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종화의 산실, 진도 운림산방(珍島 雲林山房, 명승 제80호)

  진도 운림산방(珍島 雲林山房, 명승 제80호)은 조선말기 남종화(南宗畵)의 대가인 소치 허련(小癡 許鍊, 1808∼1893)이 조성하여 말년에 거처하면서 창작과 저술 활동을 하던 곳으로서「소치실록(小癡實錄)」에 따르면 큰 정원을 다듬고 아름다운 꽃과 희귀한 나무를 심어 선경(仙境)으로 꾸민 곳이다. 1982년 소치의 손자인 남농 허건(南農 許楗)이 복원하여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하였다. 운림산방(雲林山房)이란 이름은 첨철산(尖察山) 주위에 수많은 봉우리가 어우러진 깊은 산골에 아침저녁으로 피어오르는 안개가 구름숲을 이룬 모습을 보고 이름을 지었다 한다.

  운림산방은 경사지에 세워졌으며, 맨 위쪽에 허유(許維: 후에 鍊으로 개명)의 초상화(畵像)를 모신 운림사(雲林祠)가 있다. 운림사에는 초상화 이 외에도 세한도(歲寒圖), 벽계청장관(碧溪靑), 적취산방(積翠山房)의 편액이 걸려 있다. 운림사 오른쪽 뒤편에 사천사(斜川祠)가 있다. 돌담으로 둘러진 안쪽에 소치선생이 기거하던 살림집이 있고 그 전면 우측에 허유가 머물던 사랑채가 있다. 살림집 앞에 1978년에 재건한 소치선생이 그림을 그리던 화실 운림산방이 있다. 그 앞에는 가로 33m, 세로 27m 크기의 연못(일명: 雲林池)이 있고 중앙에는 작은 섬이 있다. 이 섬에는 허유가 심은 배롱나무 한 그루가 있다.

  세한도(金正喜筆 歲寒圖, 국보 180호, 진품은 국립중앙박물관 소장)는 조선 말기를 풍미했던 김정희의 문인화 이념의 최고 정수를 보여주는 작품이다. 1844년 제주도에서 귀양살이를 하고 있을 때 그린 것으로 그림의 끝부분에는 자신이 직접 쓴 글이 있다. 이 글에서는 사제간의 의리를 잊지 않고 북경으로부터 귀한 책들을 구해다 준 제자 이상적(李尙迪)의 인품을 소나무와 잣나무에 비유하며 답례로 그려 준 것임을 밝히고 있다. 이상적의 변함없는 의리를 날씨가 추워진 뒤 제일 늦게 낙엽지는 소나무와 잣나무의 지조에 비유하여 그렸다.이 그림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는데, ‘세한도(歲寒圖)’라는 제목과 함께 ‘우선시상(蕅船是賞)’은 우선(蕅船)은 이상적(李尙迪, 1804- 1865)의 호(號)로 ‘이상적은 감상하게나!’라는 의미와 ‘장무상망(長毋相忘)’의 인장은 ‘오래도록 서로 잊지 말자’는 의미를 담고 있다고 한다. 즉, ‘나는 그대의 그 마음을 오래도록 잊지 않겠네. 그대 또한 나를 잊지 말게나. 고맙네. 우선!’이라는 뜻으로 스승이 제자의 변함없는 사랑을 표현(表現) 하였다.

  한 채의 집을 중심으로 좌우에 소나무와 잣나무가 대칭을 이루고 있으며, 주위를 텅 빈 여백으로 처리하여 극도의 절제와 간략함을 보여주고 있다. 오른쪽 위에는 세한도라는 제목과 함께 ‘우선시상’, ‘완당’이라 적고 도장을 찍어 놓았다. 거칠고 메마른 붓질을 통하여 한 채의 집과 고목이 풍기는 스산한 분위기가 추운 겨울의 분위기를 맑고 청절하게 표현하고 있다. 마른 붓질과 묵의 농담, 간결한 구성 등은 지조 높은 작가의 내면세계를 보여 주고 있다. 그림 자체는 단색조의 수묵과 마른 붓질의 필획만으로 이루어졌으며, 소재와 구도도 지극히 간략하게 다루어졌다. 이와 같이 극도로 생략되고 절제된 화면은 직업화가들의 인위적인 기술과 허식적인 기교주의와는 반대되는 문인화의 특징으로 작가의 농축된 내면세계의 문기와 서화일치의 극치를 보여준다.

  ‘벽계청장관(碧溪靑館)’ 편액을 추사 김정희(秋史 金正喜)가 소치(小癡)에게 당호(堂號)를 예서(隸書)로 써서 주어 운림산방에 걸었다고 한다. 그러나 이 편액은 추사의 글씨가 아니고 서예가 강암 송성용(剛菴 宋成鏞)의 전서(篆書)란다. ‘파도가 치는 큰 바다가 있어도 요동하지 않고 조용히 그림을 그리는 집’ 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단다. 한마디로 운림산방을 말한 것이다.

  적취산방(積翠山房)의 편액은 “山深多宿鳥/ 산이 깊으니 잠자는 새가 많다. 積翠山房 南農 許楗 作”의 작품으로 보아 남농 허건((南農 許楗, 1908~1987) 화실(畵室)의 당호(堂號) 편액(扁額)이다.

 운림산방(雲林山房) ㄷ자형 한식 기와로 정면 우측 3칸은 화실이며 나머지는 방으로 꾸몄다. 구조는 장대석으로 외벌대 기단을 형성하고 그 위에 초석을 놓고 네모기둥을 세운 굴도리집이다. 편액은 1974년(甲寅年 갑인년) 가을에 의재(毅齋) 허백련(許百鍊, 1891~1977) 선생이 썼다. 

  운림산방 안채는 一자형 초가로 평면구성은 좌로부터 각 1칸씩 방, 부엌, 안방, 웃방, 광의 순으로 배치하였다. 중앙의 안방 앞쪽에는 툇마루를 설치하였다. 사랑채는 막돌 초석 위에 네모기둥을 세운 민도리집으로 4칸 규모의 一자형 초가집이다. 왼쪽 끝 1칸은 안채로 들어가는 통로로 만들었으며 오른쪽에는 2칸의 광과 1칸의 방을 배치하였다. 구조는 안채와 비슷한 민도리집이며, 기단은 낮은 토단이다.

  운림사(雲林祠)는 1983년 건립된 정면 3칸의 맞배지붕이다. 막돌허튼층쌓기 기단 위에 다듬은 원형 초석을 놓고 두리기둥을 세운 1고주 5량 구조이며, 공포는 주간마다 1구씩의 공포를 배치한 다포식이다. 처마는 겹처마이며, 내부에는 우물마루를 깔았다. 사천사(斜川祠)는 정면 3칸, 측면 3칸의 팔작지붕이며 구조는 막돌허튼층쌓기 기단 위에 원형 장초석을 놓고 그 위에 두리기둥을 세운 2익공식이다.

  허련(許鍊)은 본관 양천(陽川), 자는 마힐(摩詰), 호(號)는 소치(小痴)이며 초명(初名)이 허유(許維)이다.「소치小癡」라는 아호(雅號)는 스승인 추사(秋史)께서 내려 주셨다. 시(詩)와 문(文)을 20대에 해남 대흥사(海南 大興寺)『동다송東茶頌』의 저자 초의선사(艸衣禪師)에게 학문을 익히고『세한도歲寒圖』로 유명한 추사 김정희(秋史 金正喜) 문하에서 서화(書畵)를 배워 남종화의 거목으로 조선조 후기의 일세를 풍미(風味) 하였으며 그의 화맥은 자자대대로 이어져 200여년동안 5대(五代)에 거쳐 9인의 화가를 배출 하였다.

  詩∙書∙畵에 뛰어나 三絶이라는 칭송까지 받는 그의 작품은 강한 느낌을 주는 갈필(마른붓질) 산수화가 주를 이루었지만, 노송(老松)-노매(老梅)-모란(牧丹)-괴석(塊石) 등 문기가 뛰어난 문인화(文人畵) 또한 일품이었다. 선생은 헌종대왕(憲宗大王)의 총애를 받아 어연(御硯)에 먹을 갈아 대왕을 상징하는 화중지왕(花中之王)이라는 모란(牡丹)을 그려 바쳤고, 왕실 소장의 고서화를 평(評)할 정도로 당대 최고의 화가로 추앙받아 극치의 영애를 누렸으며, 여생을 화성(畵聖)처럼 살았다. 대표작으로 57세(1866) 에 운림산방을 그린 선면산수도(扇面山水圖)와 스승 김정희 초상(金正喜 肖像), 묵모란(墨牧丹), 파초(芭蕉) 등이 있으며, 꿈처럼 지나간 세월을 기록한 몽연록(夢綠錄)이 수록된「소치실록小癡實錄」이라는 회고록(自敍傳)을 남겼다.

  운림산방 일지매(雲林山房 一枝梅)의 유래는 소치선생이 가꾼나무가 세 그루 있었는데 일지매(一枝梅, 꽃말: 인내, 고결한 마음, 기품, 품격)와 배롱나무(木百日紅, 꽃말: 떠나간 벗을 그리워함), 그리고 자목련(紫木蓮, 꽃말: 자연에의 사랑, 우애, 존경, 은혜)이다. 일지매는 해남 대흥사 일지암의 초의선사께서 소치가 운림산방을 열자 선물한 나무로 알려진다.

  소치기념관(小痴記念館)에는 소치와 허련의 3남 미산 허형(米山 許瀅)과 손자 남농 허건(南農 許楗) 허씨 집안 3대의 복제화·수석·단지·그릇 등 소장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진도 쌍계사 상록수림(珍島 雙溪寺 常綠樹林, 천연기념물 제107호)은 진도읍에서 약 8㎞ 떨어진 첨찰산(尖察山) 산기슭에 자리잡은 쌍계사(雙溪寺)옆에 위치하고 있다. 상록수림을 구성하고 있는 식물로는 동백나무와 후박나무, 참가시나무, 감탕나무, 졸참나무, 느릅나무, 말오줌때, 쥐똥나무 등과 지역특산식물인 삼색싸리와 돌팥이라 불리는 돌동부 등을 비롯한 여러 종류의 식물들이다.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상록수림들 중의 하나다.

  운림산방은 넓고 울창한 진도 쌍계사 상록수림(珍島 雙溪寺 常綠樹林, 천연기념물 제107호)이 있는 첨찰산(尖察山)과 남도전통회화(南道傳統繪畵)의 산실로 자연유산과 역사문화유산이 어우러진 역사적·경관적 가치가 뛰어난 명승지이다. 경내에는 남도전통미술관(南道傳統美術館)과 진도역사관(珍島歷史觀)이 있다. (자료출처: 문화재청, 두산백과 문화유산정보)

* 문화재 소재지: 전남 진도군 의신면 운림산방로 315, 등 (사천리)

* 동아닷컴[세한도(歲寒圖)]: http://news.donga.com/3/all/20151230/75640094/1 

* 한국문화재재단 문화유산채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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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일. 고앵자/ 채널A 보도본부 스마트리포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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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판 모세의 기적’이 있는 진도 모도(珍島 茅島)의 거시기에 추억

  거시기 회원 다섯 부부들이 2박3일 여름나들이로 전남 진도의 모도에서 8월 18일(화)부터 20일까지 보냈다. 모도(茅島)의 특산 해산물 꽃게, 단 한 마리씩 잡은 은빛 부서와 문어는 한 잔술의 안주로 웃음 묻어나는 이야기를 만들었다. 해변 산책로 데크에서 바닷바람과 해수욕의 추억을 잊을 수 없다. ‘한국판 모세의 기적’이라 부르는 신비의 바닷길을 걸으며 옛 추억 속 이야기들, 모도를 벋어나 진도의 명소 남종화의 산실 운림산방(雲林山房, 명승 제80호)과 소치기념관(小痴記念館), 남도전통미술관(南道傳統美術館), 진도역사관(珍島歷史觀), 첨찰산 쌍계사(尖察山 雙溪寺), 접도웰빙등산로(남망산 웰빙길 의신면 금갑리 산123-114)를 걸으며 바다와 크고 작은 섬들과 아름다운 어울림의 해안 비경, 접도를 나오며 임해면 백동리 해변식당에서 쫄복 점심도 잊을 수 없는 처음 맛보는 미각 이였다.

  모도(茅島)는 전라남도 진도군 의신면 모도리에 딸린 섬이다. 면적은 0.22㎢, 해안선길이 2.8㎞이다. 진도에서 2.8㎞ 지점에 있다. 섬의 모양은 북동∼남서 방향으로 긴 타원형이다. 최고점은 48m이며, 경사가 완만한 구릉지로 이루어져 있다. 해안은 대부분 사질해안이나, 남쪽에는 암석해안이 발달하였다. 1월 평균기온 3.2℃, 8월 평균기온 26.2℃, 연강수량 947㎜ 정도이다. 취락은 서쪽 해안에 밀집해 있으며, 주민들은 농업과 어업을 겸하고 있다. 농산물로는 보리·콩·조·시금치 등이 소량 생산되고, 근해에서는 멸치·농어·도미·숭어 등이 잡히며, 김·미역의 양식도 활발하다.

  ‘신비의 바닷길’ 또는 ‘한국판 모세의 기적’이 해마다 음력 3월 보름을 지난 사리 때면 고군면 회동리와의 사이에 바닷길이 열리면서 두 섬이 서로 이어진다. 이 현상은 약 2시간 동안 계속되고, 폭은 18m 정도나 된다. 이곳이 국내외에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1975년 주한 프랑스 대사가 이 현장을 목격한 뒤 이를 처음으로 프랑스 신문에 ‘한국판 모세의 기적’이라고 소개하고, 이어 일본 NHK가 이것을 다룬 뒤부터이다. 이후 해마다 수많은 관광객이 찾아와 바다 밑의 신비를 체험하는 관광명소가 되었다.

  ‘뽕할머니 전설’이 이곳과 관련하여 전해진다. 옛날 진도에는 호랑이에 의한 피해가 많아 회동 사람들이 뗏목을 타고 이 섬으로 피신했는데, 서두른 나머지 뽕할머니만 피신길에서 떨어져 회동에 남게 되었다고 한다. 뽕할머니는 헤어진 가족을 찾고 싶어서 매일 용왕님께 기도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꿈에 용왕님이 나타나 ‘내일 무지개를 내릴 터이니 바다를 건너가거라’ 하는 것이었다. 그 다음날 뽕할머니는 어젯밤의 선몽을 믿고 바닷가로 가보았더니 회동과의 사이에 무지개처럼 바닷길이 열린 것이다. 그제야 모도에서 할머니를 걱정하던 가족과 마을 사람들이 징과 꽹과리를 치며 바닷길로 나섰고, 할머니도 그리운 가족들을 찾아 나서던 중 바닷길에서 상봉하게 된다. 다시 가족을 만난 할머니는 ‘내 기도로 바닷길이 열려 너희들을 보았으니 이제 소원이 없다’는 유언을 남긴 채 기진하여 숨을 거두고 말았다. 그뒤 마을 사람들은 해마다 이곳에 제단을 차리고 할머니께 제사를 지냈고, 이날이 뽕할머니의 영혼이 하늘로 올라간 날이라고 해서 영등살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고 한다.

  모도에는 해마다 5월 신비의 바닷길이 드러날 때면 뽕할머니 제사를 곁들인 진도영등축제가 벌어져 볼거리를 더해 준다. 이 축제에는 해마다 수십만 명의 관광객이 찾아오는데 우리나라에서 외국인이 가장 많이 찾는 축제 가운데 하나로, 강강술래·씻김굿·들노래·다시래기·진도북춤·상여소리 등 남도 특유의 토속 문화를 맛볼 수 있다. 이 축제는 2000년 문화관광부에 의해 국내 최고의 축제로 뽑히기도 하였다. (자료출처: 두산백과)

 

이영일. 고앵자/ 채널A 보도본부 스마트리포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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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항 보경사 오층석탑(浦項 寶鏡寺 五層石塔)

  포항 보경사 오층석탑(浦項 寶鏡寺 五層石塔,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203호)은 보경사 경내 적광전 앞에 있는 높이 약 5m의 고려시대 석탑으로, 일명 ‘금당탑(金堂塔)’으로도 불린다. 1층 기단(基壇) 위에 5층의 탑신(塔身)을 올린 모습이다.

  탑의 기단 네 면과 탑신부의 각 층 몸돌에는 기둥모양을 조각하였다. 지붕돌은 밑면에 3단의 받침을 두었고, 네 귀퉁이는 약간 들려있다. 꼭대기에는 노반(露盤: 머리장식 받침)과 복발(覆鉢: 엎어놓은 그릇모양의 장식)이 남아 머리장식을 하고 있다.

  전체적으로 높고 날렵한 느낌을 준다. 통일신라의 석탑 양식을 따르고 있지만, 지붕돌받침이 3단으로 줄어드는 등 고려시대 석탑의 특징을 보이고 있다.『보경사금당탑기(寶鏡寺金堂塔記)』에는, 도인(道人), 각인(覺人), 문원(文遠) 등이 고려 현종 14년(1023) 3월에 이 탑을 세웠다고 적고 있다. (자료출처: 문화재청 문화유산정보)

* 문화재 소재지: 경북 포항시 북구 송라면 보경로 523 (중산리)

* 한국문화재재단 문화유산채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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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일. 고앵자/ 채널A 보도본부 스마트리포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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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항 보경사 대웅전(浦項 寶鏡寺 大雄殿)

  포항 보경사 대웅전(浦項 寶鏡寺 大雄殿,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461호)은 보경사의 중심 건물로 지은 시기를 알 수 없고 다만 조선 숙종 3년(1677)에 중건한 것으로 그 후 몇 차례 중수가 더 있었다. 현재의 건물에는 1932년의 대대적인 중수에 의한 양식적 특징이 주로 남아 있다. 보경사는 신라 진평왕 25년(602)에 진나라에서 유학하고 돌아온 대덕 지명법사(大德 知命法師)가 세운 절이다.

  이 건물은 조선후기 목조불전으로 정면 3칸·측면 2칸의 다포계 팔작지붕이며, 바닥에는 마루를 깔았다. 천장은 우물 정(井)자 모양으로 꾸며 천장 속을 가리고 있는 형태이다. 가운데칸 뒷부분에는 불단을 마련하여 석가모니불과 좌우에 미륵보살·제화갈라보살을 모신 삼존불상을 모셔 놓았다. (자료출처: 문화재청 문화유산정보)

* 문화재 소재지: 경북 포항시 북구 송라면 보경로 523 (중산리)

* 한국문화재재단 문화유산채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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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일. 고앵자/ 채널A 보도본부 스마트리포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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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항 보경사 원진국사비(浦項 寶鏡寺 圓眞國師碑)와 승탑(僧塔)

  포항 보경사 원진국사비(浦項 寶鏡寺 圓眞國師碑, 보물 제252호)는 보경사에 있는 고려 중기의 승려 원진국사 승형(圓眞國師 承逈, 1171∼1221)의 탑비이다. 원진국사는 속성이 신씨(申氏)이며, 자는 영회(永逈). 아버지는 통한(通漢)이며, 경상북도 상주 출신으로 회양산 봉암사 동순(洞純)에게 나아가 13세에 승려가 되어 승과에 합격하여 지눌(知訥)로부터 불법을 배워 명산을 두루 돌아다니며 수도를 하기도 하였고, 고종 2년(1215)에 왕의 부름으로 대선사(大禪師)에 임명되어 보경사의 주지가 되었다. 51세로 입적하자 고종은 그를 국사(國師)로 예우하고, 시호(諡號)를 ‘원진(圓眞)’이라 내리었다.

  원진국사비는 높이 188cm, 너비 104cm, 두께 17cm로 거북받침돌 위로 비몸을 세운 모습으로, 비몸 윗부분의 양 끝을 접듯이 머리없이 간결한 형태로 둘레에 독특한 당초무늬 장식은 당시에 유행하던 양식이다. 넓다란 바닥돌과 하나의 돌로 이루어진 거북받침돌은 여의주를 물고 있는 용머리를 하고 있다. 등에는 6각형의 무늬마다 ‘왕(王)’자를 질서정연하게 새겨놓았으며, 등 중앙에는 연꽃을 둘러 새긴 네모난 받침대를 조각하여 비몸을 끼워두게 하였다. 비몸의 둘레에는 덩굴무늬(唐草文)가 장식되어 있는데 이 역시 고려 중기의 특색이라 할 수 있다.

  원진국사비문에는 국사의 생애와 행적이 기록되어 있으며, 글은 당시의 문신이었던 이공로(李公老)가 지었고, 김효인(金孝印)이 글씨를 썼다. 비문에 의하면, 비가 완성된 것은 고종 11년(1224)으로 원진이 입적한 지 3년 후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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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포항 보경사 승탑(浦項 寶鏡寺 僧塔, 보물 제430호)은 보경사 뒷산의 중턱에 서 있는 묘탑으로, 원진국사(圓眞國師)의 사리(舍利)를 모셔두고 있다.

  승탑은 높이 4.5m, 단면 8각을 기본으로 삼은 전형적인8각원당형(圓堂形) 부도이다. 크고 긴 돌을 놓아 만든 넓고 네모난 탑구(塔區)의 가운데에 자리하고 있다.

  승탑 기단부(僧塔 基壇部)는 3단으로 구성되었는데, 맨 아래의 2단은 아무런 조각이 없지만, 맨 위의 1단에는 연꽃 무늬가 새겨져 있다. 곧 윗면에 꽃잎 하나([單葉)를 아래로 향하게 한 복련(覆蓮)의 연꽃 무늬 32개가 빙둘러 조각되었고, 그 가운데부분에는 가운데받침돌을 받치기 위한 2단의 각진 굄을 돋을새김해 놓았다. 가운데받침돌은 8각의 각 모서리에 모서리 기둥이 조각되었을 뿐 다른 장식은 없다. 윗받침돌은 맨 아래에 1단의 받침을 두었고, 옆면에는 1장의 꽃잎이 위로 솟은 앙련(仰蓮)의 연꽃 무늬가 32개 조각되었다. 꽃잎의 끝부분이 뾰족하고 가운데부분이 볼록하여 특이하다. 윗면에는 몸돌을 받치는 높직한 굄이 새겨져 있다. 꽃잎의 끝이 뾰족하고 중앙의 세로선이 볼록하게 돌출되어 당시로서는 드문 모습이다.

  승탑(僧塔)의 탑신(塔身)은 몸돌이 매우 높아 마치 돌기둥처럼 보이며, 한 면에만 자물쇠만 달린 문비(門扉)가 새겨져 있다.

  상륜부(相輪部) 지붕돌은 낙수면의 경사가 느리고, 모서리에서 뻗어나가는 곡선의 끝마다 꽃장식이 조그맣게 솟아있다. 처마의 곡선은 양쪽 끝에서 가볍게 들려있고, 추녀는 두터워 보인다. 지붕돌 위의 머리장식으로는 활짝 핀 연꽃받침 위에 복발(覆鉢: 엎어놓은 그릇모양의 장식)을 올리고, 연꽃조각이 새겨진 돌을 놓은 다음, 보주(寶珠: 연꽃봉오리모양의 장식)를 얹어서 마무리 하였는데 보존이 잘 되어 원래의 모습을 잘 알 수 있다.

  전체적으로 8각형을 기본으로 삼고 있으나, 몸돌이 지나치게 길어 전체가 길쭉해 보이며 너비도 좁아 안정감이 적다. 각 부분의 조각에도 생략이 많아 단순한 감이 들고 밋밋하다. 보경사 경내에 있는 원진국사비(圓眞國師碑, 보물 제252호)의 비명에 의하면, 건립 시기는 1224년(고종 11)으로 추정된다. (자료출처: 문화재청, 한국민족문화대백과 문화유산정보)

* 문화재 소재지: 경북 포항시 북구 송라면 보경로 523, 보경사 (중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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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일. 고앵자/ 채널A 보도본부 스마트리포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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