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연맹 기본훈련 제2부를 통도사 부근에서….

1967년에는 태능 화랑대에서 한국잼버리 대회가 계획되어 있어서 준비에 분주한데,
경남연맹

에서 초급지도자 훈련 제2부를 양산 통도사에서 개설한다고 내려와서 대장으로 훈련을 주관해

달라는 요청이왔다.  잼버리대회 준비만도 벅차서 가지 않으려고 했는데
주원기 교도국장님께

서 우리에겐 지도자 양성이 더 소중하다시며 힘이 들더라도 다녀와 주면 좋겠다고 하신다.

 

그때가 식목일을 전후한 봄이였었는데 날씨가 추운것인지 따뜻한 것인지 헷갈리는
길에 짐을

꾸려 부산으로 내려갔다.  재작년 여름에도 반태형 사무국장의 성화에 못이겨
통도사에 내려

와서 경남연맹 하계야영대회를 사찰 옆 넓은 마당에서 야영장으로 지원한 일이
있었는데 그때

통도사 스님들의 눈빛이 너무도 곱고 다정했었기에 다시 만나뵙고 싶은 마음도
남아 있었다.

 

부산에 도착하여 연맹 사무국까지 택시로 찾아가니 훈련짐을 챙기면서 준비에 바쁜
모습이었다.

부산과 경남연맹이 분리되기 직전이라서 어수선한 때였지만 강사들을 불러
강사회의를 하는데

위원장이신 이윤근 도 교육위원회 교육감이 오셔서 강사들을 격려해 주시며 훈련기간에
찾아가

하루밤을 같이 지내시겠단다.   이윤근 위원장님은 50년대 후반에 해동고등학교
교장으로 재직하

실때 경남연맹 사무국장을 겸임하셨었으며 불교신자로서 믿음 생활도 모범적인 분이셨다.

 

 

다음날 이른 아침에 추럭으로는 짐을 싫어 떠나 보내고 강사들은 시외버스로 통도사
입구에

내려 개울가 야영지로 들어갔다   각 지에서 온 수강자들이 모여 있었으며,
선발대로 온 지도

자들이 본부천막도 세우고 반의 영지도 구획하여 놓았다.  계시판도 설치되고 수강자들의

소수속도 마치고 입소식에는 양산 교육청 교육장이 오셨으며 통도사 주지스님도 오셔서 반갑


맞아주시고 수강생들을 격려해 주셨다.  

 

반의 설영작업중에는 혹시나 모를 우천에 대비하는 철저한 시설을 주문하였으며,
식사 당번이

며 모든 책임은 날마다 순번으로 하도록 알렸다.  훈련중에 진행되는 모든 과정을
노트에 기록

하도록 안내를 하고 그 노트는 위원장이신 교육감이 오시는날 저녁에 거두어 위원장님이 직접

검사를
하실거라고 귓뜸을 해주었더니 노트 정리에 집중하는 모습들이었다.  아마도 그 노트


후일에 지도자 활동에 큰 지침서가 되었을 것이다.

 

<경남연맹 지도자훈련의 주역들>

 

토요일 오후에는 이윤근 위원장께서 오셔서 부탁 드렸던 한과목을 강의해 주셨으며,
그날 저녁

에 수강생들의 노트를 거두어 검열을 하였는데 검열을 마치고 위원장님과 대장이 서명을 해서

돌려 주었었다.  다음날은 일요일이라서 오전시간을 종교시간으로 정해 불교산자 9명은 통도사로

이윤근 위원장님을 따라 종교의식에 참석하였으며, 기독교인 7명은 부근 교회 목사님을 초빙하여

숲속에서
예배를 드렸는데 종교가 없는 수강생들은 어느종교던 참가해서 견학을 하라고 했더니

전부가 통도사로 따라갔다.  3박 4일의 훈련을 마치는 그날로 잼버리대회
준비를 위해 서울로 돌아

오는 고속뻐스에서 얼마나 깊게 잠을 잣는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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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두천 김노인댁 손 두부 맛

2004년 6월 27일.

정운주 이사장과 오전 7시에 호텔을 나와서 훈춘기독교회 주일 1부 예배에 참삭
하였다.

이른 아침시간이었는데 50여명의 성도들이 기도가운데 예배시간을 기다리고 있었다.

박서룡 담임목사님의 주례로 예배가 시작되고 아침의 공간에 찬송이 신선하게
울려퍼지는데

박서룡 목사님의 설교말씀에서 그날의 은혜를 듬북받고 돌아오려는데 목사님께서
따라 나오시며

다음부터는 오실때 식사라도 나눌수 있도록 틈을 만들어 달라시며 호텔로 돌아오는
택시도

잡아 주셨다.

 

호텔로 돌아와서 마침 그날이 장학생 최영걸 학생의 어머님 생신이라고 해서 최영걸
학생에게 전화로

오라고 불러서 종합비타민을 어머니께 선물로 드리라고 들려 보내면서 대학등록금
문제는 내가 미국

으로 돌아가서 최선을 다할것이니 우리 함께 기도로 간구해 보자고 하였다.

 

<대두천변 골짜기의 김노인댁 전경>

 

9시경에 허룡주임과 그 친구분 가족들이 두만강 지류인 대두천 계곡의 김노인댁으로
피크닉을 다녀와서

연길로 떠나자고 하여, 훈춘에서 일을 마친 피크닉을 떠났다.  허룡주임이
김노인에게 손두부도 주문해 놓았

으며 두만강에 그물을 처서 물고기도 잡아 매운탕을 끓이자고 어제 연락을 했다고
한다.

대두천을 따라서 김노인댁으로 들어가는 개울길은 울퉁 불퉁 했지만 마치 원족가는
어린마음 같았다.

 

김노인댁이 있는 골짜기에는 김노인댁 뿐인데 사는집도 새로 짓고 집뒤 산비탈을
개간해서 복숭아 과수원도

일구어 놓았다.  반겨주는 김노인을 따라 방으로 들어가서 몇마디 인사를
주고 받다가 우리는 김노인을 따라

1KM쯤 아래 두만강으로 나갔다.  두만강 옆 가장자리 물줄기에 그물을 처
놓았는데 그물을 끌어 올리니 두만강

물고기들이 함께 매달려 올라온다.  가지고간 그릇에 수북하게 거두어서
들고 돌아와 매운탕을 끓이는 김노인

부인을 바라보며 점심상을 기다렸었다.

 

 

점심상을 받았는데 손두부가 역시 최고의 인기요리였으며, 두만강에서 잡아온
물고기 매운탕도 일품이였었다.

닭도리탕에 싱싱한 상추며 풋고추를 고추장에 찍어먹는 맛은 다른곳에서는 맛볼수
없는 맛이었다.

 

마음으로는 실컷 먹고 싶었지만 탈이날까봐 골고루 맛을보는 정도로 먹었는데도
벌써 배가 불러온다.

점심을 마치고 한편에서는 마작들을 하고 다른쪽에서는 tv에 목을 빼고 있는데,
나는 마당으로 나와서 김노인과

이런 저런 이야기속에서 마음을 주고 받았다.

 

 

김노인은 TV에 접시 안테나를 설치해서 한국의 방송이며 미국 CNN까지 시청하여선가
세상 돌아가는 모양세를

꾀뚤고 있었다.  이맘때면 이따금 북한에서 사람들이 두만강을 건너와 양식을
얻으러 온다면서 1년 농사를 지어

놓으면 3년은 먹고 살수 있으니 조금씩이나마 나누어 주면서 살아간다고 하였다.

이 산 속에서 혼자 사시기에 외롭거나 무섭지 않으시냐고 물으니 조상님네들이
100여전 이전에 이곳으로 정착하여

살아왔고 자신도 이곳에서 태어났다며 외로울 틈도 없고 무서운 마음도 모르고
산다고 하였다.

 

줄담배를 피우시는 김노인에게 나도 이 골짜기에 둥지를 틀었으면 좋겠다고 하니
도시생활에 익숙한 사람들은 견디

기 어려울 것이라며 틈이 있을때마다 찾아오라고 한다.

 떠날 시간이 되어 김노인 내외분께 고맙다는 인사를 드리고 훈춘으로 돌아와
짐을 꾸려 귀국길에 올랐다.

두만강변 훈춘이 자연속에서 살고싶은 사람들에게는 최적의 자연도시라는 생각에
눈울 감으며 연길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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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회 소년대 우드배지 훈련과 사후과제

1966년 10월22일-30일까지 서삼능에서 개설하였던 제2회 소년대 우드배지훈련 제2부를

수료한 지도자들이
매일 사무실로 찾아와서 우드배지 훈련의 제3부인 사후과제가
어렵

다고 하소연을 하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어떤분은 그 사후과제를 하나만 써달라고 부탁하

는분도
계셨지만 그때마다 지금까지의 스카우팅 경험에서 해답을 찾아보라고 조언 했다.

 

그분들에게 20문제의 사후과제에 대한 줄거리와 그 해답을 찾는 방법을
설명해 주면 대

부분의 지도자들은 이해를 하고 길을 찾았다며 만족해 하는 경우가 많았다.

사후과제란것이 스카우팅에 어느정도의 경험이 있는 지도자라면 스스로가 생각하고
정리

해서 작성할수 있는 과제였는데 그 길을 찾지 못해서 어렵다고들 하였던
것이다.

 

더구나 제2회 소년대 우드배지 훈련은 주원기 선생님께서 중심이 되시어 많은
부분을 우리

현실에 맞추면서 미래를 향한 내용으로 실시했기 때문에 그리 어렵지는 않았던
훈련이었다

고 생각을 했고, 그때 부대장으로 봉사한주원기, 임광섭, 최종덕, 임익선, 이점구 선생과 도

반장으로
봉사한 김용완 선생등 훈련강사들은 그 정도의 사후과제라면 해낼수 있다고 판단

했던 과제였다.

 

그래서 어렵다고 찾아오는 지도자들을 만날때마다 늘 해주던 말이 세계 스카으팅의
기준에

맟추어 활동하려는 높은 수준의 우드배지 후보자들의 엄살이 심한것 아니냐면서 더 좋은
레포

트를 쓰시려고 욕심부리시나 보다고 하면 우물 우물 넘기곤 했었다.  훈련을 마치고
레포트를

제출하지 못해서 탈락하는 사람도 더러는 있었는데 그런일이 있을때마다 아까운 생각은
들었

지만 구재할 생각은 해보지 않았었다.  

 

자력으로 일어날수 있는힘이 있는데도 다른 사람에게 의존하려는 사람은 지도자로서의
자질에

모자람이 있다고 판단 했었기 때문에 탈락자는 돌아보지 않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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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천에서 초급지도자 강습회

1967년 2월초순에 춘천으로 가는 길은 꽁꽁 얼어붙어 있었지만 직행 시외버스
안은 그래도

난방이 되어 있어서 춥지는 않었다.  북한강을 따라가는 차창밖으로는
흰눈이 수북히 쌓여

있어 강인지 벌판인지 구분이 안되는데 소양강 호수를 지나는
창밖에는 마치 평원처럼 넓은

얼음판이 눈에 덮여 있었다.

 

춘천 시외버스 터미널에 도착해서 보스톤빽 하나 달랑 들고 숙박업소를 운영하는
유대근 사

무국장댁으로 가니 유국장은 강습회 준비관계로 교육위원회에 가셨다며 일하는
청년이 방으

로 안내를 한다.  방에 짐을 들여놓고 나가서 2박3일간의 숙박비를 미리 계산하는데
종업원이

받어도 되는지 모르겠다고 하기에 당연히 받아야 된다고 밀어 넣고 돌아와서 짐을 풀어
정리를

하는데 유대근 사무국장이 강사들 몇분과 함께 들어오며 반갑게 인사를 나누며 돈을 내손에

어주고는 인천사람 돈은 너무짜서 안받는다고, 어깨를 툭툭 치며 웃는다.

 

 저녁식사를 마치고 바로 강사회의를 시작하겠다고 하니 유국장이 커피라도 한잔씩
나누면서

하자며 종업원에게 커피를 타오라는데 우리 주임강사님 커피는 우리집에서 제일 큰 컵에 타

오라며 나를
바라보시면 빙긋이 웃으신다.  강사들에게 수강생들을 대하는 예의며 훈련의 질

서를 강조하고 특히 훈련강사들의
품위 유지에 각별한 주의를 부탁하고,담당 강의의 내용을

완전하게 자신의 것으로 소화를 시켜서 자신있는
강의를 해 달라고 주문도 했다.

 

 

다음날 오전 9시에 교육청 회의실에서 개강식을 갖었는데,  강원연맹 위원장이신
도교육위원회

교육감이 참석하시고  몇분의 교장선생님들도 오셔서 수강생들을 격려해 주셨다.

강의가 시작되면서 추운 밖의 날씨와는 대조적으로 강의실의 열기는 뜨거웠으며,
수강생들에게

열심히 기록을 남겨달라고 당부를 해선지 열심히 기록하며 질문도 꽤나 많이하는 강습회였다.

 

 

마지막날 오전에 강의를 모두 마치고 유대근 사무국장이 수강생들을 인근 식당으로
초대하여

한식으로 점심식사를 대접하며 오찬의 이름을 친교의 시간이라 붙이기도 했었다.  점심을 마

치고
돌아와서 수료식을 준비하는중에 위원장께서 찾아오셔서 수료식에서 수강생들에게 학교

에서 스카우팅을 통해 학생들에게
봉사정신이며 창의력을 길러 달라는 말씀을 남기셨다.  

어느 수강생은 강습회를 여러군데 다녀봤지만 이 강습회처럼
규칙이 엄한교육은 처음이라며

다른생각할 틈이 없어서 많은것을 가슴속에 담어간다고 고마워 하기도 하였다.

 

 

 

강습회를 마치며 기념촬영을 하고,  춘천을 떠나려는데 유대근 사무국장이
시외버스

정유장까지 따라 나와 춘천의 명물이 막국수인데 대접을 못해서 서운하다고 해서 다

음에 와서 두그릇을
먹겠다는 농담을 남기고 버스에 올라 춘천을 떠났다.  춘천이 서울

보다는 더 추운것같은 기분이 들었는데
실제로 수은주가 몇도인가 낮다고한다.  유대근

사무국장님. 연세는 많으셨는데 언제나 만나면 친구처럼 대해주시며
농담도 많이 하셨

는데 뵙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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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 다리가 휘도록 사랑을 차렸다.

장학금 수여식을 마치고 장학생들과 손님들 모두는 시내의 아담한 식당에 마련한
축하오찬장

으로 자리를 옮겨갔다. 긴 방에는 우리 장학생들을 맞는 오찬상이 푸짐하게 차려저서
기다리고

있었는데 이 오찬상은 미국훈사회 조경섭 사장님과 그 부인이신 조은성 여사께서
사랑을 듬북

담아 차려주신 축하와 격려의 오찬상이였다.  장학생들의 뒤를 따라 내빈들도
들어오시고 이어

이수진 교수께서 감사드리는 식사기도를 인도해 주셨다.

 

 

차린 음식도 푸짐하여 장학생들이 충분하게 먹을수 있도록 하였으며 한사람당
콜라와 사이다를 한깡통씩

상위에 차려 주었는데 많은 학생들이 그 음료를 뒤로 내려놓거나 상 믿으로 내려놓은것은
보고는 한 학생

에게 물으니 병상에 누워 계시는 아바지를 같다드리려고 내려놓았다는데, 다른
학생은 집에 가지고 가서

동생하고 나눠마시려고 내려놨단다.  그 순간 마음이 막히는것 같은 감동에
주인을 불러서 학생들에게 음

료를 2깡통씩 더 나누어 주라고 주문을 하고 학생들에게 그 먼저 은료는 마시라고
하니 모두들 밝은 얼굴로

깡통을 따서 마셨다

 

장학생들이 좋아라고 맛있게 먹는 모습을 바라보면서 이 상을 차려 주도록 배려해
주신 조은성 여사가 알마나

고마웠었는지 다음 부터는 매년 한번씩이라도 저 학생들에게 우리들의 사랑이
듬북 담긴 사랑의 오찬상을

차려 주어야 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학생들이 열심히 식사를 하는 동안에도 정운주
이사장은 이상 저상으로

다니면서 아이들의 등도 쓰다듬어 주며 맛있게 찬찬히 많이 먹으라고 토닥여주는
모습이 참으로 아름다웠다.

 

 

축하 오찬을 마치고 손님들은 떠나고 장학생들과 우리 훈사회 방문단은 옆방에
마련해 놓은 장학생 상담회

장소로 자리를 옮겨 감사드리는 기도로 장학생들과의 상담을 시작 하였다.

장학생들로 부터 공부하면서 격는 어려운 이야기도 듣고, 앞으로 대학에 진학할
학생들의 막막한 학비조달

걱정도 들으면서 선뜻 우리 미국훈사회가 대학 졸업때까지 후원을 하겠다는 말을
자신있게 못하는 안타까움

속에 그저 우리 함께 길을 찾아보자는 미온적인 말밖에는 주지 못했었다.

 

상담회가 진행되는 동안에 간간히 게임도 하고 동요도 함께 부르면서 2005년도의
장학생 신청 요령과 제출

서류에 관해서 설명을 해주고 특히 학생들에게 미국에서 우리 학생들을 후원하고
계신 어른들께 고마운 마음

이 담긴 편지를 많이 보내주기를 부탁하고, 어려움도 함께 걱정할수 있도록 편지로
마음을 나누자고 하였다.

장학생 상담을 모두 마치고 밖으로 나오니 훈춘 장학생들중에 고등학생들이 모여서서
팔을 끌며 함께 사진을

찍잔다.  사진을 찍으면서 내년에 다시올때 사진을 만들어 나누어 주겠다고
약속하고 자리를 떠나는 장학생

들에게 손을 흔들어 잘 가라고 배웅을 했었다.

 

 

내년에 다시 장학생들을 만나러 올때는 대학으로 진학하는 대학생들에게 학비걱정은
말고 공부만 열심히 하라고

말할수 있었으면 좋겠는데 우리들의 힘이 거기까지는 미치지 못하니 그분을 향하여
기도 가운데 매달릴수 밖에는

없다는 생각을 하면서 장학생들이 다 떠난 길에서 우리들도 발길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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