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충성에 잔머리 굴리는 참모(參謀).

옛 부터 전장에 나가는 장군은 참모(參謀)를 잘 둬야하나 입안에 혀 같이 구는 부하(參謀)를 둔 덕에 스스로 무덤 파고 나라 망친 고사(古史)는 수없이 있다.

 

초나라 공왕이 진과 힘든 전투를 하고 있을 때다.

이때 초나라의 자반이란 장군이 목이 말라 물을 찾았다. 그러자 옆에 있던 부관이 잔에 술을 따라 올렸다.

"술이 아니냐?"

"갈증 해소에는 물보다 났습니다."

 

부관의 대답에 그냥 받아 들이켰다. 원래 술을 좋아하는 장군은 마침 갈증이 나던 판에 술맛이 한 없이 좋아 연달아 몇 잔 더 들이키니 마침내 취하고 말았다.

 

잠시 휴전 상태가 되었다. 초 왕은 다음전투 작전계획을 짜기 위해 자반을 불렀으나 몸이 아파 뵐 수가 없다는 전령(傳令)의 대답이다. 그러자 초 왕은 직접 자반의 막사로 달려갔다. 장군의 막사에는 술 냄새가 진동했다.

 

초 왕은 그대로 발걸음을 돌려 전군에게 철수명령을 내렸다. 귀국하자마자
대죄를 저지른 죄목(罪目)에 자반을 처형(處刑)했다.

 

부관(副官)이 장군에게 물대신 술을 올린 것은 무슨 억하심정(抑河心情)이 있어서 그런 게 아니라 술 좋아하는 장군의 습성을 알아 갈증 날 때는 술 한 잔이 더 효력 있다는 것이라 보았기 때문이다.

 

그 나름대로 충성을 다한 것이나 오히려 상사를 죽이는 결과를 낳았으며 자신의 목도 참수(斬首)당했다. 이로 미루어 볼 때 작은 충성은 조직을 자멸시키고 때로는 국가를 망하게 하는 거란 사실이다.

 

사회의 밑바닥부터 한 계단식 밟아 올라와 출세한 사람 중에는 만사(萬事)를 실익(實益)=(돈)기준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오히려 많다. 이런 상사 밑에는 상사 심중을 헤아리는데 천부적 소질이 있어 입안에 혀 같이 구는 부하가 반드시 있다.

 

그걸 잔머리 굴리기라 하는데 이런 부하를 둔 상사는 작은 충성과 잔 머리 굴리기를 능력(能力)으로 인정하여 총애하게 된다. 물론 회사나 조직이 건곤일척(乾坤 一擲)일 경우 순간적인 재치로 위기서 벗어나는 임기웅변도 필요하나 만사를 땜질식 처리는 묘수백출(妙手百出)이 되어 결국은 조직을 거덜 내여 회사를 부도내고 만다.

 

제대로 된 리더(leader)일 경우 모든 일의 전체(全體)를 보는 눈이 있어 부하가 건의(建議)하는 나무 잎 새 1개로 그 뒤에 천하(天下)의 가을이 도래하는 것을 직감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누가 의견을 제시했냐? 가 중요한 게 아니라 그 내용(內容)이 이치에 맞느냐가 중요하다.

 

그 견해를 말하는 사람의 학력과 후광을 고려하고 과거이력. 세력가의 추천 등을 참고하기 시작하면 그건 이미 리더가 사물을 제대로 평가하는 것이 아니다.

 

지난 인류역사에서 현명한 리더보다는 어리석은 지도자에 의해 인류는 고통 받았다. 어리석은 인물 일수록 세류에 관심을 두고 자신욕망을 통제하지 못하고 자신 이익만을 기준하여 전세를 움직인다.

 

평화 시(平和時)도 이런 리더는 위급을 부르지만 못 잡아먹어 시시탐탐 기회를 엿보는 라이벌에 둘러싸인 형편에는 잡아먹힐 것을 겁내 당장 눈앞 이익을 선택하거나 적의(敵意)와 평화 양자 간 선택을 강요하는 상대에게 임기웅변이나 좋은 처세술(處世術)로는 한계가 있다.

 

이런 경우에는 순간적 머리 굴리기는 제대로 된 대처방안이 될 수 없다.

 

결국 재무 건전한 유산을 상속 받으나 난국을 타개하는데 작은 실리(實利)만을 기준(基準)하여 만사를 처리하다보면 원대한 미래는 놓쳐버려 결국은 회사를 넘기게 되는 결말을 보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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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어가 장악한 APT입주자 대표회의(代表會議).

아파트 입주자 대표회의란 공동주택인 APT를 입주민 스스로가 관리하고 운영하도록 만들어진 자치단체(自治團體)다. 건설부 지침을 받는다.

 

APT대표회의는 아파트 각동(各)서 동 대표( 代表)한사람을 선거로 선출 대표회의를 구성하며 가령 한 APT 단지에 10개이 있으면 동 대표( 代表)는 10사람이 되고 그 중에 1명을 회장에 선출하면 그가 아파트 대표회의 회장(會長)이다.

 

아파트 회장은 무급(無給)이며 모든 동 대표(棟代表)도 아파트 단지를 위해 봉사하는 명분(名分)에 급여(給與)는 없다. 아파트 대표회의는 관리규약(管理規約)에 의해 움직인다. APT관리규약은 국가로 말하면 헌법(憲法)인 셈이다.

 

이 APT 입주자 대표회의란 자치단체가 어느 때부터 라도 향우회(羅道 鄕友會)조직이 장악해 반정부화 되고 대부분의 아파트 단지는 음양(陰陽)으로 저들 조직에 의해 움직이는 것을 알 수 있다.

 

또 그 상부(上府組織)에는 국가 정보기관에 속한 라도 조직에 의해 각종 정보와 지원을 받아 하부공무원 조직에 정부지침을 빙자한 지시(指示)를 내려 보내 반역조직이 국가 행정력 덕에 힘을 받는 아이러닉한 일을 볼 수 있다.활동자금은 그 최 상부(上府)인 DJ 가문에서 자금(資金)을 대는 것으로 보여 진다.

 

(개인은 이런 돈이 있을 수 없으며 집권 시(執權 時)나라를 골병들게 하고 챙긴 비자금이라야 자신들 생존권을 위해 아낌없이 던질 수 있다는 정치논리로 생각할 때.)

 

특정향우회 조직의 인센티브는 이런 불온자금뿐 아니라 생업에 있어서 먹이사슬로 단단히 연결되어 조직원이 혹 배신하면 굶어 죽는 위험과 외톨백이로 혼자 살아야 한다는 결론에서 탈퇴하고 싶어도 조직에서 나올 수 없다.

 

일반주민은 동 대표라는 걸 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 보수도 없고 1달에 한 번씩 모이는 회의에 참가해 관리실 운영을 의론하는 것에 시간 뺏기는 게 귀찮기 때문이다. 또한 동 대표 하고 싶은 이가 있어도 사는 동 주민(洞 住民)과반수이상의 동의(同意)를 받아야 하기에 그것도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APT회장(會長)역할(役割)은 여로 모로 정부(政府)의 일과 비슷하다. 경험한 바론 딱 동네의 작은 정부역할이다. 몇몇이 작당하면 주민들 재산과 관리비를 증액하여 사복 채우는 것까지 그대로 빼 박았다.

 

특정 패거리가 합세해 아파트의 힘없는 주민 골 빼 먹는 일은 아주 간단하다. 아파트 관리는 특별히 감시하는 기관도 없고 대표회의에 감사(監査)라는 직책은 있으나 전문성이 없는 일반주민이어서 회장과 관리소장이 서로 짜면 비교적 간단하게 부정비리 축재(蓄財)를 저지를 수 있다. 대부분의 아파트가 관리소장과 대표회장은 그쪽 동향인이다. 호적 세탁 경우도 많다.

 

현 정권으로 정권교체 된 후 아파트 회장도 정치 따라 중도성향 비슷한 인물로 내정 된 곳이 많으나 그 중추세력은 물론 라도 향우회다.

 

아파트 대표회의가 대부분 특정향우회에 점령당했다는 증거는 APT 대표회의 분위기가 대체로 반정부적(反政府的)이며 친북적(親北的)으로 최 상부 조직 뒤의 북괴지령에 움직인다는 게 선거에서 전국적으로 정확하게 20%의 투표수로 균등하게 친북세력에게 나오는 것 보면 알 수 있다.

 

선거로 선출 되는 동 대표 모임인 APT대표회의란 단체가 어떻게 빨갱이 조직의 하부조직이 될 수 있을까? 이는 정치권의 움직임과 같다.

 

서울시와 수도권 인구 5분의1정도가 전라도다. 쉽게 말해서 다섯 명에 한명이 그쪽 지방인 인데 이 향우 조직은 전국적인 것으로 유명하다. 이들이 서로 작당해 자기네 사람을 추천하여 동 대표를 만들고 거기서 자기네 사람을 회장 만든다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다.

 

아파트 회장과 그 구성원 동 대표가 그쪽 사람들로 채워지면 우선 관리소장이 전라도가 되고 아파트 보수공사. 용역 회사 모두가 그쪽 업체가 맞게 된다. 관리소장 밑의 각 기술자와 경리. 하다못해 아파트 경비까지도 같은 지방 일색이다.

 

아파트 관리팀 모두 한 통속이 되면 부정 비리도 간단하게 이뤄진다. 이들은 친북정책에 의해 내려오는 상부조직 지침에 따르게 되면 무슨 범죄(犯罪)건 가능하다. 살인 방화도 가능하다.

 

거기다 정부기관 내의 검. 경. 정치권. 국가정보기관. 행정력이 연계 돼 결국 대한민국 전체가 북한(親北)에 유리하게 영향을 미치게 된다.

 

다시 말해 국가 행정력 안 밖에 뿌리내린 반역세력에 의해 국민 가장 가까운 아파트의 관리실. 주민 대표회의에 붉은 조직의 뿌리가 내려지는 것이다.

 

지금 영포회가 민간인 사찰했다고 사회적 여론을 일으키고 있는 민주당의 작태를 보면 그야말로 똥 묻은 개가 개 묻은 개 흉보는 격이며 약대는 삼키고 하루살이 걸려내는 꼴이다.

 

나는 질의한다.

 

1.영포회가 국민 전체를 감시 했는가 ?

 

2.영포회가 서울과 수도권을 위시 아파트 대표회의의 점령하고 주민 등골 뽑는 비리를 저질렀는가?

 

3.영포회가 검찰과 경찰. 법원. 국가 정부기관. 군. 정치권과 서로 사조직으로 연결되어 국민을 탄압하고 살인. 방화. 사고사(事故死)가장, 국군과 민간인을 살해 하는가?

 

4. 영포회가 국가 정보기관과 연계, 개인승용차에 감시용GPS을 몰래달아 국민을 감시. 도청하다 위성전파로 GPS을 조작, 고속국도서 자동차 사고를 일으켜 국민일원을 살해하려 했는가?

 

N O! 다.

 

이는 전라도 빼고 모든 국민은 영포회가 절대 그런 일을 했다고 보지 않는다.

 

그럼에도 고래는 삼키고 하루살이를 걸러내는 이런 황당무계(荒唐無稽)한 일이 왜 지금 이 나라에는 벌어지고 있는가?

 

지구상의 어느 나라건 국가(國家)는 붕당과 패거리 난동은 용납되지 않는다. 이들은 반역으로 간주 되여 박멸하는 게 어느 시대 어느 나라 건 국정제일(國政第一)목표며 치세원측이었다. 고대국가들은 반역죄는 九族을 멸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나라에는 왜 반역조직이 양성화 돼 국가를 줘다 폈다 할까?

 

그것은 그 뒤에는 북괴가 있는 연고며 그 뒤는 중국이 도사리고 있어 국내 반역집단이 이 외세(外勢)를 믿고 난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 반역집단은 이 나라의 모든 정치. 경제. 군사. 시민연대 등에 깊숙이 숨어 좌익은 말할 것도 없고 우익도 중간숙주를 통해 자금을 살포, 영향력을 확대해 우익을 절대 단합시키지 않고 정치권에도 나설 수 없게 만드는 것이다.

 

이들 반역자를 잡아내고 척결하는 게 국가의 의무며 대통령의 임무인데 지금 이 나라는 반역자를 척결하고 잡아내고 있는가?
NO! 다.

 

지금 이 나라 정권은 이런 중대한 사명을 버리고 무슨 일을 하고 있나.

 

지금 이 나라 권력을 쥐고 있는 통치자는 전직(前職)건설CEO다. 그런 의미서 본다면 이 정권은 한마디로 토목정권이다. 토목정권 제일 큰 목적은 거대자금이 투입되는 국책사업 토목공사 발주에 있다.

 

이 국책사업을 완수하기 위해서는 반역세력도 포섭해야 하며 친북 앞잡이도 등용해야 하는 모양 세다. 일반적으로 누군가 극렬하게 반대 세력이 있으면 토목공사는 할 수 없다.

 

전라도를 기반으로 정권을 손에 넣고 갖은 부정과 비리를 저지르고 북한에 거금을 제공. 대한민국을 멍들게 한 반역자를 현충원에 안장시켜 국가의 기강을 해친 것도 다 알고 보면 대형 국책사업을 하기 위한 한 방편인 것으로 보인다.

 

그런 연장선상서 보아도 민주당은 DJ에 베푼 은공을 생각해서라도 국책사업을 반대하는 정치적 모션을 취해서는 안 될 것이다.

 

토목정권이 국책사업으로 대단위 토목공사를 일으킨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나 국가 기강은 세워놓고 국책사업도 해야 할게 아닌가.

 

대한민국 국민 밑바닥에 뿌리내리는 효과적인 적화사업으로 아주 평범한 동네 아파트 대표회의를 친북세력 손아귀 넣는 다는 것은 그 누가 상상인들 할 수 있을까?

 

아무리 토목정권이라 해도 적화통일이란 국가 반역이
국민생활 속 아파트 대표회의 까지 조직화 되는 건 막아야 할 게 아닌 가 !

 

이 사명을 위해 영포회 사찰
건을 터트려 대한민국을 지키는 전능한 신의 뜻을 알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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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서실장(秘書室長).

어떤 업종(業種)이던 직위(職位)가 높아지면 보필(補筆)하는 비서가 따르게 된다. 더 고위직(高位 職)에 오르면 관련분야가 늘거나 세분화 돼 그에 따른 재원(才媛)이 늘고 인원수가 많아지면 그 부서(部署)를 총괄하는 실장(秘書室長)자리(職責)가 만들어 진다.

 

이익(利益)을 목적(目的)하는 기업(企業)은 회사규모가 커지면 대표회장을 보좌하는 비서실장이란 직책이 필요할 수 있으나 공의(公儀)와 법치(法治)를 중시하는 국정(國政)에 왜? 비서실장이란 자리가 필요한지는 알 것 같다가도 모르겠다.

 

물론 하루에도 크고 작은 수많은 중요사안(重要司案)을 결정해야하는 입장(立場)에선 토막치고 양념 넣고 끓여 대령하는 진품요리에 숟가락만 들어 시식할 수 있는 숙수(cook)가 때로는 필요할 것이다.

 

그러나 국정을 의론(議論)하여 결정하는 원탁회의에는 여러 명의 수석보좌관(首席 輔佐官)이 있고 그 밑에는 적지 않은 전문 인력(專門 人力)들이 各 기관에서 보내오는 보고서를 데이터베이스에 저장. 관리하며.

 

그 정보를 요약하여 전달받은 수석(首席)들은 최고지도자(指導 者)가 개최하는 회의석상에서 서로 정반대의 의견을 교환하며 난상토론(難上討論)을 벌림으로 그중 버릴 것은 버리고 취할 것은 취하는 최선의 선택이 국민의 요구에 부응(副應)하는 바다.

 

이런 국가운영 방침이 민주주의를 기본이념(基本理念)으로 하는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의 국정운영(國政運營)이라고 알고 있다.

 

국정 최고지도자가 직접회의를 주도하는 그 회의에서 결정된 사안들이 국가정책으로 시행하는데 있어서 비서실장의 직무와는 배치되지 않을까?

 

한국역대 비서실장(歷代 秘書室長)들을 대변(代辯)하는 용어가[우리는 각하의 그림자]라고들 한다. 그러나 국가(國家)에 중대한 일이 생겨 그 처리결과가 국민의 신뢰를 얻지 못하는 일이 벌어지면 "보필(補筆)을 잘못했다"는 명분으로 제일(第一)먼저 사의(辭意)를 표하는 게 또한 비서실장 자리다.

 

그걸 봐서 그냥 그림자 역할만 하는 게 아니라 몸체에 상당한 영향력을 발휘(發揮)한다는 걸 알 수 있다. 사실 현 정치현실(政治現實)에서 비서실장 직위는 막강한 권력의 자리로 인정받는다.

 

그러나 비서실장 직책에 무슨 엄청난 권한(權限)이 실려 있는 것은 아니다. 다만 국정에 관련된 극비정보와 최종보고서(最終 報告書)를 누구보다 먼저 받아 지도자에게 전달(傳達)하며 아울려 참고조언을 올릴 수 있는 직(織)일뿐으로 그래서 집무실도 바로 가장 가까운 곳에 배정받는 이유다.

 

비서실장은 자신의 책상위에 올라온 국정에 관한 중요정보를 넣고. 빼고. 늦출 수 있으며 이에 관련된 조언으로 국정에 영향을 끼칠 수 있다. 어떻게 보면 옥상(屋上)옥일 수 있고 군왕의 판단을 흐리게 하는 태감(환관 우두머리)역할이라고도 할 수 있다.

 

특히 고위공직자의 임용에 있어서 국가에 대한 공헌도나 법률과 제도에 대한 인사가 아니라 지도자에 대한 충성도를 기준하거나 세력가의 추천(推薦)으로 이루어질 때 그 인물의 하마평(下馬 評)을 할 수 있는 위치에 있어 그 권한의 폭은 생각 외로 크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물론 비서실장의 국가관과 경륜(經論)이 투철하여 참고조언(參考助言)으로 국정을 올바르게 이끌 수만 있으면 더 이상 국가에 좋은 일은 없으나, 그를 임명해준 임명 자에 대한 개인적 충성심은 배제(排除)할 수가 없어 모시는 분의 의중을 헤아려 알아서 처리하는 형태의 충성결과는 항상 국정의 걸림돌로 작용되어 온 것도 사실(事實)이다.

 

통치자에 대한 충성심이 민주주의 국가일 경우 항상 좋은 것만은 아닌 것이 권좌(頂上)에 오른 지도자 모두가 현군(賢君)일 수가 없는 게 또한 정치현실이다.

 

명군(明君)이나 현군은 대체로 수백 년 만에 한명씩 배출되고 현실에서 권좌에 오른 지도자의 어느 한 면은 특출한 재능이 있으나 보통사람이 출세한 것으로 생각하면 실망하지 않는다.

 

보통 사람이란 모두 자신의 이익을 위해 결정하는 습성을 가지고 있어 민주국가에서는 통치자(最高 統治者)라 하더라도 시행정책은 수석보좌진에 의한 합리적 결정(合理的 決定)으로 통제(統制)받아야 국민에게 신뢰를 얻는다.

 

다시 말해 각기의 전문분야(專門分野)서 임용된 인재들이 각자 정반대의 의사를 표출하여 최종결정한 정책들은 통치자의 의사와 다르다 할지라도 시행(施行)하는 치세의 장을 여는 정치가 선정(善政)이다. 그런 과정에서 지도자의 마음속을 헤아려 충성심을 발휘하는 게 전담인 비서실장 위치(位置)는 민주주의와 어긋나기가 일수(日收)다.

 

사실 통치자의 두뇌(software)에 해당하는 수석보좌관 소임은 막중하다. 어떤 국정사안에 대해 잘못된 제안을 한 당사자는 약소할 경우 질책(叱責)이, 거듭되면 퇴임(退任)당해야 하며 제출된 사안이 성공적으로 끝낸 당사자는 역시 포상과 진급이 내려 신상필벌(信賞必罰)이 확실하면 모든 국정운영에 막힘이 없고 그 치세(治世)또한 선정이 된다. 이런 과정이 언론을 통해 실시간 국민에게 알려질 때 국민은 그 지도자를 믿게 된다.

 

통치자 한사람의 두뇌는 유한하며 그가 국가에 대한 지식(知識)도 경미 할 수 있고 때론 지도자의 의견이 처음과 나중이 엉뚱하게 다른 결과(結果)로 나타나는 취약점도 있을 수가 있으나 이를 위해 인재들이 보필하는 것이며 대신(大臣)들 역할이 중요한 것이다.

 

치세(治世)에 가장 뛰어난 현군이란? 그 나라 지도자가 누구인지. 국민이 모를 때 이를 최상의 현군정치라고 성현들은 말했다. 이런 정치는 국가에 일어나는 중대한 사안들을 미리 간파하여 예방하며 물 흐르듯 한 정치를 함으로 국민이 통치자에 대해 감사(感謝)할 일이 없고 환호(歡呼)하지도 않으며 그냥 자신의 생업(生業)에 만족하여 사는 경우를 뜻한다.

 

성서(聖經)에 나오는 요나書를 보면 선지자(先知者)요나가 하나님의 명령을 받고 멸망의 재앙을 목전에 두고 있으나 그 곳 백성은 몰라 태평한 니느웨 성(城)구하는 예기가 있다.

 

니느웨 성 백성들에게 선지자는 "너희의 죄악으로 40일 후면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여 니느웨 성은 멸망하게 된다"고 외쳤다. 그러자 이 성(城)의 왕 부터 일반 백성에 이르기까지 자신들이 지은 죄악을 반성하여 하나님은 진노(震怒)의 손은 걷게 된다.

 

멸망의 재앙을 예고 받은 도시는 용서 받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게 되나 이 성을 구하는 사명을 훌륭하게 마친 요나 선지자는 니느웨 성 사람들에게 공로를 인정하지 못했고 오히려 도시를 헐뜯었다고 괄시 당했다.

 

현군정치도 이와 같아 미리 모든 것을 해결하여 국민의 불편을 없애주면 이는 그저 태평성세(太平聖世)일뿐 지도자에 특별히 고마워하지 않는 다는 뜻이다.

 

이와 같은 현군치세(治世)를 여는데 일조하는 직책이 비서실장 직이라면 백번 있어도 마땅하나 우리의 지난 근대정치사(近世 政治史)를 돌아보면 국정 맡은 지도자 대부분이 정권말기에 가서는 재물에 현옥 돼 자기뱃속 채우기로 임기(任期)를 보내 국민의 원성만 사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 때마다 옆에서 그 모든 사실을 지켜본 그림자 역할의 비서실장 직책은 무슨 일을 했을까?

 

높은 고위직이 임명 자에 대한 충성심이 가득 찰 때 쓰레기통 덮는 역할을 해야 했을 것이며 국법을 위반하는 부정(不正)비리를 무마(撫摩)하는데 앞장서는 것으로 그 소임(所任)을 다한 것은 아닐까?

 

이런 一連의 편견으로 이 직위(職位)를 살피면 득(得)보다는 실(失)이 많은 자리로 이런 직책은 과감하게 폐지하는 편이 지도자나 국민 모두에게 유익(有益)하지 않을까? 하는 소견(所見)에서 한마디 피력(披瀝)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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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관이 교체하고 표 계수(합계)다시 하자.

서울특별시 구청장 싹쓸이가 도대체 말이 되는 겁니까? 선거가 비밀투표인 것을 기화(機化)로 친북도당들의 상식에 도를 넘은 횡포(橫暴)로 또 다시 국민은 등골(國民鐙骨)뽑게 됐습니다.

 

일부언론(言論)은 이를 합리화하고 있으나 일반(一般)상식선에서 보아도 이번 지방선거는 헌정사상(憲政史上)두 번째로 잘못된 선거로 분류해야 될 것입니다.

 

건전한 상식(常識)가진 서울시민이 대갈빡에 총 맞지 않은 이상 어찌 서울특별시 구청장을 한나라당은 제치고 같은 색깔로 싹쓸이 시킬 수 있단 말입니까?(국민들은 지난 좌파정권 10년의 악몽에서 깨여나지 못하고 있는 마당에)

 

물론 한나라당과 이명박 정권이 다 잘했다는 것은 아니고 1.세종 시 수정안 2. 4대강 토목공사(土木工事)에 있어 국민 민의(民意)를 따르지 못한 큰 실책은 있습니다.

 

그러나 이 정권이 다 잘못한 것은 아닙니다. 우선 좌파로부터 정권교체를 이뤘고 前職 기업CEO로 세계적인 불황속에서 한국경제(韓國經濟)를 이만치라도 지켜낸 공로(功勞)를 높이 평가해야 할 것입니다.

 

지난 2년간의 사상유래(史上由來)없는 세계적인 경제혼란(經濟混亂)속에 도미노(domino)처럼 연쇄반응으로 넘어가는 국내(國內)중소기업을 구하기 위해 여러 좋은 정책들을 개발 수많은 중소기업(中小企業)을 살려냈고 만족하지는 못하지만 국내경제를 이만치 안정시켰으며 특히 경쟁력(競爭力)이 없는 서민들을 위한 구제정책(救濟政策)을 내놓아 소외된 빈곤층이 경제혼란 속에 굶어죽는 떼죽음 사태를 예방한 공로가 있습니다.

 

특히 얼마 전 북한의 테러공격에 천안 함이 침몰하여 우리 장병46인이 생죽음 당한 생생한 현장을 세계로 알려 벼랑 끝에 내몰린 북한은 마지막 카드를 흔들어 중국을 움직이고 국내 친북반역 도당을 총 가동해 헌정사상(憲政史上)두 번째의 잘못된 이번 선거결과를 만든 것입니다.

 

이 나라 국민을 어리석게 보는 이도 있지만 국민들은 이모든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다만 패거리 정치세력을 이른 반역도(反逆盜)가 세력을 떨쳐 난동(亂動)부리는 것을 국가(國家)가 막지 못해 말없이 당하고 있는 것뿐입니다.

 

나라가 국민을 보호하지 못하면 국민 스스로가 일어나 자신과 祖國을 지키고자 의병(義兵)이 궐기(蹶起)하는 것입니다.

 

수도권은 전인구의 절반 경제의 80%가 몰려있어 그 시너지효과로 나타나는 영향력을 계산할 때 이번 지방선거의 원천적인 부정은 매우 중요한 일로 부정 당선한 이들이 국가에 행사할 수 있는 영향은 대단히 클 것으로 생각 됩니다. 일선구청장이 같은 색깔로 구성되면 단순히 구청 행정책임자가 교체 되는 의미로만 해석하면 안 됩니다.

 

지금도 국가행정력 외 사조직(私租織)이 수도권을 중심하여 공. 사 인맥(公私人脈)들로 연결 세력(勢力)을 다지고 있는 현실에 이들마저 이 조직에 힘을 보태면 이들은 물 만난 고기처럼 급속히 팽창. 세분화(細分化)하여 대한민국은 다시 풍전등화(風前燈火)앞에 설 것입니다.

 

지금처럼 이 반역도배들을 국가가 방치(放置)하면 건국최초(建國最初)사형당하는 대통령도 나올 수 있을 것입니다.

 

내가 살기 위해선 조국을 배반하고 나라가 살기 위해서는 내가 죽어야 할 경우 개인이 죽으면 국가가 살지만 자신이 살기 위해 조국을 버리면 결국은 자신도 죽고 나라도 망한다는 고사(古事)들이 많습니다.

 

전자개표기는 전임자(前任者)가 자신의 부정비리서 일신을 안전을 위해 후임정권을 창출하기 위해 만든 것이란 사실을 모든 국민이 알고 있습니다. 전자개표기를 폐기하고 선관이 교체하여 수 개표(手 開票)로 계수작업 다시 해야 할 것입니다.

 

모든 선거의 수 개표(手 開票)와 선관이의 엄정중립은 자유민주의를 지키는데 중요한 기본입니다. 언론 방송도 좌파들의 당근 채찍에 굴하지 말고 나라가 거덜 나는 이 시점에 언론본연의 자세를 지켜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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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청장 싹쓸이 이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나!

서울 시민들 머리통에 총 맞았냐! 선거가 비밀투표인 것은 기회로 좌파는 국민 기만하는 처사 그만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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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가 망하는 망징(亡徵)10條.

1.법(法)을 소홀이 하고 음모와 계략에만 힘쓰며 국내정치는 어지럽게 두면서 나라밖 外勢만을 의지하다면 그 나라는 망할 것이다.

 

2.선비들이 논쟁만 즐기며 상인들은 나라밖에 재물을 쌓아두고 대신들은 개인적인 이권만을 취택하면 그 나라는 망할 것이다.

 

3. 군주가 누각이나 연못을 좋아하여 대형 토목공사를 일으켜 국고를 탕진(蕩盡)하면 그 나라는 망할 것이다.

 

4.간연(間然)하는 자의 벼슬 높고 낮은 것에 근거하여 의견(意見)을 듣고 여러 사람 말을 견주어 판단하지 않으며 듣기 좋은 말만하는 사람 의견만을 받아들여 참고(參考)를 삼으면 그 나라는 망할 것이다.

 

5.군주가 고집이 센 성격으로 간언은 듣지 않고 승부에 집착하여 제 멋대로 자신이 좋아하는 일만하면 그 나라는 망할 것이다.

 

6.다른 나라와의 동맹(同盟)만 믿고 이웃 적을 가볍게 생각하여 행동하면 그 나라는 망할 것이다.

7.나라 안의 人才는 쓰지 않고 나라 밖에서 온 사람을 등요(登用)하여 오랫동안 낮은 벼슬을 참고 봉사한 사람 위에 세우면 그 나라는 망할 것이다.

 

8. 군주가 대범하여 뉘우침이 없고 나라가 혼란해도 자신은 재능(才能)이 많다고 여기며 나라 안 상황에는 어두우면서 이웃적국을 경계하지 않아 반역세력(反逆勢力)이 강성하여 밖으로 적국(敵國)의 힘을 빌려 백성들은 착취하는데도 처벌하지 못하면 그 나라는 망할 것이다.

 

9.세력가의 천거(薦居)받은 사람은 등용되고, 나라에 공을 세운 지사(志士)는 내 쫒아 국가에 대한 공헌(公憲)은 무시되어 아는 사람만 등용되면 그 나라는 반드시 망할 것이다.

 

10. 나라의 창고는 텅 비어 빛 더미에 있는데 권세자의 창고는 가득차고 백성들은 가난한데 상공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서로 짜고 이득을 얻어 반역(反逆)도가 득세하여 권력을 잡으면 그 나라는 반드시 망할 것이다.
                        ——(한비자
망징
(亡徵)45조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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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제간 투전판에 나타난 짱깨. 판돈만 싹쓸이.

배 다른 형제 간에 피 나게 한판 붙는데 난대
없는 짱깨 나타나
밑천도 안들이고 판돈만 싹쓰리.

 

문전옥탑 다 날리고 눈깔 핏발선 선머슴을 무슨 재주로 꼬랑지 내리게 했노. 무슨 재주로 폐가 망신한 선머슴을
주저안게 했나 .
-바오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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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로이 목마 이야기.

인류역사(人類歷史)는 먹고 살 수 없는 곳에서 먹고 살 수 있는 곳으로의 이동(移動)이라고 역사학자(學者)들은 말한다.

 

유목시대(時代)에서 농경사회(農耕社會)를 거쳐 상공무역(商工貿易)시대에 이르기까지 이동의 다른 방법으로 이웃나라를 침략, 노략질과 약탈로 생활환경(生活環境)을 개선하려는 부류(部類)에 의해 세계는 피 흘리는 전쟁(戰爭)이 끝이지 않았다.

 

BC 12C경 지중해 연안의 군소도시 국가들이 자리다툼 하던 서양문명(西洋文明)초기, 에게 해(海)동쪽 트로이가 지리적 여건과 상공업의 발달로 번창하여 부유(富有)해지자 바다건너의 호전적(好戰的)인 그리스 국가들이 침략과 약탈(掠奪)의 기회만 노리고 있었다.

 

트로이 왕 프리아모스는 이런 국외정세(國外政勢)를 의식하고 왕자 파리스와 조카 아이네스를 사절단으로 그리스 여러 국가로부터 외교(外交)로 평화를 수립하려 했다. 평화란 외교나 돈으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군대(軍隊)의 힘으로 지켜진다는 사실을 트로이 왕은 몰랐던 것이다.

 

그리스에서 가장 강한 국가 미케네의 왕 아가메논 영토에 사절단 파리스왕자 일행이 도착하여 푸짐한 선물로 우선은 환영(歡迎)받았다. 아가메논 궁전에서 열린 트로이 사절단 환영만찬에서 트로이의 왕자 파리스는 그리스 절세미녀 헬레네를 만나 첫눈에 사랑에 빠진다. 그녀는 아가멤논 왕의 동생 메넬라오스 왕비고 남편은 마침 국외에 출장 중이었다.

 

트로이 사절단이 목적을 이룰 수 없었던 것은 살찐 돼지를 먹고 싶은 늑대의 야욕을 품은 그리스 왕들과 평화조약(平和條約)은 애당초 맺어질 수 없는 현실이었다. 아가메논 왕의 궁정에서 지지부진 세월만 보내다 사랑에 눈먼 파리스는 외교사절의 중요한 임무를 망각하고 왕비 헬레네와 함께 야(夜)밤 도주해 트로이로 돌아갔다. 젊은 왕자의 무분별한 사랑행각(行脚)은 트로이를 멸망시킨 전쟁의 기폭제가 됐다.

 

트로이 10년 전쟁에서 영웅들의 위대한 전투무용담이 전설(傳說)로 전해 내려오다 300년 후 BC 9C에 호메로스의 대 서사시(敍事詩)일리아드에 수록되나 독일고고학자 슈리번이 1871년 트로이 유적발굴로 역사(歷史)가 되었다.

 

트로이왕자와 헬레네의 사랑 도피행각은 곧 그리스 전역에 알려지게 되어 응징(膺懲)이라는 대의명분(大義名分)으로 그리스 도시국가들이 연합 1000척의 함선에 병사들을 태우고 트로이원정이 시작되었다.

 

에게 海 해변과 트로이城 사이 벌판에서 격돌한 수십 번의 전투에 쌍방 영웅들과 수많은 병사들이 지옥의 땅 하데스 Hades를 밟게 됐다.

 

트로이는 난공불낙(難攻不落)의 견고한 성채로 둘러져 있고 군민(軍民)이 일심동체(一心同體)로 저항하여 간단하게 정복될 수 없었다. 전투가 치열해지며 트로이 영웅 헥토르가 그리스용사 파트로 클로스를 1:1 결투에서 죽이는 것을 시작, 그리스영웅 아킬레우스가 헥토르를 복수결투로 죽이고 전설의 여인국 아마존여왕 용맹스런 펜테 실리아도 죽였다.

 

한국6.25 전란에 참전한 이디오피아국의 왕 멤논도 아킬레우스의 적수가 안 돼 전투에서 죽임을 당했다.

당대 최고의 전사 아킬레우스는 창 검술 명인으로 그와 결투로 이긴 용사는 없었다. 그러나 不死身 아킬레우스도 명사수 파리스가 쏜 화살을 발뒤꿈치 힘줄에 맞아 죽었다. 그 후부터 발뒤꿈치에 아킬레우스 건이란 의학용어(醫學用語)가 생겨났다.

 

전쟁장본인 파리스도 전투에서 죽어, 오랜세월 죽고죽이는 전쟁은 증오와 살육. 피의 제전으로 이어졌다.

 

트로이 전쟁 마지막 해 그리스군대 전략가 오디세우스가 꾀를 내 공병대장 에페이오스를 시켜 속이 빈 커다란 목마를 만들게 했다.

 

재능을 인정받아 임명직에 승승장구(乘勝長驅)로 출세한 관료 형 책상물림은 최후의 승자가 될 수 없다는 것을 최근 우리는 보았다. 한두 가지 약점에 두 손 든 것은 합방에는 관료 형보다 인기몰이 형이 적합하다 여긴 때문이다.

 

조작(造作)의 원천기술(源泉技術)을 발휘하는 상대를 만나면 상당한 통찰력이 없으면 백패(白牌) 할 수밖에 없는 게 관료 형은 선경지명(仙境智明)을 가질 수 없기 때문이다.

 

그리스 군대는 퇴각하기 전 몇 번의 전투에서 거짓패배로 트로이에 승리우월감을 심어준 뒤 속이 빈 목마 속에 정예 병사를 숨겨놓고 진지를 불태운 후 함선에 올라 고국으로 돌아하는 시나리오를 결행했다.

 

단 한번 책략(策略)으로 천하대세(天下大勢)의 승패를 갈라놓은 일은 역사에 수 없이 있었다. 그리스 함대가 해안에서 보이질 안차 오랜 전쟁에 시달린 트로이 사람들은 승리의 환성과 함께 성에서 나와 바닷가에 남겨놓은 커다란 목마를 발견하게 됐다. 목마에는[이 목마를 전쟁의신 아테네에 바칩니다.]라 쓰여 있었다.

 

디모 에 페스란 트로이 인이 전리품으로 목마를 성안으로 끌고 가자 주장했다.

나라가 망할 때가 되면 어김없이 사리분별(事理分別)과는 반대되는 주장을 내세우는 다혈질 인간이 나타나는 것이다. 목마를 불태우자는 주장도 나왔지만 그리스군대가 목마와 함께 시논 이란 그리스인 스파이를 근처 숲 속에 남겨두었다.

 

오늘날 상대 측근을 매수하여 자기편으로 심고 상대지지 언론도 조건부 매수 작태는 이미 3200년 전 적진에 스파이를 보내 교란시키던 전술을 보면 새로운 것도 아니다.

 

이때 근처 숲 속에 숨어있던 그리스인 시논 이 나타났다. 자기는 “그리스 군대가 퇴각하며 함대가 무사히 바다를 건너 귀향하는 제물로 선택한 회생양이나 도망쳤다”고 거짓말로 둘러댔다.

 

“목마가 거대한 것은 성안으로 끌고 들어 갈 수 없도록 만든 것으로 목마가 성안에 들어가면 그리스함대는 바다에 침몰 한다는 신탁이 있었다.”며 트로이 인들의 희망사항(希望事項)을 심리적으로 이용하여 교묘히 설득했다.

 

사람들은 자기가 바라는 방향으로 현실을 볼 수밖에 없다는 울리어스 카이사르의 말대로 목마를 성안으로 끌고 들어갔다.

 

승리의 축제에 트로이 인들은 먹고 마시며 춤추고 노래하다 쓰러져 잠들었다. 한밤 중 목마에서 그리스 병사들이 나와 트로이 성문을 열어 제처 그리스 군대가 입성하자 일방적인 살육이 벌어졌다.

 

트로이 왕 프리아모스는 아킬레우스 아들 네오프톨레모스의 복수심과 증오에 찬칼에 난자당해 죽고 왕의 손자(6살)는 후환을 없애려고 성벽위서 내던져 졌다. 왕의 두 딸 폴리 제나 공주는 승리의 제물로 신전에서 목 베여 지고 언니 카산드라공주는 노예로 끌려가 그리스에서 죽었다. 모든 트로이 인들은 학살당하고 재물도 약탈 당했다.

 

그러나 승자(勝者)도 마냥 행복한 것만은 아니었다. 원정에 참가한 장군들은 하나같이 재앙을 당했다.

트로이 원정군사령관 아가멤논은 전리품을 산 같이 배에 실고 귀향하지만 왕비 클리타임네스트라에게 살해당했다.

 

트로이원정 출발당시 연합군이 아우리스 항구에 집결하나 항해에 좋은 풍향이 불지 않았다. 당시 그리스군함은 바이킹(서기8세기~11세기)영화에 나오는 병사들이 노 젓는 겔리 선이 아니라 사각 돛을 펴고 항해하는 범선으로 바람이 불지 않으면 운항이 되지 않았다.

 

겔리 선은 항해술이 발달한 해양왕국 카르타고가 BC 10세기에 조선기술의 발달로 함선으로 만들어 졌다. 100일이 지나도 바람이 불지 않자 사령관 아가메논은 외동딸 이피게네이아를 희생의 제물로 바쳐 항해의 바람을 얻는다.

 

이때의 딸을 죽인 원한으로 아가메논 왕은 왕비로 부터 죽임을 당하고 왕비역시 자기가 낳은 아들로 부터 아비의 복수로 살해당한다.

 

트로이의 파괴와 멸망 가운데 아이네스 왕자만이 가족을 데리고 탈출하여 지중해를 떠돌며 방랑하던 끝에 훗날 로마건국(建國)시조가 된다. 승리(勝利)는 자질과 능력(能力)이 우수한 것만으로 되는 게 아니라 자질(資質)과 능력을 어떻게 활용(活用)하느냐에 있다는 것을 트로이 멸망역사가 보여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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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무공 탄신일에.

忠武公 이순신.

16C조선(朝鮮)이 낳은 위대한 수군통제사(水軍統制使)충무공(忠武公)이순신將軍을 모르는 사람은 없지만 4백년 지난 지금도 한국정치인들은 충무공어록(語錄)"생즉사 사즉생(生卽死 死卽生)"을 즐겨 인용한다. 심지어 대선(大選.)서도 공(公)의 우국충정(憂國衷情)을 선거전략(選擧戰略)에 무단히 이용된다.

 

임진왜란(壬辰倭亂)이란 사상초유(史上初有)의 국란(國亂)7년을 당한 조선(朝鮮)에 통치자 자질이라곤닦고 찾아봐도 없는 임금선조와 국운이 풍전등화 같은 때도 당파(黨派)싸움질에 여념 없이 당쟁으로 날을 지세는 조정고관(朝廷高官)들 모습은 오늘날 정치현실(政治現實)을 그대로 빼닮아

 

그 당시 역사현장(當時 歷史現場)에 등장했던 인물들을 재조명(再調明)하는 것도 오늘의 조국(祖國)을 더 나은 방향으로 개선(改善)하는 한 방법이 아닐까? 어리석은 소견(所見)으로 수군통제사 충무공(忠武公)이순신 장군과 임진왜란(壬辰倭亂)을 복원(復原)해 본다.

 

사이코 기질의 임금 선조. 왜란대비(倭亂對備)10만 양병 설(養兵說)주장한 재상유성룡. 조선통신사 사절단부사(朝鮮 通信士 使節團副詞)로 왜에 건너가 1년이나 체류하며 조선침략 전쟁준비를 보았을 터에도 국란과는 정반대의 보고(報告)를 조정에 올려 왜적침략(倭敵侵略)에 대한 방어준비 마저 소홀케 한 동인김성일. 아마추어 수군통제사 원균. 안하무인 명의 장군 진린 등의 인간성과 국가전란(國家戰亂)시 조선조정의 대처(對處)를 살피며 충무공의 偉大한 업적을 기리고자 한다.

 

이순신(1545~1598)의 자는 여해, 을사년(음 3/8일)인종1년 어머니는 초계 변 씨 아버지는 정으로 서울 건천 동 덕수 이씨 4형제 중 3째로 태어났다.

 

임진왜란 발발직전(壬辰倭亂 勃發直前)에 이순신을 천거 전라좌수사로 임명하여 조선을 왜적침략에서 구한 재상유성룡(1542-1607)과는 3살터로 어렸을 때 순신과 한동네서 자랐다. 유성룡은 순신에게 (倭)의 간사함을 말하며 경계 늦추지 말 것을 주문했다.

 

이순신 亂中日記 조선백성은 열에 여 덜, 아홉 비겁하다 했으니, 용감한 사람이 간혹 있다고는 했으나 조선인을 거의 다 비겁자로 본 것은 조선백성(朝鮮 百姓)의 성품을 이순신은 예리하게 투시(透視)한 것이다.

 

비겁하다는 것은 용기가 없다는 뜻으로, 판단(判斷)을 제대로 하지 못한다는 말이다. 國人은 판단력 잘 속고 사기(詐欺)잘 당하는 기질(氣質)로, 무엇이 바른 건지 몰라 갈팡질팡 하어제 오늘 일 아니라 옛 부터 그랬다는 것을 고증(考證)은한다. 좌파정권(左派政權)10년 동안 전라향우회 조직의 감시. 간악(奸惡)한(陰謀)술수. 박해를 받으면서 정말 한국인 속성(俗姓)이 무엇인지 알 수 없다는 회의적(懷疑的)인 생각을 한 것은 한 두 번이 아니었다.

 

이순신은 그런 조선백성(祖先百姓)을 불쌍히 여겼다. 자비라는 박애정신(博愛精神)으로 인류(人類)를 한 차원 높이 이끈 世紀의 현자. 성현들과 조금도 다름없는 위대한 인간품성(品性)을 가졌던 충무공이었다. 인류를 좋은 방향으로 이끈 인물은 존경(尊敬)받아야 하나 조국과 동포(同胞)배반한 반역(反逆)자는 근절시켜야 비로 나라가 바로 선.

 

지난 세계역사(世界歷史)를 통해 우리가 배우는 것은 악인이 득세(得勢)해 아무도 바른 소리하는 사람 나타나지 않을 때는 그 나라 종말(終末)이란 것이다.

 

순신이 어렸을 때 가세가 기울어 충남아산 지금 현충사자리로 이사했다. 21세에 보성군수 지낸 방진의 딸과 혼인하여 22세부터 사서오경과 병법서(兵法書)를 읽고 무예를 연마했다. 문무겸전(文武兼全)하나 시운을 얻지 못해 그 당시로는 좀 늦은 나이 32세로 무과(武科)4등으로 급제했다.

 

순신은 헛소문 적의 간계(奸計)는 본능적(本能的)으로 간파(看破)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일상생활에서 명상(冥想)과 사색(思索)으로 고독(孤獨)하게 지냈으며 연결해서 사고(思考)하는 통찰력(通察 力)이 월등했다.

 

충무공 이순신이야 말로 어느 시대 어떤 분야서도 성공할 열성과 자질(資質)이 있는 인물이었다. 놈은 간사 그 말을 믿을 수 없다 난중일기(亂中日記)에 여러 번 기술했다.

 

이순신은 활을 자주 연습하여 명궁(名弓)이었다. 난중일기(亂中日記)에 오열. 몸살이 자주와 병고에 시달리니 나이40 넘어 무예(武藝)를 과하게 단련하면 안 쓰는 근육을 건드려 몸이 아플 수밖에 없었다.

 

해전(海戰)에서 활의 역할은 대단히 중요했다. 왜적의 조총거리는50m.조선수군 활의 유효사정 거리는 70m, 朝鮮水軍 대포 사정거리는400m다. 조총보다 해전에는 활이 더 위력 있어 부하들과 혹은 혼자 시간 나는 데로 거의 매일 활쏘기 연습했다.(난중일기)

 

안하무인인 명의 장수진린 에게도 무장(武將)의 예(禮)와 전투력으로 승복시켰다. 임진왜란 마지막 전투 노량해전에서 진린 과 서로 돕고 합심하여 불리한 여건에서 왜선을 격파 대승리로 이끌었으니 세계해전 사(世界海戰 史)에 유일무일 한 일이다.

 

당시 남해 쪽은 산림 울창하고 노루. 사슴 많았으며 물고기 많이 잡혔다. 특히 청어가 많이 잡혔다. 조정 군량미, 보급품 오지 않아 조선수군은 농민이었으니 군사들이 농사짓고 고기 잡아 자급자족했다. 1595 나라의 정세가 아침이슬처럼 위태로울 때 정책을 결정하는 기둥 같은 인재는 없고 나라를 바로세울 주추 돌 같은 인물이 없다.(을미년 7월초).

 

이순신 난중일기(亂中日記)에 밤에 함선이동(艦船移動)을“달빛 타고 갔다!”라고 기술했다. 남해바다 만월(彎月)의 휘어~ㅇ청 뜬 밤, 잔잔한 파도 위 타고 나아가면 정말 달빛 타고 가는 것 같다. 4세기 전 고대사람 충무공 이순신장군의 정서(情緖)와 문필에 새삼 감탄할 수밖에 없다.

 

당시 배로는 칠흑같이 어두운 밤에는 항해 할 수 없었다. 이순신의 가문에서 후세에 걸출한 인재가 많이 배출됐다. 역대임금과 황후제삿날은 휴일이고 제삿날에는 고기를 먹지 않았다.

 

동서양 막론 수많은 위인(偉人)과 영웅(英雄)들을 역사(歷史)속에서 만났으나 조선시대 어려운 악조건서 이런 걸출한 인재. 위대한 인물탄생은 어느 시대에도 없는 전후 후 무(前後 後. 無)한 일로 진정 우리민족 복이며 행운이었다.

 

영남우수사 이억기(1561-1597).순신의 수하 용감한 장수.(칠천 량 해전서 전사)1596.2.30. 영남우수사 이억기 마음가짐이 흩으러 진 것을 보고 우수사 수하를 곤장으로 치리한 뒤 3일후 사람을 보내 미안하다 전해 부하장군의 마음을 풀어줬다. 5일 후 우수사 이억기에게 무엇을 잘못했는가를 설명하자 이억기는 자세를 가다듬고 마음으로 승복했다.

 

임진왜란(壬辰倭亂)의 원인(原因)과 배경(背景)을 살피면1590년 倭의 장수 도요토미 히데요시(풍신 수길1536-1598년)가 나이55세에 일본 최초로 자국통일을 이룩했다. 2년 뒤인1592년(선조25년)명나라 정벌을 명분으로 조선을 침공 임진왜란을 일으켰다.

 

당시 倭 사정은 전국시대(戰國時代)내전서 통일 이룩하나 경제공황(經濟恐慌)이 왔다. 평시도 화산으로 생성된 왜의 국토는 농경사회(農耕社會)로서의 어려움이 많았던 터인데 百年內戰으로 국토는 더욱 황폐해져 민간생활은 말이 아니었다. 내전서 돌아온 수십만의 무사들은 일본전국을 휩쓸고 다녔고 무사계급(武士階級)도 기근에 굶어죽는 사태가 비일비재(非一非再)했다.

 

민가에선 연로하여 노동력 없어진 노인은 후손 간소한 잔치 끝에 산속 갔다버리는 풍습이 있었을 정도다. 食事가 조밥 메실 장아찌 정도를 먹으면 좋았다. 제대로 먹지 못해 발육이 정지 西. 南海로 노략질 오는 왜국(矮軀)의 왜는 작은 왜자(矮 字)로 조선인보다 평균키가 20~30㎝작았다.

 

그러나 무사도가 창궐하여 창. 검술은 숙련되고 무사계급 되는 것만이 출세하는 유일한 길이었다. 포르투갈서 조총이란 신무기가 들어와 그 사용법을 익혀 전쟁 활용하자 국력과 상관없이나라도 정복할 수 있다 자신감이 생겼다. 당시 명나라 황제는 제13대 신종이다.

 

당시조선은 14대 임금선조다. 덕흥대원군 3째 아들로 서출 계통 혈통인 후궁의 자식이 낳은 아들이 적통을 이은 첫 번째 임금이었다. 도량 좁고 편협 국정을 원칙에 의해 처리하지 않고 감정에 따라 결정하여 통치자자질(統治者資質)이 없는 왕이었다. 강직청렴(强直淸廉)한 성품의 이순신과는 맞지 않아 당파 싸움질하는 소인배들의 중상과 모략을 순신이 끊임없이 받고 그들 참소(讒訴)에 귀 기울인 임금 선조로 인해 우리민족 사상 가장 위대한 수군제독을 힘들게 했다.

 

1587년 규슈정벌에 성공한 히 데 요 시(풍신 수길)는 內戰으로 단련된 수십만의 군사를1590년 쓰시마로 집결시킨다. 쓰시마는(대마도)한반도와 일본 규슈사이 바다에 있는 섬으로 6개 유인도와 70개의 무인도로 이루어져 있다.

 

자국 혼란(混亂)을 외부(外部)로 발산 않으면 해결할 수 없었던 왜 사정이 조선을 침략 壬辰倭亂 일으킨 원인 배경이다. 이는 국가(國家)는 기강(紀綱)이 허물어지면 망하기 때문이다. 왜국은 명을 칠 테니 길을 빌려 달라 조선에 사신을 보냈다.

 

조선조정(祖先朝政)은 동인과 서인이 당파(黨派)싸움으로 정신없는 중에 서인 황윤길을 정사로 동인 김성일을 부사로 통신사를 왜국에 보냈다. 국에서 1년 만에 돌아온 사절단부사 동인김성일은 장차 조선 엄청 재난은 생각지 않고 당쟁시각에서 사실과 다른 엉터리보고서 조정에 提出, 조정이 아무 방비(防備)없이 임진왜란을 겪게 했다.

 

다행이 천운으로 임진왜란 14개월 전 재상유성룡의 천거로 이순신은 정3품 전라좌수사로 임명됐다. 부임즉시 왜적침입을 예상하여 조선수군의 주력함 판옥선을 건조했고 군관 나대용을 시켜 거북선을 만들어 왜의 침략에 대비했다.

 

거북선은 문헌에 고려 때부터 있었다 하나 인재(人才)란 없는 것을 창조(創造)하는 게 아니라 있는 것 중에 아무도 관심두지 않는 것에 창안(創案)하여 국가 백년대계 초석(百年大計 礎石)을 세운다.

 

거북선

거북선은 판옥선에 한층(一層)더 얹어 지붕역할(役割)하는 뚜껑 만든 것이다. 앞엔 용두를 달아 아가리 속에 대포를 장착하고 등은 쇠못을 꼽아 크기는 판옥선과 같다(어떤 문헌은 거북선 길이 35m. 너비 10.6m. 높이 6,6m 노의 수 각8~10개. 돛 2개. 승무원 110~`130명). 상갑판 밑의 중 간판에 좌우 각6문의 대포를 설치했다. 정원160명에 100명은 노 젖는 격군이고 24명이 포수.10명이 화포장. 18명이 활 쏘는 사수다.

 

거북선은 3층으로 왜적이 부산포항에 도착하기 이틀 전 완성됐다. 2개의 돛대는 세웠다 눕혔다 했으며 장거리 항해 순풍 때 돛대 사용하는 범선이나 전투 시(戰鬪 施)는 돛을 접고 격군 노 젓는 켈리선이다. 당시조선은 의무병역제로 노 젓은 격군을 일이 힘들고 봉급은 없어 툭하면 도망치다 잡히면 본보기로 효수된다.

 

거북선은 돌격 선으로 해전초기, 적 선단복판에 침투해 왜선과 충돌 격침시키고 각종대포 발사로 기선 제압하여 아군 사기를 북돋아 해전을 승리로 이끌었다.

 

판옥선과 거북선나무나무 골조로 두께 13㎝판재 건조하여 나무에 홈을 파 끼워 맞추기식 공법 사용. 나무 물에 젖어 팽창하면 더욱 단단히 결합되어 수군선단 맨 앞 좌충우돌 적선 향해 돌진 파괴하는 돌격 선이다.

 

왜의 전함(倭 戰艦)아다 케 부네(안택선).세 케 부네. 고바야 등은 격군 없고 대형전함(大形戰艦)아다케 부네도 전투원만 300명의 주력전함이다. 삼나무두께 9m판재로 만들어 조선판옥선에 비해 상대적으로 약하고 간판 높이도 낮아 왜병들이 조선주력함 판옥선에 기어오르지 못했다. 왜선 병력 수송하는 수송선 연락선 주 임무로 만들어져 돛으로 항해하는 범선이었다.

 

범선해전(帆船海戰)을 치르자면 풍상(風尙)의 位置를 점해야 했다. 풍상의 위치배 돛 뒤서 바람 받는 위치(位置)를 말한다. 풍하위치(風下位置)에 서면 돛 정면으로 바람 받아 전진(前進)할 수 없어 공격 적당한 시기 얻지 못해 범선해전(帆船海戰)은 풍상위치하는 쪽이 승리확률(勝利確率)30% 더 잡았다.

 

그만치 풍상 위치는 중요했다. 그러나 조선수군 주력함(祖先水軍 主力 艦)은 배 중창에 격군 노 젓 켈리선이라 동력 단 것이나 마찬가지 바람 의지로 움직이는과는 절대적으로 비교할 수없이 해전 유리했다.

 

전라좌수사는 현 여수시 오동도다. 이순신은 출전에 앞서 철저한 정보수집으로 적의 태세가 완벽하면 승리 할 수 있는 장소로 유인해 적을 공격百戰百勝했다.

 

임진왜란 7년 전쟁. 선조25년(1592년)임진년4.14일 규슈 나고야 대본영서 왜군군대는 1~ 16조로 편성. 병력 28만6천명. 총대장은 우키다 히데이로 왜란 7년 전쟁의 시작이었다. 1592.3.13일 나고야서 출정하여 중간 기착지 쓰시마로 집결해 4.13일 AM6시 쓰시마를 출발 PM6시 부산포 앞바다에 도착했다.

 

동래 경상좌수사 방흥은 왜군 엄청난 군세에 놀라 조정에 파발마를 띄우고 도망치나 군인으로서의 자존심을 잃어 그 이듬해 병들어 죽었다. 삼천포 수영 경상우수사 원균은 왜군 대병력침입 소문에 전선100척 대포와 군기를 파괴해 바다에 버려 수군 일만 명을 무너지게 하고 판옥선3.4척을 몰아 도망쳤다.

 

경상 우 병사 동인김성일은 조정에 보고하기를 왜구가 적선 400척에 한배에 수십 명씩 타 병력 일만 밖에 안 된다고 통신사부사 때 허위보고 버릇을 못 버려 거짓보고로 조정에 올리고 수하병사들에게 재주껏 알아서 도망치라 이른 후 3.4일 뒤 병사들 몰래 도성을 빠져나가 도망쳤다.

 

이순신은 왜군이 부산포에 상륙했다는 첩보를 입수하고 산하장수들을 좌수영에 소집. 탈영하다 잡힌 황 옥천을 효수한 뒤 참모회의(參謀會議)를 열었다. 녹도만호 정운은“적군 치는데 전라 경상도가 어디 있느냐 !”일갈하여 전라좌수영 수군 참전을 주장했다.

 

이순신은 첩보중요성을 아는 장군이었다. 즉시 염탄꾼을 적진에 보네 적에 대한 정보를 수집했다.

 

제 1차 출정 1592.5.4일 오전2시 출발

 

1.옥포해전(5월7일)함포 해전. 적진포 해전서 왜적함대를 파괴하여 왜적의 수급을 베고 승리했다. 이순신은 작전해역의 사정과 적진을 정확히 파악하여 자신이 원하는 곳으로 적을 유인하고 철저한 공격으로 왜함 파괴 전략을 썼다.

 

제2차 출정. 당포해전. 사천해전. 당항포 해전에서 승리 한다- 거북선이 처음 출동한 율포 해전서 적을 섬멸 했다. 이순신 해전 중에도 백성 불쌍히 여겨 쌀과 포목 등을 나눠주고 함선 태워 후방지역으로 이주시켰다. 임진왜란 삼대 첩 하나인 한산해전에서 승리했다. 웅포 해전 앞서 경상우도 순찰사 동인 김성일이 도망쳤다.

 

한편 육지에선 이광의 군사5만이 왜군1600명을 이끌고 기습 공격한 적장 자카 야스하루에 의해 패배하고 각지로 흩어졌다. 화포장인 이 장손이 비격진천뢰를 발명하다. 이순신의 거북선과 함께 임진왜란 양대 신무기다. 이여송이 12월25일 명군4만 2천을 이끌고 참전했다.

 

1593.계사년.

권율은 행주산성에서 비격진천뢰와 조선 군2300으로 왜군3만 대군을 격파했다.

 

1593.2월 이 순신 함대 제5차 출동.

1594. (갑오 년 기근)백성 참상이 극심 서로가 사이를 잡아먹었단 기록이 있다. 인육 먹는 것 아무렇지도 않게 됐다. 선조1597.3. 왜군14만 대군 증원, 재침이 정유재란이다.

 

아마추어 수군제독. 경상우수사 원균.

 

원균은 몸통이 비대하여 한 끼 식사로 밥 한말과 생선 다섯 묶음에 닭이나 꿩 3.4마리를 먹었다. 배가 무거워 도망도 잘 못했다(조 경남 난증잡록)1594. 임진왜란 3년 선조 27년3월6일 당항해전 격전의 공을 원균이 가로 챈다 .서인대신들에 뇌물을 보내 이순신을 모함하고 선조는 원균 참소에 동조했다. 원균의 활 솜씨는 형편없었다.

 

재목(材木) 못 되는 인재(人才) 평시 그럭저럭 때우나 전쟁 같은 국가위급 시는 자질 여실히 들어날 수밖에 없다. 뇌물로 고관들을 매수한 원균은 수군통제사(水軍統制使)자리를 차지하나 옆에서 볼 때는 쉽게 보인, 바다에 나가기만 하면 승리할 것 같았던 왜군과의 전투는 아마추어 수군장수 원균으로는 감당키 어려웠다.

 

이순신장군이 해전서 연전연승할 때는 그만한 작전과 전투력으로 승리를 점하나 원균 삼군통제사 되자 유능한 장수 갈아 치우고 盲從하는 신하 채워 주색잡기 세월 보내며 순신과는 정반대 치세 행동하다가 파멸했다.

 

통제사 직분 맡아 4 개월 채지나지 않아 조선수군함대 전멸시키고 자신 왜병목 베임 당해 죽었다. 이순신 장군 옆에 가만있었으면 그냥 왜란진압 일등공신으로 남았을 터인데 헛된 공명심에 임진왜란(壬辰倭亂)를 보는 후세 하여금 순신의 위대함 비한 정반대악, 만고역적 원균으로게 됐다. 고위직 앉았다 해 다 아니라 무능(無能)으로 국난해결(國難解決)의 열쇠 열지 못하면 아니함한 것이다.

 

명나라서 불로 적을 공격하는 소이탄1530개를 보냈는데 원균이 흉계를 꾸며 독차지 하려했다. 제 2차 당항포 해전서 원균은 언어를 제어 못하고 함부로 무리한 말을 했다. 원균 서리 처를 간통(姦通)하려 하나 그 처 써 불발에 그 쳤다는 소문 수군 사이 퍼졌.

 

권율도원수에게 원균이 전투거부 항명(抗命)으로 곤장을 맞고 칠천 량 해전서 패해 도망치다 왜병6.7인에 포위당해 칼 맞고 죽었다. 칠 천량 해전서 군선256척과 수천 명의 조선수군(祖先水軍)을 죽음에 몰아넣었다.

 

원균모함에 걸려 의금부에 갇혔다 방면된 이순신이 권율장군 밑에서 백의종군하다 삼도수군통제사로 임명된 원군이 칠 천량전투에서 대패하자 선조는 이순신을 다시 삼도수군통제사로 재임명했다. 그 첫 해전이 명량해전이다. 원군의 패전으로 조선수군은 거의 괴멸되다시피 되어 남은 배가 판옥선 한척과 중선11척. 어선 한척이 조선수군의 전 함대였다.

 

선조(1552-1608)조선 제14대 임금.

중종 후궁 창 빈 이 씨 아들 덕 흥 부원군의 셋째로 1567년 명종이 후사 없이 죽자 후궁소생 첫 번째 임금이 된다. 군주자질(君主資質)이 안 되는 선조는 국정 깽판치세내다 말년임종 독살 설(毒殺 說)이 있는 것으로 보아 제명 못 죽은 것으로 보인다.

 

의병장(義兵 將)곽재우가 벼슬을 사양 한다고 귀양 보낸 선조의 행적은 공신선정(功臣選定)과정도 일괄 성(一括 成)이 없어 선무공신 무관18명 문관 86명에 재우(1552~1617)고경명 김천일덕룡 의병장(義兵 將)의나는 전공들은 다 빼고 반면 內侍24명 피난길 동행했다(同行)하여 공신반열(功臣班列)에었다.

 

임금 선조는“원균 패전 하늘 그렇게 만든 것이라”비호하며 조선수군을 괴멸시킨 원균에게 1등 공신하사했다. 정통성 부족한 선조는 비겁자만 자기 경쟁상대(競爭相對)가 될 수 없다 판단(判斷)한 것 같았다.

 

(1597. 유성룡 정비 록)명량해전 승전첩보가 조정에 날아들자 선조는 “이순신은 사소한 적을 잡은데 불과하다. 자신의 직무를 이행했을 뿐 큰 공 세운 것은 아니다 며 이순신에게 벼슬을 올려주지 않는 다른 방법으로 상 주는 것을 강구하라.”말했다.

 

선조는 상식(常識)을 무시한 이상(異常)성격소유자로 이순신이 노량해전서 죽기 전까지 수많은 해전(海戰)서 승리하고 3번이나 적탄을 맞고 분투하나 선조는“순신 반드시 죽 없애 한다. 공로수록 용납하질했다.

 

인재확보 위해 조정의 허락 받고 과거를 보는 등. 이순신 치적은 한이 없었다. 광해군(1575년-1641)은 왜란 중에 지방을 돌며 군대를 모집하는 등 구국의 공로가 많으나 선조의 업보를 받았다 밖에 볼 수 없어 광해군이 조선 제15대 왕에 등극하나 인조반정으로 실각하여 귀양 가 죽었다.

 

옥포 해전(1592년 5월7)사천해전(1592-5.29)당포해전(1592.6.1)당항 포 해전(1592년6.5) 을포 해전(1592.6.7일) 한산도 해전 등, 이 모든 해전(海戰)서 왜병선단(倭兵船團)을 격파(擊破)하고 승리(勝利)했다.

 

1592.7.5 한산도해전. 헐버트(hul bevt. he)는 이 해전(海戰)은 조선의 살라미스 해전(海戰)이다 평했다. 살라미스는 그리스만 서쪽 섬으로 BC.480년 그리스해군이 페르시아해군을 극적으로 격파한 전설적 해전(海戰).

 

세계 많은 해군사관 학교서 세계4대 해전(海戰)으로 살라미스 해전. 칼레 해전. 드라 팔가 해전. 한산도 해전(海戰)을 꼽았다.

하루 뒤 이순신 수군은 안골포해전. 부산포 해전(海戰)서 승리했다.

 

1596년 10.12~30체포되어 97년 1.1일~ 3.30일까지 원균모함에 하옥되고 4월 사면되다. 그 동안 이순신 처리문제로 어전회의가 7차나 열렸다.

 

7.21일 칠 천량 해전(海戰)서 원균이 대패하고 백의종군하던 이순신은 삼군 통제사로 재임명 되다.

 

1597.9월16일 명량해전(海戰).

 

9월15일 조수를 타고 해남군 문내면 우수영으로 진을 옮겨 전라우수사 김 억추에 수중철색을 치게 했다. 울돌목은 다른 말로 명량이다.
우수영 쪽 해안과 진도해안 양쪽 서.남해안 전체에서 물살이 가장 센(유속10노트)좁은(폭300m)해협에 비스듬히 수중철색을 걸어 왜적들 배가 서로 부딪쳐 깨지도록 조류이용 전략을 세웠다. 좁고 빠른 유속의 흐름 밑에 쇠줄(수중 막 개장치)을 설치하여 왜선들이 걸려 서로 부딪쳐 침몰했다.

 

풀어놓은 염탐 선을 통해 왜선이 공격해온다는 정보를 입수해 대 해전(海戰)이 벌어질 전날 밤 수군 장병들을 모아놓고 이순신“병법 이르기를 전쟁하여 살고자 하면 죽고 죽 각오 하고 싸우면 반드시 산다.”는 훈시로 군령을 세워 내일의 전투에서 유감없이 싸울 것을 명령했다.

 

왜군133척이 명량앞 바다 울돌목에 쳐들어오자 이순신 조선수군13척 이끌고 해전했다. 명량해협 지형 조류 사전 연구하여 왜함 선 향해 죽오로 돌격하니 조선수군 배 뒤따르질 않았다.

 

왜 함대(倭 艦隊)의 군세 비해 순신수군병력(水軍兵力)은 너무나 미약하여 두려워 기회(幾回)만 생기 도망치려 거리(距離)를 두고 있었다. 가장 가까운 거리에 있는 거제 현령 안위를 이순신은 초요기(군령 전하는 깃발)로 불러 배위에 서서 소리 높여 거제현령 안위에게“네가 군법(軍法)에 죽고 싶으냐! 여기서 싸우지 않고 도망친다고 살 것 같으냐!”질타하며 뒤따라 도착한 중군 장(中軍 長)김 응한 에게도 그리 했다.

 

거제 현령안위와 중군 장 김 응한 이 죽을 각오로 왜선(倭船)을 향해 돌격하자 왜 사령선과 적선 두 척에서 왜병들이 개미 떼처럼 두 배에 달라붙었다.

 

이순신의 판옥선이 다가가 대포와 화살을 쏘며 왜병들을 사살하고 그들을 구했다. 곧이어 녹도 만호 송 여립 과 평산도 대장 정응두 가 달려와 전선에 힘을 합치니 조선수군들이 사기 백배(士氣百倍)하여 전력(全力)을 다해 용감히 싸웠다.

 

적장마다시가 이순신將軍의 화살을 맞고 바다에 빠지니 갈고리로 걸어 올려 목을 베어 돛대에 메 달자 왜병들의 사기가 저하(低下)됐다. 왜선(倭船)들은 수없이 파괴되고 적병들은 물에 빠져죽어 패색(敗色)이 짙자 나머지 왜선은 도망쳤다. 명량대첩은 13척 전선(戰船)으로 왜함(倭艦)332척을 쳐부순 세계해전사상 유래(世界海戰史上 由來)없는 작은 병력으로 많은 적군을 쳐부순 해전 사(海戰 史)다.

 

1598년 무술년(11.18일~19일)노량해전

 

남해 노량 앞바다 겨울 북서풍 차가운 날씨에 倭船550척과 朝. 明200척의 연합함선(聯合艦船)이 마지막 도주하는 왜적을 섬멸하려 해전을 벌렸다.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다. 이순신將軍은 명의 장군 진린 과 서로 돕고 도우면서 왜선격파(倭船擊破). 왜 함선 삼분의 이를 노량해협에 수장시켰다.

 

이순신장군(將軍)은 왜적과의 관음포 격전 와중에 손수 북을 치며 수군들을 독려하다 날아오는 총알을 겨드랑에 맞고 쓸어졌다. 장군 유언으로“싸움 급하니 내 죽었다 하지 말.” 맏아들 회와 조카 완이 임종을 지켰다. 이순신이란 위대한 조선의 별은 관음포서 떨어지나 공의 구국충정(救國忠情)(魂)은 조선 인(韓國人)가슴 영원히 살아있다.

 

관음 포: 경남 남해군 고현면 차 현지 이락 사에 이순신 장군(將軍)사당과 유품이 있다. 天下 임자가 없고 왕후장상(王侯將相)씨가로 없어 권력 차지하는 데는 수단방법(手段方法)이 있을 수 없으나 일단 권력을으면 선정(善政)푸는 目的해야 한다. 그래야 지존(至尊)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조선 초기에 가뭄이 극심하여 기우제(祈雨祭)를 지내면서 태종 죽으면서“어떻게 하던지 죽 내리겠다.” 말하고었다. 그 후 태종이 죽은 날엔 어김없이 비가 온다하여 태우라 했다. 위대 통치자(統治者)는 국가위상(國家位相)정립 목적하나 반역자(叛逆 者)는 일신영화(一身榮華) 움직인다.

 

임진왜란(壬辰倭亂)에서 조선을 구한 구국의 인물들 서산대사. 사명당. 정문부. 권율. 김천일. 조헌. 김덕룡. 김시민. 송 상헌. 곽재우. 김연. 그 외 다수.

                                                                            2010.4.28. 충무공 탄신일에, 곽 정 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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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군전투기 좌파정비공이 몰래 단GPS찾아내야?

2008년8.7일 조선일보의(WSJ발)베이징 택시7만대에 중국공안 당국이 위성항법 위치 추적기와 도청 마이크를 달아 택시안의 승객을 감시하여 필요시 위성원격 조작으로 연료공급 중단과 전기장치 교란으로 차량운행을 정지 시킨다는 기사를 보고 나의 승용차에 좌파정권이 2003년 7월부터 이 GPS를 비밀리에 부착하여 지금까지 국민개인의 자유를 감시한 위성항법 위치추적. 도청장치(GLOBAL POSITIONING SYSTEM)가 약슨(Yaxon)사 제품이란 것을 비로소 알게 됐다.

 

좌파정권이 나의 승용차에 감시용 GPS를 몰래 단것은, 2002년.12.19일 대선에서 전자개표기로 당락이 뒤바뀐 것을 개표 끝난 직후 PM10.30분경 한나라당에 알린 것에 대한 대가로 생각된다.

 

물론 처음엔 나의 승용차에 좌파조직원이 몰래 감시용GPS를 달았다는 사실을 꿈에도 알 수 없었다. 타던 승용차가 잦은 사고로 2003년4월 독일제 수입차를 구입했으나 3개월 후인 7월초 아침 출근시간에 올림픽대로 천호 진입로서 신호대기로 정차해 있는데 뒤차(SUV)가 나타나더니 슬금슬금 닥아 와“텅"소리로 추돌사고를 내 본인의 차 뒤 범퍼. 브레이크 등 을 파손했다.

 

가해차량의 보험처리로 수입차A사 정비공장서 여러 날 걸려 파손된 부분을 교체하나 이후부터 본인승용차 운행 행동반경에 좌파정권 감시와 탄압이 뒤따랐다.

 

교회. 식당. 슈퍼. 이발소까지 장소 불문하고 감시자가 나타났다. 얼른 봐도 경찰은 아닌 일반 향우 회원으로 보이며 가까운 곳의 향우 회원 중에서 차출, 보내는 것 같았다. 처음 한. 두 번은 우연으로 생각했으나 이런 일이 매번 겹쳐 좌파조직이 향우회를 동원. 탄압한다는 것을 알게 됐다.

 

이 향우회 동원감시는 본인 승용차에 GPS를 달지 않으면 할 수 없는 일이다. 이후부터 2.3회 같은 교회를 나가면 때론 간악한 방법으로 한 교회에 다니는 것 방해하는데 그 방법이 실로 교묘해 좌파들은 심리전의 대가들이다.

 

이명박 정권으로 정권교체가 이루어진 지금도 달라진 것은 없다. 오히려 좌파조직이 더 악랄해진 것은 저들이 위기감을 느끼는 반작용으로 생각됐다.

 

좌파와 향우회조직은 공직. 민간기업 막론하고 연결되어 정보를 공유하며 상부지령에 충성 온. 오프라인 상 또 하나의 정부가 이 나라에 군림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외도 본인승용차에 이 위성 GPS를 부착, 예상치 못한 위험에 처한 일이 그동안 수백 번 넘으나 여기서는 위성항법 추적. 도청 GPS가 좌파조직에 의해 국가파괴에 이용당할 때의 위험에 대하여 서술하기로 한다.

 

나의 승용차 내부에 부착한 위성항법 GPS가 도청 기능까지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은 위성위치 추적 장치 단 것을 안 것보다 한참 후다.

 

본인 승용차 안에서 단 한번 말해 다른 사람은 도저히 알 수 없는 대화내용을 좌파조직이 알고 음모를 꾸며 나의 승용차 위성원격 GPS가 도청 기능까지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물론 휴대폰. 전화.FAX. PC. 은행카드까지 감시당해 PC 워드작업까지 방해하는 빨 조직은 북한 인민보위 대 보다 더 악랄했다.

 

매일 승용차를 탈 때마다 누군가 엿듣고 있다 생각하니 기분이 묘했다.

그래서 도청 실무자와 대화하기로 했다. 차를 운전하며 목적지로 향하면서 옆 좌석의 사람에게 하는 것처럼 말하기 시작했다.

“도청하는 분! 당신은 누구십니까? 감시당하는 나는 어떤 사람이라 생각합니까? 헌법을 위배하지도 않았는데 민주주의 국가에서 왜 감시당해야 합니까?

 

나의 지금까지 행동은 조국의 자유민주의를 지키기 위한 행위라고 생각한 적은 없습니까가? 정의를 위해 투쟁하는 사람을 감시하는 당신의 지금 행동은 후일 조국과 역사 앞에 자랑스럽게 내세울 수 있나요”등으로 주제와 짧게는 10 분서. 고속도로라도 타면 2~3시간까지 방송 식의 대화로 이어갔다.

 

그런 승용차 안 방송이 시작되고 얼마 후 두 가지 결과가 나타났다. 우익인터넷 게시판에 차안 대화내용 그대로 논조를 펴는 네티즌이 생겼다. 또 다른 한 명은 내가 쓰고 있는 소설주인공 이름으로(차 안 대화로 여러 번 거론.) "기계 단 곳 가서 항의 할 일이지 우리한테 계속 이러면 우린 어쩌란 말입니까 "

 

항의성 글을 인터넷 게시판에 올려 불법도청 감시자 입장도 상당한 스트레스를 받는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들이 정보기관 기관원들이란 것도 알게 돼 좌파정권은 국가를 사유화 했다는 것을 체험했다.

지금까지 내용은 다음 중요사항에 대한 서론으로 위성항법 추적. 도청장치 GPS가 좌파들의 친북충성에 이용돼 국가파괴로 이어지면 대재앙을 유발시킨다는 것을 주지코자 한다.

 

이 위성 감시용 GPS를 비밀리 부착하면 정부요인 승용차. 공군전투기. 지하철 연결차량 화재. 재래시장 원인모를 화재 등 위성항법 추적 장치 원격조작으로 가능하다는 점이다.

 

이 감시용GPS가 나의 승용차만 한정으로 단 한곳 부착됐다 생각할 수는 없다. 정치. 경제. 군사. 언론 등 각 분야 중요인사 승용차에 부착됐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 국가에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되는 가.

 

청와대 차량. 대통령 전용헬기 등에 이GPS 장착돼 운행 중 위성 원격조작으로 연료공급 중단. 전기배선 교란으로 엔진 정지되면 대형 참사가 된다.

 

한 대에 500억 하는 공군 신형전투기도 훈련 비행 중에 위성원격 조작으로 연료공급 중단하고 전기배선 교란하면 핸들이 고정되고 각종계기가 작동불가. 창문도 개패 불능 돼 조종사는 탈출도 못하고 순식간에 추락할 수밖에 없다.

 

이GPS를 지하철 연결차량에 달아 화재를 내면 대형 참사가 된다. 위성원격 조작으로 연료공급 중단할 수 있다는 것은 위성원격 조작으로 필요시 연료 내보낼 수도 있다는 뜻이다.

 

승객이 가득한 지하철 연결 차량 문짝 가까운 좌석 밑에 1 배터리 전지. 2 LPG가스통. 3 휘발성 물질 등을 배선으로GPS를 연결하고 지하철 연결차량 여러 곳에 분산 숨겼다가 위성항법 추적 장치를 원격 조작. 시간차로 배터리전지 통하고 LPG가스통 열어. 휘발성 물질에 발화시킨 다음 다른 좌파조직원으로 중앙계기 차량 문을 열지 못하게 한다면 대구 지하철 참사가 된다.

 

나중 불 질렀다는 정신병자가 등장하고 한패가 증인으로 나서 좌파방송이 사건 핵심을 피해 정신병자 심리상태. 지하철운행 구조적 단점 등을 열거한 뒤 사건현장에 물청소 팀이 나타나 증거를 씻어버리고. 좌파성분 조직원으로 조사반 편성하면 정신병자 정신질환 사고가 될 것이다.

 

가장 바람직하지 못한 최악의 결과는 이런 참사를 당하고도 적을 자극하면 안 된다는 노파심에 불순세력에 공권력을 맡기는 국정운영 할 경우다. 이렇게 되면 아무리 예고한다 해도 소용없는 일로 우리 공군전투기는 매년 일정대수의 원인모를 추락 사고를 반복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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