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의 축제, 마라톤_ 하이서울마라톤을 뛰고
2010년 10월 10일.
10이 3개나 있는 특별한 날이다.
김정은의 북한 후계 데뷔와 황장엽의 죽음, 쌍십절….
그리고 내가 하이서울마라톤을 완주한 날.
뭐 마라톤 완주가 그다지 대단한 것도 아니고
내게 있어 첫 경험도 아니지만,
최근의 삶과 그날의 상황으로 본다면 대단한 날인 것은 틀림없다.

1. 불안한 새벽
토요일 밤에 먹다가 일부러 남겨둔 피자를 새벽에 일어나 덥혀 먹었다.
그런데, 요리라고는 해본 적 없는 내가, 팬을 잘못꺼냈나보다.
기름을 충분히 둘렀음에도 불구하고, 피자 바닥이 새까맣게 탔다.
위쪽만 긁어서 간신히 먹고, 아무래도 배고플 것 같아 라면하나 끓여먹었다.
새벽에 웬 청승인가 싶지만, 그래도 거사를 앞두고 있으니 영양은 챙겨야지.
사실 잠도 제대로 못잔다. 일찍 일어나야하는 강박감도 있지만, 그것보다는
엄청난 도전에 따른 긴장감, 축제에의 기대감, 심정적 불안감 등등 때문이다.
4시에 깨기 시작해, 5시에 다시 깼다가, 6시 모닝콜에 기상….
*****>>>대회 임박한 상태에서 탄수화물은 필수. 사흘 정도 다이어트를
해야하지만, 그것을 못했다면 적어도 당일 아침엔 꼭 탄수화물 중심 식사를 하시라….
2. 상쾌한 아침, 힘찬 출발
위의 사진을 보면 알수있다.
화창한 날씨, 괜찮은 컨디션, 들뜬 축제.
원대연기자가 출발선상에서 사진을 찍고 있기에 폴짝 뛰면서 손을 흔들었다.
내 마라톤 인생 4년 중 최고의 사진이 나왔다.
그렇게 기분좋게 출발했다.
그런데 문제는 지금부터다.
늘 그렇지만, 성질 급한 내가 속도 컨트롤을 제대로 못한다는 게 문제다.
엄청난 속도로 뛰는 선두그룹에 묻어 달리다보니, 이대로 가면 안된다는 절박함이
생겼다.
그래서 조금 늦추고 조금 늦추고 했지만,
10km를 넘어서자 힘이 들기 시작했다.
그렇지만, 포기할 수는 없고….
주변에서 이야기하며 뛰는 사람들이 3시간 15분이 목표란다.
당분간 이들을 따라 뛰기로 했다.
매우 주제넘은 판단이었다. 판단 미스. 비극의 시작.
3. 고난의 행군
20km쯤은 무사히 넘겼다.
반환점인 24km 언저리까지도 좋았다.
그렇지만, 이제 한계가 오고 있음을 느끼고 있었다.
조금만 열심히 뛰려하면 종아리에 쥐가 나는 느낌이 들고
발가락 끝에 몰린 피가 터질 것 같았고,
발바닥이 너덜너덜 헤지는 것 같은 느낌도 든다.
15km쯤부터 쓸리는 느낌이 들던 겨드랑이도 본격적으로 아프다.
참, 이렇게 컨디션 좋게 출발했는데
또다시 한계를 느끼는구나 싶었다. 기분이 좀 그렇다.
30km쯤에서 구급대원들에게서 안티프라민을 받아 종아리와 무릎에 떡칠.
시원해지면서 뛸만해졌다.
그렇게 한참 뛰다 다시 힘들어서 걷으며 이짓저짓하다가
문득 종아리 스트레칭의 효과를 체험했다. 이게 괜찮은 비법 하나 발견.
4. 걸으면서, 강변을 즐기다
힘이 너무 들고, 너무나 뜨거운 볕 때문에 지쳐 조금씩 걸었다.
200m쯤 걸으면 너무 심심하고 답답해 다시 달릴 수밖에 없고….
성수대교 아래쪽에서 잠시 걷고 있는데
너무나 아름다운 정경이 펼쳐진다.
그래서 이왕이렇게 된것, 즐기자.
이런 마음으로 구경하면서 천천히 가을도 아니고 여름도 아닌 풍경을 즐겼다.
그러다 문득,
지금 내가 뭐 하고 있는거야, 이런 생각이 들어 화들짝, 다시 달렸다.
이럴 거면 뭐하러 뛰냐, 싶다가도
어차피 기록은 이미 틀린 것, 다치지 말고, 즐겁게 완주하자, 싶다가도
야, 이게 뭔 완주냐, 완주는 달려야 하는 거지, 싶다가도
골인이 곧 완주고, 나름의 도전은 다 가치있는거야, 싶다가도
어쨌든 시작한 것 끝은 맺어야 한다는 마음을 먹고 절뚝절뚝 뛰었다.
5. 마침내 골인
3시간55분18초.
마침내 골인이다.
최악의 레이스는 아니었다. 지난 봄, 동아마라톤이 최악이었다.
27km지점에서 발에 쥐가 나 그 이후 15km 정도를 절며 뛰었다.
그런데 이번 기록은 그때보다 나쁘다.
놀라운 기록…….!!!!
무리하지 않아야 한다는 생각이 너무 강했나 보다.
그래서 지금 너무 멀쩡한 것이 마음에 걸린다.
다리가 조금 아프기는 하지만, 뭐 이정도야 일상의 수준이다.
3시간30분 정도에만 들어가도 행사가 다 끝나지는 않는데
이번엔 썰렁한 본부석이 나를 맞이해준다.
외로운 고통의 질주, 그 끝자락의 또다른 외로움….
6. 고통의 축제
마라톤은 익스트림 스포츠다.
고통의 축제다. 게다가 외로운 질주다.
똑바로 뻗은 코스가 나오면 지루하고 답답해진다.
구불구불한 코스가 나오면 궁금해진다.
다리가 아프면 쓰러질 것 같은 고통이 밀려들고
쓸리는 곳마다 아리아리한 아픔이 몰려온다.
호흡이라도 가빠질라치면 혹시 가는 것 아니야 하는 두려움도 생기고…
무엇보다도 한발 한발 옮기는 게 불가능할만큼 힘이 든다.
그것을 극복하고 앞으로 앞으로
42.195를 달린다.
그리고 완주 후의 상쾌함, 성취감.
그래서 고통의 축제다.
행사를 준비하면서 수고한 사람들,
함께 뛰어준 사람들, 모두가 고맙다.


오오 그래도 3시간대에 들어오셨네요~ 완주를 축하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