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산 내원사 아미타삼존탱(梁山 內院寺 阿彌陀三尊幀)

  양산 내원사 아미타삼존탱(梁山 內院寺 阿彌陀三尊幀,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406호)은 선해일륜(禪海一輪) 이라는 편액이 걸린 8칸, 옆면 4칸의 내원사 선방(禪房)에 있다. 화기에 의하면 조선시대 함풍(咸豊) 7년(조선 철종 8년, 1857)에 도화사(都畵師) 세원(世元)이 조성하여 통도사(通度寺) 취운암(翠雲庵)에 봉안되었다는 작품임을 알 수 있다. 1955년 경봉선사가 말사인 내원사에 옮겨와 봉안한 것으로 전한다.

  아미타삼존상(阿彌陀三尊像)은 세로 215.5㎝, 가로 228.0㎝의 비교적 큰 화폭에 아미타·관음 및 대세지보살상(阿彌陀·觀音·大勢至菩薩上) 3존 모두 입상형(立像形)을 취한 도상(圖像)이다. 화면 가운데 아미타불은 엄지와 중지를 맞댄 손모양이다. 관음보살과 대세지보살은 보관에 각기 화불과 정병이 표현되었으며, 손에는 정병과 연꽃을 들고 있다. 본존의 두광 좌우로 합장한 보살입상과 석장을 든 지장보살입상이 꼬리달린 구름을 타고 내려오는 모습이 작게 묘사되어 있다. 이처럼 간략화된 19세기 불화는 법당의 규모가 축소됨에 따라 불화의 크기도 작아지면서 나타나는 현상으로, 괘불화처럼 삼존입상의 간략한 구도를 보여주고 있다. 둥근 얼굴에 가늘고 긴 눈, 아주 작은 입이 얼굴 한가운데로 몰려 있는 느낌을 주고, 신체는 인체의 비례가 맞지 않아 머리가 크고, 상반신이 넓거나 다리가 짧은 원통형의 모습이다.

  삼존(三尊)은 원형 두광(頭光)을 지녔으나 신광(身光)은 마치 병풍을 펼쳐놓은 듯 삼존을 한 번에 감싸고 있다. 또한 옷자락 등에 동일계열의 색채를 연이어 칠함으로써 마치 명암법과 같은 음영효과를 주고 있다. 적색과 녹색 등이 강렬한 색채의 대비를 이루고 있으며, 이를 완화시키는 분홍색이 대두되어 색채의 화려함을 강조하고 있다. 도식화가 현저해진 문양은 대부분 생략되거나 단청의 문양, 또는 도장을 찍어놓은 듯한 문양처럼 간략화 되었다. 구름문의 경우 갈색과 암녹색의 두가지색을 사용하여 3~5단으로 구분하여 안에서 밖으로 나갈수록 엷어지는, 이른바 바림질을 하여 표현되었는데, 맨 마지막 가장자리는 흰색으로 채색하여 구름을 표현하였다. 이 불화는 구도·형태·문양·장식 등을 과감하게 단순화시켜 아미타삼존불을 강조하는 효과를 나타냈다. 특히, 아미타삼존의 옷자락 등에 동일 계열의 색채를 연이어 칠함으로써 명암법과 같은 음영효과를 주었다.

 아미타삼존상(阿彌陀三尊像)은 보편적인 도상이라 할 수 있으나, 삼존 모두 입상형식은 조선 후기 괘불탱에 보이는 도량강림(道場降臨) 현상의 입상불(立像佛) 외에 주로 고려 후기에서 조선 전기에 조성된 아미타내영 형식의 불화가 주를 이룬다. 조선 후기에 전각 안에 봉안된 정면향의 좌상 형식의 후불탱에 비해 사례가 적은 입상 형식의 삼존도이다. 따라서 이 탱화는 조선 후기 아미타불화 연구에 가치가 있다. 현재 양산시립박물관에 전시 중이다. (자료출처: 문화재청,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문화유산정보)

* 문화재 주소지: 경남 양산시 하북면 내원로 207 (통도사성보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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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일∙고앵자/ 채널A 보도본부 스마트리포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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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덕대왕신종(聖德大王神鍾, 국보 제29호)의 명문 해석(銘文 解釋)

  성덕대왕신종지명 해석(聖德大王神鍾之銘 解釋):朝散大夫(조산대부) 前太子(전태자) 通議郞(통의랑) 翰林郞(한림랑) 金弼衆(김필중)이 왕명을 받들어 짓다.

  궁극적인 묘한 도리는 형상의 바깥에까지를 포함하므로, 아무리 그 모습을 보려고 하여도 그 근원을 찾아볼 수 없으며, 대음(大音)은 하늘과 땅 사이의 모든 곳에 진동하고 있지만 이를 아무리 듣고자하여도 도저히 그 소리를 들을 수 없다. 그러므로 부처님께서 수기설법(隨機說法)인 방편가설(方便假說)을 열어 삼진(三眞)의 깊은 이치를 관찰하시고, 신종을 높이 달아 일승(一乘)의 원음(圓音)을 깨닫게 하였다. 범종(梵鐘)에 대한 기원을 상고해 보니, 불토(佛土)인 인도에서는 카니시카왕 때부터이고, 당향(唐鄕)인 중국에서는 고연(鼓延)이 시초였다. 속은 텅 비었으나 능히 울려 퍼져서 그 메아리는 다함이 없으며, 무거워서 굴리기 어려우나 그 몸체는 구겨지지 않는다. 그러므로 임금의 으뜸가는 공훈(功勳)을 표면에 새기니 중생들의 이고득락(離苦得樂) 또한 이 종소리에 달려 있다.

  엎드려 생각하건대 성덕대왕(聖德大王)의 덕(德)은 산과 바다처럼 높고 깊으며 그 이름은 해와 달처럼 높이 빛났다. 왕께서는 항상 충성스럽고 어진 사람을 발탁하여 백성들을 편안히 살 수 있게 하였고, 예(禮)와 악(樂)을 숭상(崇尙)하여 미풍양속(美風良俗)을 권장(勸獎)하였다. 들에서는 농부들이 천하의 대본(大本)인 농사에 힘썼으며, 시장에서 사고파는 물건에는 사치한 것은 전혀 없었다. 풍속(風俗)과 민심(民心)은 금옥(金玉)을 중시하지 아니하고, 세상에서는 문학(文學)과 재주(才能)를 숭상하였다.

  태자(太子)로 책봉하였던 아들 중경(重慶)이 715년 뜻밖에 죽어 영가(靈駕)가 되었으므로 늙음에 대하여 특별히 관심을 갖게 되었다. 40여년간 왕위에 있는 동안 한 번도 병란(兵亂)으로 백성들을 놀라게 하거나 시끄럽게 한 적이 없는 태평성세(太平成歲)였다. 그러므로 사방 이웃 나라들이 만리(萬里)의 이국(異國)으로부터 와서 주인으로 섬겼으며 오직 흠모(欽慕)하는 마음만 있을 뿐, 일찍이 화살을 겨누고 넘보는 자가 없었다. 어찌 연(燕)나라의 소왕(昭王)과 진(秦)나라의 목공(穆公)이 어진 선비를 등용하여 서융(西戎)을 제패하고, 제(齊)나라와 진(晋)나라가 무도(武道)로써 천하를 서로 탈취한 것과 나란히 비교하여 말할 수 있겠는가!

  성덕대왕(聖德大王)의 붕거(崩去)를 예측할 수 없었으며, 세월이 무상하여 천년이라는 세월도 어느덧 지나가는 지라 돌아 가신지도 벌써 34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근래에 효자이신 경덕대왕(景德大王)이 살아계실 때 왕업을 이어받아 모든 국정을 감독하고 백성을 어루만졌다. 일찍이 어머님이 돌아가셔서 해마다 그리운 마음이 간절하였는데, 얼마 되지 않아 이어 부왕인 성덕대왕이 승하하였으므로 궐전(闕殿)에 임할 때마다 슬픔이 더하여 추모의 정이 더욱 처량하고, 명복(冥福)을 빌고자하는 생각은 다시 간절하였다. 그리하여 구리 12만근을 희사하여 대종 일구(一口)를 주조코자 하였으나, 마침내 그 뜻을 이루지 못하고 문득 세상을 떠났다.

  지금의 임금이신 혜공대왕(惠恭大王)께서는 행(行)은 조종에 명합하고, 뜻은 불교의 지극한 진리에 부합하였으며, 수승(殊勝)한 상서는 천고(千古)에 특이하며, 아름다운 덕망은 당시에 으뜸이었다. 경주의 육가(六街)에서는 용이 상서로운 비와 구름을 옥계(玉階)에 뿌리고 덮으며, 구천의 북소리는 금궐(金闕)에 진동하였다. 쌀알이 꽉꽉 찬 벼 이삭이 전국의 들판에 주렁주렁 드리웠고, 경사스러운 구름은 경사의 하늘을 훤하게 밝혔으니, 이는 혜공왕의 생일을 경하한 것이며, 또한 왕이 8세 때 즉위한 후, 어머니 만월부인(滿月夫人)의 섭정으로부터 벗어나 친정(親政)하게 된 서응(瑞應)인 것이다.

  살펴보건대 소덕태후(炤德太后)의 은혜는 땅과 같이 평등하여 백성들을 인으로써 교화하고, 마음은 밝은 달과 같아서 부자의 효성을 권장하였다. 이는 곧 아침에는 외삼촌(元舅)의 현명함이 있고, 저녁에는 충신들의 보필이 있었기 때문임을 알 수 있다. 왕은 신하들이 제언하는 안을 선택하지 않는 것이 없었으니 무슨 일을 결행한들 잘못됨이 있었겠는가? 경덕왕(景德王)의 유언에 따라 숙원을 이루고자 유사(有司)는 주선(周旋)을 맡고, 종(鍾)의 기술자는 설계하여 본을 만들었으니 이 해가 바로 혜공왕(惠恭王) 7년(771년) 12월이었다.

  이와 때를 같이하여 해와 달이 밤과 낮에 서로 빛을 빌리며, 음과 양이 서로 그 기를 조화하여 바람은 온화하고 하늘을 맑았다. 마침내 신종이 완성되니 그 모양은 마치 산과 같이 우뚝하고, 소리는 용음(龍吟)과 같았다. 메아리가 위로는 유정천(有頂天)인 색구경천(色究竟天)에까지 들리고, 밑으로는 무저(無底)의 가장 아래인 금륜제(金輪際)에까지 통하였다. 모양을 보는 자는 모두 신기하다 칭찬하고, 소리를 듣는 이는 복을 받았다. 이 신종을 주조한 인연으로 존령(尊靈)의 명복을 도우며, 보문(普聞)의 맑은 메아리를 듣고 무설(無說)의 법정(法筳)에 올라, 삼명(三明)의 수승(殊勝)한 마음에 결합하고, 일승(一乘)의 진경(眞境)에 이르며, 내지 모든 경악(瓊萼)들이 금가(金柯)와 함께 길이 번창하고, 나라의 대업은 철위산(鐵圍山)보다 더욱 견고하며, 유정(有情)과 무정(無情)이 그 지혜가 같아서 모두 함께 진구(塵區)인 중생의 미혹한 세계로부터 벗어나, 아울러 각로(覺路)에 오르기를 원하옵나이다.

  신 필중(弼衆)은 옹졸하며 재주가 없으나 감히 왕명을 받들어 반초(班超)의 붓을 빌리고, 육좌(陸佐)의 말을 따라 혜공왕께서 원하시는 성스러운 지시에 따라 종명(鐘銘)을 짓게 되었다. 한림대서생(翰林臺書生) 대마나(大奈麻) 김백환(金苩皖)이 종명을 쓰다.」(자료출처: 진천종박물관 문화유산정보)

 

이영일∙고앵자/ 채널A 보도본부 스마트리포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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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오-잇, 호오-잇의 울음소리. 팔색조(八色鳥, 천연기념물 제204호)

  팔색조(八色鳥, fairy pitta, 천연기념물 제204호)는 팔색조과로 학명은 Pitta brachyura nympha TEMMINCK & SCHLEGEL.이다. 동남아시아 지역, 한국과 일본에 번식하고 있는 작은 새로 몸길이는 18㎝이며 무지개와 같은 7색의 깃털을 가지고 있는 매우 아름다운 새이다. 이마에서 뒷머리까지는 갈색이며, 목 앞은 흰색, 등과 어깨깃은 녹색, 허리·위꼬리 덮깃은 맑은 남빛, 배의 중앙과 아래꼬리 덮깃은 진홍색이다. 꼬리는 흑녹색이고 부리는 검은색, 다리는 황갈색이다.

  우리나라 분포지역은 황해도, 경기도, 경남, 전남 등지에서 번식하며 봄, 가을 이동시기에는 우리나라 곳곳에서 볼 수 있다. 특히 경남 거제도 학금리와 제주도 한라산 등의 번식지에서는 해마다 여러 쌍이 규칙적으로 찾아와 번식하고 있다. 해안과 섬 또는 내륙의 경사지에 있는 울창한 숲에서 번식하고, 바위틈이나 바위 또는 나무줄기 사이에 둥지를 만들 때가 많다. 먹이는 곤충이나 지렁이를 먹으며, 알 낳을 자리에는 이끼를 깔고 한번에 4∼6개의 알을 낳는다. 울음소리는 ‘호오-잇, 호오-잇’하고, 퉁소와 같은 소리로 운다.

  팔색조는 매우 희귀한 멸종위기에 있는 진귀한 여름철새로 종(種) 자체를 천연기념물로 지정하였고 거제도 학동리의 번식지도 천연기념물로 지정·보호하고 있다. (자료출처: 문화재청 문화유산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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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일∙고앵자/ 채널A 보도본부 스마트리포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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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정 양구에서 김장체험도 하고 안보 관광을 함께해요.

  한국드림관광(주)은 한국관광협동조합 회원사들의 가족과 희망하는 일반인들을 모집하여 청정 양구군 오미마을 김장체험과 양구군 내 안보관광을 당일 코스로 11월 1일부터 12월 13일까지 매일 출발하고 있다.

  양구 김장체험 관광은 07시 영등포구청역, 서울 시청역 3번 출구 앞 7시 30분 출발하여 9시 30분 양구군 오미마을에 도착한다. 김장체험 및 안보관광 상품가 52,000원으로 왕복교통비, 김장체험비, 돼지보쌈포함한 점심, 김치를 기본으로 포장하여 2kg 재공, 관광지입장료 등이다. 신청은 한국드림관광(주) 담당자 김장우, 신청전화는 1577-8121, 02-849-9013 이다.

  김장체험은 양구군 방산면 청정 오미마을에서 재배한 재료를 이용하여 팀별로 무채 썰기, 버무리기, 미리 준비해둔 절인 배추에 속 넣기, 포장 등을 9시 30분 도착하여 10시부터 12시까지 하였다. 체험 후에는 가마솥에 밥을 지어 김장김치와 돼지보쌈으로 맛이 다른 최고의 고랭지 채소의 맛을 확인 할 수 있었다. ‘청춘양구에 오시면 10년이 젊어집니다.’로 양구군은 관광객을 맞아 드리고 있다. 을지전망대 입장을 신청하는 양구통일관내 농.특산물 판매장에서 양구의 특산물인 시레기와 사과를 구입하여 서울에와서 가족과의 여행에 뒷 이야기로 최고의 맛을 확인 할 수 있었다.

  안보 관광은 13시부터는 양구백자박물관, 날씨가 맑은 날은 북한에 있는 금강산까지 조망되는 DMZ와 을지전망대, 제4땅굴 관광으로 마무리한다.

  양구백자박물관(楊口白磁博物館)은 과거 부흥했던 양구 백자의 전통을 되살리기 위해 설립되었다. 전시 공간에는 양구 방산지역 백자의 흐름을 알 수 있는 유물들이 전시돼 있고 관람객을 위한 체험실도 마련되어 있다. 양구백토는 양구지역에서 고려 말부터 1970년대 중후반까지 백자가 생산되었고, 경기도 광주 분원이 설치되었을 때에는 연간 500∼550석(72∼80톤)의 백토를 꾸준히 공납하였다. 조선 왕실 백자 원료의 주요 공급지이며, 시원지(始原地)라 할 수 있다.

  을지전망대는 해발 1,049m의 DMZ 철책위에 세워진 양구 동북방 27km, 군사분계선으로부터 약 1km 남쪽지점 해안분지(亥安盆地, 펀치볼)를 이루고 있는 가칠봉의 능선에 위치하고 있으며, 이날은 날씨가 좋아 금강산 비로봉과 4개의 봉우리(차일봉, 월출봉, 미륵봉, 일출봉)를 볼 수 있었다. 전망대 내부의 대형망원경으로 북한군의 근무상황은 물론, 북한의 군사시설이 밀집되어 있는 매봉, 운봉, 간무봉, 무산 등을 관찰할 수 있다. 

- 통일 후 한국전쟁 참전 16개국 이름을 붙인 펀치볼625둘레길이 열리는 겨레의 소원을 기원하며…… - 

  펀치볼(해안분지 亥安盆地: 사발처럼 움푹 들어간 모습의 지형, Punch Bowl Basin),은 경이로운 풍광에 시선을 빼앗기는 곳이다. 주변은 해발 1,100m가 넘는 산등성이가 사방을 둘러싸고 있고, 가운데 움푹한 곳에 마을이 형성되어 있다. 그 모습은 마치 커다란 운석이 지구와 충돌한 후의 모습과 같아서 신비롭기까지 한다. 규모도 여의도 면적의 6배가 넘는다. 한국전쟁당시 미국종군기자가 해안분지의 독특한 지형을 보고 ‘화채그릇’같다고 해 그 다음부터 펀치볼(Punch Bowl)로 불리게 되었다. 을지전망대에 오르면 웅장하면서도 신비로운 펀치볼의 형세를 잘 감상할 수 있다. 해안분지는 전문가들은 ‘차별침식’으로 이 현상을 설명하고 있다. 지표상에 노출된 중심부의 화강암이 주변 산 쪽의 변성암보다 심한 풍화와 침식을 받아 낮아지면서 가운데가 푹 꺼진 현재와 같은 분지를 형성하게 되었다고 한다.

   양구통일관은 을지전망대 DMZ 입경 신고를 하는 곳에 붙어 잇으며 통일에 대비하여 국민에게 북한 실상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히는 통일교육의 장으로 할용하고 있다. 전시실, 농특산물판매장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북한의 실상을 알려주는 생활용품, 수출품과 여러 사진자료들이 전시되어 있다. 통일관 외부에는 2012년 10월 24일 유엔의 날, 한국의 대척점인 우루과이 몬테비데오에 처음으로 세워진 유영호 작가의 ‘그리팅맨(Greeting-man, 인사하는 사람) 2호가 남북화해와 한반도 평화의 염원을 담아 관광객을 맞이하고 있다. 또한 도솔산-펀치볼 지구 전투전적비는 높이 18m이고 탑신 중간에 위치한 청동용사상은 용감하게 승리한 해병대원과 국군, 미군 참전용사의 모습을 각각 상징하고있다. 통일염원시비에는 ‘통일이어 어서오라 통일이여 어서오라 할머니의 긴 한숨 거두고 북한친구 함께 뛰놀게 통일이어 어서오라 통일이어 어서오라’라는 ‘휴전선 아래 우리마을’ 이라는 시비가 세워져 잇고 한국 전쟁당시 사용하던 지휘용 장갑차, 155mm 평사포, 전차 등 전투장비가 전시되어 있다. 특히 농특산물 판매장에서는 북한에서 생산되는 농임산물과, 주류 등 수출 상품과 양구지역에서 생산되는 농특산품이 다양하게 전시, 판매되고있다.

  제4땅굴은 1990년 3월 3일, 양구 동북방 26km지점 비무장지대에서 발견된 제4땅굴은 군사분계선에서 불과 1.02km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다. 높이 1.7m, 폭 1.7 m, 총 길이 2km가 넘는 땅굴은 귀순한 북한 인부의 증언을 토대로 우리 군이 수개월에 걸쳐 탐지한 끝에 발견되었다. 또한땅굴내부에는 투명유리로 덮인 20인승 전동차가 운행되고 있어 편리하게 관람할 수 있다. 땅굴안보관에는 제4땅굴의 발굴 및 굴착장면과 발견 당시의 수색상황 등을 상영할 수 있는 영상실이 있고, 북한의 원시적인 장비와 일상용품을 전시하고 있는안보교육관이 있으며,안보관내에 농특산물 판매장에서는 펀치볼지역에서 생산되는 무공해 농산물과 특산물을 구입할 수 있다.  

이영일/ 채널A 보도본부 스마트리포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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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신청사의 새로운 출발을 앞두고 ‘경북정체성 함양 연수’

  경상북도가 신청사 이전을 앞두고 경북의 정체성 찾고 새롭게 출발하고자 한국국학진흥원이 주최하고 경상북도의 지원으로 재경대구경북시도민회 회원 및 타시도민사회 각계각층의 인사들 120여명이 13일(금)과 14일(토) 양일간 ‘제8기 경북 정체성 함양 연수’를 가졌다. 이날 연수에는 김용승 재경 울진군민회장을 비롯한 윤경호 도민회부회장, 이정환 한국관광협동조합이사장, 백승주 전 국방부 차관 등이 참석했다.

  연수회 첫날은 경북도청 이전지를 둘러본 뒤, 부용대와 병산서원을 거쳐, 국학진흥원에서 대구경북한방산업진흥원 연구위원인 홍정흠 연구원의 “경북의 혼, 한국정신의 창”이라는 주제의 강의를 들었으며, 이어서 ‘경북 정체성 확산과 홍보를 위한 우리의 역할’이라는 좌담회를 가졌다. 둘째날은 박정희 대통령 생가 탐방 및 박정희 대통령 탄신일 기념행사 참석하고 박정희체육관에서 열린 제16회 대한민국 정수(正修)대전(미술/ 서예∙문인화/ 사진) 작품관람 및 시상식 참석으로 마무리 하였다.

  경상북도의 도청은 현재 대구광역시 북구 산격동 청사에서 내년 2월 신청사인 경북 안동시 풍천면 갈전리로 이전할 예정으로 신청사는 총부지 245천m2 부지에 건축 연면적 143천m2에 본청 48, 의회11, 주민복지관 25, 공연장 15, 지하주차장및 부대시설 44개로 구성되었으며, 공사기간은 2011년10월부터 올해 5월 완공. 총사업비는 국비 1,789억원과 도비 2,086억으로 총 3,875억원이 소요되었다. 지난 5월에 완공, 현재는 입주를 위한 막바지 준비에 바쁜 가운데, 내년 2월에 본격적으로 입주할 예정이다.

  안동 부용대(安洞 芙蓉臺)는 경북 안동시 풍천면 하회리 안동 하회마을의 서북쪽 강 건너 광덕리 소나무 숲 옆에 있는 해발 64m인 절벽이다. 태백산맥(太白山脈)의 맨 끝부분에 해당하며 정상에 마을 전체를 조망할 수 있다. 부용대라는 이름은 중국 고사에서 따온 것으로 부용(芙蓉)은 연꽃을 뜻한다. 처음에는 북애(北厓)라 했는데 이는 하회의 ‘북쪽에 있는 언덕’이라는 뜻이다. 아래로 낙동강(洛東江)이 굽이쳐 흐르는 곳에 옥연정사(玉淵精舍)와 겸암정사(謙唵精舍), 화천서원(花川書院)이 자리하고 있다.

  안동하회마을(安東河回-, 중요민속문화재 제122호)은 풍천면 하회리 풍산 유씨의 씨족마을로 유운룡과 유성룡(柳雲龍, 1539~1601 · 柳成龍, 1542~1607) 형제 대(代)부터 번창하게 된 마을이라고 한다. 낙동강 줄기가 S자 모양으로 동·남·서를 감싸 돌고 있고 독특한 지리적 형상과 빼어난 자연경관을 갖추고 있다. 유씨가 집단 마을을 형성하기 전에는 대체로 허씨, 안씨 등이 씨족으로 살았을 것으로 추정한다.

  이 마을은 고유의 ‘하회별신굿탈놀이’로 유명하다. 크게 남촌과 북촌으로 나눌 수 있으며 유서 깊고 제법 크기를 갖춘 많은 문화재를 잘 보존하고 있다. 특히 별신굿에 쓰이던 탈들은 국보로 지정되어 있는데, 그 제작 연대를 고려 시대로 추정하고 있어 마을의 역사가 뿌리 깊음을 짐작할 수 있다. 또한 대표적 가옥이라 할 수 있는 양진당(보물 제306호), 충효당(보물 제414호), 북촌택(중요민속문화재 제84호), 남촌택(중요민속문화재 제90호), 옥연정사(중요민속문화재 제88호), 겸암정사(중요민속문화재 제89호) 등 많은 건축들은 조선시대 사대부가의 생활상과 발달된 집 구조 등을 연구하는데도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더할 수 없이 멋스러운 경치에 민속과 유교 전통을 잘 유지하고 있는 곳으로 우리나라 정신문화의 연구·보존·발전에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마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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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동 하회마을 만송정 숲(安東 河回마을 萬松亭 숲, 천연기념물 제473호)은 낙동강이 하회마을을 휘돌아 흐르며 만들어진 넓은 모래 퇴적층에 위치하며, 조선 선조 때 문경공 류운용이 마을 맞은편 부용대의 기를 완화하기 위하여 1만 그루의 소나무를 심어 조성한 숲이다. 하회마을, 백사장, 낙동강 그리고 부용대 등과 어우러져 경관이 뛰어난 마을숲으로 경관적, 역사적, 문화적 가치가 크다. (자료출처: 문화재청)

* 한국문화재재단 문화유산채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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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동 화천서원(安東 花川書院, 경상북도 기념물 제163호)은 안동시 광덕솔밭길 72에 도산서원 등 향촌 사림의 동의를 얻어 1786년에 건립하였다. 건립 후 겸암(謙菴) 류운룡(柳雲龍)을 주향으로 하고 동리(東籬) 김윤안(金允安)과 종손자인 졸재(拙齋) 류원지(柳元之)를 배향하고 100여 년 이상 춘추로 향사를 지내오다가 1871년 서원철폐령(書院撤廢令)에 의해 강당과 주사만 남기고 훼철됐다. 서원의 훼철을 아쉬워하던 후손들은 1966년부터 기금을 모아 사림들의 공론으로 1996년에 복설하여 지금의 모습을 갖추고 있다.

  화천서원은 강당과 주사를 제외한 건물들이 1996년에 복설한 것으로 강당에서 19세기 이전의 오랜 양식을 부분적으로 찾아 볼 수 있으나 전체적으로 볼 때 건축적인 측면보다는 부용대 우측에 옥연정사와 함께 초점 경관을 이루고 있는 학문적 장소성이 강한 건축유구라는 점에 비중을 두어 기념물로 지정하기로 한다. (자료출처: 문화재청 문화유산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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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동 병산서원(安東 屛山書院, 사적 제260호)은 안동시 풍천면 병산리 30번지에 세워진 서애 유성룡(西厓 柳成龍, 1542~1607)의 학문과 업적을 기리기 위한 곳으로, 안동에서 서남쪽으로 낙동강 상류가 굽이치는 곳에 화산(花山)을 등지고 자리하고 있다. 유성룡은 도학·글씨·문장·덕행으로 이름을 날렸을 뿐만 아니라, 임진왜란 때에도 성곽 수축·화기제작을 비롯하여 군비확충에 힘써 많은 공을 세운 인물이다. 원래 풍악서당(豊岳書堂)으로 풍산 유씨의 교육기관 이었는데, 유성룡이 선조 5년(1572)에 이곳으로 옮겼다. 그 후 광해군 6년(1614)에 존덕사(尊德祠)를 세워 그의 위패를 모시고, 1629년에 그의 셋째 아들 유진의 위패를 추가로 모셨다. 철종 14년(1863)에는 임금으로부터 ‘병산(屛山)’이라는 이름을 받아 서원이 되었다. 서원 내 건물로는 위패를 모신 존덕사(尊德祠)와 강당인 입교당(立敎堂), 유물을 보관하는 장판각, 기숙사였던 동·서재(東·西齋), 신문(神門), 전사청(典祀廳), 만대루(晩對樓), 복례문(復禮門), 고직사(庫直舍)가 있다. 또한 달팽이 뒷간(化粧室)이 서원 밖 주소(廚所) 앞에 있다. 

  병산서원은 선현배향과 지방교육을 담당해 많은 학자를 배출한 곳으로, 1868년 대원군의 서원철폐령 때에도 남아 있었던 47개의 서원 중 하나이며, 한국 건축사에 있어서도 중요한 유적이다. (자료출처: 문화재청 문화유산정보)

* 한국문화재재단 문화유산채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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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정희 대통령생가(朴正熙 大統領生家, 경상북도 기념물 제86호)는 구미시 상모동 171 외3필지에 우리나라의 제5대부터 제9대까지 대통령을 역임한 박정희(朴正熙, 1917-1979) 대통령이 태어난 가옥이다

아버지 박성빈(朴成彬) 공과 어머니 백남의(白南義) 여사의 5남 2녀 중 막내로 1917년 11월 14일 태어나서 구미초등학교와 1937년 대구사범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살았던 곳이다.

  대통령이 태어난 아래채는 좌측에는 앞뒤로 1칸씩의 온돌방, 우측에는 방앗간과 외양간 1칸씩이 배치되었으며, 앞쪽 온돌방이 박대통령이 공부하던 방이다. (자료출처: 문화재청 문화유산정보)

* 한국문화재재단 문화유산채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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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16회 대한민국 정수(正修)대전(미술/ 서예∙문인화/ 사진)은 박정희체육관에서 열린 14일 14시부터 15시 30분까지 있었다. 전옥상 한국정수예술원 이사장, 남유진 구미시장, 김관용 경산북도지사, 김태환 국회의원 등이 참석하였다. 식전행사로는 이도현 아나운서 사회로 성악가 솔리스트 “프리소울”의 축배의 노래, 내나라 내겨레, 경복궁타령과 초청가수 주현미의 신사동 그 사람, 비 내리는 영동교, 짝사랑 등 가요가 있었다. 이어서 통령상 1점, 문화체육관광부장관상 3점 등 1,075점의 시상식 및 작품관람이 있었다.

 

이영일∙고앵자/ 채널A 보도본부 스마트리포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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