짖지 않는 개/곽정부

  아침 산책(散策)길에 지나치는 곳이 있다.   APT 단지 뒤로 흐르는 제법 큰 개울가를 걸어 한 바퀴 돌아 오너라면 아파트단지 옆 한쪽 공터에 울타리가 처져 있고 그 안에는 천막 쪼가리로 친 움막 비슷한 게 있어 파. 상추. 배추 같은 작물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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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신 조고.

  진나라 환관(宦官)조고가 저지른 惡行 사기(史記)에 나타난 일부만 추려 등급을 매겨도 인류(人類)사상 간신 개인(個人)부분서 1位인 건 두말할 나위도 없다.   단체 부분에는 아무래도 지난 두 번 좌파정권 권력핵심서 패거리로 국정 농탕쳐 나라를 이 꼴로 만든 좌파 당에 모여 있는 전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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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원 장.

명나라 개국군주(開國君主)주원장은(1328~1398)안휘省 봉양縣 빈농의 지식으로 태어나 17세에 黃閣 寺에 들어가 탁발승으로 한 세월 보냈다.

 

8 兄弟 막내로 처음에는 중팔이라 불렀다. 워낙 총명하여 원나라 쇠망을 깨달고 25歲에 홍건軍두령 곽 사흥의 밑에 들어갔다. 인재를 알아보는 눈을 갖은 곽 사흥은 즉시 그를 수하에 거두었고 관군과의 전투에서 혁혁한 공을 세우자 양녀 마女人과 맺어줘 곽사흥이 죽자 그 무리 두령이 됐다.

 

당시 원 帝國은 국운이 쇠잔 간신들이 들끓어 환관(내시)이 국정을 좌우하여 판을 치는 환관정치로 나라는 종말로 치닫고 있었다.

 

남쪽을 소외시킨 정책으로 강남人재는 등용치 않아 그들이 불만을 품고 양자강 해적들과 손잡아 조정에 올라가는 세수(稅收)를 강탈했다. 이를 제어할 능력을 상실한 원 朝廷은 세수가 들어오질 않아 무기력한 상태가 되어 나라는 그냥 붕괴 초읽기로 들어갔다.

 

어느時代 막론하고 군주가 혼미해 치세를 열지 못 하면 반드시라 해도 좋을 만치 천재지변(天災地變)이 일어나 민심은 흉흉하여 그렇지 않아도 가득이나 어려운 서민의 삶은 더욱 고통스러워 사기꾼. 도독 놈으로 들끓는 난세가 됐다.

 

이럴 때면 천하에 용기 있는 자들이 일어나고 난세에 영웅이 나온다는 말은 명언이 됐다.

 

조정의 무기력에 반역을 척결할 힘이 없자, 의병이라 이름하는 홍건군이 사방에 일어나 패거리로 약탈을 감행하여 민초는 어느쪽이나 가담해야 살아갈 수 있으니, 강남에는 진우량이, 동쪽(황해)에는 장쑤 省을 근거로한 장사성이란 소금장수 CEO출신이, 중간지대는 주원장이 금릉(난징)에 웅거, 원나라는 실제적으로 3토막으로 나눠 서로 패권을 다투는 시대가 되었다.

 

진우량(1271~1368년)은 강서의 호남. 湖北을 중심으로 세력권을 형성하던 당대 전략가로 주원장이 없었으면 천하를 움켜질 뱃장이 있었던 인물이다.

 

1357년 反원봉기에 참가한 진우량은 상관 서수휘를 죽이고 군대를 장악 가장 군세가 강했다. 진우량은 모사와 술수에 능해 채찍과 당근으로 부하를 통솔했다. 그는 소주의 장사성이나 금릉의 주원장에 간자를 넣어도 도착 즉시 양곡 창고를 불 질러 방화罪를 뒤집어 씌워 훗날 적에게 회유당해 항복하지 못하게 하는 술수를 쓰는 자였다.

 

진우량은 대업을 이루려는 포부로 군비를 강화. 전쟁 준비에 여념 없어 당시에는 엄청나게 큰 함선 수십척을 건조하니 목표는 주원장이었다.

 

한편 동지나海의 장사성에게 밀사를 보내 회유하고 같이 손잡고 천하를 양분하자 꾀나 장사성도 그 정도 눈치는 있었다.

 

주원장은 열린 인물이었다.

 

금릉(남경)을 근거로 사방千里가 자기 영토로 들어오자 군왕의 치세를 자각, 인재를 초빙 천하 얻는 준비를 개을리 않았다. 이선량. 유기. 주승 같은 인재를 불러 모으고 민심 얻는데 주력했다.

 

군대의 사기를 중요하게 여겨 군율 위반하는 자가 있으면 지휘고하 막론 발본색출 가차없이 참수했다. 그 는 사람을 꿰뚫어 보는 안목의 지도자로 특히 장수를 잘 골라 썼다.

 

1363년 진우량이 巨艦수십 척과 군소군함 수백척에 60萬 군대를 실고 주원장을 치려고 장강으로 진격해 파양호에 침입했다.

 

아직 전쟁준비가 덜댄 주원장은 크게 놀라 군신 회의를 열었다. 주원장 병력은 20만에 불과 군선을 1척도 없었다. 적의 거대한 병력에 겁낸 주원장 부하들은 의론이 분부하고 四分 五裂 됐다. 적과 협상하여 平和를 유지하자는 측과 항복하고 물러나 후일 도모하자는 측으로 양분 되니 군대의士氣는 형편없이 떨어졌다.

 

그러나 주원장은 알고 있었다.

 

항복해도 진우량은 자신과 부하들을 살려주지 않는다는 것을, 자신을 살려 부하로 삼기에는 주원장은 너무 큰인물인 것을 진우량은 알았고 이런사실 또한 주원장도 알고있었다.

 

진우량 군세를 겁낸 주원장 장수들이 평화를 내세워 항복의견으로 분분 할 때 남옥이란 직급 낮은 젊은 병사가 앞으로 나오며.

“전쟁의 승패가 신병기와 군대숫자에만 있는 게 아니라 死活을 건 선재공격으로 이길수 있다” 외쳤다.

 

전쟁에 노련한 장수들은 이를 비웃고 물러나자 주원장은 남옥을 불러“진우량이 쳐들어오는 길목, 홍도 城을 100日만 지켜주면 그 동안 군세를 강화 전쟁에서 이길 수 있다”고 정예병 6萬을 주어 남옥을 장군으로 임명하고 홍도성에 출진시켰다.

 

남옥이란 장수는 과연 용맹했다.

진우량 선봉부대 20만을 상대로 치열한 전투를 벌리며 항상 병사보다 앞장서 죽을 힘을 다해 싸웠다. 격전중에 4번 적의 칼을 맞고 쓰러져 주위에선 죽은줄 알았는데 다시일어나 돌격하는 정신의 소유자였다.

 

나중 두 다리가 부러져도 성루에 자기 몸을 밧줄로 묶고 지휘해 홍도城 108日 수비에 성공했다. 그 사이 주원장은 전쟁준비를 마치고, 작은성 홍도라고 얏보던 전투서 연일패해 사기 겪인 진우량 군대를 어렵지 않게 꺾는다.

 

열린지도자는 外形으로 사람을 판단하지 않고 인재을 알아보는 안목으로 신하를 등용, 大業을 이루나, 닫힌지도자는 인재란 별게 아니라 사람은 다 비슷비슷해 명령만 잘 따르면 된다는 생각에 뇌물로 신하를 등용하면 平和시는 그럭저럭 넘기나 국가위급 상황이라도 닥치면 有. 無能이 들어나 무능한 신하는 두손 놓아 무방비 상태로 속수무책 당하는 것이다.

 

진우량이 책략에 능하고 신무기에 병력도 월등하게 우세해도 파양호 대해전(大 海戰)서 패한 것은 주원장의 사람 꿰뚫어 보는 인재등용에 진 것이다. 열린 지도자 밑엔 깨어있는 신하가 있게 되어 신병기와 병사 숫자가 많다고 전장에 꼭 승리하는 것은 아니였다.

 

위의 두 영웅에 비해 동쪽 평강에 웅거한 장사성은 어떤 인물이었나?

 

장사성(1321~1367)은 동지나海 장쑤省 다펑현 출신 염전주인으로 장사치니 現代로 말하면 기업CEO다. 그가 출사하여 권력을 잡아 오王이라 칭했다.

 

주원장이 열린 지도자 였으면 장사성은 닫힌 리더었다.

 

장사성은 소금 밀매로 부를 쌓은 거부(巨富)였다. 당시 소금은 조정에서만 취급하는 국가의 중요 기간산업이나 무능해진 조정의 통제가 없어지자 장사성은 생산한 소금을 임의로 각지에 팔아 떼 돈을 챙겼다.

 

기업 CEO로 당연히 실용주의를 택해 숫자와 外形에 치중했다. 문인우대政策으로 서당훈장을 주로 대신에 등용했다. 훈장이란 학문을 단편적으로 이해하는 경향이 있어 이론(理論)에는 능하나 세상 물정에 어두워 치세의 근본(根本)을 꿰뚫기 보단 탁상공론에 머물기 쉬웠다.

 

장사성의 신하들은 주로 어렸을 때 서당동기들이었고 그 나머지는 세력가 장사성 형 장사득에게 뇌물 바친者들로 구성돼 있었다. 實用主義는 이익을 중시 오랜 歲月 염전업을 하다 보니 날씨 좋고 부지런하면 돈 번다는 직업관으로 사람을 노동력으로만 보게 됐다. 사람의 노동력은 거의 같아 별인간 없다는 인식있었다. 그러다보니 평범한 사람으로 채워진 중신들은 군주 찬양대 역할밖에 하지 못했다.

항상 大勢를 따르다보니 관활군민의 원성 받는 패거리가 있으면 그 우두머리로 장관을 삼는 이색적 治世를 했다. 그걸 묻는 사람에게 “세력가진 者 우대하는 원조정의 登龍門을 본 받는 대세정치라” 했다.

특히 난세에는 人才가 절실히 필요하다.

지도자는 때론 과단성 있는 결단을 내릴 경우도 필요하나 CEO 장사성은 이익계산에는 재빠르나 정치적 감각에 따르는 과단성은 우유부단했다. 世上萬事가 이익에 의해 움직인다고 생각하는 얼간이었다.

 

소금 밀매로 번 돈을 밑천으로 亂世를 만나 권력을 잡자 우선 자신의 염전업을 독과점으로 만들어 막대한 재정적인 수입을 올려 수도에 작은 개천을 호수로 만드는 토목 공사를 일으켰다. 망해가는 원조정보다 더 호화로운 유람선을 띄워 밤낮으로 연회를 열어 시와 음률에 취했다.

 

신하들과 同生 장사신이 간하면“군주는 여유를 보여야 백성이 안심하고 생업에 종사한다.”며 지금까지 돈으로 성공한 자신 생활철학을 내세워 오히려 이들을 설득한다. 그는 활줄에 목 메 죽는 순간까지 자신이 잘하고 있다는 확신을 갖던 자였다.

 

또한 적의 도발을 덮는 게 난세 처세관이라며 현명한 정치와는 정반대의 치세로 했다. 진우량 간자의 放火로 민초들이 혼란을 겪어도 항상 책임지는 자 없는” 자연재해라”며 나라재정으로 메 꿔다. 이런 정도니 그에게 전쟁 예기는 금기에 속하여 後日 주원장이 쳐들어 왔을 때 아무도 급보를 알리는 자가 없어 수도에 적이 바짝 닥아 왔을 때 비로써 알게 됐다.

 

당연히 패전하고 사로잡혀 주원장 앞에 끌려나와 “나라 망친 패장이 왜 죽지도 않았냐?”고 힐난 받자“목맨 줄이 끊어져 죽지 못했다”대답, 주원장이 든든한 활줄을 건너 줘 비로소 죽었다.

 

그에게도 大業을 이를 기회는 있었다.

 

진우량과 패권을 다투는 파양호 전투로 주원장은 군대를 몽땅 동원, 수도금릉(현 난징)을 통째 비워 “이때 작은 군사라도 동원 공격하면 적의 수도는 간단히 취할 수 있다”동생 장사신이 권해나 우유부단한 그는 “그럴 리가 없다” 도리어 동생을 설득 천재일후의 기회를 놓쳐 주원장은 그의 성품을 미리 알고 있었다. 장사성은 어렵게 쌓은 거만의 富를 1367년 주원장에게 통채 넘기고 아쉬운 이승을 하직했다.

 

주원장은 두명의 강적을 멸망시키고 원의 수도 북경(베이징)에 칼끝을 겨눠 수하 장수중 第1인자 서달장군을 출정시켜, 1388년 수도 베이징을 함락했다.

몽골 영웅 칭기즈칸 손자 구비라이 칸이 1215년 금을 패망 시키고 원제국을 세운지 1世紀 반 만에 원나라는 무너지고 大明帝國을 세우니 주원장 그때 그의 나이41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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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슨社 위성항법GPS는 테러흉기다.

베이징(북경)택시7萬대에 달린 약 슨(yaxon)社의 위성항법GPS기능을 요약하면 2가지로 분류 된다.(월스트리트 저널 WSJ.)

 

1. 자동차內部에 이GPS를 달면 위성항법 원격조작으로 전기배선장치를 교란하여 운전자 모르게 연료공급을 중단하고 자동차운행을 정지시킬 수 있다.

 

2. 마이크가 달려 도청기능이 있다.

 

배터리가 動力원이 되며 크기도 작아 좁은 공간에 얼마든지 숨길 수 있고 위성항법으로 위치추적. 원격조정으로 경우에 따라 그 차에 탄 사람은 죽은 목숨이나 다름없다.

 

이GPS를 자동차에 단 경우고 전투기에 부착하면 그 결과는 어떨까?

 

우리공군 전투기가 매년 몇 대식 이유 모르게 추락하는 게 불순조직이 이GPS를 전투기내부에 부착하는 것이라고 나는 의심한다.

 

연료를 공급받아 그 동력으로 움직이는 자동차. 전투기. 헬리콥터. 함선. 등이 운항 중 갑자기 원격조정으로 연료공급을 중단하고 전기배선장치를 교란하면 한대에 천억씩 하는 스텔스전투기는 무사히 운항을 계속할 수 있을까?

 

약슨社의 이GPS가 이미 다각도로 개발. 복제되어 實戰에서 활용되고 있다면 우리가 미처 알지 못하는 사이 치명적인 피해를 입을 수 있을 게 아닌가.

 

이 위성항법GPS는 사이즈만 맞으면 함정. 항공기. 잠수함에 이르기까지 어디에나 적용될 수 있을 걸로 보아 반역 패와 우군이 뒤섞어 사는 우리現實에 여간 걱정 되는 게 아니다. 극단적인 예로 대통령이 타는 헬기에 이GPS부착되면 어떻게 될 것인가? 정기 검사하는 사람은 믿을 수 있을까?

 

대구지하철화재 참사도 지하철차량에 연료통과 배터리 위성항법GPS를 기술적으로 연결해 원격조작으로 연료통을 열어 전기배선장치로 발화시켰다면, 그리고 한패가 차량 문을 잠그고 피했다면 理致가 맞아 떨어지는 테러범죄 아닌가.

 

사건난후 물청소팀이 등장하고 언론방송은 한 정신병자의 병력과 지하철차령 구조적 문제만 연일 방송했다면 그런대로 한편의 테러범죄 시나리오가 실행된 거다.

 

①태안반도를 기름범벅으로 만든 크레인선 충돌. ②부산실내 사격장 화재. ③어느 해 인가 겨울철 연달아 일어난 미궁에 빠진 재래시장화재 사건들 다 한 케이스다.

 

거기다 지금 온 나라가 몸살 앓고 있는 구제역 재해도 생각해보면 바이러스가 든 캡슐 통에 위성항법GPS를 연결, 자동차下部에 달아 전라도를 뺀 전국 농장주변을 왕래하며 위성원격으로 캡슐 통에든 구제역균을 살포했다면 자동차 몇대로 지금처럼 목축업 초토화를 만들기란 어려운 일이 아니었을 거라 간단히 추리된다.

 

언론방송에선 최근 “평양구제역 발발”이란 속보이는 알리바이용 도발덮기 여론조성은 의혹을 잠재우기는 너무나 빤한 수작이다. 북한에서 먼저 구제역이 퍼져 남한으로 내려왔다면 이는 믿을 수있을 것이다.

 

지금 상황이 自然재해라면 친북추종黨들이 지금까지 가만있었을까?

 

生난리 떨며 촛불시위 골백번도 더했을 거다. 사건의 진원이 너무 분명하니까? 그래도 양심은 조금 있는 모양이다.

 

지금 정치권에서는 與野 막론하고 속으로는 다 짐작하고 있는 모양 세다. 부처장관도 “시작이 있었으니 결과가 있는 게 아니냐.”며 자기혼자 책임이기엔 그렇지 않느냐. 는 책임전가의 발언을 한 것도 신문에서 보았다.

 

이번 구제역 세균전을 편측의 동기(動機)는 무엇일까?

 

물론 軍事作戰의 목적은 2가지 이상일 경우가 많지만“북한 퍼주기는 한없이 줘도 남는 장사”라는 얼빠진 소리한 어느 작자 말을 입증시켜 주는 게 그 중 한 개일 게다. 주는 게 싼 거란 인식(認識) 줄 目的이 확실하다.

 

나머지 하나는 天氣漏泄에 속해 입 닫고 있을 수밖에 없으나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이 큰 災害는 눈덩이처럼 커져 유탄에 맞아 죽는 경우가 南. 北 어느 쪽이 될 지 지금으론 헤아릴 수 없다는 것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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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릉도 이까바리.

오래前 청동時節 백수로 산과 바다, 낮선 도시를 떠돌며 자유롭게 放浪할 때가 있었다.

 

어느 날 문득 푸른 파도 출렁이고 갈매기 나는 東海바다가 땡~ 겨 옷가지 몇 벌 챙겨
강원도 속초로 초행길을 떠났다.

 

설악산도 구경하고 당분간 동해안서 지내기로 마음
먹었다. 속초 터미널서 택시를 잡아타고 기사 아저씨에게 방세싼 조용한 동네 어디 없냐? 물으니 南쪽으로 바다가 보이는 동네에 내려 줬다. 속초시 교동 언덕배기
위 동네로 여기서 수소문해 月貰 방 하나를 얻었다.

 

집주인은 마흔 중반 나이에 협객 기질이 다분하고 삐^적 마른 키 큰 남자였다.

 

뚜렷한 직업이 없어 오징어 철이면 이까바리 배를 타 오징어 잡는 어부가 되고 산삼 캐는 철이면 강원도 산 속에 들어가 심마니로, 산삼을 못 캐면 山더덕이나 산나물을 캐와 살아가는 봉이 김선달 형님뻘 쯤 되는 사람이었다.

 

江原道인제가 고향으로 김대중 선상이 거기서 국회의원 후보로 출마
했을 때 그를 열열히 지지 유세장을 누비고 다니다 열을 식히지 못한 상태에서 상대후보 선거운동원이 야지를 놓자 번개 같은 해~딩을 날려 폭행죄로 감옥살이도 잠시한 과거사가 있다고 조용한 목소리로 어느 날 고백했다.

 

엉뚱한 方面에 아는 것도 많아 그야말로 산전수전 공중전까지 다 겪은 그의 지난 경험담을 들으면 정신을 놓아 얼빠지기 딱 이었다.

 

타향서 의지 할 곳도 없어 呼兄呼弟하기로 하고 강원도 특산물인 傾月소주를 됫병으로 사와 오징어(cut tle fish)젓갈을 안주삼아 술잔을 나누곤 했다.

 

그 때 그의 집에서 개다리 상에 차려나온 안주삼아 씹은 오징어젓갈은 水産市場서 파는 것과는 맛이 사뭇 달랐다.

 

먼 바다위 이까바리 배서 어부들이 작업 중에 낚은 오징어 중 사이즈가 작아 상품가치 없는 것들은 골라 바닷물에 행기고 소금을 쳐 비닐봉지에 담아 집에 가지고 온 것을 독에 담아 서늘한 곳에 보관시켜 그렇게 보름 정도 발효, 가늘게 썰어 갖은 양념에 무쳐 놓으면 정말 그 맛은 일품이었다.

 

백수기에 평일은 雪嶽山에 올라가 흔들바위 등 설악풍광에 취했고 여행객들과 어울리며 밤에는 어두운 부둣가를 거닐면서“나의 未來는 어떤 것일까 ?"를 주로 생각했다.

 

그런 일상을 보내고 있는데 동해안에 오징어 철이 왔다. 이맘때면 속초는 시가지 전체가 오징어 냄새로 가득찼다. 바닷가, 부두. 수협. 漁村의 앞마당도 오징어 건조냄새로 가득한 연례행사 같았다 .

 

당시 속초의 인구는 11만으로 매년 外地로 나가는 가구 수가 많아 人口는 줄어들고 있었다. 이가 잡이는 동해안 어민들의 중요 수입원이었다. 집 주인이 이까 바리를 가자 꼬여 결국 오징어잡이 어부가 되기로 했다.

 

속초 수산시장 안 낚시점서 집주인 보증으로 낚시도구 한 벌을 외상으로 샀다.

 

낚시 도구 사가지고 오는 길에 부둣가에 일렬종대로 정박한 오징어 배중에 정원 50명 정도 타는 漁船을 골라 배의 선장을 만나 승선허가를 받았다. 난생처음 이가 잡이 배를 타게 됐다. 오징어 잡는 어부는 자기가 잡은 어획량을 50:50으로 선주와 나눠 배 삯과 인건비를 상계하던 시절이다.

 

어선
선장 봉급마저도 자기가 잡은 작업량의 100% 갖는 걸로 급여를 대신하는 노동의 대가로는 단순계산 방식이었다. 당시는 이가 잡이 중에 사고가 발생, 바다에서 생명을 잃으면 보상은 없었고 장례식에 선주가 막걸리 몇 통 보내는 것으로 의무를 다하던 때다.

 

이튼 날 새벽 쌀과 부식. 식기. 낚시도구를 챙겨 집 주인과 함께 어제 승선 허가 받은 배에 오르니 사람들은 벌써 와서 출항준비하고 있었다. 사람들 人員數가 차자 새벽 동이 미쳐 트지 않았는데 배는 出航했다.

 

우리가 탄 어선은 70 T급 木船이었다. 통통거리는 엔진소리를 내며 안개 자욱한 속초港을 빠져나가며 연방 경적을 울려댔다.

 

항구 가득 떠도는 안개를 헤치고 우리가 탄 이가 배는 먼 바다를 향해 나아갔다. 오전 내 안개로 바다 위는 뿌옇게 흐려 해가 떴어도 모든 사물은 희끄 무리 했다. 육지는 점점 뒤로 밀리며 멀어져 희미해지고 가슴 속 밑바닥에서는 이유를 알 수 없는 슬픔이 가득 차 흘렀다. 아득한 太古로 긴 여행을 떠나는 기분이 드는 처녀 항해였다.

 

육지의 山들이 희미한 선으로 이어지다 한참 후에 視野에서 사라졌다.

 

깊은 바다를 향해하는 이까 배는 더 깊은 바다에 들어서자 풍랑이 높아졌다. 우리가 탄 나무배는 요동치고 뱃속은 울렁거려 어지럼과 뱃멀미 고통 속에 미지의 세계로 나갔다.

 

속초항을 출발 한지 10시간 정도 지났을 것이라 생각들 때 쯤 어부들은 배 갑판 위로 모여 각자 낚시도구를 꺼내더니 손질하기 시작했다. 집 주인 兄이 낚시 바늘과 재료를 연결해 줘 오징어 낚는 작업준비를 마칠 수 있었다.

 

출항한지14시간 정도 지나자 울릉도 近海에 왔다.

 

東海의 검푸른 파도를 해치며 쉬지 않고 항해하여 두 시간 더 지나 독도가 먼발치로 지나쳤다. 배는 北으로 북으로 계속 나아갔다. 이 배의 목적지 公海上에 도착한 시각은 바다가 온통 깜깜한 밤중이었다. 어둠 속서 선원들이 분주히 움직이더니 부르릉! 요란한 발전기 소리가 앞 갑판서 나고 오징어잡이 집어 등 불빛이 켜졌다.

 

배 주위는 대낮처럼 환히 밤바다를 밝혔다.

 

앞 갑판 위에 선원들 키 높이의 전기 줄에 매달린 수십 개의 전등이 밤바다를 밝혔는데 등 하나 밝기가 2000촉이었다. 멀리보이는 바다 위의 다른 이까배들도 하나. 둘. 集魚 燈이 켜져 밤바다는 마치 용이 바닷물을 가르며 꿈틀거리는 不夜城의 장관이 되었다.

 

우리 배의 선장은 경험상 오지어 어장이 형성 될 곳이라 생각되는 장소에 도착하자 배의 엔진을 끄고 바다 위에 배를 정지시켰다. 배는 3M~5M 높이의 파도에 출렁거리며 두둥실∨ 떠내려갔다.

 

선장과 어부중 경험 있은이들이 나서 합동으로 낙하산 모양의 물 풍선 닻을 바다에 내던졌다. 물 풍선 닻에 바닷물이 걸려 브레이크 역할로 배가 흘러가지 못하자 어부들은 낚시줄을 뱃전서 내렸다.

 

이까 낚시는 일반 낚시와 모양 세가 달랐다. 연 둘레 비슷한 종류와 세숫대야 두개를 반대로 붙인 굴렁쇠에 낚싯줄을 감은 종류가 있었다. 낚시 바늘이 장방형 실타래 같은 것에 갈고리바늘로 여러 개씩 달렸다.

 

뱃전에 고정시킨 굴렁쇠 손잡이로 낚시 줄을 반대로 돌려 줄을 풀면 추 무게에 낚시 바늘이 바다 밑 일정거리에 도달해 파도치는 데로 출렁거렸다.

 

오징어는 集魚등 불빛에 현혹돼 쏜살같이 달려와 스스로 낚시에 걸려들었다. 파도 위의 릴 움직임과 낚시 줄을 통한 손맛을 느끼면 굴렁쇠 손잡이를 돌려, 낚시 줄을 감기 시작하면 한 낚시에 많을 때 7~8마리씩 궤여 올라 왔다.

 

오징어는 낚시에 걸려 물 밖에 몸통을 들어내는 순간 자기를 포획한 낚시꾼을 향해 힘차게 먹물을 쏘았다. 자신을 捕獲한 인간에게 抵抗의미로 먹물 공격을 감행했다.

 

밤바다 위에서 밤새도록 낚시굴렁쇠 손잡이를 돌리며 낚시 줄을 감았다 풀며 또 감고하는 것을 반복했다. 운이 좋으면 하루 밤 1.500~2.000마리 정도 낚기도 하지만 보통7~800마리를 잡았다.

 

어떤 어부가 하루 밤 4.500마리를 잡아 生涯최고 기록을 세웠다 자랑했으나 사실인지는 증명할 길 없어 듣는 이들은 모두 믿지 않는 눈치다.

 

밤바다 子正이 되면 모두들 작업하던 손을 놓고 앞 갑판 위로 모였다. 낚은 오징어로 회를 치고 초고추장을 만들어 숨겨 온 경월소주 됫병들이가 등장했다. 찬합 뚜껑 잔으로 소주가 돌려져 한 잔씩 나누며 곁들여 찬밥을 오징어 횟물에 말아먹는데 그 맛은 죽었다 깨도 잊을 수 없다.

 

夜食이 끝나고 잠시 쉰 뒤 새벽 동틀 때까지 오징어 낚는 작업은 계속됐다.

 

옆 사람과 말 건널 짬도 없었다. 어느덧 새벽녘이 되자 바다 동쪽 地平線 넘어 희미한 빛이 비추는가 싶더니 순식간 바다 위는 환해지며 불덩이 같은 태양이 지평선 넘어서 솟아올랐는데 그 광경은 경이자체였다.

 

날이 환히 밝으면 집어 등의 魔力은 없어지고 오징어는 바다 속 깊은 深海로 숨어 버렸다.

 

밤샘 작업에 피곤해 지친 어부들은 배 밑창 선실로 내려가 고라 떨어지다. 오전 11時 넘어 일어나 바닷물을 줄 달린 두레박으로 퍼 올려 세수와 양치를 했다. 그리고 각자가 식사를 준비했다. 밥하는데 사용되는 식수는 갑판 위 나무통에 담겨져 있는데 항구서 가지고 온 수도 물을 사용했다.

 

선장과 사무장은 어부들이 밤새도록 잡은 오징어를 集計해 상자에 담아. 얼음에 채워 창고에 보관했다. 이때 어획량이 하선할 때 돈으로 환산 지급 받았다.

 

아침 겸 점심식사를 한 뒤 낚시를 손질하고 다시 잠을 청한다. 늘어진 오후 잠을 깨면 바다는 해질녘이 돼 있었다. 각자가 午前 해놓은 밥으로 저녁식사를 한 후 뱃전으로 몰려들었다. 모두 西쪽하늘을 본다. 서쪽바다는 夕陽노을에 불타고 있었다.

 

잠시 후 태양은 지평선 넘어 바다 속에 잠겨들고 바다 위는 새로운 밤이 왔다. 배 갑판서 발전기 소리로 요란하면 집어등 불빛이 대낮 같이 환히 비추고 이까바리는 다시 시작한다.

 

한번 출항하면 보통 15일 이상 바다 위배에서 생활했다. 오징어잡이가 계속되어 잡은 오징어가 갑판 밑의 창고에 가득 차 더 보관할 곳이 없게 되면 오징어 사는 배가 울릉도서 왔다. 바다 위서 잡은 오징어를 사고파는데 항상 현금으로만 거래됐다.

 

밤바다에 비가 오면 어부들은 비옷을 꺼내 입고 이까잡이를 계속했다.

 

밤바다에 내리는 빗발은 集魚등 불빛에 반사하여 銀빛으로 변했다. 밤하늘서 은빛
줄기가 밤바다로 쏟아지는 광경에 잠시 넋을 잃고 있는 사이 뱃전 넘어 출렁이던 시푸른 파도가 순식간 거대한 銀빛 물결로 변했다.

 

밤바다 위는 모두가 銀빛 세상이 되는 것이다.

 

출렁이는 은빛파도 위의 新天地는 평화롭고 아름다워 그 幻想的인 은빛 세계로 뛰어들고픈 충동을 느꼈다.

 

빗발이 굵어지고 파도가 높아지면 오징어는 낚시에 걸리지 않아 빗줄기가 잠잠할 때까지 작업은 중단됐다. 바다 상대하는 작업이라 기상에 민감해 라디오서 기상예보로 태풍경보라도 떨어지면 조타실 무전기서 황급히 가까운 항구로 긴급 대피하란 호출이 내린다.

 

이까바리 배들은 즉시 닻을 걷어 올리고 어구를 챙겨 가까운 港口를 향해 전속력으로 달리기 시작한다. 때로는 미처 港口에 도착하기 前, 태풍과 맞닥트리게 되면 山같은 파도가 일렁거리며 밀려오다가 갑자기 솟아올라 배를 덮친다.

 

노련한 선장은 배의 키를 단단히 잡고 밀려닥치는 파도를 향해 배의 기수를 돌렸다. 이까바리 배는 파도 정면으로 돌진한다.

 

70 T급 목선은 일엽편주가 되어 파도꼭대기로 날아가듯 올라갔다 순식간 미끄러져 내리며 바다 속 깊이 빠져들어 간다, 느끼도록 내려갔다 다시 파도를 타고 頂上에 오르는 짓을 수 없이 반복한다.

 

大自然의 위력 앞에 인간은 무력해 죽다 살아난 몰골로 간신히 울릉도港에 도착하는 것이다. 배 갑판위의 미처 갈무리 못한 어구와 장비는 폭풍으로 파도가 다 가져갔다.

 

東海 공해상의 이까바리 배들은 가장 가까운 울릉도 항구로 모여들어 포구 안에 닻을 내리고 暴風이 지나가기를 며칠이고 기다렸다. 이때 울릉도 항에는 강아지도 돈을 물고 다닌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돈이 돌며 흥청거렸다.

 

港口 뒷골목 술집에는 파시를 노리고 전국에서 모여든 술파는 아가씨들이 웃음과 애교로 漁夫들을 유혹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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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뮈의 페스트(La Pest).

프랑스 실존주의 작가. 1957년 노벨문학상을 받은 알베르트 까뮈의 작품 페스트(La Pest 1947)가 생각나는 것은 구제역 세균전에 100만 마리가 넘는 소. 돼지가 강제 도살slaughter되어 땅속에 묻히는 현실이기 때문이다.

 

까뮈의 페스트에는 알제리 오랑 市에 페스트가 발병한다.

 

오랑市 뒷골목에 어느 날 죽은 쥐들이 발견된다. 이어 온 도시는 페스트가 번져 사람들은 하나. 둘 병균에 쓸어졌다. 당시는 쥐가 페스트균을 옮기는 발병체었다.

 

오랑市는 외부로부터 완전히 차단되나 사람들은 계속 죽어 나갔다.

 

어제까지 살아 활동하던 사람이 무더기로 죽어나가는 상황이 까뮈는 전염병(Pest)은 부조리(irrational)라고 그의 작품에서 상징했다.

 

그 당시 번역판으로 읽어 작가의 의도하는 바를 난해(難解)하게 생각됐는데 요즘에 맞춰 해석하니 그런대로 맞아 들어가는 것 같기도 하다.

 

페스트가 만연한 도시에 죽어가는 사람과 이를 저지하려는 사람의 용기에 대해 쓴 게 이작품의 主題일 것이다. 인간이 죽음 앞에 약하지만 이에 맞서 생존을 위해 저항하는 용기를 가져야 한다고 이 실존주의 작가는 외쳤다.

 

이 문장을 반대로 해석하면 용기를 잃은 자들은 재앙을 만나면 평정심을 잃고 부조리에 끌려 다니다 몰살당하고 만다는 뜻이다.

 

젊은 날에 니체. 키에르케고르. 톨스토이. 까뮈 등 실존주의와 휴머니즘에 깊이 빠졌으나 “죽음이 또 다른 삶으로 이어진다고는 생각할 수 없다 그것은 닫히면 그만인 문이다.”라는 까뮈 생각에는 공감 할 수 없었다. 거기대해 神學的인 논쟁 할 마음도 없으나 다만 인간으로 부조리에 저항하는 용기가 있어야 한다는 그의 휴머니즘에는 반대 할 수 없었다.

 

전염병이 만연한 시대 살면서 침묵은 금이라는 不條理에 끌려 다니다보면 미래에 더 큰 화근을 만들 뿐이니 때론 부조리에 도전할 용기가 필요하다는 실존주의 작가 까뮈의 외침에 전적으로 공감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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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물학戰(細菌전)의 역사.

世界전쟁사는 오래 前부터 적에게 생물학무기를 직접 사용하는 세균전이 있었다.

 

세균전은 적이 알아도 대응할 수 없는 곳서 캡슐에 담아 인력을 동원 공기 중에 살포해도 그 출처를 알기 힘들고 더구나 이를 무마하는 勢力이 사후처리에 주력하면 피해 입은 쪽선 그 원인조차 찾기 힘드나 만사(萬事)에 우연(偶然)은 없는 법. 결과에는 시작한 쪽이 반드시 있게 마련이다.

 

세균戰은 한번 살포하면 바이러스를 통제하기 어려워 치욕적인 행위로 간주 국제적으로 사용하지 않기로 협약 돼 있으나 국제협약 정도는 우습게 아는 야만세력이 이지구상엔 얼마든지 있다.

 

제1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군은 루마니아 기병대의 말에게 세균戰을 투입했고 UN군에 우송될 미국의 가축에 장해를 일으키는 비저菌도 살포했다.

 

중국도 6.25 한국전에 투입당시 UN군과 전투할 때 세균전을 일으키기 위해 세균을 배양했으나 보복이 두려워 실제로는 사용하지 않았다고 한다.

 

중세전쟁에 사용된 생물학戰의 역사는1343년 킵차크 제국(몽골)의 칸 자니베크가 우크라이나 크림반도에 있는 페오도시야를 침공하여 城 攻略에 사용 된 게 기록에 있다.

 

킵차크 제국은 카르키스 초원과 남 러시아사이의 킵차크 일대에 세워진 몽골제국의 서방부분을 이룬 帝國. 13世紀 중엽~14세기 말까지 가장 번영했다. 국민은 투르크족과 몽골계족으로 구성되며 몽골계가 지배계급이었다.

 

칭기즈칸 후손으로 위대한 군주 우즈베크1313~41의 둘째 아들 자니베크(재위1342~1351)가 그의 형 티니베크가 죽자 계승하여1343년 크림 공화국의 페오도시야을 침공. 공략하다 여의치 못하자 흑사병을 생물학戰으로 사용했다.

 

1343년 新군주 킵차크 제국의 칸 자니베크는 경제적으로 제노바 속령이나 다름없으나 정치적으론 킵차크제국 영향권에 있는 페오도시야(카파)를 정복하기위해 진군했다.

 

페이도시야(Feodosiya)의 카파.

 

우크라이나 크림 주에 있는 도시. 크림반도 남해안의 넓은 灣에BC7~6세기에 밀레토스의 그리스 인들이 세웠다. 1783년 러시아의 영토로 부속하여 오늘날 중요한 휴양지가 됐다. 항구. 漁港. 인구85.600명(1991년)

 

카파 시는 남쪽으로 흑해에 인접해 있고 제노바 주민들이 경제권을 쥐고 있어 제노바 군대가 주둔해 있는 난공불락 천해의 성채였다.

 

칸 자니베크의 군대는 몽골의 특성상 해군을 보유하지 못해 카파 市의 흑해를 통한 본국 제노바의 군대와 물자 지원받는 것을 통제하지 못했다.

 

그의 군대가 강력하였으나 처음부터 쉬운 戰爭이 아니었다.

 

카파 城을 향해 불화살과 투석기로 쏘아대는 바위덩어리도 성벽을 부수기는 역부족이어서 성안 제노바군대와 간간이 접전을 벌이며 4년이란 세월이 흘러 기약 없는 장기전이 되고 말았다.

 

침략한 쪽에선 전쟁이 의외로 쉽게 풀리지 않고 지지부진한 가운데 우기가 닥쳐 열악하고 불결한 환경의 자니베크 병영에는 역병이 돌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한 두 명이 쓰러지고 순식간에 병사들이 매일 수십 명씩 수백 명씩 죽어나가 몽골 군대는 역병에 망하게 되고 말았다.

 

카파市 성위에서는 이 모습을 모고 환호했다. 칸 자니베크 몽골군은 최후의 순간에나 씀직한 잔혹한 방법을 전략으로 택했다.

 

투석기에 역병에 죽은 자기편 병사들의 시체를 담아 카파市 성안으로 쏘아 댔다.

 

이판사판 둘 다 망하는 전쟁수단이었다. 칸 자니베크 예상대로 카파 성안은 흑사병에 급속히 감염되어 일부 바다로 탈출한 사람들을 제외하고 모두 사망했다.

 

배로 탈출해 유럽으로 돌아간 사람들이 흑사병을 전파시켜 당시 유럽인구 30%가 흑사병으로 사망하는 인류의 재앙으로 발전했다.

 

자니베크의 군대역시 무사하지는 못했다.

 

병사 중 살아남아 킵차크로 귀향한 사람은 불과 몇 안 되었고 이때 후속여파로 얼마 후, 칸 자니베크는 아들 베르디 베크에게 독살되어 제위를 강탈당했다. 이후 몽골은 세계사에 그 이름을 떨칠 기회를 상실하고 지금 같은 후진국으로 전락했다.

 

승리에 死活을 건 전쟁판의 책략이라 하더라도 지나친 방법을 수단으로 사용하면 사용한 쪽도 결코 무사하지 못 함을 世界歷史는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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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레이 곰은 왜 쿠알라룸푸르 行을 거부했나?

말레이 곰이 동물원을 탈출했다는 new가 나오자 이 꼬마 곰을 알고 있는 사람들은 저마다 고개를 기우등 거릴 수밖에 없었다. 온순하고 오히려 얼간이에 가까운 말레이 곰이 동물원 우리를 탈출하다니? 뭔가 한참 잘못 된 것은 아닐까?

 

더구나 北極곰도 아니 아열대 곰이 이 추운 겨울 맨발로 청계산으로 내 뺐다는 소식에 사람들은 영 믿기지 않은 표정이었다.

 

그러나 여러 날 뉴스방송 헤드라인을 장식하자 말 좋아하는 이들은 저마다 한마디씩 했다.

 

차기 유력한
대권주자 한사람이라 자부하는 봉의山자락서 닭 키우다 최근 여의도로 복귀한 인사는“동물원所長의 독제에 항거. 철창을 탈출한 민주투사 말레이 꼬마 곰 만세”라며 우리 당이 본받아야 투쟁정신이라고 찬양했다.

 

역시 최근 복당한, 늙은이 고려장 지내야 한다는 말로 無期停學당했다가 풀려난 인사는 “한房 동거 연상아줌마 곰이 밤마다 밝혀 도망쳤을 거”란 性적인 발언으로 친척(親戚)관계인 두 곰 사이를 이간(離間)시켜 역시 지역 색을 못 벗어나 세인의 시선을 받았다.

 

임기는 無能하게 보냈으나 산행 좋아하는 前職고위층은 “등산은 겨울철이 제 맛이니 나간 김에 청계산 정상을 확실히 밟아야 나간보람 있을 거라”는 다소 헷갈리나 나름대로의 견해를 밝혔다.

 

서울 부산을 縱橫無盡왕래하며 강연회로 인기를 얻고 있는 우익인사는 “말레이 곰은 세뇌 당 한 거”란 간단한 결론을 냈다.

 

사실 추위를 몹시 타는 말레이 곰이 이 겨울嚴冬雪寒에 동물원을 탈출하여 청계산을 누비고 다닌 데는 다름대로의 긴박한 사항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말레이 곰이 탈출하기 전날 밤, 열풍기가 내려 쪼이는 따뜻한 우리서 막 선잠이 들었는데 누가 어깨를 잡아끌어.

 

볼 맨 소리로 꼬마 곰은 내질렀다.

 

“누구요?”

 

“ 말레이 곰 동무! 눈 좀 떠 보기요”

 

제법 위엄 있는 목소리에 잠이 깬 꼬마 곰이 밀짚 깔개서 일어나 앉자 눈앞에는 붉은 털의 中國곰 한 마리가 서 있었다.

 

그러 구보니 며칠 전부터 아침 운동시간이면 여러 곰들 틈에 섞여 베드민트 치던 중국 곰 한 마리가 생각났다. 동물세계도 외환보유고 높은 중국위상은 무시할 수가 없어 찍혀 좋은 일 없겠다 싶은 마음에 꼬마 곰은 정신을 가다듬었다.

 

“곰 동무! 똑똑히 들으시오. 나는 자금성 특사[바오]요. 일전에도 特使로 와서 싹 쓰리 작전을 수행한바 있소. 싹 쓰리가 뭔 진 묻지 말기요. 알려고 하면 괜히 다치는 수가 있으니.

 

물런 中國곰이라고 특사역할에 매번 성공하는 것은 아니요. 수영선수 출신 중국 곰 한 마리가 하도 公을 세우겠다고 사정해 금도兄이 특사로 파견했으나 내가 써먹은 수법 재탕하려다 단독대화를 배재하고 주위에 측근들을 불러 모는 바람에 실패한 경우가 바로 며칠 전에 있었소. 특사이름이 뭐 높은 데서 물위에 뛰어 내린다는 궤 라나 뭐.”

 

그건 그렀고.

 

“말레이 곰 동무. 동지는 청년대장 동무의 선택을 받아 당과 北朝鮮인민을 위해 투쟁하라는 지령을 받은 혁명전사요”

 

말레이 곰의 대답.

 

“뭔가 착각이 있었던 모양이군요. 내 고향은 말레시아라 북조선과는 아무상관 없고 난 친북추종자도 아닌걸요. 그리고 동무는 中國곰이 아니요 중국이 왜 북조선 청년대장 동무를 위해 발 벗고 나선기요.”

 

말레이 곰은 가만있다가는 손해 볼 일이 생기겠다 싶어 상황파악은 잘 안되나 일단거절하기로 마음먹었다.

 

중국 곰은 거만스럽게 말했다.

 

“곰 동지! 동무가 있는 이 동물원도 청년대장 동무의 심혈을 기울이는 남반부사업장 중 하나란 말이요. 우리中國은 한반도의 실제적인 지배자로 북조선을 비공식적으로 인정한 바요. 남조선 인민을 보아선 그래서는 안 되겠다 싶으나 북조선 동무들이 차마 거절할 수 없는 선물을 기차로 바리바리 실어와 퍼 제키는데 우린들 어쩔 수가 없는 입장이라오.

 

그러니 정치적인 질문을 하지말기요. 지금부터 동무가 이행할 구체적인 지시를 내릴 태니 그대로 따라주기요.”

 

“내일 식사시간에 관리 동무가 곰 동무 우리철문을 열어 놓을 테니 무조건 청계산으로 튀시오. 하루. 이틀만 가끔 산등성을 배회해 기자동무들 카메라 세례를 받다가 북조선 전사들이 미리 파놓은 굴속에서 10日만 버티기요. 보상으로 동무의 고향 쿠알라룸푸르로 보내 줄 끼요.

 

이곳에서 자본주의자들 종노릇하지 말고 고향 가서 편히 살기요.”

 

“中國곰 동무. 내겐 말레시아보다 이곳이 더 편해요. 고향 있을 때는 종일 사람들 앞에서 민속춤 추고 몇 푼 얻어 흔해 빠진 빠나나 나 풀 밖에 먹을 게 없었는데 이곳선 우리에서 뒹굴뒹굴하다 좋아하는 고구마. 생닭도 무한 리필 대니 이곳이 더 좋아요”

 

“반동적 발언 때려치우시오. 저렇게 당성(黨性)이 없어서야! 이 말은 꼭 기억해 두시요. 곰쓸개는 6年 生이 최고 좋다는 말은 알고 있소.”

 

꼬마 곰은 동물원 소장이 이따금씩 우리를 시찰할 때면 칙칙한 눈빛으로 자신의 배꼽주위를 보며 입맛을 다시던 게 생각나 갑자기 으슬으슬 추워졌다.

 

곰쓸개란 말에 풀이 팍 죽은 꼬마 곰은 그러나 마지막 대꾸라도 해볼 요량에

 

“난 심장이 약해요 우리 문 박차고 나갈 용기도 없어요. 그리고 청계산으로 도망가 봤자 소장이 무서운 사냥개를 풀어 금방 날 물어 죽일 덴데. 난 도망 칠 수 없어요.”

 

“말레이 곰 동지. 염려 말라요. 동무의 勇氣가 팍팍 쏟게 탈출하기 직전 아래나린24 한방을 엉덩이에 놔 줄 끼요. 기운이 펄펄 날게요.

 

동물원 소장은 걱정할 필요 없소.

 

곰 동무의 탈출 보고가 올라오면 소장은 지하벙커로 내려가게 돼 있소. 그곳서 내린 결론은 급한 볼일 끝나면 돌아오라는 통지를 단호하게 보낼게 요.

 

곰 동무 청계산 행 탈출기의 tv방송으로 시민들 시선이 쏠리면 그 틈을 타 묵혀두었던 숙원사업 예산통과. 급여인상. 입장료 인상등과 같은 실익(實益) 외 다른 쪽은 관심두지 않는 친구요. 위기관리 능력이 없는 사람이요.

 

사냥개도 걱정 말라요. 로키 산서 데려온 테프콘 3도 그 시간이면 약발 받아 꿈나라서 돈다발 세고 있을 거요. 진도 개1이 형식상 뒤를 쫓겠지만 코끝에 중국산 참기름을 발라놔 아무냄새도 구별 할 수 없을꺼요. 미리 다 조율해 놨다오. 그러니 곰 동무는 아무 염려할게 없어요.

 

“바오 곰 동무. 마지막 한마디만 더 물어보겠어요? 나의 청계산 탈출이 청년대장 동무에게 무슨 도움이 되나요?”

 

“말레이 곰 동무. 이건 극비지만 동지에게만 말해 주게 시요. 지금 南北 모두“곰 3마리”란 말이 퍼진 걸 알지요. 북조선 인민공화국에서는 이걸 나쁘게 생각지 않소. 우선 단군조선 시조 환웅도 곰 혈통서 나온 게 아니겠소. 모택동. 흐루시초프. 모두 북방 곰이니 뭐니 부르지 않았소.

 

곰 동무가 청계산을 휘졌고 다니는 동안 南韓언론. 방송 뉴스에는 곰이 헤드라인을 장식하지 않겠어요. 남조선 인민들 두뇌 깊숙이 곰은 좋다는 이미지를 심는 게 대단한 심리전이 되는 거요. 곰이 TV서 보일 때 마다. 광동제약 우르사가 잘 팔리는 이치와 같은 거요.

 

천안 함 폭파에 해군 47명 살상. 연평도 무차별포격. 경상도 구제역 살포 등 청년대장이 저지른 否定的이미지를 남한 TV 언론방송서 한 방에 역전시켜 북조선 청년대장은 좋은 이미지를 받는 심리전의 승리라오.

 

TV 앞의 남조선 인민들은 선량한 꼬마 곰의 귀환에 동정심을 발휘하여 천안 함. 연평도. 경상도 구제역 등 테러범죄를 한꺼번에 상쇄시키는 대 심리전의 완승이란 말이외다. 돈으론 억만금을 줘도 할 수 없는 21세기 최대 광고심리전의 연출이라는 말입니다.

 

말레이 곰 동무. 마지막으로 충고 한마디 하고 가게 시요.

 

여자의 눈물을 믿지 말라요. 내래 첫사랑과 헤어진 후 여자란 진주 같은 눈물을 흘리면서도 속으론 통장 속의 0숫자 세고 있다는 사실을 일찍 깨달아 다오.

 

천사 같은 미모의 TV방송 아나운서가 연평도 포격 당한 직후 뉴스방송에 “전쟁 날까 두렵다”는 비애국적(非愛國的)발언을 고음의 데시벨로 연방 뇌까려 國民 사기(士氣)죽이는 선동행동을 보며 뒤에서 누가 부추겼는지 모르지만여자란 정말 못 믿을 동물이란 걸 다시 한 번 느꼈다오.

 

꼬마 곰 동무도 며칠 후면 여자의 눈물 생 쇼를 보게 될 끼요. 곰 동무의 위대한 心理戰 투쟁이 “쓰리 곰”의 긍정적 이미지 형성에 깊이 공헌했다는 말로 청년대장 동무의 치하를 전하며 이만 가보겠소.

nonfiction. 원제: 말레이 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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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병동(精神病棟)

오랜 세월前 청소년 때 깊은 산속에 있는 수도원(基督敎)에 들어가 성경공부 한 적이 있다.

이 수도원(修道院)은 4 .3 世紀 前 日帝가 조선을 침략. 합방하고 약탈하던時代, 한 선각자가 독립운동을 하다 日경에 쫓겨 인척 없는 산속으로 피신하여 숨어 있다 누군가가 전해준 성경을 읽고 예수그리스도의 복음을 받아들여 청빈(淸貧)과 고행(苦行)을 신앙 신조로 하는 수도원을 세웠다.

 

그 수도원 안의 민가(民家)에는 정신병자가 많았다. 병자가족(家族)이 혹 믿음의 기적으로 완치 될까 해서 수도원민가에 병자를 의탁했다.

 

민가에는 수도원에서 친하게 된 분 부모님이 생활 수단으로 정신병자를 수용 그 집에 가면 정신병자를 볼 수 있었다. 세월이 흐른 지금은 규모가 커져 2000病床의 現代정신병원으로 발전했지만 그 당시 수도원內 민가의 정신병자들은 심한 경우 손. 발에 쇠사슬 차고 있는 사람이 많았다.

 

그곳에선 정신병자를 "삔~또"라 불렀다.

 

카메라렌즈 초점을 조절하는 핀트(focus)를 말하는 것이라 생각 되는데 정신 초점이 안 맞아 돈 사람이란 뜻일 게다. 어떤 이는 정신세계 영역(靈域)이 돌아 올 수 없는 몇 萬年 前, 원시(原始)에 가 있어 지성과 교양은 잃어버리고 內面을 원시인(原始人)으로 살아가고 있었다.

 

현대의학도 정신병근원(根源)은 정확히 알 수 없다 하지만 그들에게 몇 개의 공통점은 있다. 미치광이 共通點은 조화(調和)를 이루지 못하는 것에 있다.
어떤 게 좋으면 그것만 선택한다. 밥을 주면 한 없이 먹고 배 터지게 먹는 브레이크 없는 자동차다. 자신(自身)의 본능 外는 생각하는 사고가 부족하다.

 

우리 어렸을 때 동네 가끔 나타난 미친 사람은 발가벗고 다녔고 추운겨울 남의 집 처마 밑에 자다 凍死하는 경우도 많았다. 현대 정신병자는 세분화 되어 병명도 다양하고 증세도 전문가가 자세히 관찰하지 않으면 알 수 없게 세분화 됐다. 알고 보면 정신질환처럼 무서운 병도 없다. 대부분의 질병은 환자 자신만 해(害)치나 정신병자는 이웃과 사회, 때론 국가에 막대한 재앙을 끼친 사건이 지난역사에서 찾아 볼 수 있다.

 

정신병자가 특별한 여건 하에 여러 사람의 운명(運命)을 결정하는 권력을 손에 쥐게 되는 권력 자리에 앉으면 그것은 매우 큰 재앙이 된다. 정신의 균형을 이루지 못해 권력자는 자신의 작은 고통이나 본능충족(本能充足)을 위해서 타인 수만 명의 생명도 아낌없이 희생시키기 때문이다.

 

올 바른 판단능력을 상실해 만약 누군가 비밀히 협박하면 자신을 지탱하는 신념과 주관을 상실. 겁쟁이가 되어 무조건 복종해 국가에 엄청난 피해를 줄 경우도 있다. 私設정신병자 수용소서 정신병이 호전된 사람을 직원으로 채용하면 절대 복종하는 꼭두각시로 변한다.

 

정신병자의 판단을 마라톤 경주로 비유하면 준비운동은 다른 선수와 똑 같이 하다 출발 신호가 울리면 반대방향으로 뛰어 나가는 행동으로 중요한 시점에 오판(誤判)을 한다.

 

현실과 가상세계를 구별하지 못해 비논리적 발언을 일삼으며 보편타당성 없는 판단으로 스스로의 품위마저 생각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맹종하는 측근을 의지하나 어느 날 갑자기 돌변하여 도와줘도 감사나 고마움도 몰라 도움의 반대로 갚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마지막에 격리 수용당하는 순간까지 자기 고집을 굽히지 않아 얼핏 보면 신념이 있어 보이나 내면에는 자신도 믿지 못한다. 그러기에 어느 한 순간 한꺼번에 무너지기도 한다. 미치광이는 마지막까지 합리적 의견은 받아드리지 못하고 행여 동조자(同調者)라도 있으면 절대 고집을 꺾을 수 없다.

 

수도원 민가 정신병동에는 아편 중독자도 있었다. 아편 중독자는 아편을 제시간 투약하지 못하면 금단증상에 죽음보다 심한 고통이 겪고 아편을 투약하면 즉시 정반대 현상이 나타나 현실세계는 의미 없어 환상세계(幻想世界)에 있기를 바라는 정신질환자다.

 

정신병자 특성中 하나는 타인에 대한 배려를 할 수 없다는데 있다. 자신과 가족 그리고 관심 있는 것 외에는 나라가 무너져도 흥미 없어 독제권력일 경우 잔인한 테러, 상식(常識)으론 생각도 할 수 없는 행동도 서슴지 않는다. 한 가정의 가장. 단체 지도자 중에 정신병자가 끼어 있으면 그 주위사람은 상당한 선의 피해를 입게 된다.

 

미치광이 경우 살짝 돈 때가 가장 위험하다. 주위에서 정신병자로 인정하지 않아 (나중엔 알게 되지만)그 피해는 참담하다. 본인(本人)은 자신이 미친증세가 있다고 절대 생각지 않는다.

 

자신이 정신병자란 사실을 누가 알게 될까 봐 당사자는 결사적 자기방어를 하는데 교활하게 귀신같이 그물망을 빠져나가 보통사람보다 머리돌리기가 월등하다.

 

정신병자가 말한 어록(語錄)을 종합하면 논리(論理)의 일관성(一貫性)이 없다. 그 때마다 임시방편으로 말과 행동을 하고 오직 관심사는 자신의 본능뿐이다.

 

자신의 관심사항에는 지나친 집착력을 가져 피해 입는 타인은 염두에 두지 않아 막무가내기식이다. 그런 자기를 자신도 알아 모르는 사람과는 상종하지 않으려 하여 자기편만 고수한다.

 

미치광이로 부터 피해 줄이는 길은 물리적 격리수용 방법 外는 대책이 없다.

 

고명한 정신전문의(專門 醫)중엔 현대인은 모두 정신병자라 정의하는 이도 있다. 정신병자가 가장 싫어하는 게 자신이 미치광이 취급당하는 거다.

 

정신병지적(指摘)싫어하는 現代 人에 정신병동 예기하는 것도 psycho증세 있는 건진 알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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