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는 예뻤다: 단풍이 찾아온 설악 공룡능선에서
한토막: 보이는 것은 어둠 속의 무수한 움직임 뿐
내가 가지 않은 길은 길이 아니며
내가 보지 못한 풍경은 풍경이 아니며
내가 하지 않은 일은 일이 아니며
내가 타지 않은 차는 차가 아니다.
天上天下唯我獨尊.
이런 배짱이 있어야 하는데
한 낯 작은 사마귀도 굴러오는 수레에 달려들듯 다리를 쳐드는데, 우린 세상살이에 그렇게 당당히 저항할 수 있을 까?
사람마다 동기는 다르다.
얼굴만큼이나.
그러나 표현되는 행태는 거의 같다. 새벽부터 산을 찾아 나선 다는 것.
낯선 사람들 틈에 끼워 버스를 탔다.
자정을 넘겨 출발한 버스는 막힘이 없이 도로를 달렸고, 설악휴게소에 도착한 시각은 2시 10분.
1시간 40분만에 설악의 언저리까지 왔으니 이제 설악은 너무나 가까운 거리의 산이 되었다.
가까운 것이 언제나 좋은 것일 까?
설악의 아름다움에 반해 못잊어 하는 이들이야 좋을 것이건만, 정작 당사자인 설악은 이전에 비해 더 심한 몸앓이를 해야 할 것인즉, 담담한 마음으로 능히 이해를 할 까?
새벽 3시 10분. 버스는 일행 중 일부를 한계령에 내려놓았다.
한계령을 들머리로 한 사람은 6명. 다를 오색에서 출발할 생각인 듯한데, 우리가 탄 버스에서 한계령을 들머리로 한 사람이 이정도니 그리 많은 비율은 아니고, 그렇다면 산행하는 사람이 많지 않을 것도 같았다.
주황색 불빛이 어둠을 밝히는 한계령.
어묵이며 간단한 등산용품을 판매하는 차량은 새벽부터 성업 중이다.
생각 같아선 따뜻한 어묵국을 한 그릇 하고픈데, 혼자 떠나온 길이니 선뜻 내키지 않는다.
그리 많은 사람이 보이지는 않는 휴게소. 벌써 다들 올라간 것일 까?
랜턴을 켜 이마에 달고 스틱을 조정했다.
간단히 스트레칭을 하고 서서히 계단을 올라선다. 3시 15분.
오늘 하루 안전산행을 위해 마음속으로 산신께 고한다. ‘오늘도 안전하고 즐겁고 행복한 산행이 되게 도와 주십사’ 하고.
정(靜)한 마음으로 천천히 계단을 오르던 걸음은 팔각정 지나 위령비 앞에서 멈춰야 했다.
이미 무수한 사람들이 몰려든 터라 산길은 심각한 정체를 빚고 있었던 것.
아. 이런 상황이 일어나고 있을 줄이야.
시작부터 움직일 줄 모르는 걸음.
한참을 어슬렁거린 후에야 비로소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했다.
속절없이 앞사람 엉덩이만 보고 걸을 생각을 하니 감정 조절이 쉽지 않다.
자유로운 걸음은 고사하고 타의에 의해 행동이 제어되어야만 한다는 생각에 푸른 산공기와는 달리 마음은 붉은 단풍이 드는 이 속물스러움.
좀처럼 줄어들 줄 모르는 사람의 물결.
어둠속에 보이는 것은 오직 무수한 사람들의 머리에 단 랜턴 불빛과 앞사람의 뒷모습 뿐이다.
그래서 하릴없이 하늘을 올려다본다.
초롱초롱 빛을 발하는 별들.
그랬다. 하늘엔 무수한 별들이 빛을 내고 있었다.
이름을 알 수 없는, 그러나 저마다 색색의 빛을 내며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는 개체.
가늠할 수조차 없는 먼 거리에서 이곳 설악산 자락에 선 무수한 사람들에게까지 빛을 전해주는 우주의 구성원.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도 우주 한켠에서 저렇게 누군가 보고 있을 푸른빛을 내는 별들 중 하나겠지.
저 모래알 같은 별들에 사는 생명체를 짐작할 수 없듯이 다른 세상의 생명체 역시 이 지구위에 사는 기묘한 생명체에 대해서는 상상 하지 못할 수도 있을 것이다.
아~ 이러면 안되는데!!!
우주과학은 나하고 상관없잖아!!!
다시 앞을 본다.
조금은 앞으로 나아가는 발걸음.
그러나 여전히 조금 가다 쉬고, 또 가다 또 쉬고–
이런 걸음은 한계삼거리까지 이어졌다.
질주본능의 페라리가 외길에서 세 살 꼬마가 타고가는 세발자전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천천히 가야 하는 형상.
페라리 정도는 되지 않아도 그래도 줄 곧 올라치다가 힘들면 쉬고, 또 가고–, 이렇게 해야 하는데, 이건 순전히 허리춤에 손을 넣고 저녁마실 나온 시골 농부의 걸음에도 미치지 못하니.
일부 답답함을 느낀 사람들은 오락실앞 두더지 머리 내밀 듯이 호시탐탐 앞서갈 궁리를 하는 듯 하나 어디 쉬우랴.
이몸도 그 틈을 비집고 요리조리 앞서갈 방안을 만든다.
단풍철이라 이곳 저곳에서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다 보니 평소 산행을 즐겨하지 않은 분들도 많은 것 같고, 자연 걸음이 힘든이가 많은게 정체의 요인이 되었을 터.
근근이 사람 숲을 헤집고 한계삼거리에 오니 시간이 제법 흘렀다.
아! 이러다 시간이 늦어 공룡능선 포기해야 하는 것 아닐 까?
그래도 가는 데 까지 가는 수밖에–
한계 삼거리에서의 휴식을 취하는 사람들을 보며 ‘얼씨구나’하고 곧장 길을 간다.
아직도 여전히 어둠 속.
검은 공기속의 산은 고요하다.
어디서 울던 소쩍새마저 울음을 멈춘지 오래고
그저 수많은 산객들의 가픈 호흡과 둔탁한 등산화의 울림만이 밤공기를 가르고 있다.
반딧불처럼 이리저리 춤추는 랜턴불빛.
이처럼 많은 사람들이 움직일 때는 저곳도 하나의 아름다움이다.
자연을 대신한 인공의 아름다움. 일부러 연출을 하지 않은 다음에야 그것도 자연의 일부라고 해도 좋을 터.
너덜이 있어 그냥 내려서기 힘든 길에는 어김없이 긴 정체가 이어진다.
때문에 걸음을 멈추고 마냥 기다리기를 여러 번.
그런 때 하늘을 본다. 불을 비쳐 주변도 둘러본다.
그 귀하다는, 신경통, 요통, 위장병, 양기부족 등에 탁월한 효과가 있다는 만병통치의 귀한 약재이다보니 얼른 눈에 들어온다. 가득한 붉은 열매.
유혹, 이브의 사과같은 유혹의 열매다.
그러나 무수한 사람들 틈에서 벗어나 따러갈 정도는 아니었으며, 어떤 조건에 놓여있을 지도 모르는 곳에 들어갈 용기도 없지 않는가.
그냥 카메랄 들이대긴 했는데 제대로 영상을 보여주진 않는다.
(※서북능 곳곳과 공룡능선, 그리고 마등령 주변에도 많이 눈에 띈다)
다시 하늘을 올려다본다.
어느 새 별은 자취를 감췄다.
구름 때문이겠지?
바람이 구름을 몰고 와 하늘을 덮었는지도 모른다.
생생한 새벽별이 정말 멋진데-
유년시절, 쉬가 마려워 새벽잠을 깨고 무서리가 잔뜩 내린 마당에 나와 볼일을 볼 때 올려다 본 하늘의 별은 그야말로 보석을 뿌려놓은 듯 했는데-
이제는 정말 보기 힘든 것이 되어 버린 것인가.
자연만이라도 그 시절 그대로였으면 좋을 것이건만 도회의 하늘은 그마저 허용치 않으니–
모처럼 찾은 이 깊은 산중의 하늘 마저도—-. 무서리가 내리는 늦은 가을에는 볼 수 있을 까?
여전히 한걸음 한걸음이 더디다.
이리저리 그저 앞사람을 따라 가기만 바쁜 걸음.
어쩌다 잠시의 틈을 비집어 한걸음 앞서 가려하면 자기들 일행들과 멀어질세라 그 작은 틈마저 주려하지 않는다.
그저 그들의 보조에 맞춰 걷는 수밖에.
중청 2,6킬로 이정표 부근에 서니 점차 시야가 트인다.
푸른 하늘빛은 그대로 눈앞의 빛이 댄다.
랜턴을 끈다.
잠에서 깨지 못한 푸르스름한 새벽빛 속에서 안개는 저 밑 계곡을 덮고 있다.
처음 출발 할 때만 해도 그렇게 맑던 하늘은 구름이 덮고 있더니 골짜기 사이사이엔 하얀 안개들이 자리하기 시작한 것.
가을날 아침 안개야 다반사였는데, 미처 헤아리지 못한 것은 나의 불찰일 터. 굳이 저 골짜기 계곡이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무엇을 원망하리.
남설악 바위 군락과 점봉산을 건너다보는 풍경도 대단한데, 전혀 보이질 않는 이 아쉬움.
걸음걸이도 점차 자유를 찾기 시작했고, 비로소 능선의 단풍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그렇게 푸르던 나뭇잎들은 빨강, 노랑, 주황으로 물이 들기 시작했다.
늦게 잎을 피웠다가 남보다 먼저 물이 드는 설악 능선의 나무들.
‘왜 이 세상은 평등하지 않아’라고 외칠 법도 하지만 어디 평등이 획일화 동일화 만을 추구하는 것이런가.
처한 환경에 따라 불가피한 현상이라면 즐거이 받아들이는 것도 현명 한 것,
설악능선의 나무들은 이미 그 이치를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듯 그렇게 옷을 바꿔 입기 시작한 것이다.
그 순간 지구는 한 발짝 회전을 했는지 태양빛이 들기 시작한다.
왠래의 계획은 희운각을 지나 신선대 전망대에서 해맞이 한 번 해 볼 까 하는 것이었는데, 아직 끝청도 도달하지 못한 곳에서 해는 설악의 곳곳을 비추기 시작한 것이다.
원활하게 공룡을 넘을 수 있을 까?
차량 안에서 가이드는 9시 까진 희운각을 통과해야 한다고 했는데–
긴 사람의 행렬 탓에 늦은 걸음은 이렇듯 불필요한 걱정을 낳게 한 것이었다.
푸른 바닷물로 세수를 마치고 솟아난 태양은 붉은 물이 든 단풍을 더욱 아름답게 한다.
나로 인해 남을 더욱 빛나게 한다는 것.
이건 보통의 내공을 가진 존재가 결코 아니리.
색동물이 들기 시작한 잎들 사이로 황금빛 햇살이 눈부시다. 이 경이로움에 어느 누가 감탄을 자아내지 않을 수 있을 까.
그랬다. 이른 아침의 설악 능선은 새벽부터 달려온 많은 사람들의 혼을 빼놓기에 충분했다.
봄꽃보다 붉은 빛깔과 빛나는 햇살과 잎들 하나 하나에 달려있는 이슬들의 그 투명한 얼굴.
따스한 햇살을 받아 자신의 몸을 열어 살포시 입을 피운 나무는 비와 바람을 이겨내며 힘찬 심호흡을 하더니, 차곡차곡 쌓아 둔 푸른 기운을 가을 햇살에 무지개처럼 피워내니, 둔한 감성의 사내일망정 그 아름다움에 어찌 탄성을 내지 않을 수 있겠는가.
이런 때 아무리 급한 걸음이라 해도 그냥 지나치는 것은 결코 예의가 아니다.
질주하듯 나아가는 뭇 사람들 틈에서 기어이 카메라를 내어 이곳저곳을 사각의 뷰파인드에 담아 본다.
그리곤 옆에 얘기할 사람이 없으니 혼자 마음속으로만 외친다.
“와 너무 멋있다.”
눈앞의 형상을 표현하기엔 너무나 무미건조한 어휘여! 그래서 말하리라 형용할 수 없는 아름다움이라고.
두토막: 그녀는 예뻤다.
한두 번 다녀간 길은 아니건만 지날 때 마다 발길이 여유롭지 못한 것은 무슨 까닭일 까?
허긴 한두 번 다녀갔다고 해서 그 길이 동네 마실길 산책 가듯 그렇게 쉽다면 그런 설악의 길이 아니리라.
비록 이전에 비해 산길 여건이 몰라보게 좋아졌다고는 하지만 높낮이와 굴곡이 심한 험준한 산속 길임을 부인할 수는 없을 지니 피로한 느낌 하나 들지 않고, 땀 한 방울 흘리지 않으며, 등산화를 신은 다리 근육의 움직임이 격렬하게 전달되지 않는 다면 그건 설악에 대한 모독이다.
그래서 여전히 걸음은 수고롭다.
설악이 설악다움은 땀 한줄기 흘린 연후에 산정에 서면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 차갑고 신선한 공기, 그리고 오늘처럼 어둠을 뚫고 만나는 눈이 부신 황금빛 햇살, 높은 산봉우리를 감싸고 도는 흰 구름, 골짜기 여기저기에 호수처럼 고여 있는 하얀빛 안개, 수묵화의 한페이지를 옮겨다 놓은 것 같은 안개속의 바위 암봉 등등이 있지 않던가.
오늘 설악은 이에 더하여 더욱 풍성한 더욱 멋진, 수줍어 하면서도 맛깔스런 성찬을 펼쳐 낸다.
먼 이역만리 타국, 열사의 땅에서 고난의 세월을 견디고 구릿빛 얼굴로 돌아온 낭군을 만난 새댁의 정성어린 밥상인양 고봉에 걸려 길게 늘어진 흰 구름, 그리고 바람에 서서히 오가는 안개, 여명을 뚫고 솟아오른 햇살, 수줍은 듯 물들어 가는 붉은 단풍–
그건 자연이, 설악이 내게 내어놓은 성찬이었다.
오랜만에 집에 돌아온 사랑하는 님을 위해 내어 놓은 상이 아니라도 좋다. 거지행색의 이몽룡이 변학도의 생일잔치에 밀고 들어가 겨우 말석 자리 하나를 차지한 것과 같을 지라도 수저를 들 기회를 준 것만이라도 감사해야 하지 않겠는가.
끝청을 지나 중청으로 향하는 길은 편안하다.
우선은 커다란 바위 덩어리를 오르내리는 수고가 적고, 급속히 오르다 내려서는 굴곡이 적으며, 부드러운 흙길이 비단처럼 펼쳐지기 때문이다.
더하여 다종다양한 수종의 분포로 인해 빨강 혹은 노랑으로 물들은 벗들이 반겨주니 그 아니 편안할 손가.
벗.
안보면 궁금하고, 속내를 내비칠 수 있고, 소주 한 잔 홀짝 거릴 수 있는 친구.
어느 새 이 산의 나무들은 나의 친구가 되었을 수도 있다.
그것이 나의 일방적인 구애라 해도 좋다. 그저 혼자 위로받고 위안을 얻는 것만도 족하다.
그리 녹록치 않은 세상살이에 말없이 들어만 주는 친구가 어딘가.
들어만 주는 친구가.
중청은 단풍이 절정이다.
키크고 잎넓은, 빼어나게 고운 단풍나무는 없을 지라도 오랜 세월 바람을 이기고 또 이겨 갈 키 작은 나무들이 저마다 다른 색깔의 옷을 입고 있다.
우리네 민초의 삶이 지러할 지니, 중청은 아니 대청이나 고산의 키작은 나무는 험한 세상살이에 근근이 버텨내고 극복해 가는 우리네 서민과 다를 바 무엇이던가.
소주 한 잔에 기분좋게 취한 걸음걸이로 흐느적거리며 좁을 골목으로 들어 설 때, 세월처럼 곰삭은 할아버지가 파는 김이 모락모락 나는 풀빵을 기어이 봉지에 담아들고 ‘개똥아’라고 소리치면, 코를 훌쩍 거리며 아빠의 잠바 깃에 남은 바람을 낚아채던 아이들–.
그래도 그들은 자라나 아빠보다는 더 나은 삶을 살고 있겠지.
인내하며 자라는 저 나무에서 오래 전 우리 아버지들의 모습이 오버랩되어 지나간다.
다시 고개를 돌리면 모습을 감춘 대청봉으로 긴 뭉게구름이 흐르고 여전히 안개는 구름과 경주하듯 흘러든다.
여전히 그 틈으로 햇살은 산을 비추고 이제 사내의 걸음은 특별한 장애없이 분주히 움직인다.
중청산장은 그야말로 명절을 앞둔 시골장같다.
한밤을 묵었거나 아니면 오색에서 넘어왔을 법한 무수한 사람들의 움직임과 그들이 내뱉는소리가 설악이 더 이상 인간세상과 먼 이상의 영역이 아님을 보여주는 듯하다.
이제 이 산도 저런 모습을 담담히 받아들이겠지.
더 이상 초연해 질 수도 초연해 지기도 싫어 할 듯 한 몸짓.
인간과 동화되고 마는 그 몸짓은 발아래 천불동 계곡이나 수렴동 계곡, 그리고 이곳저곳 골짜기를 감추는 안개구름의 동선에도 쉬 나타난다.
가만히 기다리고 있노라면 휙 흰 날개를 벗어 던지고 그 우람한 속내를 보여 주는가 싶더니 잠시후엔 언제 그랬나는 듯 몸을 감추고 만다.
숨바꼭질, 아니 젊은 청춘들에 대한 희롱이다.
모두 벗어 던지고 근육질 우람한 몸매를 보여 줄 수도 있으나 그것 보단 저렇게 보여줄 듯 말 듯 하는 품새가 얼마나 더 고혹적이던가.
어디 무희의 춤사위만이 그렇다던가.
새벽을 깨워 다리쉼 한 번 없이 중청까지 달려온 사내는 그 설악의 매혹에 빠져 피곤도, 가야갈 길도 잊은 지 한 참이다.
찾을 때 마다 이렇게 형언할 수 없는 감동을 안겨주니 어찌 가쁜 호흡이, 고단한 다리근육이 헛되리오.
단 1초라도 그런 경이로움이 있다면 설악에 대한 사랑을 결코 접지 않으리.
사람들 사이를 헤집고 희운각으로 내려서는 길.
멀리서 와 하룻밤을 유숙한 듯한, 평소 그렇게 산행과는 친하지 않은 듯한 일군의 사람들이 앞서간다. 그렇다보니 자연 걸음은 느려지고, 조금 더 빨리 걷고자 하는 마음은 번번이 막히고 만다.
게다가 급경사 계단길의 연속이니 조금의 실수도 용남하지 않는 곳 아닌가.
마음이 급해서인가. 아니면 신중한 걸음걸이라서 그런가, 갑자가 왼쪽 허벅지에 경련이 인다.
어~ 큰일이다. 일단은 걸음을 느리게 하고 두들겨 준다.
경사가 급한 산길이니 멈추기도 곤란하고 기껏 할 수 있는 방법이라곤 그것 밖에 없었다.
평소 근육 경직은 별로 없었던 지라, 특히 거의 매일 근육 운동을 해 온 지라 전혀 상상도 할 수 없었으니 아스피린 같은 비상약은 당연 준비되지 않았고—.
어쩌지! 아직 갈길이 먼데–.
그러나 얼마가지 않아 징조가 느껴지던 근육은 더 이상 진전되지 않고 원상회복을 시작했다.
오호~. 설악산 산신께 기도한 약발이 나타나는 것인가~~
휴우~. 한숨을 내쉰다.
능선이 아닌 중턱에는 아직 단풍이 찾아오기 전이다.
이제 한 주만 더 있어도 저 나무들 모두 진한 화장으로 객을 맞으리라.
지독한 성장통. 나무는 온 몸을 불살라 새로운 자신을 만들어 간다.
금년 설악의 단풍맞이는 이것으로 족해야 할 터. 아쉽지만 어쩌랴.
길고 긴 계단길이 끝났다.
희운각 옆 개울에는 맑은 물이 흐른다.
마음까지 모두 깨끗하게 해 줄 것 만 같은 깊은 산속의 청량한 액체.
그러나 구경만 하고 그냥 지나친다.
무수한 눈동자를 피해 출입을 막고자 쳐 둔 줄을 넘을 용기가 없었으니.
희운각 또한 중청대피소와 다름이 없었다.
아침 식사를 위해 삼삼오오 둘러앉은 무수한 사람들.
틈을 헤집고 엉덩이 하나 붙일 곳 없는 상황.
시간은 8시 10분.
아침을 먹긴 먹어야 하는데–. 무엇보다 엉덩이 한 번 땅에 내려본 적 없으니 조금 쉬고도 싶었고–
그러나 홀로 나선 객이 잠시나마 다리쉼을 할 공간은 여의치 않았다.
어떡하나, 가다가 어디 편히 쉴 수 있는 곳에 자리를 잡아야지~~.
희운각을 지나쳤다.
중청에, 그리고 희운각에 저렇게 많은 사람들을 남겨놓았으니 길은 여유가 있을 터.
게다가 무너미고개에서 천불동 쪽으로 사람들이 흘러들어가니 공룡은 여유롭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
어느 정도는 맞는 듯 했다. 공룡으로 향하는 길은 고요했다.
막 단풍이 들어가는 나무들.
번잡을 벗어난 호젓한 산길.
새벽 나절의 고단함도 시원한 산공기와 함께 잦아드는 느낌.
이런 느낌이 좋다. 더하여 완만한 경사의 오름길이니 걷기도 좋지 않은가.
무너미고개 갈림길 부근에 터를 잡고 앉으려 했지만 공간은 없다.
산길 옆으론 줄을 메고 출입금지라고 해 놓으니 선뜻 헤집고 들어갈 용기도 부족하다.
어디서든 아침을 해결해야 하는데–
일단 가던 길을 계속한다. 그러나 어느 곳도 여의치 않다. 결국 공룡능선의 시작점에 다다랐다.
일단 정했다. 쉼의 장소는 신선대 언저리 바위봉에서 하자고.
잔뜩 허리를 낮췄던 산은 점차 기울기를 높여간다.
이전에 비해 산행여건이 엄청나게 좋아졌다고하지만 공룡능선이라 명명될 정도의 능선이니 그 오르내림이 어디 만만하다고 할 수 있으랴.
주린 배를 억지로 달래며 마지막 남은 에너지를 한 곳에 모아본다.
왼발, 오른발, 그리고 쇠줄을 잡은 손에–
그래도 오름질은 뭇사람들을 따돌리기가 가능했고 쇠줄이 쳐진 바윗길은 가뿐하게, 아니 그리 어렵지 않게 오를 수 있는 힘은 남아 있었다.
몇 년 전 처음 아무런 정보도 지식도 없이 무작정 공룡을 오를 때 이곳에서 다리 근육경련 때문에 무지 고생을 했었는데, 이제 그럴 정도는 넘은 지 오래다.
그리고 보니 나의 다리 근육도 이젠 웬만큼 단련이 된 듯하다.
아무튼 공룡능선을 넘는 것은 이번이 세 번째다.
첫 번째는 멋도 모를 때라서 옴짝달싹도못하고 퍼질 정도로 힘겨웠었고, 이 년전 두 번째는 가을 단풍이 아름다운 추석절 연후 아주 맑고 깨끗한 날씨에 비교적 어렵지 않게 넘어 갔었다.
그러나 비선대를 내려설 쯤에 무릎의 통증 때문에 얼마나 힘들어 했던가.
그리고 오늘, 최악의 경우가 없어야 하는데–. 그러나 무릎 때문에 신경이 쓰인다.
보호대를 착용하려니 답답할 것 같고 해서 일단 그냥 버텨보기로 했다.

고갈되어가는 에너지를 모으고 모아 드디어 신선대 언저리에 도착했다.
부지런한 사람들은 이미 그곳에 올라 있고, 나도 그 중 하나가 된다.
대청과 중청 정수리에는 구름이 걸려있고, 산자락은 아이들의 수채화인양 형형색색으로 화려하다.
백담사 쯤일까. 흰 안개가 골짜기에 호수처럼 갇혀있다.
우뚝우뚝 솟은 흰 바위 암봉은 섬처럼 얼굴을 드러내고 차가운 기온에 놀란 나무들은 노랗고 붉게 물들어 간다.
아! 설악. 어디 감탄사를 지르게 하는 요소가 한 둘이랴 만은 설악은 거듭 감탄을 자아내게 한다.
어느 새 피로도 배고픔도 잊은 채 긴 호흡으로 설악의 정기를 빨아들인다.
이제 더욱 힘이 나리라.
전망대 바위사면에 앉아 도시락을 먹으려 했지만, 이런~~. 어느 분(놈)께서 그 전망좋은 자리에 진한 분신을 남겨놓은 것이 아닌가.
내면의 혼란을 해우(解憂)하기에 아무리 이곳이 좋다고 해도 이럴 수는 없다.
그 者 필히 변비로 평생 고생할 지어다~~~
일단 전망대를 벗어나 공룡의 긴 허리와 범봉이며 천화대가 발아래로 펼쳐지는 작은 공터에 자리를 잡고 도시락을 꺼냈다.
인스턴트 잡곡밥 하나 데워온 것이 전부지만 이런 탁월한 풍경 앞에서 요기를 하는 즐거움을 누린 자 그 몇이던가.
막걸리를 가져오지 못한 아쉬움을 간신히 억누르며 식은 도시락과 따뜻한 차한잔으로 아침식사를 마쳤다.
모셔온 캔맥주는 1275봉을 올라선 쯤 해서 먹어 주고, 과일 통조림은 비선대 내려갈 쯤에 먹기로 한다.
사람들의 걸음이 분주하고, 자리를 털고 일어선 이내 걸음도 다시 힘이 난다.
뭐랄까. 공룡능선은 설악의 아름다움을 직접 만지며 속속들이 느낄 수 있는 곳이라고 해야 할 까?
먼발치에서 느끼는 것이 아닌 그 내면 깊숙한 곳에서 호흡하며 일원으로 동화되는 것 같은 그런 것.
무수한 바위군락을 이리 돌고 저리 돌고, 그 사이 사이에 자리한 나무들이 형형색상의 무지개를 피워내니 누가 그 아름다운 모습에 유혹당하지 않겠는가.
빼어난 바위 군락과 황홀한 단풍을 보는 것에 그친다면 그건 설악이 아니다.
때론 끙끙거리며 쇠줄을 잡고 올라야 하고, 때론 뒤돌아 엉덩이를 앞장세워 바위를 내려가야 하니 어느 하나가 차면 다른 하나가 모자라는 그런 곳이 아니라, 이것도 저것도 어느 하나 소홀히 할 수 없는 드문 완벽함이 구비된 산길이라 해도 결코 이의를 달 사람은 없을 것이라 단언한다.
만일 있다면 그는 분명히 하나는 알고 둘은 모르는 자일 것이니, 아예 귀담아 들으려는 생각을 버려라.
이 자신 만만한 어구. 그래! 나는 책임 질 수 있다. 설악 공룡을 걷는, 이렇게 단풍이 봄 꽃 피듯 하나둘 피어나는 시절에 그 바위군락과 나날이 달라지는 잎들을 보노라면 누구나 같은 생각을 할 수 있을 것이리라.



자연 걸음이 느려진다.
이제 기어간다고 해도 버스 출발시간까진 넉넉하니 걱정할 일도 아니다.
그래서 여기도 올라보고 저기도 둘러본다.
조선조 정극인이나 정철이 이 공룡의 등허리를 한 번 쯤 지나갔다면 그야말로 멋진 가사가 탄생했을 법한데, 정선이나 김홍도가 이곳을 한 번 만 다녀갔다면 불후의 명작이 탄생하고도 남음이 있을 범한데, 아쉽다.
우선은 그들의 수려한 필치로 이곳을 노래하고 화폭에 담지 못한 것이 아쉽고, 마음속 감상을 절절한데 글로 표현하기에 버거운 나의 능력이 아쉽도다.
수렴동 계곡을 지나 건너다보이는 용아장성도 빼어나고 천화대며, 범봉이며, 왕관봉이며, 건너 화채봉 능선을 버치고 있는 무수한 바위군락도 빼어나구나.
아! 이럴 땐, 단 한마디로 요약할 수 있는 게 있다.
“오이소! 보이소! 느껴보소!”
경상도 어느 지역의 관광안내 카피가 아니라 설악에 대한 나의 간단한 느낌이다.
무어 되도 안하는 어휘 꺼내어 주절주절 늘어놓으랴.
더 이상 말이 필요 없을지니.
아 또 있다.
“끝내준다”
세토막: 설악, 그 고단한 걸음의 즐거움.
1275봉을 오르는 길은 공룡능선의 頂點이다.
근 100여미터의 급한 경사길을 곧장 치고 올라야 되는 곳.
두어 차례 다녀간 길이건만 밑에서 보는 순간, “어휴” 하는 한 숨부터 나오는 곳.
그러나 나의 허벅지는 용케도 활기차다.
심장박동소리는 빨라지지만 앞서가는 사람들을 하나 둘 따돌린다.
아! 다행이다. 내심 근육경련의 염려가 있었는데–.
드디어 안부에 섰다.
역시나 힘찬 걸음질 뒤에 휴식을 취하는 사람들은 늘어만 가고, 이몸도 바위턱에 자리를 잡았다.
무엇으로 뜨거워진 몸을 달래줄 까.
그래 맥주가 있었다. 갈증해소와 더불어 대사를 원활히 도와주는 하얀 거품이 송송 솟는 노란색 액체.
“딱”
시원한 소리와 더불어 솟아오른 하얀 거품에 입술을 갖다 댄다.
“꿀꺽꿀꺽”
목젖을 타고 흐르는 느낌이 좋다.
그리곤 건빵으로 안주겸 에너지 보충.
산에서의 두 번째 재미가 이렇게 쉼을 하는 동안 목안으로 넘기는 알코올 음료가 아니던가.
적어도 내겐 그렇다.
첫 번째 재민? 그건 따로 있다.
이제 서서히 몸을 일으킨다.
다리쉼도 했고, 소진된 에너지도 어느 정도 보충 해 줬으니 마등령 갈림길 까지는 곧장 가야한다.
길게 내려서는가 싶더니 그 만큼 솟구쳐 오르는 것이 산길이 특성 아니던가.
긴 내림길을 지나 다시 올라 설 즈음.
그 때. 아! 내게도 이런 행운이 있었구나.
이미 말라버린 솜다리꽃이다.
공룡을 다녀가신 분들이 간간히 발견하고 카메라에 담았다는 그 솜다리꽃을 본 것이다.

바위틈에 이런 저런 꽃이 있어 카메라에 담고 있는데, 반대편에서 DSLR을 가지고 꽃을 담으시던 분 왈.
저기 솜다리꽃이 있네요–
내가 서 있던 머리위에 이미 말라버려 형체만 남아있던 녀석이 솜다리라니.
비록 그 검소하고 청순한 본모습을 담을 순 없었지만 그래도 이게 어딘가.
이래저래 오늘은 얻는 것도 많다.
이럴 땐 마음속으로 노래 한 곳 불러줘야 한다.
Edelweiss, Edelweiss,
Every morning you greet me.
Small and white, clean and bright,
You look happy to meet me.
Blossom of snow, may you bloom and grow,
Bloom and grow forever.
Edelweiss, Edelweiss,
Bless my homeland forever.
사운드오브뮤직의 영화속 한 장면이 선명하다.
에델바이스는 작고, 희고 깨끗하고 밝은 꽃이던가.
너의 본 모습을 보지 못함이 못내 서운하고, 비록 꽃대는 모두 말랐으나 “You look happy to meet me.”
그랬으면 좋겠네–
나한봉 언저리를 휘돌아 가는 길은 언제나 숨가쁘다.
높은 경사야 그렇다 치더라도 공룡의 요철같은 봉우리를 오르고 내리다가 기진맥진함 몸뚱이를 다시 한 번 용쓰게 하니 어찌 수고롭지 않을 손가.
그러나 이전에 비해 쇠줄도 정비됐고, 해서 오르기는 훨씬 수월했다. 이태 전에는 밧줄을 잡고 오르다 짧은 다리를 원망하기도 했는데, 이제 그런 수고는 없었다. 짧은 다리에도 능히 오를 수 있었으니 말이다.
쇠줄을 잡고 몇 번 용을 쓰다 보면 채 숨고르기도 하기 전에 하얀 바위가 우뚝 솟아 어서오라 반겨주니 이 또한 작은 희열을 느낄법 하지 않는가.
나한(羅漢)이 수행을 끝낸 존경과 사랑을 받는 성자라면 이 설악산 바위봉인 나한은 어떤 존재인가.
바위 암봉에 저런 이름이 붙은 연유는 애써 능선을 건너온 사람은 능히 많은 이들의 사랑과 존경을 받을 가치가 있다는 의미일까. 아니면 험한 능선을 지나온 만큼 나한의 경지에 오르도록 더욱 노력을 하라는 메시지를 전하는 것일까? 이 미천한 자의 마음속엔 아무래도 후자의 의미로 새기고 싶다.
공룡을 찾을 정도로 산을 좋아하거나 아니면 남이 가기에 나도 간다는 오기로 찾은 사람이라 해도 곳곳에 물병이나 과자 봉지가 거리낌없이 버려지고 있는 현실이고 보면 어찌 이 능선을 넘었다고 해서 나한처럼 존경을 받는 자라고 치부할 수 있는가. 그건 나한에 대한 모독이자 나한봉에 대한 예의도 결코 아니리라.
이제 마등령이 가깝다.
너른 바위사면에 사람들이 쉬고 있다. 그 틈을 비집기는 그렇고 해서 어쭙잖은 자세로 서서 주위를 둘러본다.
유난히 황철봉이 선명하다. 울산바위도 그렇고.
발아래 바위군락도 여전하다.
어느 곳, 어느 지점인들 아름답고 경이로운 곳이 없으랴만 설악의 공룡능선은 걷는 내내 한순간도 우리 눈을 그냥두지 않는다.
두번 세번 다녀간 이의 눈에도 이와 같거늘 처음 이 길을 찾는 사람에겐 그 한 장면 한 장면이 얼마나 특별하겠는가.
가끔 홀로 떨어진 구름 한덩이가 남아 헤매고 있거나, 아침 안개가 채 자리를 비우지 않고 골짜기 사이에 호수처럼 남아있다면 仙界가 바로 여기임을 의심치 않으리.
다만 뒤따라오던 억센 경상도 사투리의 사내들은 빼고.
그들은 그저 산타는 재미가 없다니 뭐니 이런 소리만 떠들고 있었다.
산의 재미를 모르는 산맹(山盲)이라고 이름하자.
오세암 갈림길, 돌이 깔린 터에 자리를 잡았다.
발아래 바위꽃 가득핀 골짜기에 바람 한 줄기 부는가 싶더니 갑자기 안개가 몰려든다.
선계의 날씨는 맑고 투명한데, 하계의 세상은 안개 구름이 자욱하구나.
나는 선계에 머물고 있다. 그러나 하계보다 더 요란한 선계~~.
배낭을 뒤졌다. 남은 먹거리라곤 건방 한봉지와 파인애플 캔 한 통.
뚜껑을 따 한조각 집어 입에 넣는다.
달짝지근한 과즙이 목안으로 넘어간다.
맥주 한 캔 이라고 있으면 錦上添花련만, 없다. 하나 더 가져올 걸–.
오세암을 거쳐 백담사쪽으로 내려가면 좀 더 수월할 터지만 예정대로 비선대쪽으로 향한다.
공포의 내림길.
공룡능선을 탈 때마다 무릎병을 일으키게 했던 장본인.
오늘은 ‘그래 한 번 싸워보자’는 심정으로 다시 내려선다.
3.5킬로미터의 거리라고 하지만 그 길은 전체 공룡능선을 걷는 것보다 부담으로 다가온다.
자라보고 놀란 토끼가 솥뚜껑보고도 놀란다더니 십상 내가 그 형국일 터.
그래서 보행속도도 최대한 늦추고 스틱을 적극 활용키로 한다.
거듭 오른쪽 무릎의 무탈을 기원하며–
아직 비선대 내려서는 길은 단풍이 들기 전이다.
바람이 몰고 온 안개는 아름다운 바위군락 사이에 머물고 있어 보는 즐거움은 덜했으나 오늘도 거대한 암벽과 씨름하는 바위꾼들의 움직임을 보는 것으로 산행을 마무리 한다.
공룡, 오늘 고단한 하루를 기억한다면 다시 오고 싶지 않을 것이나 필히 계절이 바뀔 때마다 너의 등을 타고 싶은 마음이 간절할 터. 내 그런 그리움을 어찌 달랠꼬.
☞ 10. 1(토). 3:15 한계령 들머리 ~ 13:10 비선대 내림길
☞ 맑은 날씨. 그러나 설악산 하계(下界)엔 소나기 한줄기 왔다고 함.
☞ 00 산악회 버스(28 우등형)에 탑승하여 혼자 감.
☞ 한계령 들머리(3:15) – 한계 삼거리(4:50) – 끝청(7:01) – 중청대피소(7:35) – 희운각대피소(8:18) – 신선대 전망대(8:44) – 1274봉(9:55) – 마등령갈림길(11:28) – 비선대(1:27) – 설악입구(2:10) – 점심, 그리고 버스타고 C주차장 (3:10) – 버스 출발(4:30)







































수고하셨습니다
저도 내일 설악가요. 정규코스 말고 비정규 코스로
걸리지나 말어야 될텐데..
비정규 코스~~~. 마가목 열매 같은 것~~~. 비정규직은 없어야 세상다운 세상이 되는데, 설악의 비정규코스는~~~~. 많이 보시고 찍어 우리네도 구경하게 해 주소서~~
장문의 글힘, 정말 수고하셨고 고생하셨습니다.
심혈을 기울여 한 자 한 자 치열하게 글을 쓰는 천년샘물님이나 그 정성을 놓칠세라 꼼꼼히 읽어보는 허우단심이나 고도의 인내심을 발휘해야 된다는 점은 아마 공통적일 듯 합니다.
일사천리로 휘날리는 천의무봉한 표현력에 홀려 넋 놓고 읽다보니 글줄을 잃어버려 헤맨 적이 한 두 번이 아니네요 ㅎ~.
그게 미워 댓글을 팽개치려다가 읽은 게 아까워 넋 놓고 갑니다. 나중에 돌려주소서.
벌레먹은 사과의 스티븐잡스가 죽었습니다. 아날로그가 아닌 디지털 시대의 대통령 같던 사람~~. 어쩌면 저는 아날로그의 원형속에서 깨어나지 못하고 있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아 글 속에 있는 에델바이스 같은 그런~~. 조금은 희귀한 존재? 그냥 이런 저런 생각들을 담아 보는데 많은 이들은 그저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지요. 나는 아닌데~~. 그래도 단심님의 글이 힘이 됩니다. 무엇을 얻고자 함도 아니고 보여주고자 함도 아닌 그냥 자신의 이야기를 유아들 그림 그리듯이 그렸음에도 지나치지 않고 읽으시고 글주시는 그 정성. 많은 블로그, 카페 등 이른바 홍수같은 인터넷 공간의 움직임속에서도 연꽃같은 아름다움은 존재한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그저 고맙습니다. 토요일 뵐께요~~
멋진 단풍 잘 보고 갑니다^^
제가 갔을 대는 단풍이 막 들때이고~~. 뉴스보니 지금은 한창 익어가는 중인것 같습니다. 천불동 일대, 수렴동 일대 단풍은 그야말로 압권인데~~. 이른 산행이라 많이 아쉬웠답니다.~~
저도 어제(10월 9일)설악으로 발길을 옮기려다 사람들로 인산인해일것 같아 방태산으로 발길을 돌렸답니다.
단풍철이면 음주산객으로 온산이 시끌벅적하고 욕다툼으로 정신이 혼란스러운것이 싫어지는 마음 때문이겠지요.
새벽에 여명을 헤치고 중청으로 희운각으로 발길을 옮기는 천년샘물님의 모습이 눈에 선하네요.
길동무라도 있었다면 멋진 동행이였을텐데요.
긴 산행에 또 다른 삶의 희열을 느낀 마음을 글로 통해 봅니다.
건강한 모습과 멋진글 그리고 사진 잘 보았습니다.
설악, 아니 단풍으로 이름께나 난 산들은 다들 몸살일 것 같습니다. 그런 분위기에 편승을 해야 하나 고민하다가 그래도 덜 복잡겠지 하며 조금 이른시기를 잡았는데, 밀려 다니긴 매 한가지 였습니다. 그래도 덜한 것이겠지요? 오대산 노인봉 산행 같이 못하게 되어 아쉽습니다. 이 가을 다 가기 전에 따로 번개 한 번 치시어 발맞춰 보심이~~~. 어느 산이건 다 좋은 때이니~~
에델바이스가 들리는 귓가에서 맴도네요..^^
가을을 깊게 타시것 같은 천년샘물님..
올 가을 산도 가을도 무사히 타시길 바랍니다..^^
아이구 고마우니님 오셨네요~~이제야 알현을 하게 되어 죄송~~. 다음에는 완전한 에델바이스 담으려 또 가야할 것 같아요~~.
내년에는 동아닷컴에서 무박으로 설악산 공룡종주 한 번 하도록 권유합시다 다다다다다~~. 힘드신 분은 천불동 하산~~.
여기 이런 블러그가 있는걸 몰랐습니다. 첨으로 들어와봤습니다.
그런데 공룡능선모습 참으로 오랫만에 보는군요. 너무 오래 되나서..
사진을 보니..봄에는 가봐애 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