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500원의 행복과 때밀이 인생

오늘은 매우 쑥스럽지만 제가 2003년 펴냈던 ‘구경’(커뮤니케이션북스)이란 책을
소개할까 합니다.

이 책은 한국언론재단의 저술지원을 받아 썼던 책인데요.

 

 

이 책에 대해 당시 제가 존경하는 동아일보 정은령 선배(지금은 퇴사해서 미국에서
언론학 공부를 하고 계십니다)는 이렇게 서평을 써 주셨더랬습니다.

 

어릴 때부터 캐묻기를 좋아하던 저자에게 어른들은 “커서 사립탐정 하면 되겠다”고 했다. 이 책은 사립탐정 대신 신문기자가 돼 ‘질문’을 업으로
삼은 저자가 문화일보 ‘세상 엿보기 칼럼’(1999∼2001년)과 동아일보 ‘현장칼럼’(2002년∼현재)에 연재했던 글 중 33편을 간추린 것.
저자는 멀찍이 떨어져 서서 지켜보지 않는다. 목욕탕 때밀이의 삶이 궁금하면 때밀이학원 수업을 청강하고, 114 안내원들의 생활을
취재할 때는 직접 안내 카운터 앞에 앉았다.책을 엮으며 저자는 대역 코미디언인 이엉자, 무교동 구두닦이 유모씨 등 옛 취재원들에게
다시 연락해 안부를 묻고 근황을 보태 적었다. 그 짧은 몇 구절에 관찰 대상의 삶에 자신을 녹이는 ‘체험적 구경법’의 따스함이 드러난다.
‘검소한 이엉자는 여전히 빨간색 아토스 승용차를 탄다고 했다. 철거를 걱정하던 무교동 유씨는 지금도 옛날 그 자리에서 열심히
구두를 닦고 있었다….’

 

이 책을 블로그에 소개하겠다고 생각한 건 최근 동네의 작은 대중 목욕탕에 갔을 때입니다.

온 몸의 근육이 과로로 아프다고 소리를 질러대기에 다른 방도를 찾을 수가
없어 목욕탕의 뜨거운 물에 몸부터 담그고 보자,는 심산이었죠. 목욕탕 입장료는
5500원.

너무 피로한 나머지 때밀이 아줌마로부터 세신+마사지도 받았는데, 천국에 온
기분이었습니다. 몸의 때도 깨끗이 빡빡 밀어주시고, 강력한 손바닥 힘으로 구석구석
마사지를 해 주시니 한결 몸이 가벼워졌죠. 이 아주머니가 제게 말씀하셨습니다.
"언니, 내가 지금까지 해 온 마사지 중 가장 세게 한 건데 대단하네."
아마 너무 몸의 근육이 뭉쳐서 왠만한 압력으로는 제 몸이 기별도 하지 않았나 봅니다.
‘아, 행복하다’고 느끼면서 제가 썼던 기사, 즉 이 책 ‘구경’에 실렸던 글을 새삼
떠올리게 됐습니다. 2000년 11월 신문에 쓰고 2003년 10월 덧붙여 책에 실은 내용입니다.
아…10년 전 글입니다. 10년 전에 저는 사회부 기자로 사회 구석구석을 들여다 보려고
몸으로 부딪쳤던것 같습니다. 그 때의 순수와 열정, 다시 되새기면서 그 때보다는
깊이 있는 기사를 쓰기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오래된 글이라 네이버 검색이 안 되기에
여기에 옮겨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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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욕탕 때밀이’ (161-167페이지)

         2000년 11월 쓰고 2003년
10월 덧붙이다.

 

  연봉 3000만 원-1억 원. 평균 근무시간 오전 6시-오후 6시까지 12시간,
낙천적인 성격과 약간의 승부욕, 건강한 체력이 유리함, 학벌 성별 나이 제한 없음,
하루에 50명 정도까지 새로운 사람들을 만날 수 있음.

  만약 이런 스카우트 제안을 받게 된다면 당신의 반응은? 이후 그
직업이 목욕탕 때밀이(목욕 관리사)라는 사실을 알게 됐을 때 또 당신의 반응은?

 

  때밀이 학원에 갔다. 때밀이 학원은 현직 때밀이가 장차 때밀이가
되기 원하는 사람들에게 때밀이 기술을 가르치는 곳으로 2000년 현재 서울에만도
20여 곳이 성업 중이다.(‘목욕 관리사’라는 말이 있지만 이 글에서는 업계 사람들이
스스로 칭하는 ‘때밀이’로 표현함을 양해해 주시길.)

  시원하게 때를 벗겨내고 어깨의 뭉친 근육을 마사지해주는 때밀이.
그들은 어쩌면 우리의 온갖 가식과 허물을 통쾌하게 벗겨버려 고해성사의 해방감을
주는 고마운 사람들인 듯 싶다. 어쨌건 손바닥만한 이태리타월을 힘주어 왕복하면
될 일을 수업료 내면서 배우는 사람들은 도대체 어떤 사람들인가.

 

  "남자들일수록 엄살이 심해요. 조금만 세게 때를 밀면 아프다고
난리죠. 반면 여자들은 아까운 돈을 냈다는 생각에 웬만한 아픔은 악착같이 참아낸다네요."-때밀이
경력 3개월 박노철 씨(35).

  "사업에 실패하고 때밀이를 시작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3년 정도
열심히 하면 빚을 청산하고 사업 기반을 다시 세울 수 있어요. 때밀이야말로 자기가
땀 흘려 노력한 만큼 정정당당하게 돈을 벌고자 하는 정직한 사람이죠."-때밀이
경력 4년 6개월 김장곤 씨(35).

  "목욕탕에 메이커 옷을 차려입고 와서 뽐내는 아줌마, 목욕
시작부터 끝까지 내내 수도꼭지를 틀어놓는 아줌마, 때밀이들에게 반말을 섞어 내뱉다가
돈을 던지듯 주고 가는 아줌마들은 정말 꼴불견이에요."-때밀이 경력 2년의
30대 주부.

  "좀 더 프로답게, 좀 더 손님들이 원하는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요즘 때밀이들은 스포츠 마사지를 배웁니다. 그러나 정부가 스포츠 마사지를
정식으로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시중의 모든 스포츠 마사지는 불법일 수밖에 없습니다.
또 때밀이는 노동부의 직업 분류 직종에도 제외됩니다. 왜 공무원들은 그렇잖아요.
가만히 있는 것을 건드려 일 만들 필요 없다. 때문에 저희 때밀이 학원은 현재 피부관리업체로
등록하고 영업 중이며 학원 자체적으로 만든 스포츠마사지 자격증을 수강생들에게
주고 있습니다."-때밀이 경력 12년의 때밀이학원 월드사우나교육원 성열수 원장(46).

 

  때밀이 학원인 서울 동작구 사당동 월드사우나교육원의 10평 남짓한
지하홀에는 서비스업체, 피부관리 종목이라는 사업자 등록증과 사단법인 한국활법청소년진흥원에서
수여한 공인활법지도자자격증(스포츠마사지는 활법 또는 카이로플래틱이라고 불리기도
한다.)이 폼 나는 액자 안에 담겨 있었다.

  수도시설이 딸린 20평 규모의 실습실 문을 열어보니 남자 4명, 여자
4명이 때마침 스포츠마사지 수업을 받고 있다. 대부분이 현직 또는 전직 때밀이인
수강생들의 나이는 30대 중반에서 50대 중반까지 다양하다.

  그들은 흔히 대중목욕탕에서 볼 수 있는 때밀이대 위에서 둘씩 짝을
이뤄 한 명은 눕고, 한 명은 앉거나 서서 다양한 마사지 실기를 연습했다. 두 쌍은
동성끼리였지만 두 쌍은 이성끼리 짝을 이룬 광경을 보고 처음엔 공연한 의심을 품었음을
고백한다. 대낮에 무도연습장을 습격한 기분이랄까.

  

  "힘자랑하지 마세요. 마사지는 힘으로 밀어붙이는 것이 아니에요.
그냥 사랑하는 사람의 몸을 만진다고 생각하고 부드럽게 체중을 실어보세요."

  원장의 주문에 따라 목 뒤축 어깨자락인 승모근 마사지, 척추 눌러주기,
무릎 굽혀 비복근 풀기 등의 코스가 진행됐다. 수강생들이 진지하게 수업에 열중하는
모습을 보니 괜한 오해가 미안해 온다. 1995년 사업에 실패해 때밀이 생활 4년 6개월
째인 김장곤 씨(35)는 현재 ‘스페어’(목욕탕에 정식 채용된 때밀이가 사정이 생겨
일을 못 나올 때 대신 일하는 사람)로 일당 10만 원에 일하면서 이 학원에서 스포츠마사지를
배우고 있다. 처음 사업에 실패하고 아는 사람이 때밀이를 권했을 때는 이 사람이
날 뭘로 보나 하는 생각에 욕설이 튀어 나올 뻔했다.

  그러나 금세 목욕탕 보증금(때밀이는 목욕탕 업주에게 1000만-1억
원의 보증금을 내고 때밀이 자리를 분양 받은 뒤 수익금은 전액 개인이 가져간다.)만큼을
벌고도 수입이 계속 쌓여 1년 만에 생활 기반을 다잡을 수 있었다.

  스포츠마사지 수업료 월 50만 원이 아깝지 않느냐고 물었다.

  "일종의 투자라고 생각해요. 그냥 때만 밀면 1인당 8000원-1만
원밖에 벌 수 없지만 마사지를 하면 3만-4만 원의 수입은 거뜬하거든요. 때밀이도
개인 사업과 다름 없어요."

  때밀이 기술을 배운 후 단 한 번도 때를 밀어드리지 못한 아버지가
교통사고로 세상을 떴을 때 한이 맺혔다. 가장 보람 있던 순간은 아버지 장례식을
치른 후 대신 할아버지 몸의 때를 밀어드렸을 때라고.

 

  점심시간이 되자 스포츠마사지를 배운 남자들은 돌아가고 예닐곱
명의 여자들은 오후 시간의 때밀이 수업을 받기 위해 남았다. 그들은 신문지를 학원
바닥 위에 모자이크 타일처럼 겹쳐 펼친 뒤 말린 오징어 조림과 열무 김치를 냉장고에서
차례차례 꺼내 놓았다. 넉넉한 몸집의 때밀이 아줌마는 밥을 봉긋하게 듬뿍 퍼 담았다.

  학원 원장은 그들에게 ‘시집 보낸다’는 말을 썼다. 그것은 학원에서
교육을 시킨 뒤, 목욕탕에 때밀이로 취업을 시키는 일을 뜻했다. 함께 일하는 때밀이와
감정 싸움이 생겨 일을 그만두고 학원을 찾은 여자에게 사람들은 ‘소박 맞았다’며
킥킥댔다.

  학원 다닌지 이제 겨우 나흘째라 등 마사지가 영 자신 없다는 한
아줌마에게 또 다른 아줌마가 단호한 충고를 한다.

  "자신감이 붙을 때까지 ‘스페어’로 나가지 마."

  돈벌이가 좋은 때밀이 며느리에게 꼼짝 못하는 시어머니와 때밀이들의
퇴근길을 자가용으로 마중하는 남편의 이야기 등 여자들의 수다가 점심식사의 심심찮은
반찬이 됐다.

 

  오후 2시가 되자 식사를 마친 여성들과 때밀이 수업시간에 맞춰 학원에
도착한 여성 10여 명은 실습실에 들어가 옷을 벗어 알몸이 됐다. 22세 축구선수가
다음날부터 때밀이를 배우겠다며 문을 열고 흘끔 쳐다보고 갔다. 학원 원장은 "요즘
대학생들한테도 때밀이 아르바이트가 인기에요. 못해도 월 200만 원 수입은 보장받지요"라고
말한다.

  수업과정을 지켜보니 때 미는 것이야말로 요령이 필요했다. 45세
여성 강사는 짧게 여러 번 끊어 밀지 말고 위로부터 아래까지 죽 한 번에 훑어 미는
것이 훨씬 시원하고 안마 효과가 있다고 강조했다.

  매일 수업을 받는 통에 서로서로 때를 미는 그들의 몸에서는 아주
소량의 물때만 나왔다. 때밀이 실습 중인 수강생에게 몸을 내맡기고 누워 있는 또
다른 수강생들의 눈빛에서는 안락한 나른함 대신 절박한 삶의 냄새가 났다.

 

  돌아오면서 외국 관광객들에게 인기가 있다는 서울 이태원의 한 외국인
전용 한증막 사우나에 들러 때를 밀었다. 나는 재미교포 행세를 하고 외국인 전용
사우나에 들어갈 수 있었다. 다행히 그들은 여권 확인 작업을 하지 않았다. 황토토굴
안에서 짚방석을 덮어쓰고 한증막 사우나를 받은 뒤, 인삼탕과 녹차탕, 때를 미는
기본 코스가 7만5000원이다.

  이밖에 얼굴 마사지 등 추가 코스는 각각 5만 원이다. 때밀이 관광을
온 일본인 여성 관광객들은 "싸고 서비스가 좋다"며 감탄했다. 한국인
때밀이 아줌마들은 한결같이 유창한 일본어를 구사했다. 그곳의 때밀이들은 외화를
벌어들이기 위해 학원에서 본 것과 똑같은 방식으로 때를 밀고 마사지를 했다.

  다만 높은 가격과 화려한 내부시설과 달리 때밀이의 때를 미는 강도는
국내 대중 목욕탕보다 현저히 떨어졌다. 아마 때밀기에 익숙하지 않은 외국인들을
상대로 때밀이들이 힘을 덜 들이기 때문일 것이리라.

 

  2003년 통계로 전국 9900여 목욕탕에서 4만-5만 원 명의 때밀이가
일하고 있다. 10월 인터넷 검색 사이트에 ‘때밀이 학원’이라고 입력하니 수많은 때밀이
학원 리스크가 검새된다.

  때밀이 학원 사이트들에서 소개하는 ‘때밀이 성공 가이드’를 정리해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1. 때밀이 기술을 배워 처음에는 규모가 큰 탕보다는 작은 탕에서 시작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단계를 쌓아 프로가 되어야 한다.

2. 때밀이도 무쇠 인간이 아니기 때문에 갑자기 아플 수 있다. 이 때에는 ‘스페어’를
잘 구해야 한다. 보통 스페어에게 지급하는 비용은 평균 하루 8만 원, 주말 10만-12만
원이다.

3. 때밀이는 힘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기술로 하는 것이다. 용기와 자신감은
필수 덕목이다.

4. 여자 손님은 과거에는 때를 밀고 두드리며 효과음을 내는 안마를 선호했으나
최근에는 경락과 발 관리로 피로를 풀기 원한다.

5. 목욕탕 업주에게 내는 보증금이 1000만 원 이상이면 등기소에서 등기등본을
열람하는 것도 안전을 위해 필요하다.

 

 

카테고리 : 책 읽는 스타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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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7) 5500원의 행복과 때밀이 인생

  1. 매그넘 says:

    참 재밌게 읽었던 책인데 다시 기억이 납니다.

    • 김선미기자 says:

      참 재밌게 읽어주셨다는 말씀에 눈물이 날 정도로 감격스럽습니다. 깊은 감사 드립니다. ^^

  2. 바티 says:

    와~! 김기자님 쓰신 책이 있었군요! 발췌해주신 글만 보아도 역시 제 스타일입니다 ㅋㅋ

    • 김선미기자 says:

      에구…감사합니다. 우리 신년맞이 언제 함 봐야 하는데…^^

  3. 푸우 says:

    아마 김기자님이 쓰신 책이 구경 말고도 2권 더 있는걸로 알고 있는데…모녀지정과 Money and the City 던가요?

  4. 김순옥 says:

    이 길에 도전하는 여성인데 이책을 만나게 되어 너무 기쁩니다.
    구매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