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협인석탑(寶篋印石塔. 국보 제209호)

  보협인석탑(寶篋印石塔. 국보 제209호)이란『보협인다라니경』을 그 안에 안치하고 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종래에 볼 수 없던 특이한 모습인데, 중국 오월(吳越)이라는 나라에서 그 유래를 찾을 수 있다. 오월국의 마지막 왕인 충의왕 전홍숙(錢弘淑)은 인도의 아소카왕이 부처의 진신사리를 8만 4천기의 탑에 나누어 봉안하였다는 고사를 본따 금, 동, 철 등의 재료로 소탑 8만 4천기를 만들고 그 속에 일일이『보협인다라니경』을 안치하였다. 이와 유사한 형태의 탑을 보협인탑이라고 하는데, 우리나라에서는 유일한 이 석조 보협인탑이 동국대학교 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원래는 천안시 북면 대평리 탑골계곡의 절터에 무너져 있던 것을 이 곳으로 옮겨 세운 것이다. 절터에는 자연석으로 쌓은 축대와 주춧돌의 일부, 기와조각들이 남아 있어 고려시대의 절터로 추정되나, 이 곳에 대한 기록은 전하지 않는다.

  복원된 탑의 현재 모습은 5개의 돌만 남아 있어 완전한 형태는 아니다. 우리나라 석탑의 일반형식과는 전혀 달라서 기단(基壇)과 탑신(塔身)의 구분이 뚜렷하지 않고 완전한 형태를 짐작하기도 어렵다. 뚜껑을 덮은 듯한 네모난 상자 모양의 돌 2개를 포개어 놓은 후, 그 위로 귀를 세운 머리장식을 얹어놓은 모습이다. 불상(佛像)이 새겨진 육면체 위에 4각형의 받침돌을 놓고, 다시 그 위에 육면체가 놓이는데 4면에 부처님의 전생설화가 새겨있다. 이 탑몸돌 윗면 중앙에는『보협인다라니경』을 안치했던 것으로 보이는 둥근 사리구멍이 남아있다. 당나귀 귀처럼 솟은 맨 윗돌에는 그 안에 석가의 일대기가 상하로 나뉘어 새겨져 있다.

  전면에 조각이 가득한 이 탑은 중국 보협인탑의 영향을 받은 듯 하고 외형도 거의 비슷하다. 고려시대에 건립된 것으로 보여지며, 우리나라에 하나밖에 없는 보협인석탑으로서 매우 귀중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 (문화재청 문화유산정보)

* 문화재 소재지: 서울특별시 중구 장충동2가 필동로 1길 30 동국대학교박물관

 

 자료: 이영일/ 채널A 보도본부 스마트리포터

사진: 고앵자/ 채널A 보도본부 스마트리포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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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치2년명 청화 백자 송죽무늬항아리(국보 제176호)

  홍치2년명 청화 백자 송죽무늬항아리(弘治二年名 白磁 靑華 松竹文壺, 국보 제176호)는 원래 화엄사 각황전(覺皇殿)에서 꽃 공양에 사용되었던 한 쌍의 화병으로서 그 가운데 하나는 파손되어 망실되었고, 이 화병(花甁)도 구연부(口緣部)가 파손되어 수리되었다. 구연의 안쪽에는 `홍치2년(弘治二年)`이란 명문이 있어 1489년(성종20년)에 제작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 청화백자는 높이 48.5㎝, 몸지름 30.0cm, 밑지름 18.0cm의 항아리로 현존하는 조선전기 청화백자 가운데 가장 규모가 크다. 몸체 윗부분이 당당하게 벌어져 있고, 아래 부분은 잘록하게 들어갔다. 조선전기의 전형적인 백자 형태로 그림의 솜씨나 고르게 칠해진 유약으로 보아 왕실에서 사용된 최상품의 도자기임에 틀림없다. 정갈하고 깨끗한 태토(硬質白磁) 위에 노송과 대나무를 코발트로 표면 가득 그렸는데, 그림의 수준으로 보아 왕명에 따라 분원(分院)에 파견된 도화서(圖畵署)의 화원화가(畵員畵家)가 그린 듯하다. 이를 계기로 표면장식이 중국의 장식적 문양 구성에서 정통화풍의 회화로 변화되었다. 이는 이후의 조선청화백자의 조형성을 결정하게 한 주요 요인이 되었다. 기형을 비롯하여 송죽의 배치나 청화의 처리 등은 조선백자의 진수를 보여주는 명품이다.

  지리산 화엄사에 전해져 온 유물인데 두 번이나 도난당했던 것을 찾아 1960년대 동국대박물관에 기증했다. 백자 위에 푸른 코발트 안료로 그림을 그려 넣기 시작한 때는 기록과 현존 사례로 볼 때 세조(世祖) 때인 1450년대부터이다. 따라서 우리나라에서 제작 연대가 명확한 가장 오래된 청화백자로 조선시대 도자 연구에 매우 중요한 자료이다. (문화재청 문화유산정보) - 기린초, 소녀의 사랑, Sedum -

* 문화재 소재지: 서울 중구 필동 동국대학교박물관

 

 고앵자/ 채널A 보도본부 스마트리포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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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조필 파초도(正祖筆 芭蕉圖. 보물 제743호)

  정조필 파초도(正祖筆 芭蕉圖. 보물 제743호)는 조선시대 정조(正祖, 재위: 1776∼1800)가 그린 그림으로, 바위 옆에 서 있는 한 그루의 파초(芭蕉)를 그렸다. 정조는 시와 글에 능하였을 뿐만 아니라 그림에도 뛰어났다고 한다.

  이 그림은 가로 51.3㎝, 세로 84.2㎝ 크기로 단순하면서도 균형적인 배치를 보여준다. 먹색의 짙고 옅은 정도 및 흑백의 대조는 바위의 질감과 파초잎의 변화를 잘 표현하였다. 그림 왼쪽 윗부분에 정조의 호인 ‘홍재’가 찍혀 있다.

  형식에 치우치지 않은 독창적인 묘사가 돋보이는 이 그림은 글씨와 그림 및 학문을 사랑한 정조의 모습과 남종화의 세계를 보여주는 것으로, 국화도(보물 제744호)와 함께 조선 회화사 연구에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 현재, 동국대학교박물관에서 공개 전시 중에 있다.  (문화재청 문화유산정보)

* 문화재 소재지: 서울 중구 필동로 1길 30 동국대학교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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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중근 의사 유묵 – 일일부독서 구중생형극(보물 제569-2호)

  안중근 의사 유묵 – 일일부독서 구중생형극(安重根 義士 遺墨, 一日不讀書 口中生荊棘 – ‘하루라고 책을 읽지 않으면 입속에 가시가 돋는다’라는 뜻 - . 보물 제569-2호)은 안중근(安重根:1879∼1910) 의사가 1909년 10월 26일 만주 하얼빈 역에서 조선 침략의 원흉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를 사살한 뒤 여순감옥(旅順監獄)에서 1910년 3월 26일 사망하기 전까지 옥중에서 휘호한 유묵을 일괄ㆍ지정한 것이다. 1910년 2월과 3월에 쓴 것으로 글씨 좌측에 “경술이(삼)월, 어여순옥중, 대한국인안중근서(庚戌二(三)月, 於旅順獄中, 大韓國人安重根書)”라고 쓴 뒤 손바닥으로 장인(掌印)을 찍었다.

  글씨 내용은 논어(論語), 사기(史記) 구절 등 교훈적인 것이 많으며, 자신의 심중을 나타낸 것, 세상의 변함을 지적한 것, 일본에 경계하는 것, 이밖에 어떤 사람의 당호(堂號)를 써준 것 등이다.

  유묵 대부분은 당시 검찰관, 간수 등 일본인에게 써준 것들이다. 그중 제569-21호는 러일전쟁 때 종군했다가 전쟁이 끝난 뒤 여순감옥에서 근무했던 사람 절전독(折田督)]이 받은 것으로, 8ㆍ15 광복으로 그의 가족들이 일본으로 귀국할 때 조카 절전간이(折田幹二)에게 넘겨주었고, 그것이 1989년 2월 20일 단국대학교에 기증되었다. 또 569-25호는 안의사 수감 당시 여순감옥에서 경관을 지냈던 이의 손자[팔목정징(八木正澄)]가 2002년 10월에 안중근의사숭모회에 기증한 것이다. 또 제569-22, 23호는 앞쪽에 “야스오까 검찰관에게 증여한다(贈安岡檢察官)”라고 적었듯이 당시 관련했던 검찰관에게 써준 것이다. 현제, 동국대학교박물관에서 공개 전시 중이다. (문화재청 문화유산정보) - 인무원려 난성대업(人舞遠慮 難成大業, 보물 제569-8호 – 사람이 멀리 생각하지 못하면 큰일을 이루기 어렵다. – 論語 憲問篇에서 引用) 서울 남산 안중근 기념관 앞 공원. 한얼 – 안중근의사님의 고귀한 희생으로 나라사랑에 숭모하는 마음을 담은 조형물 - 

* 문화재 소재지: 서울특별시 중구 필동3가 장춘단로 127 동국대학교박물관

 

 고앵자/ 채널A 보도본부 스마트리포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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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국대박물관, 현존 最古 고려 청동바라 첫 공개

   동국대박물관(관장 정우택)은 27일 “본교 건학 108주년을 기념한 상설전시실 재개관에 맞춰 수장고 유물 전수조사를 실시한 결과 1087년에 제작된 고려시대 청동 바라 4점을 새로이 찾았다”고 밝혔다. 박물관은 1970년 입수해 지금까지 수장고에 잠들어 있던 이 바라를 최근 재개관과 함께 일반에 첫 공개했다. 현재 존재하는 타악기 바라(钹鑼, 발(나,라)) 가운데 가장 오래된 고려 11세기 청동 바라 두 쌍이 처음으로 공개됐다. 바라 중에 유일하게 보물로 지정된 ‘곡성 태안사 청동 대바라(제956호)’보다 4세기가량 앞서 보물급 이상의 가치를 지닌 것으로 평가된다. 

  이번에 공개된 바라 4점은 각각 지름 30cm 크기로 2쌍으로 구성됐다. 3점에는 24자의 명문이 새겨져 있다. 명문에 따르면 이 바라는 ‘대안(大安) 3년 음력 7월’에 제작됐다. 대안은 중국 요(遼)나라 도종(道宗)의 연호로, 고려 선종(宣宗·1049∼1094) 4년인 1087년에 해당한다. 바라를 제작한 이는 이름 없이 광주목관(廣州牧官)이라고만 적혀 있다. 고려시대 광주목은 지금의 경기 광주시와 성남시, 서울 강남·관악구 일부가 포함된 지역. 목관은 목을 다스리는 관리의 직함으로, 이 바라가 관아에서 정식으로 의뢰 제작한 공공기물임을 알 수 있다.

  반야도량발자(般若道場발者)’라는 문구도 눈길을 끈다. ‘반야도량’은 고려시대 ‘반야바라밀다경’을 강설하는 불교의식을 뜻하고 ‘발자’는 바라를 일컫는 말이다. 나라에 가뭄이 들거나 전염병이 돌 때 이를 물리치기를 바라는 현세구복(現世求福)의 기원이 담긴 것이다. 김순아 학예연구원은 “이 바라는 개인적 연주를 위해 만든 게 아니라 광주목이란 정부기관이 주최하는 불교행사의 의례용 악기였음을 알 수 있다”고 말했다.

이 바라는 전남 곡성군 태안사에서 소장한 청동 대바라보다 시기적으로 훨씬 앞선다는 점에서 가치가 크다. 태안사 바라는 조선 세종 29년(1447년) 효령대군이 동생 세종과 왕비, 세자의 복을 빌기 위해 조성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이보다 360년이나 앞서 만들어진 셈이다. 정 관장은 “현존 최고(最古)의 바라로 확인된 만큼 더욱 세밀한 학술연구를 이어 가겠다”고 밝혔다.

  동국대박물관은 이번 재개관과 함께 그간 보존 관리 문제로 오랫동안 공개하지 않았던 국보와 보물 상당수도 일반에 공개했다. 안중근 의사 유묵(遺墨·생전에 남긴 글씨나 그림) 가운데 가장 유명한 보물 제569-2호 ‘일일부독서 구중생형극(一日不讀書 口中生荊棘·하루라도 책을 읽지 않으면 입안에 가시가 돋는다)’은 10년 만의 공개다. 국보 제176호인 ‘백자 청화 홍치 2년 명 송죽무늬 항아리’와 보물 743호 ‘정조필 파초도’도 2006년 특별전 이후 8년 만에 실물을 볼 수 있게 됐다. 무료. 02-2260-3722  (2014년 5월 28일 동아일보 정양환 기자의 문화유산정보) - 考備 편지꽂이 조선 19세기 1953년 민족박물관이관. 십장생 무늬 지통, 국립중앙박물관 전시 중 - 

* 문화재 소재지: 서울 중구 필동3가 26번지 (동국대학교 박물관)

 

이영일/ 채널A 보도본부 스마트리포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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