도 떨어진 곳에 있으며, 원래는 여섯 도솔암이 있었으나 현재는 상하 2개의 도솔암만 남아 있다. 전하는 바에 따르면 조선시대 도솔암 용문굴에 이무기가 살면서 주민들을 괴롭혔는데, 이를 쫓아내기 위해 인도에서 나한상(羅漢像)을 모셔와 이곳에 안치하자 이무기가 사라졌다고 한다. 그리하여 이무기가 다시 나타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 이무기가 뚫고 간 바위 위에 나한전을 건립하였다고 하는 전설이 있다. (문화재청 문화유산 정보)

* 문화재 소재지: 전북 고창군 아산면 삼인리 616

* 문화재청 헤리티지채널:

http://www.heritagechannel.tv/hp/hpContents/photo/storyView.do?contentsSeq=8272&categoryType=4

 

Hch 이영일/ 문화재청 헤리티지채널 사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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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남산의 춘설

  봄이 오나 했더니 어제밤과 오늘 새벽 사이 잔설로 눈꽃세상이 된 서울 남산을 영상으로 담았습니다.

* 채널A 스마트리포터 갤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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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hA 고앵자/채널A 보도본부 스마트리포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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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창 선운사 동불암지 마애여래좌상(高敞 禪雲寺 東佛庵址 磨崖如來坐像. 보물 제1200호)

  고창 선운사 동불암지 마애여래좌상(高敞 禪雲寺 東佛庵址 磨崖如來坐像. 보물 제1200호)은 선운사 도솔암을 지나 도솔봉으로 오르는 길 옆 바위 절벽에 새겨진 마애여래좌상이다.

  마애여래좌상 머리 주위를 깊이 파고 머리 부분에서 아래로 내려가며 점차 두껍게 새겼고 평판적이고 네모진 얼굴은 다소 딱딱하지만 눈꼬리가 치켜 올라간 가느다란 눈과 우뚝 솟은 코, 일자로 도드라지게 나타낸 입술 등으로 얼굴 전체에 파격적인 미소를 띠고 있다. 목에는 3개의 가느다란 주름이 있기는 하지만 상체와 머리가 거의 맞붙어서, 상체 위에 머리를 올려놓은 것처럼 보인다. 상체는 사각형인데 가슴이 넓고 평판적이어서 양감이 없는 형태를 보여주고 있다. 옷은 양 어깨를 감싸고 있으며 옷주름은 선을 이용해 형식적으로 표현하였고, 평판적인 가슴 아래로는 치마의 띠매듭이 선명하게 가로질러 새겨져 있다. 무릎 위에 나란히 놓은 두 손은 체구에 비해서 유난히 큼직하고 투박하여 사실성이 떨어지는데 이는 월출산에 있는 마애여래좌상과 비슷한 고려 특유의 마애불 양식이다. 층단을 이루어 비교적 높게 되어 있는 대좌는 상대에 옷자락이 늘어져 덮여 있으며, 하대에는 아래를 향하고 있는 연꽃무늬를 표현하였다.

  이 불상은 고려 초기의 거대한 마애불 계통 불상으로 크게 주목받고 있으며, 특히 가슴의 복장에서 동학농민전쟁 때의 비밀기록을 발견한 사실로 인해 더욱 주목받고 있다. (문화재청 문화유산 정보)

* 문화재 소재지: 전북 고창군 아산면 도솔길 294, 선운사 (삼인리)

* 문화재청 헤리티지채널:

http://www.heritagechannel.tv/hp/hpContents/photo/storyView.do?contentsSeq=8270&categoryType=4

 

Hch 이영일/ 문화재청 헤리티지채널 사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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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남 하사창동 철조석가여래좌상(보물 제332호)

  하남 하사창동 철조석가여래좌상(河南 下司倉洞 鐵造釋迦如來坐像. 보물 제332호)은 경기도 광주군 동부면 하사창리 절터에서 발견된 고려시대의 철불좌상이다.

  얼굴은 둥글지만 치켜 올라간 눈, 꼭 다문 작은 입, 날카로운 코의 표현에서 관념적으로 변해가는 고려시대 불상의 특징을 엿볼 수 있다. 목에는 3줄의 주름인 삼도(三道)가 뚜렷하게 표시되어 있으나 가슴까지 내려와 목의 한계를 명확히 구분짓지 않고 있다. 오른쪽 어깨를 드러내고 왼쪽 어깨만 감싸고 있는 옷에는 간결한 옷주름이 표현되었다.

  수인(手印)은 불상의 손가짐을 말하며 그 중 보살에서 여래가 되는 정각의 순간에 악마의 유혹을 물리치고 지신(地神)의 확인을 받는 것을 표현한 항마촉지인(降魔觸地印)이다. 즉 석가가 보리수 밑에서 성도하려고 할 즈음에 이를 방해하기 위하여 나타난 모든 악마를 굴복시키는 모습으로 오른손을 오른발 무릎 아래로 내려 다섯 손가락 또는 검지가 땅을 가리키는 형태를 취한다. 우리나라 불상에서 가장 많은 수인 중의 하나로 원래는 석가여래만이 짓는 수인이지만 아미타여래, 약사여래 등도 이러한 수인을 하기도 한다.

  당당한 어깨와 두드러진 가슴은 석굴암 본존불의 양식을 이어 받은 것이며, 날카로운 얼굴 인상과 간결한 옷주름의 표현은 고려 초기 불상의 전형적인 표현 기법이다.

  통일신라 불상양식을 충실히 계승한 고려 초기의 전형적인 작품이다. (문화재청 문화유산 정보) - 해란초, Japanese Toadflax, 달성 - 

* 문화재 소재지: 서울 용산구 서빙고로 137, 국립중앙박물관 (용산동6가)

* 문화재청 헤리티지채널:

http://www.heritagechannel.tv/hp/hpContents/photo/storyView.do?contentsSeq=8269&categoryType=4

 

Hch 이영일/ 문화재청 헤리티지채널 사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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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유산 조선왕릉 – 남양주 사릉(南楊州 思陵, 사적 제209호)

  세계유산 조선왕릉 – 남양주 사릉(南楊州 思陵, 사적 제209호)은 조선 제6대 단종의 부인 정순왕후(定順王后, 1440∼1521) 송씨의 단릉이다. 단종이 수양대군에게 왕위를 물려준 뒤 그에 의해 죽임을 당하자 왕후는 왕실을 떠나 작은 집을 지어 평생 흰옷만 입으며 고기와 생선은 먹지 않았다고 한다. 왕후가 후사(後嗣) 없이 승하(昇遐)함에 부왕(夫王) 단종(端宗)의 누이 경혜공주(敬惠公主)의 시가(媤家)인 해주정씨가(鄭氏家)의 묘역에 장례하였으며, 봉사(奉祀)도 정씨가에서 하여왔다. 숙종 24년(1698)에 단종이 왕으로 복위 되면서 정순왕후라 봉해졌고 왕후의 무덤을 사릉이라 했다.

  사릉(思陵)의 구성은 다른 능에 비하여 단출하다. 능침의 규모는 매우 작고, 병풍석 난간석을 설치하지 않았으며, 문석인과 석마만이 자리 잡고, 양석과 호석도 한 쌍 씩으로 간소화되어 있고 무덤 앞에 상석과 둘레돌이 있으며 그 밖으로 3면을 낮은 담으로 쌓았다. 단종의 무덤이 장릉으로 봉해졌을 때에도 병풍석과 난간석을 세우지 않고, 동물모양의 돌만 세웠는데 이는 왕릉으로 봉해진 것에 대한 예에 따른 것이다. 사각지붕 모양의 장명등은 장릉과 같은 것으로 숙종대의 양식이 잘 나타나 있다.

  사릉 관람 포인트는 재실 뒤편에 100년이 넘는 청실 배나무가 자라고 있으며, 능 주위에 소나무림이 우거져있고, 왕릉의 구성물(홍살문, 참도, 정자각, 능침 등)을 한눈에 볼 수 있다. 제향 후 축문을 태우는 함인 예감의 뚜껑은 나무로 만들어 지는 것이 보통이나 사릉은 뚜껑이 석재로 만들어져 현재까지 남아 있다.

  정순왕후(定順王后) 송씨는 판돈녕부사 송현수의 딸로, 1440년(세종 22)에 태어났다. 1453년(단종 1) 14세의 나이에 타고난 성품과 검소의 미덕을 인정받아 간택되었고, 그 다음해에 어린 나이로 왕비에 책봉되었다. 그러나 당시는 단종의 숙부였던 수양대군이 영의정의 자리에 앉아 조정을 좌지우지하던 때였으므로, 단종과 정순왕후 부부는 스스로 아무런 일도 결정할 수 없었다. 결국 1455년(단종 3) 6월 11일 단종은 수양대군에게 왕위를 물려주고 상왕이 되어 수강궁에 머무르게 되었다. 그로부터 2년 후인 1457년(세조 3) 사육신의 주동으로 단종의 복위를 모의하던 사건이 발각되자, 단종은 노산군으로 강봉되어 영월에 유배되고 (청계천 永渡橋에서 단종과 정순왕후가 영영 이별한 다리), 죽임을 당한다. 정순왕후는 부인으로 강봉되었다. 궁궐을 나온 정순왕후는 동대문 밖의 동망봉(東望峰) 기슭에 초가집을 짓고 시녀들이 해오는 동냥으로 끼니를 잇다가, 염색업을 하며 평생을 살았다. 1521년(중종 16) 6월 4일을 일기로 장장 7대 왕대에 걸친 삶을 마감한 이 때, 춘추 82세였다. 사릉 제향일은 매년 양력 5월 20일이다. (문화재청 문화유산 정보) - 큰점박이부전나비 -

* 문화재 소재지: 경기 남양주시 진건읍 사릉로 180 (사능리)

* 문화재청 헤리티지채널:

http://www.heritagechannel.tv/hp/hpContents/photo/storyView.do?contentsSeq=8268&categoryType=4

 

Hch 이영일/ 문화재청 헤리티지채널 사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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