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보기

지난 5주 동안 총 세 편의 영화를 봤습니다.

‘The Kids are all right’ ‘Salt’ ‘Eat, Pray, Love’

공통점을 생각해보니 모두 여배우가 주인공이네요.

‘The Kids…’는 레즈비언 부부의 이야기고,

‘Salt’는 러시아 여성 스파이가 나오며,

‘Eat…’은 이혼한 여자가 자아를 찾아

이탈리아 인도 발리 등지를 여행하는 내용이었습니다.

사실 이곳에 와서 영화를 보는 이유는

제가 한때 영화담당기자였고 영화를 좋아해서만은 아닙니다.

 

무엇보다 듣기 실력을 측정해보기 위한 목표가 컸으나,

첫 번째는 좀 잘 들리나 싶더니 두 번째는 졸았고,

세 번째는 말이 너무 빠르고 이탈리아어 인도어 등

각종 언어가 뒤섞이며 알아듣지 못해 무척 좌절했습니다.

그래선지 이 셋 중에서 가장 파격적이고 제일 웃겼던

‘The Kids are all right’가 가장 기억에 남을 것 같네요.

이 영화가 과연 한국에서 개봉할지 모르겠지만,

개봉하게 된다면 무슨 제목으로 번역될지도 궁금하네요.

제가 번역가라면 제목을 ‘아이들은 괜찮아’보단

‘울 아빠는 여자야’처럼 선정적으로 지을 것 같다는.

 

 

@The Kids are all right

Landmark Theatres Bethesda에서 ‘The Kids are all right’를 봤습니다.

이 극장은 미국 전역에 58개의 체인을 가지고 있는,

한국으로 치면 씨네큐브나 하이퍼텍 나다쯤 되는 독립영화 전용관입니다.

E st.에도 체인이 있지만 유대인이 많이 살고

DC를 벗어나 메릴랜드 주에 속하는 Bethesda로 향했습니다.

우선 영화를 보고 두 가지에 놀랐습니다.

올해 각각 50세, 48세인 줄리안 무어와 아네트 베닝도 세월을 무시할 수 없구나,

그럼에도 어쩌면 얼굴 주름과 온몸의 반점을 스스럼없이 드러낼 수 있을까,

하지만 더 놀란 두 가지는

레즈비언 부부의 아들과 딸이 생물학적인 아버지를 찾아 떠나는 내용의 파격적인
영화를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보러 온다는 사실과

그런 관객의 80% 이상이 중장년층이라는 점이었습니다.

워싱턴 D.C.가 동성간 결혼의 합법적으로 허용하기 때문일까요.

여하튼 여러모로 영리하고 위트 넘치는 이 영화는 두 배우의 리얼한 연기도 잊을
수 없었습니다.

 

 

@Salt

이 영화는 저의 옛 동네가 된 Friendship Heights에 있는 AMC에서 봤습니다.

한국의 CGV나 메가박스, 롯데시네마 같은 멀티플렉스 극장입니다.

이런 영화는 팝콘을 먹으며 가벼운 마음으로 봐야할 것 같았고

영화를 보고 난 느낌도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극중 솔트가 절대 죽지 않는다는 사실과 청소년기 졸리의 꿈이

장례 지도사였다는 사실이 자꾸 겹치며 극에 몰입할 수 없었던 것만 빼면.

안젤리나 졸리가 한국에 방문했다고 하는데 한국이 할리우드에서도 꽤나 큰 시장이긴
한가봅니다.

 

 

@Eat, Pray, Love

어릴 적 왜 할리우드는 줄리아 로버츠를 좋아할까 궁금했습니다.

예쁘지도 않고 그렇게 연기를 빼어나게 하는 것도 아닌데 말이죠.

하지만 몇 년 전 출연했던 영화 Closer에서 줄리아 로버츠는

제 눈에 좀 다르게 비춰졌습니다. 뭐랄까, 배우를 떠나 엄마로서 여성으로서 지내온

세월을 연기에 담고 있다는 느낌이랄까.

얼마 전 인터뷰에서 왜 보톡스를 맞지 않는가라는 질문에 그는 이렇게 답했다더군요.

얼굴의 주름은 각자 인생의 역사를 담고 있다.

내 얼굴 주름에 병원에 다녀온 흔적을 남기고 싶지 않다라고.

동명 인기 소설을 원작으로 한 ‘Eat, Pray, Love’는 영화의 완성도를 떠나

이 영화의 주인공을 그녀가 맡게 된 게 무척 자연스러운 영화였습니다.

그리고 할리우드가 이제 인도와 발리 등 아시아의 이국적인 문화에

노골적으로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는 걸 깨닫게 해주기도 했고요.

영화를 보고 난 후 주방용품 쇼핑몰에 가니 아예 ‘Eat, Pray, Love’ 코너를
만들어

영화에서 그녀가 걸친 인도와 발리 스타일의 패션용품을 파는 게 인상적이었습니다.

 

 

하지만 이 영화를 잊을 수 없는 중요한 이유는

금요일 오후, 워싱턴 DC에서 가장 오래된 영화관인 ‘Avalon Theatre’의 한 구석에
앉아

영화를 볼 수 있었다는 점이었습니다. 1922년 지어진 영화관은 2001년 문을 닫았지만

주민들의 참여로 결성된 Avilon Theatre 살리기 프로젝트로

2004년 다시 문을 열었다고 합니다.

극장 입구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습니다.

“The Avalon is the oldest "surviving" movie theatre in Whshington,
D.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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홈스테이 수난사

 

설레는 마음으로 도착한 첫 홈스테이에 대한 환상은

도착한 지 10분만에 서랍장 안과 창틀 곳곳에 누워있는

바퀴벌레 시체들을 보고 와르르 깨졌습니다.

그러나 살아있는 곤충을 본 것도 아닌데 괜히 유난떨 필요가 없단 생각에

다시 부푼 마음을 안고 집안 곳곳을 둘러보기 시작했습니다.

수영장이 있다는 곳에는 그냥 구멍을 판 곳에 물을 보관해놓은 웅덩이가 있었고

저녁이 되니 각국에서 온 남자애들이 방 곳곳에서 스멀스멀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남자 4명과 샤워장과 화장실을 같이 써야된다는 말을 듣고 충격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순간,

샤워기 버튼까지 고장나버렸습니다. 주인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 벤치를 주더군요.

샤워헤드는 나오지도 않았고 저는 벤치를 사용해 무릎 높이에 달려있는 수도꼭지를 돌려
씻었습니다.

그날 밤에 허벅지가 정체모를 벌레에 물려 부풀어 올랐는데

제 추측으로는 벼룩이 아니었을까 하는. 그날부터 온몸 전체가 간지러웠거든요.

메릴랜드 주 락빌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그렇게 일주일동안 지친 몸을 이끌고 간 곳은

워싱턴 D. C.에 있는 Friendship Heights라는 동네였습니다.

메릴랜드주와 워싱턴의 경계에 있는 곳으로 상당한 부촌이라 들었고

그럼 적어도 벼룩은 없을 것이라는 생각에 한 시간이라도 빨리 첫 홈스테이를
벗어나고 싶어

약속 시간보다 2시간 일찍 도착했습니다.

짐을 우선 갖다 두고 동네를 산책할 생각이었죠.

문을 열고 들어가는데 어떤 중년여성이 소리를 지르며 온몸을 부르르 떨고 있었습니다.

들리는 단어라고는 upset special guest early I’m not ready How 등등

해석해보면 넌 특별한 손님인데 이렇게 일찍와서 내가 너에게 준비되지 못한 모습을
보여주게 됐으니

무척 당황스럽다.였습니다.

저 또한 약속시간에 2시간 일찍 도착했다는 이유로 정신을 잃어버리는 그녀가
당황스러웠습니다.

그의 직업은 정신과 의사였습니다.

 

불길한 예감이 들긴 했지만 깨끗한 침대 시트가 그리웠던 저는 그 집에 있기로 했습니다.

반지하 방에 있는 제 방은 무척 청결하고 널찍했습니다.

물론 급작스럽게 온 손님이라 일주일 후면 그 집 2층으로 이사를 가야했지만 문제가
되지 않을 거라 생각했습니다.

일주일이 지났고 반지하에서 2층으로 이사를 가는 날이었습니다.

침대시트를 빨아놓으라는 여자의 말에

난 메이드가 아닌 게스트지만 얇은 이불정도는 성의 표시로 빨아줄 수 있겠다
싶었습니다.

방청소를 한 뒤 2층으로 방을 옮기려는데

대체 뭘 빤거냐며 소리를 지르는 여자의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이번에 들리는 단어는

in your country your thing happy so upset

해석하면 너의 나라에서도 너가 사용한 걸 남이 썼으면 좋겠냐. 나 너무 당황스럽다.

제 눈에는 게스트가 침대보 전체를 빨지 않았다는 이유로 정신을 잃어버리는 그녀가
너무 당황스러웠습니다.

그 날 이후로 저녁에 오렌지 쥬스를 마셨다는 이유, 복도의 조명을 끄지 않았다는
이유 등등을 들어가며

제 일거수 일투족에 토를 달았습니다.

이번에는 몸이 아닌 마음이 불편했습니다.

 

 

거의 2주일만에 정신병동같은 집을 탈출한 저는 Dupont Circle의 한 호텔에 묵은

거기서 조금 떨어진 Cleverland Park의 한 주택가로 왔습니다.

70대가 조금 넘으신 Oliver 씨 부부는 저녁식사에 초대한

조카 이언에게 저를 new adapted daughter라고 소개했습니다.

이들은 저를 학원에서 쓰는 영어 이름인 Matilda가 아닌 그냥 Heejin으로 부르겠다고
합니다.

한국에서 너의 부모님이 너를 부르는 것과 똑같이 부르고 싶다는 이유에서입니다.

한달동안 좌충우돌하며 다쳤던 마음에서 눈물이 주륵주륵.

집안의 모든 소품들이 저마다 역사를 지니고 있는 오래된 이 집을 당분간 떠나지
않기로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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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zz

 

@Friendship Heights Metro Station

July 31, 2010

 

제가 살고 있는 Friendship Heights가 좋은 이유는

이곳이 콧대높은 미국 상류층이 거주하는 부촌이기 때문은 아닙니다.

블루밍데일을 비롯한 백화점과 명품 샵들이 줄지어 있기 때문은 더더욱 아니고요.

대신 조금만 걸어가면 이곳이 도시가 맞나 의심하게 만드는 Rock Creek Park가
있고

매일 출근길과 퇴근길마다 지하철역에서 작은 연주회가 열린다는 점 때문입니다.

 

지하철역에서 내려 버스정류장으로 향하는데

발길을 자꾸 멈추게 만드는 바이올린 선율이 들려왔습니다.

매번 연주자들에게 동전을 줘야하나 말아야하나 고민만 하다 그냥 지나쳤던 저는

이번만큼은 용기를 내보기로 했습니다.

 

그녀는 CD플레이어에 꽂아놓은 음악에 맞춰 바이올린을 연주했습니다.

무척 복잡해 보이는 악보에서 제가 알아낸 유일한 단서는 이곡이 Bach의 곡이라는
것.

이 곡을 외우냐고 물었더니 12세부터 매일같이 연주를 했기 때문에

이제는 외우는 단계가 아닌 몸 속에 이곡이 그냥 있는 상태라고 말했습니다.

 

자신을 JAZZ라고 밝힌 그녀는 자신을 제외하고 대부분의 가족들이 재즈 뮤지션이라고
했고

경쟁이 치열한 이곳에서 연주자로 자리를 얻기에 나이가 많고 흑인이어서

이렇게 거리로 나오게 됐다고 했습니다.

한국에서 왔다고 하니 그녀는 주한미군인 남편이 평택 용산 등에 있었다며
반색을 하더군요.

다음에 만나면 한국에 대해 많은 것을 물어볼테니 꼭 이메일을 보내라고 했습니다.

 

돌아오는 길에 영화 ‘솔로이스트’ 생각이 났습니다.

영화는 얼핏보면 정신착란자인 불우한 바이올리니스트 나다니엘을

LA타임즈 기자 로페즈가 발견하고 도와주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나다니엘로 인해 치유받는 것은 로페즈입니다.

 

물론 재즈는 정신착란자도 아니고 저 또한 매일 특종을 쫓다 가족과 멀어진 기자도
아니죠.

하지만 바이올린과 CD플레이어, 몇백장이 넘는 CD가방과 작은 연주의자를

양손에 들고 터덜터덜 집으로 향하는 재즈의 뒷모습을 보며

제 마음 한 구석이 조금 뜨거워지는 걸 느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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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evin Coelho

 

@Ellington Bridge

July 31, 2010

 

나훈아 아저씨처럼 반백발 꽁지머리의 Kevin Coelho는 자신을 동화작가라고 소개했습니다.

포르투갈에서 태어나 런던 피카디리 서커스에 살고 있으며

워싱턴에는 학술대회 참석차 자주 드나든다며 뉴욕에도 집이 있다고 하더군요.

20여 년간 세 권의 동화책을 냈고 가장 최근에 낸 책은 우화였다고 했습니다.

동화작가가 된 이유를 묻자 "여전히 나는 어린애이기 때문"이라는 답변을
내놓더니

"아이들은 답하려 하기보다 그저 질문하기 때문에 위대한 존재"라며

자신이 태어나 품었던 첫 질문은 ‘왜 별은 떨어지지 않을까’였다고 했습니다.

 

이 외에도 어록에 남을 만한 멋들어진 말들이 이어졌습니다.

이를 테면 내 안에는 세 명이 살고 있다, I, Me, Meself.

그리하여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관계는 너 자신이다. 등등

개똥철학이긴 했지만 그의 말은 쉽고 명쾌했습니다.

 

토요일 오후 엘링턴 다리에서 만난 우리는

스트로베리 마티니를 마시며 유쾌하고 진지한 대화를 나누고 헤어졌습니다.

이 얘기를 학원 선생님에게 해줬더니 절대로 다시는 모르는 사람과 바에 가지
말라고 충고를 하더군요.

사실 수상한 점이 무척 많긴 했습니다.

38세라는 사실도 믿기 좀 힘들었고

돌아와서 아마존 닷컴에서 그의 이름을 치니 파울로 코엘료의 책들만 나올 뿐

꽤 유명한 척 하던 그는 인터넷 세상에서 찾을 수 없었습니다.

그가 작가 행세를 하며 여자들을 꼬시는 한량일 수 있고

런던에서 그닥 유명하진 않지만 정말로 동화책을 쓰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진실은 누구도 모르는 거니 추측만 할 뿐이죠. ㅋㅋㅋ

 

그래도 분명한 건 그는 워싱턴 다리 한가운데서 방황하던 제게

처음으로 말을 건넨 사람이었고

한잔에 3달러 밖에 되진 않지만 맛있는 칵테일을 사준 첫 친구였습니다.

계산할 때 보니 그 술집에 진 외상값이 꽤 많아보여 미안하긴 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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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ve Kindred

 

 

Dave Kindred는 18세부터 45년 가까이 신문사와 잡지사에서 글을 써온 베테랑 저널리스트입니다.

한때 워싱턴 포스트에서 스포츠 칼럼니스트로 활동했고,

그의 이야기는 ‘영혼을 위한 닭고기 수프’라는 책에도 실렸다고 하네요.

그를 만난 건 지난주 목요일이었던 7월 29일 저녁, 저의 ‘방과 후 학교’가
된 서점 ‘Politics & Prose’에서였습니다.

그는 최근 일간지 워싱턴 포스트의 이야기를 다룬 ‘Morning Miracle’를 내고 이곳에서 열린 강연회에 참석했습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열정적이고 진심이 담긴 강연이었습니다.

그는 기자만큼 curious, competitive, ambitious한 직업은 없다며

모든 매체의 환경은 변했지만 truth와 why story를 다루는 저널리스트는 이제까지 살아남았고,

앞으로도 살아남을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밥우드워드,
샐리 젠킨스 등 워싱턴 포스트 기자에 대한 인상적인 스케치와 인터뷰로 시작하는
이 책은


읽어보진 못했지만 현재와 미래를 고민하는 저널리스트이라면 한번쯤 읽어봐야 할
책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특히
John Boyle O’Reilly라는 19세기 소설가의 말을 빌려 신문의 힘에 대해 설명한 대목은

언론인의
본질에 대해 다시금 생각하게 해줬습니다.
 

“It is the biography of a day. It is a photograph, of twenty four hours’ length, of the mysterious river of time

that is weeping past us forever… tales of sorrow and suffering, and joy and success,

and ambition and defeat, and villainy and virtue…

and a heart feels the touch of the wonderful human sympathy

that makes us brethren of the men of all crimes and all ages.”

 


  

 

강연이 끝난
후 저는 사인을 받았고 기념촬영도 했습니다.

제가 한국 신문사의 기자라고 하니 그는 이런 글귀를 적어주었습니다.

“미래의 저널리스트에게 행운이 가득하길. 우리는 당신 같은 사람이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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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진, 폭염 그리고 폭풍우

 

2주전이었던
16일 새벽 5시경.

메릴랜드
주 락빌의 하숙집에서 자고 있던 저는

마치
포클레인이 집을 들이받은 것 같은 엄청난 진동을 느끼며 잠에서 깼습니다.

당시
묵고 있던 집은 도로변에 있어


차가 지나갈 때마다 흔들렸던 지라

"이번엔
아주 큰 차가 지나가는 가보다"라며 다시
잠에 들었죠.

그때만
해도 3.6
규모의 지진이 워싱턴 북동부 지역을 강타했을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다음
날 아침 일어나 사태를 파악한 저는

서울에서
30년 가까이 살면서 한번도 경험하지 못한 지진을,

지진이
좀처럼 일어나지 않는다는 워싱턴
일대에서 겪었다는 사실에 뿌듯함까지 느꼈습니다.

 

 

하지만
이게 웬 걸, 지진이 일어난 다음 주에는 워싱턴 사상 최악의 폭염이 시작됐습니다.

화씨
90도가 넘는 날이 7월 들어서만 15일이 넘었고

특히
지난 주 토요일 기온은 100도(섭씨 40도)를 기록했는데

습도가
높아 체감온도가 115도 가까이 됐다고 하네요.

한창
해가 내리 쬘 오후 2시경,

홈스테이
호스트와 한바탕 문화충돌을 경험하고 집에서 나온 저는

땀인지
눈물인지 모를 뭔가를 흘리며 약속장소인
대성당으로 향하고 있었습니다.

지하철
한 정거장에 해당되는 거리를 걸으니

아무리
격렬하게 운동해도 생기지 않는 땀방울이 온몸에서 뚝뚝 떨어지더군요.

긍정적인
성격의 소유자인 저는 몇 시간전 호스트와 싸운 것도 잊은 채

오직
이 상황이 다이어트에
미칠 긍정적인 영향을 생각하며 기분 좋게 걸었습니다.

 

 

그러나
25일 오후 5시경의 상황은 좀 심각했습니다.

서점을
둘러싼 모든 창문들이 부서질 듯 강풍이 몰아닥치더니 한순간에 정전이 됐고

길가의
나무들이 뿌리 채 뽑혀 거리는 아수라장이 됐습니다.

여기저기
사이렌이 울렸고 버스들은 운행을 멈췄습니다.

서점에
피신해있다 저녁 7시경에 집으로 돌아가는데

시끌벅적할
줄 알았던 동네는 이상하리만치 평온했습니다.

여전히
워싱토니안들은 부러진 나뭇가지를 밟으며 조깅을 했고

스케이트보드를
타러 나온 아이들도 보였습니다.


또한 워싱턴에서는 드문 폭풍우라고 하는데

이틀이 지난 오늘까지 거리는 여전히 잠잠합니다.

 

하지만
오늘 신문을 보니 꼭 그런 것도 아닌 것 같네요.

이번
정전으로 20만 가구 이상에 전기 공급이 중단되자

미국
최대 전기 공급업체인 펩코에는 항의전화가 빗발치고 있다고 합니다.

조깅족
외엔 평소 이웃의 얼굴을 좀처럼 보기 힘든 저는


곳 사람들이 다락방에 촛불을 켜고 앉아 씩씩대며 항의전화를 거는 모습을 상상만
할 따름입니다.

 

어찌됐던
지진, 폭염, 폭풍을 패키지로 경험한 지난 2주일이었습니다.

선선해진
오늘 아침, 가슴을 쓸어내리며 집을 나서는데

 

.

 

하늘을 보니 구름이 심상치가 않네요.  

뿌리채
뽑힌 나무가 하늘로 올라간 것일까요.

부디,
아무일 없기를 바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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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logue

 

 

제가 지금 있는 곳은 미국의 워싱턴 DC.

거기서도 메릴랜드 주와 DC(District of Columbia)의 경계인 Friendship Heights라는
동네에 살고 있습니다.

지하철 역에서 버스를 타고 McKinley가와 32번가가 교차하는 지점에서 내린 뒤 10분정도
헤매야만 겨우 찾을 수 있는 곳입니다.

 

삼성언론재단의 단기 어학 연수과정에 선발돼서 7월 9일 이곳에 도착했습니다.

첫 주는 메릴랜드 주 락빌(Rockville)의 한 하숙집에서 벼룩과 씨름하며 보냈고

둘째 주는 새로 옮긴 홈스테이 집에서 주인과 문화적인 차이를 경험하며 좌충우돌
보냈습니다.

거기다 매일 부딪히는 언어의 벽까지,

여전히 모든 것이 낯설고, 막막합니다.

 

하지만 5년간 몸담던 직장과 기자라는 신분에서 잠시 벗어나

아침마다 노트북이 아닌 책가방을 챙길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매일매일 지도와 카메라를 들고 길을 헤맬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3개월이라는 시간이 제 인생의 소중한 쉼표가 될 거라는 생각이 드네요.

 

그래서 오래전 만들어놓은 저널로그의 먼지를 털고 새로운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뭐, 그다지 특별한 건 아닐 테지만

적어도 한가지 원칙은 있습니다.

흔한 여행서적에 나오는 뻔한 이야기는 하지 않기로 말이죠.

지도 없이 헤매다 우연히 발견한 곳과 마주친 사람들의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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