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허벌판 음악회의 즐거움

 

  * 올 가을 ‘금난새의 야외 콘서트’에서 팜플렛에 글을 써달라고 부탁해서 쓴 글입니다. 써놓고 보니 올해 제가 취재 다녔던 동선이 나타나는군요. 여름에 유럽 음악회 취재는 한번 갔다왔어야 하는 데, 유PD만 좋은 데 갔다오고.. 대신 전 몽골에 다녀왔으니까… 내년에는 꼭 유럽과 러시아에 한번 갔다왔으면 하는 소망이 있습니다.  

 

 

 

  1936년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 경기를 제패한 손기정 선수가 뛰었던 마라톤 코스에는 베를린 교외의 샤를로텐부르크에 있는 ‘그뤼네 발트’(녹색 숲)가 있었다. 손 선수는 마라톤 출발지점에서 시작해 13km까지, 30km구간에서 도착지점까지 이 숲 속으로 난 코스를 달렸다. 도심 주변에 끝도 없이 펼쳐진 숲 속 마라톤 코스. 정말 생각만해도 부럽다.  

  그러나 이 숲 속엔 더 부러운 것이 있다. 바로 ‘발트뷔네’다. ‘발트’(wald)는 숲,  ‘뷔네’(bühne)는 무대란 뜻으로 말 그대로 숲 속에 설치된 야외무대이다. 이 곳은 가장 매력적인 유럽의 야외 원형극장 중의 하나로 베를린 필의 여름 콘서트가 열리는 본거지다. 세계적인 지휘자가 초빙되는 이 콘서트는 2만 명이 넘는 관중들이 운집하는 세계에서 가장 대중적 인기를 누리는 클래식 음악 공연 중의 하나이다.

  ‘발트뷔네 피크닉 콘서트’로 이름 붙여진 이 음악회는 1990년 6월30일에 시작됐다. 통일을 앞두고 베를린 필은 이 곳에서 다니엘 바렌보임의 지휘로 여름밤 공연을 열였다. 이후 해마다 6월 마지막 일요일이면 발트뷔네로 향하는 지하철에는 가족끼리 혹은 친구들과 짝을 이뤄 콘서트를 찾는 시민들로 가득찬다.  

  이 음악회에 참가한 시민들은 ‘피크닉 콘서트’라는 말 그대로 모두 캐주얼한 차림으로 각자 도시락을 들고 와서 와인잔을 기울이며 클래식 음악회를 즐긴다. 콘서트에 참석한 시민들이 어깨에 맨 짐에는 으레 서늘한 여름밤을 견딜 수 있는 담요로 둘둘 감싼 포도주 한 두병쯤이 감춰져 있게 마련이다.  

  해가 저물 무렵에 시작해 밤으로 이어지는 숲 속 풍경은 최고의 분위기를 연출한다. 고대 그리스의 원형극장을 연상시키는 발트뷔네의 잔디석에는 미소를 머금고 머리를 맞댄 부부, 엄마 아빠 따라와서 음악에 맞춰 깜찍한 춤을 추는 아이, 처음 본 사람들끼리 어깨동무를 하고 즐겁게 음악을 즐기는 사람들을 쉽게 볼 수 있다. 깜깜해지면 관객들은 미리 준비한 불꽃을 하나 둘 켜기 시작한다. 지휘자는 혼신의 연주와 함께 때론 익살스런 표정으로 관객들을 사로잡고, 콘서트의 마지막은 항상 린케의 ‘베를린의 숨결’(Berliner Luft)이라는 경쾌한 곡으로 마무리한다. 지휘에 맞춰 모두가 휘파람을 불고 박수로 하나되는 모습 또한 훈훈한 장면이다.

  1996년 클라우디오 아바도가 지휘하고 소프라노 안젤라 게오르규 등이 출연한 ‘이탈리안 나이트’에서는 대표적인 이탈리아 작곡가인 베르디, 벨리니, 로시니의 오페라 중 귀에 익은 선율을 연주했고, 2001년 공연에선 테너 플라시도 도밍고가 지휘봉을 잡고 한국의 바이올리니스트 사라 장(장영주), 소프라노 안나 마리아 마르티네즈와 함께 스페인 무드가 가득한 음악을 연주하는 ‘스페니쉬 나이트’ 콘서트가 열렸다.

  매년 주제를 달리하는 이 음악회에는 다니엘 바렌보임(1998년 ‘라틴아메리카 나이트’), 마리스 얀손스(1994년 ‘댄스 앤 랩소디’, 2002년 ‘월드 앙코르’), 주빈 메타(1997년 ‘상트 페테르부르크 나이트’) 등 세계적인 지휘자들이 무대를 이끌어 왔다. 비록 야외음악회지만 이처럼 높은 수준의 음악가들이 나오는 발트뷔네 콘서트는 연주실황이 DVD로도 만들어져 전세계 클래식 팬들을 매료시키고 있다.    

  

<유PD님의 뽐뿌질로 산 DVD>

 

  이처럼 베를린 필하모닉의 발트뷔네 콘서트, 뉴욕필하모닉이 개최하는 센트럴파크 음악회처럼 세계 각국에서는 도심 숲 속에서 벌어지는 대규모 야외 음악회가 성황리에 열리고 있다. 국내에서도 서울시향이 정명훈 지휘자를 영입한 이후로 지난해부터 8월15일이면 서울시청 앞 잔디광장에서 2만 여명의 시민들이 참가한 가운데 ‘광복절 콘서트’를 열고 있다.   

  그렇다면 오스트리아 빈의 뮤직페라인 황금홀처럼 음향시설이 잘 돼 있고 반사음과 잔향감이 풍부한 음악홀이 아닌 야외 음악회에 관객들은 왜 매료되는가. 아마도 야외 콘서트의 맛은 답답한 도심을 벗어나 대자연 속에서 긴장을 풀고 좀더 열린 마음으로 음악을 즐길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새소리와 바람소리가 들리는 자연 속에서 듣는 음악은 전혀 색다른 감동으로 다가올 수 있다.

 

  

 지난 8월 몽골 초원에서 열린 음악회에서도 그런 느낌을 받았다. 몽골 울란바타르시에서 2시간 정도 떨어진 테를찌 국립공원에는 에델바이스가 흐드러지게 피어 있었고, 설악산 울산바위를 연상케하는 아름다운 바위와 드넓은 초원, 흰 구름은 마치 딴 세상에 와 있는 듯했다. 과연 이렇게 드넓게 펼쳐진 공간에서도 음악회가 가능할까? 늘 음악회란 밀폐된 공간에서 들어야 소리의 울림을 제대로 들을 수 있다고 생각해 왔기 때문에 의구심이 들었다.

  

    <몽골 국립마두금 합주단 공연>

 
p>  그러나 해가 뉘엿뉘엿 지는 드넓은 몽골 초원에서 들었던 마두금 합주는 이런 생각이 기우에 불과했다는 사실을 깨닫고 해주었고, 진정 잊을 수 없는 감동을 던져 주었다. 말총으로 만든 현과 활로 연주하는 애잔한 마두금의 소리는 바람을 타고 산을 넘었다. 몽골의 초원은 광활했지만 어떠한 인공적 소음도 없는 그야말로 청정한 지대였기 때문에 소리는 어디서나 또렷이 들렸다. 몽골 초원에서는 마두금을 연주하면 산 너머에 사는 사람도 그 소리를 감상한다고 한다.  

  한 유목민은 “몽골의 북쪽 지역의 산악지대에서 한 유목민이 ‘후미’라는 전통 가곡을 부르면 그 노래 소리가 온 산을 울려댄다”고 소개하기도 했다.

 

    

  <몽골 초원에서 크고 있는 나(?)의 아이들>

 

   이렇게 자연 속에서 듣는 음악은 특별한 감동이 있다. 유럽에서는 여름 휴가철에 풍광이 수려하거나 유서 깊은 고도(古都)의 휴양지에서는 펼쳐지는 야외 음악축제를 활성화시켜 전 세계의 관광객들을 끌어 모으고 있다.

  그 중에서도 2000년 전에 지어진 고대 로마시대 콜로세움에서 펼쳐지는 이탈리아의 베로나 페스티벌은 유명하다. 최대 수용인원 2만명에서 2만5000명까지 가능한 ‘아레나 디 베로나’ 원형극장의 돌무대는 마이크를 사용하지 않아도 오페라 가수들의 노래 소리가 전달되는 신비의 음향효과를 갖고 있다. 또한 스위스와 독일, 오스트리아 3국의 국경과 가까운 브레겐츠 페스티벌에서는 보덴 호수 위에 설치된 ‘떠있는 무대’에서 오페라가 공연돼 잊을 수 없는 특별한 풍광을 던져준다.  

  <브레겐츠 페스티벌 ‘호수위에 떠 있는 무대’>

 

  이 외에도 스위스의 루체른 호숫가에서 펼쳐지는 루체른 페스티벌, 저녁 공연을 보고 난 후에도 여전히 어둠이 내려 앉지 않아 네바 강변에서 보드카를 마실 수 밖에 없는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의 ‘백야 축제’, 노천시장에 즐비한 프로방스의 꽃과 과일들이 찬란한 생명력을 발휘하는 프랑스의 엑상프로방스 축제 등은 음악여행자에게는 빼놓을 수 없는 명소가 됐다.

  휴양지에서 펼쳐지는 야외음악회를 즐기기 위해 꼭 해외로 나갈 필요는 없다. 국내에서도 제주국제관악축제, 대관령음악제, 전주세계소리축제, 통영국제음악제 등과 같은 국제적인 음악축제가 점차 자리를 잡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10년째 제주국제관악제를 개최해오고 있는 제주도는 휴양지에서 펼쳐지는 야외음악회를 즐기기 좋은 곳이다. 제주시향의 이동호 지휘자는 “한라산에 올라서면 수많은 제주도의 오름이 마치 나팔이 하늘을 향해 거꾸로 뒤집어 있는 듯한 형상이다. 내가 지휘봉을 한번 휘두르면 엄청난 나팔소리가 울려 퍼질 것 같다”고 말한다.

  <무거운 튜바를 메고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오름까지 올라가 사진촬영을 해준 제주시향 단원들>

 

 실제로 제주시향은 오름음악회, 동굴음악회 등 다양한 야외음악회를 열고 있다. 분화구 모양의 기생화산인 ‘오름’에 오르면 사방에 병풍처럼 돌이 쌓여 있는 경우가 많다. 이 곳은 천혜의 콘서트홀이 된다. 또한 제주시향은 매년 가을에 우도의 ‘경안동굴’을 찾아가 동굴음악회를 연다. 썰물 때 입구가 드러나는 동굴에는 400~500명이 들어갈 수 있다고 한다. 동굴에 머무를 수 있는 시간은 불과 2~3시간. 1년에 딱 한번 열리는 동굴음악회는 그 희소성 면에서, 천혜의 음향조건을 갖춘 곳에 열리는 음악회라는 점에서 해마다 인기를 끌고 있다.

 

  <지휘자 이동호 씨와 제주시향의 동굴음악회> 

 

 지난 여름 북한강변의 한 미술관에서 열린 음악회에 갔던 기억은 가을이 시작되도 잊혀지지 않는다. 미술관 전면의 유리창 밖으로 보이던 홍수로 불어나 넘실거리던 강물과 버드나무 가지…. 비오는 날의 첼로 연주는 내 마음을 송두리째 흔들어 놓기도 했다.

 

 

  도심 생활에 찌든 현대인들의 ‘폐쇄 공포증’을 치유해주는 것은 아무래도 야외 클래식 음악회가 제격인 것 같다. 올 가을. 풀벌레 소리와 함께 연주되는 바이올린 소리를 즐겨 들어 보시는 것은 어떠실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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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차드 용재 오닐의 '섬집아기'

  이 기사가 나간 다음날, 유니버설뮤직 측에 전국의 음반점에서 하루에 8000장의 주문이 들어왔다는 전설이 있습니다. 용재의 비올라 앨범은 조수미 20주년 베스트 앨범을 가볍게 뛰어넘어 1만장이 넘게 팔리고 2만장을 향해 가고 있다고 하더군요. 신문기자는 음악도 음악이지만, 아무래도 스토리가 있는 사연에 더 끌리는 것 같습니다.

 

비올라는 엄마의 목소리같아… 2집 ‘눈물’ 낸 용재 오닐


수줍은 듯 가슴을 울리는 강인한 선율. 비올라는 리처드 용재 오닐의 인생과 무척 닮은 악기다. 그는 “나는 한번도 비올라를 연주한다고 생각한 적이 없다. 나의 목소리가 노래하고 있다고 생각해 왔다”고 말했다. 사진 제공 크레디아

“사람들이 제 CD를 듣고 e메일을 보내와요. 모두들 울었다고 하더군요. 저는 사람들이 제 음악을 듣고 행복해지길 바라는데….” 잘 생긴 외모는 아니지만 미소가 아름다운 청년, 리처드 용재 오닐(28). 무대 위에서 이리저리 몸을 흔들며 연주하는 그의 비올라 소리에는 밝은 표정 속에 가려진 헤아릴 수 없는 한과 슬픔이 있다.

그가 2집 앨범(유니버설 뮤직)을 냈다. 제목은 ‘라크리메’(눈물). 오닐의 어머니 이복순 씨는 6·25전쟁 고아로 미국에 입양됐다. 어릴 적 열병을 앓아 정신지체 장애인이 된 그는 미혼모였다. 오닐은 미국인 외조부모의 손에서 컸다. 병원에서 일하다 은퇴한 뒤 TV 수리점을 운영하던 외조부모는 넉넉지 않은 살림에도 54년의 결혼생활 동안 35명의 입양아를 돌보았다. 외할머니는 “네가 열심히 노력하고 공부하면 언젠가는 하늘이 꼭 도와줄 것”이라며 오닐에게 용기를 북돋워주곤 했다.

이 앨범은 용재 오닐이 돌아가신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를 위해 바치는 선물이다. 그래서일까. 마지막 앙코르 곡에 실려 있는 ‘섬집 아기’(이흥렬 작곡)를 들으면 왈칵 눈물이 쏟아질 것만 같다. 클래식 기타 반주를 배경으로 아련하게 울리는 비올라 소리를 듣다보니 기자도 몇 년 전 세상을 떠난 어머니의 모습이 떠올랐다.

“비올라의 소리는 ‘엄마의 목소리’를 닮은 것 같아요. 집에 온 듯 따스하고 마음을 편안하게 해 주지요. ‘섬집 아기’는 이번 앨범 중 제일 좋아하는 곡이지요. 제 비올라는 바닷가의 어머니와 아이를 그리고 있지만, 듣는 사람들은 각자 자신의 상상 속 어머니를 만날 겁니다.”

오닐은 “어머니가 일찍 한국을 떠나서, 어릴 적에 ‘섬집 아기’를 들을 수는 없었다”며 “하지만 지난해 이 노래를 처음 들었을 때 나도 모르게 흥얼거리게 됐고, 쉽게 감정에 빠져들었다”고 회상했다.

이번 앨범엔 오펜바흐의 ‘자클린의 눈물’, 소르의 ‘라 로마네스카’, 보테시니의 ‘엘레지’ 등 슬픔을 테마로 한 클래식 레퍼토리가 가득하다. 현악앙상블과 클래식 기타가 협연한 이 음반에 실린 쇼스타코비치의 ‘왈츠 재즈 모음곡 2번’은 오닐이 직접 편곡했다.

비올리스트로서는 최초로 줄리아드 음악원 대학원 과정에 입학한 오닐은 2001년부터 줄리아드 음대 출신들로 구성된 세종솔로이스츠에서 활동 중이다. 당시 줄리아드 음대 강효 교수는 오닐에게 ‘용재(勇才)’라는 한국 이름을 지어주었다. 그리고 올해 5월. 오닐은 미국 클래식계에서 최고 권위 있는 상인 ‘에이버리 피셔 커리어 그랜트’를 수상했다.

“강효 교수님은 미국인인 줄로만 알았던 제게 어머니의 나라 한국을 알게 해 주셨죠. 에이버리 피셔 상으로 받은 상금은 제 비올라(1699년산 조반니 토노니)를 사는 데 큰 도움을 줬어요. 무엇보다 제가 인정받은 것이 기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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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벨의 볼레로

 


스페인의 한 술집. 많은 남자가 볼레로 춤을 추는 여자를 쳐다보고 있다. 춤은 점차 고조돼 절정에 이르고, 남자들은 손뼉을 치면서 발로 장단을 맞춘다. 남자들은 흥분한 나머지 단도를 빼 들고 난투까지 벌인다.

영화 ‘사랑과 슬픔의 볼레로’와 미하일 바리시니코프 주연의 영화 ‘백야’에 삽입됐던 라벨(1875∼1937)의 명곡 ‘볼레로’를 기억하는가. 이국풍의 서정적인 멜로디와 작은 북소리가 반복되면서 가슴을 뛰게 만드는 곡이다.

‘볼레로’는 1780년경 무용가 돈 세바스찬 세레소가 고안한 스페인 무곡. 삼박자로 된 곡으로 현악기와 캐스터네츠의 반주로 연애 감정이 떠오르게 하는 몸짓을 담은 춤이다.

라벨은 전위적인 무용가였던 이다 루빈시테인(1880∼1960)의 부탁으로 1928년 새로운 ‘볼레로’를 작곡했다. 그해 여름. 라벨은 프랑스 서남부 휴양지인 생장드뤼즈에서 수영복 차림으로 피아노 앞에 앉아 이 곡의 주제 가락을 연주하면서 친구에게 이렇게 말했다.

“여기에 어떤 끈질긴 호소 같은 게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까? 나는 이를 전개하지 않고 관현악을 조금씩 크게 하는 것만으로 몇 차례 되풀이해 볼 작정입니다.”

‘볼레로’는 1928년 11월 22일 파리 오페라극장에서 루빈시테인 무용단이 초연해 성공을 거뒀고, 이후 세계를 휩쓸었다. 이 곡은 단순한 선율의 반복으로 의식적(儀式的)인 효과를 거둔다. 두 마디로 된 주제가 169번이나 반복되지만 청중은 전혀 지루함을 느끼지 못한다. 주제가 반복될 때마다 참여 악기가 점점 늘어나면서 다양한 변화를 일으키기 때문이다.

작곡가 스트라빈스키는 이렇듯 정교하고 개성이 넘치는 라벨의 관현악법에 대해 ‘스위스 시계기사’란 별칭을 붙여 주었다. 라벨은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다프니스와 클로에’ 등 뛰어난 오케스트라 곡을 많이 남겼다.

이 중 ‘볼레로’는 그의 마지막 오케스트라 곡이었다. 그는 1932년 가을 파리에서 자동차 사고를 당했다. 그때 머리를 다친 후유증으로 비극적인 만년을 보냈다. 머릿속에서는 음악이 울리고 있었으나 오선지에 옮길 수 없었던 그는 결국 폐인이 돼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연주 시간 약 15분에 이르는 라벨의 ‘볼레로’는 인간이 만든 ‘사랑에 관한 최고의 음악’으로 평가받는다. 부드럽게 시작해 점차 팽팽하게 긴장도를 높여 나가다가 마침내 터져 버리고 이완되는….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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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있는 여체냐? 누드사진이냐

첼리비다케는 ‘기록의 예술’이 아닌 ‘순간(찰나)의 예술’이라는 음악의 본질에 가장 충실했던 지휘자였다.

 

"리코딩된 음악을 듣는 것은 브리지트 바르도의 누드사진을 들고  침대에 드는 것과 같다.”

 

  첼리비다케(1912∼1996)는 평생 연주를 음반에 녹음하는 것을 거부했습니다. 음악이 기계로 저장되는 순간, 그것은 ‘복사된 누드사진’일 뿐 살아 있는 몸이 될 수 없다는 것이지요. 음악이든 삶이든 태어나서 소비되고, 결국은 사라지는 존재일 뿐이라는 겁니다.

그래서 그가 지휘한 뮌헨필하모닉오케스트라의 사운드는 한동안 ‘전설’로만 통했습니다. 1996년 그가 타계한 후에야 비로소 뮌헨필 전용홀에서 자료용으로 녹음한 음원으로 만든 연주실황 전집(EMI)과 슈투트가르트 방송교향악단과 연주한 브루크너 교향곡집(DG) 등이 빛을 보게 됐습니다. 그는 원치 않았지만, 이 음반들이 사후에 그를 더 유명하게 만든 것은 아이러니입니다.

 그가 만년에 몸담았던 뮌헨 필의 사운드는 극단적인 ‘느림의 미학’을 보여 줍니다. 특히 바다처럼 광대하게 출렁이는 브루크너 교향곡의 ‘아다지오’ 악장은 내적으로 깊이 침잠하는 명상적 분위기와 숭고한 아름다움의 극치를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는 “끝은 시작 안에 있다”는 말을 자주 하곤 했습니다. 티베트 불교와 동양의 선(禪) 사상에 심취한 그가 음악의 동시성과 찰나성을 설명하고 있는 말이기도 합니다.

그의 아들인 세르지우 요안이 만든 영화 ‘첼리비다케의 정원’이나 브루크너 ‘f단조 미사’ 리허설을 담은 DVD에는 그의 리허설 장면이 나옵니다. 그는 언제나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선사(禪師)처럼 문답을 주고받는 것을 즐겼습니다.


“당신은 결코 같은 날 같은 방법으로 ‘헬로’라고 말할 수 없다. 인간은 살아 있기 때문이다. 음악이란 전에는 결코 존재하지 않았던 무언가를 가지고 끊임없이 움직이는 것이다. 시시각각 변화하고 움직이는 음악의 마술을 즐겨라!”

그는 음악이란 ‘아름다움이 아니라 진실’이라고 말했습니다. 스튜디오에서 여러 번 녹음해서 잘된 부분만 조각조각 붙여서 만든 음반은 아름답지만 가짜 음악이라는 것이지요. 그는 기계가 음악을 죽이고 있으며, 위대한 지휘자도 사라지게 한다고 경고했습니다.

그의 주장을 100% 수긍하지 않는 사람도 있겠지만, 최첨단 음악재생 기술이 발전하고 있는 요즘 그의 통찰력을 돌이켜 볼 필요가 있습니다. LP에서 CD, MP3로 기술이 발전할수록 왜 음악시장은 죽어 가고 있는 것일까요? 살롱에 모여 피아노 연주를 듣고, 저잣거리에서 판소리를 즐겼던 시대에 비해 오늘날 음악은 발전했을까요? 값비싼 오디오 소리가 최고인 줄 알다가, 어느 날 소극장에서 어린 학생의 피아노 소리에 전율을 느낀 적은 없습니까?

첼리비다케는 제2차 세계대전 종전 이후 푸르트벵글러를 대신해 베를린 필하모닉을 재건하는 데 큰 역할을 한 지휘자였습니다. 그러나 베를린필은 푸르트벵글러의 후임으로 첼리비다케가 아닌 뛰어난 사업수완을 가졌던 카라얀을 선택했습니다. 카라얀은 수많은 음반 녹음으로 명성과 부를 얻었지만, 첼리비다케는 죽는 날까지 뮌헨필을 조련하는 일에만 몰두하며 은둔의 신비주의자로 남았습니다. 그는 삶의 고비 마다 티베트 승려 곤차의 말을 화두로 품고 살았다고 합니다.

“너는 한낱 바보에 불과하리니! 삶은 그런 것이 아니니, 다시 원점에서 출발하라!”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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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다 박수? 안다 기침!

클래식 공연장에서의 매너는 무대 연주자와 객석의 호흡에서 완성된다. 관객들의 잘못된 매너는 주위 관객뿐 아니라 그날 공연 전체의 분위기까지 망칠 수 있기 때문이다. 서울 시내 주요 공연장 하우스 매니저들에게서 올바른 객석 매너를 들어봤다.

#안다 박수? 안다 기침!

공연장에서 요즘 가장 지탄을 받는 관객은 ‘안다 박수’를 치는 사람들이다. 자신이 이 곡이 언제 끝날 줄 ‘안다’는 것을 과시하기 위해 연주가 끝나기가 무섭게 큰 소리로 박수를 치는 사람들이다. 지난달 ‘마태수난곡’ 공연에서는 2부의 마지막 ‘우리들은 눈물에 젖어 무릎 꿇고 당신을 부르나이다’를 연주하고 지휘자의 마지막 손길이 내려오기도 전에 2층 합창석에서 한 남자가 벌떡 일어나 기립박수를 치는 바람에 ‘수난곡’의 여운은 여지없이 깨져버렸다. 피아니스트 김선욱은 “빠른 템포로 끝날 때는 괜찮지만 분위기를 잡아야 하는 느린 악장에서 연주자의 손이 내려지기도 전에 터져 나오는 박수는 정말 아쉽다”고 말했다.

‘안다 박수’만큼 요즘엔 ‘안다 기침’도 유행이다. 악장 중간에 박수를 치지 않는 것이 매너가 아닌 줄 아는 사람들도 악장이 끝나기가 무섭게 기침을 해대는 경우가 있다. 그러면 갑자기 콘서트홀은 감기환자들의 집합소가 된다. ‘나도 음악홀의 음향에 동참하고 싶다’는 듯 한 사람이 시작한 헛기침은 수십 명에게 전염이 되고, 웃음소리까지 더해져 음악홀은 아수라장이 된다.

#휴대전화 문자까지 보낸다?

올해 초 첼리스트 미샤 마이스키의 내한공연, 드레스덴 필하모니의 ‘마태수난곡’(바흐) 연주에서도 여지없이 휴대전화 벨소리가 울렸다. 더 심각한 경우는 자기 가방에서 휴대전화 벨이 울려도 자기 것인 줄도 몰라 20∼30초간 계속 울리게 내버려 둔다는 것. 심지어 휴대전화로 통화하는 사람, 어두운 극장 내에서 문자메시지를 주고받느라 불빛을 비추는 사람까지 있다. 휴대전화가 울리는 타이밍은 언제나 절묘하다. 바이올린 협주곡에서 연주자가 절정의 기교를 다하는 ‘카덴자’ 순간, 연극 ‘이’에서 죽은 공길을 붙잡고 우는 연산의 뒤로 자객이 칼을 들고 들어오는 순간 누군가의 휴대전화에서 ‘군밤타령’이 울린다. 연주자 중에는 갑자기 휴대전화 멜로디를 따라 즉흥 연주를 하거나, 관객을 향해 ‘전화 받으라’며 빤히 쳐다보며 무안을 주기도 한다.

#10분 전 입장하기

관객 매너의 출발점은 제시간 입장이다. 30분 전 공연장에 도착해, 10분 전에는 자기 좌석을 찾아서 들어가서 자리 잡고, 프로그램을 한 번 읽어보고, 휴대전화를 끄고, 가방도 내려놓고 공연을 감상할 준비를 해야 한다. 서울 예술의 전당의 경우 공연 시작 후 입장하려는 지각 관객은 평균 10∼15%에 이른다. 2000명 중 200∼300명꼴.

교향악단 공연의 경우 ‘서곡 끝나고 입장해도 된다’는 식으로 상습적으로 늦는 사람들도 있다. 공연 시작 후 뒤늦게 우르르 밀려들어오는 사람들 때문에 일찍 온 사람들이 되레 피해를 본다. 공연 분위기가 어수선해지기 때문이다.

관객 매너의 출발점은 제시간 입장이다. 30분 전 공연장에 도착해, 10분 전에는 자기 좌석을 찾아서 들어가서 자리 잡고, 프로그램을 한 번 읽어보고, 휴대전화를 끄고, 가방도 내려놓고 공연을 감상할 준비를 해야 한다. 서울 예술의 전당의 경우 공연 시작 후 입장하려는 지각 관객은 평균 10∼15%에 이른다. 2000명 중 200∼300명꼴.

교향악단 공연의 경우 ‘서곡 끝나고 입장해도 된다’는 식으로 상습적으로 늦는 사람들도 있다. 공연 시작 후 뒤늦게 우르르 밀려들어오는 사람들 때문에 일찍 온 사람들이 되레 피해를 본다. 공연 분위기가 어수선해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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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의 하늘

지난 여름 휴가를 몽골로 다녀왔다. 몽골에 다녀온지는 벌써 세 번째다.  

몽골을 다녀온 후, 가장 그리운 것은 몽골의 파아란 하늘이다.
몽골에서 사진을 찍을 땐 꼭 하늘을 넣어야 제 맛이다.
 

무한히 넓고 깊은 바다같은 하늘과

부드러운 젖가슴같은 구릉들.
몽골의 하늘은, 산들은 그리운 어머니를 생각하게 한다.

몽골을 여행한다는 것은…. 비어있음과의 만남이다. 하늘도, 들도, 산도 텅 비어 있다. 정말 무한정 비어 있어서 미칠 것 같다.

그러나 우리가 언제 삶을 비워봤던가. 모든 것을 비운 채 누워 있는 들판이 무척 생소하다.
나는 자유로워진다. 내 몸 뿐 아니라 정신도 무한대로 넓어지는 것 같다.

 

 울란바타르에서 러시아 국경지대인 셀렝게로 가는 길의 초원엔 수많은 야생화들이 피어 있다.


푸른 코발트 색 하늘과 연초록 빛 초원이 맞부딪치는 곳..


컴퓨터 배경화면을 어디서 찍었나 궁금했는데, 몽골임이 분명하다.


몽골의 초원에는 요즘 농사도 짓는다. 밀도 심고, 감자도 심고, 유채꽃(기름을 짠다고 함) 밭도 있다. 차로 달려도 10분 넘게 계속되는 밭도 있다. 아래 사진에 벌건 부분이 밭을 만들려고 초원을 개간한 곳이다.


감자를 심은 초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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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원에서 열린 음악회

   * 2006년 몽골 테렐지 국립공원에서 열렸던 초원 음악회 때 찍은 사진이다. 아래 사진을 찍고 "신이여, 정녕 제가 이런 컷을 찍었습니까?"하고 되물었던 기억이 난다. 초원 위에 흰구름, 설악산같은 기암괴석의 바위들, 그리고 무용수들의 하얀천이 바람에 펄럭이던 장면은 잊을 수 없다.

 

 

  에델바이스가 흐드러지게 핀

몽골의 초원. 그 한가운데서 울리는 마두금(馬頭琴)의 연주음은 바람 소리처럼 상쾌했다.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는 석양을 배경으로 하얀 천을 휘날리며 넘실대는 춤사위는 광활한 대지와 한몸이 되었다. 오르팅도(장가 長歌)를 부른 뒤 이어진

몽골 여가수의 구성진 ‘아리랑’ 가락은 ‘농부가’를 열창했던 명창 안숙선 씨의 눈가에 눈물을 맺히게 할 만큼 한국과

몽골 관객의 심금을 울렸다.

 28일

몽골의 수도 울란바토르에서 동북쪽으로 80km 떨어진 테를지 국립공원. 해발 1400m의 초원에서 ‘둥둥둥’ 북소리가 울려 퍼졌다. 한국의 나라음악큰잔치 추진위원회(위원장 한명희)와

몽골의 전통예술재단이 공동 주최한 ‘초원의 영고(迎鼓)대회’.

 영고제는 고대 부여시대 하늘에 제사를 지내며 부족 간의 동맹을 강화하던 제천의식을 뜻한다. ‘초원의 영고대회’는 혈통적 동질성을 가진 한국과

몽골의 문화 교류를 위해 열린 음악회. 행사장에는 유목민들이 말과 낙타를 타고 모여들었고, 울란바토르 대학생 등 1000여 명의 관객이 자리를 잡았다.

 공연은

몽골 국립 마두금연주단의 연주로 막이 올랐다. 2002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마두금은 말총으로 꼬아 만든 두 개의 현이 달린

몽골의 전통악기. 세계에서 유일하게 말꼬리 털로 만드는 현악기인 마두금은 첼로보다 깊고 풍부한 음색을 자랑했다.

몽골의 여가수 세 네르구이 씨는 마두금의 반주에 맞춰 우리의 민요 ‘아리랑’을 멋들어지게 불러 갈채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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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 공연단에 이어 대금 명인 조창훈 씨가 바위에 앉아 청아한 대금 연주를 들려준 뒤 지름 4m의 대고(大鼓)가 천지를 진동시켰다. 흰옷을 차려 입은 서울현대무용단의 무용수들의 춤사위가 푸른 초원을 수놓았고 진도 씻김굿 예능보유자 박병천 씨의 진도북춤이 흥겨움을 더했다. 마무리 순서로 김덕수 사물놀이패의 격정적 리듬에 맞춰 강강술래가 시작되자, 유목민과 함께 있던 말들이 흥분해 멀리 달음박질치는 풍경도 보였다.

 공연을 지켜본 지라네크바실 주

몽골 체코 대사는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답다. 한국이 이처럼 대단한 문화를 갖고 있는지 몰랐다”며 엄지손가락을 치켜들며 찬사를 보냈다.

 울란바토르 시 문화예술청장 체 푸릅후(41) 씨는 “초원에서도 이런 공연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이 놀랍다”며 “

몽골은 현악기가 주류인 데 비해 한국의 공연은 타악기와 노래, 춤이 조화롭게 어우러져 깊은 감동을 선사했다”고 말했다.

 행사 이튿날

몽골 국립오페라하우스에서 열린 ‘한몽친선음악회’는

몽골과 한국의 전통 음악이 어떤 유전자(DNA)를 공유하고 있는지 가늠하는 자리였다. 명창 안숙선 씨의 판소리 ‘흥부가’와 한 사람이 동시에 3, 4개의 멜로디를 노래하는

몽골의 전통가창 ‘후미’가 집중적인 조명을 받았다. ‘계곡의 물소리에 맞춰 목소리의 기본음을 잡는다’는 뜻의 ‘후미’는 자연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한 창법이었다.

 안 씨는 “가성을 주로 사용하는 중국이나 일본의 전통민요와 달리

몽골의 ‘후미’나 ‘오르팅도’는 한국의 판소리처럼 육성(肉聲)을 써서 노래한다. 또 꾸밈음을 내는 부분이 우리 정서와 무척 닮았다”며 “우리 음악의 시원(始原)을 함께하는 소리를 듣고 나니 후련하다”고 소감을 밝혔다.

울란바토르=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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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티지의 나라 쿠바

 

여기가 ‘카리브 해’입니다. 어니스트 헤밍웨이가 쿠바에서 낚시를 하며 살던 ‘노인과 바다’의 배경이 됐던 곳이지요. 쿠바는 ‘카리브해의 진주’로 불리는 섬이지요. 용인의 ‘캐러비안 베이’도 안 가봤는데, 진짜 카리브해에 몸을 담그니…

 

 

  물이 우리나라 보다 덜 짜더군요. 세계 10대 해변에 들어가는 ‘바라데로’ 해변은 모래가 희고 고와 햇빛에 따라 시시각각 바닷물 색이 변합니다. 가장 밝을 때는 옥색 에머랄드 비취색 청자빛 등등으로 변하지요. 제주도의 함덕 해수욕장 물빛 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쿠바의 날씨는 20도-25도를 넘나드는 적당히 따뜻한 날씨였습니다. 그런데 쿠바인들은 아직 봄이라고 물에 안들어간다고 하더군요. 자연환경은 이렇듯 변함없이 아름다운데, 1959년 카스트로와 체 게바라의 혁명이후 미국의 경제봉쇄가 50년 가까이 계속되고 있는 쿠바의 아바나 시내는 그야말로 모든 것이 ‘빈티지’입니다.

 

 

   도대체 저런 물건이 어떻게 거리에 있는 것일까? ‘카피톨리오’라는 국회의사당 앞에는 20세기 초반에 사용됐음직한 폴라로이드 사진사가 있습니다. 나무통으로 만든 카메라로 흑백사진을 찍어주는 데 1달러만 주면 5분만에 즉석사진을 줍니다. 저는 ‘체 게바라’를 배경으로 한 사진을 찍었지요. 그런데 사진 합성 기술은 그야말로 제 입을 다물지 못하게 했습니다. 순서는 1) 먼저 조그맣게 내 얼굴 사진을 찍는다 2)인화한다 3)사진에서 내 얼굴을 가위로 잘라 체게바라의 사진 밑에 풀로 붙인다 4)다시 사진을 찍는다 5)인화한다. 체게바라와 내 얼굴이 합성된 사진 완성~! 

 

 

  쿠바의 길거리는 어디로 카메라를 돌려도 다 그림이 됩니다. 실제로 시장에 가보면 길거리에서 아바나 시내를 그린 그림을 파는 데, 그림과 사진이 그리 큰 구분이 안갑니다. 스페인 지배 시절에 지어진 바로크양식의 건물들이 페인트가 다 벗겨져서 쇠락해가고 있는 모습… 그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여유로움과 밝은 표정들… 쇠락했지만 할렘가처럼 지저분해 보이지 않는 이유입니다. 오히려 정감있는 시골도시같은 느낌으로 다가왔습니다.

 

 

  아바나 시내에는 박물관이나 50년대 미국영화에나 나옴직한 클래식 카들이 거리를 활보합니다. 폰티악, 시보레, 벤츠, 폴크스바겐… 차 크기도 엄청납니다. 연비 장난이 아닐텐데.. 왜 40-50년대에 생산된 클래식 카들이 아직도 굴러다니는걸까? 이것도 미국의 경제봉쇄 때문입니다. 미국과 단절된 상황에서 갖고 있던 차들을 수리해서 아직까지 쓰고 있는 거지요. 덕분에 쿠바에서는 자동차를 생산하지는 못해도 부품 수리 기술은 최고로 발전했다고 하네요.

 

 

 

  부에나비스타 소셜클럽의 음악은 모두 1959년 혁명 이전의 음악입니다. 그야말로 쿠바의 고전음악이지요. 90년대말 이 곳에서 녹음된 부에나비스타 소셜클럽은 그야말로 50년대 풍의 따뜻한 빈티지 사운드를 완벽히 재현해 냅니다.

 

 

  이것은 1930년대 지어졌을 때의 모습 그대로(디자인도 방음목재도…) 유지하고 있는 에그렘 스튜디오가 있기 때문입니다. 여기 있는 스타인웨이 피아노는 건반에 누런 손때가 끼어 있는 것이지만 소리가 좋아 루벤 곤잘레스, 추초 발데스도 모두 이 피아노로만 녹음했다고 하더군요. 녹음 시설은 낡았지만 스튜디오를 운영하는 녹음기술진은 그야말로 최고의 기술을 갖고 있지요. 국내 스튜디오는 최첨단 기계를 가지고도 사운드를 못 잡아내는 것과 대비됩니다. 결국 중요한 것은 사람입니다.  

  

 

  ‘라디오 프로그래소’(progresso. ‘진보 라디오’라는 뜻)의 기계실을 창문 너머로 바라본 순간 빈티지란 이런 것이라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야말로 기술진까지 곰삭은 연륜이 묻어나는 ‘부에나비스타 소셜 클럽’이더군요.

 

쿠바에는 허리케인이 시도 때도 없이 분다고 합니다. 워낙 예보시설이 발달해있고 주민 대피 시스템이 잘 돼 있어 오래전부터 인명피해가 거의 없어졌다고 합니다. 그래서 쿠바인들은 카트리나가 불어닥쳤을 때 미국 뉴올리언즈가 물에 잠긴 것을 보고 한심하게 생각했다고 합니다. 아바나 시내를 내려다보는 모로의 등대 언덕 위에 있는 민간재해대책본부 건물 벽면에는 1963년 8월 허리케인 ‘플로라’가 덮쳤을 때 카스트로가 남긴 연설이 표어로 붙어 있습니다. ‘혁명은 자연재해보다 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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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바의 인기 그룹 '밤 볼레오'가 온다

 쿠바의 인기그룹 ”밤볼레오”가 올해 10월에 내한공연을 한다는 소식이 있습니다.
지난해 쿠바에 갔을 때 ”카사 델라 무지카”(음악의 집)라는 살사 댄싱 클럽에서
아바나 클럽을 마시며 보았던 최고의 밴드였습니다.
우선 제가 직접 찍은 멋진 동영상을 감상하시지요.

 

  2007년 4월12일부터 21일까지 쿠바에 다녀왔습니다.
카리브해의 진주로 불리는 쿠바는 카스트로가 50년 넘도록 집권하고 있는
사회주의 국가입니다. 그러나 예상 외로 음악과 미술, 문학 등 문화수준이 높고
의료기술도 세계적인 국가였습니다.
그리고 낭만과 여유가 넘치는 국민성도 부러웠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긴 바(Bar).’ 카리브 해의 파도가 쉴 새 없이 철썩이는
쿠바 아바나 항구의 말레콘 방파제를 누군가 이렇게 말했다. 해질녘 어스름한
가로등 불빛이 하나둘씩 들어오는 방파제 위에는 연인들이 서로를 감싸 안고
대화를 나눈다. 방파제를 넘어오는 시원한 바닷바람에는 어디선가 노천카페에서
연주하는 타악기의 리듬과 기타의 선율이 실려 온다.

 

 

   영화 ‘부에나비스타 소셜 클럽’에서 말레콘 방파제를 넘어오던 파도처럼
쿠바 음악은 월드 뮤직계를 주기적으로 강타해 왔다. 19세기 말부터 쿠바에서
생겨난 하바네라, 맘보, 룸바, 차차차, 아프로 쿠반 재즈, 살사까지.
그중 가장 최근 것은 1990년대 후반 전 세계적으로 600만 장 이상의
음반 판매를 기록했던 ‘부에나비스타 소셜 클럽’의 열풍이었다.

 

 

 

“쿠바인들의 피 속엔 음악이 흐르고 있어요. 쿠바인들은 자신의 전통음악뿐 아니라 세의 음악을 받아들여 최고의 음악을 창조하지요.”  (훌리오 노로냐 그룹 ‘로스 반 반’의 멤버)

쿠바라는 명칭은 원주민 언어로 ‘중간지대’를 의미하는 ‘쿠바나칸(Cubanacan)’에서
유래했다. 쿠바는 스페인 식민지 시절부터 남미로 가는 중간 기착지이자
풍부한 문물이 모여드는 곳이었고, 다양한 인종과 문화가 섞여 들었다.
쿠바는 사탕수수 농장에 끌려 온 흑인 노예들의 리듬과 스페인의 선율이 만나
독특한 음악적 퓨전을 이뤄 왔다. 쿠바에선 현재 ‘손(son)’ 음악이 최고의 인기다.
1900년대 무렵 동부 오리엔테 지역에서 발생한 ‘손’은 살사의 모태가 된 음악이다.
손 음악의 다양한 퓨전이 벌어지고 있는 현장을 보기 위해 아바나의 명문클럽인
‘카사 데 라 무시카(음악의 집)’를 찾았다.

 

그룹 ”BAM BOLEO”

 

이날 밤의 주인공은 젊은 여성 보컬이 등장하는 ‘밤 볼레오’.
아프리카 리듬에 색소폰, 트럼펫, 신시사이저까지 섞은 이 그룹은
현대적인 사운드로 젊은이들에게 인기가 높은 그룹이었다.
음악이 시작되자 공연장은 격렬한 살사 댄스의 춤판으로 변했다.
최신 그룹의 음악에 맞춰 춤을 추는 사람들은 머리가 희끗한
쿠바의 노인부터 젊은 흑인 여성까지 다양했다.
모든 세대와 인종이 함께 즐기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올드 아바나 시내의 골목 곳곳에서도
카페나 바에서 수준급 밴드의 연주가 끊이지 않는다.
봉고(크기가 다른 두 개의 작은 손북)와
마라카스(야자나무 열매의 속을 씨만 남기고 파내 만든 악기),
구이로(빨래판처럼 홈이 파인 호리병박 모양의 악기) 등
아프리카 리듬악기와 트레스(겹줄로 된 6현 기타), 색소폰, 바이올린, 플루트 등
악기 구성도 다양하다. 열대과즙처럼 쏟아져 나오는 흥겨운 댄스리듬에
흑인 여성이 길을 멈추고 한바탕 춤을 추자 큰 박수가 터져 나오기도 했다.

 

 

 

  ‘부에나비스타 소셜 클럽’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전통음악의 세계적인 성공’이란
사실이다. 이 음반은 1959년 쿠바 혁명 이전의 전통음악만 담겨 있다.
그러나 쿠바인들은 ‘부에나…’의 음악만이 쿠바 음악의 전부인 줄 아는
시각에 불쾌감을 금치 못한다. 쿠바에는 그래미상을 받기도 한 40년 전통의
‘로스 반 반’, 추초 발데스와 아라케레, 차랑가 하바네라, 아달베르토 이수 송,
밤 볼레오 등과 같은 실력 있는 뮤지션이 많지만 미국 내 음반 유통이 제한돼
있기 때문에 세계적인 프로모션이 힘들다.

부에나비스타 소셜클럽 음반들

<쿠바의 에그렘 스튜디오는 러시아의 멜로디야 레이블처럼 쿠바의 모든 음악의
음원을 간직하고 있는 곳이다. 세계적인 명곡이 녹음된 스튜디오이지만 아바나시의
가장 허름한 뒷골목에 위치하고 있다.>

 

  하지만 경제봉쇄가 미국이 양산해 내는 팝 음악의 홍수에 휩쓸리지 않고 쿠바가
세기말 이후 전 세계 대중음악계의 트렌드로 떠오른 라틴 음악의 종주국이 된 배경이
됐다는 분석도 있다. 상업성에서 비교적 자유로운 쿠바의 음악인들은 실력만 갖추면
장수하는 것이 특징이다. 국영방송국 라디오 프로그레소(Progresso)의 녹음 현장을
찾았을 때 56세의 PD 기예르모 빌라르 씨가 60대 가수 아달베르토 이수 송을 초청해
‘2000년대의 젊음’에 대해 논하는 것이 무척 인상 깊었다. 피아니스트 추초 발데스의
아버지 베보 발데스는 90세의 고령에도 2년 후의 스케줄까지 꽉 차 있다고 한다.

 

<쿠바 국영라디오 프로그레소 생방송 녹화현장. 서 있는 사람이 기예르모 빌라르(56),
오른쪽 분홍상의가 쿠바 최고 인기가수 아달베르토 알바레즈>

 

  빌라르 씨는 “변함없이 똑같은 음악을 하는 것은 쿠바 음악이 아니다”라며
“쿠바에서는 음반회사가 결정하는 트렌드가 아니라 아티스트가 자유롭게 실험하고
융합해 내는 음악이 주인공”이라고 말했다.

 

쿠바 혁명광장 앞 내무부 청사 벽면에는 체 게바라의 대형 얼굴이 걸려 있다.
철골 구조물로 된 설치작품 밑에는 ”Hasta la victore Siempre”(승리할 때까지 영원히)
라는 표어가 붙어 있다.

 

에그렘 스튜디오 음반판매점 앞에 만난 쿠바 여자 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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