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리고 따뜻한 겨울 이야기

 

문학공간 12월호 원고

 

시로 못다 쓴 이야기 12

 

저리고 따뜻한 겨울 이야기

 

 

기청 (시인 문예비평가)


 

시에 있어서의 겨울은 어떤 이미지 일까? 색깔로 말하면 하얀색이 어울릴 것이다

흰색은 빛의 삼원색의 혼합이다 즉 빨강(해) 초록(대지) 파랑(하늘)의 합이니 우주의

합일이 되는 것이다.

 

그런가 하면 N. 프라이((Northrop Frye)의 신화 원형비평에서 제시한 원형심상(archetypical image)에서 겨울은 밤(하루의 주기)이고 눈(물의 순환주기)이며 죽음(인생)에 해당 한다 봄이 아침(비)-청년이라면 여름은 정오(샘)-장년, 가을은 저녁(강)-노년에 해당한다,

 

이때 원형은 사물의 근원적인 이미지다 원시 이후로 인간의 집단 무의식에 잠재해온

상징이다 물은 탄생과 죽음이라는 상반된 이미지를 동시에 갖고 있다 해는 창조 부성(父性)의 원리, 달과 지구(대지)는 모성(母性)의 원리를 대변한다.

 

겨울은 봄으로 가는 징검다리다 단순한 죽음(斷滅)이 아닌 새로운 봄(생명)을 잉태하기 위한 준비기간이다 끝없이 이어지는 순환(윤회)의 한 과정인 것이다 이렇게 보면 겨울은 밤이나 어둠, 차가움 같은 부정적 이미지만 아닌 역설적 심층의미를 내포하고 있다고 봐야한다 즉 따뜻함 은근한 혈육의 사랑, 초월적 사랑 같은 생명의 근원이 자리하고 있다고 보는 것이다.

 

겨울에 대비되는 따뜻한 부정(父情)의 상징

 

□내 오래된 기억의 저편, 우리네 겨울은 온통 회색빛 이었다 밝은 하양도 푸른 초록도 아닌 우중충한 회색빛, 마치 짙은 안개 속 같은, 앞을 분간할 수 없는 그런 불투명 모호함 예측불가의 불안을 동반한 그런 무채색이었다.

빛바랜 무명옷 소매 겹겹 눌어붙은 땟자국의 흔적 이었다 그런 빛깔은 그대로 시대의 암울한 그림자와 함께 내면 깊히 드리워졌다.

 

겨울이면 쌀밥을 먹는 집이 흔치않았다 대개 지난 가을 뒷산에서 주워온 도토리나 헛간에 매달려 빛바랜 시래기, 들에서 캐온 쓱 등을 섞어 지은 잡탕밥이 허기를 달래주었다 불평을 하는 것은 금기였고 사치였다 하지만 나는 막내란 이유로 특혜를 누렸다 아버지와 겸상을 하는 영광과 함께 귀한 쌀밥을 먹을 수 있었다 하지만 그것이 부모님과 일찍 작별해야하는 막내의 슬픔에 대한 보상이란 사실을 알지 못했다

 

그처럼 나는 아버지란 이름을 중학교 이후로 더 이상 불러보지 못했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겨울이면 따뜻한 아버지의 온기를 느끼곤 한다 겨울이면 하루해가 길었다 어른들은 돌아서면 해지고 끼니 걱정이지만 아이들은 달랐다 언 손을 호호 불며 구슬치기 딱지치기 연날리기로 하루해가 짧았다

연날리기의 재미는 특별했다 연이 하늘 높이 펄럭거리면 가슴이 벌렁벌렁 뛰었다 연이 앞산을 밀어내고 솟아올라 먼 산 너머 세상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연은 내 마음의 상징 이었다 마음의 눈으로 넓은 세상을 보고 싶었다.

 

놀다가 지쳐서 집으로 들어오면 아버지는 말없이 내 붉은 귀를 감싸주었다 어머니가

저녁을 준비하는 동안 미리 지핀 화롯가에 나란히 앉아 내 작은 언 발을 녹여주었다

그때 따뜻한 아버지의 손, 가슴으로 전해오는 온기는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 기억으로 남아있다.

 

겨울의 대표적 이미지인 눈을 소재로 한 작품이 많다 그 중 대표적인 것으로 김종길의 ‘성탄제’ 백석의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를 꼽는다

앞의 작품은 드물게 아버지의 사랑(父情)을 노래하고 뒤의 것은 초월적 사랑을 노래한 작품이다

 

어두운 방 안엔

빠알간 숯불이 피고,

 

외로이 늙으신 할머니가

애처로이 잦아드는 어린 목숨을 지키고 계시었다.

 

이윽고 눈 속을

아버지가 약(藥)을 가지고 돌아오시었다.

 

아 아버지가 눈을 헤치고 따 오신

그 붉은 산수유(山茱萸) 열매―

 

나는 한 마리 어린 짐생,

젊은 아버지의 서느런 옷자락에

열(熱)로 상기한 볼을 말없이 부비는 것이었다.

 

이따금 뒷문을 눈이 치고 있었다.

그날밤이 어쩌면 성탄제(聖誕祭)의 밤이었을지도 모른다.

 

어느새 나도

그때의 아버지만큼 나이를 먹었다.

옛것이라곤 찾아볼 길 없는

성탄제(聖誕祭) 가까운 도시(都市)에는

이제 반가운 그 옛날의 것이 내리는데,

 

서러운 서른 살 나의 이마에

불현듯 아버지의 서느런 옷자락을 느끼는 것은,

 

눈 속에 따오신 산수유(山茱萸) 붉은 알알이

아직도 내 혈액(血液) 속에 녹아 흐르는 까닭일까.

-김종길 ‘성탄제’ 전문

 

어린 시절의 추억과 현재(어른이 되어 그때 아버지와 같은 나이가 된)의 대비로

구성되어있다 그때 아버지의 부정을 생각하면서 지금 삭막해진 세태의 자화상을

‘오브 랩’시킨다 메마른 시대의 회한과 안타까움이 베어난다

 

여기서 핵심어는 ‘눈’과 ’산수유 열매‘다 ’눈‘은 아버지의 고난을, ’산수유 열매‘는

부정(父情)을 상징 한다 특히 눈(흰색)-열매(빨간색)의 색채대비가 이미지를 더욱 선명하게 해준다. 겨울은 시련이지만 아버지의 순수한 부정(산수유 열매)을 통해 승화된다 또한 시간적 배경을 성탄제로 설정하면서 더욱 숭고한 차원으로 끌어올리고 있다

 

사랑을 초월한 구원(救援)의 이상향

 

□내가 어떤 연유로 문학이란 ‘주인 없는 빈집’에 발을 들여놓게 되었는지

내 자신도 정확히 알 수가 없다 문학이란 빈집에 거미줄 친 낡은 빈방에 나는 도적처럼 기어들었다 주인이 누군지도 모르고 방세도 내지 않는 빈방에서 나는 그럭저럭 40년 가까이를 살았다.

 

그 시절, 내가 도시로 유학을 와서 고등학교에 다닐 무렵 추운 겨울 날, 그녀는 내게 구겨진 편지 한 장을 건네주었다 향기가 나는 편지지에 깨알 같은 글씨가 적혀있었다 자세히 보니 무슨 싯구가 적혀 있었다 사실 그 때 나는 시가 뭔지 알지 못했다 부끄러움으로 얼굴이 달아올랐다 훨씬 나중에 안일이지만 그 싯구는 기욤 아폴리네르의 ‘미라보 다리 아래서‘라는 시였다 시에 눈뜨는 계기가 되었는지 모른다.

 

 

가난한 내가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오늘밤은 푹푹 눈이 나린다

 

나타샤를 사랑은 하고

눈은 푹푹 날리고

나는 혼자 쓸쓸히 앉어 소주(燒酒)를 마신다

소주(燒酒)를 마시며 생각한다

나타샤와 나는

눈이 푹푹 쌓이는 밤 흰 당나귀 타고

산골로 가자 출출이 우는 깊은 산골로 가 마가리에 살자

 

눈은 푹푹 나리고

나는 나타샤를 생각하고

나타샤가 아니올 리 없다

언제 벌써 내 속에 고조곤히 와 이야기한다

산골로 가는 것은 세상한테 지는 것이 아니다

세상 같은 건 더러워 버리는 것이다

 

눈은 푹푹 나리고

아름다운 나타샤는 나를 사랑하고

어데서 흰 당나귀도 오늘밤이 좋아서 응앙응앙 울을 것이다.

-백석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전문

 

다분히 이국적이고 몽환적인 분위기가 신비감마저 느끼게 한다 이 작품은 일반적으로 퇴폐적인 ‘사랑 시’로 이해하는 경향이 있다 현실 도피적이고 부정적 이미지가

주조를 이룬다고 해석한다 하지만 나는 다른 각도에서 이해하고 싶다 단순히 현실도피적인 것을 넘어 새로운 이상향을 모색하는 희망의 노래로 보고 싶은 것이다.

 

시적 자아는 현실의 고난을 극복하는 방법으로 ‘나타샤’와 ‘마가리’를 제시 한다 ‘나타샤’는 내가 지향하는(흠모하고 사랑해 마지않는) 대상이지만 구체적인 연인은 아니다

마음속에만 존재하는 이상형의 모습일 뿐이다 그녀와 함께 나는 떠나고자 한다

‘마가리’는 강원도 이름 없는 산골 일수 있고, 내가 지향하는 이상향일 수 있다

현실적 고난과 번뇌를 잠재울 수 있는 곳, 오직 무한한 사랑과 신뢰가 존재하는 그들만의 낙원일 수도 있다 ,

 

제목의 어휘가 이 시의 주제를 상징적으로 나타내고 있다 ‘나’와 ‘나타샤’는 주인공, ‘흰 당나귀’는 주인공과 서로를 이어주는 매개물이다 그들의 관계는 대등한 관계이고

평등과 극진한 사랑을 암시 한다 특히 배경인 ‘흰 눈’과 ‘흰 당나귀’는 순수와 신비감을 더해주는 요소로 절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다 이 시는 세속적인 의미의 사랑을 초월한 구원(救援)의 청원인 것이다.

 

삶도 문학도 지나간다

 

□ 겨울이면 마음도 추워진다 해는 세상의 모든 곳을 골고루 비추지만 구석진 곳을 다 비추지는 못한다 낮은 곳에는 해가 너무 높다 손을 내밀어도 너무 멀어 닫지 않는 것이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라는 이름의 군중은 외롭고 쓸쓸하다

이들을 위무하고 새로운 희망을 제시해줄 ‘메시야’는 없는가?

 

지난 해 그때 그 시각처럼

올해도 어김없이 그 순간이 왔다

어둠을 가르고 울려 퍼지는

보신각 종소리


어디만큼 떨며 울려 퍼져서

또 누구d,; 가슴 가슴을 휘젓고 돌아

새 희망의 빛을 빚어낼 것인가

사람들은 눈 오는 날 강아지처럼

들뜬 마음으로 보신각 마당에 모여

추운 입김 호호 불며

그 어떤 소망을 종소리에 담아

그 누구에게로 날려서

그의 원을 풀 것인가


종소리는 세상의 깊은 어둠

몰아내며 낮고 가난한 곳으로

병들고 배고픈 곳으로

어루만지는 어머니의 손길로

따스한 온기 전해주며


새로운 생명을 잉태시키며

낡고 위태로운 것들 허물어내고

새롭고 가슴 울렁거리는 것들로

세상 가득 채워줄 것인가.


-기청 ‘제야의 종’ 전문

필자의 시집 <안개마을 입구>에서

 

-기청 ‘제야의 종’ 전문

필자의 시집 <안개마을 입구>에서

 

겨울도 한해의 끝이 되면 더 마음이 바빠진다 ‘제야의 종’은 가슴을 후리는 채찍이

되어 긴 여운을 남긴다 종소리는 소리 아닌 구원의 메시지가 되어 세상을 흔들어 깨

운다 귀를 가진 자에게 던지는 축복의 메시지다 하지만 세상은 꿈쩍도 하질 않는다

여전히 춥고 배고픈 사람은 거리를 방황 하고 병으로 일어서지 못하는 자는 누워서

신음 한다 산타클로스나 관세음보살의 손길은 ‘머나먼 쏭바강‘처럼 멀기만 하다.

 

그러나 겨울은 결코 춥지 않다 따스한 사랑의 체온이 식지 않는 한, 겨울은 그래도

견딜 만하다 ‘산수유’처럼 붉고 아름다운 부정(父情)은 세상을 데우는 가마솥이다

모든 병을 치유하는 약사여래불이다 ‘나타샤’처럼 변함없는 사랑과 신뢰는 현실의 고

난을 뛰어넘는 구원의 동반자다 따뜻한 어머니의 손길은 새로운 생명을 잉태시키는

대자대비(大慈大悲)의 화신이다.

 

겨울은 세상을 얼어붙게 하고 죽음을 재촉한다 하지만 동시에 겨울은 따뜻한 사랑의

온기로 희망의 봄을 준비한다 겨울은 지나간다 봄을 잉태하기 위한 시련일 뿐이다

봄을 좀 더 가까이 불러들이기 위한 준비기간이다 겨울은 봄으로 건너뛰기 위한 도

약의 디딤돌 이다 삶도 문학도 지나간다 다만 흔적을 남길 뿐이다.

□ 이번 12월호로 편집부와의 약속을 마감한다 그동안 부족한 글을 읽어주신 문단동료와 독자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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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칼럼니스트
카테고리 : PHOTO ESS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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