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는 오로지 STAR 일 때만 빛이 나는가?
스타의 사생활은 알수록 백해무익인가? 그래도 궁금한가?
연극, 드라마, 뮤지컬, 콘서트 등등 각종 대중적인 창작물을 즐기다보면 ..
동경하던 대중 스타, 창작자들의 사생활에 이래저래 실망할 때가 한 두번이 아니다.
그러다가도 그 사생활을 알면 또 다른 시각이 생겨서 더 귀기울여 ”듣게” 되기도 한다.
사생활은 그의 작품이 발현되는 데에 있어 굉장히 중요한 창작 배경이기 때문이다.
비판하는 입장, 분석하는 입장이라면,
어느 정도 대상이 품고 있는 속엣 모습(?)도 중요하다.
사실 ”정도”의 싸움이기도 하다.
작가는 말할 것도 없고, 연출가, 배우도 모두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그가 살아온 배경, 그가 겪어온 에피소드들이 작품에 어떻게라도
(의도하든, 의도하지 않든) 투영되기 때문에,
오로지 작품이라는 내적 요소 외에도,
그 작품을 둘러싼 온갖 외적 요소에도 관심을 쏟게 마련이다.
2008년 대학로에서 흥행몰이에 성공한 연극 열전 2의 ”웃음의 대학”을 보던 12월,
유난히 그 생각은 강해졌다.
해답은 아직도 …. 내리지 못했다.
그러나 그 질문은 멈추지 못할 것 같다.
아마 계속 공인(?)들을 만나며 스스로에게 던지는 질문이 될 것 같다.
배우의 윤리성은 어떻게 보아야 할까?
윤리성이라는 이름으로 사회가 재단할 수 있느냐의 여부부터
인간적인 도리 수준의 사회적 합의라면 잣대를 들이밀 수 있는 것 아닌가에 대한…..
판단까지.
생각은 복잡해진다.
송영창과 황정민이 주연한 연극 열전 2 ”웃음의 대학”은
연극을 보는 내내 그 문제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만들었다.
”웃음의 대학”은 영화 미스터맥도날드의 미타니코키 일본 작가의 작품을
한국에서 연극화한 것이다.
최근의 일본 작가들 작품에서 느껴지는 섬세함, 위트 넘치는 대사, 이해하기 쉬운 표현방식이
아마 한국인들에게도 인기를 끌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맨 뒷자리에서 공연을 보던 중이었다.
웃음보가 터진 관객들은
모두 박장대소를 하며 공연을 보는 광경을 관찰했다.
특히 커튼콜에서 황정민보다 송영창에게 박수가 쏟아졌다.
그는 검열관으로, 작가(황정민)의 작품에 계속 딴지를 걸어야 할 입장임에도
자기가 점점 그 작품들에 동화돼
서툴고 우스꽝스럽게 연기를 하고,
대본 아이디어를 첨가하는 캐릭터가 좌중을 감동시킨 것이다.
작가란 어떤 경계에서든 사실 핑계될 게 없구나 .
작품의 창작욕은 무엇으로도 막을 수 없다..
벽이 높아질수록 더욱 정신은 맑아진다 는 등
창작의 고통이 주는 역설.을 생각하게 만는 작품이었다.
개인적으로는 이준익 영화 감독과 같은 열에서 본 바람에,
이준익 감동이 웃는 지점과 그의 영화(왕의 남자, 즐거운 인생, 라디오 스타 등)와
이 작품을 연결하며 감상하는 행운도 누릴 수 있었다.
공연이 끝나고 나가는 길에 이준익 감독 사인을 받으며
이준익 감동 영화의 문제의식과 웃음의 대학의 주제의식에
비슷한 맥락이 있다고 말했다.
이준익 감독도 매우 재미있게 본 작품이라고 말했다.
본의아니게 존경하던 감독과 같이(?) 본 연극이 돼서,
각별히 기억에 남는 공연이기도 했다.

하지만 …. 보러 가기 전부터 망설였던 작품이다.
주변에서는 송영창의 재기를 도울 생각이 없어서,
그저 송영창이 너무 싫어서
특히 여자의 입장에서 지극히 불쾌한 기분에
연극을 보러 가지 않겠다고 말하는 사람이 많았다.
윤석화의 재기를 도울 생각이 없어서,
괜히 일조하는 게 싫어서
”신의 아그네스”나 ”사춘기”를 보러 가지 않겠다고 말하는 사람이
많았던 것과 같은 맥락이었다.
윤석화는 학벌 위조로, 송영창은 청소년 성매매로 과거 ”주홍글씨”를 새겼다.
그러나 2008년 이들은 연극을 통해 다시 예초의 시작지점, 연극으로 돌아왔다.
본래 연극 배우였던 이들은 그들의 친정에서 호평을 받았다.
작품에 대한 대중적인 관객 반응이 좋았고, 흥행도 성공했다.
송영창은 그제 5일 월요일 밤, 대학로에서 열린 연극열전2 폐막식에서
객석투표와 배우,스태프, 언론사 기자의 사전투표를
합산한 결과, ”배우상”을 수상했다.
그는 눈물을 글썽였다 하고, 사람들의 박수 갈채는 쏟아졌다고 한다.
송영창은 2000년 080 전화사서함을 통해 만난 열여섯 살의 여학생과 35만원에
두 차례 성관계를 맺은 혐의로 징역 10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 받은 바 있다.
이후 모든 연예 활동이 중단됐다.
그는 이명세 감독의 영화,
특히 ”첫사랑”에서 김혜수가 짝사랑하는 선생님으로 등장해 내겐
깊이 각인된 배우였다.
불미스러운 사건 이후 2002년 여름, 여의도 고깃집에서 주인과 손님으로 만났을 때
배우인 송영창을 본 것은 지극히 반갑고 영광이었다.
영화 속 피사체, 영화 첫사랑의 주인공을 직접 만난 행운을 얻은 것이다.
그러나, 청소년 성매매로 입방아에 오른 연예인이라는 사실이 나를 계속
”껄끄럽게” 만들었다.
송영창은 그 사건 이후, 계속 연극을 하고 싶어도 시켜주는 곳이 없었고
대학로에서 몰래 포스터를 뜯어다가 가게에 붙여놓으면서
계속 연극의 꿈을 멈추지 못했다고 한다.
송영창의 연극을 봐야하나 말아야 하나 선택을 내리는 순간까지.
나는 그를 청소년 성매매 전력으로 기억해야 할 지,
학창 시절 영화를 통해 발견한 뛰어난 연기력의 배우로
간주해야 할 지 란스러웠다.
그때 내린 결론은 일단 "연극은 보자"였다.
사회에서 재기할 기회가 거의 박탈당하고 마는, 전과자들에 비해
배우들은 어쩌면 더 나은 위치인지도 모르겠다.
아니 배우이기에 얼굴이 더 드러나고, 깊은 수렁에 빠졌을 수도 있다.
고민을 거듭하면서 내가 송영창의 연극을 감상한 것에 대한 이유는…
공인은 공인이고 개인은 개인이다 .. 라는 결론이었다.
인생에 오점을 남긴 개인은 일단 차치하고,
캐릭터를 보러 가잔 마음이 더 컸다.
연예인이 공인인지에 대한 찬반은 아직도 계속되고 있고,
학창 시절 상아탑 안에서도 결론은 내리지 못했다.
하지만 매체에 종사하면서 연예인은 ”공인”이 확실하단 쪽으로 기울고 있다.
일단 공적인 매체에 드러나는 위치라는 원인이 크다.
그들의 자유 의지와는 상관없을지라도,
대중에게 발표되는 드라마, 노래, 영화 등 등
작품활동을 ”일적으로” 즉 공적으로 하기 때문이다.
그것이 혼자 소비하고 자족하고 말아버리는 개인의 소유물이 아닌 이상,
창작자의 손을 넘어 대중들에게 전달된 이상,
이들은 이미 공인이 돼버렸다.
골방에 틀어앉아 혼자만의 내면 세계를 충족시킨다면 할 말 없다.
하지만,
대중과 소통하려는 작품에 종사해야 하는 이들은,
곧 대중과 연결되는 가장 가까운 지점에 있기 때문에
직업적으로 공인이다.
”"공인으로서"의 꼬리표는 계속 붙는다.
한창 성장기에 있는 청소년에게 영향을 많이 끼치는지의 여부보다는,
눈에 보이지 않고, 가늠할 수 없을지라도
이들의 파급력이 대단해졌고,
사회의식이 형성돼 가는 ”방향성”에서 결코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이다.
부인할 수 없이 커져버렸다. 신귀족계급이라는 말이 오가는 것도 일견 타당하다.
창작자와 연예인의 범위가 다소 다르긴 하지만,
TV를 비롯한 공연장 , 인터넷 , 라디오 등등 온갖 매체들에 접촉하고 표현할 수 있는
빈도가 높아질수록 . 공인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다.
그것은 직업으로 인해 생겨나는 책임감,
개인에게는 서글픈 필요악일 수도 있다.
떠다밀렸든, 스스로 자발적으로 그렇게 나아갔든.
공적 캐릭터, 공적 인물로 ”이미지화”된다.
( 반대로 공적 인물이 작품 안의 소재로 쓰이면 그때는 사인
박정희가 됐든, 비가 됐든, 작품 인물로 그려지게 된다면,
그것은 그리는 사람에게 선택권이 있을 듯)
공인들은 보통의 다른 업종 종사자들에 비해
공적 발언권을 더 많이 갖고 있다.
활동의 범위도 더 넓어다.
개인으로서 자유롭게 사는 것과 공인으로서의 책임감이 덧씌워진 것은 별개 문제다.
그래서 연예인이 범죄를 저지르거나, 거짓말을 교묘하게 일삼았다면
지탄받는 건 당연하다.
단지 그게 마냥사냥, 냄비 식으로 이슈화 됐다면 비판받아야지.
”내가 어떻게 살았든 대중이 무슨 상관이냐”고 손사래칠 사안은 아닐 것이다.
자신을 변명하려 하기보다 반성을 해야 하고,
그것은 또 사회적인 용서 더하기, 자기 자신에게 구하는 용서라야 할 것이다.
윤리는 어디까지나 일차적으로 개인 인격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공인으로서의 송영창은,
객석이 기립박수를 칠 만큼 관객들에게 웃음을 준 게 사실이다.
그러나 개인 송영창은, 청소년 성매매라는 굴레에서 쉽게 벗어나지 못할 것 같다.
그 굴레가 그의 배우 인생에 도리어 발효되는 되는 득이 될 지,
”웃의 대학”을 거부했던 연극팬들처럼 계속 안티팬을 양산할지는
아직 모르겠다.

사람들은 누구나 끊임없이
겉으로 드러나는 이미지와, 억제되지 않은 날것의 모습, 숨기고 싶은 치욕 사이에서
아슬아슬하게 줄다리기를 하며 산다.
특히 배우들은 여러 모습을 연기해야 하는 그 직업상
다른 이들보다 더 심하게 업앤다운하며, 그 줄다리기에서 자유롭지 않을 것 같다.
연극열전 2의 초반 작품 ”블랙버드”에서는
어릴 적 성추행을 당한 여자 아이가 나이가 들어 가해자인 중 남자를 찾아간다.
여자는 성장하는 동안 어릴 적 상흔에서 벗어나지 못했고,
네가 나를 가두었다고 절규한다. 그러나 한편로 그와 나의 관계는
사회가 재단할 수 없는 미묘한 것이었다는 메시지를 전달한다.
과거의 멍에와 남성의 폭력, 애증이 뒤섞인 배경에서
인간의 복잡다단한 마음을 드러냈던 게 연극 ”블랙버드”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