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돌팔매질에 특효약은 원칙-2009.3.9

북한의 외부세계에 대한 위협은 그 수단이 플루토늄 재처리를 포함한 ‘핵위협’과 미사일 발사 등으로 제한돼 있는 탓에 언뜻 단조로워 보인다. 또 주기적으로 반복되는 경향도 있다.

2002년 고농축우라늄(HEU) 관련 의혹이 제기됐을 때 ‘핵동결 해제→핵연료 제조공장 봉인 제거→국제원자력기구(IAEA) 사찰관 추방→IAEA 탈퇴’의 수순을 밟았던 것은 1993년 1차 핵 위기 상황의 재판()이었다.


대포동 1호 미사일(북한 주장 인공위성 광명성 1호)을 쏘아 올렸던 1998년 8월 북한의 국제관계에 대한 인식은 대포동 2호(북한 주장 광명성 2호)를 시험 발사하려는 현재의 상황과 유사해 보인다.

1998년 당시 제네바합의(1994년)에서 북-미관계 정상화라는 궁극적 목표에 동의하고도 관계 개선에는 조심스러웠던 빌 클린턴 미국 정부의 주의를 끄는 데 성공했던 것처럼 현재도 출범 100일이 안 되는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관심을 끄는 데 성공했다.

미국은 스티븐 보즈워스라는 거물급 대북정책특별대표의 인선도 앞당겼고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에 이어 보즈워스 대표를 한국을 포함한 아시아 3국을 방문케 해 북한 미사일 대책 마련에 들어갔다.

또 북한의 ‘돌팔매질’이 대부분 미국의 대화 응대로 귀결된다는 점도 반복되는 패턴이다.

1994년 6월 북한의 핵확산금지조약(NPT) 탈퇴에 미국은 지미 카터 전 대통령의 특사 파견으로 ‘화답’했다. 또 북한의 장거리 미사일 발사에 대해 미국은 핵·미사일 문제의 일괄 타결을 골자로 하는 ‘페리 프로세스’를 내놓았으며 매들린 올브라이트 당시 국무장관의 역사적인 평양 방문도 이뤄졌다. 

2006년 10월 북한의 지하 핵실험도 결과적으로 조지 W 부시 행정부의 대북정책 전환의 계기가 됐다. 그전까지 북-미 양자 대화를 거부하던 미국은 크리스토퍼 힐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를 세 차례나 북한에 보내는 등 양자협의를 통한 북핵 문제 해결에 매진했다.

미국 정부 당국자들이나 전문가들은 “현 상황에서는 ‘쏜다면 쏜다’는 북한의 말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어 보인다”며 대포동 2호 시험 발사를 기정사실화하는 분위기다. 북한이 관영매체를 통해 여러 차례 발사를 공언했고 미국으로서도 구두경고 외에는 마땅한 방법이 없어 보이기 때문이다. 

제재 수단도 마땅치 않다. 사석에서 만난 미 정부 당국자들은 “이미 2006년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제재가 존재하는 상황에서 추가로 실효성 있는 제재방안을 마련하는 것이 쉽지 않다”고 말했다. 

또 2006년 미사일 발사에 이은 핵실험에 대해 유엔 안보리를 통한 대북제재에 동의했던 중국, 러시아 등은 “제재 결의는 신중해야 한다”는 태도다.

자기들 뜻대로 일이 안 풀리면 긴장을 고조시켜 대화를 얻어내려는 북한의 체질 개선을 위해서는 우리 정부가 미국과의 긴밀한 정책 공조 속에 흔들리지 않는 원칙을 마련해야 한다. 

2006년 우리 정부의 대응이 비판을 받았던 것은 북한의 악행()에도 불구하고 북한과의 대화를 얻으려는 태도 때문이었다. 북한의 미사일 발사를 두고 “예견했던 일이며 남한이나 미국 어느 쪽도 겨냥한 것은 아니다”라는 식의 태도를 취했던 정부는 대북정책에 있어 미국과도 빈번히 불협화음을 냈다.

보즈워스 대표를 비롯해 백악관국가안보회의 대량살상무기(WMD)비확산담당조정관과 호흡을 맞췄던 경험이 있는 미국 내 한 대북 소식통은 “기존 합의원칙에 충실하며 대타협(grand bargain)보다는 작은 발걸음이라도 내디뎌 한반도 비핵화의 궤도 이탈을 막겠다는 것이 현재 협상 팀의 생각”이라고 말했다.

카테고리 : 특파원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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