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경찰국가’ 완장 벗은 미국-2012.1.9

5일 발표된 미국의 ‘국방전략지침’은 급변하는 국제안보환경에서 세계 지도국가로서의 지위를 지키려는 고민이 담겨 있다. 군사력만이 아닌 국력 전체를 투입해서라도 미국의 가치인 자유와 안보를 지켜내겠다는 다짐이다. A4용지 8장 속에 적힌 4033개 단어를 읽어 내려가다 보면 심각한 재정위기 속에 4870억 달러 이상의 예산을 삭감당한 세계 최강 군대 미군의 고민을 알 수 있다.
세계경찰국가 완장을 벗은 미국은 “미국은 앞으로 대규모 군대를 장기간 파견해 분쟁지역의 안정 확보를 위한 작전을 실시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두 개의 전쟁’ 동시 수행 전략도 폐기했고 지상군의 규모는 향후 10년간 57만 명에서 49만 명으로 줄인다. 날렵하고 유연한 군대를 만들어 긴급 상황에 스마트하게 대응하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미국이 정말 하고 싶은 말은 난마(亂麻)처럼 얽힌 지구촌 안보위기를 단독으로 해결할 능력도 없고 혼자 힘으로 풀려고 발버둥치지도 않겠다는 선언이다. 이 보고서는 무려 40여 차례나 동맹국 및 파트너 국가의 긴밀한 협조를 요구하고 있다.
미국 국가안보전략의 대전환은 오래전에 예고된 것이다. 해외주둔 미군을 붙박이 군으로 묶어두지 않고 기동타격대 식으로 운영하겠다는 전략적 유연성 개념이 나온 것이 2001년이다. 도널드 럼즈펠드 전 국방장관은 2003년 한미 연례안보협의회(SCM)에서 주한미군의 역외(域外) 차출 가능성을 기정사실화했고, 주한미군 한강 이남 이전 계획도 마무리했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민주당 정권은 4개년 국방검토보고서(QDR)와 국가안보전략보고서(NSS)를 통해 럼즈펠드 플랜의 근간을 계승했다.
노무현 정부 외교안보라인을 장악했던 ‘자주파’는 미국의 군사전략 전환에 대해 동북아 균형자론으로 응전(應戰)했다. 노 전 대통령의 인식 속에서 미국의 군사전략 전환은 다분히 중국 견제의 의지가 담겨 있고 한국이 침묵할 경우 중국을 자극할 것이라고 믿었다. 미국은 “한국의 선택에 따라 동북아 세력균형의 판도가 바뀔 수 있다”는 2005년 3월 노 전 대통령의 발언을 ‘동맹파기’ 선언으로 간주했다. 2006년 북한의 핵실험에도 꿈쩍 않는 한국을 보고 나서는 “이젠 비판도 실망도 접었다”고 했다.
2012년 세상은 더 긴박하게 변화하고 있다. 김정일의 급사(急死)로 준비되지 않은 지도자 김정은이 통치하는 북한의 불안정성이 크다. 권력교체가 이뤄지고 있는 중국은 거침없는 군사력 팽창에 나서고 있다. 안보 위기의 쓰나미가 밀어닥칠 수도 있는 상황이다.
현 정부 외교안보라인의 움직임은 한가하다 못해 무능력해 보인다. 연두 업무보고에서 외교부는 “한반도 정세의 안정적 관리를 위해 주변국과 긴밀히 협력하겠다”고 밝혔다. 통일부는 “북한은 시간이 필요하니 기다리는 것도 의미가 있다”고 했다. 전문성 부족과 과잉대응으로 화(禍)를 불렀던 전 정부의 전철을 밟지는 않겠지만 비전이 안 보인다. 중국은 원래 마음대로 안 되는 국가고 북한은 상식이 통하지 않는 막무가내 아니냐는 항변이 고작이다. 이명박 정부는 애초부터 국가안보 대전략이 없었다는 비판이 여기저기서 들린다.
2015년 12월로 예정된 전시작전통제권 전환이라는 활시위는 당겨졌다. 한반도 안보 제1책임자의 위치를 되찾는 한국에 미국이 바라는 것은 동북아 평화안보 수호에 실질적으로 기여하고 국제안보에 적극적인 협력자가 돼 달라는 것이다. 점점 강해지는 평생 이웃 중국은 미국과 중국 중 하나를 택하라 하고, 미국은 새로운 아시아태평양 시대를 선언했다. 한국의 5년을 책임질 새 지도자는 이 도전에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카테고리 : 오늘과 내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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