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에 그녀가 남긴 기적

5월 10일. 뒤늦게 부고 기사 한 줄을 읽었다. 글자가 뿌옇게 흐려져서 마지막
문장을 읽기까지 여러 번 코를 풀어야 했다. 사진 속 그녀는 분명 웃고 있었지만
자꾸 우는 것처럼 보일 정도였다.

 

부고 기사를 보고 울었던 적이 있었던가? ‘영혼의 지도자’가 영면하셨을 때도
‘만인의 연인’이 영별했을 때도 가슴이 휑해지기는 했지만 울음이 터지지는 않았더랬다.

 

돌이켜 보면, 그녀의 글귀들은 곧잘 나를 울리곤 했었다.

 

그녀의 글을 처음 접한 책은 ‘내 생애 단 한번’이었다. 매학기 장 교수의 수업을
듣던 동생이 건네준 책이었고 이후 모든 책을 섭렵했던 것 같다. “세상은 아름답다”는
명제에 대해 그것은 pseudo-휴머니즘일 뿐 진정한 휴머니스트라면 현실을 직시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고 믿던 사회과학도의 마음속에 ‘혁명’이 일어났던 것으로
기억한다.

 

나의 경험으로 미루어 볼 때, 그녀와 일면식도 없는 많은 사람들이 눈시울을 훔치는
까닭은 그녀가 ‘희망 전도사’여서도 아니고 ‘행복 전도사’여서도 아니고 ‘문학소녀’여서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세상에 희망을 얘기하는 사람이, 행복을 전파하는 사람이, 문학을
사랑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가? 그들과 다르게 그녀의 글들은 ‘진정성’이 있다.
울림이 큰 이유다.

 

 

몸을 불편한 그녀에게 3번이나 암이 찾아왔고 마지막 암은 이겨내지 못 했다.
그러나 그녀는 항상 미소를 지으며, 그래도 세상은 아름답다고, 살 만 하다고 아니
살아야 한다고 얘기한다. 유작이 되어버린 수필집 유고 수필집 ‘살아온 기적 살아갈
기적’에서 그녀는 “맞다. 지난 3년간 내가 살아온 나날은 어쩌면 기적인지도 모른다.
힘들어서, 아파서, 너무 짐이 무거워서 어떻게 살까 늘 노심초사했고 고통의 나날이
끝나지 않을 것 같았는데, 결국은 하루하루를 성실하게, 열심히 살며 잘 이겨냈다.
그리고 이제 그런 내공의 힘으로 더욱 아름다운 기적을 만들어 갈 것이다.”라고
말했다. 여기에서 위로받지 않을 자 누가 있을까?

 

습관처럼 ‘장영희’를 치고 검색되는 블로그들을 읽어보니 참 아름다운 인연들을
많이 남기셨다는 것도 알았다. 그녀가 내민 손길이 얼마나 세상을 따뜻하게 했는지를
기록하고자 몇몇 글을 옮겨 적는다.

 

- 2005년 장영희 교수의 ‘19세기 미국 소설’ 수업을 들은
학생(ID 커스터드)

 

밤샘 공부를 하고 퀴즈를 보아도 학점은 B였다. 지나고 나니 당시 수업 내용과
토론 내용이 큰 보탬이 되었다는 고백과 함께 모든 학생들에게 깜짝 선물을 하셨다는
얘기를 전한다. 바로 장 교수의 수필집 ‘내 생애 단 한번’ 과 손수 만드신 책갈피였다고.

(블로그 전문 중에서) 책갈피에는 다음과 같은 문구가 프린트 되어 있다. “To
improve is to change, to be perfect is to change often” 제 2차 세계대전으로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바 있는 윈스턴 처칠의 명언이다. 뒷면에는 교수님의
자필로 된 서명이 적혀 있다. ‘With love, 장영희’.

 

- 캐나다에서 부동산 중개인으로 일하는 장교수의 대학 1년
후배(ID 워털루맨)

 

(블로그 전문 중) 일을 마치고 모교에서 교편을 잡고 있던 동창들과 점심 식사를
같이 했는데 그 자리에 장선배도 동석했다.…그날 좌중의 대화는 장 교수가 거의
독점하다시피 했다.그녀는 자기가 엄청난 방향치여서 운전하면서 겪은 말도 안 되는
실수들을 하이 피치의 목소리로 얼마나 재미있게 얘기하던지 모두 배를 잡고 웃었다.
이미 십여년의 교편 경력이 있는 그녀는 더 이상 단발머리의 부끄러워 어쩔 줄 몰라
하던 수줍은 소녀가 아니었고 자신의 장애나 실수에 얽매이는 소심한 사람이 아니라
그것들을 웃음으로 극복할 줄 아는 지혜롭고 쾌활한 중년 여성이었다.

 

- 말년 병장이 되어 군대문고에서 장 교수의 책을 발견했다는
ID 멍군

 

우연히 읽게 된 장교수의 책에 감동을 받아 이 블로그의 주인은 장 교수에게 직접
장문에 편지를 쓰게 된다. 그 과정을 옮겨오면 아래와 같다.

 

(블로그 전문 중) 이것저것 읽다가, 구석에서 유난히도 읽기 싫은 제목의 책을
발견했다. “문학의 숲을 거닐다” 아. 그 당시에 이 책만 한 10권 있었는데, 깨끗한
상태로 아무도 빌려간 흔적이 없었다. 판타지나 무협소설은 안 읽는 본인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메일 내용을 보면 알겠지만, 방송국 사연엽서가 아니면 절대 펜을
잡지 않는다는 전역 50일도 안 남긴 상태에서 장영희 교수님께 장문의 편지를 썼던
기억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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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고급 영어가 아니어도 좋다. 정확한 소통 능력을 배양하라.

‘유엔 거버넌스 센터’에서 홍보담당관으로 일하고 있는 김정태 씨는

외국 거주 경험도, 유학도 하지 않은 토종파입니다.

어학연수 6개월이 외국 생활의 전부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언어에 능통해야 하는 홍보까지 하게 되었을까?

 

2004년 9월 고려대 국제대학원에 진학한 정태 씨는

현재 유엔과 국제 활동 정보센터(ICUNIA)로 이름이 바뀐

유엔과 국제기구에서 주최한 유엔 산하 기구 내 전문가 특강에 참가했다가

문을 박차고 나온 경험이 있다고요. 도대체 알아들을 수가 없었답니다.

 

그러나 2006년 유엔 본부 인턴을 거쳐

2007년 유엔거버넌스센터에 채용되었으니 그의 성장이 놀랐습니다.

 

김씨는 영어를 얼마나 구사하는 가가 아니라

얼마나 정확히 소통하느냐의 문제라고 말했습니다.

인턴 당시 "상사가 업무의 많은 부분이 이메일에 정확하고 간결한 답변을
보내는 것"

이라며 "국제 기구의 특성상 무수히 많은 페이퍼워크(paper work)가 요구된다"고

조언했다고 합니다.

 

김씨는 탁월한 소통 역량을 기르기 위해

시민단체 홍보출판부에 인턴기자로 들어가 6개월간 활동했고

유엔과 국제기구에 대한 많은 자료를 입수해 관련 지식을 쌓아갔다고 합니다.

그리고 지금은 바라던 대로 유엔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노력을 하되, 효율적인 방법으로 할 것. 제가 배운 점입니다.

아래는 인터뷰를 정리한 것입니다.

 

 

.

 

김정태(32) UNPOG(유엔거버넌스센터) 홍보 담당관은 고려대학교 국제대학원을
졸업하고 어학연수 6개월이 외국생활의 전부인 토종파이다. 이후 2006년 7월부터
6개월간 유엔 본부에서 인턴을 했고 이를 바탕으로 UNPOG에 채용됐다. UNPOG는 시민
참여적인 정책 개발 과정을 보급할 목적으로 설립되었고 한국에 세워진 최초의 유엔사무국
산하기구다.

 

김씨는 후배들에게 인턴십 과정을 적극 권한다면서 인턴십을 ‘리트머스지’로
활용할 것을 권유했다. 김씨는 “실무를 접해 보면 국제기구 일이 내게 맞는지, 안
맞는지 확실해진다”며 “인맥을 미리 쌓을 수 있고 전문 영어를 배울 수 있는 장점도
있다”고 소개했다.

 

김씨는 국내 기업과 달리 유엔 인턴은 출근 첫날부터 직원과 동일한 업무를 수행한다고
했다. 김씨의 업무는 국제회의 참석자들에게 안건을 만들어 배포하고, 유엔 잡지(Journal
of UN)에 회의 결과를 기사로 싣는 일이었다. 당시 P-4급에서 하던 일을 맡아하며
김씨는 무수한 서류가 오가는 국제 업무 특성상 간결하고 명확한 커뮤니케이션 능력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김 씨는 시민단체 인턴기자로 활동하고 국제기구 관련
자료들을 섭렵해서 커뮤니케이션 능력을 키우는 데 집중했고 현재 홍보 일에도 큰
도움이 되고 있다.

 

그러나 유엔 인턴십은 원칙적으로 무급이라는 단점이 있다. 해외 체류비 등을
고려하면 만만한 금액이 아니므로 국내 대학이나 정부에서 마련한 인턴십 지원 프로그램을
이용하는 것이 좋다. 경희대, 서강대, 이화여대 등에서 인턴십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여성부도 국제전문 여성인턴을 매년 선발한다.  

 

김씨는 “ Work at UN(직접 근무)말고도  Work with UN과 Work for UN도
있다”며 국제기구 진출이 다걸기 할 것이 아니라 여러 선택지 중 하나로 열어두라고
말했다. NGO나 학계에서도 국제 사회에 공헌한 길은 많으므로 너무 좁은 길만 고집하지
말라는 얘기다.

 

“대기업, NGO, 공공기관 등 여러 곳에서 인턴을 해 보았더니 스스로 가장 관심
있는 부분이 ‘공공이익 증대’라는 것을 알았죠. 인턴십은 하고 싶은 일을 찾고
현장 경력을 쌓을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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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목표가 국제기구? '왜' 인지 스스로에게 먼저 물어라

취재를 위해 이메일로 만난 이재성 씨는

사실 놀랄만한 스펙의 소유자였습니다.

 

서울대 법대, 동 국제대학원 석사, 동 법대 박사과정을 수료했고

뉴욕주 변호사, 하버드 로스쿨 객원연구원, 외교통상부 국제경제국 서기관을 거쳐

유엔 사무국 법률실 국제거래법 부서에서 JPO로 1년간 근무했습니다.

이후 NCRE에 합격, 유엔 사무국 법률실에 정식 직원으로 채용되었습니다.

 

이런 화려한 스펙이면 유엔이 아니라 어디라도 취직했겠다 싶었지만

유엔보다 대우가 좋은 로펌이나 기업을 마다하고

공익을 위해 일한다는 것이 인상 깊었습니다.

 

유엔도 우수 인재들을 채용하기 위해

선진국 공무원 수준의 연봉을 유지하지만

아무래도 유수 기업보다는 못 할 테지요.

 

이런 ‘진정한 인재’ 들이 많아졌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아래는 이재성씨 인터뷰 기사입니다.

 

 

유엔 사무국 법률실(Office of Legal Affairs)에서 근무하는 이재성(33) 씨는
유엔국별 경쟁시험(NCRE, National Competitive Recruitment Exam)을 통해 임용됐다.
NCRE는 유엔 분담금 부담액에 비례해 직원 수가 적은 회원국을 대상으로 진행되는
공채 시험이다. 합격하면 인재풀에 등록되고 공석이 발생하면 최종 인터뷰를 거쳐
채용이 결정된다. 우리나라는 유엔에 가입한 1991년 이후 42명의 합격자를 배출했고
27명이 임용되었을 만큼 쉽지 않은 시험이다.

 

이씨는 2007년 2월 시험에 응시, 11월 NCRE에 합격했으며 2008년 4월부터 현 부서에서
근무를 시작했다. 보통 합격에서 채용까지 2년 정도 걸리는 것에 비하면 빨리 임용된
것인데 부서 업무와 연관성이 높은 경력이 유리하게 작용했다고 한다.

 

서울대 법대 박사 과정을 수료한 이씨는 국제거래법부서(OLA/ITLD)에서 JPO로
활동했고 외교통상부에서도 근무했다. 군복무를 육군사관학교에서 전임 강사로 필했는데
현재 업무인 국제법의 보급 및 교육 활동과 연관성이 높은 것도 도움이 되었다.

 

이씨는 NCRE 합격 비법에 대해 “전공 분야별로 출제되기는 하지만 워낙 광범위하게
출제되므로 국제법 전반에 대해 복습을 하고 전체적인 맥락을 짚어 이해했다”고
말했다.

 

NCRE를 통해 채용되면 유엔의 재원으로 월급이 지급되는 정식직원이 되고 2년간
수습기간이 지나면 정규 계약 상태가 되는 장점이 있다. 그러나 NCRE 응시부터 합격까지
시간이 오래 걸리고 합격자 명단에 이름을 올려도 공석이 있을 경우 해당 부서장이
인터뷰 등을 통해 개별적으로 선발을 하게 되기 때문에 실제 채용까지 상당 기간이
소요된다. 2007년 10월에 시험 접수를 하여 2008년 2월에 정무직(political affairs)
필기시험을 응시한 수험생들의 경우 현재도 시험 결과가 발표되지 않았을 정도다.

 

그래서 이씨는 후배들에게 “국제기구에서 일하는 자체가 최종적인 꿈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조언했다.

 

“왜 본인이 국제기구 진출을 하고 싶은지 그리고 어떤 분야에서 일을 하고 싶은지
곰곰이 생각해 보세요. 국제기구에서 필요한 인재로 자신을 꾸준히 성장시키다 보면
결과는 자연스럽게 따라올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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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단 한 종목에서라도 A+ 인간이 되라

3월 27일 구삼열 서울관광마케팅 대표이사와 인터뷰를 했습니다.

구대표는 1997년 유니세프(UNICEF, 유엔아동기금) 총재고문까지 올라

한국인 첫 유엔 고위 관리직을 역임한 ‘유엔 진출 1세대’입니다.

첼리스트 정명화 씨의 남편 분으로도 유명합니다.

 

현재도 국제기구로 진출하는 후배들을 직간접적으로 돕고 있어

국제기구 진출자들 사이에서는 ‘대부’로 통한다더군요.

인터뷰 당일에도 정규직원으로 자리를 옮기려는 JPO 한 분에게

이메일로 진로 상담 중이었습니다.

외국 통신사에서 기자로 근무할만큼

뛰어난 영어실력도 궁금했는데요.

역시 지름길을 없었습니다. 답변은 "지금도 공부한다"입니다.

 

한 시간 가까이 아주 생생하고 실질적인 이야기를 들었는데

막상 신문에 실린 기사(“국제기구
진출 꿈꾸나요 ‘3종 루트’로 뚫어보세요")
에는

달랑 한 문장만 나갔습니다. 아쉬운 대로 정리한 기사를 띄웁니다.

 

 

구삼열(68) 서울관광마케팅 대표 이사는 한국인 첫 유엔 고위 관리직을 역임한
‘유엔 진출 1세대’다. 1965년 코리아 헤럴드 기자로 시작해 1968년 AP통신 유엔특파원이
되었다. 이후 20여 년간의 기자 생활을 접고 1987년 유엔아동기금(UNICEF)의 조정관으로
국제기구에 진출했다. 유엔 본부를 거쳐 1997년 유니세프(UNICEF, 유엔아동기금)
총재고문까지 올랐고 현재도 국제기구로 진출하는 후배들을 직간접적으로 돕고 있다.

 

구 대표는 “한국은 2007년 유엔 분담금 4300만 달러, 분담률 2.173%로 세계 11위지만
한국인이 적정선까지 진출한 기구는 단 하나도 없다”고 지적하며 “이는 개인 능력
문제가 아니라 정부 영향력이 약한 탓”이라고 안타까워했다.

 

구 대표는 자신의 딸을 예로 들었다. “영양학을 공부하고 유엔식량농업기구(FAO)에
공석이 있어 지원을 하려 했어요. 일단 구인광고가 났으면 이미 내정되어 있다고
봐야 합니다. 알아보니 인턴이 일을 잘 해 정규 직원으로 채용할 계획이라고 하더군요.”

 

따라서 정부 차원에서 유엔 진출 인력을 체계적으로 뒷받침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외교부에서 정말 공석인지 확인할 통로를 확보하고 있어야 하고 기구 안에 추천해
줄 주요 인맥도 관리해야 한다. 또 각 직급별, 분야별로 인재 명단을 관리하다 공석이
생기면 미리 미리 추천을 해야 한다.

 

유엔 진출을 꿈꾸는 후배들에게는 “어느 한 분야라도 A+인간이 되라”고 조언했다.
영어도 , 글쓰기, 회의 주재 능력, 전문지식 어떤 특기라도 좋으니 자신의 브랜드로
내세울 만한 것이 필요하다. 구 대표 역시 A⁺ 영어 실력이 통한 경우다. 어릴 적부터
리더스 다이제스트를 영어 사전을 찾아가며 읽었다. 주변에서 영어를 잘 한다고 하니
통역할 기회도 생기고 취업할 생겼다. 구 대표는 “영어가 하나의 티켓이 되었다”고
표현했다.

 

내년부터 한국은 공적개발원조(ODA) 규모를 대폭 늘릴 계획이다. 구대표는 “국제기구나
NGO들을 통해서 개발도상국으로 돈이 흘러 들어갈 것인데 이 기회를 노려보라”고
주문했다. 현장에서 일한 경험은 학교에서 연구만 한 것보다 현장에서 뛴 경험을
선호하므로 좋은 경력이 된다.

 

“국제기구 진출은 준비 기간도 길고 확률도 높지 않습니다. 다만 이 과정에서
습득한 세계 시민으로서의 의식은 자신을 다른 사람들과 차별화된 인재로 만들어줄
것이므로 분명 도전해 볼 만한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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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엔 본부 복도에서 반 기문 사무총장님과 딱 마주쳤죠"

왜 2030들은 국제기구 진출을 꿈꾸는 것일까?

그저 외국 생활을 동경해서가 아닐까, 연봉이 많아서가 아닐까…

그렇게 지레짐작했습니다.

그러나 국제기구 진출을 꿈꾸는 학생들의 이야기를 직접 들어보고 나서는

저도 가슴이 설레이고 말았습니다.

 

그들의 이야기는 한결 같았습니다.

취직이 어렵다면, 88만원 세대라면, 국내에 일자리가 없다면

이왕이면 공익을 위해 일하겠다는 것입니다.

국제기구보다 처우가 열악할 수도 있는

국제NGO도 마다하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세계를 향해 나아가기를 주저하지 않는 그들을 보니

나의 20대가 너무 한심하게 느껴지더군요.

세계는 커녕 내 안에 갇혀 한 발자국도 내딛지 못 했던 그 시절이요.

 

아래는 현장 스케치로 썼다가

시의성이 떨어져 인터뷰 기사에 녹여버렸던 기사 전문입니다.

그들의 생기있는 목소리를 들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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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엔 본부 복도 한 가운데서 반 기문 사무총장님과 딱 마주쳤죠. 너무 놀라서
저도 모르게 ‘우와’라고 소리를 질렀어요. 바쁘신 와중에도 이름과 학교를 물어보시고는
열심히 하라고 하셨어요.”

 

유엔 본부 공보국(Deparment of Public Information)에서 인턴을 마치고 지난달
돌아온 이재현 씨(22)가 생생한 인턴 경험을 털어 놓았다. 4일 경희대학교 경영대학
오비스홀에서 열린 유엔과 국제 활동 정보센터’(ICUNIA)의 정기 모임에 참석한 회원
200여명은 숨소리를 낮추고 이씨의 강연을 경청했다. ICUNIA는 2001년 11월 개설되어
현재 4만 1000여 명의 회원이 활동하는 국제기구 관련 최대 커뮤니티다.

 

이씨는 경희대 UN/INGO 인턴십 프로그램에 선발되어 학부생으로는 드물게 UN 인턴과정을
마쳤다. 이씨는 “유엔 직원은 국제공무원”이라며 “국제 사회에 기여하고자 하는
열정이 없다면 지루하고 힘든 일이 될 것”이라고 현실적인 조언을 들려주었다. 유엔까지
와서 엑셀만 치고 있다니 좌절하는 직원도 많다고 했다. 때문에 이씨는 전문성을
기른 후에 유엔에 지원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직접 기획하고 프로젝트를
진행하려면 관리자급으로 진출해야 하는데 해당 분야에 대한 깊은 이해가 없으면
어렵다는 얘기다.

 

국내 고용 시장이 찬바람만 분다. 특히, 청년 고용률은 올해 2월 39.9%로 사상
최악을 기록했다. 이에 2030 세대들은 국내 취업이 어렵다면 해외로, 사적 영역(Private
sector)에 일자리가 없다면 공적 영역(Public sector)에서 일하자는 움직임이 뚜렷해지고
있다. 국내 기업에 취업하기가 갈수록 어려워짐에 따라 영어 실력, 다문화 감수성으로
무장한 2030 세대들이 대안으로 국제기구나 국제 NGO 진출을 준비하는 것. 고도성장기의
5060들이 국내 기업에서 도전의 역사를 썼다면 2030들은 국제 사회에 공헌할 길을
찾기 시작했다.

 

사회 복지를 전공하는 대학생 김대웅(24)씨는 현장 경험이 풍부한 편이다. 뉴질랜드
어학연수를 1년간 하고 미국으로 해외 자원봉사를 떠났다. 적십자사, 해비타트  등에서
봉사 활동으로 하다 보니 다양한 문화를 가진 사람들과 일하는 것에 큰 매력을 느꼈다.
김씨는 “서로 다른 생각을 조율하며 한 가지 목표를 향해 협력하는 과정에서 보람
있었다”며 “앞으로 전공을 살려 국제기구에서 나눔을 실천하고 싶다”고 말했다.

 

홍미선(24· 서강대 언론학과)씨는 유엔이 요구하는 전문성이 궁금해서
이 자리에 참석했다. 홍씨는 졸업을 앞두고 기업에 취업을 해야 할지, 국제기구에
도전해 볼지 고민이 깊었다. 어떤 영역으로 진출하느냐에 따라 다른 가치를 추구하는
삶을 살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홍씨는 “단지 외국 생활을 동경해서도 아니고
겉멋이 들어서가 아니다. 내면의 소리를 따라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며
국제대학원에 진학 결심을 밝혔다.

 

이 날 충남 예산에서 2시간여 기차를 타고 모임에 참가한 김필주 씨는 환경공학을
전공하는 대학원생이다. 현재 하천 오염 관련 연구를 하고 있는데 후에 환경과 관련된
국제기구에 진출하는 것이 꿈이다. 김씨는 “강연을 들어보니 환경 관련 영어들을
통달 해야겠다”고 느꼈다고 했다.

 

참가 중에는 5월 OECD 인턴으로 떠나는 유은선(27)씨도 있었다. 유씨는 여성부
국제 인턴으로 선발되어 항공비와 체재비를 지원받게 된다. 유씨는 국제학대학원
재학하면서 국제기구 관련 정보를 많이 접할 수 있었고 졸업 논문이 업무 연관성이
높아 면접에서 유리했다고 평했다.

 

이어 “전 대학 새내기인데 대학생활을 어떻게 해야할 지 선배님들이 조언 좀
해달라”는 이수정(19)씨의 똑부러지는 목소리가 들렸다. 이씨는 “진로 결정에 도움을
얻고자 이 자리에 참석했다”며 “경력을 쌓기 좋은 방법을 추천해 달라”고 물었다.
이씨는 ‘월드비전’ 활동가 한비야 씨의 책을 읽고 봉사도 하며 월급도 받는 직업도
있구나 싶어서 국제NGO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고 했다.

 

4시간에 이은 강연과 질문 시간이 끝났지만 쉽게 자리를 뜬 사람은 없었다. 세계무대로
향한 이들의 발걸음이 경쾌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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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험 사회 한국에서 아이 키우기

나는 20개월 된 아이 엄마다. 엄마가 되면 나의 인생은 끝나는 것이 아닐까 두려움에
떨었던 적도 있지만 현재는 나의 ‘제 1 정체성’이다. 그런데 요즘 한국에서 아이
키우기가 제대로 힘들다는 것을 실감하고 있다.

 

중국산 멜라민 분유 파동이 일었던 지난해 9월. 아이에게 먹이던 N사의 분유가
멜라민 검출 원료를 사용했다는 식품안전의약청의 발표가 있었다. 뉴질랜드산 초유를
사용해 청정이라는 이름이 붙은 프리미엄 분유였다. 그러니까 나는 비싼 돈을 주고
멜라민을 사 먹이고 있었던 셈이다. 발표 2달 전 쯤 아이가 변비가 심해 일본 분유로
갈아탔지만 그래도 1년이나 먹었다. 아이가 불쌍하고 화가 치밀어 올라 밤새 잠을
설쳤던 기억이 난다.

 

관련 기사를 섭렵하다 갑론을박 댓글 중에 정말 가슴이 찢어지는 글이 하나 있었다.
왜 모유를 안 먹이고, 분유를 먹이냐는 엄마 자격이 없다는 비난이었다. 엄마로서의
삶과 개인으로서의 삶의 균형을 찾아 날마다 헤매는 나를 무너뜨린 한 마디였다.
모유 떼고 회사 나오면 내 자리 지켜 줄 거냐고 씩씩거렸지만 사실 가슴이 시렸다.
허술한 먹을거리의 안전 시스템까지 엄마가 책임져야 하는 건지…

 

이후 이유식을 늘리고 분유를 빨리 끊었다. 그러더니 이번에 석면 베이비파우더
사건이 터졌다. 다행히 베이비파우더 대신 발진 크림을 썼었지만 인터넷 카페에 올라온
엄마들의 항의 글을 보고 같이 분노했다. 자기 아이한테 석면을 뿌렸다니, 힘들게
키워 놓았더니 20~30년 후에 발암 확률이 높아진다니…어느 엄마가 대범할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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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약청은 관련 제품에 대해 판매 중단 조치를 취했지만 검출 사실만 밝힐 뿐 정확한
함유량조차 밝히지 않았다. 또한, 5년 전에 위험 사실을 인지하고 있었고 외국 규제
사실을 모니터링 하는데 게을렀다는 점에서 늦장 대응 비난을 받고 있다. 석면 탈크는
화장품 풍선 껌 복사지 등에 광범위하게 쓰여 앞으로 파장이 커질 것으로 보인다.

 

엄마들 사이에서 일본 제품, 유기농 제품에 대한 열풍이 대단하다. 내가 쓰는
유아용품은 솔직히 일제가 제일 많다. 기저귀 같은 경우는 (환율이 크게 오르기 전까지는)
가격도 국산보다 싼 데다 제품의 질도 훨씬 좋았다. 일회용 기저귀가 유해하다고
천기저귀를 마련할까 생각도 했었는데 나중에 형광증백제가 쓰였다는 것이 밝혀져
휴~ 가슴을 쓸어내리기도 했다.

 

이런 글을 쓰면 매국노라는 비난이 쏟아질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애국가가 흐르면
눈물 반사가 일어날 정도로 지극히 정상적인 국가관을 가졌다고 스스로 감히 말할
수 있다. 다만, 아이에게 위험한 줄 알면서 애국심으로 국산을 쓸 수는 없다는 얘기다.
일본 제품들이 가진 안전하다는 이미지는 앞으로 대단한 경쟁력이 될 것이다.

 

정부가 시장에 개입해야 할 이유는 이 때문이다. 기업들이 사익 추구에 골몰하다
보면 공익에 대해서는 나태해지가 마련이다. 도덕적 기업을 만드는 것은 도덕적 정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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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은 왜 벌어야 하는가?

가수 B씨 ‘재테크’ vs 가수 현숙 ‘의리’

 

위 두 분은 동아닷컴 주말 인터뷰시리즈인
‘이 남자/이여자 경쟁력’
의 후보였다. B씨와의 인터뷰는 무산되었고 현숙
씨와의 인터뷰는 성사됐다.

 

처음 B씨의 인터뷰를 추진했던 것은 요즘 같은 불황에 그것도 금융위기가
시작된 미국 뉴욕에서 부동산 투자를 성공했다기에 그 비법이 궁금해서였다. 한국도
주식과 부동산이 폭락했으니 당연히 독자들의 관심도 높을 것이라 판단했다.

 

그러나 B씨의 매니저는 신문이 아니라 닷컴에만 실린다는 이유로 거절했다.
인터넷에 실린 B씨의 글이 폭발적인 조회수를 기록했다고 설명하면서 매체를 문제
삼는다는 것이 이해가 안 된다고 발끈해 보았다. 하지만 매니저는 쏟아져 들어오는
섭외를 다 받을 수 없다며 혹시 거절당해 본 적 별로 없는 초보기자냐고 되물었다.
어라, 뜨끔했다. 어떻게 알았지? 아직도 그렇게 티가 나나?

 

특별히 국민의 알권리를 주장할 문제가 아닌 다음에야 언론에 노출되고 안 되고는
선택이다. 빈정 상하긴 했지만 빨리 잊어버리기로 했다.

 

그리고 나서 올해 삼성 효행상을 받은 현숙 씨와 인터뷰를 하게 되었는데 정말이지
B씨한테 인터뷰를 거절당하기를 잘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재테크를 어떻게 잘
하는지가 아니라 효도를 어떻게 잘 하는지에 쓰는 것이 훨씬 보람 있지 않겠는가.

 

편집부에서 취재를 하겠다고 나올 때 한 선배는 “너는 아무 말이나 잘 믿어서
걱정이 된다”고 얘기하신 적이 있다. 선배의 관찰은 정확해서 나는 취재원의 이야기에
빠져 질문하는 것을 잊어버리기 일쑤고 종종 팩트를 크로스체크하는 것을 까먹기도
한다. 이번에는 데스크한테 혼나지 말아야지 하며 수첩에 1,2,3 질문 번호를 매겨
놓고 취재를 하지만 별로 궁금한 게 없다는 게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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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현숙 씨를 만나러 갈 때는 정말 효녀일까, 만들어진 이미지가 아닐까,
화려한 연예계 생활을 하면서 병수발을 할 수 있을까하는 의심을 모처럼 한가득 품고
만나러 갔다. 수첩에 질문 1,2,3…을 적어 간 것은 물론이다.

 

막상 현숙 씨를 만나 그녀가 풀어 놓는 경험을 듣다 보니 너무 생생하고 세밀해서
질문이 필요 없을 정도였다. 어머니를 목욕시킬 때 이불에 눕혀 욕탕으로 조심스럽게
끌고 갔고 올케는 머리를 자신은 다리를 잡고 욕조로 옮겼다는 얘기며, 어머니가
돌아가시기 전 3시간은 분단위로 쪼개 설명했고, 아버지가 부르시던 노래를 직접
불러주었다. 그랬다. 그녀는 정말 효녀였다. 마음에 따라 손발이 움직였던 것이었다.

 

B씨는 700만원으로 부동산 투자를 시작해 환차익까지 보며 200억원으로 재산을
불렸다고 한다. 탑가수 답지 않게 직접 부지런히 발품을 팔며 엄청난 노력을 했다니
그의 자수성가는 많은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는 것이 사실이다.

 

반면 현숙 씨는 마이너스 통장으로 독거노인들을 위한 목욕 차량을 기부한 적도
있다. 인터뷰 기사에는 빠졌지만 그녀는 “연예인들이 명품을 좋아하지만 저는 아까워요.
이 돈 아끼면 누굴 도울 수 있는데 이런 생각이 들어서요. 제가 시골 출신이라 그럴까요?”라고도
했다.

 

나는 어떤 가치를 추구하며 살아야 할까 다시금 되묻게 되는 인터뷰였다. ‘이
남자/이여자 경쟁력’의 거의 마지막을 향해 가고 있다. ‘의리’ ‘관찰력’ ‘무욕’
등의 성공 키워드는 사실 별로 요즘같은 세상에서 별로 효율성이 없어보인다. 그냥
인터뷰를 읽은 독자들이 생긴대로 살아도 성공할 수 있구나 이런 느낌을 받았다면
더할 나위 없이 기쁠 것 같다.

 

*** 이 내용은 편견이 대거 삽입된 1인 미디어용 글이므로 관계자분들의 항의는
사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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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책을 덮고 세상과 직접 부딪혀라

“틀에 박힌 공부로는 유엔 안에서 경쟁력을 가질 수 없습니다.”

박재현 법무부 인천공항 출입국관리사무소 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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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현(35) 과장은 JPO(Junior Professional Office)를 통해 유엔난민고등판무관(UNHCR)에서
3년간 근무한 뒤 귀국, 전문성을 살려 법무부 인천공항 출입국관리사무소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JPO란 각국 정부가 경비를 부담해 국제기구에 파견하는 국제기구 초급전문가로
유엔 직원이 되는 가장 검증된 길이라 할 수 있습니다.

 

박 과장은 2002년 JPO에 합격해 2년간 스리랑카 사무소에 파견되어 일했고 정식
유엔 직원으로 채용돼 2006년부터 1년간 우간다 사무소에서 근무했습니다. 내전 중이던
남북부 수단간 평화협정이 체결된 이후에 고향으로 돌아가려는 수단 난민들을 도왔습니다.
집과 학교는 있는지, 지뢰는 몇 %나 제거되었는지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고 난민들의
신분을 확인하해 무사히 고향에 돌아갈 수 있도록요. 제대로 된 정부가 없으니
식량 배급표가 신분증이 되기도 했다더군요.

 

박 과장은 “국제무대로 진출하면 경쟁자는 한국 사람이 아니다”라며 “고시
공부하듯 틀에 박힌 공부로는 유엔이라는 조직 내에서 버티기가 힘들다”고 강조했습니다.
현장 경력이 많은 사람들과 부딪혀 일하려면 자신만의 경험이 탄탄하지 않으면 어렵다는
것입니다. 박 과장은 관심 분야에 대한 다양한 경험을 쌓을 것을 강조했습니다.

 

박 과장 역시 대학시절부터 ‘북한인권시민연합’에서 활동하면서 인권에 대한
관심을 갖고 있었습니다. 대학생 신분으로 중국에 들어가 탈북자를 인터뷰하고 자료를
모아 ‘북한 꽃제비’를 세상에 알리는 데 기여를 하기도 했지요. 또한 교환학생을
갔던 캐나다 대학이 매우 진보적인 학풍을 가진 학교라 인권에 대한 감수성을 기를
수 있었던 것도 도움이 되었답니다.

 

아래는 일문일답입니다.

 

▶ 난민들을 돌보며 가장 힘들었을 때는 언제인가

기아, 말라리아, 지뢰에 대한 공포는 조직에서 정해놓은 안전 수칙을 잘 지키고
전기, 수도에 적응하면 별로 문제가 되지 않는다. 어떤 환경이든 적응하면 지낼 만
하다. 난민들을 대할 때 ‘고통의 전이’가 가장 힘들었다. 난민이나 구호 대상자처럼
하루 종일 불쌍한 사람만 보다 보면 마음이 아프고 지치게 된다. 또 계속 이들을
대하다 보면 불쌍한 처지를 악용하는 경우도 보게 되는데 그에 대한 회의감도 든다.
선의와 회의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다가 어느 지점을 찾게 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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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장에서 생활은 어떠한가

사람들과의 관계맺기가 어려운 것은 어디서나 마찬가지이다. 동료들과 언어, 문화,
배경, 직업, 성별이 모두 다른데 공동생활을 하다 보니 문제가 생기기 마련이다.
일과 사생활이 잘 구분이 안 되니 스트레스가 쌓이기도 한다. 하지만 치열한 시절을
같이 보내다 보니 오래 좋은 친구로 남은 사람도 많다.

 

▶ 영어를 잘 해야 할 텐데 방법이 있다면

사실 어렸을 때 외국에 살다 왔고 전공도 영문학이었다. 그러나 영어 실력은 계량화된
수치가 전부가 아니라 소통을 할 수 있으면 된다. 기본적인 언어 실력이 필요하지만
그 다음단계부터는 자신 있게 발화하고 부딪히는 것이 중요하다. 같이 지내던 보스
중에 일본 사람이 있었는데 이메일에 3~4단어만 쓰면 오타가 나왔다. 그래도 P-5까지
진급했다. 매일 꾸준히 BBC나 CNN을 봐라. 관심사에 대한 뉴스이면 더 잘 들릴 것이다.
아니면 차라리 여행을 가서 한국 사람 없는 곳에서 생활을 해 봐라. 영어책을 덮고
완벽히 말하려고 애쓰지 말라.

 

▶ JPO 선발과정은 어려운가?

지원했을 당시에는 2월에 접수를 받고 1차로 텝스 점수로 걸렀다. 4월에 국내
면접 보고 합격자는 8월에 지원기관에 인터뷰를 했다. 출발까지 1년 정도 걸렸다.
제 2 외국어 어학 실력, 경력 등 다양한 측면이 고려된다.

 

▶ 국제기구로 진출하려는 후배들에게 조언을 해준다면?

우선 왜 이일을 하려 하는지에 대한 고민이 선행되어야 한다. 줄곧 외국 생활을
해야하고 가정생활을 포기할 경우도 많은데 동기가 분명해야 한다. 연봉이 높다고,
외국에 가고 싶다고 지원한다면 후회할 수도 있다.

또한, 유엔으로 가는 길은 매우 다양하다. 특히 한국 사람들은 고시 공부하듯이
틀에 박힌 경험만 하는 경향이 있는데 관심분야에 대한 풍부한 경험이 없으면 선발도
어렵지만 조직에서 버티기는 더 어렵다. 국제무대에서 한국식으로 경쟁할 수는 없다.
JPO로 국제기구로 가면  P-2 직급으로 가게 되는데 현장경력이 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경쟁력을 가지려면 자기 생각이나 경험이 탄탄하지 않으면 어려운 점이
있다. 언론사, 시민 단체, koica에서 일해봐도 좋고 아니면 글을 쓰거나 여행을
다니는 것도 좋다. 공부를 한다고 생각하지 말고 관심 있고 열정 있는 분야를
파고들어라.

 

▶ 참고할 만한 사이트가 있다면

 

유엔  www.un.org  유엔난민고등판무관www.unhcr.org
등 가고싶은 국제기구 사이트를 자주 방문하라. 개인적으로는 로이터통신이
운영하는 인권뉴스 사이트  www.alertnet.org,
각나라 개요, 전쟁역사 소개된 www.bbc.co.uk , 분쟁지역 연구하는 NGO인 International
crisis group의 www.crisisweb.org  등을 자주 본다. 우리가 알지 못 하지만
세상에 얼마나 중요한 일이 많은지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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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안 취업에 실패했을 뿐이고~

 

이명박 대통령은 1일 청년 실업과 관련, "1년이고 2년이고 새로운 경험을 쌓겠다는 각오로 국내든 해외에서든 부딪혀 보고 도전하겠다는 투지가 우리 젊은이들 사이에 넘쳐나길 소망한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이날 제4차 라디오연설에서 "청년 실업은 청년들만의 고통이 아니라 우리 가족의 고통이고 국민의 고통이며 나라의 큰 걱정거리"라며 취업을 위한 도전정신을 거듭 주문했다.

이 대통령은 또 "지금은 생각을 새롭게 해 신발끈을 조이고 어디든 용기있게 뛰어들어야 할 때"라며 "상황을 탓하면서 잔뜩 움츠린 채 편안하고 좋은 직장만 기다리는 것은 결코 해법이 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연합뉴스 12월 1일-

 

대통령 한 마디에 또 댓글이 수천개가 달렸습니다.

기사를 보며 최근 취재했던

서울고용지원센터 ”성취프로그램”(www.donga.com/fbin/output?f=ne_&n=200811220255)   현장이 떠올랐습니다.

 

”성취프로그램”이란 6개월 이상 구직활동중인 취업 준비생을 대상으로 실직스트레스를 관리하고 이력서나 인터뷰등 구직 기술을 배우는 직업 훈련입니다. 제가 간 날은 참가자들이 마침 모의면접을 연습하고 있었습니다.

 

11월 21일 ''성취프로그램'' 참가자들이 면접 요령 강의를 듣고 있다.

 

면접관과 면접자로 반반 나누어 질문하고 대답을 합니다.

어찌나 진지하게 임하는지 보고 있는 제가 긴장이 되어 몹시 떨릴 정도였습니다.

 

소위 백수인 그들 모습이 어떠했을 것 같으세요?

도전정신? 넘쳤습니다. 실력? 충분했습니다. 잔뜩 움츠린 채 좋은 직장만 기다린다? 아니었습니다.

저들보다 빨리 노동시장에 진입한 것이 감사한 마음이 들 정도였으니까요.

 

그럼에도 그들은 끊임없이 반성을 합니다.

우울해선 안 돼, 적극적이어야 해, 더 또박또박 답해야해…

훈련 과정을 모니터링하고 취업 실패의 귀책 사유를 자신에게서 찾아냅니다.

 

솔직히 눈물이 찔끔 났습니다.

그들은 훌륭한 인재였습니다. 다만 일자리가 충분하지 않은 것입니다.

좌절을 딛고 희망을 담아 열심히 공부하는 그들이 대견했습니다.

 

어제 모처럼 만난 학교 친구들과 대화중에 들은 얘기입니다.

겉보기에 쌩~하고 똑똑한 후배들이

술 마시고 삶이 힘들다며 꺼이꺼이 울더라는…

 

"젊어서 고생은 사서 한다"고 위로하기에는

그들의 젊음이 너무 버거워 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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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 지원자들은 인터뷰 기술이 가장 부족”

"한국인 지원자들은 인터뷰 기술이 가장 부족합니다.”

국제기구취업설명회 개최한 이상미 CPE 국장

 

지난달 1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국제기구 채용 인터뷰에 대한 모든 것’ 이란 세미나가 열렸습니다. 아마 국제기구 취업을 준비생들이 가장 막연하고 어렵게 생각하는 부분이 아닐까 합니다. 이날 유니세프 뉴욕 본부 인사담당관인 미치루 다마나이(Michiru Tamanai)씨가 인터뷰 방법을 강의하고 모의 인터뷰를 갖기도 했습니다.

 

행사를 기획하고 진행한 것은 이상미(41) CPE(한국아동인구환경의원연맹)국장. 2000년부터 CPE에서 일한 이 국장은 국회 소관 7개 법인의 사무국장 중 유일한 여성이기도 합니다.

 

지난 8년간 각종 국제회의에 참석하며 국제기구에 취업하려는 후배들이 정보 부족으로 어려움을 겪는 모습을 보고 설명회를 열게 되었다고 합니다. 한국인이 가장 부족한 것은 인터뷰 기술이라는 얘기를 듣고 정보를 공유하는 자리를 마련한 것이지요. 마침 일본 정부에서 유니세프 인사담당당관 미치루 다마나이(Michiru Tamanai)를 섭외해서 설명회를 한다는 정보를 듣고 가까운 한국에도 와 줄 것을 부탁했다고 합니다.

 

86학번인 이국장은 실제로 국제기구에서 일해보고 싶었지만 관련 정보를 얻을 방법이 전혀 없었다고 합니다. 지금도 같은 이유로 기회조차 갖지 못 하는 것이 안타까웠다고요. 이 국장은 경희대 서반어학과, 서울대 행정대학원을 졸업하고 주한 스페인 대사관,대외경제정책연구원을 거쳤습니다.

                                                                                                                  AP18BE.JPG

 

아래는 일문일답입니다.

 

▶ 인터뷰 기술이 부족하다면 의사소통 능력이 떨어져서인가

단순히 영어 실력이 모자라서 그런 것이 아니다. 동서양 문화나 사고 방식이 달라 질문이 요구하는 대답을 하지 못 하는 경우가 많다. 각국에서 온 사람들이 모여서 일하므로 특정 이슈를 풀어가는 능력,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을 묻는다. 예를 들면, 과거에 한 일이 미래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 등. 한국인 지원자보다는 과정보다는 결과에 치중하는 경향이 있다.

 

▶ 국제기구 인사담당자가 인재를 보는 첫 번째 기준은 무엇인가

기본적으로 글로벌 이슈에 관심을 갖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유엔에아동기금에서 일하고 싶은 사람은 아동 문제에 대해 고민하고 해결하고 싶은 의지가 있어야 한다. 아프리카 분쟁 지역 등 열악한 곳에 가서 일할 수 있을 정도로 적극적인 참여 의식을 가져야 한다. 한국인 지원자들이 특히 도전의식이 약하다는 평가다. 현장에 나가려 하지 않으니 경력도 쌓이지 않는다.

 

▶ 국제기구의 대우는 어느 정도인가.

선진국 공무원 수준으로 연봉과 복지가 결정되니 개도국에서 진출하면 분명 좋은 조건이다.

(자세한 내용은 ww.un.org/Depts/OHRM/salaries_allowances/index.html 참조) 그러나 근무 여건 좋은 평생직장은 결코 아니다. P-1~5,에서 D-1~2까지 승진기간이 굉장히 길고 최근 내부 평가도 강화되었다. 위험한 현장에 갈 수도 있고 시차를 무시하고 진행되는 업무도 고달프다. 특히, 가족이 모여 살기 어려워 이산가족이 되는 경우도 흔하다.

 

▶ 대학 졸업자들이 도전해 볼만한 국제기구 취업 과정은?

직원 대부분 석사 이상이므로 학위 소지자가 유리하다. 학부 졸업생이라면 인턴쉽에 도전해서 인맥을 쌓고 능력을 검증받을 것을 권한다. 인턴쉽 계약서에 추후 채용과는 관계없다는 것을 명시하지만 자신을 알릴 수 있는 기회로 활용하면 좋다. 다음으로 JPO에 선발되는 것이 정석이다.

채용 공고가 뜨면 이미 늦는다. 수시로 채용 공고를 내지만 한 자리에 전세계 수백 수천 명의 이력서가 쏟아지니 거기서 눈에 띄기란 쉽지 않다. 미리 국제봉사활동이나 인턴쉽을 통해 네트워크를 쌓아두어야 한다. 관심이 같은 사람들과 접촉하고 유엔 관련 카페 등에서 활동하며 기회를 탐색하라.

 

▶ 경력이 중요하다던데 어떤 경력을 쌓는 것이 좋은가

NGO 활동, 기업 근무 등 다양한 활동이 경력이 될 수 있다. 워낙 자리가 다양하니 필요한 경력도 다양하다. 자기가 하고 싶은 일에 대한 경험을 차근차근 쌓도록 한다. 법률, 회계, 의료, IT 어떤 분야이든 경력이 될 수 있다. 직업을 갖고 일하다가 경력이 어느 정도 쌓이면 국제기구로 진출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 영어를 공부하는 방법을 추천한다면

적어도 특정 이슈에 대해 1시간 이상 토론 할 수 있을 만큼이 되어야 한다. 일단 알고 싶은 이슈에 대해 외국신문을 보며 현안을 이해하고 용어를 익힌다. 관심 있는 이야기는 잘 들리고 잘 외워진다. 꾸준히 하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다. (이 국장은 아직도 매일 EBS 방송을 청취하고 이코노미스트지를 본다) 스페인어 중국어 등 최소 2개 국어는 해야 한다.

 

▶ 채용 공고는 어떻게 알 수 있는가

기구별로 채용이 진행되므로 홈페이지를 찾아 자주 확인해야 한다. 외교부에서 국제기구채용정보 홈페이지(www.unrecruit.go.kr)도 운영한다. 인턴십은 무급이므로 사실 대학 졸업생들이 해외에 체류하면서 일을 한다는 것이 쉽지 않다. 정부에서 예산을 늘려 JPO 파견 인원이 늘어나야 한다.

 

마지막으로 이 국장은 “국제기구에 대한 환상을 버리라”고 조언했습니다. 외국에서 사니까, 보수가 좋으니까 이렇게 폼 나는 직업으로만 생각해서는 곤란하다는 것입니다. 자신이 인종과 지위에 상관없이 포용할 수 있는 마음을 가졌는지 스스로 되돌아 볼 필요가 있겠습니다.

 

앞으로 설명회를 지속적으로 개최하고 CPE 자체에서 인턴십 프로그램으로 만드는 것도 고려중이라고 합니다. 후배들에게 다양한 문을 열어주기 위한 노력이 주렁주렁 결실로 맺어지기를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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