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텔레비전 토크쇼에서
한 연예인이 루머 기사(記事) 때문에 맘 고생한 얘기를 하는 걸 본 적이 있다. 그러자
다른 패널이 그녀를 위로하기 위해 이런 말을 해줬다.
자신의 은사님이
해준 얘기라며, “신문에 사실은 있을지 몰라도 진실은 없다”고 했다.
다른 연예인들이
박수를 치며 공감했다. 그러고는 그의 말이 마치 ‘명언’이라도 된다는 듯이 그를
치켜세웠다.
사람들이 신문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였다.
과연 그럴까.
신문에는 정말 진실이
없는 걸까.
손석춘의 ‘신문
읽기의 혁명2’를 읽었다. 지난 11월 출간됐다.

신문 읽기의
혁명2, 손석춘 지음, 개마고원, 12000원
대학 2학년 때 1편을
읽었고, 그것은 내 생각의 틀을 많이 바꿔준 책이었다.
어느 정도의 과장이나
편향성이 있다하더라도, 신문 읽기 자체를 새롭게 하도록 했기에 의의가 큰 책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 때 쓴 리뷰는
이렇게 적고 있다.
꽤나 감명적이긴
했나보다.
1권이 주로 신문의
기사들이 편집·재배치됨으로써 전혀 다른 모습으로 탄생될 수 있다는 사실을
전달하는 데 주력했다면,
2권은 저자의 말대로
사회·정치 분야와 경제 분야의 기사를 어떻게 읽어나가야 할 것인지를 얘기하고
있다.
이는 요즘 들어 내가
의식하며 읽는 분야이기도해서 흥미를 갖고 읽을 수 있었다.
특히 노무현 전 대통령이
언론을 대하는 태도를 분석한 것은 후대정권 누구라도 반면교사로 삼아야 할 부분이지 싶다.
노무현 대통령이
소위 ‘조중동’과 싸울 때 유시민이 이를 거들면서(?)
언론의 기능을 악화시켰다.
반면, 강준만은 ‘노빠’로부터
외면당하면서까지 노무현에게 쓴소리를 했었다.
물론 노무현은 유시민의
손을 잡았다.
‘내부비판’은 쉬이
허용되지 않았던 것.
이제는 달라졌으면
한다. 내부비판이 늘어났으면 한다.
꼭 누군가가 ‘고인(故人)’이
되고나서가 아니라 말이다.
손석춘의 말처럼
적어도 대통령이 된 이후에는 언론을 비판하는 일은 없어야 했다.
대통령의 자리는
이미 제1권력으로, 언론의 비판을 당해야 하는 자리이지, 비판을 하는 자리는 아닌
것이다.
아직 노 대통령 서거
1주년이 채 안 됐다.
그럼에도 이런 쓴소리가
등장했다는 것을 우리나라 진보정치의 희망으로 해석하고 싶다.
다음으로 책에서
거론되는 것이,
한나라당과 ‘조중동’의
관계다.
우리나라 대표 보수
정당과 보수 언론의 관계.
(중앙일보는 ‘삼성’과
더 관련이 깊긴 하지만, 일반적으로 ‘조중동’이라 통칭하므로 이렇게 쓰겠다.)
손석춘은 정권교체
10년 동안에도 현재의 여당인 한나라당이 세력을 유지할 수 있었던 이유로 보수언론의
힘을 든다. 본인 또한 한 한나라당 당직자로부터 “‘조중동’은 뭐 우리 기관지나
마찬가지니까……”라는 말을 직접 들은 적이 있다. 기자들이 들으면 자존심에
스크래치가 상당할 말이다. ‘조중동’ 스스로 어떻게 생각하든, 한나라당이 이렇게
생각하고 있다는 사실은 긍정적으로 해석될 수 없다.
저자가 예를 드는
것 중 하나는 ‘조중동의 고의적인 영남 지역감정 조장’이다.
일견 수긍이 가는
대목이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저자가 고의로 혹은 모르고 간과한 사실이 있다.
진보언론과 진보정당의
관계.
이들은 모두 ‘진짜
혹은 선한’ 가치를 추구하고 있기 때문에 유착돼도 상관이 없는걸까?
한나라당이든 민주당이든
정권을 잡겠다는 목적은 동일할 텐데 말이다.
실제로 지난 정권
10년 간은 한겨레 및 경향에 대한 정부 광고가 대폭 늘어났었다. (출처 =이름을 밝히지
않은 기자)
손석춘이 그 부분을
짚고 넘어가기가 곤란했던지 정말로 문제의식이 없었던지 둘 중 하나일 것이다.
한국 언론의 문제를
‘조중동’의 문제로 축소시키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한 태도라는 생각이 든다.
다음은 신문사와
자본의 관계.
동아일보에서 인턴기자를
할 때 일이다.
일과가 끝나고 동기들끼리
“오늘 재밌었어?”라고 물으면,
“신문 보는 법 배웠어”라고
대답하는 동기들이 적지 않았다.
여기서 ‘신문 보는
법’이란 광고를 본다는 것을 뜻했다.
평소에는 눈여겨보지
않는 광고를 신문사주의 입장이 돼서 보는 것이다.
인턴기자를 하며
좋았던 점 중 하나가 이런 눈을 키우게 된 것인데,
손석춘도 이에 대해
자세히 소개하고 있다.
한 단계 더 나아가
신문이 성스러운 존재만은 아니라고 얘기한 부분은 특히 읽어볼 만하다.
신문이 상업적일
수밖에 없었던 연원을 얘기한다.
자세한 내용은 책을
읽어 보고 판단하시길^^
다음은 사회·정치와
경제 분야의 기사. 이 책의 부제이기도 한 -경제를 읽어야 정치가 보인다-.
신문을 읽는 사람이라면
다 느끼겠지만, 둘은 스타일도 내용도 완전히 다르다.
이 부분은 강준만의
‘대중 문화의 겉과 속1’과 비교해 매체만 달라졌을 뿐, 내용은 비슷했다.
요컨대 9시 뉴스에서는
경제가 어렵다, 어렵다 얘기하고선,
이어지는 VJ특공대에서는
전국의 불티나는 음식점 등을 소개하는 식이다.
경제(사회 정치적인
의미가 포함된)뉴스와 생활경제의 분리다.
이는 신문 지면에도
똑같이 드러난다.
사모펀드 실적이
붕괴돼 가는데,
새로운 펀드상품을
소개하는 식이다.
여기에 해당되는
대표 예들에도 ‘조중동’이 소개된다.
저자는 자세히 썼다.
그런데 한겨레 경향이라고
덜 그럴까?
책에는 등장하지
않는 한겨레의 사례를 하나 소개할까 한다.
며칠 전 출간된 한겨레21
제 798호에는
백화점 점원들의
목소리가 실렸다. AK백화점 직원들이 거리로 나왔다.
휴식 시간과 휴일이
보장 안 되는 노동 현실을 고발한 것이다.
백화점의 ‘화려함’
뒤에 감춰진 ‘어두운’ 노동현실을 비판했다.
시도 때도 없는 연장
영업과, 휴일에도 쉬지 않는 백화점의 운영 방침.
그런데 바로 2월
11일 한겨레 경제면에는
‘명절연휴 나들이
쇼핑몰로 가볼까’라는 제목의 기사가 있다.
기사는 “일부 백화점들은
휴무를 설날 당일로 축소했고, 복합쇼핑몰들은 설날 당일만 쉬거나 당일에도 영업을
하면서 명절 편의 서비스나 이벤트를 쏟아내고 있다”며, “에이케이플라자 4개 점포도
모두 설날 당일만 쉬고 영업을 계속한다”고 말한다.
이 기사를 끝까지
읽어봐도 AK백화점의 점원의 노동 환경에 대한 얘기는 찾아볼 수 없다.
철저히 ‘고객(=소비자,
독자)의 편리함’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경제섹션의 기사
또는 정보성 기사만을 읽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지를
보여주는 사례다.
마지막으로, 필자가
주장하는 ‘신문 깊이 읽기의 세 지층’에 대한 얘기를 하고 포스트를 마칠까한다.
이 부분에 대해선 논란이 있을 것 같다.
나는 서로 다른 가치관을
신봉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런데 저자는 자신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가치관을 중심으로 신문을 읽을 것을 당부하고 있다.
물론 그렇게 읽는
것이 ‘비판적 신문 읽기’에는 어느 정도 도움이 된다.
그러나 감히 말하건대,
틀을 미리 정하는 것은 오히려 독이 될 수도 있다.
신문을 어떻게 읽어야
할까.
특히 요새같이 인터넷으로
많은 기사를 접하는 시대에는 어떤 방식이 적합할까.
한 가지 방법으로
나는 네이버캐스트 실시간 언론사 헤드라인을 추천한다.
http://news.naver.com/main/presscenter/category.nhn

홈페이지로 네이버캐스트를
정해 놓고,
자신이 원하는 언론사를
선택하는 것이다.
조선일보 중앙일보
동아일보
혹은
한겨레 경향신문
이렇게만 보지말고,
한 번에 여러 매체의
헤드라인을 볼 수 있도록 해 두는 것이다.
한 신문에 갇히는
것으로부터 조금이나마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이다.
물론 이를 방해하는
것 중 하나는 언론사들의 자극적 뉴스캐스트 편집.
이것 또한 점점 시정되길
기대해본다.
신문에는 사실의
나열만 있는 것이 아니다.
깨어있는 독자가
있을 때, 신문에도 진실이 있다.
손석춘도 그런 희망을
갖고 이 책을 썼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