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주 고달사지 석조대좌(驪州 高達寺址 石造臺座. 보물 제8호)

  여주 고달사지 석조대좌(驪州 高達寺址 石造臺座. 보물 제8호)는 고달사는 신라 경덕왕 23년(764)에 창건되었으나, 누구에 의해 창건되었는지 확실히 알 수 없다. 이 석불대좌는 불상(佛像)은 없어진 채 대좌만 제 자리를 지키고 있는데, 보존상태가 거의 완벽하다.

  받침돌은 위·중간·아래의 3단으로, 각기 다른 돌을 다듬어 구성하였는데, 윗면은 불상이 놓여있던 곳으로 잘 다듬어져 있다. 아래받침돌과 윗받침돌에는 연꽃잎을 서로 대칭되게 돌려 새겼다. 이 대좌가 사각형으로 거대한 규모이면서도 유연한 느낌을 주는 것은 율동적이면서 팽창감이 느껴지는 연꽃잎의 묘사 때문이다. 이와 같은 연꽃잎의 표현수법은 여주고달사지 승탑(국보 제4호) 아래받침돌과 매우 비슷하며, 가운데 꽃잎을 중심으로 좌우로 퍼져나가는 모양으로 배열하는 방법은 고려시대 양식의 공통된 특징이다.

 조각솜씨가 훌륭한 사각형대좌의 걸작으로, 절터에 있는 여주고달사지승탑이 고려 전기의 일반적인 양식을 따르고 있는 것으로 보아, 이 대좌도 10세기 후반에 만들어진 것으로 보인다. (문화재청 문화유산 정보) - 깽깨이풀 -

* 문화재 소재지: 경기 여주군 북내면 상교리 420-5

* 문화재청 헤리티지채널:

http://www.heritagechannel.tv/hp/hpContents/photo/storyView.do?contentsSeq=4340&categoryType=4

 

이영일/ 문화재청 헤리티지채널 사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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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주 고달사지와 고달사지 석조(驪州 高達寺地 石槽)

  여주 고달사지(驪州 高達寺址. 사적 제382호)는 혜목산(慧目山) 기슭의 고달사는 신라 경덕왕 23년(764)에 처음 세워진 후, 고려 광종 이후 역대 왕들의 보호를 받아 큰 절로 성장하였다. 이 절은 고려 초기에 국가가 관장하는 3대 선원 가운데 하나로서 왕실의 보호를 받은 중요한 사찰이였다. 975년 세워진 원종대사(元宗大師) 비문에 의하면 당시에는 고달원 또는 고달선원(高達禪院)으로 불렀다고 한다. 1530년 간행된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 고달사가 나타난 것으로 보아 조선 초기까지는 번창했으나, 1799년에 편찬된 「범우고(梵宇攷)」에는 폐사된 것으로 나타난다. 고달사에는 석조 문화재들이 많이 남아 있는데, 모두 고달이라는 석공이 만들었다고 전한다. 고달은 가족들이 굶어 죽는 줄도 모르고 절을 이루는 데에 혼을 바쳤다고 하는데, 절을 다 이루고 나서는 스스로 머리를 깎고 스님이 되었으며, 훗날 도를 이루어 큰스님이 되니, 고달사라 불렀다는 전설이 있다.

  절터 안에는 깔끔한 모양과 세련된 조각수법의 고달사지부도(국보 제4호)를 비롯하여 훌륭한 문화재들이 많이 남아 있다. 고달사 원종대사혜진탑비 귀부와 이수(보물 제6호)는 원종대사의 행적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는 탑비로 975년에 만들었는데, 통일신라 말에서 고려시대 초기로 넘어가는 탑비형식을 잘 보여주고 있다. 고달사 원종대사혜진탑(보물 제7호)은 원종대사의 묘탑으로 아름답고 화려한 조각이 있어 고려시대 부도의 조각 수법이 잘 나타나 있다. 그 밖에 고달사지석불좌(보물 제8호)와 지금은 국립중앙박물관으로 옮긴 고달사지쌍사자석등(보물 제282호)이 있고 최근에 발굴조사를 통해 금당터를 비롯한 건물터를 확인하고, 절터의 규모를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게 되었다.  

 고달사지 석조(驪州 高達寺地 石槽.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247호)는 일부 파손되기는 했지만 전체적으로 보존상태가 양호한 편으로, 가-4 건물지 발굴과정에서 출토된 것이다.

  석조 규모는 장변 321cm, 단변 149cm, 높이 98cm로 한 돌로 치석되었으며, 평면이 긴사각형으로 표면을 고르게 다듬어 전체적으로 정연하면서도 정교한 인상을 주고 있다. 각 면의 모서리부분을 부드럽게 호형(弧形)으로 다듬어 석공이 세심한 부분까지 관심을 가지고 치석했음을 알 수 있다. 내부는 아래쪽으로 내려가면서 밑부분에서 호형으로 치석하여 장식적인 기교를 보이고 있으며, 바닥 중앙부에는 지름 7.5cm의 원형 배수공이 관통 되어 뚫려 있다. 이러한 기능적인 측면 외에 주목되는 부분은 모서리의 치석과 장식 수법이다. 특히 모서리는 바깥면 중간에 1단의 굴곡을 두었으며, 상면 모서리에는 안쪽으로 연꽃잎이 살짝 말려 들어가는 듯한 양감을 느낄 수 있도록 표현했으며, 상면으로 약 2cm 정도의 귀접이를 해주어 장식적인 기교가 돋보이고 있다. 이처럼 석조의 모서리부분을 화형으로 치석한 경우는 보기 드문 예에 속한다.

  이 석조는 전체적인 치석 수법과 고달사지의 연혁 등을 고려할 때 고려 전기 에서도 이른 시기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경기도 지역에서는 보기 드물게 조성 시기도 빠른 편에 속하여 학술적으로도 중요하다. 또한 현존하는 석조들과 비교해도 우수한 치석과 장식 기법을 보이고 있어 예술적으로도 뛰어난 석조로 판단된다. 나아가 당시 고달사의 연혁이나 위상을 짐작해 볼 수 있는 유물로 보존할만한 가치와 함께 훌륭한 교육 자료 등으로 활용될 수 있을 것으로 사료된다. (문화재청 문화재 정보와 여주군청 자료)

* 문화재 소재지: 경기 여주군 북내면 상교리 411-1번지 - 까치의 정겨움 -

* 문화재청 헤리티지채널:

http://www.heritagechannel.tv/hp/hpContents/photo/storyView.do?contentsSeq=4336&categoryType=4

 

이영일/ 문화재청 헤리티지채널 사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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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주 고달사지 쌍사자 석등(驪州 高達寺址 雙獅子 石燈. 보물 제282호)

   여주 고달사지 쌍사자 석등(驪州 高達寺址 雙獅子 石燈. 보물 제282호)은 고려시대 유적건조물로 여주 고달사터에 쓰러져 있었던 것을 1959년 경복궁으로 옮겨 왔으며, 현재는 국립중앙박물관에 있다. 높이는 2.43m이며 불을 밝히는 화사석(火舍石)까지만 남아있었으나, 2000년에 경기도 기전매장문화연구원이 실시한 발굴조사에서 지붕돌이 출토되었다.

  직사각형의 바닥돌 4면에 둥글넓적한 모양의 안상(眼象)을 새기고, 아래받침돌 대신 2마리의 사자를 앉혀 놓았다. 사자는 좌우에서 앞발을 내밀고 웅크리고 있으며, 등 위로 구름이 솟아올라있다. 가운데받침돌에는 구름무늬를 돋을새김하였고, 윗받침돌에는 연꽃을 새겼다. 그 위에 놓인 화사석은 4면에 창을 뚫었다.

  우리나라 쌍사자석등의 사자는 서있는 자세가 대부분인데, 이 석등은 웅크리고 앉은 모습이 특징적이며, 조각수법 등으로 보아 고려 전기인 10세기경에 만들어진 것으로 짐작된다. (문화재청 문화재 정보)

* 문화재 소재지: 서울 용산구 서빙고로 137, (국립중앙박물관) 

* 문화재청 헤리티지채널:

http://www.heritagechannel.tv/Photo/EssayView.asp?category1stIdx=0&serviceMenuIdx=1&seriesMenuIdx=128&searchText=&registerType=businessTriphtmlServiceMenuIdx=4&htmlIdx=7769

 

이영일/ 문화재청 헤리티지채널 사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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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주대(戀主臺. 경기도 기념물 제20호)

  연주대(戀主臺. 경기도 기념물 제20호)는 관악산의 봉우리 중에 죽순이 솟아오른 듯한 모양을 한 기암절벽이 있는데, 그 위에 석축을 쌓고 자리잡은 암자를 연주대라 한다.

   원래는 의상대사가 문무왕 17년(677)에 암자를 세우면서 ‘의상대’라 이름 했었는데, 고려 멸망 후 조선을 반대하며 고려에 충성을 다하던 유신들이 이곳에 모여, 멀리 개경쪽을 바라보며 고려를 그리워하여 연주대(戀主臺)로 이름을 고쳐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또한 조선 태종(재위 1400∼1418)이 셋째왕자 충녕대군을 장차 태자로 책봉하려 하자 이를 눈치챈 첫째 양녕과 둘째 효령대군이 궁을 나와 관악산에 입산수도하면서, 이 연주대에 올라 왕궁을 바라보며 왕좌를 그리워하였다는 전설도 전해진다. 연주대에 얽힌 이러한 이야기들은 모두 연민을 불러일으키는 내용인데, 이것은 연주대 주변 경관이 매우 뛰어난 절경인데다 한눈에 멀리까지 내려다 볼 수 있기 때문에 붙여진 것으로 여겨진다.

   관악산 해발 629m 기암절벽 정상에 3평 남짓한 규모로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사람 인(人)자 모양인 맞배지붕이며, 조선 후기에 지어진 것이다. 이곳에는 석가모니와 나한들을 모시는 불당인 응진전(應眞殿)이 있다. (문화재청 문화유산 정보)

* 문화재 소재지: 경기 과천시 중앙동 85-2  

* 문화재청 헤리티지채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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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일/ 문화재청 헤리티지채널 사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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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서울등축제 – 청계천에 백제 700년의 역사가

  2013년 11월 1일부터 17일까지 “한성백제 천년의 꿈‘을 주제로 ’2013 서울등축제‘가청계천 일원에서 열린다.

   한성(서울)∼웅진(공주)∼사비(부여)로 이어지는 백제 700sus의 역사를 3만 개의 등으로 청계천을 수놓는다.

   청계 시작점에는 5m의 초대형 ‘매’가 백제 용맹의 재현을 시작으로 한성백제을 이끌던 왕들의 기상과 중국, 일본과의 활발한 해상활동, 웅진백제 무령왕릉에서 발견된 국보 제287호를 형상화한 ‘백제금동대향로’, 대만과 필리핀의 이국의 등과 영월과 인제, 제주도의 지자체을 소개하는 코너로 이어졌다.

* 문화재 소재지: 서울 청계천 청계광장에서 삼일교 구간 

 

* 문화재청 헤리티지채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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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일/ 문화재청 헤리티지채널 사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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