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몽골 울란바타르에서 러시아 국경 도시 셀렝게로 가는 도로에서 수많은 자동차가 헤드 라이트 불빛을 밝게 켜고 맞은 편 차도로 오는 모습이 보였다. 자동차 위에 짐을 가득 싣고 3~5명씩 차에 탄 채 손을 흔들고 있는 사람들은 모두 유럽에서 온 젊은이들이었다. 여름 휴가로 3~4주씩 걸려 시베리아를 횡단해 몽골까지 여행을 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렇다. 대륙인들은 이렇게 휴가를 떠나는 것이다. 이렇게 여행을 하는 것이다.
1997년 MBC와 동아일보가 공동기획한 ‘칭기즈칸 원정로 탐사’ 다큐멘터리를 촬영하기 위해 당시 유라시아 대륙을 횡단한 적이 있었다. 몽골에서부터 카자흐스탄, 키르기스스탄, 우즈베키스탄, 투르크메니스탄, 이란, 터키, 아르메니아, 그루지야, 우크라이나, 폴란드, 체코, 독일, 네덜란드 등을 거쳐 한국으로 돌아온 긴 여정이었다. 총 넉달(123일)간의 출장이었지만, 나는 아쉬웠다.
당시 20대 후반이었던 나는 대륙을 횡단하며 자유로움을 만끽한 상태였다. 그리고 어떻게 한국으로 돌아가 직장생활을 다시 할 수 있을까 고민했다. 아니, 직장생활은 커녕 좁디좁은 한국생활을 어떻게 다시할까 고민이 됐다. 에이, 그냥 저질러버릴까. 차도 있으니 기름값만 있다면 세상 끝까지 가보자. 이대로 지중해를 건너서 아프리카로 넘어갈까. 그리고 몇달간 아프리카 대륙을 횡단해볼까. 심각하게 고민하다가 결국은 일행을 따라 귀국했다. 바웬사가 노조위원장으로 있던 폴란드 그단스크 조선소에서 차를 한국으로 돌려보내는 날, 눈물이 났다.
대륙을 한 번 본 사람은 그 텅빈 공간의 아름다움에 가슴이 사무친다. 날마다 그리워진다. 다시 돌아가고 싶은 초원이 내 가슴 속에 남아 있다. 텅 빈 벌판에서 말을 타면 땅 끝까지 달려가고 싶은 마음이 솟구친다. 지프차라도 운전할라치면 세상 끝까지 가보고 싶은 것이다.

몽골의 젊은이들은 독일을 이웃나라처럼 생각한다. 사회주의 시절부터 베를린-몽골 직항 비행기 노선이 있어서 베를린 공항에는 늘 몽골 노동자들이 북적인다고 한다. 몽골의 젊은이들에게 가장 인기 있는 아르바이트는 독일에서 1만5000달러 쯤에 벤츠 승용차를 사서 1주일동안 시베리아 횡단도로를 운전해서 몽골에 와서 관세없이 2~3만 달러에 파는 것이다.
일본이나 남한이나 사실상 섬나라일 뿐이다. 그래서 우리는 유럽과 아시아가 대륙으로 붙어 있다는 사실을 잘 모른다. 유럽은 늘 비행기를 타고 가는 곳이지, 자동차로, 기차로, 말을 타고 갈 수 있는 곳이라고는 생각을 못하는 것이다.
북한이 도로나 철도를 개방해주면 얼마나 좋을까. 북한에서는 내리지 않고 통과만 하도록 하면서, 통과세를 받는 것이다. 그러면 ‘아시아 하이웨이’, ‘철의 실크로드’가 지금이라도 당장 이어질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 만주벌판도, 몽골의 초원도, 하얼빈, 베이징도, 타슈켄트나 알마티도, 테헤란이나 이스탄불도, 파리나 베를린도 우리가 ‘무쏘’나 ‘갤로퍼’를 몰고 여름 휴가를 떠날 수 있는 곳이 될 것이다.
이런 날이 온다면 우리나라 자동차의 품질도 크게 향상될 것이다. 단순히 좁은 국토에서 시내에서만 달릴 수 있는 차가 아니라 흙먼지 날리는 오프로드에서도 힘을 발휘할 수 있도록 강력한 엔진이 부착돼야 할 것이다. 자동차 뿐 아니라 우리의 사고방식도 대륙적인 기질로 크게 바뀔 것이다. 우리나라는 바다를 갖지 못한 몽골, 우즈베키스탄, 카자흐스탄 등 중앙아시아 국가들이 태평양을 향한 항구 역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20대 후반, 드넓은 초원을 본 이후부터 나는 늘 이런 꿈을 꾸어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