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 오스터의 ‘Hand to Mouth’를 읽고 있다. (국내 번역본 제목은 ‘빵굽는 타자기’) 원서로 읽고 있지만 편안하게 쓴 에세이인데다 내용이 워낙 재미있어서 잘 읽히는 편. ‘hand to mouth’는 하루 벌어 겨우 먹고 산다는 뜻의 숙어이기도 하고, 직역하자면 ‘손에서 입으로’다. 손으로 쓴 글로 입에 넣을 음식을 사는 작가의 삶을 표현했다고 볼 수도 있겠다. (그런 점에서, 국내 번역본 제목은 꽤 센스있는 번역.)
‘벌어먹고 살기’. 꿈 속에서 살아 마땅해보이는 작가들에게도 현실은 중요하다. 당장 배를 채워야 글도 쓰지. 폴 오스터 역시 세계적인 작가 반열에 이름을 올리고 있지만 평생 돈을 생각하며 살아왔을 것이다. 자전적 소설인 ‘달의 궁전’에서 그런 모습이 약간 엿보이기도 한다. 주인공이 고치 안의 애벌레처럼 아무 것도 하지 않은채 꾸역꾸역 유산으로 물려받은 책을 소화하고, 다시 그 책을 한 권 두 권 씩 팔아 연명하다 돈이 바닥나 결국 길바닥에 나앉는, 말 그대로 돈이 없어 바닥까지 떨어지는 이야기가 나온다.
이런 장면들은 Hand to Mouth에서는 좀더 ‘폴 오스터 자신의 것’으로 선명하게 드러난다. 폴 오스터의 부모는 둘다 대공황을 겪은 인물들. 재산이 생존을 위협할 정도로 쪼그라드는 상황을 똑같이 겪었지만, 아버지는 돈을 무조건 아끼는 사람으로, 어머니는 소비를 위안으로 삼는 사람으로 변했다. 돈에 대한 견해 차이는 결국 이혼으로까지 이어진다. 그러니까 이혼 사유는 ‘경제관 차이’였던 셈이다.
그는 이렇게 어린 시절부터 시작해 자신이 돈을 벌기 위해 어떤 일을 했으며 그 과정에서 누굴 만나 무엇을 겪었는지 세밀하게 그려낸다. 갖가지 ‘잡일’을 하며 만났던 밑바닥 사람들의 이야기는 평범한 중산층 가정에서 태어난 평범한 소년이었던 그가 여러 권의 소설을 써낼만한 작가가 된 배경을 짐작케 한다.
처음에는 수십년 전에 겪었을 일들을 바로 지금 눈 앞에서 벌어지는 것처럼 생생하게 되살려내는 솜씨에 홀린다. 하지만 나중에는 개인적 경험에서 출발해 세계를 이해하는 그의 방식, 혹은 감수성에 감탄하게 된다.
지금 읽고 있는 부분은 대학 졸업 뒤 돈을 벌기 위해 유조선에 취직해 일을 하던 동안의 이야기. 폴 오스터는 유조선에서 일하기 시작하며 자신이 깨달았던 사실을 이렇게 쓰고 있다.
“I was one of millions now, an insect toiling beside countless other insects, and every task I performed was part of the great, grinding enterprise of American capitalism.”
사람은 누구나 자신이 특별하다고 믿으며 살아간다.(아니라고 하겠지만 어쨌든 어느 한구석에서는.) 그걸 자아정체감, 자존감, 자아존중 같은 단어들로도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세상을 살아가며, 특히 ‘사회인’이 되어가며 내가 이 세상의 ‘한 마리 벌레’일 뿐이라는 사실을 불현듯 깨닫는 순간도 찾아오기 마련이다. 폴 오스터에게는 유조선에서 일하는 것이 그런 깨달음의 계기였던 것이다. 그리고 일개 벌레일 뿐인 폴 오스터 자신과, ‘석유산업’, 나아가 ‘미국’, 더 나아가 ‘자본주의 세계’라는 거대한 구조의 대비는 그의 체험을 통해 더욱 생생하게 되살아난다.
“Petroleum was the primary source of wealth, the raw material that fueled the profit machine and kept it running, and I was glad to be where I was, grateful to have landed in the belly of the beast. The refineries where we loaded and unloaded our cargo were enormous, hellish structures, labyrinthine networks of hissing pipes and towers of flame, and to walk through one of them at night was to feel that you were living in your own worst dream.”
이 다음에는 석유로 오염된 바다에 떠다니던 죽은 물고기 떼에 관한 묘사가 이어진다. 때로 개인의 삶은, 그리고 그에 대한 면밀한 관찰과 묘사는 거대담론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담아내기 마련이다.
‘Hand to mouth’에는 지나가는 사람에게 50달러를 쥐여주며 ‘돈으로 굴러가는 세상’을 멈춰보려 애쓰는 몰락한 작가에 관한 에피소드도 나온다. 여하튼, 돈에 관해 폴 오스터가 겪은 지리멸렬한 모든 것들을 담은 셈이다.
아직 절반 정도밖에 못 읽었고 다 읽을 그날은 현재 속도로 볼 때 요원하다.;; 책을 시작하며 그가 언급한 최악의 시기 – 일에서도 실패, 결혼도 실패, 돈 문제도 나락 – 인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까지는 아직 다다르지도 못했다. 못 참고 맨 마지막 문장만 살짝 봤는데, “So much for writing books to make money. So much for selling out.” 이란다.
마지막으로 책 초반에 인상적이었던 ‘작가의 운명’에 관한 이야기.
“Becoming a writer is not a “career decision like becoming a doctor or a policeman. You don’t choose it so much as get chosen, and once you accept the fact that you’re not fit for anything else, you have to be prepared to walk a long, hard road for the rest of your days. (중략) …if you mean to have a roof over your head and not starve to death, you must resign yourself to doing other work to pay the bills.”





저는 특히 자먀찐의 ‘우리들’을 좋아합니다. 조지 오웰의 소설은 소설보다는 선전물에 가까운데, ‘우리들’은 좀더 문학적이고, 때로는 시적이에요. 국내에는 제대로 소개된 적이 없었다고 알고 있는데(소련 작가의 소설이니까요) 저는 대학교 때 강의를 들으며 제본상태로 읽었습니다. 예전에 출판됐다가 아마 절판됐을거에요. 2006년에 열린책들에서 다시 펴냈습니다.
그에 비하면 ‘달은 무자비한 밤의 여왕’은 훨씬 더 즐겁고 행복한 SF소설입니다. 제가 가장 좋아하는 SF소설이기도 해요. 초등학교 때인가 중학교 때 아버지 서재에서 뽑아
젤라즈니는 주로 서부극과 SF를 결합한 세계를 선보입니다. 끝없이 펼쳐진 사막, 그 위를 달리는 (고독한) 말하는 자동차. 이런 식이죠. 멋지지 않나요? 젤라즈니의 소설을 키워드로
특히 두번째 장면은 유럽 회화같은 느낌이어서 볼 때마다 감탄하곤 하죠. 조 라이트 감독은 이런 식의 연출을 즐기나봐요. 그 다음 작품인 ‘어톤먼트’를 봐도 비슷한 장면이 나오거든요.
사실 제인 오스틴은 전세계적으로 매니아를 갖고 있는 작가입니다. ‘한 달에 한 번씩 지구 위를 이사하는 법’이라는 여행책을 보면 ‘영국 윈체스터에서 제인 오스틴 따라 걷기’라는 꼭지가 있습니다. 저자가 영국 ‘제인오스틴독서회’에 초대받아 제인 오스틴이 살던 집에서 열리는 행사에 참석한다는 내용이 나옵니다. 그렇습니다, 제인 오스틴의 팬이 전 세계에 지부가 있을 정도로 많다는 뜻이죠. 아마 제인오스틴에 관한 전기와 논문을 쓸어담으면 책장 하나는 가득 채우고도 남을거에요..
최근에는 ‘오만과 편견’을 좀비물로 패러디한 ‘오만과 편견 그리고 좀비’라는 소설이 나오기도 했습니다. 첫문장부터 말 그대로 ‘빵 터지는’ 소설이죠. 예를 들면 엘리자베스는 중국 소림사에서 수련을 하고 돌아온 좀비 뺨 후려치는 여전사고, 다아시는 그녀의 그런 면모에 반한다는 식입니다. 오만과 편견 좋아하신다면 한번 읽어보실만 해요. 원인모를 역병으로 좀비가 들끓기 시작한 영국의 전원풍경을 감상하실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영광은 채 100년을 가지 못합니다. 19세기 말이 되면서 영국은 서서히 활력을 잃어가기 시작합니다. 우선 정치적으로 불안해졌습니다. 아일랜드 자치문제가 불거지면서 자유당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