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고급 취향의 발전 단계가 의,식,주의 순서대로 이뤄진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고급스런
옷을 찾다가 고급스런 먹을거리를 추구하게 되고 이어서는 고급스런 주거 공간을
찾게 된다는 사견입니다.
한
때 고급스런 옷을 맹목적으로 좇던 저는 요즘 고급스런 먹을거리에 엄청난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여기서의
고급은 단순히 외국의 이름난 브랜드를 뜻하는 게 아닙니다.
장인정신이
깃든, 그래서 사람들에게 이야기거리와 추억, 취향을 쌓아나가는 행복감을 주는 것들이
고급이 아닐까요.
일본
시즈오카 멜론은 늘 동경하던 먹을거리 중 하나였습니다.
국내에서는
일부 고급 호텔에서 간간이 얼굴을 내비치는 이 멜론은 개당 20, 30만 원일 정도로
‘악’ 소리나게 비싼 과일입니다. 이 멜론의 산지인 시즈오카 멜론 농장 취재를 제안
받았을 때, 저는 날아갈 듯이 기뻤습니다.
단순히
비싼 과일이어서가 아니었습니다. 어떻게 과일이 명품이 되었나,를 산지에서 직접
들여다볼 수 있는 기회는 그리 흔한 건 아니었기 때문이지요.
우선
제가 쓴 기사를 소개해드릴테니 함 읽어보시고, 뒷이야기들을 알려드리겠습니다.

일본
시즈오카현 하마마쓰시 멜론 농가의 잘 생긴 시즈오카 멜론
<2010년
2월23일 동아일보 기사>
18일 일본 시즈오카(靜岡)현 하마마쓰(浜松)시의 한 멜론 농가. 주인 스기야마 사토루 씨(44)가 잘라 내놓은 과일의 속살은 연한 레몬 빛이었다. 촉촉한 윤기가 흐르는 한 조각을 입 안에 넣으니 단 맛이 났다. 세계 최고급 과일로 통하는 일본 시즈오카현 멜론이다.
시즈오카 멜론은 최상급인 ‘후지’(富士)부터 ‘야마’(山), ‘시로’(白), ‘유키’(雪)까지 있는데, 기자가 맛본 멜론은 최상급인 후지로 이 지역 멜론 생산량 중 0.5% 밖에 안 된다. 귀한 만큼 가격도 ‘금값’이어서 개당 38만 원 이상이다. 일본 고급 과일회사 ‘셈비키야’의 도쿄 니혼바시(日本橋)점은 야마 급을 개당 2만1000엔(약 26만 원)에 팔고 있다. 시즈오카 멜론은 어떻게 값비싼 명품 대접을 받게 됐을까.
●‘귀족의 과일’이 되기까지
본디 고향은 북 아프리카의 니제르 강 연안이란 설이 유력하다. 유럽으로 건너가 영국에서 1895년 궁정 원예용으로 육성된 뒤 1925년 일본에 왔다. 시즈오카현 농민들은 그의 귀족적인 풍모를 알아본 후 일본 기후와 일본인 입맛에 맞게 정성들여 변신시켰다. 농민들은 명품 과일을 위해선 브랜드가 필요하다는 것도 간파했다. 시즈오카현 온실농업협동조합은 1964년 ‘크라운’, 2003년엔 ‘아로마’란 멜론 브랜드를 만들었다. 멜론뿐 아니라 멜론 과자와 캐러멜 등 가공식품에도 이 브랜드를 붙였다.
‘샤넬’과 ‘루이뷔통’ 등 럭셔리 브랜드의 ‘귀족 마케팅’도 가동시켰다. 최고급 상점과 백화점에만 납품하는 신비주의 전략이었다. 일본 상류층 사이에서 품격 있는 선물로 통하면서 1980년대 일본 버블 경제 시절 시즈오카 멜론은 정말 잘 나갔다. 예나 지금이나 시즈오카 멜론은 일본에서도 아무나 쉽게 먹는 과일이 아니다. 귀족들이 다니는 가쿠슈인(學習院)대 부속 유치원과 부설 중·고교를 마치고 도쿄대를 나온, 기업체 회장 가족 등이 즐겨 찾는다. 최근 일본의 나라 살림이 어려워져 판매가 예전만 못하지만, 오일 머니를 쥔 중동의 부호들이 찾게 되면서 수출이 활기를 띠게 됐다.
시즈오카 멜론은 등급이 높을수록 표면은 우윳빛이고, 그물코의 두께와 간격은 고르다. 1.3~1.5kg 중량으로 당도 13~16 브릭스(Brix)가 최상품이다.
●장인 정신으로 만드는 멜론
22일 현재 롯데마트는 전남 나주 산 멜론을 2만 원(중량 1.5kg의 고급품 기준)에 판다. 그런데 도쿄 셈비키야에서 시즈오카 멜론은 26만 원이다. 왜 이렇게 차이가 날까.
시즈오카 멜론은 유리 온실에서 재배된다. 온도에 민감한 멜론의 특성을 감안해 최신 컴퓨터 기술로 온실 온도를 일관되게 유지한다. 반면 국내 멜론은 비닐하우스에서 자란다.
재배 방법도 과학적이다. 25일 간 모종을 길러 지면에서 20cm 정도 떨어진 ‘격리 침대’란 토양에서 다시 25일 간 육성하면 노란색 꽃이 핀다. 이 때부터 멜론이 열려 정확히 50일 후 수확한다. 과감한 선택과 집중도 품질을 높였다. 멜론이 적당한 수분과 양분을 흡수하도록 한 그루에서 단 하나의 멜론만 키운다.
연간 113억 엔어치(1423억 원·지난해 기준)의 멜론을 생산하는 시즈오카현 내 700여개 멜론 농가들은 스스로를 장인이라고 여긴다. 온도와 수분 관리를 ‘명인의 재주’에 비유하며 밤낮으로 생육 상황을 살핀다. 멜론의 네 가지 등급 이름도 일본의 자존심인 ‘후지산의 흰 눈’에서 따 온 것이다. 오오스가 유지 시즈오카현 농림기술연구소 연구원은 “명품 과일의 품질을 유지하기 위해 끊임없는 연구로 기술력을 높여가고 있다”고 말했다.
●명품 과일을 받아들이는 사회
셈비키야는 일본에서 가장 비싼 과일을 파는 회사로 통한다. 셈비키야 도쿄 니혼바시 점은 최고급 과일을 팔면서 먹는 방법도 함께 소개한다. 시즈오카 멜론에 대한 작은 설명서엔 ‘상온에서 보관해 먹기 전에 냉장고에서 2, 3시간 차갑게 해 드세요’라고 쓰여 있다.
오카모토 노부코 시즈오카현립농림대 연구부 교수는 “시즈오카 멜론은 농사를 예술품처럼 짓는 농민의 장인정신, 성숙한 소비시장, 유통회사의 차별화 전략이라는 삼박자가 맞아 떨어진 명품 농산물”이라고 평가했다. 올해 식품 매장의 고급화를 선언한 롯데백화점은 4월부터 서울 본점에 ‘시즈오카 멜론 상설 코너’를 연다. 국내 고급 소비층을 겨냥한 도전의 결과가 주목된다.
하마마쓰,
도쿄=김선미기자
kimsunmi@donga.com
이제
기사를 읽으셨으니, 시즈오카 멜론에 대한 대강의 이해는 되셨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후지산의
흰 눈…참 아름다운 시즈오카 멜론 등급의 작명이지요.
이제
등급별로 사진을 소개해드릴테니 함 비교해보시죠.
우선
가장 낮은 등급인 ‘유키’(눈)입니다. 매우 그물코가 조잡하면서 멜론 색상이 어둡습니다.
일본
시즈오카를 다녀와서 일부러 지난 주말에 이마트에 가보니, 그곳에서 판매되는 2만
원대의 국내산 멜론은,
안타깝게도
요 ‘아이’보다 그물이 더 조잡했습니다. 오호통재라.
하긴
온도 조절이 잘 안 되는 비닐하우스에서 겨울을 나고 있으니, 유리 온실에서 자라는
일본 멜론들보다
자라나는
환경이 너무 열악한 것이죠. ㅠㅠ

<유키>
다음은
이보다 한 단계 높은 ‘시로’(흰)입니다.

<시로>
멜론
색상은 옅어졌는데, 그물코의 두께가 일정치 않습니다. 가운데 세로 선은 매우 굵고,
그물 간격도 불규칙적입니다.
다음은
이보다 한 단계 높은 ‘야마’(산)입니다.

<야마>
시로
등급보다 그물 두께가 조금 일정해졌습니다. 대개 고급품으로 유통되는 멜론 등급입니다.
마지막으로
가장 높은 등급인 ‘후지’입니다. 함께 동행한 국내 청과회사 관계자들에 따르면 제가
소개하는 사진의 멜론은 사실은 후지와 야마의 중간 정도로 보인다고 합니다. 진정한
후지는 좀 더 잘 생겼다고 하네요. 사진을 보시죠.

<후지>
색상이
더 우윳빛으로 변하고 그물 간격도 좀 더 일정해졌습니다.
제가
맛보았던 멜론이 바로 이 ‘아이’였는데요. 그럼 속살을 보여드리겠습니다.
기사에
썼던대로 물기와 윤기를 머금은 레몬 옐로 그린빛입니다.

<후지
멜론의 속살>
이젠
이 멜론의 실제 크기를 보여드리겠습니다. 제 얼굴 바로 옆에 들고 찍어 본 사진입니다.
^^
정작
이 사진을 올리려니 꾸질한 차림새가 좀 쑥스럽긴 합니다만, 양해해주시길. ^^

이젠
제가 방문했던 바로 이 농가의 주인인, 기사 초반에 등장한 스기야마 사토루 씨를
소개합니다.
그는
원래 대학을 나와 식품회사 마케팅 부서에 일하다 처가의 가업을 잇기 위해 멜론
농사에 뛰어들어 16년째 멜론 농사를 짓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농민인 셈인데, 한국에서
취재를 온다고 하니 양복을 입고 저를 맞았습니다. 그 뿐 아니라 함께 동행한 시즈오카
온실농협 분들 모두 어색한 양복 차림이었죠. 그들의 모습에서 또 다른 프로페셔널리즘을
느꼈습니다.

스기야마
사토루 씨.
스기야마
씨는 최근 우리 돈으로 3억 원 정도를 들여 이 유리온실의 천장을 높이는 설비투자를
했습니다.
함께
저녁을 먹으면서 "일본 경제가 어려운데 계속 멜론 농사를 지을 거냐"는,
다소 무례한 질문을 했습니다.
그의
대답이 역시 장인스럽습니다. "일본 경제는 좋을 때도 있었고, 나쁠 때도 있었습니다.
전 멜론 농사를 짓는 것을 매우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경기에 연연하지 않고 계속
기술력을 연마해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멜론을 내놓고 싶습니다."
다음은
스기야마 씨가 이날 바로 격리침대에 심었다는 멜론들입니다.

이
잎들이 자라서 정확히 100일 후에 세계의 명품 과일로 탄생됩니다.
명품의
탄생 과정인 셈이죠.
이
쪽 부분은 좀 자라난 멜론들입니다.

이젠
같은 시즈오카현 내 시즈오카시에 있는 시즈오카 농림연구소를 소개합니다.
차로
1시간 정도 이동했던 것 같습니다.
이
곳에선 50여 명의 연구원이 밤낮으로 멜론 재배방법을 연구해서 농민들에게 기술력을
전파합니다.
농림연구소의
오오스가 유지 연구원이십니다. 그는 요즘 멜론 재배시 밤의 습도 차에 따른 멜론
생육 변화를 연구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시즈오카현
농림연구소 오오스가 유지 연구원>
보람
있는 취재였습니다.
게다가
이 농림연구소 앞에 심어진 벚꽃 나무는 일본에서 가장 먼저 벚꽃을 피우는 나무랍니다.
벚꽃비가
내릴 무렵 일본에 가보고 싶었는데, 2월의 시즈오카에서 예상치 못하게 벚꽃을 만나는
횡재를 했습니다.

얼마
전 ‘우아함의 탄생’이란 책을 읽었습니다.
중국
강남 문화사에 대해 나카스나 아키노리라는 일본 학자가 쓴 책입니다.
실은
요즘 일본의 고도, 교토에 필이 확 꽂혀 있는데,
이
학자분, 교토대와 대학원에서 동양사를 공부하셨습니다. 주 전공은 중국 근세사.
현재
교토대 대학원 문학연구과 교수십니다.
이
분은 중국 강남지역, 그러니까 중국 양자강 하류지역의 역사를 이 책에서 다루고
있지만
그가
주장하는 우아함의 조건은 어쩌면 시즈오카 멜론과 닮은 점이 있습니다.
‘강남의
정통 문화에는 우아하고 고요하며 편안하다는 특성 이외에 은자의 이미지도 존재한다.
산수화는 그러한 이미지를 가장 잘 나타내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시즈오카
멜론 농가들은 떠들썩하지 않게, 묵묵하게 그들의 농사를 도예가, 또는 산수화가의
예술활동처럼 일구며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맹목적으로
남의 나라 농가와 농사를 부러워하기엔 살짝 배가 아픕니다.
웰빙과
자연주의 트렌드가 거세게 불어와 우리나라 도시인들도 요즘엔 농업에 막연한 동경이
있습니다.
하지만
대개는 주말 농장이나 텃밭 가꾸기처럼 엔터테인먼트 요소 또는 자녀 교육에 국한된
측면이 많습니다.
이젠
농민도, 소비자도, 정부도 충심을 가지고 농업 발전에 더 신경을 써야한다고 생각합니다.
왜냐구요?
영국
과학작가협회가 수여하는 올해의 작가상을 세 차례나 받은 영국 콜린 텃지 씨는 그의
저서 ‘다윈의 대답-왜 인간은 농부가 되었는가’에서 이렇게 썼습니다. (국내 농업
관련 교수님들도 추천하는 책이니 기회 닿으면 일독해보세요 ^^)
‘인류는
현대적 인간이 되기 이전부터 이미 자신을 위해 어느 정도 환경을 통제해왔다. 그리고
이러한 통제는 불규칙한 여러 단계들을 거쳐 농경에까지 이르렀다. 고생물학자와
고고학자들은 호모 사피엔스가 큰 변화를 일으킨 약 4만 년 전을 인류 진화의 주목할
만한 분수령으로 묘사해왔다. 따라서 신석기 혁명이 일어나기 수천 년 전인 이 시기를
농업이 시작된 때로 볼 여지가 충분하다. 농사는 결국 생태적으로 성공을 거두었는데,
그것은 농사가 즐거워서가 아니라 다른 삶의 방식보다 환경으로부터 더 많은 식량을
얻어낼 수 있었기 때문이다. 농사로 인해 인구가 증가했다. 그리고 농사로 인해 열심히
일하는 사람이 유리하게 되는 세상이 왔다. 이에 반해 사냥은 열심히 한다고 해서
보상이 더 커지지 않는다. 결국 열심히 일하는 큰 집단, 즉 농부 집단은 느긋하게
사는 작은 집단, 즉 사냥꾼 집단을 압도한 것이다. 신석기 혁명은 농업의 시작을
의미하지 않는다. 신석기혁명은 수렵과 채집에 대한 보완책 혹은 취미로 농사를 짓던
시기로부터 불가피한 상황에 의해 농사가 일반화되어버린 시기로의 전환을 의미한다.
이후 세계 인구는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해 1만 년 전에 약 800만 명이 던 것이 기원
경에는 약 1억 명 내지 3억 명이 되고 서기 2000년에는 약 60억 명이 되었다. 이제
우리는 이러한 기하급수적인 인구 증가가 언제까지 계속될 것인지 의심해 봐야 한다.
카인의 살인으로 상징되고 신석기 농부들에게 성공을 가져다주었던 고된 노동과 밀어붙이기식
정책이 앞으로도 좋은 방법이 될 것인지를 물어야 할 때이다. 우리의 수렵인 선조들은
사자처럼 게을렀다. 그들로부터 배워야할지도 모른다.’
p.s.
4월부터
롯데백화점 본점에서 상시 만나게 될 시즈오카 멜론.
롯데백화점이
시즈오카 농가와 가격 협상을 잘 해서 좀 더 합리적인 가격으로 들여온다면,
10만
원 정도 예산에서 정말 정말 고마운 마음을 전하고 싶은 분이 있다면,
이
시즈오카 멜론을 예쁘게 포장해 드리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어색하고
다소 촌스런 양복 차림이었지만, 자신감과 긍지가 넘치던 시즈오카 멜론
농민들의 표정이 제 뇌리에 매우 강한 인상을 남겼기 때문일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