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즈워스, 그 큰 머리속엔 어떤 비밀이?

수줍음을 무뚝뚝함으로 감추는 맘 좋은 大頭 아저씨 보즈워스
 스티븐 보즈워스 플레처스쿨학장은 1995년 이후 한반도와 가장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 미국 사람 중 하나일 것입니다. 일단 경력을 보면 1995년부터 2년 동안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 사무총장을 지냈습니다. KEDO는 1994년 북-미 제네바 합의를 계기로 만들어진 기구로 간단히 설명하면 북한의 금호지구에 경수로를 지어주는 것을 통합 관리하는 곳이었습니다. 합의는 미국이 했지만 경제적 부담은 한국과 일본이 대부분 지는 상황 탓에 한국의 공무원 중에도 많은 사람이 KEDO에 파견돼 일을 했죠.
 이후 보즈워스는 1997년 12월 주한미국대사로 부임해 2001년 2월까지 일하면서 역사적인 1차 남북정상회담을 현장에서 지켜보게 됩니다. 어느 정도 알려진 이야기이지만 보즈워스는 고 김대중 전 대통령과 상당부분 대북관을 같이 합니다. 보즈워스는 수차례 기고문을 통해 김 전 대통령의 햇볓정책에 대한 지지를 표명했고 북한에 대해서는 관여(engage)해야 한다는 말을 해왔습니다. engage 하는 이외에 어떻게 북한문제를 해결할 수 있느냐는 말이죠. 어찌보면 당연한 말입니다. 
 대사를 마친 보즈워스는 보스턴 근교 Tufts대 외교안보전문대학원인 Fletcher School 학장으로 자리를 옮깁니다. 여기에서부터 필자와의 개인적인 인연이 생기죠. 저는 2001년 9월 플레처스쿨 석사과정에 입학을 했습니다. 그곳에서 만난 보즈워스 학장 왈, “어지간하면 한국학생은 최대한 뽑을 생각이다”라며 제 어깨를 두드리더군요. 나름대로 열심히 준비를 해서 합격했다고 생각했는데…여하튼 그렇게 2년 동안 학장과 학생으로 보즈워스를 만났습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은 2002년 북한이 우라늄 농축을 하고 있다는 것이 밝혀진 순간이었습니다. 아직까지 제네바합의의 정신이 존재한다고 믿었던 미국 내에서는 북한이 속였다(cheating)했다는 격앙된 반응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미국에서 cheat라는 단어는 가장 강한 수준의 비판입니다. 학장인 보즈워스는 관심있는 학생들을 상대로 직접 나서서 자신이 생각하는 북한의 우라늄 농축문제를 차분하게 설명했습니다. 결국 제네바협의 체제의 붕괴를 선언할 수 밖에 없었고 KEDO의 약속 이행도 어렵다는 설명을 했습니다.
 필자는 2004년 동아일보에 돌아왔고 보즈워스 학장은 1년에 두 번 정도 한국을 방문해 플레처 졸업생들과 만남을 갖고 한국 조야의 인사들과 관계를 지속했습니다. 2007년 윌리엄 페리 전 국방장관과 서울을 찾은 보즈워스를 조선호텔에서 인터뷰 한 적이 있습니다. 당시 보즈워스는 새로운 한국정부는 ‘깐깐한 포용정책(tough engagement)’를 펼쳐야 할 때라고 조언했죠. 북한이 원하는 것을 다 주면서 한국정부가 원하는 것은 제대로 관철하지 못하는 식이면 곤란하다는 뜻도 피력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보즈워스가 했던 말 중에 “대부분의 외교는 소위 ‘악행에 대한 보상’이다. 최악의 행동을 가장 저렴한 방법으로 막아낼 수 있다면 그것이 바로 외교다”라고 한 말이 기억에 남습니다. 그의 철학을 엿볼 수 있는 중요한 발언입니다. 

 2008년 워싱턴 특파원으로 부임한 필자는 그해 4월 창간기념호 특집으로 보즈워스를 인터뷰 했습니다. 이명박 정부 출범 직후였고 북한에 대해서는 단호한 태도를 취하겠다고 공언하던 상황이었습니다. 보즈워스는 “북한에 단호한 태도를 취하는 것은 전임정부의 대북정책에 대한 반성에서 비롯된 것이지만 국제경제적인 측면에서 보면 한국이라는 시장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가능성도 있다”고 내다봤습니다. 그의 전망은 어느정도 맞아 떨어진 셈이죠. 
 보즈워스는 버락 오바마 행정부 출범과 함께 대북정책특별대표에 임명됩니다. 형식적으로는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 직속으로 대북정책의 큰 그림을 조율하는 고위직이었지만 플레처스쿨 학장을 겸임하는 ‘파트타이머’에 머무르면서 스스로의 입지를 크게 약화시켰습니다. 실제로 오바마 행정부의 대북정책은 보즈워스의 입김보다는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가 주도하는 형태로 진행됐습니다. 북한이 오바마 행정부 초기 미사일발사와 핵실험을 감행하면서 대북 강경파의 목소리가 대세가 됐죠. 대북협상파인 보즈워스와 성김 6자 회담 수석대표는 워싱턴에 몇 안 되는 외로운 비둘기처럼 보였습니다.
 다 잘 아시는 이야기지만 2009년 12월 보즈워스는 회심의 방북을 성사시켰고 북한과의 대화가 속도를 내는가 싶었지만 2010년 천안함 폭침과 그해 말 연평도 포격사건으로 북한과의 관계는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게 됩니다. 제 생각으로는 이 시점에서 보즈워스는 대북정책특별대표로서 할 수 있는 일이 더 이상 없구나 하는 체념을 한 듯 보입니다. 보즈워스의 모습은 워싱턴 바닥에서 거의 찾아보기 어려워 졌고 공식 활동도 급격히 줄어듭니다. 
 필자는 이임을 얼마 남겨두지 않은 2011년 5월에 보즈워스를 단독 인터뷰 했습니다. 좀 이상한 조건이 붙었어요. 실명을 공개하지 않고 미 국무부 고위당국자라고 표기하는 조건으로 하는 인터뷰였죠. 하지만 질문은 대부분 보즈워스의 직무와 관련된 것이니 인터뷰 기사를 읽어보면 누가 하는 이야기인지 훤히 짐작할 수 있는 내용이었죠. 이제 보즈워스가 공직을 털고 자연인인 플레처스쿨 학장으로 돌아갔으니 당시 대화 내용 중 좀 의미있는 부분을 소개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제 생각에는 보즈워스는 기본적으로 대북화해협력주의자라고 생각합니다. 이명박 대통령 정부가 추진해 온 이른바 ‘원칙’에 입각한 대북정책과는 좀 철학적으로 맞지 않는 분이라고 볼 수 있죠. 그래서 인터뷰에서 물었죠. 한국과 미국 정부가 대북정책에 있어 의견이 일치하는지. 그랬더니 보즈워스의 답이 “We’re on the same book, but not on the same page.” 의역해 보자면 큰 얼개는 같지만 각론이나 세세한 전략에서는 좀 다르다 정도라고 표현할까요? 내친김에 MB정부의 대북정책을 어떻게 평가하느냐고  묻자 “I think it(MB administration) demonstrated substantial resolve on North Korea policy. And I think consistency is in the long run is very important.” 라고 했어요. 하지만 중요한 답은 그 다음에 나오죠. 보즈워스는 “flexibility(유연성)를 갖는 것도 중요하다. 때때로(from time to time) tactical 한 차원에서 조정을 할 필요도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습니다. 보즈워스가 대북정책과 관련해 금과옥조처럼 하는 말은 “북한을 우리가 원하는 모습으로 보려고 하면 안된다. 그냥 있는 그대로의 북한을 보고 그에 따라 대처해 가야 한다.” 노무현 정부시절 통일부 장관으로 있던 이종석 씨의 이른바 ‘내재적 접근론’과 맥이 닿는 말이라 생각합니다. 
 10년 넘게 보즈워스를 본 사람으로써 보즈워스는 첫 인상 때문에 많은 손해를 보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입 딱 다물고 인상을 쓰면 그렇게 차갑고 때론 무섭게 보일 수가 없어요. 뭐 물어보면 퉁명스러울 것 같고 머 그런 느낌 있잖아요. 하지만 제가 본 보즈워스는 사실 되게 수줍음을 많이 타는 사람입니다. 평생 외교관을 했지만 의외로 사람들하고 잘 즐기지 못하고 다른 사람들이 먼저 말 걸기 전에 가까이 다가가지 않는 성격입니다. 비호감이란 느낌을 주기 십상이죠. 보즈워스는 제가 만난 사람중 아마도 머리가 가장 큰 사람 중 한명 일 겁니다. 그 속에는 한국과 북한을 포함한 한반도 문제에 관한 많은 비밀들이 숨어 있겠죠? 재미난 이야기들 더 많이 취재해 보고 싶은 의욕이 항상 드는 취재원입니다. <終>
카테고리 : 내가 만난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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