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본 정윤기

동아일보 2009년 6월.

 

 

 

《정윤기 인트렌드 대표(39). 15년째 쟁쟁한 스타들의 몸에 자신의 감각을 입히고 있는 국내 최정상급 스타일리스트. 그는 이제 스스로 스타의
반열에 올라 있다. 2000년대 초반 그의 모습을 떠올려본다. 막 30대가 됐던 그는 1998년 세운 ‘인트렌드’란 패션 홍보대행사를 이끌면서
동아일보에 패션 관련 글을 기고했다. 국내 패션 시장이 커가는 무서운 속도만큼 그의 이름도 점점 유명세를 탔다. 그를 찾는 사람들이 많아질수록
시샘하는 무리들도 생겨났다. 하지만 끝없이 ‘별’들이 뜨고 지는 패션계에서 ‘정윤기 효과’는 여전히 파워풀하다. 10년 우정을 쌓아온 그에게
“이젠 내가 당신에 대한 글을 써야할 때인 것 같다”고 말하자 그는 기꺼이 승낙했다. 3시간 넘게 허심탄회한 대화가 오갔다. 이처럼 인터뷰가
부담스러웠던 적도 없었다. 온전히 인터뷰어를 믿고 있는 ‘착한’ 그에게 민감한 질문들도 꺼냈으니. 기사 중 ‘※’는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한
부연 설명이다.》―그동안 돈 많이 벌었겠다. ‘돌체앤가바나’ 매장에서 연간 2억 원어치 쇼핑한다는 말도
들리더라.“빛 좋은 개살구다. 1998년 4명으로 출발한 인트렌드는 지금 직원 38명으로 늘었다. 각종 강의나 스타일링을 해
개인적으로 돈을 벌지 않으면 직원 월급 대기도 빠듯하다. 개인적으로 버는 연간 수입은 대기업 임원 수준이다. 지금 살고 있는 서울 용산구 한남동
유엔빌리지 30평대 집은 전세다. 내가 좋아하는 ‘돌체앤가바나’ 브랜드에선 연간 5000만 원 정도 쇼핑하는 것 같다. 스타들이 내 이름으로
옷을 구입하는 비용을 합치면 2억 원 정도 될까.(※패션 브랜드들은 그가 옷을 구입할 때 10% 정도 할인 혜택을 준다. 그에게 간택 받아
스타들에게 입혀지는 옷들이 얼마나 큰 입소문 효과를 내는지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스타들은 그의 이름을 빌려 할인 혜택을 받아 옷을 산다.)
난 동대문시장에도 매주 두 번은 가서 예쁜 티셔츠들을 산다. 개인 소장용 구두는 150개, 가방은 200개쯤 된다.”서울 강남구
청담동의 한 건물 2∼4층을 쓰는 인트렌드는 한 달 택배비용만 400만 원에 이른다. 수많은 패션 브랜드들이 이곳에 샘플을 맡기면 그가 이
샘플들로 스타들을 치장한다. 명품 전당포를 연상케 하는 이 곳엔 도난을 방지하기 위해 폐쇄회로(CC)TV도 있다. ―인트렌드가
국내 패션업계 홍보를 싹쓸이한다는 동종 업계의 불평이 들린다. 게다가 홍보비용을 덤핑 수준으로 낮게 받아 ‘홍보업계의 물’을 흐린다는 얘기도
있다.(※인트렌드는 현재 국내외 40여 개 패션회사의 홍보대행을 맡고 있다. 모두 ‘잘나가는’ 유명 브랜드들이다.) “모두 사람이
하는 일이지 않는가. 겉으론 화려해도 실상은 자금 흐름이 안 좋은 브랜드들 사정을 뻔히 아는데, 도저히 매몰차게 할 수가 없다. 난 마음이 약해
스타들에게도 정을 붙이면 그들이 ‘밥은 잘 먹고 있나’ 걱정이 된다.”그의 집무실 책상 바로 맞은편에는 그가 스타일링해 온
스타들의 흑백사진이 액자에 담겨 있다. 고현정, 고소영, 김희애, 김혜수, 김정은, 손예진, 수애, 한예슬, 송윤아, 이정재, 차승원, 정우성,
권상우, 박태환…. 그의 책상 위에는 드라마 ‘결혼 못 하는 남자’ 대본이 놓여 있고, 스케줄 표에는 ‘송윤아 결혼식’, ‘서태지 콘서트’ 등이
빼곡히 메모돼 있다. 모두 그의 최근 스타일링 작업들이다.―스타들과 동고동락하는 게 힘들지는 않은가.“어느 날
스타가 나를 떠날 때 한없이 외로워진다. 몇 해 전 부산영화제 때 배우 이준기에게 ‘크리스찬 디올 옴므’의 턱시도 재킷을 입혔는데, 그가
‘워스트 드레서’란 평가를 받았다. 세상의 낙오자가 된 기분이었다. 이런 일들로 마음의 상처를 받고, 때로는 자주 우울해진다. 요즘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면서 극복하려고 노력 중이다.”(※최근 고현정이 그를 갑자기 떠나 다른 스타일리스트를 찾아갔다.)그의 사무실에는
유럽풍으로 꾸민 응접실 한가운데에 대형 거울이 놓여 있다. 이 거울 앞에서 수많은 스타들이 그가 고른 옷들을 입어본다.―여성
스타들과 작업하면서 그들에게 사적인 감정을 느껴본 적은 없나.“1990년대, 그러니까 내가 신인 스타일리스트였던 시절 영화
‘노팅힐’과 비슷한 상황의 연애를 했다. 영화 속 휴 그랜트처럼 까마득하게 유명한 여배우를 짝사랑하다 잠깐 사귄 적이 있다. 결국 ‘해피
엔딩’은 아니었지만…. 요즘엔 일에 몰두해서인지, 늘 긴장해서인지 그런 상황은 생기지 않는다.”―정말 미안한 질문인데, “정윤기는
‘게이’냐”고 묻는 사람들이 많다. 그런가.“아니다. 결혼을 진지하게 생각했던 여자도 있었다. 어려서부터 누나가 많은 집에서 옷을
너무 좋아하며 자라서 또래들로부터 놀림도 받았다. 그런데 어쩌겠나. 난 정말로 옷이 좋은 걸. 매장에서 옷을 보면 몇 초 만에 ‘감(感)’이 확
온다. 스타일리스트는 노력 90%에 직관 10%로 이뤄지는 것 같다. 매달 외국 패션 관련 서적 30여 권을 주문해 읽고
있다.”―만약 어느 여성에게 프러포즈한다면 어떤 옷을 입겠는가.“흰색 셔츠에 청바지를 입고 그녀와 함께 자전거를 탈
것이다. 자전거 앞에는 바구니를 매달고 그 안에는 수국을 담을 것이다. 한참동안 바람을 가르며 자전거를 타고 내려 그 꽃을 주면서 프러포즈하고
싶다. 난 수국이 슬퍼 보여 운 적도 있다. 신부는 흰색 튜브톱 드레스에 면사포를 굉장히 크게 해서 성스러운 느낌을 강조하겠다. 그런데 참
이상하다. 스타들에게는 몸의 실루엣을 강조하거나 야한 옷을 자주 입히면서도 정작 내 여자가 미니스커트를 입는 건 싫다. 나 역시 보수적인 한국
남자인 거다.”그의 집무실은 온통 ‘키덜트’풍이다. 천장에는 아톰 인형을 달고, 유리창에는 디즈니 만화를 프린트했다. 토끼 인형의
목에는 그의 나비넥타이를 둘러매 주었다. 루이비통과 협업하는 일본 현대작가 무라카미 다카시(村上隆)의 그림도 있다. 국내 홈쇼핑에서 샀다는,
마치 액정표시장치(LCD) TV를 연상케 하는 네모난 유리 어항엔 세계 지도가 그려 있다. ‘헬무트 랭’과 ‘조르조 아르마니’ 디자이너 인형,
프랑스 ‘딥티크’ 향초와 향수들…. 그는 요즘 ‘입생 로랑’ 재킷과 옥스퍼드 슈즈를 신고 다니며 ‘클래식 스타일’에 푹 빠져
있다.―요즘 유행하는 클래식도 결국 패드(fad·일시적 유행) 아닐까.“어렸을 적 우주선을 타고 떠다니는 공상만화는
그 당시엔 실현 불가능한 먼 얘기 같았으나, 디지털기술 발달로 상당 부분 현실화됐다. 하지만 클래식한 정장은 예나 지금이나 큰 변화가 없다.
세상이 빠르게 변할수록 사람들은 더욱 클래식을 찾게 될 수밖에 없다.” ―패션에 문외한인 어느 남자 동료가 “스타일리스트가 뭐
대수냐. 그냥 있는 옷 골라 입히는 건데”라고 말하더라.“1990년대까지 허드렛일로 여겨지던 스타일리스트를 하나의 당당한
직업군으로 만들었다고 자부한다. 예쁜 옷을 걸쳤다고 해서 다 멋있는 건 아니다. 옷 입는 사람을 멋있게 바꿔주는 게 스타일리스트의 존재 이유다.
요즘엔 직접 옷도 디자인하고 있다. 5년 후 엔 내 이름을 걸고 패션, 음식 등을 아우르는 라이프스타일 브랜드를 내려고
한다.”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 정윤기 씨가 말하는 스타“고소영-손예진
맨얼굴도 예뻐요”1970년 인천 출생. 1990년대 중반 광고대행사에서 프리랜서 스타일링 일감을 따내 스타들에게 옷을 입히며
‘국내 남자 스타일리스트 1호’로 이름을 알렸다. 1998년 패션 홍보대행사 ‘인트렌드’를 설립했다. 그간 스타일링했던 스타들에 대해 그는
“이미연은 의리파이며, 차승원과 이혜영은 어떤 스타일링도 믿고 따라주고, 다니엘 헤니와 정우성은 한 끝 오차도 없이 옷을 잘 소화하며, 고소영과
손예진은 맨 얼굴도 변함없이 예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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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 파리 패션위크

2009년 3월 동아일보

 

 

 

 

파리는 여자다.때로는 수다스럽지만 가슴이 시릴 정도로 무심한 여자다.맨얼굴에 낡은 실크 스카프를 두르고도 근사한
그녀는, 방브 벼룩시장과 영화 ‘비포 선 셋’으로 친근해진 중고 책방 ‘셰익스피어 앤드 컴퍼니’에서 오래된 것들의 진가(眞價)를
찾는다.노점의 과일가게, 발길 닿는 곳마다 ‘파리다운’ 마레 지구의 골목길, 몽테뉴대로와 포부르 생토노레 거리의 화려한 상점들….
파리라는 단어에 성별이 있다면 십중팔 구 여자일 거라고 추측해본다. 만인이 사랑하는 여자, 프랑스 파리는 도시
전체가 거대한 패션이다. 세계 4대 패션 컬렉션 중 하나인 ‘2009 가을겨울 파리 패션위크’가 열린 춘삼월의 파리 현지
생중계!○ 방돔 광장에서 마주친 파리 스타일5일 오후 파리 시내 방돔 광장 앞. 오페라극장과 튈르리 정원 사이에
있는 직사각형의 이 광장이 북적이기 시작했다.루이 14세의 기마상을 세우기 위해 구획됐던 이곳은 유명 브랜드 상점이 많아
파리에서도 가장 상류사회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곳이다. 18세기 양식으로 꾸민 최고급 호텔인 ‘리츠 파리’ 정문 앞은 그 자체로
한 편의 패션쇼 같았다. 미끄러지듯 정차하는 고급 승용차에서 유명 패션계 인사가 속속 내리자 수십 명의 취재진이
달려들었다.“프린세스(시리와나와리 나리라따나 태국 공주), 여기 카메라 좀 봐 주세요.”“저기에 에바(체코 모델
에바 헤르지고바)가 왔다!”얼마 전부터 패션계의 열렬한 사랑을 받고 있는 프랑스 브랜드 ‘발망’의 패션쇼가 이 호텔 수영장에서
열린 것이다. 크리스토프 데카르냉 발망 디자이너는 고(故) 잔니 베르사체가 생전에 오트 쿠튀르(고급 맞춤복) 쇼를 열던 리츠
파리에서 1980년대를 현대적으로 해석한 스타일을 선보였다.그것은 탁구공을 넣은 듯 단단하고 각지게 솟아오른 어깨선이었다. 발망뿐
아니라 ‘니나리치’, ‘크리스티앙 디오르’ 등 수많은 브랜드의 쇼에서 같은 스타일이 쏟아져 나왔다.함께 취재를 하던 각국 패션
전문기자들은 “글로벌 불황을 헤쳐 나갈 여성의 강한 이미지를 표현하는 데는 각진 어깨선이 가장 효과적”이라고 입을 모았다.패션쇼를
찾은 멋쟁이들은 카메라 플래시 세례를 받을 걸 예상이라도 한 듯 자연스럽게 포즈를 취했다.아담한 키와 금발의 한 패션 바이어는
요즘 유행하는 ‘랑방’ 체인백과 정교한 재단의 검은색 ‘콤 데 가르송’ 코트로 멋을 냈다. 프랑스 패션잡지 ‘보그’ 기자는 검은색 가죽 레깅스와
킬 힐(굽이 15㎝ 이상인 높은 하이힐)에 헐렁한 흰색 그래픽 티셔츠를 받쳐 입었다. 검은색 정장에 굽 낮은 흰색 ‘레페토’ 옥스퍼드화를 신은
여자도 눈에 띄었다. 너무 차려입지 않은 것처럼 조금은 숨통을 두는 패션, 실험적이지만 어딘가 한 군데 여성의 섹시미를 드러내는
패션. 이것이 파리 스타일이다.○ 세계 패션산업의 ‘보이지 않는 손’ 6일 평화로운 튈르리 정원의 이동 천막무대에선 ‘크리스티앙
디오르’의 패션쇼가 열렸다.프랑스 퍼스트레이디 카를라 브루니 여사가 사랑하는 ‘프랑스 국민 브랜드’답게 대형 관람석은 빼곡히 차고
앞줄 손님들의 면면은 화려했다50대인데도 군살 하나 없이 섹시한 카린 로이펠트 프랑스 ‘보그’ 편집장, 영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의 실제 모델이었던 애너 윈투어 미국 ‘보그’ 편집장, 이탈리아 편집숍 ‘10코르소 코모’ 대표(카를라 소차니)의 동생인 프랑카 소차니
이탈리아 ‘보그’ 편집장…. 세계 패션계를 쥐락펴락하는 ‘보이지 않는 손’들이다. 그들은 아직 봄이 채 오지 않았는데도 벌써부터
올 가을겨울 패션의 성패를 머릿속으로 분주하게 따지고 있으리라. 패션 디자이너들을 발굴하고 키우기도 하는 이들은 늘 이렇게 세월을 앞서 나가며
산다. 이날 흰색 코트에 빨간 하이힐을 신고 나타난 로이펠트 씨는 10여 년 전 ‘구찌’를 회생시킨 디자이너 톰 포드의
뮤즈(영감을 주는 사람)였다. 과거 디자이너 지방시의 뮤즈가 배우 오드리 헵번이었다면 요즘엔 엠마뉴엘 알트 프랑스 ‘보그’ 패션 디렉터가
‘발망’의 뮤즈다. 프랑스 전자음악인 로랑 울프의 ‘노 스트레스’가 쩌렁쩌렁 울리며 시작된 올해 디오르의 쇼는 오리엔털리즘에서
한껏 영감을 받았다.금색 모피 조끼를 입은 한 모델은 클레오파트라 같았다. 하늘색 투명 드레스를 입은 또 다른 모델은 가는
T팬티로 은밀한 부위만 가린 탐스러운 엉덩이를 흔들며 무대를 누볐다. 쇼 음악 소리는 더욱 커졌다. “난 오늘 일하기 싫어요. 섹시한 여자친구를
집에 데려와 쉬고 싶어요. 스트레스 받지 말고 마음 편히 먹자고요.”쇼가 끝난 후 디오르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인 존 갈리아노 씨가
무대로 나와 피날레 인사를 했다. 금세기 최고의 패션 천재 중 한 명인 그는 1997년 디오르에 합류해 ‘디오르=섹시’ 공식을 성립시켰다.
중절모를 눌러 쓴 익살스러운 그에게 관객은 환호했지만, 솔직히 이번 쇼 자체에 대한 반응은 뜨겁지 않았다. 언뜻 웃고 떠드는 것 같은 객석은
실상 냉혹했다.“뭐랄까. 이번 쇼는 열정이 부족해 보였어요. (쇼 치고는) 누구나 입을 수 있는 옷이었으니까요. 하긴 지금은
럭셔리 산업이 어려운 때니까 (이해할 만하죠).”(수지 멘키스 인터내셔널 헤럴드 트리뷴 패션 전문기자)쇼 장 바로 앞에선
동물보호단체인 PETA 회원들이 ‘모피는 죽었다’란 플래카드를 들고 서서 모피를 입은 사람들에게 야유를 던졌다. 어쩌면 패션은
그것을 ‘만들고(디자이너), 전하고(미디어), 홍보하고(PR 담당자), 파는(바이어)’ 소수 그룹, 그들만의 리그에서 벌어지는 일인지도 모른다.
어깨선이 올라가고 바지폭이 헐렁해진 요즘 유행은 이들 소수가 창조하고, 대다수가 베껴 전파시킨다. 복잡다단한 패션계의 ‘음모’는
잘 모른 채 지금 이 순간 중국에서도 인도에서도 ‘순진한’ 소비자들은 그들을 빛내줄 패션을 몸에 걸치기 위해 지갑을 연다. 모델의 섹시함에
이끌려, 또는 예술과 스토리텔링(이야기)으로 포장된 이미지에 만족을 느끼며…. ○절묘한 판타지와 현실 사이파리
패션위크는 빡빡하게 짜인 스케줄대로 움직인다.1시간 단위로 10여 개의 패션쇼가 각기 다른 장소에서 진행되기 때문에 각국에서
모여든 패션 기자와 바이어들은 분주해진다. 쇼가 끝나면 미리 대기하고 있는 셔틀버스를 타고 또 다른 쇼로 이동한다.패션쇼의
관람석은 한정돼 있다. 쇼가 시작되기 몇 주 전부터 입장을 신청하면 각 브랜드의 ‘심사’를 통해 좌석을 받게 된다. 영향력 큰 매체나 사람일수록
좋은 자리다. 유명 쇼는 초대 받기가 ‘하늘의 별’ 따기라 좌석 없이 서서 봐도 감지덕지다. 파리 패션위크에선 루브르 박물관
지하, 방돔 광장과 튈르리 정원 주변이 쇼가 열리는 단골 장소다. 이 기간엔 궁전, 미술관, 대학 강의실, 파사주(차가 들어갈 수 없는 옛날
보도) 등 파리 곳곳이 패션쇼장으로 변신한다. 패션쇼 사진이 실시간으로 인터넷에 뜨더라도, 패션쇼는 현장에서 직접 봐야 디자이너의
의도를 가장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다.펑키한 영국 브랜드 ‘비비안웨스트우드’의 쇼는 육감적 여배우 패멀라 앤더슨을 모델로 세웠다.
진달래색 티셔츠와 무릎까지 오는 긴 양말에 연분홍색 발레리나 튀튀를 마치 날개처럼 단 앤더슨이 나타나자 패션쇼장은 열광의 도가니로 변했다. 쇼
비즈니스의 속성을 누구보다 잘 아는 앤더슨은 한 발짝 한 발짝 내디딜 때마다 금발 머리를 손으로 헝클며 ‘섹시 스타’의 힘을 내뿜었다. 그녀가
반바지에 티셔츠를 입고 나타났을 땐 큰 가슴으로 인해 재킷 단추가 떨어져 나갈 듯했다. 또 ‘이세이 미야케’의 디자이너인 후지와라
다이 씨는 일본 무술인 가라테 시범을 쇼 곳곳에 넣어 ‘종이처럼 구겨지는’ 옷의 역학을 강조했다. 국내 디자이너 이상봉 씨는 조선시대 까치
호랑이와 신윤복의 미인도를 모티브로 삼았다.‘니나리찌’의 쇼는 객석의 기립 갈채를 받았다.장중한 음악과 함께
모델들이 등장했을 때 쇼 장은 충격에 빠져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 20cm는 족히 될 만한 구두는 앞부분이 지극히 높아 뒷부분 굽이 공중에
떠있는 기괴한 디자인이었다. 모델들이 그 아찔한 구두에 어떻게 몸을 싣고 걷는지 신기할 정도였다. 상의가 어깨선을 잔뜩 강조했다면, 바지는
물결치듯 팔락였다.트렌드 정보사 PFIN은 이번 파리 패션위크에 대해 “콧대를 세우며 허세를 부리던 전통적인 쿠튀르 하우스들이
현대적 감성을 바라는 여자들로부터 점차 외면당하자 새로운 방향성을 모색하는 적극적 움직임을 나타냈다”고 분석한다. 고루하고 무거운
이미지에서 벗어나기 위해, 불황을 타개하기 위해 디자이너들은 그들이 ‘가장 잘하는 것’에 매달렸다는 것이다. 각진 재킷과 란제리 같은 톱의
조합은 ‘남성스러움과 여성스러움의 공존’을 드러냈다. 세상이 각박하다는 걸 본능적으로 아는 디자이너들이 세상과 타협한 것이리라. 현란한 파리
패션의 무대도 불황은 비켜 나가지 못했다.글=파리 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 파리 거리의
멋쟁이들
화려한 무대는 결국 ‘쇼’이며 판타지며, 이미지다.평범한 파리지엔들의 일상과 패션을 느끼기 위해
파리의 골목 구석구석을 다녔다. 파리에 머무는 6일 동안 ‘루이비통’ 가방을 든 파리 여자는 방돔 광장 앞에서 단 한 명 만났을
뿐이다. 오래된 ‘에르메스’ 가방을 든 백발의 할머니는 여럿 만나긴 했지만. 대개의 파리 여자들은 브랜드가 드러나지 않는 옷과
가방으로 자연스레 멋을 내고 있었다. 그들의 조막만한 얼굴과 축복 받은 기다란 몸매가 차림새를 돋보이게 했다.루이 14세가 살았던
궁전인 팔레 루아얄 근처 빈티지 숍 ‘디디에 뤼도’에 들어갔다. 미리 약속을 잡은 게 아니었는데 운 좋게도 주인인 유명 빈티지 컬렉터, 디디에
뤼도 씨가 서 있다. 서울의 멀티숍 ‘10코르소 코모’에 진열돼 있던 1960년대 ‘샤넬’ 정장의 주인이 눈앞에 서 있다니….
그가 걸친 줄무늬 정장, 와인 색 셔츠, 앞코가 뾰족한 호피무늬 구두는 약간 빛바랬어도 참 자연스러웠다.뤼도 씨는 체구가 작은
내게 ‘에밀리오 푸치’의 빈티지 원피스를 권했다. “세월이 가치를 빚는 빈티지는 유행이 없어요. 유행을 일일이 좇는 건 촌스럽지
않나요?”그가 운영하는 또 다른 빈티지 숍 ‘라 프티 호브 누아르’(검은색 미니 드레스)엔 파리 여자들이 사랑하는 갖가지 디자인의
검은색 미니 드레스들이 걸려 있었다. 검정은 튀지 않으면서도 다양한 스타일을 가능하게 하는, 파리의 색이다. 토요일 오전엔 방브
벼룩시장에서 또 다른 파리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옛날 유화와 가구, 앤티크 장신구, 깃털 달린 빈티지 모자…. 사실 파리의
모든 예쁜 색감은 시장에 있었다. 마레 지구의 과일 노점에 진열돼 있던 탐스러운 자두와 바나나, 고급 백화점 ‘봉 마르셰’로 가는
골목길에서 마주친 작은 꽃집의 튤립, 샌드위치 체인점 ‘폴’의 바게트들…. 어쩌면 이런 시장 풍경이 위대한 파리 스타일을 만드는 소소한 것들이
아닐까. 파리 여자들은 재래시장에서 장을 보고, 수중에 돈이 생길 때마다 꽃을 산다.짙게 화장하지 않아도 ‘라르티장 파르퓌뫼르’의
은은한 맞춤 향수와 ‘마리아주 프레르’의 마르코 폴로 차를 곁에 두는 파리지엔. 그래서 파리는 만인이 흠모하는 신비로운
여자다.파리=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

 

 

밑의 사진은 파리 노점상의 과일 노점. 그 색감이 예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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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황 패션 중계방송

<2009년 7월 동아일보>

"패션 센스는 불황일 때 더 돋보인다"

 

 

 

여러분께 ‘불황 패션’을 중계해 드리겠습니다. 불황이라 우울하지만 옷은 입고 살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가급적 돈 안 들이면서도 옷을 잘 입는
전략이 필요한 시점입니다. 복고풍이 유행하고 있기 때문에 엄마의 옷장 속을 뒤지면 ‘보배’를 건질 수 있긴 합니다. 그런데 이런
고전적 방법은 엄마가 웬만큼 패션 센스를 갖춰주셨을 때, 옷 보존 상태가 양호할 때 가능한 일입니다. 유행은 돌고 돈다지만, 옛날 옷을
클래식하게 접근하면 ‘촌티’ 날 가능성이 큽니다. 오래된 옷을 입는 일은 고난도 패션작업입니다. 이럴 때 권하고 싶은 스타일링은
유머 요소를 살짝 넣는 겁니다. 옛날 실크 스카프를 낡은 티셔츠 위에 걸쳐볼 수 있겠죠. 구식 롱스커트에 뾰족구두는 절대로 노, 노(No
no)! 단정한 블라우스에 발랄한 배지를 달거나, 라운드넥 가로 줄무늬 니트를 입은 뒤 단화를 신어야 ‘복고풍 모던 걸’이
됩니다.아, 방금 전 솔깃한 속보가 들어왔습니다. 일본 중저가 패션 브랜드 ‘유니클로’가 올가을부터 독일 유명 디자이너 질 샌더와
협업한 ‘+J 컬렉션 라인’을 선보인다는 소식입니다. ‘꿈의 셔츠’라 불리는 ‘질 샌더’의 흰 셔츠를 5만 원대에 살 수 있다니…. 남자 옷
재단을 여성복에 도입해 1990년대 미니멀리즘을 주도했던 그녀(질 샌더는 여성입니다!)의 손길이 마냥 기다려집니다. 패션 브랜드와 디자이너의
협업은 불황 극복의 수단인 동시에 패션과 문화의 ‘탈경계, 융합’을 드러냅니다. 아울러 잘 재단된 흰 셔츠는 시대를 막론하고 멋쟁이들이
사랑하는, 불황에 효용 높은 ‘스테디 아이템’입니다.이달 초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오트 쿠튀르(고급 맞춤복) 쇼를 전하면서 불황
패션 중계를 마무리해야겠습니다. ‘크리스티앙 디오르’의 디자이너인 존 갈리아노는 이번에 망사 스커트와 가터벨트로 섹스 이미지를 드러냈습니다.
모델들이 옷 갈아입을 시간이 부족해 “그래, 오트 쿠튀르의 기본인 ‘구조’를 보여주자”며 다리에 스타킹만 신은 채 뛰쳐나오는 의도된
설정이었지만요. 섹스만큼 돈 안 드는 즐거움도 드물기 때문일까요. 불황에 더운 옷이 답답하게 느껴져서일까요.지난해 노벨경제학상을
받았던 폴 크루그먼 프린스턴대 교수는 ‘불황의 경제학’이란 책에서 “지금 세계가 필요로 하는 건 대규모 구조작전”이라고 말합니다. 우울한
경제학자의 눈에는 불황의 터널이 길게 예상되기 때문입니다. 사정이 좀 폈는지 값비싼 신사복을 턱턱 사는 남자들이 늘었던데 이젠 불황 패션도
장기적 관점에서 고민해야겠습니다. 오버!김선미 산업부 기자 kimsunm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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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love 앤트워프 패션!

<동아일보 2009년 9월11일>

 

 

 

 

멋쟁이들 사이에선 강력한 ‘마니아’층이 형성됐지만 아직도 많은 이들에겐 생소한 패션이 바로 벨기에 안트베르펜(영어명 앤트워프)
패션입니다.최근 프랑스 파리에 갔다가 일부러 시간을 내 인구 47만 명이 사는 이 작은 ‘패션 도시’에 들렀죠. 동 트기 전
서둘러 파리 북 역에서 국제 고속열차(탈리스)를 타니 2시간여 걸려 도착할 수 있었습니다. 세계 패션의 중요한 한 축을 이루는 안트베르펜 패션을
만난다는 설렘! 애써 빠듯한 일정의 일부를 할애한 건, 이 패션의 실체를 두 눈으로 확인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낯선 이 도시의
이름이 세계로 알려진 건 패션의 힘입니다. 안트베르펜 왕립예술학교는 드리스 반 노튼, 마르탱 마르지엘라 등 1세대 디자이너를 거쳐 베로니크
브랑키노, 스테판 슈나이더 등 2세대를 쏟아낸 최정상급 패션학교입니다. 도대체 안트베르펜은 어떤 힘을 지녔을까. 마치 사설탐정이라도 된 양
하염없이 걸으며 이 도시를 꼼꼼하게 관찰했습니다.안트베르펜은 동화책 속 마을처럼 고요하고 깨끗했습니다. 번잡한 수도 브뤼셀과는
사뭇 다릅니다. 그런데 노트르담 성당 주변은 유럽 다른 나라들에서 온 할아버지 할머니 관광객들로 북적였어요. ‘마르탱 마르지엘라’의 각진 어깨
재킷을 입은 ‘엣지’ 있는 벨기에 남자들을 기대했던 저로서는 실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지요. 또 걸었습니다.아! 수많은 패션 피플이
올가을 한번쯤 탐내는 안트베르펜 디자이너 ‘드리스 반 노튼’의 여성복(사진)이 쇼윈도에 걸려 있었습니다. 톤 다운된 분홍색 재킷과 오렌지색
블라우스, 품이 넉넉한 황토색 배기팬츠… 어떻게 이런 색상 조합을 생각해냈을까, 그리고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이 색들은 왜 편안하고
고급스런 느낌을 전달하고 있을까. 호기를 부려 매장 안으로 들어가 재킷을 걸쳐보니 그 느낌이 참 편안합니다. 제게 부담스러운 가격만
빼고요.나쇼날레 거리를 지나 계속 남쪽으로 내려가면서 비로소 안트베르펜의 속살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작은 골동품 가게들, 꼬마
숙녀들을 위한 질감 좋은 가죽구두 가게, 벽화가 그려진 골목과 카페들…. 그런데 정작 저를 감동시킨 건 현대미술관 주변 놀이터였어요. 그네며,
철봉이며 모든 놀이기구가 천연 나무로 돼 있는 놀이터. 편안한 차림으로 목재 놀이기구와 어우러진 한가로운 시민들의 모습에서 안트베르펜 패션의
근원을 깨닫게 된 거죠. 헌 옷에 감각을 불어넣어 낡은 옷에 새로운 비전을 제시하거나, 사람 몸을 구속하지 않고 자유롭게 하는 ‘인간주의’ 패션
말예요.한국에 돌아와 ‘드리스 반 노튼’을 국내에 들여오는 신세계 인터내셔널 관계자에게 이런 감상을 얘기했더니, “어머, 저희
바이어와 똑같은 말씀을 하시네요”라고 말합니다. 그 바이어의 말은 이랬답니다. “안트베르펜 디자이너들은 화려함과 섹시함에 연연하지 않는다.
그들은 철학적이고 예술적 관점으로 옷에 접근하기 때문에 숙연함마저 느끼게 한다.”―안트베르펜에서김선미 산업부 기자
kimsunmi@donga.com

 

 

아래 사진들은 제가 찍은 안트베르펜 풍경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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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라가모 3세가 사는 법

동아일보 2003년 8월.

 

사진은 살바토레 페라가모 씨와 2003년 이탈리아에서 찍은 사진입니다.

 

 

 

이탈리아 피렌체에서 아레초의 ‘일보로’ 와인농장까지는 자동차로 약 40분이 걸렸다.

지난달 말 밀라노∼로마간 고속도로의 발다르노 출구부터 한가로운 전원 풍경이 시작됐지만 하얀색 대문이 열리자 펼쳐지는 250 헥타르의
와인농장은 수채화 같았다.

중세 성(城)이었던 석조 건물들은 이탈리아 부촌(富村) 투스카니 지방의 여유로움을 발산하고 있었으며, 포도나무와 올리브나무 잎사귀들은 여름
햇빛을 받아 반짝였다.

다갈색 말들은 머리를 숙여 풀을 뜯어먹었다.

살구색 페인트 벽면에 담쟁이 넝쿨이 쳐진 저택으로 들어서자 아일랜드형 조리대, 은촛대가 놓인 14인용 식탁, 적포도주 색의 벨벳 커튼,
두루미 벽걸이 그림이 어우러진 식당이 나왔다.

“안녕하세요. 살바토레 페라가모입니다.”

영롱한 비취색 눈빛과 연회색 수트가 썩 잘 어울리는 이 남자. 농장 주인 살바토레 페라가모(32)다.

알이 둥근 선글래스, 하늘색 셔츠, 금박 추상 문양이 프린트된 다갈색 넥타이, 부드러운 질감의 구두….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온통 ‘살바토레 페라가모’ 브랜드 제품으로 차려 입은 그는 이탈리아 패션 브랜드 ‘살바토레 페라가모’의 창업자 고(故)
살바토레 페라가모의 동명(同名) 손자이다.

그의 아버지 페루치오 페라가모(57)는 페라가모 그룹의 회장이다.

 

●이탈리아 부자의 일상

 “자리를 응접실로 옮겨 얘기할까요.”

가장 먼저 눈에 띄는 소품은 고풍스러운 마호가니색 그랜드 피아노였다.

 “19세기 폴란드 출신 작곡가 쇼팽이 사용하던 피아노를 1995년 영국 런던 경매시장에서 구입했습니다. 침대와 식탁도 그 무렵 미국
경매시장에서 산 것이죠. 가족 모두 앤티크 수집에 관심이 많습니다.”

그의 응접실은 화려하고 평안한 기분이 충만한 쇼팽의 ‘발라드 제3번’과 느낌이 꼭 닮았다.

책장에는 사냥, 앤티크, 정원 가꾸기, 주방과 요리 등에 대한 잡지와 백과사전들이 꽂혀 있다.

포도껍질을 증류해 만든 알코올 함량 40%의 이탈리아 전통주 ‘그라파’, 르네상스 시대 작품으로 추정되는 풍경화와 인물화, 벽난로 위의
도자기 화병, 은테두리 장식 액자에 담긴 아버지와 여동생들의 사진….

“주말이면 농장 인근 ‘화이트 하우스(흰색 저택)’에 머무는 아버지와 자주 사냥을 합니다. 아버지는 사냥개를 유독 아끼세요. 여름에는
폴리네시아에서 요트를 타고, 겨울에는 뉴질랜드에서 스키를 탑니다. 쌍둥이 형 제임스와는 골프와 테니스를 합니다.”

 

●좋은 취향 기르기

그의 오른편에는 페라가모 본사 홍보 담당인 영국 출신 여직원이 자리를 잡았다.

다리를 꼬고 앉은 그녀의 군살 없는 각선미는 굽이 높고 가느다란 섹시한 하이힐이 마무리하고 있었다.

“그 구두 ‘마놀로 블라닉’ 브랜드죠?”(살바토레 페라가모)

“어머, 어떻게 아셨어요? 회장님(페루치오 페라가모)께는 비밀로 해 주세요. 페라가모 구두를 안 신었다고 꾸중하면 어떡해요.”

어떻게 한 눈에 브랜드를 알아보느냐고 묻자 그는 빙그레 미소를 짓는다.

 “좋은 취향(good taste)을 얻기 위해 여행을 하거나 그림을 감상하는 가정에서 자랐잖아요. 저절로 몸에 밴 패션 감각이 있을
겁니다.”

영화 ‘7년 만의 외출’에서 마릴린 먼로의 홀터넥 드레스가 바람에 휙 날리던 때 그녀가 신고 있던 구두, 영화 ‘로마의 휴일’에서 오드리
헵번의 레이스업 하이힐 등이 모두 페라가모 브랜드다.

자신은 인도와 미얀마, 아버지는 러시아, 형 제임스는 덴마크를 가장 기억에 남는 여행지로 꼽는다고 그는 말한다.

 

●가족 경영

창업자인 고 살바토레 페라가모의 아내 완다 페라가모(82)와 페루치오 페라가모를 비롯한 자녀 5명은 여성복, 액세서리, 호텔, 인테리어 등
페라가모 그룹의 경영에 각각 참여하고 있다.

전형적인 가족경영 체제는 세월이 흘러 3대에까지 이어진다.

제임스는 그룹의 상품계획 파트를 총괄하고 있으며, 사촌 디에고 길리아노는 품질담당 파트에서 실무를 쌓고 있다.

이날 오전 일보로 농장으로 향하기 직전 페라가모 일가가 경영하는 피렌체의 호텔 로비에서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의 장녀인 호텔신라 이부진
기획부장(33)과 우연히 마주쳤다.

이 부장은 면세점 입점 브랜드 관리차 이탈리아를 방문한 것으로 알려졌다.

가족경영 체제에서 젊은 30대의 2, 3세대는 ‘가문의 영광’에 걸맞은 실력을 갖추기 위해 분주할 수밖에 없다.

“페라가모 그룹의 와인농장 경영은 패션 기업의 럭셔리한 이미지를 위해 더할 나위 없이 효과적입니다. 사업에 뜻이 없어 농장을 경영하는 것이
아닙니다. 아버지가 정해주신 경영 수업의 과정일 뿐입니다.”

대학을 다니지 않은 할아버지, 아버지와 달리 살바토레와 형 제임스는 미국 뉴욕대 경영학석사(MBA) 출신이다.

제임스 페라가모는 페라가모 그룹에 합류하기 전 미국 삭스 피프스 애비뉴 백화점에서 3년 동안 남성복 바이어로 일했다.

농장 방문 전날 피렌체에 있는 페라가모 본사에서 만난 페루치오 회장은 가족경영의 철학을 다음과 같이 집약했다. “가족경영이라고 해서
자격이 없는 사람을 고용하거나 가족만이 경영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석사 학력 이상과 완벽한 영어 구사능력은 필수입니다. 다른 브랜드에서
3년 이상 실무 경험을 쌓아야지요. 가족의 역할은 각자가 분명히 있습니다. 적어도 2주일에 한번씩 가족끼리 만나 식사하며 대화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이탈리아 스타일

농장 안에 있는 식당에서 정통 투스카니 요리로 점심 식사를 했다. 샐러드, 파스타, 해산물 요리에 이어 입안에서 살살 녹을 듯 부드러운
투스카니산 송아지 스테이크가 나왔다.

주방장은 일보로 농장에서 수확한 화이트와인을 함께 내놓았다. 가볍고 드라이하면서도 끝맛이 감칠맛 났다.

2000년 피렌체의 한 식당에서 열린 동창 모임에서 친구의 친구로 합석한 여자는 이듬해 그의 아내가 됐다.

보석 디자이너로 일하는 아내 역시 바쁘기 때문에 자신이 직접 요리하는 때가 많다.

토마토 소스를 이용하는 폼모도로 스파게티의 맛을 아내는 극찬한다.

“이탈리아 가정에서 남자들이 요리하는 것은 아주 일상적이고 보편화된 모습이죠.”

그는 재산의 10%는 고위험을 감수하는 주식에, 나머지 90%는 채권 형태로 투자한다고 했다.

지출은 감당할 수 있는 한도 내에서만 한다. ‘돈의 가치, 명예, 아름다운 자부심을 가르쳐 준’ 할머니와 아버지에게 늘 감사한다.

그는 식사를 마친 뒤 ‘리플레이’ 진바지에 헐렁한 티셔츠로 갈아 입고 지프를 직접 몰고 포도밭으로 향했다.

차창을 열어 손을 흔드는 그의 모습을 보니 바비 맥페린의 팝송 ‘돈 워리, 비 해피(Don't worry, be happy)’가 귓가에서
절로 맴돌았다.

 

김선미기자 kimsunm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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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칼럼)흰 달걀 실종사건

[동아일보 김선미기자의 현장칼럼]흰달걀 실종사건 (2003년 04월
24일)

취재는 늘
마음속에 품고 있던 의문에서 비롯됐다.어린 시절 그 많던 흰색 달걀은 도대체 어디로 간 걸까.재래시장, 대형 할인점, 고급
슈퍼마켓에서도 흰색 달걀은 좀체 보이지 않았다.흰색 달걀을 찾아보리라.●이마트에서 흰색 달걀을 발견하다

그날은
15일이었다. 서울 은평구 이마트 응암점에는 갈색 달걀들이 저마다 다른 이름표를 달고 수북이 진열대 위에 올라 있었다.

 

무게에 따라
분류된 왕란(달걀 개당 무게 68g 이상) 특란(60g 이상) 대란(52g 이상) 등을 비롯, 청정란 홍화란 산소란 녹즙란 유정란 영양란 등
각종 ‘브랜드 달걀’ 또한 약간의 농도 차이만 빚어낼 뿐 모두 갈색이었다.흰색 달걀은 진열대 한 모퉁이에서 일부
발견됐다.‘눈부신 하얀 달걀’이라는 브랜드 이름의 이 흰색 달걀을 보고 가정주부 안소현씨(56·서울 은평구 녹번동)는 반경 3m
내에서는 충분히 들릴 목소리로 “어머, 추억의 흰색 달걀이네”라고 감탄 섞인 혼잣말을 했다.10개 들이 흰색 달걀 포장들을
부지런히 쇼핑 카트에 집어넣던 서울 종로구 삼청동의 음식점 ‘콩두’의 주방장 류창호씨(31)는 “20일 부활절 달걀 요리에 사용할 흰색 달걀을
사러 왔다”고 말했다. 류씨는 이날 새벽 서울 송파구 가락시장에서 흰색 달걀을 구하지 못해 이마트까지 오게 됐노라고
설명했다.수많은 사람들이 오가는 대형 할인점에서 우연히 만난 주부, 주방장, 기자 이렇게 세 사람은 도대체 흰색 달걀과 갈색
달걀의 차이는 무엇이며 흰색 달걀이 요사이 왜 통 보이지 않는지 그 이유를 알 수 없다는 대화를 나누고는 헤어졌다.● 부활절에
반짝 부활한 흰색 달걀

 

할인점에 흰색 달걀이 소량이나마 모습을 드러낸 것은 부활절 덕분이었다.‘눈부신 하얀 달걀’의 판매 회사인
조인주식회사는 평소에는 흰색 달걀을 전혀 취급하지 않지만 20일 부활절 특수를 기대하고 올 들어 처음으로 14일부터 19일까지 흰색 달걀
6만7690개를 특별 출하해 팔았다. 이 회사는 같은 기간 흰색 달걀 판매 수량의 25배에 달하는 171만4935개의 갈색 달걀을
판매했다.김종문 유통사업부장은 “흰색 달걀의 개당 가격을 갈색 달걀(21일 현재 특란 기준 70원)보다 3∼5원 낮게 책정해도 통
팔리지 않는다”며 “부활절이 지나면 또다시 흰색 달걀에 대한 시중 수요가 사라질 것으로 예상돼 출하 계획이 없다”고 말했다. 평소에는 흰색
달걀을 찾는 곳이 거의 없어 달걀 껍데기를 깨뜨려 내용물만 사용하는 빵집 등에 애써 헐값에 넘긴다는 것이다.농림부 축산경영과
이흥철 사무관도 “부활절을 앞두고 한 가톨릭교회가 흰색 달걀을 구입할 수 있는 곳을 문의해와 조사했더니 전국의 달걀을 낳는 닭(산란 종계)
4800만 마리 중 흰색 달걀을 낳는 흰색 닭은 전체 닭의 1.6%인 50만 마리에 불과했다”고 말했다.흰색 달걀과 갈색 달걀의
차이는 묵은 체증처럼 오랫동안 지속된 의문에 비하면 의외로 싱겁게 밝혀졌다. 흰색 달걀은 흰색 닭(흰색 레그혼 종)이 낳는 알이고, 갈색 달걀은
갈색 닭(로드 아일랜드 레드 종, 뉴햄프셔 종 등 품종간 교배로 만들어진 닭)이 낳는 알이었다. 닭 깃털의 색을 결정하는 색소가 달걀 껍질의
색도 결정한다. 현재 국내 산란 종계는 거의 전량 수입된다.●산란농장에서 달걀들의 대화를 듣다

 

그러고 보니 흰색 달걀을 낳는 흰색
닭을 본 지도 꽤 오래된 것 같다.17일 낮 찾은 충남 당진군 정미면의 봉성농장은 인적이 드물고 바람이 맑은 곳에 자리잡고
있었다.처음 만나는 이재규 농장장(41)은 시골의 친척처럼 반가운 표정으로 마중 나왔다가 갈색 닭 16만 마리와 흰색 닭 4만
마리가 살고 있는 닭장으로 안내했다.세균 전염을 예방하는 옷을 덧입고, 갈아 신은 고무신을 소독약이 담긴 통에 푹 담갔다가 뺀 뒤
닭장 안으로 들어서자 닭 고유의 체취가 한꺼번에 몰려왔다.천장까지 닿은 높이 4단짜리 닭장은 12열로 죽 늘어서 있었다. 길이
85m인 한 열은 다시 162개 칸으로 나뉘어 있다. 5마리의 닭이 비좁게 공생하는 각 칸에서 닭들은 10㎝ 폭의 닭장 창살 사이로 앞다퉈 목을
내뺀 채 분주히 사료를 먹었다.사료가 담긴 선반 바로 밑 선반에는 닭들이 이제 막 낳은 달걀들이 컨베이어 벨트를 타고
‘아다지오’의 속도로 움직이고 있었다. 닭장 속 닭은 볏짚을 깔고 앉아 알을 품지 않는다. 잠에서 깨어난 오전 8시∼낮 12시에 그저 배설하듯
15도 각도로 경사진 선반으로 달걀을 떨어뜨린다.달걀을 낳는 닭과 관찰자인 기자는 소통했을 수도 있고, 또 아닐 수도
있다.취재한 닭장 속 세상을 나름의 방식대로 재구성해보기로 했다.갈색 달걀(이하 갈색):저 신문기자는 너에 대해
무척 알고 싶어하는 눈치야.흰색 달걀(이하 흰색):사라져가는 것에 대한 향수 때문이겠지. 1960, 70년대에만 해도 흰색 달걀의
수가 갈색 달걀의 수보다 많았다고. 갈색 달걀의 수가 많아진 것은 불과 1980년대 초반부터야.갈색: 현재가 암울할수록 영화로웠던
과거만 곱씹게 마련이야. 이제 사람들은 우리 갈색 달걀만 좋아한다는 사실을 현실로 받아들여야 해. 얼마 전 한 양계업자는 “이대로 가다가는
앞으로 3년 이내에 국내에서 흰색 달걀이 영영 사라질 수 있다”고 호언장담했어.흰색: 우리 흰색 달걀들의 생존을 위협하게 만든
것이 바로 그 ‘인간의 과거에 대한 향수’인 것은 아이러니야. 토종 재래닭이 낳던 갈색 달걀을 그리워하던 사람들은 외국산 갈색 닭이 낳는 갈색
달걀을 먹는 것으로 과거의 추억을 보상받으려 했으니까(조인주식회사 한재일 이사).갈색:조직적이고 유기적인 세상사를 센티멘털한
감상으로만 해석하면 패배하기 쉽지. 일반적으로 크기가 큰 것을 좋아하는 국내 소비자들은 너희 흰색 달걀보다 평균 2g 정도 더 무게가 나가는
우리 갈색 달걀을 선택한 거야(강원대 사료생산공학과 이규호 교수). 1970년대 곧잘 백혈병에 걸려 앓던 흰색 닭이 낳는 흰색 달걀은 왠지
초라하고 영양이 부실해보였으니까.흰색:감상적인 것은 오히려 인간이야. 갈색 달걀이 흰색 달걀보다 영양이 풍부할 것이라는 사람들의
호두껍데기 같은 선입견이야말로 비과학적이지. 흰색 달걀과 갈색 달걀의 유의미한 성분·영양·맛의 차이는 전혀 없어. 닭 사료의 97%(연간
1500만t)를 외국에서 수입하는 국내 양계상황에서는 갈색 닭보다 명백하게 사료 효율이 높은 흰색 닭 사육이 오히려 장려돼야 해. 양계
전문가들은 현재 99 대 1인 갈색 닭과 흰색 닭의 국내 사육 비율이 50 대 50으로 바뀌어야 국가적으로 바람직하다고 주장하고
있어(축산기술연구소 이상진 가금과장). 또 1990년대부터 성행하는 급성 세균 감염증인 가금티푸스에 대한 저항력은 흰색 닭이 갈색 닭보다
뛰어나다고.미국 아칸소대 크레이그 N 쿤 교수(가금 영양 전공)가 지난해 ‘커머셜 치킨 미트 앤드 에그 프로덕션’에 발표한 연구에
따르면 흰색 닭의 사료 효율(닭의 달걀 생산량을 사료 섭취량으로 나눈 값)은 49.3%로 갈색 닭의 사료 효율 44.4%보다 높게
나타났다.갈색:달걀 낳는 닭의 일생을 고찰할 때 닭 나이 1주일은 사람 나이 1세와 비슷하다고 해(축산기술연구소 김상호
축산연구사). 나도 곧 부화장에 갔다가 몸값 600원에 산란농장으로 팔려가 부화 후 76주까지 53.7㎏의 사료(1만2500원 상당)를 먹으며
320개의 달걀(개당 70원)을 낳아 2만2400원의 수입을 주인에게 안겨주겠지. 그 다음에는 이 세상에서의 소명을 마치고 소시지의 원료가 되기
위해 몸값 200원에 도계장으로 팔려가는 거야. 짧은 삶에서 너 잘났네, 나 잘났네 옥신각신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겠니. 흰색 친구, 힘을
내도록.●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축산기술연구소가 2000년 전국 주부 500명을 대상으로 달걀 껍데기 색깔에 대한 선호도를
조사한 설문 결과에서 응답자들은 갈색 달걀(65.4%), 관계 없음(29.0%), 흰색 달걀(5.6%)의 순으로 답했다.기자가
만난 달걀 생산자들은 “소비자들이 흰색 달걀을 외면해서 생산하지 않는다”고 했고, 소비자들은 “흰색 달걀을 사려 해도 파는 곳이 없다”고
말했다.달걀 색깔에 관계없이 달걀을 선택한다는 29.0%의 응답자가 흰색 달걀을 손쉽게 구입할 수 있는 시장 여건이 조성될 경우
흰색 달걀을 구입하는 ‘잠재적 흰색 달걀 수요자’일지 궁금하다. 한없이 사소할 수 있는 ‘흰색 달걀 실종 이유’를 추적하면서 결국은 사람의
생각이 세상을 바꾼다는 작은 진실을 깨달았다.

김선미기자 kimsunm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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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하이에서 쇼핑한다면…

당신이 만약 상하이에서 쇼핑을 한다면…제가 2009년 5월 중국 상하이에 다녀와
쓴 이 기사가 작은 도움이나마 되셨으면 합니다.

 

 

 

 

중국 상하이(上海)에서 12시간이란 ‘자유 시간’을 갖게 됐다면. 그리고 당신이 트렌드를 목숨만큼 중시하는 여성이라면. ‘동방의 파리’라 불리는
상하이에서 어떻게 놀면 보람 있을까. 지난달 20일 상하이행 비행기에 몸을 싣자마자 ‘상하이에서 여자들이 재미있게 보내는 한나절’이란 기사를
고민하기 시작했다. 2시간이 채 안 되는 비행 동안 ‘상하이 산책’과 ‘지하철로 즐기는 세계여행 상하이’란 두 권의 여행 책을 밑줄 치며
파고들었다. 그 덕에 상하이 땅을 밟는 순간 취재의 윤곽이 얼추 잡혔다. 그래, 상하이 골목을 구석구석 쇼핑하자! ○
신톈디(新天地)숙소에서 출발해 오전 10시 서구식 카페 골목인 신톈디에 도착했다. 중국의 전통적 색채를 현대적으로 해석한 토털
패션 브랜드숍인 ‘상하이탕’부터 들어갔다. 케이트 모스 등 미국 할리우드 스타들이 단골인 이 가게에선 복을 상징하는 빨간색 장 지갑이 40%
세일해 20만 원 정도라 견물생심(見物生心), 실크 치파오(중국 전통 드레스)는 수십만 원대라 언감생심(焉敢生心). ‘상하이 트리오’는 상하이에
사는 프랑스 여류 디자이너가 선보이는 가게로 중국식 가방과 침구를 모던하게 풀어내고 있었다. 유기농 면으로 만들었다는 여자 아기용 꽃무늬 면
원피스가 한없이 예뻤다. ‘신톈디 기프트 숍’은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한 아기자기한 선물을 고르기에 좋았다. 손에 들면 우아한 귀부인이 될 것
같은 부채(4000원), 중국 호리병이 프린트된 넥타이(3만 원), 예쁜 그림들이 그려진 컵 받침 세트(1만 원)…. ‘족인수공(族人手工)’이란
공방에서는 꽃과 벌이 그려진 흰색 호리병 모양의 자개 귀고리(2만 원)를 샀다. 캐주얼과 정장 모두에 어울려 쇼핑 만족도 100점. 노점에서
파는 동전 지갑과 수공예 가방들도 쇼핑의 재미를 더했다.○ 타이캉루(泰康路)오후 2시 타이캉루 도착. 현지 조선족
남자 여행 가이드는 “타이캉루에 뭐 볼게 있다고”라고 했으나 뭘 모르시는 말씀! 만약 상하이에서 딱 한 곳만 들를 시간이 있다면 이곳을
‘강추’한다. 차가 들어설 수 없는 420m의 좁은 골목 어귀마다 중국과 베트남 상점, 화랑, 카페 등이 옹기종기 들어 앉아 여자들이 단화나
운동화 신고 하염없이 산책하기에 최적의 장소다. 외국인 관광객과 야외 촬영하는 현지 예비 신부들이 많은 이곳에서 ‘지름신’이 내리고 말았다.
‘진펀스자(金粉世家)’에선 70% 세일해 4만 원인 조끼를 샀다. 겉감은 꽃무늬 자수가 놓인 마, 안감은 꽃분홍색 실크. 청바지에는 이 조끼를
제대로 입고, 밤 파티 때는 안감을 밖으로 나오게 뒤집어 검은색 새틴 바지에 매치할 요량이다. 숄과 스카프를 전문으로 취급하는 ‘우(Woo)’의
중국식 실크 스카프는 가장 싼 게 4만 원, ‘지오토(Giotto)’란 수제 구두 가게에선 질 좋은 가죽 단화가 6만 원이다. 덴마크 코펜하겐
옷을 수입하는 가게에선 깃털 달린 머리띠가 탐났다. 노점에서 파는 꽃무늬 자수의 면 소재 휴대전화 케이스는 회사 후배들을 위한 선물로 낙점!
수많은 예술가의 작업실과 공방을 구경하다 ‘코뮌’이란 이름의 카페에서 지난해 동아일보에 ‘상하이 리포트’를 연재했던 푸단대 학생
황석원 씨를 만났다. 북한 포스터가 벽면을 장식한 이색적인 이 곳에서 샌드위치를 먹었다.○ 둥핑루(東平路), 난징시루(南京西路),
와이탄(外灘)오후 5시 반 차분한 고급 주택가인 헝산루를 가로 지르는 작은 골목길인 둥핑루에 들어서자 유럽풍 분위기가 확
풍겨왔다. 프랑스산 장미 제품을 파는 ‘오 놈 드 라 로즈(Au nom de la rose)’란 가게에서 장미꽃으로 만든 입욕제를 사자 장미
꽃잎을 가득 넣어 선물 포장을 해줬다. 이 건물의 1층엔 유명 프랑스 빵집인 ‘폴(Paul)’도 있다. ‘젠 아트’란 곳에는 웨민쥔, 펑정제 등
작품 가격이 천정부지로 치솟는 중국 유명 현대 미술가들의 그림을 프린트한 비싸지 않은 가방과 배지를 팔았다. 청재킷에 애교로 달 생각으로 배지를
사 귀국 후 정장 재킷에 달았더니, 보는 사람마다 “이게 뭐예요?”라고 호기심을 드러냈다. 해가 저물어 난징시루의 최고급 명품 백화점인 ‘플라자
66’에 갔다. 홍콩의 쇼핑몰들과 내부가 흡사한 이곳엔 편집 매장 ‘I.T’와 ‘ZUMA’뿐 아니라 ‘존 갈리아노’ 등 럭셔리 브랜드들이
총집합해 있었다. 밤이 깊어 세상에서 가장 황홀하다는 상하이 야경을 보러 와이탄으로 출발! 야외 테라스에서 멋진 야경을 사진 찍을 수 있는 ‘뉴
하이츠’가 꽉 차 옆 건물 6층에 있는 ‘글래머 바’에 자리를 잡으니 아시아에서 가장 높은 상하이 둥팡밍주(東方明珠)탑이
창 밖에
빛나고 있었다. 퇴근 후 칵테일을 마시는 정장 차림의 외국인들 속에서 황석원 씨와 그간 밀린 얘기를 나눴다. “상하이는 골목길이 참 예쁜 것
같아”라고 말하자, 그는 “외국인 관광객들이 좋아하는 곳을 다니셨지만, 동화 속 소녀처럼 소소한 것들을 찾아 행복해하는 모습이 보기
좋았어요”라고 했다. 오전 10시부터 오후 10시까지 상하이에서 12시간. 여자라면 누구나 이곳에선 동화 속 소녀가 될 수 있을 것
같다.글·사진=상하이 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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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출의 즐거움을 예찬함

<나 그대에게 모두 보여드리리…노출의 즐거움을 예찬함>-2005년10월 패션잡지
‘W’에 기고했던 글.

 

 

그녀는 나를 모르겠지만, 아니 모를 것이라 믿고 있지만 나는
그녀에 대해 많은 것을 알고 있다.그녀가 휴일에 남편과 할인마트에 갈 때 앞코가 뾰족한 파란색 구두를 신는다는 것, 지난 여름 흰색 면
가방을 새로 사서 줄기차게 들고 다녔다는 것, 요즘에는 연분홍색 매니큐어를 바른다는 것, 심지어 그녀의 친정 거실에 갈색 가죽 소파가 있다는
것까지 나는 알고 있다.그녀를 직접 만나본 적은 없지만 그녀의 이름과 다니는 직장과 남편 이름을 알고 있다. 이쯤 되면 나는 그녀의
스토커인가. 글쎄. 스스로 묻고 답하자면 ‘그렇지 않다’. 그녀는 ‘싸이월드’라는 인터넷 공간에 자신을 둘러싼 사진과 글을 누구나 볼 수
있게 공개했고, 나는 합법적으로 그것들을 지켜봤을 뿐이니까. 그녀는 나의 절친한 후배와 싸이월드 ‘일촌’이라는 인터넷 친족 관계를 맺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그녀가 비주얼(Visual) 중심으로 일상을 차곡차곡 정리해두는 깜찍 발랄한 ‘1인 미디어’는 글 쓰는 직업을 가진
내게 적잖은 영감을 불러일으킨다. 나를 남에게 보여주고, 남을 보고, ‘감성 DNA’가 유사한 사람들끼리 아메바의 무한생식 속도로 글과
그림을 전파시키는 그 공간은 다양한 화법과 사상의 공개경연장이다. 허공에 노랫소리가 울려 퍼지고 지상에서는 열띤 토론이 벌어지는 고대
그리스 ‘아고라(광장)’의 담론이 펼쳐지는 공간…. 블로그와 싸이월드 같은 1인 미디어는 이를테면 프랑스 철학자 미셸 투르니에의 ‘외면
일기(Journal Extime)’와도 닮았다. 사람과 사물 같은 외적인 세계 쪽으로 눈을 돌린 일기에는 비정형의 생각들이 하나의 프레임 속에
포착된다. 외면 일기는 때로는 각자의 정신 상태를 나타내는 내면 일기보다 현실을 놀랍도록 잘 반영한다. 1990년대에는 태그언어를 활용해
개인 홈페이지를 만들었고, 지금은 비교적 간단한 싸이월드를 운영하는 나는 1인 미디어의 장단점을 몸소 깨달아왔다. 통제가 불가능한 다른 사람의
방문을 의식해 미디어의 열고 닫기를 꽤 반복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 재미난 미디어를 닫고 나면 이내 곧 ‘노출의 유혹’이 내 몸을
근질였다. 더욱이 1인 미디어로 꽤 많은 수익을 얻게 된 관련업계는 ‘관음증 사회’에서 개인이 노출의 수위와 한계를 어느 정도 조절할 수 있도록
프로그램을 발전시켰다. 내 인터넷 공간에 방문자 수가 많을수록, 내가 업로드(Upload)한 글과 그림에 댓글이 탐스런 감 열매처럼
주렁주렁 달릴수록 내가 주위로부터 사랑받고 인정받고 있다는 느낌이 강하게 든다. 영화 ‘너는 내 운명’의 여주인공 전도연의 말처럼 “고마워요.
사랑해줘서.”프랑스 사회학자 장 보드리야르는 그의 저서 <유혹에 대하여>에서 현대사회를 읽는 키워드로 ‘유혹’을 제시한다.
그에 따르면 현대사회를 움직이는 것은 물리적 힘이 아니라 심리적 기술이다.역사적으로 유혹의 기술은 힘없는 여성의 전유물이었다. 권력의
획득과 유지 수단으로 물리적 힘이 우세하던 시절 여성은 남성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유혹의 기술을 활용했다.1인 미디어는 그 유혹의
기술이 절묘하게 녹아든 공간이다. 로직(Logic)이 팽배해 조금만 정신을 차리지 않아도 도태되는 사회에서 사람들은 자신만의 방으로 찾아와
웅크리고 싶은 욕구가 생겨났다. 그 방은 내가 보여주고 싶은 만큼 보여줄 수 있으며, 때로는 ‘또 다른 나’, ‘닮고 싶은 나’의
이미지로 얼마든지 포장할 수 있는 곳이었다. 논어의 ‘유붕자원방래 불역열호(有朋自遠方來不亦樂乎)’ 구절처럼 소식이 끊겼던 벗이 ‘사람 찾기’
기능을 통해 멀리서 스스로 찾아오는 뜻밖의 기쁨도 누릴 수 있었다. 숨어있을 수 있되 남과의 소통 가능성을 늘 염두에 두는 복잡다단한
공간, 그래서 심리적으로 정교한 유혹의 기술이 절실한 공간, 그것이 1인 미디어이다.미국 하버드대 스탠리 밀그램 교수는 6명만 거치면
아는 사람을 만난다는 ‘인간관계의 6단계 분리법’을 소개한 적이 있다. 최근 한국과학기술원(KAIST) 물리학과 정하웅 교수팀도 국내 40만
명의 싸이월드 미니홈피를 분석한 결과 7명을 거치면 낯선 두 사람이 연결된다는 결과를 발표했다. 그래서 우리는 다른 사람의 1인 미디어를
부지런히 방문해 좋은 글과 그림을 나의 1인 미디어로 퍼 담아 나의 취향도 꽤 그럴싸하다는 것을 은밀히 드러낸다. 여행지에서나 사용되던 카메라가
핸드백 속 소지품으로 편입된 것도 ‘드러내서 유혹하고 싶은 욕구’와 무관치 않다. 얼마 전 우리 동네 ‘커피 빈’ 앞길에서 패션모델
장윤주가 친구와 함께 걷는 모습을 봤다. 나의 ‘싸이월드’ 친족 중에는 패션업계 종사자가 여럿 있고 그들의 싸이월드 ‘파도타기’를 통해 어렵지
않게 그녀의 1인 미디어를 드나들었던 나는 그녀가 우리 동네(동부이촌동)의 아우라를 좋아한다는 글을 읽은 적이 있다. 그녀는 내가 그녀의 온라인
사진첩에서 봤던 큼지막한 연갈색 가죽 숄더백을 오프라인에서도 그대로 메고 있었다. 그녀와 내가 잘 알고 지내는 사이라는 착각이 잠시
스쳐갔다.1인 미디어에 반영된 인간관계의 심리는 ‘나를 너에게 보여 준다’이며, 여기에는 ‘나는 너를 알고 싶다’는 것도 포함된다.
사회적 동물로서 인간의 특성이 뚜렷하게 드러나는 것이다. 인간은 타인에게 끊임없이 관심을 표현하는 동시에 자신을 타인에게 보여주고 싶어 한다.
자아라는 말은 ‘내가 보는 나의 모습’과 ‘남이 보는 나의 모습’을 동시에 의미한다.‘관음증(voyeurism)’이란 본래 인간에게
내재된 성적 욕망의 하나로 ‘노출증(exhibitionism)’과 맥을 같이 한다. 일부 심리학자들에 따르면 이런 증후들은 자신을 과시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자신에 대한 열등감을 탈피함으로써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하는 방법이라는 해석도 있다. 예쁜 음식, 카페, 갤러리,
칵테일파티, 패션모델 같은 차림과 행복한 표정…. 우리들은 불특정 다수 관객을 대상으로 행복한 순간들을 드러내고, 또 다시 누군가의 관객이 돼
그들을 본다. 일상을 ‘오브제’로 바꾸려는 욕망…. 정신없이 바쁘지만 한편으로 많이 외로운 우리는 모두 누군가에게 의미 있는 무엇이 되고 싶다.
간절하게. 1인 미디어는 표정, 음색, 상황 맥락이 배제된 인터페이스(Interface)다. 현대사회에서 비중이 높아진 비언어적
커뮤니케이션(Non-verval communication)이 이모티콘으로 대체된 공간이다. 그렇기에 사람과 사람 사이의 적당한 거리, 적당한
공개에 대해 때로는 막대한 기회비용이 들기도 한다. 헤어진 연인의 1인 미디어를 방문해 겪는 경험담은 각양각색이다. 연예인들이 자신의
사생활을 공개해 대중과 친밀한 이미지를 만들기도 하지만 때로는 난데없는 저질 폭로의 공간이 되기도 한다. 어디까지가 실제이고 어디까지가 조작된
것인지 분간하기 어렵다.그럼에도 우리는 1인 미디어를 통해 끊임없이 상상의 인간관계를 넓혀나간다. 싸이월드 방명록의 ‘비밀이야’ 기능과
어느 정도 개별통제가 가능한 일촌 ‘구분 짓기’는 일찍이 프랑스 사회학자 피에르 부르디외의 계급 간 ‘구별짓기’처럼 친밀도에 따른 노출 수위를
조정할 수 있다. 1인 미디어에서 형식적인 사회접촉이 아닌 개인적 비밀을 나누는 사람들은 ‘함께 이야기하는’ 스토리텔링(Story
telling) 경험을 통해 나를 드러내고 타인의 생활을 은밀히 탐색하는 희열을 누린다. 비밀을 공유하기에 관계가 공고해졌다는 무언의 동지의식은
인터넷 인간관계가 단지 피상적이라는 한 편의 주장을 무색케 한다.나는 오늘도 내가 미처 모르는 관객을 위해 나의 1인 미디어 배경음악을
바꿔 설정하고, 대문 문패를 감각적 문구로 바꿔 달고, 잘 나온 사진을 골라 업로드한다. 그리고 다시 무한의 인터넷 우주로 여행을 떠난다.
그곳의 주인은 어쩌면 지금 이 글을 읽는 당신일지도 모르겠다. 이 넓은 웹에서 나를 찾아와 주고, 또 나같은 이를 위해 당신을 둘러싼 생활을
친절하게 보여주는 바로 당신. 고마워요. 사랑해줘서.글: 동아일보 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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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일리시 스피치

 

2005년5월 패션잡지 ‘보그’에 ‘스타일리시 스피치’란 제목으로 기고했던 글입니다.

 

 

 

내가 새로운 ‘언어 도시’에 발을 들여 놓은 것은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딱 일 년 전의 일이다.
그리 생경한 스페이스는 아니었다. 예전부터
사람들과 어울려 차를 마시고, 술을 마시고, 웃고, 떠들고 하던 곳. 세상의 멋지게 차려 입은 사람들은 온통 한 데 모인 듯 여러 종류의 패션이
패치워크 된 곳. 나의 새로운 언어 도시는 패션 피플이 밀집한 서울 청담동이다. 여기서의 패션 피플은 패션을 직접 만들고, 유통하고,
관련 글을 쓰고, 홍보를 하는 일련의 사람들을 일컫는다. 일간지 패션 담당이 되고부터 나는 이 도시에서 숨 쉬고 생활한다. 그리고
사람들을 관찰하기 시작했다. 그들이 어떤 옷을 입고 어떤 구두를 신고 어떤 헤어스타일을 하는지. 그러나 정작 새로웠던 것은 그들의 비디오가 아닌
오디오였다. 사람들은 전혀 새로운 언어를 구사하고 있었다. 일찍이 언어학자 페르디낭 드 소쉬르는 언어로 대표되는 기호 체계는 사회적
약속에 따라 의미를 생산한다고 했는데, 이 언어 도시 사람들은 그들만의 소통 방식을 택하고 있었다.나는 그들의 언어에 대해 이야기하려
한다. 패션홍보대행사에서 일하는 A는 한 멀티숍 매장에서 발걸음을 멈추고 내게 말했다. “이 아이, 예쁘지
않나요?”그녀가 말한 ‘이 아이’는 미니 데님 스커트이다. 도대체 왜 그녀는 스커트를 가리켜 ‘아이’라고 부르는가.“귀엽잖아요.
친근하고. 그러고 보니 이 곳의 유행어네요. 옷이나 가방을 두고 ‘아이’라고 말하는 것….”그녀가 구사한 화법은 실은 패션 피플이
집결하는 이 도시에서는 벌써부터 오래 전부터 널리 쓰이고 있다. 이미 수많은 이에게서 비슷한 말투를 들어 왔다. 이 아이는 이랬고, 저 아이는
저랬고….패션에 민감할수록 ‘아이’라는 단어를 선호했다. 아이가 없는 싱글일수록 더욱 그랬다. 여자뿐 아니라 남자들도 옷, 가방,
스니커즈, 승용차 등 자신이 애착을 갖는 대상을 스스럼없이 ‘아이’라고 부른다. 마치 애완견을 지칭하는 것처럼.이를테면 사물을 인격화하는
‘의인화’인데, 나는 이 도시 남자 여럿으로부터 또 다른 형태의 의인화 화법을 듣게 된다.“난 착한 여자가 좋더라.”처음엔 정말
착한 여자를 말하는 줄 알았다. 알고 보니 그들은 “몸매가 좋다”는 대신 “몸매가 착하다”는 표현을 쓴 것이다. 이로써 몸매라는 무감정의 객체는
착한 심성을 지닌 주체로 거듭난다. 지나가는 여자의 패션 스타일을 가리키며 “무섭다”라고 말한 남자도 있었는데, 나는 그와 헤어진 후 한참동안
과연 그 남자가 진짜로 무서운 감정을 느꼈을까 의아했다. 나이에 상관없이 소녀 같은 여자들, 여자보다 더 예쁜 남자들은 의인화 화법에서
한 발짝 더 나아가 말을 깜찍하게 압축하는 ‘걸리쉬한’ 언어 생략을 즐긴다. ‘이 아이’와 ‘저 아이’ 대신 “얘”, “쟤”라고 그 말을
압축하는 것이다. 그들의 애교스런 성향과 취향은 ‘쟤’라는 단어를 ‘째’라는 말로 변형시키기도 했다. “어머, 째 너무 예쁘다.”
다른 종류의 압축 화법은 조사를 떼어내는 것이다. “편집장이 오늘까지 기사 마감 하라 했어”에서 ‘하라’는 ‘하라고’에서 ‘고’를 털어낸
것이다. 지난해 지적인 소수 컬트 팬이 열광했던 드라마 ‘아일랜드’에서도 단어의 질량을 줄이는 생략 화법이 시도됐다. “나 불쌍해하지
마라”에서처럼 조사를 배제하고 사랑한다, 아프다, 미안하다 등 ‘뭐뭐 다’의 짧은 동사를 단독으로 우뚝 세우는 식이었다. 그러나 단어가 외로운
섬처럼 둥둥 떠다니던 ‘아일랜드 화법’은 어리광스런 키덜트 성격의 ‘청담동 화법’과 달리 지나치게 장중한 느낌이 있었다. 의인화 화법과
걸리쉬한 압축 화법이 구어적이라면 청담동 사람들은 영미 소설의 한국어 번역판에 나옴직한, 지극히 문어적인 표현도 동시에 쓴다. 이른바 ‘그,
그녀, 그들’ 화법이다. 예를 들면 이렇다. “어제 패션쇼에 이영애가 왔는데, 그녀는 더욱 예뻐진 것 같더라.”“그는
초컬릿 무쓰를 좋아한다 했어.”그 남자, 그 여자, 그 사람들이라는 단어 대신 그, 그녀, 그들이라는 문어체 단어를 활용하는
것이다.‘그, 그녀, 그들’이란 말을 쓰는 많은 사람에게 이유를 물었더니 다양한 해석이 나왔다.신문과 잡지 등에 패션과 관련한
글을 쓰거나 또는 그들을 대상으로 홍보를 하는 등 활자와 접촉 빈도가 높기 때문에, ‘he’, ‘she’, ‘they’를 번역한 표현이 좀 더
인터내셔널한 느낌을 전달하는 것 같아서, 싸이월드를 통해 자연스럽게 훈련된 글쓰기가 일상 대화 속에 녹아들었기 때문에…. “오늘 기분
너무 나쁜 거지. 그녀의 히스테리가 시작됐다며?”에서처럼 ‘뭐뭐 한 거지’, ‘뭐뭐 했다며’ 등의 말도 요즘 부쩍 많이 듣는 이 언어 도시의
말이다. 주관식 심리 상태를 객관식 답안으로 풀어내 다른 사람의 동조를 이끌어내는 뉘앙스라 할까. 본래 ‘뭐뭐 했다며’는 ‘뭐뭐 했다’란 말과
각각의 더블 따옴표로 연결되는, 신문 사건보도와 같은 문어체 말이다. 말은 생명력이고, 그 생명력에는 분명 파생된 기원이 있을 것이라는
믿음으로 각각의 말을 최초로 썼을 법한 사람들을 찾는 작업에 몰입했으나 실패했다. 다만, 이 과정에서 몇몇 영향력 있는 라이선스 패션 잡지의
편집장과 에디터, 몇몇 브랜드의 홍보 담당 이름들을 수집할 수는 있었다. 패션 피플과 넓은 인맥을 유지하는 그들은 기원까진 이르지 못해도 언어
트렌드 파급자로서 상당한 역할을 했으리라 추정된다. 나는 이 언어 도시에서 생뚱맞게도 인간의 원초적 그리움을 떠올린다. 화려하고
떠들썩한 것들에 익숙한 이 곳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을 향해 방어적인 거리를 두면서도 그 사람 냄새를 사무치게 그리워하는 것은 아닌지. 이미
대중화된 브랜드의 ‘잇 백(it bag)’은 재미없어 아직까지는 패셔너블한 소수만이 알고 있는 ‘잇 백’을 찾는 이너서클 심리처럼 그들끼리만의
말로써 안도 비슷한 감정의 위안을 받고 있는 것은 아닌지. 스스로 만든 말을 통해 또 다른 창의성의 즐거움을 얻는 것은 아닌지. 아,
그런데 나는 이미 ‘이 아이(언어 도시)’의 패션화법에 익숙해져 버린 거지. 호호. ‘오늘의 커피’를 마시고 헤어진 후 “누구누구씨, 오늘 진짜
즐거웠다며?”라는 문자를 나도 모르게 날리게 됐단 말이지. written by 김선미 kimsunmi@donga.com
(동아일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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