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제이화문화병(銀製李花文花甁. 등록문화재 제453호)

  은제이화문화병(銀製李花文花甁. 등록문화재 제453호)은 규격은 164mm x 302, 재료는 은과 금으로 목이 길고 몸통이 부르고 긴 목 양쪽에 두 개의 귀가 달린 의례용기(儀禮用器) 형태의 화병이다.

  이 화병은 주석의 합금율이 높아 표면 광택이 밝다. 기계로 생산한 제작방식과 대한제국 황실의 문장인 오얏꽃(李花)을 두툼하게 붙여 넣은 점에서 근대적인 요소를 찾아볼 수 있다.

  대한제국의 왕실에서 사용하는 공예품을 제작하기 위해 설립된 이왕직미술품제작소에서 1910년대에 제작한 것으로 당시 공예품 제작의 실상을 보여주는 유물로서 사료적 가치가 크다. (문화재청 문화유산정보)

* 문화재 소재지: 서울 종로구 사직로 34 (국립고궁박물관)

* 한국문화재재단 문화유산채널:

http://www.k-heritage.tv/hp/hpContents/photo/view.do?categoryType=1&contentsSeq=10861

 

정보: chA 이영일/ 채널A 보도제작부 스마트리포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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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복궁 근정전 월대의 서수들과 천정의 조룡이야기

  경복궁 근정전(景福宮 勤政殿)은 국왕의 즉위식이나 문무백관의 조회, 외국 사절의 접견 등 국가적 중요 행사를 거행하는 곳으로 정전(正殿)의 동.서.남.북의 월대(月臺)에 서수(瑞獸)는 4령신상(四靈神像), 12지신상(十二支神像), 해치상(獬豸像)이 있다.

. 해치상(獬豸像)은 정의의 심판관으로 불리며 전설 속에 나오는 “정의를 사수하고 불의를 물리친다”는 상상의 동물이다. 사자와 비슷한 형상에 머리에 뿔이 나 있는 해치(獬豸)는 목에 방울을 달고 있고, 몸 전체는 비늘로 덮여 있으며, 겨드랑이에는 날개를 닮은 깃털이 나 있다. 선한 사람과 악한 사람을 구분한다는 특성 때문에 후세에는 해치의 모습이 재판관의 옷에 그려졌고, 조선시대에는 관리들을 감찰하고 법을 집행하는 사헌부의 우두머리인 대사헌(大司憲)이 입는 관복의 흉배(胸背)에 해치를 새겼다. 서수(瑞獸)라는 이름으로 정전(正殿) 월대(月臺)의 모서리 4곳에 서 있는 해치상(獬豸像)은 정의로운 행동에는 아낌없이 영예를 내리되 불의에는 단호히 맞서는 자세로 국정을 운영한다는 임금의 의지를 상징적으로 나타내는 동시에 부도덕한 재앙의 유입을 차단한다는 신수(神獸)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

. 4령신상(四靈神像)은 하늘을 움직이는 신상으로 2층 월대 동서남북 석계 엄지기둥 위에 세워져 있는데, 북쪽에 현무신(玄武神), 남쪽에 주작신(朱雀神), 동쪽에 청룡신(靑龍神), 서쪽에 백호신(白虎神)이 석상으로 세워져 있다. 4령신(四靈神)은 영명하고 신성한 하늘의 28개의 별과 소통하여 정전의 기운을 우주의 질서에 편입시켜 하늘의 힘으로 안전하게 보호하는 역할을 한다. 현무신은 북쪽의 찬기운(어둠ㆍ죽음ㆍ살상)을 순화시켜 막아주고, 주작신은 남쪽의 순풍(밝음ㆍ무병장수ㆍ입신)을 빠짐없이 받아들여주는 역할을 한다고 믿었다. 이로 인해 찬 기운은 차단하고 따뜻한 기운은 가득하여 정전(正殿)은 항상 밝고 따뜻한 기운으로 넘쳐난다고 믿었다.

. 12지신상(十二支神像)은 땅을 움직이는 신상으로 원래 중국에서 전래하여 왕릉(王陵)을 지키는 석상으로 활용되다가 사찰이나 저택의 건축물에 사귀의 접근을 차단하는 주술적 영신(靈神)으로 배치하는 일종의 신앙의 대상이 되었고 현재는 띠 동물로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12지신(十二支神)은 시간신(時間神)과 방위신(方位神)의 역할을 감당하여 그 시간과 그 방향에서 오는 사악한 기운을 막아내는 수호신으로 일컬어진다. 정전에 매 시간 전(全) 방향에서 오는 사악한 기운을 차단하고 벽사구복(僻邪求福)을 실현한다는 상징성을 가지고 있다. 12지는 12지신으로 구성되어 있고, 12개의 방향, 24시간의 시간, 12개월의 시기를 관장한다. 12지(十二支)가 자축(子丑)으로 시작해서 술해(戌亥)로 끝나는데 정전(正殿)의 월대(月臺)에 개인 술신상(戌神像), 돼지인 해신상(亥神像)이 없는 것은 잘못 복원한 것이다.

. 어의(御衣)와 전각 보개천장(殿閣 寶蓋天障)의 조룡(爪龍)이야기: 조선국은 국왕이 5조룡(五爪龍), 세자(世子)는 4조룡(四爪龍) 의(衣)를 입었으며 대한제국은 황제(皇帝)는 7조룡(七爪龍) 의(衣)를 입고 황태자·황태제·친왕은 5조룡(五爪龍) 의(衣)를 입을 수 있었다. 대한제국 황제(皇帝)가 임어(臨御)하는 전각의 천장 또는 중국 황제(皇帝)를 상징하는 모절(旄節)과 칙서(勅書)를 앞세우고 온 칙사(勅使)가 머무는 경회루 등 건물의 천장에 7조룡(七爪龍)을 조각하여 놓았다. 조선국 왕궁의 천장 조각은 5조룡(五爪龍)이다. 근정전 천장의 7조룡(七爪龍) 조각은 대한제국 황제(皇帝)가 임어(臨御)하는 전각의 천장 또는 중국 황제(皇帝)를 상징하는 모절(旄節)과 칙서(勅書)를 앞세우고 온 칙사가 머무는 경회루 등 건물의 천장에서 떼어와 잘못 복원한 것이다. 용의 발톱의 갯 수가 7개면 7조룡을 말하며, 5개면 5조룡, 4개면 4조룡을 말한다. - 근정전 정면 전경, 근정전 남쪽, 동쪽과 서쪽, 남쪽의 서동과 북쪽, 근정전 보개천장과 어좌. 근정전 측면 전경 -

* 문화재 소재지: 서울 종로구 청와대로 1 (세종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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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제 금산사 일원과 대적광전(金堤 金山寺 一圓과 大寂光殿. 史蹟 제496호)

  김제 금산사 일원(金堤 金山寺 일원. 史蹟 제496호)은 모악산(母嶽山) 기슭에 있는 산지가람(山地伽藍)이다. 사적기에 의하면 600년(백제 법왕 1)에 왕의 복을 비는 사찰로서 창건되었다고 전하나 작은 규모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734년(신라 성덕왕 33)에 진표(眞表) 율사가 이곳에서 순제(順濟) 법사에게 출가하여 세상을 돌아다니다가 부사의방장(不思義方丈)에 들어가 미륵(彌勒)과 지장보살(地藏菩薩)으로부터 계법을 전수받고 다시 돌아와 762년(경덕왕 21)부터 766년(혜공왕 2)에 걸쳐 금산사를 중창하였는데 미륵장육상(彌勒丈六像)을 조성하여 주존으로 모셨다고 한다. 이후 금산사는 법상종(法相宗)의 근본도량이 되었다. 그 후 후백제 견훤(甄萱)의 지원으로 사찰을 일신 중창하였고 고려시대에는 1079년(고려 문종 33)에 혜덕(慧德) 왕사가 주석하며 사찰을 중창하였다. 혜덕의 뒤를 이어 도생(導生) 승통과 원명(圓明)대사가 불사를 계속하여 이때 이루어진 대가람이 조선시대까지도 이어졌다. 1598년(선조 31)의 정유재란(丁酉再亂)으로 모든 전각과 산내 암자까지 회진되었는데 전후 1601년(선조 34) 수문(守文) 대사가 중창을 시작하여 1635년(인조 13)에 낙성을 보았다. 미륵전과 대적광전(大寂光殿), 만세루(萬歲樓), 대장전(大藏殿) 등 현존하는 건물들이 이때 중건되었으나 중창의 범위가 대사구(大寺區)에 한정되어 광교원과 봉천원은 복구되지 못하였으며 이후 여러 차례의 중수와 개축을 거쳐 오늘에 이르고 있다.

  대적광전은 1986년에 화재로 불탄 것을 1994년에 복원한 금산사의 중심 사원이다. 국보 제62호인 미륵전을 비롯하여 고려시대 석조문화재 및 조선후기의 목조건축 등 11개의 국가지정문화재가 보존되어 있는 호국사찰로 역사적, 문화사적 의의 등 학술적인 측면에서 중요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

  김제 금산사 대적광전(金堤 金山寺 大寂光殿)은 모악산 금산사의 중심 건물 규모에 비해 낮게 느껴지는 2단의 기단 위에 세워진 정면 7칸의 다포식 팔작지붕 건물로, 화려함보다는 은근히 큰 규모와 우아함이 돋보이는 건물이다. 대적광전의 측면 모습. 조선시대 다포식 사찰 건축의 모습이다.

  4출목의 공포, 금단청과 꽃창살이 화려하지만 전체적으로 오버하지 않고 기품있는 스타일이다. 용마루 끝의 취두. 여의주를 물고 있는 용머리 모양이다. 여의주 부분을 가까이 들여다보았다. 기왓장이 켜켜이 쌓인 양쪽 내림마루와 용마루가 취두를 중심으로 강회로 잘 연결되어 있다. 처마 아래의 공포들. 용머리가 붙어 있다, 수평부재에는 다양한 그림도 그려져 있다. 줄줄이 늘어선 공포들의 모습. 공포의 제일 위쪽 출목에는 봉황이 조각되어 있다. 건물 자체가 상당히 커서 그런지도 모르겠지만 화려함을 적당히 절제하는 디자인이다. 한옥의 지붕은 매우 특별한 의미를 많이 가지고 있다. 디자인적 요소 중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부분이기도 하다. 지붕을 길게 빼면 눈비에도 강하고 늘 그늘이 져 시원하다. 그러나 그만큼 지붕이 커지기 때문에 받쳐 올리기 힘든 구조가 된다. 한옥의 지붕 구조가 훌륭한 가장 큰 이유는, 이러한 어려움을 다양한 부재들을 사용해 공학적으로 잘 해결해 냄과 동시에, 특별히 장식을 위한 디자인을 더 붙이지 않고도 충분히 미적 표현과 기교 측면에서 우수하다는 점이다. 이는 중국과 일본의 건축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점이기도 하다. 훌륭한 공예품은 쓸데없는 장식을 붙이지 않는다.

  대적광전(大寂光殿)은 화엄전(華嚴殿), 비로전(毘盧殿)이라고도 불리며, 화엄종 사찰에서 비로자나불(毘盧遮那佛)을 본존으로 모시는 전각이다. 비로자나 부처님은 이 세상 모든 진리의 깨달음을 상징하는데, 이 비로자나불이 있는 연화장(蓮華藏)세계는 장엄하고 진리의 빛이 가득한 대적정의 세계라 하여 전각 이름을 대적광전이라고 한다.

  대적광전은 대광명전(大光明殿)이라고도 하며, 줄여서 대광전(大光殿)이라고도 불리는데, 이 곳의 주불(主佛)인 비로자나부처님이 두루 비치는 빛, 즉 광명이나 적광의 성질을 갖고 있어 이렇게 이름 지어진 것이다. 또한 화엄종 사찰의 주불전일 경우 이 이름을 붙이지만, 주불전이 아닐 경우에는 비로전(毘盧殿)이라 한다. 금산사의 대적광전은 미륵전의 서쪽에 위치하며 정면 7칸, 측면 4칸으로 다포식의 팔작지붕 건물이다. 누각 아래를 통과해 들어간 진입 축에서 마주 보이며 7칸이나 되는 긴 건물이라서 장중하고도 깊숙하다. 장대석으로 기단을 쌓고 귀솟음기둥을 올렸는데, 처마 끝이 하늘로 향하고 있으며 넓은 대지에 착 가라앉은 듯한 차분함이 있다. 불당 면적이 90여 평이나 되는 건물내부 또한 툭 트여있어 더욱 넓어 보이는데, 둥근 대들보가 연속 배치되었고 청초한 단청의 공포가 현란하다. 기다란 불단위에는 비로자나불을 비롯한 5구의 목조 불상과 6구의 보살상이 봉안되어있고 불상의 머리위에는 각각 닫집이 있다. 이 곳에 모셔진 불상들을 보면 아미타불(阿彌陀佛)-석가불(釋迦佛)-비로자나불(毗卢遮那佛)-노사나불(盧舍那佛)-약사여래불(藥師如來佛)의 5부처와 이들 사이에 모셔진 대세지(大勢至菩薩)-관음(观音菩萨)-문수(文殊菩薩)-보현(普賢菩薩)-일광(日光菩薩)-월광보살(月光菩薩)의 6보살로 이루어져 있으며, 화엄 도량이 갖추고 있는 대웅보전과 대적명전, 극락전, 약사전 등의 여래 전각들이 한군데 합쳐진 것과 같다. 그래서 불교학자들은 금산사가 대승불교의 신앙체계를 모두 갖춘 종합사찰의 성격을 지니고 있다고 해석한다. 불타기 전 대적광전 후불벽 뒷면에 그려졌던 관음보살상은 조선 중기에 제작된 불화로 우수한 수준이었다고 한다.

  1994년 불보살상과 닫집을 새로 봉안하면서 이전에 있던 목조 나한상은 복원되지 않았다. 금산사 대적광전은 현존 불전건축 중 가장 평활한 건물로 꼽힌다. 대적광전의 편액은 부석사의 무량수전과 같이 4글자를 쓴 정사각 형태의 편액이다. 금산사 대적광전은 보물 476호로 지정되어 있었으나, 원래 건물은 22년 전인 1986년 화재로 소실되어 문화재 지정이 취소되었다. 현재 건물은 화재 후 복원된 것으로, 1994년에 지금과 같은 모습으로 완공되었다. (김제 금산사 문화유산정보) - 대적광전. 명부전. 조사전. 원통전 천수관음상. 나한전. 석비의 이수와 귀부 –

* 문화재 소재지: 전북 김제시 금산면 모악15길 1, 금산사 (금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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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제 금산사 육각 다층석탑(金堤 金山寺 六角 多層石塔. 보물 제27호)

  김제 금산사 육각 다층석탑(金堤 金山寺 六角 多層石塔. 보물 제27호)은 금산사 소속의 봉천원(奉天院)에 있던 것을 현재 자리인 대적광전 앞의 왼쪽으로 옮겨 왔다. 우리나라의 탑이 대부분 밝은 회색의 화강암으로 만든 정사각형의 탑인데 비해, 이 탑은 흑백의 점판암으로 만든 육각다층석탑이다.

  탑을 받치는 기단(基壇)에는 연꽃조각을 아래위로 장식하였다. 탑신부(塔身部)는 각 층마다 몸돌이 있었으나 지금은 가장 위의 2개 층에만 남아 있다. 몸돌은 각 귀퉁이마다 기둥모양이 새겨져 있고, 각 면에는 원을 그린 후 그 안에 좌불상(坐佛像)을 새겨 놓았다. 지붕돌은 낙수면에서 아주 느린 경사를 보이다가, 아래의 각 귀퉁이에서 우아하게 들려있다. 밑면에는 받침을 두었는데, 그 중심에 용과 풀꽃무늬를 새겨놓았다. 꼭대기의 머리장식은 남은 것이 없었으나, 훗날 보충한 화강암으로 만든 장식이 놓여 있다.

  벼루를 만드는데 주로 쓰이는 점판암을 사용하여 이색적인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으며, 각 층의 줄어드는 정도가 온화하고 섬세하다. 몸돌과 지붕돌에 새겨진 조각수법으로 보아 고려 전기에 세워진 탑으로 짐작된다. (문화재청 문화유산정보)

* 문화재 소재지: 전북 김제시 금산면 모악15길 1, 금산사 (금산리)

* 한국문화재재단 문화유산채널:

http://www.k-heritage.tv/hp/hpContents/photo/storyView.do?categoryType=4&contentsSeq=10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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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제 금산사 석련대(金堤 金山寺 石蓮臺. 보물 제23호)

  김제 금산사 석련대(金堤 金山寺 石蓮臺. 보물 제23호)는 석조연화대좌의 준말로 불상을 올려놓는 돌로 만든 받침대이다. 연화대좌는 흔히 볼 수 있는 것이지만 이것은 형태가 희귀하고 크기도 매우 거대하다. 금산사 대적광전에서 동남쪽으로 10m쯤 되는 돌단 밑에 있는데, 이곳이 원래 위치인지는 알 수 없다.

  한 돌로 조각한 것이지만 여러 개의 돌을 사용한 것처럼 상·중·하의 구성이 정연하다. 상대는 윗면이 평평하며 중앙에 불상의 양발을 세워 놓았던 것으로 보이는 네모난 구멍이 두 개 있다. 밑면에는 윗면을 떠받치는 연꽃이 에워싸고 있으며, 꽃잎 사이에도 작은 잎들이 틈틈이 새겨져 있어 더욱 화려하다. 중대는 육각형으로 꽃무늬를 돋을새김 하였다. 하대는 엎어놓은 연꽃모양이 출렁이는 물결무늬처럼 전면을 채우고 있다.

  이 작품은 통일신라시대의 양식을 따르고 있으나, 사치스러운 조각 및 장식 등으로 보아 통일신라에서 고려로 넘어가는 시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짐작된다. (문화재청 문화유산정보)

* 문화재 소재지: 전북 김제시 금산면 모악15길 1, 금산사 (금산리)

* 한국문화재재단 문화유산채널:

http://www.k-heritage.tv/hp/hpContents/photo/view.do?categoryType=1&contentsSeq=108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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