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리터리 패션을 보는 남자들의 시선 그리고 콤 데 가르송

   “자기야. 이리 와서 한 번 봐.”

   남편이 묵은 옷들을 정리하다가 내민 옷은 자신이 오래 전 입던 군복이었다.

 

   올 가을 유행할 거라는 밀리터리룩(군복 스타일)의 원류와 마주친 나는 탄성과 함께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가슴에 남편의 이름 석 자가 새겨 있는 이 카키색 군복을 멋들어지게 입는 방법을 궁리하느라 나의 우뇌는 정밀 기계회로가 작동하듯 분주하게 움직였다.

 

  “음. 군복이 크니까 허리를 가는 벨트로 조여 모래시계 라인을 만들면 좋겠어. 레이스 스커트를 함께 입겠어. 올해 수많은 브랜드들이 패션쇼에서 하이힐 속에 스타킹 대신 양말을 신는 패션을 선보였으니, 옅은 카키색 발목 양말도 함께 신을까 해.”

 

  패션 화보의 비주얼을 염두에 둔 나의 의기양양한 답변은 올 가을 트렌드 요소의 집결판이라 할 수 있었다. 밀리터리룩, 가는 벨트, 레이스, 그리고 양말 패션…. 이미 백화점엔 여성용 군화도 많이 나와 있다.

  남편은 물었다. “가슴에 달린 내 이름표는 어떡할건데?”

  “당신의 이름을 누군가 알아볼까 겁난다면 리본 브로치로 살짝 가릴 용의는 있어.”

  

  남편이 “못 말려”라고 말할 때까지만 해도 나는 정말로 그의 군복을 입고 지하철을 타고 출근할 기세였다. 그러나 이 야심찬 계획을 들은 한 남자 후배가 “머리에 커다란 꽃까지 달면 금상첨화겠네요”라고 말하던 순간, 위풍당당했던 나는 금세 소심해졌다. ‘머리에 꽃을 달고 미친 척 춤을, 신도림역 안에서 스트립쇼를, 야이야이야이야이야’라고 외치던 ‘확 깨는’ 내용의 자우림의 가요 ‘일탈’도 떠올랐다.

  

  한껏 풀이 죽어 군복 입기를 포기한 내게 남편은 “잘 생각했어. 대한민국의 남자라면 십중팔구 군복 차림의 당신을 보면 군복의 주인인 나를 불쌍하게 생각할거야. ‘어쩌다 자기 여자가 군복을 입고 활보하게 내버려둘까’라고.” 또 다른 남자 후배는 “민간인이 군복을 입고 다니면 벌금 또는 구류의 처벌을 받을 걸요?”라는 무시무시한 말도 했다.    

  

  그런데 최근 서울 용산구 한남동에 문을 연 일본의 아방가르드한 패션 브랜드 ‘콤 데 가르송’(Comme des garçon·‘소년처럼’이란 뜻의 프랑스어) 플래그십 스토어에 들어선 나는 당초 품었던 계획이 그리 황당한 건 아니었음을 깨달았다. 늘 카리스마 넘치는 일자 앞머리 스타일을 고수하는 일본의 국가대표 급 패션 디자이너 레이 가와쿠보 여사(67)는 실제 군복과 흡사한 바지, 잠바, 가방 등을 내놓았다. 니트 원피스 밑단에 군복 문양의 얇은 천을 나풀나풀 달기도 했다. 이 옷들의 놀랍도록 비싼 가격을 만약 남편이 봤다면 “그냥 내 군복 입어”라고 했을지도 모르겠다. 

  

  1969년 전위적 디자인으로 첫 컬렉션 라인을 선보인 뒤 1981년 프랑스 파리에서 찢어지고 헐렁한 일명 ‘푸어 룩’(poor look·가난한 차림)으로 찬사와 비난을 동시에 받았던 콤 데 가르송. 이 브랜드는 패션 리더와 예술가를 주요 고객으로 삼고 있다. 음표 모양의 모자를 만들 정도니. 국내에선 애석하게도 ‘하트 모양의 플레이(Play) 라인=콤 데 가르송’으로 많이 알려져 있지만 레이 가와쿠보의 후계자 중 한 명인 쿠리하라 타오의 ‘타오’ 라인, 밀리터리 룩을 선보이는 ‘준야 와타나베’ 라인 등 무려 13개 라인이 있다.

 

  다만 최근 일본 도쿄 아오야마의 콤 데 가르송 매장에 다녀온 내 눈에 아쉬웠던 건 제일모직이 전개하는 한국 콤 데 가르송 매장의 제품 가격이 일본에 비해 25%나 비싸다는 점.

  그럼에도 콤 데 가르송은 패션 감성을 업그레이드하기 위해 당신이 들락거릴만한 곳이라 생각한다. 사진을 감상해주시길.

 

 

 

 

 

 

 

 

-한남동
‘콤 데 가르송’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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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여름 옷의 아름다움

간만에 패션 기사를 쓸까, 하고

밤늦게 회사에서 패션잡지 몇 권을 정독했더니(오늘 야근 중입니다),

이미 올 가을 겨울을 다 살아버린 듯합니다.

 

이건 소위 말하는 패션 피플들이 흔히 겪는 증상인데요.

독자(또는 시청자 등등 일반적 대중)들에게 트렌드를 소개하기 위해 대개 6개월-1년을
앞서가다보니,

정작 트렌드는 오지도 않았는데도 이미 서둘러 질려버리는 증상이죠.

예를 들면 캐멀색, 빨간 립스틱, 검정 레이스 등이 이에 해당합니다.

 

패션의 유효기간은 얼마나 될까요.

대개는 6개월입니다.

언제 전위적인 패션이 유행했냐 싶다가

새침떼기 여성적인 룩이 화려하게 상륙하니까요.

 

그래서 전 요즘 우리 것의 진가를 새삼 깨닫는 중입니다.

폭염이 휩쓸었넌 2010년 8월이 이제 딱 하루 남았죠.

그래서 우리 여름 옷 세 가지를 소개할까 합니다.

제주 갈옷, 한산 모시, 경주 인견 입니다.

 

이국의 패션 런웨이를 소개할 수 없어

쑥스럽게도 하는 수 없이 제 옷들을 소개합니다.

 

(제주 갈옷)

 

(한산 모시)

 

(경주 인견)

 

이 세 옷의 특징은

폭염도 무섭지 않은 시원함입니다.

게다가 다른 합성섬유와는 비교도 안 될만큼 촉감이 좋습니다.

 

어디서 사는가 궁금한 분들을 위해 말씀드리면

제주 갈옷과 한산 모시는 모두 현지에서 구입했습니다.

경주 인견은 신세계백화점 지하 식품매장 옆 할인코너에서 샀습니다.

(참고로 이 때 재미난 에피소드가 있었습니다. 주로 중년 이상 대개는 할머니
고객들이 인견으로 만든 이불과 옷 등을 구경하고 있었는데, 제가 이 옷을 사겠다고
하자 판매 직원이 말렸습니다. ‘나이도 젊으신데…(왜…)’ 에고고…패션 담당
기자인 저는 이미 머리속으로 이 인견 블라우스의 문양이 일본 벚꽃 등 동북아의
디자인 모티브를 담고 있고, 이번 시즌 에스닉 문양과 일맥상통한다는 계산을 하고
있었는데 말이죠. ^^)

 

해외를 드나들 일이 비교적 많았던 저이지만,

요즘엔 우리 국토, 우리 먹거리 등 온통 우리 것의 귀함에 푹 반해 있습니다.

우리 옷도 마찬가지지요.

 

오늘 야근을 하느라

몸을 편안하게 해 주는

일본 패션 브랜드 ‘이세이 미야케’의 블라우스와 스커트를 입고 출근했습니다.

‘이세이 미야케=주름’이란 공식은 비교적 널리 알려진 편이라,

몇몇 신문사 선후배들도 브랜드를 알아봐주실 정도였습니다.

 

우리 옷도

세계의 옷이 돼서 그렇게 만국인이 ‘아, 한국의 옷’ 이렇게 평가해주는 날이 왔으면
좋겠습니다.

우리 모두가 우리 국토 곳곳의 아름다움을 찾아 여행을 하다가

그 곳의 아름다운 선과 색이 물든 옷의 진가를 알아봐 줄 때, 꼭 그렇게 될 겁니다.

홧팅, 우리 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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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텔, 갤러리로 변하다

8월27일 신라호텔에 다녀왔습니다.

8월27-29일 이 곳에서 열린 ‘아시아 톱
갤러리 호텔 아트 페어(AHAF)’를 취재하기 위해서였죠.

 

우와…

멋졌습니다.

신라호텔 12, 14, 15층 3개 층의 90개 객실은 국내외 작가들의 작품이 즐비한
갤러리로 완벽하게 변신했습니다. 각각의 객실 출입문엔 유명 갤러리들의 문패가
달려있었죠. 객실에 들어서니 침대 위에도, 창가에도, 심지어 화장실 욕조에도 미술품이 전시돼 있었습니다. 이 기간 선보인 작품이 무려 3000여 점입니다.

 

AHAF는 이번이
4회째입니다. 2008년 8월부터 일본 도쿄 뉴오타니호텔, 서울 용산구 한남동 그랜드하얏트호텔(2009년 8월), 홍콩 그랜드하얏트호텔(올해
2월)에서 열렸습니다.

일단 이 곳의 분위기를 사진으로 느껴보세요. ^^

 

 

 

 

 

 

 

 

 

 

 

 

 

AHAF에 흠뻑 빠져 다음날인 토요일 다시 갔습니다.

전날인 금요일엔 취재를 하느라 정신이 없었는데,

휴일에 다시 가니 그림들이 더 잘 보였습니다.

세상에…10여 년 연락이 끊긴 대학 동창, 몇 년 간 소식이 뜸했던 친구 등

여러 지인들도 우연하게 만날 수 있었습니다.

어떤 이는 중국 베이징의 한 갤러리에서 일하고,

어떤 이는 딸과 함께 그림 구경을 나왔습니다.

 

이날 전 이 그림과 사랑에 빠졌습니다.

젊은 작가 성영록 씨의 작품입니다.

 

 

신라호텔에선

유명 화상들 뿐 아니라 작가들도 직접 만날 수 있었습니다.

흰 캔버스화 차림의 순박한 30대 초반 청년인 성영록 씨도 만날 수 있었습니다.

추사 김정희 선생의 ‘장무상망(長毋相忘)’-오래도록 서로 잊지 말기를-과
‘하얀 꽃 피어나다’란 제목의

시리즈 작품들을 선보이는 그의 매화
작품은 중국, 일본, 한국 등 동양의 모든 미가 함축돼 있는 게 볼수록 오묘했습니다.

그는 매화를 그리기 위해 전국 방방곡곡을
줄창 다닌다고 합니다.

올 초 전남 해남에서 봤던 매화가
불현듯 생각났습니다.

 

실은,

이 그림과 사랑에 빠지기 전,

저는 다른 그림에 반해있었습니다.

그래서 이 그림과 연을 맺으려 할
때,

매우 망설였더랬습니다.

어떤 걸 골라야 더 행복할 수 있을까…

(사실 그림이 떡볶이처럼 싼 가격이 아니잖아요. 저를 비롯한 대개의 일반인들은
큰 맘을 먹어야 장만하죠.)

경제학의 기회비용 문제가 발생하던 순간이었습니다.

 

오늘 제 인생 선배 한 분이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인생은 직관을 키우는 과정인 듯해."

그림 구경 갔다가 또 삶의 지혜를 얻었습니다.

 

매화 총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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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가 좋아졌다

 

 

<2010년 8월27일 동아일보에 제가 직접 사진 찍고 글로 쓴 ‘백제의 미’ 기사입니다>

 

눈을 감아도 그의 기품 있는 풍채가 잔상(殘像)이 된다. 수줍은 연정을 품게 된 것이다.8월의 중순 새벽 아침. 그를 찾아갔다.
서둘러 재회하고 싶은 조바심. 이른 시간이라 입장객을 아직 맞지 않는 돌담 밖에서 까치발로 하염없이 바라봤다. 동쪽 하늘에선 해가 떠올랐다.
카메라 셔터를 누르자 아침 안개와 일출이 어우러져 수묵화 느낌의 사진이 됐다.그는 충남 부여군에 있는 국보 제9호 정림사터
오층석탑이다. 백제의 다른 목조 건축물이 죄다 불타 사라질 때 1400년을 꿋꿋이 견뎌온 석탑. 유홍준 명지대 교수(전 문화재청장)는 저서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에서 ‘아침 안갯속의 정림사 탑은 엘리건트(elegant)하고 노블(noble)하며, 그레이스(grace)한 우아미의
화신’이라고 썼다. ‘검소하지만 누추하지 않았다는 백제 미학의 상징적 유물’이라고도 했다.폭염이 내렸으나 그를 갈구하는 마음을
막을 바는 아니었다. 작열하는 태양 아래 또다시 그를 보러 갔다. 멀리서 보고, 가까이서 보고, 옆에서 보고, 뒤에서 보고….그는
평탄한 옥개석(屋蓋石) 때문인지 자기중심을 확실히 잡고 있는 남자 같았다. 쌍꺼풀 없는 눈매에 부드러운 미소를 담고 ‘그래, 그래. 괜찮아’라고
위로해주는 남자. 판석 마무리가 살짝 치켜 올라가 은근한 유머 감각도 갖춘 남자. 누군가 이 석탑이 왜 여자가 아닌 남자냐고 묻는다면 이렇게
답하련다. “성정(性情)은 장중한 바위이되, 목탑 양식의 모습으로 단정하게 살아온 ‘남자의 지고지순’이 전해져요”라고.정림사터
오층석탑을 향한 흠모는 백제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졌다. 마침 올해 ‘대충청 방문의 해’를 맞아 다음 달 18일∼10월 17일 부여군과 공주시에서
‘2010 세계 대백제전’도 열린다. 그간 고구려와 신라의 휘황찬란한 기세에 밀려 주목받지 못했던 백제 역사를 다룬 KBS 대하드라마
‘근초고왕’도 10월 방송될 예정이다. 백제의 둥근 해가 떠오르고 있다.

 

우리 문화재에 대해 많은 저술을 해 온 이광표 동아일보 문화부 기자는 “왜 하필 지금 백제일까요?”란 후배 기자의 순진무구한 질문에 “백제가
가진 중용(中庸) 때문이 아닐까”라고 했다. 자극과 극단이 과한 시대에 누가 봐도 편안한, 부담스러운 기교를 부리지 않은 백제의 미(美).
‘나이키’ 운동화 끈을 동여매고 그 담결(淡潔)한 미를 찾아 나섰다.

 

○ 우아한 인간미의 백제 답사
준비
성인이 돼서 다시 떠나는 수학여행인 셈이었다. 우선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와 안휘준 서울대 명예교수(한국미술사),
이광표 기자의 공저 ‘한국미술의 미(美)’를 입문서 삼아 정독했다. 신영복 성공회대 석좌교수가 저서 ‘나무야, 나무야’에서 “스산한
고도(古都)에서 우리가 하는 일이 고작 (백제가 나당연합군에 멸망한) 비극을 미화하는 감상(感傷)에 그쳐서는 안 된다”고 경고한 걸 기억했기
때문이다.기원전 18년 한강 유역에 건국된 백제는 이후 도읍을 웅진(지금의 공주·475∼538년), 사비(지금의
부여·538∼660년)로 옮기며 문화를 꽃피웠다. 웅진시대는 무령왕릉과 출토 유물에서 알 수 있듯 중국의 선진 문물을 적극 받아들인 시기다.
백제인의 예술적 역량이 함축된 백제금동대향로가 만들어진 사비시대는 세련된 공예가 발달한 백제 문화의 절정기였다.한국
고고미술사학계의 태두로 꼽히는 고 삼불(三佛) 김원용 선생은 백제 미의 특색을 ‘우아한 인간미’로 정의했었다. 금동미륵보살반가상에 대해선
“백제의 미소를 띤 이 불상은 비종교적인 종교 조각이라고 할 만큼 인간적”이라고도 했다.책장을 들출수록 백제는 온유한 연꽃으로
피어났다. 박물관을 들르지 않으면 답사가 아니라 풍광 기행에 불과하다는 유홍준 교수의 일침이 따끔해 1박 2일의 부여·공주 답사 코스엔 유적지
이외에도 국립부여박물관과 국립공주박물관 관람도 포함시켰다. 백제 문화라면 고작 얄팍한 상식을 지닌 나는 ‘다른 사람들이 갑론을박한 개념의 늪에
빠져 허우대지 말자. 나만의 상상력으로 편견 없이 백제에 다가서자’란 결심을 했다.○ 백제금동대향로와의 대화

 

 

김영혜 충남 문화관광 해설사는 말했다.“부여 답사는 타이밍을 잘 맞춰야 합니다. 아침엔 운치 있는 안개를 담요처럼 덮은 정림사터
오층석탑과 궁남지의 연꽃을 둘러보세요. 오후에 부소산을 산책하고 난 뒤에는 국립부여박물관에서 1300여 점의 전시 유물들과 대화를
하세요.”부소산행까지 그의 제안을 충실히 따른 뒤 국립부여박물관에 갔다. 백제를 대표하는 유물 중 금동미륵보살반가상(국보
제83호)은 서울 국립중앙박물관에 있지만, 1993년 능산리 절터 발굴에서 비로소 모습을 드러낸 백제금동대향로(국보 제287호)는
국립부여박물관에 있다.높이 61.8cm, 무게 11.85kg인 향로 앞에서 나는 한참을 꼼짝 않고 서 있었다. 용틀임으로 이뤄진
향로 받침, 연꽃과 도교의 봉래산을 형상화한 몸통, 날개를 활짝 펴고 정면을 응시하는 향로 뚜껑의 봉황 등은 놀랍도록 역동적이고도
정교했다.선이 날렵한 용의 두상 앞에선 엉뚱 발랄하게도 고대 서사시를 원작으로 한 미국 판타지 애니메이션 영화 ‘베오울프’의
금룡(金龍)도 떠올렸다. 백제 사람들에게 성스러운 용이 고대 스칸디나비아 사람들에게는 혼돈의 화신이었다는 큰 차이가 있지만, 둘의 이미지는
흡사한 측면이 있었다. 용이 땅에서 떠받치고 봉황이 하늘을 지켜주는 금동대향로에는 갖가지 동물들과 악사들이 살고 있었다. 그 향로와 잠시 상상의
대화를 나눴다.▽기자=“당신은 위덕왕, 무왕, 의자왕에 걸친 백제 말기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더군요.”▽향로=“위덕왕의 아버지인 성왕은 일본에 불교를 전했고, 위덕왕의 아들인 무왕은 걸출한 기상으로 백제인의 사기를
높였소. 의자왕의 왕권도 한동안은 강력했다오. 실은 나는 백제의 영화(榮華)를 가득 담아 인간이 상상할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곡선의 운율이
되고 싶었소.”(참조: 국립부여박물관의 ‘백제의 미’, 박영규의 ‘백제왕조실록’)▽기자=“당신이 온몸에 담고 있는 태평성대가
역사적 해석이 분분한 의자왕 때라면….”

 

▽향로=“삼천궁녀가 낙화암에서 떨어졌다는 ‘거지 같은’ 전설을 맹신하오? 백제를 두 번 욕되게 하지 마시길. 어느 옛 시인이 읊었다고 하잖소.
‘강산이 이토록 좋으니 의자왕은 죄가 없도다’라고.”(참조: 유홍준의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힘찬 백제의 기상, 치미와
하앙
부여를 다루는 여행 책자들은 다시 쓰여야 한다. ‘백제문화권 종합개발계획’이 확정된 1994년부터 무려 17년이 걸린
백제문화단지가 다음 달 용안(龍顔)을 드러내기에.부여군 규암면 합정리 일대에 국비와 민간자본 등 6094억 원이 투입돼
329만4000m&sup2;(약 99만6000평)에 재현되는 1400년 전 백제의 모습이다. 대목장, 단청장, 번와장(번瓦匠·지붕 기와를 잇는 장인),
각자장(刻字匠·목판에 글자를 새기는 장인), 칠장 등 5개 분야 중요 무형문화재의 손길을 거쳐 사비궁, 능사, 위례성 등이 자리를 잡았다.
백제로 여행을 떠나려면 이젠 백제문화단지부터 들르고 볼 일이다.한국 방문의 해 위원회와 충남도의 협조로 마무리 공사가 한창인
백제문화단지를 미리 둘러볼 수 있었다. 삼국시대 왕궁으로는 최초로 재현된 사비궁에 들어섰다.웅대한 기상을 느끼기 위해 궁궐의 가장
중심 건물인 천정전을 멀찌감치 바라보며 털썩 주저앉았다. 바닥엔 연꽃무늬 타일이 자지러지게 피었다. 이른 새벽 궁남지의 연꽃, 공주 무령왕릉의
전돌과 국립부여박물관의 수막새(수키와의 한쪽 끝에 원형의 드림새를 덧붙여 제작한 것)에 새겨져 한껏 눈에 익은 그 연꽃….안내를
맡은 충남 백제문화권관리사업소의 이강복 씨는 백제의 미를 이루는 핵심 요소인 ‘치미(치尾·용마루 양쪽 끝에 얹는 특수 장식물 기와)’와 백제
건축의 특징인 ‘하앙(下昻·45도로 경사지게 돌출해 처마를 지탱하는 구조물)’에 대한 설명도 빼놓지 않았다.새의 깃털이 모티브인
치미는 대형 사찰에만 사용돼 극히 드물게 출토되는 백제의 귀한 유물이다. 부소산 절터에서 출토된 후 복원돼 국립부여박물관에 소장된 게 유명하다.
건축물의 품격과 권위를 드러내는 치미를 사비성 지붕 끝에서 볼 수 있게 된 건 흐뭇한 일이었다.

 

<백제문화단지 사비성의 치미>

 

<백제문화단지 사비성의 하앙>

 

 

현존하는 백제의 목조 건물이라곤 없는데도 문헌 연구, 발굴 조사로 드러나는 사출 유구(遺構·옛 건축물의 흔적)를 토대로 귀중한 백제를 살려내신
분들, 능사 앞 연못에 달이 비치는 각도까지 정밀하게 시뮬레이션한 분들, 그동안 참 고생 많으셨습니다!○ 백제의 섬세한 손
공주 송산리 고분군 중 한 무덤인 무령왕릉은 1971년 발굴 도중 무덤의 주인공인 백제 제25대 무령왕에 대한 묘지석이
발견돼 세간의 관심을 끌었다. 국내에서 무덤 주인을 확인한 최초의 왕릉일 뿐 아니라 도굴의 피해를 입지 않은 고분이었던 것이다.
무령왕릉과 국립공주박물관에서 본 108종 2906점의 유물 중엔 유럽의 그 어떤 장식미술보다 빼어난 기술력의 금속 공예품이
수두룩했다. 박물관 측은 매우 작은 크기의 금 장신구들 앞에 돋보기를 놓아 관람객들이 백제의 장인정신을 확인할 수 있게
했다.그곳에서 내 마음은 고귀한 왕비가 됐다. 2mm 두께의 얇은 순금 판에 인동당초와 불꽃 무늬를 새긴 관(冠)장식(국보
제154호)은 왕이 비단모자에 꽂았던 것이라 하는데, 보면 볼수록 그 섬세함에 탄복하게 된다. 검은 옻칠을 한 표면에 금판으로 육각형의 거북 등
무늬를 만들어 붙인 왕의 베개, 용 장식의 왕비 은팔찌 등은 백제 왕실이 향유했던 공예미술의 극치였다. 국립부여박물관의 은자루 유리공 머리
장신구도 로맨틱했다. 공 표면에 잎 모양의 은판 네 장을 붙이고, 가운데엔 하트 모양을 투각했다. 왜 우리는 전통 공예의 우수성을 애써 간과한
채 서양의 금속공예만 해바라기처럼 쳐다봤는지 부끄러움이 밀려들었다.백제문화단지 사비성의 오방색 단청도 백제의 미를 보여주는 한
예라고 생각했다. 명도와 채도를 일부러 낮춰 기품을 갖춘 색감은 은근하면서도 고급스러웠다. 요즘 세계적 패션 디자이너들이 심취해 있는 뉴
미니멀리즘(간결함을 추구하는 문화적 흐름인 미니멀리즘의 재유행)의 원류라고도 할 수 있다.왕조의 옛 도읍인데도 여태껏 군 단위인
부여, 송산리 고분군 이외엔 장대한 유적이 없는 공주. 두 곳은 인고의 세월을 거쳐 바야흐로 손님을 맞을 채비가 됐다. 세계 대백제전을 맞아
그동안 변변한 숙박시설이 없던 부여엔 롯데리조트, 공주엔 한옥마을 숙소가 새로 생겨났다. 우아한 백제 마마, 뒤늦게나마 때를 만나셨으니 부디
행복하소서.글 사진 부여·공주=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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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를 여행하는 여섯 가지 방법

<동아일보 8월20일 위크엔드 섹션에 제가 쓴 기사입니다>

 

 

“도쿄(東京)는 퍼즐 같아요.”마주 앉아 판 메밀을 함께 먹던 남자가 말했다.“왜죠?” 나는
물었다.“도쿄에 가는 이유가 제각각이잖아요. 누구는 먹으러, 누구는 옷을 사러, 누구는 야구를 보러….”듣고 보니
그런 것 같았다. 도쿄의 구석구석을 찍은 사진을 여러 장 짜 맞춰 거대한 도쿄타워 모양의 퍼즐을 만들면 재밌을 것 같다는 대화를, 우리는
나눴다. 가까운 뉴욕 같다는 말도 나왔다. ‘잃어버린 20년’이란 말이 나올 만큼 일본의 나라 살림이 각박해졌지만 그래도 여전히 세계의 인기
있는 트렌드가 집결하는 그곳, 도쿄.도쿄행 비행기 티켓을 손에 넣고는 다짐했다. 큰맘 먹고 장만한 렌즈교환식 디지털
카메라(하이브리드 카메라)를 들고 다니며 퍼즐을 맞춰 보리라. 여섯 개 ‘도쿄 감성’ 퍼즐을….#퍼즐 1: 샤넬
레스토랑에서의 점심
엘리베이터의 동그란 버튼마다 샤넬 마크가 그려져 있었다. 프랑스 럭셔리 브랜드 ‘샤넬’이 5년 전 도쿄
긴자(銀座) 지역만 콕 찍어 문을 연 레스토랑, ‘베이지 알랭 뒤카스 도쿄’다. “정말요? 다른 나라엔 ‘샤넬 레스토랑’이 없단
말이죠?”탐정 같은 눈초리로 묻자 지배인은 빙그레 미소를 지으며 “네. 그렇습니다”라고 답했다. 긴자의 샤넬 매장
옆쪽에 난 레스토랑 입구엔 프랑스의 유명 셰프인 알랭 뒤카스의 요리책과 샤넬 ‘넘버 5’ 향수가 진열돼 있었다. 예약을 확인하는 여직원은 샤넬
부티크의 점원들이 입는 블랙 앤드 화이트의 샤넬 옷을 입고 있었다. “알랭 뒤카스 씨는 자주 오나요?”“파리에 사는
그는 1년에 5번 정도 오십니다. 메뉴와 시설 등을 점검하기 위해서입니다.”애피타이저와 메인 요리, 디저트와 커피 등이 포함된 이
레스토랑의 점심 세트 메뉴는 5000엔(약 7만 원). 식전주로는 코코 샤넬 여사의 이름을 딴 ‘코코’ 칵테일을 골랐다. 차게 한 호박 수프,
구운 아스파라거스를 곁들인 새우 요리가 차례로 나왔다.‘샤넬’이란 이름의 디저트는 금가루를 듬뿍 뿌린 네모난 초콜릿이었다. 커피와
함께 나온 또 다른 초콜릿들엔 샤넬의 시그너처 디자인인 동백꽃이 정교하게 조각돼 있었다. 모든 게 ‘샤넬 스타일’이었다. 미국
뉴욕의 유명 건축가 피터 마리노가 디자인한 실내의 벽면엔 샤넬 쇼핑백을 들고 있는 서구 여성의 흑백 사진이 걸려 있었다. 기모노 차림에 진주
브로치를 한 중년 여성, 아이보리색 카디건과 얌전한 주름 스커트를 입은 젊은 여성 등이 조곤조곤한 목소리로 대화를 나누며 웃었다. 정적이고도
우아한 애티튜드!오후 1시 반에 시작된 점심식사는 4시가 돼서야 끝났다. 간결하면서도 혁신적인 패션과 다이닝의 조화. 알랭
뒤카스가 이 레스토랑에 담고 싶은 ‘샤넬 정신’이란다.#퍼즐 2: 불가리 보석을 감상하며 커피를
마시다
긴자 샤넬 매장 대각선 맞은편엔 럭셔리 보석 브랜드인 ‘불가리’ 건물이 있다. 안구가 정화되는 보석 매장(1, 2층)
이외에도 레스토랑(8, 9층), 바(10층), 테라스(11층)에서 식도락을 누릴 수 있다.10층 바에 들어서니 긴자 일대가 훤히
내려다 보였다. 미쓰코시 백화점, 리코 카메라, 애플, 그리고 빨간색 도쿄타워…. 해질녘
도쿄타워 전망으로 자리를 잡으니 테이블
위엔 작은 선인장 화분이 있었다. 점심 파스타 세트는 3500엔, 모히토 칵테일은 2300엔, 그리고 주머니가 가벼운 여행자에게
그나마 반가운 카푸치노 커피는 900엔(약 1만2600원).바리스타가 흰색 거품으로 하트 모양을 만들어 내온 커피를 보고 있자니
뜬금없이 울컥한 마음이 들었다. 일본 영화 ‘도쿄타워’에서 20대 남자 도오루는 불가리 다이아몬드 목걸이가 어울리는 40대 여자 시후미와 사랑에 빠져 말했었다. “시후미 상, 스무 살의
 당신을 만나고 싶어요.”바 곳곳에 진열된 불가리 표 초콜릿 세트, 유리 장식장에서 위용을 뽐내는 보석 반지를
찬찬히 구경했다. 1950년대 신사가 메릴린 먼로의 금발을 좋아했다면, 2010년대 럭셔리 브랜드들은 초콜릿을 좋아하는 게
틀림없다. 긴자에 있는 일본 화장품 브랜드 ‘시세이도’ 매장도 갤러리, 레스토랑과 함께 초콜릿 가게를 운영하니까. 럭셔리와
초콜릿. 달콤한 유혹이란 점에서 둘은 같은 유전자다.쥘리에뜨 비노슈가 나왔던 프랑스 영화 ‘초콜릿’이 생각났다.
그녀가 만드는 초콜릿은 이상한 힘을 발휘해 마을 사람들을 사랑과 정열에 빠져들게 했다. 불가리 바에서 ‘봄날의 곰’ 같은 그의
따뜻한 얼굴이 자꾸 그리워졌던 건 불가리 초콜릿의 마력 때문이었을까.#퍼즐 3: 얄미운 ‘콤 데 가르송’
재킷
이번에도 손에 넣은 것은 없지만 확실히 눈은 또 한 번 트였다. 도쿄 아오야마(靑山)에 있는 패션 브랜드
매장 ‘콤 데 가르송’에서다. 금색, 빨간색, 흰색, 검은색 등 서로 다른 단추를 한 줄로 달아 맨 푸른색 셔츠. ‘아,
동대문에서 예쁜 단추들을 사다가 싫증난 셔츠에 이렇게 바꿔 달면 되겠구나.’ 심
봉사의 개안(開眼)이 별건가.
디자이너라기보다는 아티스트로 통하는 일본의 여류 패션 디자이너 레이 가와쿠보는 콤
데 가르송 브랜드를 이끌며 요상한
레이어드 룩과 그런지 룩(낡아서 해진 듯 표현한 패션)을 전개한다. 종종 대중을 당혹감에 빠뜨리기도 하지만 그래서 오히려 강력한
흡인력!앞은 껑뚱 짧고 뒤는 꼬리처럼 길게 내뺀 재킷은 오케스트라 지휘자들이 입는 연미복의 품새였다.
5만5000엔(약 77만 원)의 가격표를 봤을 때 왜 하필 살림살이를 염려하는 주부의 본분이 퍼뜩 떠올랐는지. 국내 수입 판매가에
비하면 그래도 ‘착한 가격’이었던 것을. 지금도 눈앞에 어른거리는 그 ‘연미복 재킷’과 나는
비운의 엇갈린 인연이더란
말인가.#퍼즐 4: 웃통을 벗은 청년과 기념사진도쿄에 간다고 하니 누군가 말했다.
“긴자에 지난해 말 새로 들어선 애버크롬비 플래그십 스토어에 들러보세요.”영문도 모른 채 시키는 대로 가 봤다.
동굴처럼 어두컴컴한 내부. 놀이공원 유령의 집 같다고 생각하는 찰나, 빨간색 체크무늬 미니스커트를 입은 여직원이 달려와 폴라로이드 카메라를
들이댄다. “기념 촬영이에요. 치즈!”어, 어. 그녀에게 떠밀려 혼미한 정신을 차려보니 내 옆에 앳된 얼굴의 청년이 서 있다.
어머나, 망측하고도 반가워라. 웃통을 벗고 근육질 상체를 자랑하는 그와 얼떨결에 사진을 찍었다. 일종의 고객 서비스다. 매장
곳곳에선 직원들이 연방 흥겹게 춤을 췄다.“늘 이렇게 춤을 추나요?” 나는 물었다.“네. 우리의 콘셉트는 섹시한 파티거든요.” 예쁘장하게 생긴 여직원은 떠들썩한 음악 볼륨 소리 때문에 소리치듯 설명한 뒤 다시
춤을 추며 사라졌다. 둘러보니 매장 한쪽에선 남자 모델의 누드 화보집도 판매 중이다. 참, 애버크롬비가 생소한 독자들을 위해
설명 드리자면, 애버크롬비는 미국 캐주얼 의류 브랜드다. #퍼즐 5: 도쿄돔에서 놀기도쿄를
매우 자주 들락거렸지만 도쿄돔 방문은 처음이었다. 나만 그런 줄 알고 이 아까운 지면에 소개하는 걸 포기할까도 생각했었다. 하지만
일본인 아내를 둔, 게다가 스포츠 기자로도 일한 적이 있는 신문사의 같은 부서 후배가 “실은 저도 도쿄돔에 못 가봤어요”라고
말하는 걸 듣고는 이내 마음을 고쳐먹었다. 야구 마니아를 자처하는 나는 하네다(羽田) 공항에서 도쿄 모노레일을 타고 시내로 진입한
뒤 곧장 지하철 스이도바시(水道橋) 역 부근에 있는 도쿄돔으로 갔다. 땀을 뻘뻘 흘리며 하드 케이스 트렁크를 끌고 있는, 영락없이
집 나온 행색이었지만 그래도 신났다. 도쿄돔 영어 사이트(tokyo-dome.co.jp/e/dome/)에서 확인한 경기
일정대로라면 홈 팀인 요미우리 자이언츠와 지바 롯데 마린스의 이스턴리그(2군) 경기가 있는 날이니.가장 싼 내외야
자유석 표를 1000엔(약 1만4000원) 주고 산 뒤 요미우리 자이언츠 유니폼을 파는 아다디스 매장에 갔다. 남자 점원이 다가와
“야구 구경하시게요?”라고 묻더니 500엔 할인권을 줬다. 매표소에서 돌려받은 500엔에 500엔을 더해 1000엔짜리 치킨
도시락을 샀다. 천장 뚜껑이 있는 돔 구장은 장난감 같았다. 이승엽 선수가 출루를 하자 관중은 열렬히 환호했다. 야구의 역사를
진지하게 돌아볼 수 있는 야구박물관, 도쿄돔 시티 놀이시설 등 도쿄돔에서 혼자 놀 수 있는 방법은
많았다.#퍼즐 6: 장인정신의 축소판, 도쿄의 잡화개인적으로는, 도쿄에 가면 행복해지는 이유 중에
디자인 잡화 구경이 큰 몫을 차지한다. 오래된 단골 잡화 가게 세 곳을 소개하자면 긴자의 ‘이토야(伊東屋)’와 ‘규쿄도(鳩居堂)’,
오모테산도(表參道)힐스 등에 있는 ‘델포닉스’다.1904년 창업한 문구점 이토야의 긴자 본점은 긴자 ‘불가리’ 바로 옆에 있다.
이토야 본점을 이번에 들러보니 ‘트래블러스 노트북’이란 이름의 DIY 여행자용 수첩이 프로모션 중이었다. 감촉 좋은 가죽 커버에
각종 속지를 취향대로 끼워 넣을 수 있는데다 두 시간 정도 기다리면 커버에 영문으로 이름도 새길 수 있다. 구리 빛 청동으로 만든
필통은 추억의 양은 도시락 느낌이었다. 사각사각 쓰고 싶은 연필은 청동으로 뚜껑을 만들어 몽당연필도 소중하게 다루도록 배려했다.
오래된 것의 진가를 귀히 여기는 예쁜 마음이다.400년 된 노포(老鋪)인 규쿄도는 최상급 종이로 만든 편지지와 봉투
등을 다루기에 일왕 가(家)도 청첩장을 주문한다고 한다. 델포닉스에선 안경테 모양의 책갈피를 넋 놓고 봤다.이번 도쿄행에선
가구라자카(神樂坂)란 보석 같은 동네를 발견했다. 예로부터 일본의 문예가들이 많이 살아온 이 동네는 ‘도쿄의 파리’라고 불릴 만큼 이국적이면서도
일본의 전통 상점이 많은 매우 독특한 장소다.평범한 외관의 소마야(相馬屋) 문구점을 일부러 찾아간 건 세피아 색으로 가는 줄이
그려 있는 옛날 원고지를 사기 위해서였다. TGiF(트위터, 구글, 아이폰, 페이스북) 시대에 원고지와 연필이라니. 혹자는 ‘옛날
사람’이라고 비웃을지도 모르겠지만 당신이라면 연필로 꾹꾹 눌러 쓴 연서(戀書)를 좋아할 것 같아요. 도쿄 감성의 당신이라면
말예요.글·사진 도쿄=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

 

 

카테고리 : 여행 스타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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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드레 김 선생님을 추억함

  “김선미 기자님, 안녕하셨어요”라는 선생님의 수화기 너머 목소리는
언제나 쩌렁쩌렁했어요. 댁에 놀러와 있는 손자의 신발만 봐도 반가워 가슴이 뛴다는 선생님은 평범한 우리 시대 할아버지의 모습이셨죠.
당신이 참 많이 그리워서 “아, 판타스틱해요”라고 칭찬해주셨던 제 오래된 오렌지 빛 재킷을 꺼내 쓰다듬어 봅니다. 

 

  모
패션잡지의 부탁을 받고 방금 전 선생님을 추억하는 짧은 글을 보냈다. 그 글을 보내고
난 뒤 슬픔이 밀려들어 이 블로그에도 선생님을 보내드리는 글을 올리겠다고 마음
먹었다.

  그는
가셨다. 내 여름휴가 기간 중 급히 병원으로 옮기시더니,  내가 일본으로 출장
가 있던 며칠 전에 순백색 세상으로 먼 여행을 떠나셨다. 그래서 선생님 가시는 길에
대한 기사를 내 손으로 직접 쓰지 못했다. 귀국해보니 선생님이 떠나신 소식이 신문을
장식하고 있었다. 가슴이 아련해진다.

  너무나
친근하셨던 그 분이 이제 우리 곁에 없다는 사실이 도저히 믿기지 않는다.

  

(2009년
4월 서울 강남구 신사동 앙드레김 아뜰리에에서 선생님과 함께)

 

  2005년
일본 후쿠시마현 고리야마 시에서 열린 2006년 봄 여름 앙드레김 컬렉션, 지난해
중국 상하이에서 열린 프리뷰 인 상하이 오프닝 쇼 등을 현지에서 지켜봤던 나는
매번 울컥한 감동을 느꼈다.

  그를
잘 모르는 사람들은 그의 말투와 패션으로 미뤄 짐작하며 앙드레 김 패션을 폄하
내지 희화화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가 정성들여 만든 옷을 가만히 보고 있으면 패션이
한낱 트렌드만은 아니라는 것을, 디자이너 한 명의 열정이 한 국가의 패션 아이덴티티에
어떻게 기여하는지를 저절로 깨닫게 된다. 왕관과 잉어 등 동양적 디자인 모티브,
고급스런 쪽빛, 여성스런 꽃장식과 레이스 등으로 수놓아진 그의 패션 무대는 ‘아,
대한민국에 이런 디자이너가 있어 자랑스럽다’는 마음을 절로 갖게 했다.

  그가
만든 얌전한 라일락색 또는 비둘기빛 투피스 정장을 중년엔 꼭 한 번 입어야지, 했는데
그가 너무 빨리 가셨다. 그래서 참 많이 슬프다.

 

  실은
선생님이 많이 편찮으시다는 소식을 접하고 이달 초 몇몇 패션계 인사들의 말씀을
미리 들어봤었다. 해외출장으로 선생님 부고 기사에 소개하지 못했던 그 분들의 추억을
이 블로그에 소개한다.

 

  "1960년대
당시 학원에서 앙드레 김은 연분홍색, 하늘색 등 파스텔 색상과 흰색을 많이 사용해
꿈꾸는 듯한 로맨틱한 느낌의 드레스를 주로 스케치했다. 얇고 부드러운 시폰 소재에
적용한 그의 화려한 자수 장식은 뛰어난 기술력이 뒷받침 된 것이다."(신혜순
국제패션디자인학원장)

 "평생
자신의 색깔을 찾지 못하는 디자이너가 수두룩한 패션계에서 앙드레 김은 자신만의
브랜드 아이덴티티를 찾고 부단히 키워내 귀감이 된다." (지춘희 미스지컬렉션
대표)

 "앙드레
김은 세계적 패션 트렌드를 자신의 패션 DNA 속에 녹여 넣어 이탈리아 패션 거장
조르지오 아르마니에 비견할 만하다. 보일 듯 말 듯한 작은 변화들로 오랜 세월 고객을
유지한 건 그가 얼마나 패션에 올인해 열심히 살았는지를 보여준다." (대한패션디자이너협회(KFDA) 회장을 지낸 안윤정 한국여성경제인협회장)

  "판타지아(fantasia).
즉 판타지와 아시아의 중어법. 환상적인 그의 패션엔 신비로운 아시아의 정신이 늘
깃들어 있었다." (간호섭 홍익대 패션디자인학과 교수)

 

  나
개인적으로는 이영애, 이서진, 김희선 등이 모델로 나선 국내외 앙드레김 패션쇼를
5,6회 정도 취재했던 것 같다. 미디어와 대사 부인들을 챙기던 그의 민간 외교, 여성의
품격을 강조했던 그의 여성론, 수많은 브랜드와 협업했지만 자신의 이름을 허투루
남발하지 않는 의외의 옹고집, 기념일에 보내는 흰 꽃 등 내가 발견한 앙드레 김의 요소들은 많다. 그렇다.
앙드레 김은 그 자체로 걸어다니는 인간 브랜드였다.

  이젠
2009년과 2005년 선생님을 만나 말씀을 나눴던 인터뷰 기사 두 개를 이 곳에 실어둔다. 지난해
선생님과 사진을
함께 찍을 때만해도 1년 여만에 이런 일이 생길 줄은 미처 몰랐다.  선생님,
부디 행복하세요. 그립습니다.

 

——————————————————————

<2009. 4. 동아일보>

 

오랜만에 들른 그곳은 여전히 ‘하얀 왕국’이었다. 디자이너 앙드레 김(본명 김봉남·74) 씨가 각국에서 모은 흰색 아기천사 석고상들이 곳곳에
놓여 있고, 흰 블라우스를 입은 직원들은 깍듯했다. 바로 서울 강남구 신사동 ‘앙드레 김 아뜨리에’였다.

 

중국 상하이에서
22∼24일 열릴 국제섬유박람회인 ‘프리뷰 인 상하이’의 오프닝 쇼를 준비하고 있던 앙드레 김 씨는 “귀하게 오셨어요. 플리즈,
플리즈(Please, please)” 하며 자리를 안내했다. 어쩌면 국민에게 너무나 친숙한 그의 외양과 언행 때문에 한국의 대표 전방위
디자이너, 경영자로서의 면모가 묻혔던 건 아닐까. ○“한국 패션의 세계화를 많이 고민”옷을 잘 모르는 사람들은
“앙드레 김 옷은 늘 똑같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의 옷은 변한다. 이번 상하이 쇼에서 선보일 중국풍 재킷은 어깨의 각이 단단하게 잡혔다.
세계적 트렌드인 ‘각진 어깨’ 요소가 녹아 들어간 것이다. 대중은 앙드레 김 씨의 화려한 패션쇼 의상에 익숙하지만 정작 그의 단골들은 베이지,
파우더 블루 색의 ‘품격 있는’ 정장을 입으러 이곳에 온다. 앙드레 김 씨가 직접 세 번씩 피팅(가봉)한다. ―세계적으로 오트
쿠튀르(고급 맞춤복) 시장이 줄고 있습니다. 대안이 있습니까.“그동안 바이어를 위한 옷 대신 예술적인 옷을 만들었어요. 하지만
랄프 로렌은 여러 기성복 라인을 만들죠? 저도 앞으로 ‘앙드레 김 우먼’ ‘앙드레 김 맨’ 같은 기성복을 만들어 백화점에서 팔고 수출도 할
계획입니다. 요즘엔 한국 패션의 세계화를 많이 고민하게 됩니다.”1962년 서울 중구 소공동에 ‘살롱 앙드레’를 냈으니
2012년이면 50주년이다. ‘앙드레’란 이름은 당시 교류하던 프랑스대사관 사람들이 “국제적 이름이 언젠가는 필요할 것”이라며 지어준 이름이다.
‘앙드레 김’은 정말로 국제적 이름이 됐다. 외교 사절들에게 각국 국경일에 맞춰 꽃을 선물하는 고객 관리, ‘품위, 교양미, 순수’ 등을
강조하는 브랜드 이미지 관리, 퇴근 후 술 마시고 담배 피우는 여직원을 (순수교양 이미지에 맞지 않는다고) 해고하는 냉혹한 직원 관리가 그간
‘앙드레 김 아뜨리에’란 회사를 키워온 힘이다. ○자전거 등 전방위 ‘앙드레 김’ 라이선스그는 란제리, 가전,
자전거, 도자기 등 10여 개 회사들과 디자인 라이선스 작업을 하고 있다. 한국을 대표하는 산업 디자이너인 셈이다. 그러나 과거 몇몇 유명
브랜드는 라이선스 사업을 남발해 브랜드 관리에 실패하기도 했다. 앙드레 김 씨에겐 그런 고민이 없을까.
“Exactly(맞습니다). 어디를 가나 열광적으로 반겨주시지만, 정작 제 옷엔 부담을 느끼는 분이 많잖아요. 그런 분들에게
‘앙드레 김’을 느끼게 하고 싶었어요. 지나친 대중화보다 지나친 신비주의가 더 나쁘다고 생각해요. 산업 디자이너란 칭찬은 과해요. 각 회사 제품
디자이너들이 제 패턴 자료로 디자인해 오면, 전 최종 ‘컨펌(확인)’을 하니까요.”―옷 매출과 라이선스 비중은 어떻게
됩니까.“(난처한 표정으로) 그건 밝히기 곤란한데요. 라이선스로 많이 법니다.”최고경영자(CEO) 앙드레 김 씨는
고독하다. 50여 명의 직원을 이끌지만 주요 의사결정은 혼자 내린다. 후계자는 아직 정하지 않았다. 왜일까.“조직 운영은 후계를
정할 수 있어도, 디자인 후계는 억지로 정할 수 있는 게 아닌 것 같아요. 무엇보다 아직 도전하고 싶은 분야가 너무 많아요. 암벽 등반 등
익스트림 스포츠웨어도 만들고 싶거든요.” 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

 

—————————————————————–

<2005.
5. 동아일보>

 

패션 디자이너 앙드레 김(70)은 ‘민간 문화외교사절’로 불린다. 국악 가요 오페라 등을 넘나드는 음악과 쇼, 동서양 문명을 조화시킨 디자인은
일종의 ‘종합 예술’로 해외 패션계의 찬사를 받는다.

 

앙드레 김이 7일 오후 일본 후쿠시마(福島) 현 고리야마(郡山) 시에서 내년
봄 여름 컬렉션 175벌을 선보이는 패션쇼를 열었다. 왕관과 잉어 등을 즐겨 장식하는 그의 옷은 “늘 같다”는 평을 듣기도
하지만, 이번에 선보인 작품들은 크게 달랐다. 꽃장식이나 레이스 등 디테일은 품위와 여성미를 갖춰 외출복의 고급스러운 멋을 더했으며, 엠파이어
라인으로 순결하게 표현한 웨딩드레스는 지적인 절제미를 드러냈다. 이날 앙드레 김 패션쇼에는 3000여 명의 일본인들이 환호했다.
당초 유료(3만 원) 관람 관객이 9000여 명에 이르러 주최 측이 추첨을 통해 선정할 정도로 현지의 관심을
끌었다.○어떻게 달라졌나앙드레 김 디자인의 특징은 ‘블랙 앤드 화이트의 지적이고 도시적 감각을
아방가르드 분위기로 풀어내는 것’이다. 흰색 목둘레와 옷 전체에 흰색 줄무늬가 있는 검은색 옷을 자주 선보이는 것도 그런
이유다. 

 

이번에는 검은색 대신 짙은 군청색을 택했다. 그는 “전반적으로 푸른 색 계열의 매력에 푹 빠졌다”고 말했다. 호수를
연상시키는 쪽빛(아쿠아 블루), 환상스러운 터키색, 광택 있는 녹색을 띤 청색(피콕 블루)과 푸른 느낌이 감도는 보라색까지. 이들 색감은
하늘하늘한 시폰, 윤기 흐르는 자카드 소재 등과 만나 밀도가 더욱 짙게 살아났다.꽃분홍색, 주황색, 빨간색 등 앙드레 김 특유의
강렬한 온색 매치는 어느 때보다 섬세한 디테일을 통해 정돈됐다. 몸을 따라 흐르는 시폰 드레스의 허벅지 위쪽 부분에는 광택이 감도는 빳빳한
오간자 소재로 커다란 장미 장식을 달았고, 소매를 봉곳 올린 얌전한 실루엣의 아이보리색 투피스 스커트 아랫단 밑으로는 확 퍼지는 흰색 레이스를
붙였다.남성 슈트의 경우 스리버튼이 많았으며, 여성 웨딩드레스는 허리선을 높이고 보디 라인을 살려 보다 젊은 감각을 선보였다.
그의 웨딩드레스는 450만∼600만 원이다.○그만의 종합예술이번 쇼는 무대 위에 은색 종이 가루가
흩뿌려지면서 시작됐다. 순백색 원피스 위에 비닐 망토를 걸친 팔등신 모델들은 발등이 훤히 내비치는 비닐 소재 스트랩 구두를 신고
있었다.“퓨처리스틱(futuristic·미래적인) 로맨티시즘을 표현하고 싶었어요.”배우 지성 등 꽃미남
모델들은 검은색 시스루 티셔츠와 비닐 망토를 통해 상반신을 숨김 없이 노출시켰다. 여성 관객들에 대한 일종의 팬 서비스인데 쇼의 스토리에 힘입어
객석의 분위기를 한껏 고조시켰다.

 

그는 매번 남녀 스타를 모델로 등장시켜 애절한 이별 뒤 다시 만나 결혼에 성공하는 ‘해피
엔딩’으로 쇼를 마무리한다. 그래서 언제나 피날레 의상은 웨딩드레스와 턱시도다.푸치니 오페라 ‘나비 부인’ 중 허밍 코러스,
김소희의 ‘뱃노래’, 김범수의 가요 ‘사랑해요’, 드라마 ‘천국의 계단’의 삽입곡 ‘아베 마리아’ 등 그때그때 적절한 배경 음악이 패션쇼를 더욱
드라마틱하게 만들었다. 앙드레 김은 모델을 쓸 때 개성적인 얼굴보다 우아하고 고전적인 얼굴을 고집하고
있다.후쿠시마=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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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드레 김이 걸어온 길>

1935년 경기 고양 출생. 본명은 김봉남(金鳳男)

1959년 박종호 감독의 영화 ‘비오는 날의 오후 3시’에 프랑스 종군기자 역할로 출연

1962년 서울 국제복장학원 졸업 후 서울 중구 소공동에 의상실 ‘살롱 앙드레’ 오픈

        반도호텔 다이너스티 룸에서 첫 의상발표회

1966년 국내 디자이너로는 최초로 프랑스 파리에서 패션쇼

1982년 생후 18개월이던 아들 중도(中道) 씨 입양

2000년 프랑스 정부가 수여하는 ‘예술 문학훈장’ 수상

2005년 ‘제39회 납세자의 날’ 기념식에서 모범 납세자로 국무총리 표창

2009년 앙드레 김 주얼리 런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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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나라 감자를 인터뷰하다

지난주 평창에 다녀왔습니다. 생감자 스낵인 포카칩 원료가 되는 감자를 취재하기 위해서였죠. 제가 다녀온 곳은 오리온 감자원료연구소입니다. 우선 8월5일자로 저희 신문에 게재된 기사부터 보시죠. 감자를 화자로 설정해 기사로 써 보았습니다. ^^ ——————————————————————————–   <동아일보 8월5일 경제면>   저를 사랑해주시는 여러분,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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곳에서 잠시나마 다른 사람처럼 살아보기. 단, 회사로부터 걸려오는 전화는 사절!”“블루! 파란 하늘, 파란 수영장. 거기에 시원한
칵테일.”휴가는 지극히 사적인 시간이어서 각 개인의 형편에 따라 천태만상이다. 그런데 휴가에도 트렌드가 있다. 젊은층을 중심으로
최근 급속하게 이용이 늘고 있는 서울시내 호텔 패키지도 그중 하나다. “아니, 왜 편안한 집 놔두고 호텔에 간단 말이야”라고 말하는 남성분이
있다면 유감이다. 휴가철 당신에게 편안한 집은 아내에겐 밥 차리고 치우고 또 밥 차리고 치우는 매우 성가신 곳일 수 있을
텐데….서울 중구 장충동 반얀트리 클럽 앤드 스파 서울, 중구 소공동 서울웨스틴조선호텔, 송파구 잠실동 롯데호텔월드, 용산구
한남동 그랜드하얏트서울, 광진구 광장동 쉐라톤그랜드워커힐호텔 등 5곳을 꼼꼼하게 들여다봤다. 비행기 탑승권을 사지 않고도 낯선 곳에서 다른
사람처럼 살아볼 수 있는 곳, 블루를 누릴 수 있는 곳, 호텔이었다. 바캉스 시즌을 맞아 각 호텔을 취재한 내용을 5가지 색채로
구성해봤다.

 

(반얀트리 클럽 앤드 스파의 객실 내부. 아…로맨틱한 실내 풀…)

 

(로맨틱한 카바나가 있는 반얀트리 클럽 앤드 스파의 수영장)

○어느 카사노바와의 대화기자: 반얀트리 클럽 앤드 스파 서울에
다녀오셨다고요.카사노바: 문학가이자 모험가이며 호색한(好色漢)인 내 취향에 딱 맞는 곳이었소.기자: 세계적
리조트그룹 ‘반얀트리’가 과거 ‘물 좋기로 소문났던’ 타워호텔을 리모델링해 최근 문을 열어 꽤 비싸다고 들었습니다만….카사노바:
프리미어 타입 객실은 1박에 49만7000원. 그러나 1인당 1억 원이 넘는 돈을 내고 멤버십 회원으로 가입한 자들이 누리는 혜택을 단
하루만이라도 모두 체험할 수 있었으니 꽤 괜찮은 손익 계산 아니겠소. 무엇보다 매우 미학적인 장소였소.기자: 사유의 조화, 질서의
조화 같은….

카사노바: 한 층에 최대 4개의 객실뿐이라 불필요한 남의 이목을 신경 쓰지 않아도 됐소. 태국에서 직수입한 이국적인 화병과 조명, 향초, 그리고
33도 물이 받아진 8m&sup2;(2.4평)의 객실 내 미니풀. 고양이 같은 스모키 눈매에 레이스 란제리를 입은 나의 그녀가 나신이 됐을 때 유리창으로
손에 잡힐 듯 보이던 남산타워 불빛이 그녀의 둥그런 몸을 신비롭게 빛냈소. 우리는 풀 속에서 샴페인을 마시고 나와서는 열대 교목인 일랑일랑
성분이 들어간 반얀트리 브랜드 오일로 서로의 몸을 마사지했소. 스며들고 섞이는 인간적 교감이랄까.기자: 호텔 투숙객도 누려볼 수
있는 멤버십 회원 혜택이라면….카사노바: 이튿날 우리는 회원과 투숙객만 이용할 수 있는 피트니스센터에 가서 스트레칭 수업을
받았소. 그녀의 몸 금육이 관능적으로 늘어나는 모습은 구조미를 갖춘 일종의 미적 감동! 현대가(家) 며느리인 방송인 출신의 노현정 씨가 땀에
흠뻑 젖어 러닝머신을 달리고 있었지만 저마다 재계 인사로 짐작되는 회원들은 아무도 호들갑을 떨지 않았소. 영어를 능숙하게 구사하는 직원들이 역시
유창한 영어를 쓰는 아이들과 놀아주는 대규모 키즈 클럽, 미국 트룬 골프아카데미의 티칭 프로그램을 갖춘 골프 연습장, 미니풀이 각각 딸려
로맨틱한 야외수영장의 대리석 카바나(방갈로 형태의 휴식 공간), 회원 전용의 레스토랑…. 기자: 그녀는
만족했습니까.카사노바: 물론. 럭셔리한 하루를 보낸 후 그녀가 물었소. “그런데 반얀트리가 무슨 나무야?” 도무지 모르겠소이다.
다음 날 사전을 찾아본 후 그녀에게 휴대전화 문자메시지를 보냈소. “인도가 원산지인 영적인 뽕나무래. 너와 보낸 영적인 그곳에서의
하룻밤처럼.”○ 싱글의
재충전
30대 후반인 수연은 요즘 심난하다. 일에 파묻혀 살다 보니 사랑이 찾아왔다가는 이내 떠났다. 최근
헤어진 ‘남친’은 그녀의 가슴에 대못을 박았다. “이제 (너보다) 편안한 여자를 만나고 싶어”. 서울 한복판으로 별 보며
출퇴근하는 쳇바퀴 인생. ‘그저 푹 쉬면서 인생을 점검하고 싶다.’지친 그녀가 찾은 곳은 웨스틴조선호텔이다.
직장 근처라 항상 지나치던 곳인데도 정작 작은 여행 가방을 객실에 풀어놓고 보니 생경한 느낌이다. 이 호텔에서 가장 싼 패키지는
‘서머 로댕’(1박 20만9000원)이지만, 그녀는 가장 비싼 ‘서머 스위트’(1박 37만9000원)를 골랐다. 호텔 패키지가
낯선 사람들은 흔히 가장 싼 걸 택하는 경향이 있으나 고수(高手)들은 반대다. 주니어 스위트룸 객실요금(평소 1박 100만
원)을 포함해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열리는 ‘신의 손-로댕’ 전시 관람권, 겐조 화장품, 클럽 라운지 이용 등 종합선물세트 같은 부대
혜택을 평소 금액으로 환산하면 무려 111만1580원이니까.새하얀 침구에 몸을 뉘어본다. 웨스틴호텔그룹이
‘천상의 수면’을 목표로 개발한 이 거위털 침구의 이름은 ‘헤븐리 베드’다. 거위털 이불(42만 원)과 베개(12만 원)를 호텔
프런트에 주문해 사 가면 고단한 불면증이 ‘굿바이’ 하면서 사라져줄까. 피트니스클럽에 들어서자 한 남성 트레이너가 비누냄새 느낌의
청량한 미소로 체성분 분석을 권한다. “근육을 키우셔야겠어요.” 그래, 몸 근육을 키우면 마음의 근육도 단단해질 것
같다.다음 날 수연은 하늘거리는 원피스 차림으로 미술관에 갔다. ‘신의 손-로댕’전에선 사랑하는 남녀 조각상의 손 위치를 유심히
살폈다. 때로는 목덜미, 때로는 배 위에 있는 창조적이고도 지적인 손. 로댕의 제자이자 연인이었던 카미유 클로델의 청동상
‘왈츠’ 앞에 서니 그들의 치명적인 사랑이 상상돼 울컥한 마음도 든다. 여름 세일이 한창인 호텔 맞은편 롯데백화점 영플라자 내
스페인 패션 브랜드 ‘망고’ 매장에도 들렀다. 지난해부터 수입회사가 제일모직으로 바뀐 후 옷 구성이 한결 좋아졌다. 목가적 느낌의
아이보리색 스커트, 과감하게 짧은 점프 슈트를 샀다. ‘난 그럴 만하니까. 힘을 내자, 수연.’

 

(시립미술관 로댕 전에서 사 온 동상 모양 지우개 ^^ 내가 붙인 이 지우개 이름은
‘생각하는 지우개’)○ 내 아이를
위한 동화

 

전 올해 세 살인 연우입니다. 엄마, 아빠와 다녀온 잠실 롯데호텔월드 캐릭터룸을 떠올리면 지금도 막 신나요. 요즘도 놀이방에서 “롯데월드,
롯데월드”라고 선생님과 친구들에게 자랑한다니까요. 그렇게 그림책 같은 장소는 처음 봤어요. 엘리베이터에서 내리자마자 롯데월드
어드벤처 캐릭터인 ‘로티’와 ‘로리’ 인형이 벤치에 앉아 있었어요. 동물들이 그려져 있는 복도에선 동요도 흘러나왔어요. 방 안은
더 예뻤어요. 천장에는 하늘과 별이 그려져 있고, 침대 머리맡은 알록달록 퍼즐로 장식돼 있었어요. 키가 낮은 어린이용 세면대와
좌변기, 인형 모양의 휴지걸이와 칫솔세트, 플레이스테이션 게임과 캐릭터 연필세트. 전 동화 속 주인공이 됐죠. 창문 커튼을
열었더니 롯데월드 어드벤처가 한눈에 내려다보였어요. “야아, 롯데월드다”라며 폴짝폴짝 뛰었어요. 엄마는 방 안에 놓여 있던 롯데월드 어드벤처 자유이용권 2장을
들더니 "연우야, 우리 롯데월드 가자”고 했어요.

 

롯데월드 어드벤처 입구에서 엄마는 직원 아저씨랑 몇 마디 대화를 나누더니 환호하면서 아빠랑 ‘하이파이브’를 했어요. 뭔 일인가 했더니, 최근 3개월간 이용실적이
있는 롯데카드 회원은 한 달에 한 번, 연간 6회 롯데월드 어드벤처 무료입장이 가능하대요. 하긴 놀이공원에 가면 엄마와 아빠 중 한
명은 제가 탈 놀이기구의 줄을 서거나, 유모차를 지키거나, 사진을 찍으니까 자유이용권이 굳이 필요하지 않거든요. “다음에 또 한 번
올 수 있겠다”며 우리 가족은 위풍당당하게 롯데월드 어드벤처에 들어가 놀았답니다.마음 약한 엄마에게 떼를 써서
분홍색 솜사탕을 손에 넣는 데 성공했습니다. 흐흐. 빨간색 미니마우스 머리띠를 쓰고 예쁜 척 사진 찍는 엄마, “난 자이로드롭이
재밌어”라는 아빠. 호텔방으로 돌아와서는 둘 다 저보다 먼저 곯아떨어지더라고요. 엄마, 아빠 맞아? ㅠㅠ

 

(롯데월드호텔 캐릭터 층 복도에서 행복해하는 연우의 모습)

 

○ 몰입해 독서하고 싶을 때그랜드하얏트서울 1550호. 해외 출장이 잦아 수많은 호텔을 다녀본 유진은 이 그랜드 클럽
룸에 들어선 순간 ‘내 생애 기억에 남을 호텔 객실이야’란 생각을 했다. 한남대교와 이태원 일대 고급 주택들, 한강 너머 강남까지
내려다보이는 전망은 일품이었다. 연갈색 목조로 단장된 그랜드 클럽 객실은 정갈한 이미지였다. 목욕 제품은 영국 왕실에서 사용한다는
‘아로마 세러피 어소시에이트’  브랜드. 평생회원들이 주로 다니는 피트니스센터는 3년 전 리노베이션돼 현대적
운동시설들이 즐비했다. 매 시간 요가 클래스도 있었다. 널찍한 야외수영장엔 아이와 함께 주말에 놀러온 아나운서 윤인구 씨가 눈에
띄었다. 떠들썩하지 않고 한적한 느낌. 일반 객실에 투숙하면 3만5000원을 따로 내야 하는 사우나도 그랜드 클럽 룸 숙박
고객에겐 무료였다. 분홍색 모래시계를 거꾸로 세워 한증막에서 땀을 빼니 한결 몸이 가뿐해졌다.초등학생 아들은
미국으로 영어 캠프를 떠나고, 남편은 해외 출장 중이어서 그녀는 잠시 혼자가 됐다. 며칠 전 남편은 국제전화를 걸어와 “호텔에서
당신만의 시간을 가져봐”라고 권했다. 참 멋진 남자다. 일본 논객 다치바나 다카시와 사토 마사루의 대담을 실은 신간 ‘지(知)의
정원’, 터키 작가 오르한 파묵의 ‘순수 박물관’ 등 몇 권의 책을 챙겨 왔다. 오후 10시까지 무제한 커피와 음료를 즐길 수
있는 클럽 라운지 서비스는 커피 마니아인 그녀에겐 매우 유용했다. 훗날 남편과 함께 다시 이 방에 오게 된다면 객실 창가에 함께 걸터앉아 황홀한 야경에
어울리는 프랑스 보르도 ‘샤토 팔메르’ 와인을 나눠 마시리라. 이른 아침 호텔 앞 구름다리를 건너 남산을 산책하리라. 한때 가슴
떨렸던 연애시대를 추억하며. ○ 3대 가족을 위한 시간사랑하는 딸과 사위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한다. 너희 덕분에 참 오랜만에 쉐라톤그랜드워커힐호텔을 다녀올 수 있었네. 너희가 어렸을 땐 이 호텔 야외수영장 이름이 ‘맘모스
수영장’이었는데 말이야. 맞벌이 부부인 너희는 평소 어린 손자를 우리에게 맡기는 게 죄송하다며 이번에 호텔에 가자고 했지. 너희가
밤늦게까지 일하며 고생해 번 돈을 괜히 비싼 호텔비로 쓰는 것 같아 솔직히 우리 마음은 불편했었어. 그런데 한강이 훤히
내려다보이는 클럽 스위트룸엔 더블 침대와 싱글 침대가 함께 놓여 있어 쾌적했고, 야외수영장 풀 사이드 뷔페의 LA갈비도 맛있더라.
우리 귀여운 손자 정민이가 모처럼 엄마 아빠와 널찍한 영유아 야외 온천 풀에서 신나게 노는 모습을 보는 것도 즐거웠고.

 

(쉐라톤그랜드워커힐호텔 객실 내부)너희가 권한 이 호텔 시어터의 블록버스터 급 디너쇼 ‘꽃의 전설’도 감명 깊었어. 부채춤, 비보이 춤 등 한국의
내로라하는 공연이 총망라돼 펼쳐지는데, 중국인 관광객들이 넋을 잃고 보더라고. 워커힐 산책로를 손잡고 걸으면서는 “효도하는 딸과
사위 덕분에 노년에 호강하네”라고 얼마나 흐뭇해했는지. 얘들아, 고맙다. 잊지 못할 추억을 만들어줘서. 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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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래드피트가 반한 남자, 이헌정

(이헌정. 사진은 본보 서영수 사진전문기자)

 

‘이헌정’이란 이름에 귀를 쫑긋 세우게 된 건 올초 서울 중구 충무로 신세계백화점 본점에 있는 ‘한국의 미’란 우리 그릇 전문가게에서였다. 흰색
백자토로 만든 네모난 그릇은 접시라고 하기엔 꽤 키가 높아 두부 같은 모양새였다. 용도를 묻자 점원은 “치즈나 조각 케이크를 올려 내면
어떻겠어요”라고 했다. 온갖 기교에 통달하고 나면 결국엔 비움의 단계에 오르는 스타일의 고수, 그것이 그 그릇의 첫인상이었다.
극도로 정제된 세련미가 마음에 들어 몇 번을 들었다 놨다 하다 결국 지갑을 열었다. 점원은 “이헌정이란 유명 작가가 만들었어요. 이분이 만든
도자기 테이블과 벤치를 지난해 스위스 바젤 디자인 페어에서 미국 배우 브래드 피트가 사 갔죠”라고 했다. 그제야 생각이 났다. 미술 애호가
브래드 피트가 한눈에 반했다는 이헌정….얼마 후 화병을 장만하러 다시 ‘한국의 미’를 찾아갔다. 지나치게 장식에 치중한 유럽산
유리·도자 화병을 여럿 둘러본 후였다. 기다란 직사각형 모양의 ‘메이드 바이 이헌정’ 흰색 백자토 화병에 또 시선이 꽂혔다. 벨기에 디자이너
마르탱 마르지엘라의 순백색 구조미를 연상시키는 그 화병은 “나, 코리아 디자인이에요”라고 대놓고 외치지 않으면서도 뭔가 할 말을 많이 품고 있는
듯했다. 흰색인데도 꽤 묵직한 기운이 느껴졌다. 직원이 말했다. “핸드 메이드라 딱 두 개가 매장에 나왔는데, 한 개는 일본에서 화훼를 공부한
여성 플로리스트가 이미 사 갔어요. 동서양의 매력이 모두 있다면서요.” 서울 신라호텔 관계자에게서 “우리 호텔의 가장 비싼
프레지덴셜 스위트룸에 유명 작가 작품 47점이 있는데 그중 한국인으로는 이헌정 씨의 가구가 있어요”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남양유업이
운영하는 이탈리아 식당 ‘일 치프리아니’, 서울 남산 소월길에 있는 한식당 ‘품’ 등 스타일리시한 식당들에서는 오래전부터 그의 그릇을 사용해
왔다는 말도 들려왔다. 품격을 찾는 사람들 사이에서 그는 이미 스타였다. 그뿐인가. 총길이 168m, 높이 2.4m의 세계 최대 도자 벽화로
서울 청계천의 명물이 된 ‘정조대왕 능행 반차도’ 도자 벽화도 그의 작품이란다. 이헌정(43), 그가 어떤 사람인지
궁금해졌다.

 

 

○ 이헌정을 만나러 가는 길검색 사이트에 ‘이헌정’을 입력하니 그의
홈페이지(hunchunglee.com)가 나왔다. 경기 양평군에 있다는 주소와 휴대전화 연락처까지 친절하게 소개돼 있었다. 오전 이른 시간에
휴대전화로 연락을 하자 수화기 너머 여성이 전화를 받았다. 그의 아내였다. “원하시는 날짜에 인터뷰할 수 있어요. 선생님(이 씨) 작품 사진은
전속인 ‘갤러리 서미’를 통해 받으실 수 있게 조치할게요.” 똑 부러지는 말투와 일처리로 짐작건대, 그녀는 남편의 매니저 역할을 일정 부분 맡고
있는 듯했다. 서울 강남구 청담동에 있는 갤러리 서미는 2008년 삼성 특검 당시 김용철 변호사가 삼성가의 미술품 구매 창구로
지목한 곳으로 일반인 사이에서도 유명해졌다. 국내 최상류층 마니아 컬렉터들을 고객으로 둔 갤러리다. 홍익대 도예과와 미국 샌프란시스코 아트
인스티튜트 대학원(조각 전공)을 나와 1996년부터 도예와 설치미술 작품 전시를 해 온 이 씨의 저력을 알아보고 2008년 말 그를
전속작가(가구 부문)로 ‘모신’ 게 바로 홍송원 갤러리 서미 대표다. 지난해 스위스 바젤 디자인 페어, 올해 미국 마이애미 디자인 페어에서 이
씨가 세계적 관심을 받는 ‘컨템포러리 아트 가구 디자이너’로 도약하게 된 데는 갤러리 서미의 영향력도 큰 몫을 했다는 게 미술계의 평가다.
이 씨는 콘크리트를 여러 번 광내고 네 모서리를 둥글린 테이블, 도자기로 만든 스툴(등 없는 의자) 등 소재를 변화무쌍하게 사용해
가구를 만드는 것으로 유명하다. 갤러리 서미 측은 “컬렉터에 대한 정보는 비밀”이라며 고객층을 공개하진 않았으나 이 씨가 만든 테이블은
1000만 원대 이상, 스툴은 개당 100만 원대 이상이라고 귀띔해줬다.

 

이 씨가 전화를 걸어왔다. “내비게이션에 ‘전일교회’를 찍고 오시면 근방에 저희 집이 있어요.” 모던했던 제품 이미지 때문이었는지 그의 목소리는
오히려 정답게 들려왔다. 8일 서울 도심으로부터 한 시간여 운전하니 전일교회가 나왔고, 다시 그의 안내를 들으면서 숲길을 운전해 막다른 골목에
다다르니 2310m&sup2;(약 700평) 대지에 들어선 흰색 노출 콘크리트 건물이 나왔다. 작품을 한 점씩 팔아 모은 돈으로 손수 지었다는 그의 집
겸 작업실이었다.

 

○ 전방위 디자이너, 예술을 말하다집 내부는 인간적 냄새가 물씬한 아늑한 갤러리 같았다. 그의 콘크리트 테이블과
도자기 의자, 유명 사진가 김중만 씨가 찍어준 이 씨의 사진, 한국 전통 패브릭 디자이너인 모노컬렉션 장응복 대표가 이사
기념으로 선물한 자개장 등이 어우러져 있었다. 지난해까지 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에서 일했다는, 남편의 홍익대 도예과 2년 후배라는
그의 아내 조현주 씨가 백자토 머그 컵에 커피를 담아 인절미 떡과 함께 내왔다. 회색 콘크리트 테이블은 쓰다듬을수록 우리나라
계곡에 있는 돌멩이들을 떠올리게 했다. 노란색 플라스틱 안경테를 쓴 이 씨가 말문을 열었다. “손으로
만져지는 아날로그 느낌을 좋아해요. 최근 가족과 프랑스 파리로 여행을 갔을 땐 한 빈티지 가구상으로부터 산업혁명 시대의 조명과
철제 의자를 샀어요. 전 테크노마트에서 5만 원 주고 산 중고 휴대전화를 쓰고 인터넷도 잘 안 보는 ‘컴맹’이지만 망치, 양초,
볼트 같은 소재들에서 영감을 얻는 걸 즐기죠. 물건을 대량으로 찍어내는 ‘세계의 거대 생산 공장’ 중국의 영향으로 몇 년 새
유럽 디자인이 고전했는데, 요즘 다시 수공예의 가치를 높게 평가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어 다행이에요. 기계 공산품의 질적, 미적
저하를 가져온 산업혁명에 대한 반발로 19세기 생겨났던 아트 앤드 크래프트(Arts and Crafts) 운동의 부활인 셈이죠.”
가구를 만들기 전 그는 크게 도예와 설치미술, 두 가지의 작업을 했다. 도예는 대중과 소통하기 위해, 설치미술은 예술적
감수성을 위해서였다. 그는 “도예는 손을 놓아야 할 때 더 집착 말고 놓아야 하는 것, 설치미술은 관념을 언어로 풀어내는 것”이라며
“그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으려고 균형을 잡으면서 살아왔다”고 말했다. 그러나 5년 전 양평에 집을 짓고 그 안에 가구를 만들어 채워
넣으면서 비로소 자신이 오래전부터 가구에 관심이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고 했다. 집 안에서 벌어지는 갖가지 상황에 기능적 보완을 해
만들면 결국 가구가 되는 거였다. 그가 지금까지 열어왔던 숱한 전시들의 제목엔 유독 ‘여행(Journey)’이
많다. 그에게 있어 여행은 새로운 것을 찾아가는 예술의 여정이다. 도예, 설치미술, 가구 그리고 건축까지(그는 몇 년 전 늦깎이로
입학한 경원대 건축학과 박사과정을 최근 끝냈다). 단, 대부분의 작품엔 이름을 달지 않는다. 이른바 ‘무제(Untitled)’다.
“제목을 달면 사람들이 그 제목의 틀 속에 갇혀 버리잖아요. 때로는 예술이란
장르가 참 허풍스럽다는 생각도 들어요.
전 직관에 따라 제가 좋아하는 걸 만들 뿐인데, 사람들은 한껏 진지하게 묻죠. ‘이 작품에 어떤 의미가 있습니까’라고. 언젠가는
라디오에서 6·25전쟁 특집방송이 나오기에 만지작거리던 흙을 군인 모양으로 만들어봤어요. 그랬더니 누군가 ‘반전(反戰) 사상을 담았느냐’고 묻더라고요. 난감했어요.” 쓰는 글을 보면 그 사람이 보이듯 이 남자, 자신의 예술 작품과 솔직담백한 느낌이 어쩜 그리 닮았는지….

 

(라디오 6.25 방송을 들으며 만든 흙반죽을 크게 작품으로 만든 것)

 

○ 그리고 여행은 계속된다그의 작업실로 자리를 옮겼다. 작은 달 항아리들은 나무 선반 위에도 놓여
있지만 일부 큰 항아리들은 마치 어느 시골 마을의 장독대 풍경처럼 그저 수북이 바닥에 놓여 있었다(그는 전시를 할 때도 종종 이와
똑같은 방식으로 작품들을 자연스럽게 둔다고 했다). 도자기로 만든 스툴의 옆면엔 익살스러운 사람들의 표정이 동화처럼 그려 있기도
했다. 형형색색 칠한 어른 키 두 배 높이의 도자기 조각상을 가리키며 이 씨가 말했다. “제주에 별장을 갖고 있는 어떤 분이 이
조각상을 구입해 굴뚝으로 사용하려고 한대요. ‘누구 집에 물방울 그림이 있으니, 나도 집에 들여 놓아야겠다’는 과시적 태도가
아니라 그분만의 개성적 감성이 있는 것 같아 기뻤어요. 굴뚝은 싸구려란 인식을 날려 버린 거잖아요.”

 

미술계와 산업계의 30대 ‘젊은 파워’들도 그에게 열렬한 지지를 보내고 있다. 홍송원 대표의 차남인 박필재 서미앤투스 이사는
“예술의 영역을 규정짓는 건 무의미하다”는 이 씨의 든든한 후원자다. 이부용 대림산업 전 부회장의 아들인 이해영 대림비앤코(욕실
전문기업인 옛 대림요업) 사장은 최근 서울 강남구 논현동 사옥에 이헌정 씨의 위생도기(변기) 설치작업을 전시하고 있다. 콘크리트
벽면에 변기가 90도 회전돼 매달려 있다. 이 씨는 “항상 바닥에 놓여 있던 변기를 벽에 다는 것만으로도 시각적 충격과 패러다임의
변화를 꾀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계속 여행을 떠난다. 유명 패션 브랜드 ‘질샌더’가 유니클로와 손잡고
‘+J’란 대중적 브랜드를 만들었듯, 그도 최근 ‘바다(BADA)’라는 실용적 도예 브랜드를 만들었다. 관념을 충실히 담아야 하는
‘작품’과 대중에게 더 가깝게 다가서는 ‘제품’은 엄연히 구분돼야 한다는 소신 때문이다. 서울 서초구 서초동의 주상복합건물
‘부티크 모나코’에 둥지를 튼 ‘바다’엔 이 씨의 숨결을 느낄 수 있는, 일반인도 크게 부담 느끼지 않고 살 수 있는 우리
그릇들이 있다. 이 씨는 이 브랜드 설립을 주도했을 뿐 실제 운영은 아내 조현주 씨가 맡는다. 이 씨의 미국 유학생활 동안, 그리고
이번 인터뷰 내내 옆에서 묵묵히 도왔던 아내는 어쩌면 ‘이헌정 스타일’을 일구게 한 일등 공신인지도 모른다. 이 씨는 양평
작업실을 ‘캠프(Camp) A’, 바다 매장을 ‘캠프 B’라고 불렀다. 군사 작전용어 같은 어감 선택이 딱 그답다. 미래의 캠프
C와 캠프 D는 어느 곳이 될지. 그들의 여행, 앞으로도 계속 궁금해진다.양평=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

 

(풀
빳빳이 먹인 한산모시 블라우스 입고 찾아가 이헌정
씨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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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살라 웨딩드레스를 입는 여자

‘암살라’.

 심플한
우아함을 추구하는 미국 뉴요커 여성들이 좋아하는 웨딩드레스입니다.

 이
브랜드를 세운 암살라 아베라 씨(55)가 방한해 만나봤습니다.

 암살라
드레스. 실제로 보니 참 예뻤습니다.

 전
화려한 비즈장식보다는

 깔끔한
새틴 드레스나, 발레리나 튀튀 스타일이 좋았습니다.

 암살라
웨딩드레스에 관심이 있는 분들을 위해

 암살라
아베라 씨를 소개합니다.

 

(12일
서울 반얀트리 클럽 앤드 스파 호텔에서 자신의 드레스를 소개하고 있는 암살라 아베라
씨. 사진은 전영한 동아일보 사진부 기자)

 

(암살라
아베라 씨와 함께. 사진은 박상훈 동아일보 대학생 인턴기자)

 

  1980년대 초반 미국 보스턴의 하버드대를 다니던 C. 오닐 브라운 씨는 이 학교 레스토랑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던 까무잡잡한 피부의 한 여성에게 마음을 뺏겼다. 에티오피아 출신으로 뉴욕 FIT에서 패션을 공부한 그녀의 이름은 암살라 아베라.

  사랑에 빠진 그들은 1985년 결혼을 약속했다. 하지만 과장된 장식의 웨딩드레스가 유행하던 시절이어서 간결미를 원하던 아베라는 직접 드레스를 만들었다. 가난한 조국 에티오피아를 떠나온 그에게 손수 옷을 지어 입는 건 평범한 일상이었으니. 그는 결혼 이듬해인 1986년 뉴욕의 작은 아파트에서 웨딩드레스 사업을 시작했다. 미국 럭셔리 웨딩드레스 브랜드 ‘암살라’의 시작이다.

  그가 12일 한국에 왔다. 중국 및 아시아 진출의 교두보 역할을 하는 한국 시장을 다지기 위해서다. 그의 곁엔 올해 하버드대를 졸업한 23세 외동딸 레이첼 씨, 아내가 설립한 브랜드를 ‘암살라 그룹’으로 성장시킨 최고경영자 남편이 동행해 있었다. 암살라 그룹엔 세련된 맨해튼 신부를 대표하는 ‘암살라’, 줄리아 로버츠와 손태영 등 스타들이 찾는 드라마틱한 ‘케네스 풀’, 클래식한 신부를 위한 ‘크리스토스’ 등 개성이 뚜렷한 세 개 브랜드가 있다.

  암살라 아베라는 에티오피아 최고의 ‘아메리칸 드림’을 이룬 게 아닐까. 그는 “에티오피아 출신인 걸 늘 자랑스러워하지만 내 이름을 미국 패션업계에 알리는 건 매우 힘겨웠다”며 “한국의 젊은 디자이너들도 자신만의 스타일을 이룩하도록 계속 노력하는 길 밖에 없다”고 말했다. 하긴 ‘암살라’가 뉴욕 부자 손님들의 입소문을 얻기 시작해 지금의 명성을 쌓게 된 건 ‘암살라 블루리본 라인’으로 불리는 고급스런 드레스 덕분이었다.  

김선미기자
kimsunmi@donga.com

 

이날
웨딩드레스 원단으로 만든 원피스를 빼입고 인터뷰를 가서

암살라
드레스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어봤습니다. ^^

 

 

 

 

 

 

 

 

 

카테고리 : 패션 스타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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