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개운사 목조아미타여래좌상 및 발원문(보물 제1649호)

  서울 개운사 목조아미타여래좌상 및 발원문 (서울 開運寺 木造阿彌陀如來坐像 및 發願文, 보물 제1649호)은 단엄한 상호, 세련되고 뛰어난 조각기법, 장중하면서도 균형감 있는 조형감각, 긴장감 넘치는 선묘 등이 잘 어우러진 매우 완성도 높은 고려후기를 대표하는 불상으로 평가되고 있다.

  특히 이 불상은 1280년에 중수된 서산 개심사 목조아미타여래좌상(瑞山 開心寺 木造阿彌陀如來坐像)과 더불어 현재까지 발견된 고려후기 불상 중에서 1274년이라는 가장 오래된 중수원문을 남기고 있기 때문에 불상은 적어도 13세기 전반에는 조성되었을 가능성이 높으며, 13세기 전반에 제작된 불상이 매우 드문 현실에서 이 불상은 더욱더 중요한 가치를 지닌 것으로 평가되었다. 중수 발원문은 아미타불좌상 개금 발원문인 중간대사 원문(中幹大師 願文) 1장, 금불복장조성 발원문인 최춘 원문(崔椿 願文) 1장, 아미타불을 개금하면서 작성한 10대원을 담은 발원문인 천정혜흥 원문(天正惠興 願文) 1장 등 총 3장이다.

  서울 개운사 목조아미타여래좌상은 1m가 넘는 큰 규모에 아산 축봉사라는 원래의 봉안 장소 및 1274년의 하한연대, 우수한 조형성은 물론 현재의 보존 상태 또한 매우 좋은 편이다. (문화재청 문화유산정보)

* 아미타불 [Amitabha, 阿彌陀佛]: 정토종 근본 경전의 하나인 〈무량수경(無量壽經) Sukhāvatῑ-vyūha-sūtra〉에 따르면, 오랜 옛날 법장이라는 비구가 48개의 서원을 세웠는데, 그 가운데 18번째 서원에서 자신이 부처가 되면 그를 믿고 그의 이름을 부르는 사람들이 모두 그가 건설한 정토에 태어나서 열반에 이를 때까지 지복을 누리며 살게 하겠다고 맹세했다. 법장은 자신의 서원을 모두 이룬 뒤 아미타불로서 ‘극락’(極樂 Sukhāvatῑ)이라는 서방 정토를 주재하게 되었다. 무엇보다도 믿음을 강조하는 아미타불 신앙은 650년경부터 중국에서 널리 유행하기 시작했고, 곧 한국과 일본으로 전파되었다. 한국에는 신라 선덕여왕 때 자장(慈藏)이 〈아미타경소 阿彌陀經疏〉를 저술하면서 정토신앙이 시작되었으며, 이후 특정 종파에 한정되지 않고 불교신앙의 일반적인 형태로 정착되었다.

* 문화재 소재지: 서울 성북구 안암동5가 157 개운사, 종로구 우정국로55 불교중앙박물관

* 한국문화재재단 문화유산채널:

http://www.k-heritage.tv/hp/hpContents/photo/storyView.do?categoryType=4&contentsSeq=10141

 

이영일/ 채널A 보도제작부 스마트리포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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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남대총 북분 금제 고배(皇南大塚北墳 金製高杯, 보물 제626호)

  황남대총 북분 금제 고배(皇南大塚北墳 金製高杯, 보물 제626호)는 경주시 황남동 미추왕릉 지구에 있는 삼국시대 신라 무덤인 황남대총에서 발견된 굽다리 접시(고배)이다. 황남대총은 2개의 봉분이 남·북으로 표주박 모양으로 붙어 있다.

  고배 높이 10㎝, 주둥이 지름 10㎝, 무게 169g의 금제 굽다리 접시는 북쪽 무덤에서 발견되었다. 토기 굽다리 접시의 형식을 따라 반구형 몸통 밑에 나팔형 굽다리를 붙인 전형적인 양식이지만, 장식이 가해지고, 금으로 만들었다는 점에서 실용품이라기보다는 껴묻거리(부장품)로 제작된 듯하다. 아가리 부분은 밖으로 말아 붙였고, 나뭇잎 모양 장식 7개를 2개의 구멍을 통하여 금실로 꿰어 달았다. 굽다리는 작은 편으로 상·하 2단으로 되어 있는데, 각각 사각형 모양의 창을 어긋나게 뚫어서 장식하는 신라 굽다리 접시의 형식을 하고 있다.

  고배는 찌그러진 부분이 많으나 발견된 경우가 드문 금제 굽다리 접시이다. (문화재청 문화유산정보)

* 문화재 소재지: 경북 경주시 일정로 186, 국립경주박물관 (인왕동,국립경주박물관)

* 한국문화재재단 문화유산채널:

http://www.k-heritage.tv/hp/hpContents/photo/view.do?categoryType=1&contentsSeq=10132

 

이영일/ 한국문화재재단 문화유산채널 사진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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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정 척결에 암행어사 박문수 같은 양심이 필요한 사회

  암행어사 박문수 초상화(暗行御史 朴文秀 肖像畵)는 조선시대의 문신. 호는 기은, 1723년 문과에 급제하여 사관이 되었고, 병조정랑 에 올랐다가 노론의 집권으로 삭직되었다. 1727년에 사서로 다시 등용되었고, 영남 지방의 암행어사로 나가 부정한 관리들을 적발하여 백성들의 억울함을 풀어 주었던 박문수의 초상화다. 군정과 세정에 밝아 당시 국정의 개혁 논의에 중요한 몫을 다하였다.

  박문수의 설화: 그가 암행어사로 활약했던 행적이 많이 전해지고 있다. 저서에 ‘탁지정례’, ‘국혼정례’ 등이 있다. 암행어사란 임금이 지방 관리들의 행동과 백성들의 생활을 알아보기 위해 몰래 보낸 관리인데, 대개 정직한 선비를 암행어사로 삼았다. 박문수는 조선 영조 때의 암행어사로 암행을 나가서 많은 이야기를 남겼다. 이인좌의 난을 해결하는데 전 공을 세우기도 했다. 박문수는 암행어사로 활약하면서 온 나라 백성들의 어려움을 직접 보고 가난한 백성들의 구제에 힘썼으며, 거지차림으로 나타나 ‘암행어사 출두야 !’를 외쳐 나쁜 지방 관리를 벌벌 떨게 만들었다.

  요즘 우리나라의 ‘- 피아’ 척결에서 희망의 밝은 미래로 나갈 진정한 감사와 감찰을 할 수 있는 정부조직과 담당 공무원의 양심이 절실히 필요한 때가 아닌가 한다.

* 문화재 소재지: 서울 용산구 서빙고로 137, 국립중앙박물관 (용산동5가)

* 한국문화재재단 문화유산채널:

http://www.k-heritage.tv/hp/hpContents/photo/storyView.do?categoryType=4&contentsSeq=10121

 

사진: 고앵자/ 채널A 보도제작부 스마트리포터

자료: 이영일/ 한국문화재단 문화유산채널 사진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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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삼양동 금동관음보살입상(서울 三陽洞 金銅觀音菩薩立像)

  서울 삼양동 금동관음보살입상(서울 三陽洞 金銅觀音菩薩立像, 국보 제127호)은 1967년 서울시 도봉구 삼양동에서 발견된 높이 20.7㎝의 보살상으로, 현재는 국립중앙박물관에서 관리하고 있다. 발목 윗부분에 금이 가고 왼쪽 옷자락이 약간 떨어져 나간 상태이다.

  보살상 머리에는 삼각형의 관(冠)을 쓰고 있고, 양감 있는 얼굴은 원만해 보이며, 입가에는 엷은 미소를 짓고 있다. 상체는 어깨가 좁아 위축된 모양이며, 배를 앞으로 내밀고 있어 옆에서 보면 활처럼 휘어진 모습이다. 배와 무릎 근처에 이중으로 걸쳐져 있는 두꺼운 옷은 U자형으로 늘어져 있다. 치마는 두껍게 입어서 다리의 윤곽이 뚜렷하지 않으며, 옷주름은 몇 가닥의 선으로 단순화시켰다. 오른손은 허리 근처에서 정병(淨甁)을 들고 있으며, 왼손은 위로 올려 엄지와 검지를 V자형으로 곧게 펴고 있는 특이한 모습이다. 보살이 서 있는 대좌(臺座)에는 엎어 놓은 연꽃무늬를 새겨 놓았으며, 꽃잎은 그 끝이 뾰족하여 보살상의 부드러움과 대비된다.

  이 보살상은 삼각형 모양의 관에 작은 부처 하나를 새기고 있는 점과 오른손에 정병을 들고 있는 점으로 볼 때 관음보살이 분명하며, 살찐 얼굴과 신체, U자형으로 늘어진 옷 등으로 보아 만든 시기는 7세기 전반으로 추정된다. 따라서 삼국시대 후기에 크게 유행했던 관음신앙의 단면을 보여주는 귀중한 자료라 하겠다. (문화재청 문화유산정보)

* 문화재 소재지: 서울 용산구 서빙고로 137, 국립중앙박물관 (용산동5가) 

* 한국문화재단 문화유산채널:

http://www.k-heritage.tv/hp/hpContents/photo/storyView.do?categoryType=4&contentsSeq=10112

 

사진: 고앵자/ 채널A 보도제작부 스마트리포터

자료: 이영일/ 한국문화재재단 문화유산채널 사진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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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원 신윤복의 여속화첩(蕙園 申潤福 女俗圖帖)

  국립중앙박물관이 소장한 혜원 신윤복(蕙園 申潤福, 1758-1813 이후)의 여인들에 모습을 담은 화첩(女俗圖帖) 중 ‘거문고 줄 고르기(彈琴)’와 ‘저잣길’ 풍속화 두 편을 감사하여 보자.

  ‘거문고 줄 고르기(彈琴)’는 조선 시대 여인의 아름다움을 잘 나타낸 걸작으로 왼쪽 여인이 거문고의 뒤편 위쪽에 있는 줄감개를 돌리며 조율 하고 있다.

‘저잣길’은 머리 위에 생선 함지박을 이고 채소가 든 망태기를 옆구리에 낀 채 이야기 하고 있는 여인을 볼 수 있으며, 이런 장면은 신윤복의 풍속화에서는 보기 드문 서민의 질박한 생활상이라고 할 수 있다.

  신윤복은 화원을 지낸 신숙주의 방계 후손 신한평(申漢枰1726-1809년 이후)의 아들로서 김홍도와 더불어 조선 후기 풍속화를 이끌어간 대가였다. 회화를 관장하는 국가기관인 도화서(圖畵署)의 화원(畵員)으로 첨절제사(僉節制使)의 벼슬을 하다, 속화(俗畵)를 즐겨 그려 도화서(圖畵署)에서 쫓겨난 것으로 전해지는 것 이외는 생애가 거의 알려져 있지 않고 있다 그는 주로 기생과 한량이 펼치는 풍류(風流)와 애정행락(愛情行樂)을 대담하게 그려 시대상의 단면을 반영하고 있다.

  인물 모습은 부드러운 필치로 그린 다음 청록, 빨강, 노란색 등으로 화려하게 채색하였다. 신윤복은 김홍도와는 달리 주변 배경을 치밀하게 설정하여 주변 분위기와 인물의 심리묘사에 치중한 점미 돋보인다. 유교적 도덕관념이 강했던 시기에 양반들을 풍자하였으면서도 자신의 실명과 낙관을 밝히는 파격적이고 대담한 태도를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처벌받지 않았고, 그는 자유분방한 예술세계를 구사할 수 있었다.

  주요 작품으로는 혜원전신첩(蕙園傳神帖), 미인도(美人圖) 등이 있다. 주로 남녀간의 사랑이나 여성의 아름다움을 주제로 그림을 많이 그렸다. 화려한 색을 사용하여 기생이나 무당의 그림을 즐겨 그렸으며, 시골 주막의 서민적인 풍속 또한 날카로운 화필로 잘 그려냈다. 이러한 그림들은 양반 사회에 대한 풍자로 여겨지기도 한다. 풍속화첩에는 단오도(端午圖)〉, 연당(蓮塘)의 여인(女人), 무무도(巫舞圖), 산궁수진(山窮水盡), 선유도(船遊圖) 등이 있고, 미인도와 신윤복필 풍속도 화첩(申潤福筆 風俗圖 畵帖, 국보 제135호)은 간송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다. (국립중앙박물과 문화유산정보)

* 문화재 소재지: 서울 용산구 서빙고로 137, 국립중앙박물관 (용산동5가)

  신윤복필 풍속도 화첩(申潤福筆 風俗圖 畵帖, 국보 제135호)은 조선 후기의 화가인 혜원 신윤복(1758∼?)이 그린 <단오풍정>, <월하정인> 등 연작 풍속화 30여 점이 들어 있는 화첩으로 가로 28㎝, 세로 35㎝이다.

 화첩은 주로 한량과 기녀를 중심으로 한 남녀 간의 애정과 낭만, 양반사회의 풍류를 다루었는데, 가늘고 섬세한 부드러운 필선과 아름다운 색채가 세련되고 낭만적인 분위기를 효과적으로 나타내고 있다. 등장인물들을 갸름한 얼굴에 눈꼬리가 올라가게 표현함으로써 다소 선정적인 느낌이 들며, 인물들의 분위기를 살리기 위해 주위의 배경을 사실적으로 표현한 점이 돋보인다. 대부분의 작품에 짤막한 글과 함께 낙관이 있지만 연대를 밝히지 않아 그의 화풍의 변천과정은 알 수 없다. 

  이 화첩은 일본으로 유출되었던 것을 1930년 전형필이 구입해 새로 틀을 짜고 오세창이 발문을 쓴 것으로 미술작품으로서 뿐만 아니라 18세기 말 당시 사회상의 일면을 보여 주는 것으로 생활사와 복식사 연구에 귀중한 작품으로 평가 받고 있다.  (문화재청 문화유산정보) – 꽃무릇, 石蒜 - 

* 문화재 소재지: 서울 성북구 성북로 102-11, 간송미술관 (성북동)

* 한국문화재단 문화유산채널:

http://www.k-heritage.tv/hp/hpContents/photo/storyView.do?categoryType=4&contentsSeq=10099

 

사진: 고앵자/ 채널A 보도제작부 스마트리포터

자료: 이영일/ 한국문화재재단 문화유산채널 사진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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