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원에서 만난 유럽의 젊은이들

   몽골 울란바타르에서 러시아 국경 도시 셀렝게로 가는 도로에서 수많은 자동차가 헤드 라이트 불빛을 밝게 켜고 맞은 편 차도로 오는 모습이 보였다. 자동차 위에 짐을 가득 싣고 3~5명씩 차에 탄 채 손을 흔들고 있는 사람들은 모두 유럽에서 온 젊은이들이었다. 여름 휴가로 3~4주씩 걸려 시베리아를 횡단해 몽골까지 여행을 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렇다. 대륙인들은 이렇게 휴가를 떠나는 것이다. 이렇게 여행을 하는 것이다.

  

 

  1997년 MBC와 동아일보가 공동기획한 ‘칭기즈칸 원정로 탐사’ 다큐멘터리를 촬영하기 위해 당시 유라시아 대륙을 횡단한 적이 있었다. 몽골에서부터 카자흐스탄, 키르기스스탄, 우즈베키스탄, 투르크메니스탄, 이란, 터키, 아르메니아, 그루지야, 우크라이나, 폴란드, 체코, 독일, 네덜란드 등을 거쳐 한국으로 돌아온 긴 여정이었다. 총 넉달(123일)간의 출장이었지만, 나는 아쉬웠다.

  당시 20대 후반이었던 나는 대륙을 횡단하며 자유로움을 만끽한 상태였다. 그리고 어떻게 한국으로 돌아가 직장생활을 다시 할 수 있을까 고민했다. 아니, 직장생활은 커녕 좁디좁은 한국생활을 어떻게 다시할까 고민이 됐다. 에이, 그냥 저질러버릴까. 차도 있으니 기름값만 있다면 세상 끝까지 가보자. 이대로 지중해를 건너서 아프리카로 넘어갈까. 그리고 몇달간 아프리카 대륙을 횡단해볼까. 심각하게 고민하다가 결국은 일행을 따라 귀국했다. 바웬사가 노조위원장으로 있던 폴란드 그단스크 조선소에서 차를 한국으로 돌려보내는 날, 눈물이 났다.

  대륙을 한 번 본 사람은 그 텅빈 공간의 아름다움에 가슴이 사무친다. 날마다 그리워진다. 다시 돌아가고 싶은 초원이 내 가슴 속에 남아 있다. 텅 빈 벌판에서 말을 타면 땅 끝까지 달려가고 싶은 마음이 솟구친다. 지프차라도 운전할라치면 세상 끝까지 가보고 싶은 것이다.

 

 

  몽골의 젊은이들은 독일을 이웃나라처럼 생각한다. 사회주의 시절부터 베를린-몽골 직항 비행기 노선이 있어서 베를린 공항에는 늘 몽골 노동자들이 북적인다고 한다. 몽골의 젊은이들에게 가장 인기 있는 아르바이트는 독일에서 1만5000달러 쯤에 벤츠 승용차를 사서 1주일동안 시베리아 횡단도로를 운전해서 몽골에 와서 관세없이 2~3만 달러에 파는 것이다.

  일본이나 남한이나 사실상 섬나라일 뿐이다. 그래서 우리는 유럽과 아시아가 대륙으로 붙어 있다는 사실을 잘 모른다.  유럽은 늘 비행기를 타고 가는 곳이지, 자동차로, 기차로, 말을 타고 갈 수 있는 곳이라고는 생각을 못하는 것이다.

  북한이 도로나 철도를 개방해주면 얼마나 좋을까. 북한에서는 내리지 않고 통과만 하도록 하면서, 통과세를 받는 것이다. 그러면 ‘아시아 하이웨이’, ‘철의 실크로드’가 지금이라도 당장 이어질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 만주벌판도, 몽골의 초원도, 하얼빈, 베이징도, 타슈켄트나 알마티도, 테헤란이나 이스탄불도, 파리나 베를린도 우리가 ‘무쏘’나 ‘갤로퍼’를 몰고 여름 휴가를 떠날 수 있는 곳이 될 것이다.

  이런 날이 온다면 우리나라 자동차의 품질도 크게 향상될 것이다. 단순히 좁은 국토에서 시내에서만 달릴 수 있는 차가 아니라 흙먼지 날리는 오프로드에서도 힘을 발휘할 수 있도록 강력한 엔진이 부착돼야 할 것이다. 자동차 뿐 아니라 우리의 사고방식도 대륙적인 기질로 크게 바뀔 것이다. 우리나라는 바다를 갖지 못한 몽골, 우즈베키스탄, 카자흐스탄 등 중앙아시아 국가들이 태평양을 향한 항구 역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20대 후반, 드넓은 초원을 본 이후부터 나는 늘 이런 꿈을 꾸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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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pulic of Great Khan

우리나라의 이름은 ‘대한민국’이다. 영어로 하면 무엇일까? ‘Republic of Korea’이다.

그러나 월드컵이나 올림픽 때 ‘대~한~민~국!’이라는 응원 구호를 접할 때마다,

조금만 세게 발음하면 ‘대칸민국!’이 된다는 사실을 어느 순간에 느꼈다.

‘대칸민국’. ‘Republic of Great Khan’이다.

 

‘칸’(Khan)은 몽골어로 왕이라는 뜻이다. ‘Great Khan’은 칭기스칸처럼 세계를 제패한 ‘왕 중의 왕’을 뜻하는 말이다.

‘한(韓)’은 마한, 진한, 변한 등 우리나라 ‘삼한(三韓)’에서 나온 말이다.

‘한’이란 ‘크다’라는 어원을 갖고 있다. ‘한강’ ‘한밭’(大田) 등에서 보듯 크다는 뜻이다.

또한 신라시대에는 왕을 마립간(干)으로 불렀다. ’칸’은 유목민의 군주를 뜻하는 말인데, 신라인들의 말타고 활쏘는 풍모는 유목민과 닮았다.

 칭기스칸은 ‘카간’이라고 불렸는데, 신라시대에서 각간(角干)이라는 말이 쓰이기도 했다. 

 중고등학교 시절 세계사 시간에 칭기스칸의 사후 몽골제국이 ‘킵차크 한국’, ‘차카타이 한국’, ‘오고타이 한국’, ‘일한국’으로 나눠졌다는 것을 배울 적에 ‘왜 한국이지?’하고 의문을 품은 적이 있었다.

 

 ’대칸민국’.

 우리나라를 중국의 영향을 받은 농경, 유교국가가 된 것은 조선시대 이후일 것이다. 신라, 백제, 고구려, 고려에 이르기 까지 우리나라는 유목 민족적인 성향을 더 많이 갖고 있었을 것이다. ‘대칸민국’이라고 한다면, 우리의 생각의 지평은 훨씬 넓어진다. 좁은 한반도의 남쪽에 갇혀 사는 것이 아니라, 우리는 유라시아 대륙 전체로 시각을 돌릴 수가 있다. ‘Republic of Great Khan’.

 이 시대의 ‘Great Khan’은 누구일까.

 대륙적인, 세계적인 시야를 갖고 사는 민족 또는 사람일 것이다.  

 

  

 

 

 <우즈베키스탄의 사마르칸트 아프라시압 궁전벽화에 그려진 12명의 외국사절단. 이 중 오른쪽의 두 명은 상투머리에 새의 깃을 꽂은 조우관을 쓰고, 손잡이 끝이 둥근 환두대도를 차고 있다는 점에서 고구려인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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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에서 마유주 마시기

몽골에서 맛볼 수 있는 독특한 음료는 마유주이다.

몽골어로 ”아이락”(Airag)이라고 불리는 마유주(馬乳酒). 말 그대로 말젖을 발효시켜 만든 술이다.

혹자는 한국의 막걸리와 같다고 하는데, 색깔은 막걸리와 비슷하지만 맛은 시큼한 요구르트 맛이다. 

셀렝게에서 울란바토르로 오는 길에 길거리에서 마유주를 파는 곳이 있었다.

마유주 한 잔 마시자고 했더니, 소년이 말을 타고 잽싸게 페트병에 담은 마유주를 갖고 왔다.

1.5리터 한 병에 1000원쯤했다.  

 

 

도기탁이 마유주를 처음 맛본 순간! 아 시큼하고 짜릿해~!  

 

몽골 유목민의 전통가옥인 게르에 들어가면 가장 먼저 내주는 음식이 우유차(수태차)와 마유주이다.

테렐지의 말타는 목장의 게르에 들어가서 대접을 받았다. 몽골 게르의 문을 열고 들어가면 정 중앙에

보이는 침대는 그 집의 가장이 자는 침대다. 손님들은 그 자리에 앉으면 실례다. 중앙의 왼쪽엔 남자

들이 자고, 오른쪽엔 여자들이 잔다. 오른쪽에 주방이 있기 때문이다.

 

게르에 들어가면 마유주가 담긴 통(소가죽으로 만든 주머니)을 절구공이로 수백번(정확히 몇 번이더라)

흔들어주는 게 미풍양속이다. 말젖은 이 주머니 안에서 발효된다. 집집마다 이 마유주 담는 주머니는 수십년,

수백년 씩 내려오는 경우가 많다. 마치 우리나라에서 장맛이 집마다 다르듯이, 마유주 맛도 다른 것이다.

마유주 주머니는 절구공이로 가끔씩 흔들어줘야 상하거나 응고되지 않는다. 그래서 방문하는 사람들이

수백번씩 흔들어주는 ”품앗이”를 하는 것이다. 박한진이 열심히 마유주 주머니를 흔들어주고 있다.

 

 

몽골의 각종 차강이데(유제품)으로 만든 음료와 치즈, 과자들.

몽골의 치즈는 무척 부드러워 빵에 발라서 먹는다.

유제품으로 만든 딱딱한 과자는 몽골 어린이들이 이빨이 튼튼해지라고 먹는다.

몽골의 유제품은 생각보다 우리 입맛에 맞았다. 내 입맛인가?

 

 

몽골의 여인네(?)들이 맛있게 먹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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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팽의 손가락

《프랑스 파리는 이방인의 도시다.

  수많은 나라에서 온 예술가들을 위한 묘지와 공원, 박물관이 거리 곳곳에 자리잡고 있다.

퐁피두 센터 앞에는 러시아 출신 작곡가 이고르 스트라빈스키의 ‘봄의 제전’을 형상화한 익살맞은 분수가 물을 뿜고 있고, 몽소공원엔 피아니스트이자 위대한 작곡가였던 프레데리크 쇼팽(1810∼1849)과 그의 연인 조르주 상드(1804∼1876)가 사랑을 나누는 모습의 동상이 서 있다.》
 

<스트라빈스키 분수>

 

 ○ 1838년 클레징어가 석고로 만들어 보존
 

최근 프랑스 파리로 출장을 다녀왔다. 다음 달 11,12일 내한공연을 가질 예정인 파리 오케스트라를 취재하기 위한 것이었다. 취재를 마친 후 파리 오케스트라의 한 관계자가 “파리 시내에 쇼팽의 손을 볼 수 있는 곳이 있다”고 귀띔해 주었다. 전설적인 피아니스트이자 수많은 귀부인의 선망의 대상이었던 꽃미남 쇼팽의 손을 볼 수 있다니….

    <로맨틱 생활 박물관(musee de la vie romantique)>
 

  지도 한 장 달랑 들고 찾아간 그곳은 ‘로맨틱 생활 박물관’이었다. 파스텔톤의 아담한 건물 주변엔 들꽃이 화사하게 피어 있었다. 이곳은 주로 낭만주의 시대 화가들의 작품이 전시돼 있는 박물관이었는데, 이 집 본채의 1층엔 쇼팽의 연인이었던 작가 조르주 상드가 쓰던 유품들이 전시돼 있었다.

  거실을 둘러보다가 발길이 그 자리에서 멈췄다. 가늘고도 길고 새하얀 쇼팽의 손이 있었다. 1838년 쇼팽과 상드와 절친하게 지냈던 오귀스트 클레징어(1814∼1883)가 쇼팽의 손가락을 석고로 떠 놓은 것이었다. 결핵에 걸려 늘 창백했다던 쇼팽이라 저렇게 손이 희었을까 하는 착각이 들 정도로 아름다운 손이었다. 1838년이면 쇼팽이 상드와 함께 스페인 마요르카 섬에서 요양을 하던 때였다. 당시 쇼팽은 상드의 보살핌 아래 24개의 프렐류드, 폴로네이즈, 발라드, 녹턴 등 수많은 명작을 작곡했다.
 


 

  ○ 명곡을 연주하는 생전의 감동 살아있는 듯

유럽의 박물관이나 예술인이 살던 집에는 ‘데드 마스크’를 심심찮게 만난다. 그러나 죽은 이의 얼굴을 보는 문화에 익숙지 않은 우리에겐 아무래도 그로테스크한 느낌을 주기 마련이다. 그런데 쇼팽이 한창 전성기 시절, 사랑하는 연인과 행복했던 시절의 손을 만났을 때의 기분은 정말 남달랐다.

마치 150여 년 전에 죽은 쇼팽의 손가락이 지금이라도 나를 위해 녹턴과 프렐류드를 연주해 줄 것만 같은 황홀경에 휩싸였다.

“쇼팽의 가냘픈 손이 갑자기 피아노 건반의 3분의 1을 뒤덮을 정도로 벌려지는 모습이 마치 커다란 독사가 토끼를 한입에 삼키려고 입을 벌리는 모습 같았다.”(헬러)

“피부의 땀구멍으로 천한 것은 모두 증발된 듯하다.”(알프레도 코르도)
 

쇼팽의 손가락에 대해선 이렇듯 많은 사람이 기록으로남겼다. 쇼팽은 불우했던 여타의 작곡가와 달리 생전에 엄청난 인기를 누린 피아니스트였다. 그러나 결핵을 앓던 쇼팽은 음량이 크지 않아 대중 앞에서는 거의 연주를 하지 않았다. 대신 파리 사교계의 살롱에서 자신의 최고 예술적 경지와 거대한 피아노 스케일, 풍부한 재능을 남김없이 보여주었다. 그가 1831년 파리에서 데뷔무대를 가진 ‘살 플레옐’은 현재 파리 오케스트라가 상주하고 있으며 한쪽에는 쇼팽의 이름을 딴 연주실이 남아 있다. 폴란드가 러시아의 지배하에 들어가면서 정치적 망명자였던 쇼팽은 조국 폴란드에서 가져온 흙을 소중히 보관하며 살았지만, 결국 평생 파리에서 살다가 묻혔다. 폴란드가 지금은 쇼팽 콩쿠르를 대대적으로 벌이고 있지만, 쇼팽의 연주를 들어주고 명작을 탄생케해준 곳은 파리였다.   
 

 

 

  ‘로맨틱 생활 박물관’의 전시장 안에는 조르주 상드의 석고로 뜬 팔도 전시돼 있었다. 그러나 아무래도 작가가 팔로만 글을 쓰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피아니스트의 손가락과 같은 감흥은 없었다. 가령 발레리나 강수진의 굳은 살 박인 발가락, 축구선수 박지성의 평발 등 그 사람을 상징하는 몸의 일부분은 우리에게 큰 감동을 준다. 요즘도 국내엔 수많은 박물관과 기념관이 생겨나고 있다. 영화제의 ‘핸드프린팅’ 행사처럼 천편일률적인 기념품은 이제 재고할 때가 되지 않았을까.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몽소공원에 있는 쇼팽과 상드의 동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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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악 최고의 콘서트홀은 한옥

국악공연에 젖는 북촌 한옥마을

 


서울 종로구 가회동 북촌마을의 오래된 한옥 ‘무무헌’에서 열린 ‘한옥에서 산조 듣기’ 공연. 기와지붕에서 마당으로 떨어지는 낙숫물 소리조차 아쟁 산조와 어우러지는 음악이 되었다. 사진 제공 악당이반

서울 종로구 가회동 북촌마을의 오래된 한옥 ‘무무헌(無無軒)’. 없다는 마음까지도 사라지는 경지에 이를 정도로 고즈넉한 한옥이다.

비가 쏟아지던 한여름의 어느 날. ‘무무헌’에선 김영길의 아쟁산조 공연이 열렸다. 대청마루에서 활을 긋는 연주자 양 옆으로 안방과 건넌방까지 관객들이 삼삼오오 둘러앉았고, 툇마루에서 앉아 편안히 감상하는 관객도 있었다.

아쟁산조가 구성지게 연주되는 동안 기와지붕에서 마당으로 떨어지는 낙숫물 소리는 오히려 촉촉한 배경음악이 됐다. 가끔씩 들려오는 천둥소리는 소리구멍을 채우는 자연의 추임새였다. 빗소리가 거세질수록 사람들은 더욱더 음악에 빠져 들었다.

국악의 참맛을 즐기려는 사람들이 북촌 한옥을 찾고 있다. 국악전문 음반사 ‘악당(樂黨)이반’의 소리재, 한상수자수박물관, 출판사 ‘김영사’의 후원(後園), 은덕문화원, 아름지기 안국동 한옥, 쇳대박물관, 낙고재(樂古齋) 등의 한옥에서 한 달에 한두 번씩 국악 공연이 펼쳐지기 때문이다. 재단법인 ‘아름지기’가 펼치는 ‘가락(家樂)-한옥에서 산조듣기’와 음악동인 ‘고물’이 펼치는 ‘풍류-서울사투리’ 공연이 그것이다.

 

 

 

○ 국악은 원래 한옥에서 연주하던 음악

 

     “‘풍류(風流)라는 것은 말 그대로 바람 불고, 물 흐르는 곳에서 즐기던 음악이에요. 자연 속 한옥 같은 열린 공간에서 즐기던 음악이지요.”(국악인 김희영)

  국악은 원래 한옥의 사랑방에서 연주되던 음악이다. 그래서 음량이 크지 않다. 서울 서초구 서초동 국립국악원 예악당이나 우면당 등 서양식 음악홀처럼 지어진 극장에서는 제 맛을 즐기기 어렵다. 또 서양악기와 퓨전을 할 경우 국악기에 마이크를 달아 증폭하는 과정에서 소리가 왜곡된다. 국악에 별다른 감흥을 못 느끼던 사람도 한옥에서 가야금이나 아쟁산조를 듣노라면 넋을 잃고 빠져든다.

“국악기는 원래 한옥을 채우기 위한 악기입니다. 센 음들은 창호지를 통해 빠져나가고, 부드러운 음은 서까래에서 맴돌지요. 서양음악은 밀폐된 공간에서 절대음이 깨끗하게 연주되는 것을 중요시하지만, 국악은 빗소리 바람소리까지 다 음악으로 받아들입니다.”

‘소리재’의 주인인 김영일 악당이반 대표는 “한옥은 자체가 완성된 국악 공연장”이라며 “무대를 인위적으로 만들기보다 직접 한옥으로 찾아가야 할 때”라고 말했다.

 

영상제공: 악당 이반

 

○ “한옥 단순히 보존하기보다 우리 음악 흐르게 해야”

1934년 설립돼 역사와 문학을 연구하던 ‘진단학회’ 건물이었던 ‘낙고재’는 전통 차와 음악을 즐길 수 있는 한옥이다.

집주인 안영환 씨는 “북촌 한옥을 단순히 보존하고 가꾸기보다는 그 안에 담긴 문화적 가치를 일깨워야 할 때”라며 “가장 좋은 것은 한옥에 늘 우리 음악이 흐르게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대 국악과 출신 연주자들로 구성된 음악동인 ‘고물’은 25일 오후 5시 소리재에서 거문고, 가야금, 대금, 피리 등으로 이뤄진 ‘줄풍류’ 공연을 펼친다. 한옥의 공간적 특성상 관객은 20∼30명으로 제한된다.

‘고물’의 피리 연주자 유현수 씨는 “국악 그대로의 느낌을 살리기 위해 소규모 연주회를 자주 열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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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음악과 영화

현대음악은 낯설다?

  불협화음과 전위적인 음향이 가득한 현대음악. 대부분의 사람들은 듣기도 전에 ‘나는 모르겠다’고 고개를 흔들게 마련이다. 그러나 우리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현대음악을 즐기고 빠져드는 순간이 있다. 바로 영화다.

 

  상업적인 호러 영화 ‘스크림’에서 칼을 든 괴한이 화장실에서 희생자를 찾아 헤맬 때, 현실과 환상을 넘나들며 등을 오싹하게 만드는 심리 스릴러 영화에서, 우주에서 벌어지는 대 서사시를 그린 SF영화에 현대음악이 빠진다면 과연 어떨까? 이런 영화에 고전적인 테마송만 가득하다면 오히려 낯설다고 여길 관객들도 많을 것이다.

 

사이먼 래틀과 베를린 필이 참여한 영화 ‘향수’의 OST (EMI)

 

  헤어스타일부터 펑키해 보이는 베를린 필의 지휘자 사이먼 래틀 경은 영국에 있을 때부터 현대음악에 관심이 많았다. 그가 최근 베를린 필과 함께 녹음한 첫번째 영화음악 OST ‘향수’(EMI)를 냈다.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는 ‘세상에서 단 하나 뿐인 향수’를 만들어내기 위해 13명의 아름다운 여인들을 희생시킨 장-밥티스트 그루누이가 주인공이다.

 

  사이먼 경은 “소설 속의 그루누이가 말하듯이 만약 한 사람의 영혼이 그의 체취에 깃들여 있다면, 이 영화의 심장은 그 음악에 있다”고 말한다.

 

  실제로 이 영화에서 음악이 차지하는 비중은 상당하다. 마치 향기의 무상함을 옮겨 놓으려는 듯 음악은 가볍게 날아가기도 하고, 주인공의 체취에 대한 광기와 집착을 환각적이고 강렬한 화음으로 표현해내기도 한다. 현대적인 사운드 중간중간에 등장하는 리트비아국립합창단의 소리는 성스럽고 거룩함의 극치를 보여주기도 한다.  

 

  이처럼 영화에서 현대음악은 시각과 청각, 후각 등 복합적인 감각을 그려내기도 하고, 때로는 대사보다 더 강렬한 효과음으로 주인공의 심리상태를 표현해내기도 한다. ‘음악을 음향으로 이해’하는 현대음악가들은 더 이상 악보에 표기된 음악적 소리와 일상의 소리를 구분하는 것이 무의미하다고 말한다.  

 

 

  스탠리 큐브릭 감독은 영화 ‘2001 스페이스 오딧세이’(1968년)의 첫 장면에 죄르지 리게티의 ‘대기’(atmosphere)를 썼다. 리게티의 제자인 작곡가 진은숙 씨는 “큐브릭 감독은 리게티의 허락도 받지 않고 이 곡을 썼다. 리게티의 현대음악이 자기가 생각했던 영화 이미지에 너무도 잘 어울렸기 때문이었다”고 말했다. 이 사건은 이후 법정소송으로 비화했지만 결과적으로 현대음악가 리게티를 세계적으로 알린 계기가 됐다.

 

 

  일부에선 영화를 현대음악의 하나의 출구로 생각하기도 한다. 또한 현대무용가들의 공연장에서도 현대음악은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진다. 통신회사의 CF를 비롯해 TV에서도 전위적인 사운드의 음악은 쉴 새 없이 흘러나온다. 집에서 편하게 즐길 수 있는 음악은 아니지만, 이제는 현대음악에 대한 지독한 냉소와 편견을 걷을 때도 됐다. 현대미술처럼 현대음악도 이미 우리 생활주변 곳곳에서 살아 움직이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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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이콥스키 교향곡 4번

 

“절대로 서로 만나지 않도록 할 것, 설령 마주치더라도 대화하지 말 것.”

 

  러시아 작곡가 차이콥스키(1840∼1893)를 후원했던 나데즈다 폰 메크 부인(1830∼1894). 그녀는 1876년부터 차이콥스키에게 매년 6000루블이라는 연금을 제공해 작곡에만 전념할 수 있도록 했다. 15년간 아낌없는 후원을 했지만 그들은 한 번도 만나지 않았다.

 

“나는 당신을 멀리서 바라보는 것이 더 좋습니다. 당신의 음악 안에서 당신이 말하는 것을 듣고, 그 안에서 당신의 감정을 함께합니다.”

 

  차이콥스키는 37세의 나이에 모스크바 음악원의 제자였던 안토니아 이바노브나 밀류코바와 결혼했다. 어릴 적부터 동성애적 기질을 갖고 있던 차이콥스키는 불행했고 결혼 2주 만에 모스크바의 차가운 강물에 뛰어들어 자살을 시도하기도 했다. 극도의 신경쇠약으로 끝내 파경을 맞은 그를 격려하고 후원해 준 사람이 폰 메크 부인이었다.

  폰 메크 부인은 11명의 자녀를 둔 46세의 미망인이었다. 러시아 광산 재벌의 부인인 그녀의 후원 아래 차이콥스키는 불후의 명작을 쏟아냈다. 특히 1878년 2월 22일 초연된 ‘교향곡 4번’은 불행한 결혼생활을 괴로워하던 시절의 산물로서 차이콥스키의 ‘운명교향곡’으로도 불린다. 차이콥스키는 폰 메크 부인에게 보낸 편지에서 ‘우리들의 교향곡’이라고 표현했다.

 

  “우리들의 교향곡은 프로그램을 가지고 있습니다. 서주는 이 교향곡 전체의 핵심과 정수입니다. 이것은 운명입니다.  숙명은 머리 위에 달려 있는 다모레스크의 칼처럼 흔들려 영혼에 끊임없이 독을 부어넣는 힘입니다. 이 힘은 압도적이며 패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것에 복종하여 잠잠히 불운을 슬퍼하는 길 밖에 없습니다. (제1주제) 절망은 깊어집니다. 도피하여 꿈 속에 잠기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제2주제) 얼마나 즐거운 것이겠습니까. 달콤하고 부드러운 꿈이 나를 포옹합니다. 밝은 세계가 나를 부릅니다. 영혼은 꿈속에 젖어 우수와 불쾌함을 잊습니다. 이것이 행복입니다. 그러나 꿈일 뿐입니다. 운명은 우리들을 참혹하게 일깨워 일으킵니다. (주상선율) 우리들이 생활은 괴로운 현실과 행복한 꿈과의 교착에 지나지 않습니다. 완전한 도피처는 없습니다. 인생의 물결은 우리들을 삼켜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제2악장은 비애의 다른 일면을 보입니다. 이것은 일에 지쳐 쓰러진 자가 밤중에 홀로 앉았을 때 그를 싸고도는 우울한 감정입니다. 읽으려고 든 책은 그의 손에서 떨어지고 많은 추억이 샘솟습니다. 이렇게도 많은 여러가지 것들이 모두 지나가버렸고 사라져버렸다는 것은 얼마나 슬픈 일입니까. 그래도 지난날을 생각한다는 것은 즐거운 일입니다.”

 

  차이콥스키와 폰 메크 부인이 주고받은 1100여 통의 편지는 서간집으로 출판됐다. 차이콥스키의 작곡 배경을 알 수 있어 음악사적으로도 귀중한 자료로 꼽힌다. 1890년 10월 폰 메크 부인은 “파산해서 더는 연금을 보낼 수 없다”는 편지를 보냈다. 차이콥스키는 갑작스러운 절교 선언에 크게 낙심했으며 1893년 11월 콜레라에 걸려 타계했다.

  슈만과 클라라, 베토벤과 ‘불멸의 연인’과 같이 음악사에는 작곡가에게 열정을 북돋워 준 여인들이 등장한다. 그중에서도 차이콥스키와 폰 메크 부인의 사랑과 우정은 순수하다 못해 기묘하기까지 하다. 또한 ‘조건 없는 후원’의 아름다움을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한다.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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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페라계의 샤라포바-안나 네트렙코

DVD로 만나는 안나 네트렙코


2005년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에서 ‘라 트라비아타’의 비올레타로 출연한 소프라노 안나 네트렙코. 23, 24일 호암아트홀에서는 그녀가 주연을 맡은 오페라 영화 ‘청교도’ 상영회가 열린다. 사진 제공 유니버설뮤직

요즘 클래식 음악계의 큰 흐름 중 하나는 오페라 DVD 감상이다. 국내에서 볼 수 있는 오페라의 레퍼토리가 제한된 상황에서 이탈리아의 스칼라 오페라극장,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 페스티벌’, 뉴욕 메트로폴리탄 극장의 최신작들을 DVD로 함께 보는 동호회 모임도 점점 늘어나고 있다. 바야흐로 오페라도 영화 비디오처럼 집안에서 즐기는 시대다.

이러한 혁명적 변화의 중심에는 러시아 출신의 소프라노 안나 네트렙코(35)가 있다. 그녀의 매력은 청순한 외모와 글래머러스한 몸매뿐 아니라 영화배우 뺨치는 드라마틱한 연기력에 있다. 21세기 비주얼의 시대, 그녀는 오페라가 더는 ‘듣는 것’이 아닌 ‘보는 종합예술’임을 재확인시켜 주고 있다.

그녀의 출세작은 2005년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에서 테너 롤란도 비야손과 함께 했던 오페라 ‘라 트라비아타’. 현대적인 의상을 걸치고 쉴 새 없이 뛰어다니고, 슬립만 입은 채 비야손과 키스를 하며 오페라 아리아를 소화하던 그녀의 뛰어난 연기력은 사람들의 눈을 뗄 수 없게 만들었다.

음반점에 가보면 그녀는 CD보다 DVD로 더 많이 만나볼 수 있다. 최근에는 비야손과 함께 한 도니체티 오페라 ‘사랑의 묘약’, 플라시도 도밍고 비야손과 함께 출연했던 ‘발트뷔네 콘서트’ 실황 DVD가 잇달아 발매됐다.

특히 지난해 7월 7일 독일월드컵 결승전야에 열렸던 발트뷔네 콘서트는 1990년 로마 월드컵 이후 계속됐던 ‘스리 테너’의 인기가 실력과 외모, 연기력을 갖춘 ‘비야손-네트렙코 커플’로 완전히 옮겨갔음을 보여줬다. 특히 이 DVD에는 네트렙코가 2만 명의 관객들이 모인 야외극장에서 앙코르 곡을 마이크 없이 불러 관객들에게 탄성과 기립박수를 받는 장면도 나온다.

러시아 상트페테스부르크 음악원에서 공부한 네트렙코는 키로프 오케스트라의 명 지휘자 발레리 게르기예프가 발굴해낸 스타였다. 1994년 마린스키 극장에서 ‘피가로의 결혼’의 수잔나 역으로 데뷔한 그녀는 2002년부터 뉴욕 메트로폴리탄 극장, 잘츠부르크 페스티벌, 뮌헨 오페라극장 등에서 수많은 작품에 출연해 왔다.

그녀는 현대 오페라의 많은 부분을 바꿔 놓았다. 그녀의 등장 이후 수많은 여가수들이 다이어트를 시작했고, 남자 가수들은 근육질 몸매로 바뀌었다. 오페라 평론가 박종호 씨는 “2006년 모차르트 탄생 250주년 기념 잘츠부르크 페스티벌 공연실황을 담은 22편의 DVD에서는 단 한 명도 살찐 가수를 발견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네트렙코는 ‘오페라계의 샤라포바’로 불린다. 테니스 경기를 한 번도 보지 않던 사람이 샤라포바의 근육미 넘치는 몸매와 괴성을 듣기 위해 TV 앞에 앉는 것처럼, 오페라를 한 번도 보지 않았던 사람이 네트렙코가 출연한 DVD를 본 후 오페라 극장을 찾는 현상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독일 루프트한자 항공사는 2005년부터 기내에서 영화뿐 아니라 오페라도 서비스하기 시작했다.

인기절정의 최정상 소프라노를 한국 무대에서 만나기란 쉽지 않다. 그러나 호암아트홀에서는 스크린으로나마 그녀의 매력을 만나볼 수 있다. 뉴욕 메트로폴리탄에서 지난달 6일 상연됐던 안나 네트렙코 주연의 ‘청교도’(23, 24일 오후 2시)가 대형화면으로 생생하게 재연된다. 이밖에도 ‘마술피리’(연출 줄리 태이머·22일, 23일 오후 7시 반)와 ‘진시황제’(연출 장이머우·24일 오후 7시 반)도 영상물로 상영될 예정이다. 그녀가 불러온 ‘오페라의 DVD혁명’이 가져온 또 하나의 진풍경이다.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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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소리는 왜 노래가 아니고 소리인가

* 지난 여름 경주에 내려가서 판소리 완창 현장녹음 취재를 했습니다. 동영상을 보면 제 모습도 나옵니다. 찾아보세요.

 

 

《판소리는 왜 ‘노래’나 ‘창(唱)’이 아니고 ‘소리’라고 할까? 판소리에서는 노래뿐 아니라 물소리 새소리 바람소리 등 자연 만물의 다채로운 음향이 사람의 목소리로 표현되기 때문이다. 또 판소리는 씨름판, 놀이판처럼 함께 어우러지는 ‘판’에서 공연된다는 점에서 펄펄 살아 뛰는 현장의 음악이다》

 

  19일 오후 경북 경주시 안강읍 옥산리에 있는 고택 독락당(獨樂堂)에서는 툭 트인 자연 공간에서 판소리의 흥취를 제대로 느낄 수 있는 완창 음반 녹음이 이뤄졌다. 국악방송과 국악전문음반사 ‘악당(樂堂)이반’이 공동 기획한 판소리 자연녹음 현장. 400여 년 전 지어진 고즈넉한 한옥 사랑채에 앉은 정순임(64) 명창은 완창 판소리 ‘수궁가’로 관객들을 초여름의 시원한 수궁으로 인도했다.

 

 

   독락당은 조선 중종 때 성리학자인 회재 이언적(晦齋 李彦迪·1491∼1553) 선생이 1516년 벼슬을 그만두고 고향에 돌아온 뒤 거처한 유서 깊은 건물. 사방이 시원스레 뚫린 대청마루에는 나비가 날아다녔고, 흙돌담을 넘어온 바람은 뜰 앞 비자나무의 무성한 잎을 흔들어 대며 마치 비가 오는 듯한 시원한 소리를 냈다.

“판소리는 소리꾼과 고수가 사설만을 전달하는 것이 아닙니다. 관객들의 추임새가 중요합니다. 이번 음반에는 풀벌레 소리, 바람소리, 물소리도 다 들어갑니다. 힘들더라도 추임새를 끝까지 열심히 넣어 주십시오.”

   이날 녹음을 맡은 김영일 악당이반 대표는 마이크를 정 명창 앞에 한 대, 고수 앞에 한 대, 그리고 20여 명의 관객 앞에 두 대 설치했다. 현장 음을 최대한 잡아내겠다는 의지였다. 수궁가의 하이라이트는 육지에 간을 빼놓고 왔다는 토끼의 말에 용왕이 진노하는 대목. 중모리 장단에 맞춰 한껏 달아오른 명창의 목소리에 갑자기 담장 너머 동네 아이들의 떠드는 소리가 끼어들었다. 자칫 녹음이 중단될 아슬아슬한 위기 상황. 관객들은 더욱 열심히 ‘얼쑤’ ‘좋다’ 하는 추임새로 외부의 소음을 덮어 버렸다.

  경주를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는 정 명창은 천재적인 명창으로 이름을 날린 장월중선(1925∼1998)의 큰딸. 고종의 어전 명창이었던 전설적인 소리꾼 장판개(1885∼1937)가 외종조부다. 정 명창은 송만갑-장판개-장월중선으로 맥이 이어져 온 장판개 바디(명창에 의해 다듬어진 판소리의 한 계보)의 수궁가를 이날 선보였다.

  해질 녘이 되자 까치들의 지저귐은 더욱 커졌고, 저 멀리 산개구리들의 합창이 나지막이 깔렸다. 완창 판소리 ‘수궁가’는 원래 3시간 분량이지만 녹음은 5시간을 훌쩍 넘기고 오후 7시에야 끝났다. 비행기가 날아가고, 경운기와 트럭이 지나갈 때마다 녹음을 중단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정 명창은 “스튜디오에서 녹음을 하면 조용하긴 하지만, 굴 속에 갇힌 듯한 느낌이어서 답답하고, 목도 잘 안 나왔는데 오늘 산천경계를 그리는 ‘수궁가’를 툭 트인 자연에서 지인(知人)들과 더불어 부르니 청도 좋아지고, 행복했다”고 말했다.

  국악방송의 장수홍 PD는 “국악이 대중에게서 멀어진 것은 이렇게 관객과 연주자가 함께 즐기는 공간을 잃어버리고 박제화됐기 때문”이라며 “이런 자연음향 방식으로 녹음된 음반 시리즈를 통해 국악의 생명력과 감동을 되살리고 싶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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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보에-오케스트라의 센터포드


영화 ‘미션’에서 가브리엘 신부와 원주민 사이에 마음을 트는 계기가 되는 ‘가브리엘의 오보에’ 장면. 동아일보 자료 사진

소설가 헤르만 헤세는 거주지를 옮길 때마다 정원을 만들었습니다. 정원은 그에게 문명으로부터 벗어나 영혼의 평화를 지키는 장소였지요. 어느 날, 허름한 밀짚모자를 쓴 헤세는 마른 잎을 모아 모닥불을 피웠습니다. 탁탁거리는 불꽃 소리에 문득, 그는 음악을 느꼈습니다.

“그 박자 속에서 결코 지치지 않는 기억은 다시 음악을 만들어내고, 제목도 작곡가도 모르는 곡을 나는 함께 흥얼거린다. 그러다 불현듯 생각나는 이름, 모차르트다. 그의 오보에 4중주곡….”(헤르만 헤세, ‘정원에서 보낸 시간’)

헤세는 낙엽이 타는 냄새와 소리를 들으면서 ‘연금술사의 유희’에 대한 명상과 ‘모차르트 오보에 4중주’를 떠올렸습니다. 헤세가 아니더라도 찬바람이 옷깃을 파고드는 계절엔 오보에의 따뜻하고 목가적인 음색이 그리워집니다.

영화 ‘미션’을 떠올릴 때 귓가에 맴도는 것은 가브리엘 신부가 이과수 폭포 위에서 원주민에게 들려주었던 오보에의 선율입니다. 영화음악의 거장 엔리오 모리코네가 작곡한 ‘가브리엘의 오보에’는 마치 남미 밀림 속을 탐험하는 듯 너울대는 신비로운 음색으로 원주민들을 빠져들게 만들지요.

차이코프스키의 ‘백조의 호수’, 라벨의 ‘볼레로’, 스트라빈스키의 ‘봄의 제전’ 등 무용곡에서 오보에는 애잔하면서도 생동감 넘치는 색채를 뿜어냅니다. 또한 오페라에서 소프라노의 아리아를 뒷받침해 주는 멜로디는 주로 오보에가 담당하지요. 브람스 더블 콘체르토, 차이코프스키 교향곡 4번 등 많은 오케스트라 곡에서 오보에는 독주악기로 빛을 발합니다. 이 때문에 연주를 마친 지휘자가 오보에 주자를 일으켜 세우는 경우를 흔히 볼 수 있습니다.

올가을에는 세계적인 오케스트라의 내한공연이 유난히 많았습니다. 공연장에서 오보에 주자의 기량과 음색을 비교하며 감상해 보는 것이 무척 흥미로웠습니다. 오케스트라 공연이 시작되기 전 악장의 음정을 조율할 때 ‘A(라)’음을 불어주는 악기가 바로 오보에입니다.

좋은 지휘자는 3명의 연주자를 꼭 데리고 다닌답니다. 악장, 팀파니스트, 그리고 오보이스트죠. 그 중 지휘자의 맞은편에 앉아 있는 오보에는 전체 오케스트라의 음정을 잡고 사운드 컬러를 좌우하는 ‘센터포드’라고 할 수 있지요.

요즘 잠자리에 들기 전 한스외르크 쉘렌베르거(전 베를린필 오보에 수석)가 연주하는 생상스와 풀랑의 오보에 소나타 음반(DENON)을 듣습니다. 바흐, 비발디, 하이든, 마르첼로, 텔레만 등 바로크 시대의 고음악 오보에 소나타도 요즘 밤을 장식하기에 좋은 곡입니다. 무엇보다 태어난 지 8개월밖에 안 되는 아이가 스르르 잠에 빠져드는 것을 보면서 듣는 꿈꾸는 듯한 오보에 소리는 더욱 맘에 듭니다.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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