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태조 이성계 호적관련고문서(朝鮮 太祖 李成桂 戶籍關聯古文書)

  고려말 화령부 호적관련고문서(高麗末 和寧府 戶籍關聯古文書, 국보 제131호)는 별칭 이태조호적원본(李太祖戶籍原本)으로 고려 공양왕 2년(高麗 恭愍王, 1390)에 조선(朝鮮)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太祖 李成桂, 1335∼1408)의 본향(本鄕)인 화령부(和寧府, 현 咸鏡南道 永興)에서 작성한 것이다. 원래 고려시대 양반은 3년에 한 번씩 호적(戶籍)을 2부씩 작성하였다. 1부는 관아(官衙)에 보고하고 다른 1부는 자신(自身)이 가지고 있었다. 이것은 이성계 자신이 보관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문서(文書)는 저지(楮紙)로, 단편(斷片) 8장을 연결하여 1폭의 두루마리로 만들었다. 단편 1장은 세로 56㎝, 가로 50㎝ 내외이고, 8폭 전체는 3.86m이며, 표구된 족자는 4.7mx75.1㎝의 크기이다. 각 폭마다 3∼7개의 도장이 찍혀 있다.

  문서(文書)의 내용을 보면 이성계(李成桂)의 관직(官職), 식봉(食封)이 명기(明記)되어 있으며, 이방원(太宗 李芳遠)의 이름도 들어있다. 뿐만 아니라 호주(戶主) 이성계를 중심으로 동거(同居)하는 자식, 형제, 사위와 노비를 기록하고 있다. 첫째 폭에는 호적이 작성된 화령 지역, 이성계의 공신호, 관직, 나라에서 받은 땅인 식실봉(食實封) 300호, 노비 20구의 나이와 이름 등이 나열되어 있다. 둘째 폭에는 이두문(吏頭文)으로 쓰인 호적을 기록하는 지침이 있는데,『고려사(高麗史)』식화지2 호구조에는 같은 내용이 한문으로 실려 있다. 셋째 폭에는 양반(兩班)의 노비호구(奴婢戶口) 15구가 기록되었고, 넷째∼여덟째 폭에는 양반과 향리 호구 24호의 호주·처·자녀 성명과 나이 등이 기록되었으며, 기존의 호적이나 구두 증언에 근거하여 호주·호주처 부모의 4조(四祖, 부·조·증조·외조) 세계(世系)도 적혀 있다.

  이 문서는 이성계가 조선을 건국하기 전의 기록으로 이성계의 세계(世系)를 파악하는데 참고가 될 뿐만 아니라 현재 전하는 가장 오래된 개인 호구장적이다. 고려 말의 호적체계와 신분제 등을 연구하는데 귀중한 자료이다. (자료출처: 문화재청 문화유산정보)

* 문화재 주소지: 서울특별시 용산구 서빙고로 137 국립중앙박물관

* 한국문화재재단 문화유산채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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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일∙고앵자/ 채널A 보도본부 스마트리포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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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자 상감모란문 매병(白磁 象嵌牡丹文 梅甁, 보물 제345호)

  백자 상감모란문 매병(白磁 象嵌牡丹文 梅甁, 보물 제345호)은 고려시대(高麗時代) 만들어진 백자 매병(白磁梅甁)으로 높이 29.2㎝, 몸 지름 18.7㎝이다.

  매병(梅甁)은 각 있게 세워진 두툼한 아가리와 팽배한 어깨선은 몸체를 지나 밑부분까지 사선으로 줄어들어, 중국 북송(北宋)의 영향을 받은 듯하다. 몸체는 참외 모양으로 6등분해서 세로로 골을 만들었으며, 각 면에는 마름모 모양의 선(線)을 상감(象嵌)으로 처리하였다. 그 안에는 청자(靑磁) 태토(胎土)로 메꾸고 붉은색 자토(紫土)와 흰색 백토(白土)로 모란, 갈대, 버들이 늘어져 있는 그늘에서 물새가 거니는 모습, 연꽃 등을 상감 처리하였다. 매병(梅甁)의 아가리 가장자리와 굽 둘레는 연꽃잎을 도드라지게 돌렸고, 다시 청자 태토로 상감하여 백자에 청자 태토를 적절히 이용한 특이한 문양 효과를 내었다.

  고려청자(高麗靑瓷)와 백자(白磁)를 하나로 혼합하여 완성한 희귀한 도자기로, 전례를 찾아 볼 수 없는 중요한 작품이다. (자료출처: 문화재청 문화유산정보)

* 문화재 주소지: 서울특별시 용산구 서빙고로 137 국립중앙박물관

* 한국문화재재단 문화유산채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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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엄경 강학으로 이름 높았던 화담대사 진영(華潭大師 眞影)

  화담대사 진영(華潭大師 眞影)은 조선후기(朝鮮後期) 화엄경(華嚴經) 강학(講學)으로 이름 높았던 화담 경화(華潭 敬和, 1786-1848)의 진영이다. 그는 편양문파(鞭羊門派)에 속하는 선승으로, 양주 화양사(華陽寺)에서 월화(月華)의 제자가 된 이후 화악 지탁(華嶽 知濯)의 법통을 이었다.

  진영(眞影)의 왼쪽 상단에는 그의 명성을 반영하듯이 “화엄종주 동국율사(華嚴宗主 東國律師)”로 적어 놓았다. 오른쪽에는 조선 후기의 문신으로 판부사(判府事)를 지낸 이유원(李裕元, 1814~1848)의 제찬이 있다. 화문석 위에 푸른색 방석을 깔고 앉은 화담대사는 한손을 경상(經床) 위에 두고, 한손은 주장자(拄杖子)를 쥐고 있다. 가는 필선으로 이목구비를 그렸는데 정면을 응시하는 선사의 눈매가 날카롭게 보인다. 짙은 회색의 장삼과 보라색의 가사를 걸치고 있다. 경상 위에는『화엄경(華嚴經)』과『범망경(梵網經)』이 펼쳐 있으며 안경이 올려져 있다.

  화담대사 부도(華潭大師 浮屠)는 화담당경화탑(華潭堂敬和塔, 가평군 향토유적 제1호)으로 가평군 하면 하판리의 현등사(懸燈寺) 북쪽 능선에 있다. (자료출처: 문화재청 문화유산정보)

* 문화재 주소지: 서울 용산구 용산동 6가 168-6 국립중앙박물관

* 한국문화재재단 문화유산채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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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자 동화연화문 표주박모양 주전자(靑磁 銅畵蓮花文 瓢形 注子)

  청자 동화연화문 표주박모양 주전자(靑磁 銅畵蓮花文 瓢形 注子, 국보 제133호)는 고려중기(高麗中期)에 만든 청자 주전자(靑磁注子)로 높이 33.2㎝, 입지름 2.7㎝, 밑지름 11.4㎝이다.

  주전자(注子)는 표주박 모양(瓢形)의 몸통에 표면은 연잎으로 둘러싼 형태이다. 꽃봉오리 모양의 마개를 하고 있으며, 잘록한 목 부분에는 동자가 연봉오리를 두 손으로 껴안아 들고 있는 모습과 연잎으로 장식하였다. 손잡이는 덩굴을 살짝 구부려 붙인 모양으로 위에 두 눈이 뚫려있는 개구리 한 마리를 앉혀 놓았다. 물이 나오는 아가리(注口)는 연잎을 말아 붙인 모양이다. 연판의 가장자리를 비롯하여 동자의 무릎, 동자가 들고 있는 연봉오리 꼭대기, 주구의 연엽 중심부, 주구와 몸체 사이에 있는 꽃봉오리, 손잡이 끝 당초 사이의 봉오리 등에도 진사 안료를 사용하였다. 연판의 소판(小瓣), 손잡이 모서리, 연줄기 등에 백퇴화점을 찍었으며, 동자의 두 눈 및 정수리와 개구리의 정수리에는 철사점(鐵砂點)을 찍었다.

  고려청자(高麗靑瓷)에 붉은 색을 띠는 진사(辰砂: 산화동)를 곁들이는 장식 기법은 12세기 전반에도 있었으나, 진사로 무늬를 대담하게 장식한 작품은 13세기 이후에 나타난 것으로 여겨진다. 연잎 가장자리와 잎맥을 진사로 장식한 이 작품은 고려 무신정권의 최고 권력자였던 최충헌(崔忠獻)의 손자 최항(崔沆, ?~1257년)의 강화 무덤에서 석관묘지(石棺墓誌)와 함께 출토(出土)된 것으로 전한다. 고려 고종(高麗 高宗, 재위: 1213∼1259) 때 작품으로 추정된다. 진사의 빛깔이 뛰어나 고려청자 역사상 귀중한 자료가 된다. (자료출처: 문화재청 문화유산정보)

* 문화재 주소지: 서울특별시 용산구 이태원로55길 60-16 삼성미술관 리움

* 한국문화재재단 문화유산채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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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최초의 민영 일간지 독립신문(獨立新聞)

  한글 최초의 독립신문(獨立新聞)은 1896년 4월 7일 창간(創刊)되었던 우리나라 최초의 민영(民營) 일간지(日刊紙)이다. 이 신문은 대한제국(大韓帝國) 광무(光武) 3년(1899) 5월 16일자 판이다.

  독립신문(獨立新聞)은 근대 민족주의 및 민주주의 사상, 자주적 근대화를 강조하여 국민 계몽(國民啓蒙)의 역할을 하였다. 창간(創刊) 당시에는 신문이나 잡지 따위에서, 보통 신문지의 절반 크기의 타블로이드판(tabloid版) 총 4면에 격일간지(隔日刊紙)로 발행되었다가 판형이 두 배로 확대되고 일간지(日刊紙)로 발행되었다. 1896년 7월 독립협회(獨立協會)가 창립(創立)된 뒤에는 기관지의 역활도 하다가 1899년 12월 4일자를 마지막으로 폐간(廢刊)되었다.

  정부(政府)는 독립신문사(獨立新聞社)를 매수(買收)할 당시에는 아일랜드(Ireland) 사람을 주필(主筆)로 고용해 국문판(國文板)과 영문판(英文板)을 일간으로 속간하겠다고 발표하였다. 그러나, 정작 신문사를 매수한 다음에는 독립신문을 영구히 폐간시켜버렸다. (자료출처: 국립중앙박물관 문화유산정보)

* 문화재 주소지: 서울 용산구 서빙고로 137 국립중앙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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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일∙고앵자/ 채널A 보도본부 스마트리포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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