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인 오스틴 좋아하세요?

 

 

 

제인 오스틴의 ‘오만과 편견’을 키이라 나이틀리와 매튜 맥퍼딘 주연으로 영화화한 2006년작 ‘오만과 편견’은 제가 정말 좋아하는 영화입니다. 몇 번이고 돌려봐도 똑같은 장면에서 몸서리치게 만드는(..) 영화이기도 하죠. 제가 제일 몸서리치는(..) 장면은 다아시가 자신의 가족에게 모욕을 줬다는 사실을 안 엘리자베스가 교회를 뛰쳐나가자 다아시가 이를 뒤쫓아가 사랑을 고백하는 장면과(상세하게 쓰니 부끄럽군요) 엘리자베스가 집 뒤뜰 정원 그네에 앉은채 빙빙 돌며 4계절이 지나가는 장면입니다.

 

AP07D9A1917092E016.JPG특히 두번째 장면은 유럽 회화같은 느낌이어서 볼 때마다 감탄하곤 하죠. 조 라이트 감독은 이런 식의 연출을 즐기나봐요. 그 다음 작품인 ‘어톤먼트’를 봐도 비슷한 장면이 나오거든요.

 

제인 오스틴의 작품을 원작으로 한 영화는 모두 좋아해서 비디오든 디비디든 케이블TV 영화 재방송이든 어쨌든 센스앤센서빌리티(이성과 감성), 엠마는 모두 봤습니다. 원작소설은 오만과 편견 밖에 안 읽었지만 역시 좋아합니다. 행간에 묻어나는 은근한 비꼬기가 제맛이죠.

 

 

 

 

 

AP07D9A19170E37A019.JPG사실 제인 오스틴은 전세계적으로 매니아를 갖고 있는 작가입니다. ‘한 달에 한 번씩 지구 위를 이사하는 법’이라는 여행책을 보면 ‘영국 윈체스터에서 제인 오스틴 따라 걷기’라는 꼭지가 있습니다. 저자가 영국 ‘제인오스틴독서회’에 초대받아 제인 오스틴이 살던 집에서 열리는 행사에 참석한다는 내용이 나옵니다. 그렇습니다, 제인 오스틴의 팬이 전 세계에 지부가 있을 정도로 많다는 뜻이죠. 아마 제인오스틴에 관한 전기와 논문을 쓸어담으면 책장 하나는 가득 채우고도 남을거에요..

 

(아, 제가 말씀드린 책도 재미있는 여행책이니 서점 가셨을 때 한번쯤 들춰보셔도 좋을듯 합니다. 교토에서 다도를, 파리에서 프랑스요리를, 피렌체에서 미술사를 배우는 저자의 여행담입니다. 분명히 부러워서 배가 아플 겁니다.(..) 하지만 원래 여행책의 본질이 그렇게 남 이야기 읽으며 염장 질리다가 ‘나도 한번쯤’이라고 꿈을 꿔보는데 있지 않겠어요. 흠.)

 

AP07D9A19170F34B021.JPG최근에는 ‘오만과 편견’을 좀비물로 패러디한 ‘오만과 편견 그리고 좀비’라는 소설이 나오기도 했습니다. 첫문장부터 말 그대로 ‘빵 터지는’ 소설이죠. 예를 들면 엘리자베스는 중국 소림사에서 수련을 하고 돌아온 좀비 뺨 후려치는 여전사고, 다아시는 그녀의 그런 면모에 반한다는 식입니다. 오만과 편견 좋아하신다면 한번 읽어보실만 해요. 원인모를 역병으로 좀비가 들끓기 시작한 영국의 전원풍경을 감상하실 수 있을 겁니다.

 

 

 

 

 

 

어쨌든! 저는 제인오스틴의 소설이 좋습니다. 말도 안되게 호리호리해보이는 엠파이어 라인 드레스, 핵심은 찌르지만 두고개 세고개쯤은 빙빙 돌아가는 간접화법. 그리고 뭐가됐든 해피엔딩으로 마무리되는 속 편한 결말까지.

 

생각해보면 제가 좋아하는건 제인 오스틴이 다루고 있는 바로 그 시대의 공기이기도 한 것 같습니다. 바로 19세기 영국, 태양이 지지 않는 나라였던 시절, 빅토리아 시대 말입니다.

 

영국이 누린 영광은 대부분 바로 이 시기에 시작했습니다. 강력한 해군력과 산업혁명을 통한 경제력을 바탕으로 해외 식민지를 건설해나가고 있었죠. 보수당과 자유당이 번갈아 가며 집권하는 의회정치의 모범을 보이기도 했습니다. 여기에 새로운 문물에 대한 흥분과 기대감까지. 제인 오스틴의 소설에 흐르는 지적인 분위기와 알 수 없는 풍요로운 – 여주인공은 늘 가난하지만 동시에 여유로워보이기도 하죠 –  느낌은 괜히 나오는게 아닙니다. 제인 오스틴은 대영제국의 초입에서 소설을 발표하고 있었던 겁니다.

 

제인 오스틴이 주로 당대의 관습에서 조금씩 벗어난, 당차고 독립적인 여성을 주인공으로 내세우는 데도 이유가 있습니다. 영국 근대의 전형적인 여성상은 바로 ‘집안의 천사’ 였습니다. 현모양처, ‘완벽한 식사’ ‘안락한 침실’을 만들어 남편과 아이들을 흠없이 뒷바라지해내는 ‘안주인’. 제인 오스틴의 주인공들도 결국에는 결혼을 통해 행복을 찾잖아요. 그 독립적인 성격이 아까울 정도로요.

 

결국 시간이 지나면서 이에 반발하는 여성들도 생겨납니다. 바로 New Woman, 신여성 운동이 일어나기 시작한거죠. 재미있게도 이런 ‘딸들의 반란’에 가장 분노한 건 어머니들이었다고 하네요. 당시 잡지에는 이런 여성들 간의 논쟁이 심심찮게 실리곤 했다고 해요.

 

AP07D9A19171D177023.JPG하지만 영광은 채 100년을 가지 못합니다. 19세기 말이 되면서 영국은 서서히 활력을 잃어가기 시작합니다. 우선 정치적으로 불안해졌습니다. 아일랜드 자치문제가 불거지면서 자유당이
분열했고, 보수당이 장기집권을 하기 시작하죠. 경제적으로는 독일과 미국에 추격당하죠. 산업혁명의 선발주자로서 갖고 있던 이득은 거의 사라집니다. 빈곤 문제가 부각되면서 대영제국의 비참한 이면이 드러나기도 해요. 정신적으로는, 다윈의 진화론과 과학의 발전으로 기독교 신앙에 대한 회의가 시작됩니다. 세기말은 세기말인 법. 당시 사람들이 느꼈을 막연한 불안과 두려움을 쉽게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들은 몰랐겠지만, 우리는
그 뒤에 제 1차 세계대전이 발발한다는 걸 알고 있으니까요.

 

 

‘영국제국의 초상’은 이런 쇠락의 역사를 조명한 책입니다. 당대는 평론지와 잡지의 황금시대였다고 해요. 그만큼 문제도 많고 할 얘기도, 논쟁할 거리도 많았다는 뜻이겠죠. 이 책은 당대평론지에 실린 논설을 통해 당대 영국에서 가장 논쟁거리가 됐던 주제 9가지를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영국은 이후 내리막을 제어하지 못합니다. 물론 부잣집도 망하면 3년은 간다고, 영국도 세계대전에서 승리했지만 모두가 알다시피 그건 미국의 승리로 귀결됩니다.

 

에드워드 기번은 평생의 역작으로 하필 ‘로마제국 쇠망사’를 남겼습니다. 그만큼 ‘망국의 역사’에 배울점도, 이야깃거리도 많다는 뜻이겠죠. 물론 영국이 망한 나라는 아니나, 그 사회의 활력을 잃어가는 과정을 한번쯤 읽어볼만 하다는 뜻입니다. 이 책의 저자분을 인터뷰했을때, “인문학은 원래 낯선 것을 익숙하게, 익숙한 것을 낯설게 보도록 하는 학문이다. 이를 통해 우리 삶을 더 깊이 이해할 수 있다”는 요지의 (그 말이 다 정확히 기억나진 않습니다^^;;) 말씀을 하시더군요. 제가 한국에서의 제 삶과는 별 상관이 없어보이는 제인 오스틴의 소설을, 그리고 서양사를 좋아하는 것도 다 그런데 이유가 있지 않을까 싶네요.

 

 

 

 

카테고리 : RE-vi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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