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올 가을 ‘금난새의 야외 콘서트’에서 팜플렛에 글을 써달라고 부탁해서 쓴 글입니다. 써놓고 보니 올해 제가 취재 다녔던 동선이 나타나는군요. 여름에 유럽 음악회 취재는 한번 갔다왔어야 하는 데, 유PD만 좋은 데 갔다오고.. 대신 전 몽골에 다녀왔으니까… 내년에는 꼭 유럽과 러시아에 한번 갔다왔으면 하는 소망이 있습니다.
1936년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 경기를 제패한 손기정 선수가 뛰었던 마라톤 코스에는 베를린 교외의 샤를로텐부르크에 있는 ‘그뤼네 발트’(녹색 숲)가 있었다. 손 선수는 마라톤 출발지점에서 시작해 13km까지, 30km구간에서 도착지점까지 이 숲 속으로 난 코스를 달렸다. 도심 주변에 끝도 없이 펼쳐진 숲 속 마라톤 코스. 정말 생각만해도 부럽다.
그러나 이 숲 속엔 더 부러운 것이 있다. 바로 ‘발트뷔네’다. ‘발트’(wald)는 숲, ‘뷔네’(bühne)는 무대란 뜻으로 말 그대로 숲 속에 설치된 야외무대이다. 이 곳은 가장 매력적인 유럽의 야외 원형극장 중의 하나로 베를린 필의 여름 콘서트가 열리는 본거지다. 세계적인 지휘자가 초빙되는 이 콘서트는 2만 명이 넘는 관중들이 운집하는 세계에서 가장 대중적 인기를 누리는 클래식 음악 공연 중의 하나이다.
‘발트뷔네 피크닉 콘서트’로 이름 붙여진 이 음악회는 1990년 6월30일에 시작됐다. 통일을 앞두고 베를린 필은 이 곳에서 다니엘 바렌보임의 지휘로 여름밤 공연을 열였다. 이후 해마다 6월 마지막 일요일이면 발트뷔네로 향하는 지하철에는 가족끼리 혹은 친구들과 짝을 이뤄 콘서트를 찾는 시민들로 가득찬다.
이 음악회에 참가한 시민들은 ‘피크닉 콘서트’라는 말 그대로 모두 캐주얼한 차림으로 각자 도시락을 들고 와서 와인잔을 기울이며 클래식 음악회를 즐긴다. 콘서트에 참석한 시민들이 어깨에 맨 짐에는 으레 서늘한 여름밤을 견딜 수 있는 담요로 둘둘 감싼 포도주 한 두병쯤이 감춰져 있게 마련이다.
해가 저물 무렵에 시작해 밤으로 이어지는 숲 속 풍경은 최고의 분위기를 연출한다. 고대 그리스의 원형극장을 연상시키는 발트뷔네의 잔디석에는 미소를 머금고 머리를 맞댄 부부, 엄마 아빠 따라와서 음악에 맞춰 깜찍한 춤을 추는 아이, 처음 본 사람들끼리 어깨동무를 하고 즐겁게 음악을 즐기는 사람들을 쉽게 볼 수 있다. 깜깜해지면 관객들은 미리 준비한 불꽃을 하나 둘 켜기 시작한다. 지휘자는 혼신의 연주와 함께 때론 익살스런 표정으로 관객들을 사로잡고, 콘서트의 마지막은 항상 린케의 ‘베를린의 숨결’(Berliner Luft)이라는 경쾌한 곡으로 마무리한다. 지휘에 맞춰 모두가 휘파람을 불고 박수로 하나되는 모습 또한 훈훈한 장면이다.
1996년 클라우디오 아바도가 지휘하고 소프라노 안젤라 게오르규 등이 출연한 ‘이탈리안 나이트’에서는 대표적인 이탈리아 작곡가인 베르디, 벨리니, 로시니의 오페라 중 귀에 익은 선율을 연주했고, 2001년 공연에선 테너 플라시도 도밍고가 지휘봉을 잡고 한국의 바이올리니스트 사라 장(장영주), 소프라노 안나 마리아 마르티네즈와 함께 스페인 무드가 가득한 음악을 연주하는 ‘스페니쉬 나이트’ 콘서트가 열렸다.
매년 주제를 달리하는 이 음악회에는 다니엘 바렌보임(1998년 ‘라틴아메리카 나이트’), 마리스 얀손스(1994년 ‘댄스 앤 랩소디’, 2002년 ‘월드 앙코르’), 주빈 메타(1997년 ‘상트 페테르부르크 나이트’) 등 세계적인 지휘자들이 무대를 이끌어 왔다. 비록 야외음악회지만 이처럼 높은 수준의 음악가들이 나오는 발트뷔네 콘서트는 연주실황이 DVD로도 만들어져 전세계 클래식 팬들을 매료시키고 있다.
<유PD님의 뽐뿌질로 산 DVD>
이처럼 베를린 필하모닉의 발트뷔네 콘서트, 뉴욕필하모닉이 개최하는 센트럴파크 음악회처럼 세계 각국에서는 도심 숲 속에서 벌어지는 대규모 야외 음악회가 성황리에 열리고 있다. 국내에서도 서울시향이 정명훈 지휘자를 영입한 이후로 지난해부터 8월15일이면 서울시청 앞 잔디광장에서 2만 여명의 시민들이 참가한 가운데 ‘광복절 콘서트’를 열고 있다.
그렇다면 오스트리아 빈의 뮤직페라인 황금홀처럼 음향시설이 잘 돼 있고 반사음과 잔향감이 풍부한 음악홀이 아닌 야외 음악회에 관객들은 왜 매료되는가. 아마도 야외 콘서트의 맛은 답답한 도심을 벗어나 대자연 속에서 긴장을 풀고 좀더 열린 마음으로 음악을 즐길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새소리와 바람소리가 들리는 자연 속에서 듣는 음악은 전혀 색다른 감동으로 다가올 수 있다.
지난 8월 몽골 초원에서 열린 음악회에서도 그런 느낌을 받았다. 몽골 울란바타르시에서 2시간 정도 떨어진 테를찌 국립공원에는 에델바이스가 흐드러지게 피어 있었고, 설악산 울산바위를 연상케하는 아름다운 바위와 드넓은 초원, 흰 구름은 마치 딴 세상에 와 있는 듯했다. 과연 이렇게 드넓게 펼쳐진 공간에서도 음악회가 가능할까? 늘 음악회란 밀폐된 공간에서 들어야 소리의 울림을 제대로 들을 수 있다고 생각해 왔기 때문에 의구심이 들었다.
<몽골 국립마두금 합주단 공연>
p> 그러나 해가 뉘엿뉘엿 지는 드넓은 몽골 초원에서 들었던 마두금 합주는 이런 생각이 기우에 불과했다는 사실을 깨닫고 해주었고, 진정 잊을 수 없는 감동을 던져 주었다. 말총으로 만든 현과 활로 연주하는 애잔한 마두금의 소리는 바람을 타고 산을 넘었다. 몽골의 초원은 광활했지만 어떠한 인공적 소음도 없는 그야말로 청정한 지대였기 때문에 소리는 어디서나 또렷이 들렸다. 몽골 초원에서는 마두금을 연주하면 산 너머에 사는 사람도 그 소리를 감상한다고 한다.
한 유목민은 “몽골의 북쪽 지역의 산악지대에서 한 유목민이 ‘후미’라는 전통 가곡을 부르면 그 노래 소리가 온 산을 울려댄다”고 소개하기도 했다.
<몽골 초원에서 크고 있는 나(?)의 아이들>
이렇게 자연 속에서 듣는 음악은 특별한 감동이 있다. 유럽에서는 여름 휴가철에 풍광이 수려하거나 유서 깊은 고도(古都)의 휴양지에서는 펼쳐지는 야외 음악축제를 활성화시켜 전 세계의 관광객들을 끌어 모으고 있다.
그 중에서도 2000년 전에 지어진 고대 로마시대 콜로세움에서 펼쳐지는 이탈리아의 베로나 페스티벌은 유명하다. 최대 수용인원 2만명에서 2만5000명까지 가능한 ‘아레나 디 베로나’ 원형극장의 돌무대는 마이크를 사용하지 않아도 오페라 가수들의 노래 소리가 전달되는 신비의 음향효과를 갖고 있다. 또한 스위스와 독일, 오스트리아 3국의 국경과 가까운 브레겐츠 페스티벌에서는 보덴 호수 위에 설치된 ‘떠있는 무대’에서 오페라가 공연돼 잊을 수 없는 특별한 풍광을 던져준다.
<브레겐츠 페스티벌 ‘호수위에 떠 있는 무대’>
이 외에도 스위스의 루체른 호숫가에서 펼쳐지는 루체른 페스티벌, 저녁 공연을 보고 난 후에도 여전히 어둠이 내려 앉지 않아 네바 강변에서 보드카를 마실 수 밖에 없는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의 ‘백야 축제’, 노천시장에 즐비한 프로방스의 꽃과 과일들이 찬란한 생명력을 발휘하는 프랑스의 엑상프로방스 축제 등은 음악여행자에게는 빼놓을 수 없는 명소가 됐다.
휴양지에서 펼쳐지는 야외음악회를 즐기기 위해 꼭 해외로 나갈 필요는 없다. 국내에서도 제주국제관악축제, 대관령음악제, 전주세계소리축제, 통영국제음악제 등과 같은 국제적인 음악축제가 점차 자리를 잡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10년째 제주국제관악제를 개최해오고 있는 제주도는 휴양지에서 펼쳐지는 야외음악회를 즐기기 좋은 곳이다. 제주시향의 이동호 지휘자는 “한라산에 올라서면 수많은 제주도의 오름이 마치 나팔이 하늘을 향해 거꾸로 뒤집어 있는 듯한 형상이다. 내가 지휘봉을 한번 휘두르면 엄청난 나팔소리가 울려 퍼질 것 같다”고 말한다. 
<무거운 튜바를 메고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오름까지 올라가 사진촬영을 해준 제주시향 단원들>
실제로 제주시향은 오름음악회, 동굴음악회 등 다양한 야외음악회를 열고 있다. 분화구 모양의 기생화산인 ‘오름’에 오르면 사방에 병풍처럼 돌이 쌓여 있는 경우가 많다. 이 곳은 천혜의 콘서트홀이 된다. 또한 제주시향은 매년 가을에 우도의 ‘경안동굴’을 찾아가 동굴음악회를 연다. 썰물 때 입구가 드러나는 동굴에는 400~500명이 들어갈 수 있다고 한다. 동굴에 머무를 수 있는 시간은 불과 2~3시간. 1년에 딱 한번 열리는 동굴음악회는 그 희소성 면에서, 천혜의 음향조건을 갖춘 곳에 열리는 음악회라는 점에서 해마다 인기를 끌고 있다.
<지휘자 이동호 씨와 제주시향의 동굴음악회>
지난 여름 북한강변의 한 미술관에서 열린 음악회에 갔던 기억은 가을이 시작되도 잊혀지지 않는다. 미술관 전면의 유리창 밖으로 보이던 홍수로 불어나 넘실거리던 강물과 버드나무 가지…. 비오는 날의 첼로 연주는 내 마음을 송두리째 흔들어 놓기도 했다.
도심 생활에 찌든 현대인들의 ‘폐쇄 공포증’을 치유해주는 것은 아무래도 야외 클래식 음악회가 제격인 것 같다. 올 가을. 풀벌레 소리와 함께 연주되는 바이올린 소리를 즐겨 들어 보시는 것은 어떠실런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