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드레 김 선생님을 추억함

  “김선미 기자님, 안녕하셨어요”라는 선생님의 수화기 너머 목소리는
언제나 쩌렁쩌렁했어요. 댁에 놀러와 있는 손자의 신발만 봐도 반가워 가슴이 뛴다는 선생님은 평범한 우리 시대 할아버지의 모습이셨죠.
당신이 참 많이 그리워서 “아, 판타스틱해요”라고 칭찬해주셨던 제 오래된 오렌지 빛 재킷을 꺼내 쓰다듬어 봅니다. 

 

  모
패션잡지의 부탁을 받고 방금 전 선생님을 추억하는 짧은 글을 보냈다. 그 글을 보내고
난 뒤 슬픔이 밀려들어 이 블로그에도 선생님을 보내드리는 글을 올리겠다고 마음
먹었다.

  그는
가셨다. 내 여름휴가 기간 중 급히 병원으로 옮기시더니,  내가 일본으로 출장
가 있던 며칠 전에 순백색 세상으로 먼 여행을 떠나셨다. 그래서 선생님 가시는 길에
대한 기사를 내 손으로 직접 쓰지 못했다. 귀국해보니 선생님이 떠나신 소식이 신문을
장식하고 있었다. 가슴이 아련해진다.

  너무나
친근하셨던 그 분이 이제 우리 곁에 없다는 사실이 도저히 믿기지 않는다.

  

(2009년
4월 서울 강남구 신사동 앙드레김 아뜰리에에서 선생님과 함께)

 

  2005년
일본 후쿠시마현 고리야마 시에서 열린 2006년 봄 여름 앙드레김 컬렉션, 지난해
중국 상하이에서 열린 프리뷰 인 상하이 오프닝 쇼 등을 현지에서 지켜봤던 나는
매번 울컥한 감동을 느꼈다.

  그를
잘 모르는 사람들은 그의 말투와 패션으로 미뤄 짐작하며 앙드레 김 패션을 폄하
내지 희화화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가 정성들여 만든 옷을 가만히 보고 있으면 패션이
한낱 트렌드만은 아니라는 것을, 디자이너 한 명의 열정이 한 국가의 패션 아이덴티티에
어떻게 기여하는지를 저절로 깨닫게 된다. 왕관과 잉어 등 동양적 디자인 모티브,
고급스런 쪽빛, 여성스런 꽃장식과 레이스 등으로 수놓아진 그의 패션 무대는 ‘아,
대한민국에 이런 디자이너가 있어 자랑스럽다’는 마음을 절로 갖게 했다.

  그가
만든 얌전한 라일락색 또는 비둘기빛 투피스 정장을 중년엔 꼭 한 번 입어야지, 했는데
그가 너무 빨리 가셨다. 그래서 참 많이 슬프다.

 

  실은
선생님이 많이 편찮으시다는 소식을 접하고 이달 초 몇몇 패션계 인사들의 말씀을
미리 들어봤었다. 해외출장으로 선생님 부고 기사에 소개하지 못했던 그 분들의 추억을
이 블로그에 소개한다.

 

  "1960년대
당시 학원에서 앙드레 김은 연분홍색, 하늘색 등 파스텔 색상과 흰색을 많이 사용해
꿈꾸는 듯한 로맨틱한 느낌의 드레스를 주로 스케치했다. 얇고 부드러운 시폰 소재에
적용한 그의 화려한 자수 장식은 뛰어난 기술력이 뒷받침 된 것이다."(신혜순
국제패션디자인학원장)

 "평생
자신의 색깔을 찾지 못하는 디자이너가 수두룩한 패션계에서 앙드레 김은 자신만의
브랜드 아이덴티티를 찾고 부단히 키워내 귀감이 된다." (지춘희 미스지컬렉션
대표)

 "앙드레
김은 세계적 패션 트렌드를 자신의 패션 DNA 속에 녹여 넣어 이탈리아 패션 거장
조르지오 아르마니에 비견할 만하다. 보일 듯 말 듯한 작은 변화들로 오랜 세월 고객을
유지한 건 그가 얼마나 패션에 올인해 열심히 살았는지를 보여준다." (대한패션디자이너협회(KFDA) 회장을 지낸 안윤정 한국여성경제인협회장)

  "판타지아(fantasia).
즉 판타지와 아시아의 중어법. 환상적인 그의 패션엔 신비로운 아시아의 정신이 늘
깃들어 있었다." (간호섭 홍익대 패션디자인학과 교수)

 

  나
개인적으로는 이영애, 이서진, 김희선 등이 모델로 나선 국내외 앙드레김 패션쇼를
5,6회 정도 취재했던 것 같다. 미디어와 대사 부인들을 챙기던 그의 민간 외교, 여성의
품격을 강조했던 그의 여성론, 수많은 브랜드와 협업했지만 자신의 이름을 허투루
남발하지 않는 의외의 옹고집, 기념일에 보내는 흰 꽃 등 내가 발견한 앙드레 김의 요소들은 많다. 그렇다.
앙드레 김은 그 자체로 걸어다니는 인간 브랜드였다.

  이젠
2009년과 2005년 선생님을 만나 말씀을 나눴던 인터뷰 기사 두 개를 이 곳에 실어둔다. 지난해
선생님과 사진을
함께 찍을 때만해도 1년 여만에 이런 일이 생길 줄은 미처 몰랐다.  선생님,
부디 행복하세요. 그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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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 4. 동아일보>

 

오랜만에 들른 그곳은 여전히 ‘하얀 왕국’이었다. 디자이너 앙드레 김(본명 김봉남·74) 씨가 각국에서 모은 흰색 아기천사 석고상들이 곳곳에
놓여 있고, 흰 블라우스를 입은 직원들은 깍듯했다. 바로 서울 강남구 신사동 ‘앙드레 김 아뜨리에’였다.

 

중국 상하이에서
22∼24일 열릴 국제섬유박람회인 ‘프리뷰 인 상하이’의 오프닝 쇼를 준비하고 있던 앙드레 김 씨는 “귀하게 오셨어요. 플리즈,
플리즈(Please, please)” 하며 자리를 안내했다. 어쩌면 국민에게 너무나 친숙한 그의 외양과 언행 때문에 한국의 대표 전방위
디자이너, 경영자로서의 면모가 묻혔던 건 아닐까. ○“한국 패션의 세계화를 많이 고민”옷을 잘 모르는 사람들은
“앙드레 김 옷은 늘 똑같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의 옷은 변한다. 이번 상하이 쇼에서 선보일 중국풍 재킷은 어깨의 각이 단단하게 잡혔다.
세계적 트렌드인 ‘각진 어깨’ 요소가 녹아 들어간 것이다. 대중은 앙드레 김 씨의 화려한 패션쇼 의상에 익숙하지만 정작 그의 단골들은 베이지,
파우더 블루 색의 ‘품격 있는’ 정장을 입으러 이곳에 온다. 앙드레 김 씨가 직접 세 번씩 피팅(가봉)한다. ―세계적으로 오트
쿠튀르(고급 맞춤복) 시장이 줄고 있습니다. 대안이 있습니까.“그동안 바이어를 위한 옷 대신 예술적인 옷을 만들었어요. 하지만
랄프 로렌은 여러 기성복 라인을 만들죠? 저도 앞으로 ‘앙드레 김 우먼’ ‘앙드레 김 맨’ 같은 기성복을 만들어 백화점에서 팔고 수출도 할
계획입니다. 요즘엔 한국 패션의 세계화를 많이 고민하게 됩니다.”1962년 서울 중구 소공동에 ‘살롱 앙드레’를 냈으니
2012년이면 50주년이다. ‘앙드레’란 이름은 당시 교류하던 프랑스대사관 사람들이 “국제적 이름이 언젠가는 필요할 것”이라며 지어준 이름이다.
‘앙드레 김’은 정말로 국제적 이름이 됐다. 외교 사절들에게 각국 국경일에 맞춰 꽃을 선물하는 고객 관리, ‘품위, 교양미, 순수’ 등을
강조하는 브랜드 이미지 관리, 퇴근 후 술 마시고 담배 피우는 여직원을 (순수교양 이미지에 맞지 않는다고) 해고하는 냉혹한 직원 관리가 그간
‘앙드레 김 아뜨리에’란 회사를 키워온 힘이다. ○자전거 등 전방위 ‘앙드레 김’ 라이선스그는 란제리, 가전,
자전거, 도자기 등 10여 개 회사들과 디자인 라이선스 작업을 하고 있다. 한국을 대표하는 산업 디자이너인 셈이다. 그러나 과거 몇몇 유명
브랜드는 라이선스 사업을 남발해 브랜드 관리에 실패하기도 했다. 앙드레 김 씨에겐 그런 고민이 없을까.
“Exactly(맞습니다). 어디를 가나 열광적으로 반겨주시지만, 정작 제 옷엔 부담을 느끼는 분이 많잖아요. 그런 분들에게
‘앙드레 김’을 느끼게 하고 싶었어요. 지나친 대중화보다 지나친 신비주의가 더 나쁘다고 생각해요. 산업 디자이너란 칭찬은 과해요. 각 회사 제품
디자이너들이 제 패턴 자료로 디자인해 오면, 전 최종 ‘컨펌(확인)’을 하니까요.”―옷 매출과 라이선스 비중은 어떻게
됩니까.“(난처한 표정으로) 그건 밝히기 곤란한데요. 라이선스로 많이 법니다.”최고경영자(CEO) 앙드레 김 씨는
고독하다. 50여 명의 직원을 이끌지만 주요 의사결정은 혼자 내린다. 후계자는 아직 정하지 않았다. 왜일까.“조직 운영은 후계를
정할 수 있어도, 디자인 후계는 억지로 정할 수 있는 게 아닌 것 같아요. 무엇보다 아직 도전하고 싶은 분야가 너무 많아요. 암벽 등반 등
익스트림 스포츠웨어도 만들고 싶거든요.” 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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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
5. 동아일보>

 

패션 디자이너 앙드레 김(70)은 ‘민간 문화외교사절’로 불린다. 국악 가요 오페라 등을 넘나드는 음악과 쇼, 동서양 문명을 조화시킨 디자인은
일종의 ‘종합 예술’로 해외 패션계의 찬사를 받는다.

 

앙드레 김이 7일 오후 일본 후쿠시마(福島) 현 고리야마(郡山) 시에서 내년
봄 여름 컬렉션 175벌을 선보이는 패션쇼를 열었다. 왕관과 잉어 등을 즐겨 장식하는 그의 옷은 “늘 같다”는 평을 듣기도
하지만, 이번에 선보인 작품들은 크게 달랐다. 꽃장식이나 레이스 등 디테일은 품위와 여성미를 갖춰 외출복의 고급스러운 멋을 더했으며, 엠파이어
라인으로 순결하게 표현한 웨딩드레스는 지적인 절제미를 드러냈다. 이날 앙드레 김 패션쇼에는 3000여 명의 일본인들이 환호했다.
당초 유료(3만 원) 관람 관객이 9000여 명에 이르러 주최 측이 추첨을 통해 선정할 정도로 현지의 관심을
끌었다.○어떻게 달라졌나앙드레 김 디자인의 특징은 ‘블랙 앤드 화이트의 지적이고 도시적 감각을
아방가르드 분위기로 풀어내는 것’이다. 흰색 목둘레와 옷 전체에 흰색 줄무늬가 있는 검은색 옷을 자주 선보이는 것도 그런
이유다. 

 

이번에는 검은색 대신 짙은 군청색을 택했다. 그는 “전반적으로 푸른 색 계열의 매력에 푹 빠졌다”고 말했다. 호수를
연상시키는 쪽빛(아쿠아 블루), 환상스러운 터키색, 광택 있는 녹색을 띤 청색(피콕 블루)과 푸른 느낌이 감도는 보라색까지. 이들 색감은
하늘하늘한 시폰, 윤기 흐르는 자카드 소재 등과 만나 밀도가 더욱 짙게 살아났다.꽃분홍색, 주황색, 빨간색 등 앙드레 김 특유의
강렬한 온색 매치는 어느 때보다 섬세한 디테일을 통해 정돈됐다. 몸을 따라 흐르는 시폰 드레스의 허벅지 위쪽 부분에는 광택이 감도는 빳빳한
오간자 소재로 커다란 장미 장식을 달았고, 소매를 봉곳 올린 얌전한 실루엣의 아이보리색 투피스 스커트 아랫단 밑으로는 확 퍼지는 흰색 레이스를
붙였다.남성 슈트의 경우 스리버튼이 많았으며, 여성 웨딩드레스는 허리선을 높이고 보디 라인을 살려 보다 젊은 감각을 선보였다.
그의 웨딩드레스는 450만∼600만 원이다.○그만의 종합예술이번 쇼는 무대 위에 은색 종이 가루가
흩뿌려지면서 시작됐다. 순백색 원피스 위에 비닐 망토를 걸친 팔등신 모델들은 발등이 훤히 내비치는 비닐 소재 스트랩 구두를 신고
있었다.“퓨처리스틱(futuristic·미래적인) 로맨티시즘을 표현하고 싶었어요.”배우 지성 등 꽃미남
모델들은 검은색 시스루 티셔츠와 비닐 망토를 통해 상반신을 숨김 없이 노출시켰다. 여성 관객들에 대한 일종의 팬 서비스인데 쇼의 스토리에 힘입어
객석의 분위기를 한껏 고조시켰다.

 

그는 매번 남녀 스타를 모델로 등장시켜 애절한 이별 뒤 다시 만나 결혼에 성공하는 ‘해피
엔딩’으로 쇼를 마무리한다. 그래서 언제나 피날레 의상은 웨딩드레스와 턱시도다.푸치니 오페라 ‘나비 부인’ 중 허밍 코러스,
김소희의 ‘뱃노래’, 김범수의 가요 ‘사랑해요’, 드라마 ‘천국의 계단’의 삽입곡 ‘아베 마리아’ 등 그때그때 적절한 배경 음악이 패션쇼를 더욱
드라마틱하게 만들었다. 앙드레 김은 모델을 쓸 때 개성적인 얼굴보다 우아하고 고전적인 얼굴을 고집하고
있다.후쿠시마=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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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드레 김이 걸어온 길>

1935년 경기 고양 출생. 본명은 김봉남(金鳳男)

1959년 박종호 감독의 영화 ‘비오는 날의 오후 3시’에 프랑스 종군기자 역할로 출연

1962년 서울 국제복장학원 졸업 후 서울 중구 소공동에 의상실 ‘살롱 앙드레’ 오픈

        반도호텔 다이너스티 룸에서 첫 의상발표회

1966년 국내 디자이너로는 최초로 프랑스 파리에서 패션쇼

1982년 생후 18개월이던 아들 중도(中道) 씨 입양

2000년 프랑스 정부가 수여하는 ‘예술 문학훈장’ 수상

2005년 ‘제39회 납세자의 날’ 기념식에서 모범 납세자로 국무총리 표창

2009년 앙드레 김 주얼리 런칭

 

 

 

 

카테고리 : 패션 스타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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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2) 앙드레 김 선생님을 추억함

  1. 바람처럼 says:

    권위적이지 않고 봉사하고 대한민국에 대한 애정이 남달랐던 분이,
    어눌한 말투와 정형적인 단어들로 하여 진정성이 함몰되어 버린 듯
    하군요. 정치인들과 달리 일부러 칭찬하려고 들지도 않을 분야이고
    상대인지라 가신 이의 진 면모는 이제부터 하나하나 들쳐 지게
    되겠네요. 명복을 비옵니다.

  2. dam2391 says:

    흑흑 너무나 슬프당
    권위적이지 않고 봉사하고 대한민국에 대한 애정이 남달랐던 분이,
    어눌한 말투와 정형적인 단어들로 하여 진정성이 함몰되어 버린 듯
    하군요. 정치인들과 달리 일부러 칭찬하려고 들지도 않을 분야이고
    상대인지라 가신 이의 진 면모는 이제부터 하나하나 들쳐 지게
    되겠네요. 명복을 비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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