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백년 선비의 집, 논산 명재고택(論山 明齋古宅)

  논산 명재고택(論山 明齋古宅, 중요민속문화재 제190호)은 ‘구 윤증 선생의 고택(舊 尹拯 先生故宅)으로 조선 숙종 때의 학자인 윤증(尹拯, 1629∼1714)이 1709년에 지었다고 전하는 집이다. 후대에 수리가 있었던 듯 하며 그 세부기법은 조선 중기 호서지방의 양반가옥 건축양식을 보이고 있다. 안채를 중심으로 광채와 사랑채의 기능적 배치는 논산 명재고택에서만 볼 수 있는 우리 옛 선조들의 건축적 지혜다. 특히 수납공간인 광채를 안채와 비켜서 배치함으로써 비, 바람, 햇빛 등 자연현상에 대비한 것은 주생활 공간의 세련된 지혜다. 이와 함께 남쪽 바깥공간에는 네모진 연못이 있는데, 조선시대의 전통적인 연못의 기법을 볼 수 있다. 노성산성이 있는 이 산의 산자락에 노성향교와 나란히 남향으로 배치되어 있다.

  명재 윤증(明齋 尹拯, 1629~1714)은 조선 후기의 학자, 정치인, 사상가이다. 호는 명재(明齋)이며, 본관은 파평인(坡平人)이다. 김집(金集), 유계(俞棨), 송시열(宋時烈) 등 고명한 학자들에게 수학하였으나 부친 노서 윤선거(魯西 尹宣擧)처럼 벼슬에 뜻을 두지 않고 성리학을 공부했으며, 특히 예학(禮學)이 밝았다. 학문과 덕을 쌓는 것에 전념해서 모든 선비의 흠모의 대상이 되어 ‘백의정승(白衣政丞)’이라 불리웠다.

  윤증(尹拯)은 1682년(숙종 8년)에 호조 참의, 1684년 대사헌(大司憲), 1695년 우참찬(右參贊)에 임명되었으나 모두 사양하자 1709년(숙종 35년)에 임금이 “내 평생 얼굴을 보지 못했으나 경의 생각은 잠시도 잊지 않았거늘 경은 어찌 내 마음을 알지 못하는가”하며 우의정에 임명하고 사관을 보내 임명장을 전했지만, 14번의 상소를 올리고 끝내 사양했다. 1714년(숙종 40) 병이 위독해지자 자손 및 제자들이 모인 가운데 “내가 죽은 후 선비의 예절로써 장사 지내고 명정(銘旌)에는 내 관직을 쓰지 말고 작은 선비라 쓰라”고 엄히 당부했다.

  사랑채는 바깥주인의 공적 공간 그리고 휴식처로 전면의 농토와 정원을 바라볼 수 있는 위치에 높은 기단 위에 앞면 4칸·옆면 2칸 규모로 지었고, 왼쪽 1칸 뒤로 ‘一’ 자로 중문간채가 자리잡고 있다. 평면이 대문채의 동쪽과 북쪽을 연결해 안채 마당을 통과하도록 되어 있다. 사랑채 공간역시 공적인 공간으로서 독립성을 주면서도 안채와 자연스럽게 연결되어 있는데, 이는 명재고택의 지혜이면서 멋이다.

  온돌방인 큰 사랑채 중심으로 서복쪽에 작은방이 있고, 동남서면은 마루로 돌려져 있다. 사랑채의 한편에는 2칸 누마루가 있고 2칸의 방이 있으며, 방의 앞과 옆으로 마루가 달려 있다. 누마루의 창문은 4분합 들문으로 문을 들어 천정의 걸쇠에 걸면 창틀의 규격이 이상적인 황금비율에 가까운 것이 특징이다. 또한, 사랑채 큰방과 작은방으로 연결되는 미닫이와 여닫이를 겸할 수 있는 방문은 다른 가옥에서는 볼 수 없는 독창성이 뛰어난 작품이다.

  일영표준(日影表準)이라 새긴 글귀가 사랑채 디딤돌 앞에 있는 댓돌 자리는 해시계를 관찰하는 영점 자리이고 이곳에 막대를 꽂아 해시계로 사용했다고 한다.

  안채는 안살림의 편리성을 갖춘 독립공간으로 중문간채가 있어 안채가 바로 보이지 않도록 1칸 돌아 들어가게 중문을 내었다. 중문간채와 함께 튼 ‘ㅁ’자 모양을 이루고 있다. 중문을 지나 안채 마당으로 들어서면 ‘ㄷ’자 모양의 공간이 형성되어 있고, 다시 여섯 칸의 대청과 퇴가 마루로 연결되어 좌우 공간의 독립성을 확보했다. 안채에서 넓게 자리잡은 대청은 제사를 위한 제청 및 초례청과 가족모임 장소가 되기도 한다.

  명재고택의 안채는 충청지방 특색인 평면을 따르면서 독창성을 가지고 있다. ‘ㅡ’자형의 대문에서 안채가 보이지 않도록 두 번째 칸에 내외벽을 배치함으로써 외부사람의 접근과 내부사람의 독립성을 고려한 완충적 공간으로 지었다.

  집 앞에는 넓은 바깥마당이 있고 그 앞에 인공연못을 파고 가운데에 원형의 섬을 만들어 정원을 꾸몄다. 또한 안채 뒷쪽에는 완만한 경사지를 이용하여 독특한 뒤뜰을 가꾸어, 우리나라 살림집의 아름다운 공간구조를 보이고 있다. 모든 건축부재의 마감이 치밀하면서 구조가 간결하고 보존상태도 양호한 조선의 양반주택으로 중요하다. (참고문헌: 문화재청 문화유산정보)

* 문화재 소재지: 충남 논산시 노성면 노성산성길 50 (교촌리)

* 백의로 조선을 경영한 정승, 명재 윤증:

http://blog.donga.com/yil2078/archives/30463

* 한국문화재재단 문화유산채널:

http://www.k-heritage.tv/brd/board/277/L/menu/260?brdType=R&thisPage=1&bbIdx=12820&searchField=&searchText=

 

이영일∙고앵자/ 채널A 정책사회부 스마트리포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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