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선문의 롱쁘앙

유럽여행하면 커다란 배낭을 매고 유레일 패스를 이용한 기차여행을 떠오르게 마련이다. 그런데 요즘 한국의 배낭여행족들 사이에선 자동차 렌트 여행이 유행이다. 3-4명이
자동차를 렌트해서 다니면서 시 외곽의 싼 호텔이나 캠핑장에서 숙박을 하면 오히려 비용이 더 쌀 뿐 아니라 무겁게 배낭을 짊어지고 다니지 않을 수
있어 인기다. 차를 타고 다니면서 구석구석의 풍경을 자유롭게 즐길 수 있다는 것도 장점이다.

 

나도 프랑스에 온지 몇 번 식구들 데리고 바리바리 짐싸들고 TGV타고 여행해보니 너무 힘들었다. 기차 시간 맞추랴, 호텔찾고, 버스타고,
짐은 아빠가 다 들고…. 식구들 데리고 여행하는 아빠로선 여간 고된 게 아니다. 그래서 외국에서의 운전이라 겁은 났지만, 과감하게 차를
샀다. 10만km를 넘게 뛴 디젤 중고차를 샀다.

 

대부분의 여행 안내책자에서는 파리는 좁은 도로와 턱없이 부족한 주차시설로 시내에서 자동차 운전을 하기엔 무척 힘들다고 나와
있다. 사지하철, 버스, 벨리브(자전거)과 같은 대중교통이 촘촘히 발달돼 있어 대부분 대중교통으로 여행을 한다. 그러나 파리에서 운전을
시작하면서 새로운 즐거움을 발견하게 된다. 잠수교처럼 바로 옆에서 물이 찰랑대는 센 강의 강변도로를 달리고, 다이애나비가 사망했던 알마교
지하차도를 지나면서 그녀를 추억한다. 또 밤늦게 집으로 돌아올 땐 에펠탑에서 쏘아대는 써치라이트의 불빛이 환상적이다. 오늘은 비가 내렸는데, 차
안에서 보니 그것도 분위기 있네… 

 

유럽에서 운전할 때 가장 생소한 것이 교차로 통행이다. 교차로에 신호등이 없다.
대신 둥그렇게 돌면서 자신이 가고 싶은 길을 가는 ’라운드 어바웃’(round about)
방식이다. 아무런 차도 없는 괜히 신호등 앞에서 기다릴 필요가 없이 그냥 교차로에
진입해서 돌면 된다. 언뜻 사고 위험이 높아보이지만, 교차로에서 고속주행을 하지
못하기 때문에 사고율이 더 낮다고 한다. 어떻게 보면 신호등 앞에서 불필요한
대기시간을 줄이는 효율적인 방식이기도 하다.

 

이러한 교차로를 프랑스어로는 ‘롱쁘앙’(rond-point)이라고 부른다. 교차로에
도착하면 반드시 왼쪽에 먼저 진입한 차량이 우선통행권이 있다. 이러한 ‘양보’가
교차로에서 사고를 줄이고 원활한 통행을 보장하는 방법이다. 이러한 ‘롱쁘앙’ 중에서
가장 크고 대표적인 것이 샹젤리제 거리의 개선문 교차로이다. 12개의 대로가 모였다고
360도로 돌면서 흩어지기 때문에 하늘에서 바라보면 별 모양이라고 해서 ‘에뚜알(etoile)’ 광장이라고 불린다.
"이렇게 복잡한 도로인데도 신호등이 없다. 그런데 사람들은 서로서로 양보운전을 하기 때문에
사고가 안 일어난다. 이것이 이것이 ‘톨레랑스(tolerance)’ 문화로 상징되는 프랑스의 선진교통 문화를 보여주는 장면이다…." 라고
수없이 들어왔다. 

 

그런데… 실제 운전해보니 모두 구라였다. 양보는 커녕 막무가내로 밀고 들어오는 차들 때문에 깜짝깜짝 놀란 경험이 한두 번이 아니다. 차들이 커다랗게 원을 그리다가 자기가 가고 싶은 길로 빠져나가야 하는 데, 어떤 차는 개선문 한 중앙으로 직각으로 들어와서 반대방향으로 그냥
질러가기도 한다. 천천히 돌던 내 앞으로 차가 쌩하고 지나간다. 깜짝 놀라 나도 모르게 시동을 꺼먹었다. 복잡한 교차로 한 가운데 시동이
꺼지니 식은 땀이 뻘뻘. 사방에서 빵빵 댄다. 프랑스식 양보운전, 배려운전은 어디 갔을까. ‘사고 없다’는 개선문에서는 크고 작은
접촉사고로 경찰이 출동해 있는 장면도 여러번 봤다. 시내 운전할 때도 조금만 머뭇거리면 뒤에서 ‘빵빵’대고, 오토바이 폭주족들은 곡예운전을
하고, 교통신호는 운전자나 보행자나 서로 지키지 않는다. 어쩌면 우리나라보다 더 도로운전 문화가 더 혼잡해 보이기도 한다. 프랑스 사회가
각박해져서일까? 도로에서도 여유가 사라진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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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선문을 한 바퀴 돌아 샹젤리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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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의아니게 시내 한 복판에 살다보니 주차 문제도 난감했다. 집에는 주차장이 없어서, 인근 공영주차장에 한달 장기주차하는 데 200유로(약
30만원)을 달란다. 파리 시청 홈페이지를 뒤져보니 ‘거주자 우선주차제’가 파리에도 있었다. 서울이 파리에서 배운 건지도 모르겠다. 시청에
신청을 하고, 거주자 주차증을 받으면 집근처 길거리 주차장에 자리가 나면 세울 수 있다. 하루 종일 세워놓아도 1000원도 안나오고, 1주일에
5000원도 안된다. 대신 길거리 주차장에 빈 곳을 찾기란 하늘의 별 따기다. 차를 몰고 동네를 한 두바퀴 돌다가 빈자리를 발견했을 때의
기쁨이란!! 마치 큰 돈을 번 듯 뿌듯한 마음으로 집으로 들어온다.

 

면허시험장에서 이후로 처음해보는 수동 운전이어서, 처음엔 하루에 10번 이상 시동을 꺼먹었다. 그런데 점점 운전 스킬이 늘어나면서 수동운전의 즐거움에
빠져들고 있다. 기어 박스 위로 툭 튀어 올라온 스틱을 통해 이 자동차의 엔진과 내가 직접 교감하고 있다는 느낌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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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레 만종 150주년-'만종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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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레의 ‘만종’(l’Angélus)은 프랑스를 대표하는 그림입니다.

루브르에 ‘모나리자’가 있다면, 오르세 미술관에서는 ‘만종’이 수많은 관광객들을
끌어들이죠.

프랑스 국민들은 미국에 팔려갔던 이 그림을 천신만고 끝에 1906년에 되사올
수 있었습니다.

 

밀레가 파리를 떠나 소박한 농부들의 삶을 그렸던 프랑스의 농촌마을 바르비종에
다녀왔습니다.

바르비종에는 밀레가 ‘만종’을 그렸던 들판(Prairie d’Angélus)이 실제로
그대로 남아 있었습니다.

마침 곡식을 수확한 누런 들판이라 만종의 분위기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더군요.

 

마침 올해는 ‘만종’(1857~1859)이 완성된지 150년째 되는 해라 많은 행사가 열리고
있었습니다.

바르비종에는150명의 화가들이 ‘만종’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그림, 퍼포먼스, 사진, 비디오 작품 들이 전시됐습니다.

 

‘만종’은 부부가 해질녁 일을 끝낼 즈음 성당의 종소리 잠시
일을 멈추고 기도를 드리는 모습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마치 종교화처럼 성스러운 부부의 모습에서는 무척이나 견디기 힘든 거칠고
각박한 삶의 현실이 함께 느껴집니다.

농부들이 하루종일 일해서 캐낸 감자를 담는 조그만
수레는 하루하루 땅에서 캐내는 소출에 의존해

살아가야하는 소작농의 삶이 담겨
있습니다.

밀레는 그런 힘든 부부의 표정을 클로즈업하지 않고, 묘한 빛과 색채로
성스러움을 표현해 감동을 주고 있습니다.

밀레의 ‘만종’은 반 고흐부터 살바도르 달리까지 후대의 화가들이 수없이
‘따라 그리기’를 하며 존경을 표했습니다.

 

그러나 살바도르 달리는 이 그림을 보면서 뭔가 잠을 못 이룰 정도로 불안한
느낌을 받았다고 합니다.

그는 부부의 앞에 놓여 있는 바구니가 원래 감자를 담은
게 아니라, 부부가 일할 동안 배고파 죽은 아기의 시체가 담긴 관이 있었다는 말을 했습니다. 나중에 X선 검사
결과 밀레의 원래 스케치에는 죽은 아기가 그려져 있었다는 설도 그럴 듯하게 전해오고
있습니다.

 

하여간, 밀레의 ‘만종’은 현대적으로 꾸준히 재해석될 만한 그림입니다.
만종 150주년 기념전에 전시된 작품들은 평화로운 전원풍경이 아니라 도시의 쓰레기
처리장에서 고된 일을 하는 부부, 기계로부터 감시당하는 이삭줍는 사람들, 도시의
소비사회에 찌든 현대 부부의 일상 등으로 표현됐습니다.

하루벌어 하루 먹고 사는 일상의 삶은 19세기 소작농이나 21세기 직장인이라고
다를 바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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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erad Rancinan

흑인 래퍼복장의 남편과 뚱뚱한 젊은 백인 여성부부. 발 맡에는 투명한 공안에
아기가 울고, 쇼핑마트에서 파는 카트에는 먹을 것이 잔뜩 들어 있다. 이 그림을
보고 가장 빵 터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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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화거는 여자와 이삭줍는 남자. 젊은 여자 왈,

"매일 밤 내가 레스토랑에서 카드를 긁을 수 있으려면, 이 남자가 수확때마다
13개의 밀 이삭을 주워야한다고 내가 말해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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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가 일하는 곳은 쓰레기 처리장같다. 앞에 놓은 바구니는 타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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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삭을 줍는 것을 기계가 감시하고 있다. 밑에 있는 작은 로봇이 정말 많은 이삭을
주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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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종’을 패러디한 수많은 작품들은 만화, 동물, 사진, 조각까지 어울려 

가히 ‘만종놀이’로 부를 만 했습니다.

그래서 저희 부부도 ‘만종의 들판’에 간 김에 ‘만종놀이’에 동참해봤습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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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테고리 : 유럽 음악여행 댓글 5개

인 디 에어

오늘 조지 클루니 주연의 영화 ‘인 디 에어(in the air)’를 봤다.

조지 클루니의 직업은 직장에서 해고당하는 사람에게 고용주 대신 해고를 통보하는 일이다.

아무리 냉철한 CEO라고 해도 "당신 내일부터 나오지 마세요. 책상을 정리해주세요"라는 말을 직접 하긴 힘든가보다.

언젠가 신문기사에서 보니까 휴대폰 문자메시지로 해고를 통보받는 직장인들도 많았다고 들었다.

10년, 20년 평생 몸바쳐 일해 온 직장에서 하루아침에 해고를 통보받는 일이란 그야말로 인생이 무너지는 느낌일 것이다.

가족들에게, 친구들에게, 아이들에게 무어라 말할 것인가.

그야말로 스스로의 자존감은 땅으로 떨어지는 일일 것이다.

 

영화 속에는 베테랑 해고전문가인 조지 클루니로부터 해고통보를 받는 수많은 미국인들의 억울해하고, 분해하고, 눈물을 흘리고, 공포에 젖은
얼굴들이 나온다. 심지어 한 흑인 여성은 태연하게 말한다. 집 옆에 아름다운 다리에서 뛰어내리겠다고….

그런데.. 이 장면 어디서 많이 본 듯하다.

바로 1997년 한국에서 소위 IMF로 불렸던 외환위기 당시였다. 나는 당시 사회부 기자로 한국 역사상 초유의 가정붕괴 현장을 들여다
봤다. 길거리엔 밥을 얻어먹기 위해 긴 줄을 서 있는 사람들이 보였다. 당시 우리 회사도 인력의 10%를 구조조정해야 햇다. 

어느날 외근을 나갔다가 들어왔을 때 회의실에서 막 해고 통보를 받든 선배들의 표정을 잊을 수가 없다.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을 앞세워 한국의 기업들에게 대량해고를 강요했던 미국이 그게 얼마나 잔혹한 일이었는지를 이제야 스스로 몸소
깨닫고 있음을 이 영화는 보여준다. 이 영화의 배경은 2008년 말 미국의 리먼 브라더스 파산을 계기로 벌어진 글로벌 금융위기다. CEO를
대신해 해고를 통보해주는 회사에게는 그야말로 최대의 호황을 맞은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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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클루니는 미국 전역의 고객들의 요청을 실행해주기 위해 비행기를 타고 다닌다. 그의 최대 목표는 비행기 1000만 마일의 마일리지를
쌓는 것. 그래도 비행기를 타고, 렌터카를 빌리고, 호텔방에서 잠을 자면서 고객을 만나 해고를 통보하는 건 인간적일 수도 있다. 문자메시지나
화상 인터넷을 통해 해고를 당하는 비참함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것이다.  나중엔 스마트폰으로 해고를 통보받는 시대가 올 수도 있겠다. 남녀의
이별도 문자메시지로 간단히 되는 세상인 것이다.  

 

클루니는 쿨하다. 해고 통보도 쿨하고, 이성관계도 쿨하다. 1년에 320일 이상 비행기를 타고 호텔에서 잠을 잔다. 나머지 40일 가량을
집에서 보내는 데 그게 그렇게 지겨울 수가 없다. 그는 ‘빈 가방 이론’의 처세술을 전파하는 강의를 한다. 더 큰집, 더 좋은 가구, 더 좋은
TV 등 끝없는 탐욕 끝에 파산을 맞은 미국인들의 탐욕을 비꼬는 것 같기도 하다. 그는 어깨를 짓누르는 모든 짐을 내려놓고 싶어한다. 그에겐
집도 없다. 그의 집이자 고향은 바로 ‘인 디 에어(in the air)’다. 그리고 세상에서 가장 무거운 짐은 바로 인간관계라나… 아무런
인간관계없이 공중을 떠다니는 현대인의 삶… 페이스북 속에, 싸이월드 속의 인간관계가 전부라고 믿고 사는 세상… 우리는 어쩌면 공중에
떠다니는 외계인들인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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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청년 백수 대니얼 세디키

여성 탐험가 한비야는 ‘지도 밖으로 행군하라’고 했다.

미국의 청년 백수 대니얼 세디키(26)는 일자리를 얻기 위해서 ‘지도에서 살아가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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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니얼 세디키의 홈페이지 ‘리빙 더 맵’( www.livingthemap.com)의
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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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젊은이들이여, 심리적으로 늘 익숙한 ‘안전지대’(comfort zone)에서 당장 나와라. 오히려 평생 하고 싶은 직업,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새로운 직업에 눈을 뜰 수 있을 것이다.”

  미국 ‘50개 주에서 50개의 직업’을 체험하는 도전에 나선 미국의 ‘청년백수’ 대니얼 새디키(26) 씨는 3일 현재
코네티컷주에서 보험중개인으로 하고 있었다. 지난해 9월5일 유타주에서 몰몬교 자원봉사일로 시작한 그의 대장정은 현재 44번째 주를 마치고 막바지를 향하고 있다. 그가 e메일을 통해 ‘88만원 세대’로 불리는 한국의 청년구직자들에게 희망의 편지를 보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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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스트버지니아주-광부>

 

   “미국을 ‘기회의 나라’라고 하잖아요. 그러나 내겐 기회가 오지 않았어요. 실제로 미국 50개 주 곳곳에 어떤 기회가 있는지 제가 직접 찾아나서기로 했습니다.”

  2005년 캘리포니아 주 사립명문 남캘리포니아대(USC) 경제학과를 졸업한 새디키 씨는 2년 동안 이력서를 2000개 이상의 기업에 보내고, 최종면접에도 40번 이상 갔으나 모두 실패했다. 결국 첫 직업으로 선택한 것은 초등학생을 가르치는 파트타임 일자리였다. 그는 “매일 아침 잠에서 깨어나는 것이 즐거움이 되는 일을 찾고 싶다”는 마음에 50개 주에 걸친 ‘구직순례’ 대장정에 나섰다. “시간낭비”라고 반대하던 부모님이 그가 집을 떠날 때 주신 것은 두 병의 따뜻한 물과 ‘행운을 빈다’는 말 한마디였다.

  “한국의 10대, 20대는 스스로 삶을 결정하는 데 익숙하지 않을 겁니다. 나 또한 대학을 졸업했는데도 제가 어떤 일을 좋아하는지, 앞으로 무엇을 해야할지 몰랐습니다. 부모님은 대기업과 안정된 생활을 원했지만, 그럴 기회조차 오지 않았어요. 저는 제 자신을 불확실성과 위험 속으로 던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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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켄터키주
경마 말 돌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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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는 화이트 칼라, 블루 칼라를 막론하고 각 주마다 특색있는 대표적인 일자리를 찾았다. 사우스 다코타 주에서 로데오 경기장 아나운서, 네브라스카주에서 옥수수농장, 텍사스주에서 석유 엔지니어, 켄터키주에서 경주마 돌보기, 미시건주에서 자동차 수리공, 오하오주에서 기상캐스터, 뉴올리언스주에서 블루스 클럽 DJ, 아칸소주에서 고고학 발굴대원, 애리조나주 국경순찰대원까지…. 그는 “50개 주를 돌아다니면서 일자리를 얻는데도 5000번 이상 거절당했다”고 소개했다. 그는 1주일에 평균 500달러 씩 받으며 일했다. 처음엔 차에서 잠을 잤지만, 그의 구직탐험을 담은 블로그 ‘리빙더맵’(www.livingthemap.com)이 전국적으로 유명해지면서 직장 동료들의 집에서 숙식을 하는 등 따뜻한 환대를 받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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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로라도 수자원 조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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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네시주 녹음기술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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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로리다주 공원엔터테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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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는 “웨스트 버지니아주에서 한 석탄 광부일이 가장 힘들었다”고 고백했다. 30년씩 지하에 들어가 탄을 캐낸 베테랑 선배들과 운동부족인 자신의 체력의 격차가 너무 컸다는 것. 그러나 그는 “탄광이 매우 구시대적이고 힘든 직종인 것으로 알았는데, 공기정화시스템과 안전시스템이 잘 갖춰져 있어 의외로 깨끗한 곳이었다”며 “막연한 직업에 대한 편견과 오해로 많은 직종이 젊은이들에게 기피되는 것이 안타깝다”고 말했다. 탄광 동료들은 “캘리포니아 해변가에서 여자들과 노닥거리던 젊은이인 줄 오해했는데 그와 함께 일하면서 무척 즐거웠다”는 반응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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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스캐롤라이나-모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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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올리언즈 블루스 클럽 D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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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시간주 자동차정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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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몬트 설탕공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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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시시피 다이어트 영양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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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티모어 시푸트 식당 요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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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우스 다코타주 로데오 경기 장내 아나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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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우스 캐롤라이나 골프장 캐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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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브라스카 옥수수농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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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라바마 풋볼 코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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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클라호마 항만노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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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하이오 기상캐스터

 

  새디키 씨는 “매주마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새로운 일에 적응하는 건 힘든 일이었다”며 “그러나 다행히도 한가지 일에서 배운 기술을 다른 직업에 이용하는 법을 깨닫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플로리다주에서는 테마파크인 유니버셜 스튜디오에서 이집트 오시리스 미이라로 분장을 하고, ‘미이라의 복수’라는 놀이기구 앞에서 줄 선 관객들에게 즐거움을 선사했다. 유니버셜 측은 “셰디키 씨는 1주일만 일하지만, 정식 직원고용과 똑같은 절차를 통해 선발했고 투입 전 교육도 똑같이 했다”고 밝혔다. 그는 “이번 여행을 통해 처음 낚시를 해봤으며, 처음 사냥을 해봤고, 처음으로 트랙터를 몰아봤으다”며 “새로 시작하는 것이 두렵지 않고, 거절당하는 것에 좌절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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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스콘신 치즈공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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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디키는 어느덧 미국에서 유명인사가 됐다. CNN, 폭스뉴스를 비롯해 그가 방문한 각 주의 지역신문과 방송은 그가 가는 곳마다 취재경쟁을 펼쳤다. 그에겐 정식 일자리 제의도 쏟아지고 있다. 그러나 그는 “미시시피 주에서 경험한 ‘영양사(Dietarian)’가 인상깊었고, 평생 직업으로 생각중”이라고 밝혔다. 비만인구가 30%가 넘는 미시시피 주에서는 식이조절을 통해 건강을 총괄적으로 관리해주는 이 직업의 전망이 매우 좋아보였다는 이유였다. 세디키 씨는 향후 뉴욕 주의 주식 매매인, 고향인 캘리포니아에서 마지막으로 영화 디렉터로서 50번째 직업체험을 마칠 예정이다.

  그의 웹사이트에 있는 이력서엔 일반적인 학력과 자격증란 외에도 빼곡히 적혀 있는 ‘직업 경험(experience)’란이 눈길을 모은다. 그는 “위험을 감수하는 건 그리 나쁜 일이 아니다, 왜냐하면 어떤 경험이라고 항상 배우는 게 있기 때문”이라며 “어떤 직업에 관심이 있다면 반드시 실제 그 직업에 종사하는 사람을 찾아가 물어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구직을 원하는 젊은이들에게 인턴십과 같은 다양한 직업체험과 인적 네트워킹을 쌓으라고 조언했다. 그는 “처음엔 일자리를 구하기 힘들었지만 30개 이상 주를 거치면서 전직 고용주들이 또다른 사람을 소개해주는 등 ‘인적 네트워크’가 엄청난 도움이 됐다”며 “앞으로 내 인생에도 커다란 자산으로 남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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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디애나 폴리스 자동차 경주장 직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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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리노이 여행사 티켓 판매

카테고리 : 세계는 지금
태그 : , , | 댓글 4개

팔레스타인에서 바흐의 미뉴에트, 베토벤 소나타가….

 

  거대한 콘크리트 장벽. 베들레헴 시내의 부서진 벽돌집들…. 팔레스타인 웨스트뱅크(요르단강 서안지구)에 살고 있는 달리아 무카르커 양(16)은 창문 밖을 볼 때마다 감옥에 갇힌 것처럼 질식할 것 같은 느낌을 받아왔다. 그러나 3년전 난민촌 음악학교에서 플루트를 배우기 시작하면서 그에겐 신세계가 펼쳐졌다.

 

 

  달리아는 5남매가 함께 살고 있는 아파트에서 화장실에 처박혀 연습을 했다. 끼니도 거른 채 플루트를 불다가 손목 통증을 느끼기도 했다. 그렇게 3년 동안 몰두한 끝에 그에겐 초(超)현실적인 일이 일어났다. 창문에 사진을 붙여놓고 꿈에도 그리던 자신의 우상 엠마누엘 파후드(베를린필 플루트수석)를 만나게 된 것이다. 그가 웨스트뱅크까지 직접 찾아와 달리아에게 마스터 클래스를 해준 것. 파후드의 황금빛 플루트에서 울려나오는 현란한 장식음을 눈 앞에서 듣는 순간 달리아는 마치 꿈을 꾸는 듯했다. “마치 내가 날고 있는 기분이었어요. 현실이 추악할 수록 음악이 데려가주는 또 다른 세상은 아름다웠습니다.”

  

 

  웨스트뱅크에서는 지난 31일에도 자치정부 경찰과 하마스 조직원들간의 총격으로 6명이 사망했다. 뉴욕타임스는 1일 최악의 경제난과 자살폭탄 테러가 끊이지 않는 이 곳에서 몇 년 전부터 바흐의 미뉴에트와 베토벤의 소나타가 들려오고 있다고 보도했다. 지난해 12월에는 웨스트뱅크 전역에서 바로크 페스티벌이 열렸고, 1월에 동 예루살렘에서 열린 팔레스타인 피아노 콩쿠르에는 50명의 출전자가 열띤 경쟁을 벌였다. 난민촌에서 음악을 배운 학생들은 유럽과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고 있다. 심지어 올해 초 전쟁의 상흔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가자지구에서도 음악학교를 재건하려는 움직임부터 일어나고 있다.

 

 <엠마누엘 파후드 베를린 필 플루트 수석(왼쪽)에게 마스터 클래스를 받고
있는 달리야 양>

 

  팔레스타인 지역에 클래식 음악 붐이 불기 시작한 것은 2000년대 초부터. 아르헨티나 출신 유태인인 지휘자 다니엘 바렌보임과 팔레스타인계 세계적인 석학인 에드워드 사이드(2003년 사망)가 만든 ‘바렌보임-사이드 재단’이 커다란 역할을 했다. 이 재단은 2006년 팔레스타인 수도 라말라에서 음악교육 센터를 만들고, 이스라엘과 아랍 청소년들을 모아 만든 ‘웨스트 이스트 디반 오케스트라’ 공연을 펼치기도 했다. 또한 바렌보임-사이드 재단은 난민촌 아이들에게 무료로 현악기를 빌려주고 가르쳐주는 ‘알 카만자티’(바이올리니스트) 그룹도 후원하고 있다. 2002년 설립당시 학생 정원은 90명이었으나 현재 400명으로 늘어났다. 

 

 

  그러나 팔레스타인 지역 내의 서양 클래식 음악 붐에 보수적 이슬람주의자들의 시선은 곱지 않다. 올해 3월 라말라 북쪽 제닌 마을에 있는 난민촌 음악학교는 방화를 당했다. 학생들이 이스라엘 홀로코스트 생존자들을 연주했다는 이유였다. 수하일 쿠리 팔레스타인 국립음악원 총장은 바렌보임의 아랍-이스라엘 합동청소년 오케스트라 프로젝트에 대해 “근본적인 문제는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을 점령하고 있다는 것”이라며 “만일 한 사람의 발이 다른 사람의 목 위에 올려져 있다면 함께 노래할 수 있을 것인가”라며 비난했다. 그러나 바렌보임은 “오케스트라는 ‘정치적인 프로젝트’가 아니다”며 “음악이란 폭력과 추악함에 대항하는 최고의 무기”라고 옹호했다.

 

  뉴욕타임스는 “팔레스타인 국가건설이 요원해 보이는 현실에서, 서구 클래식 음악을 배우는 것은 팔레스타인 청소년들에게 외부 세계로 연결되는 더욱 빠른 길을 찾을 수 있는 희망이 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 Israel’s
Apartheid Wall’ (이스라엘의 인종분리 장벽)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지역을 봉쇄하기 위해 쳐놓은 거대한 콘크리트 장벽은 700여 km에 이른다.
이 장벽은 팔레스타인
벽화(그래피티) 예술가들에 의해 세상에서 제일 커다란 벽화 전시장이 됐다. 이 장벽은
마치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군들이 유태인 집단 수용지역인 게토 주변에 쌓았던
콘크리트 장벽을 연상시킨다. 내가 당한 만큼 돌려주겠다는 생각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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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자와, 제주도를 사버리겠다고?

최근 오자와 일본 민주당 대표가 "엔고이니 제주도를 사버리자"는 망언을
했다.

듣기에 따라서는 기분은 나쁠 수 있지만, 잘 생각해보면 그리 나쁜 말은
아니다.

실질적으로 다른 나라 땅인 "섬을 산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오자와 대표가 "한국 사람이 대마도에 투자해 ‘원화 경제권’이 돼가고 있는
데, 일본 사람도 제주도 땅에 투자할 수 있으므로 그렇게 하자는 뜻"이었다고
해명했다.

자본을 투자해서 땅을 개발하고 수익을 얻는 것은 다른 나라에서도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한국 사람이 두바이나 중국 청도의 아파트를 사는 것도 가능한 현실이다.

17일자 미국의 월스트리트 저널엔 미국 부동산
경기침체를 타개하기 위한 아이디어로 ’주택구입자에게
미국 영주권을 주자’는 주장이 실리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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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에서 고속 페리호를 타면 불과 50분이면 도착하는 대마도. 대한해협의 해류가
남해에서 대마도 방향으로 흐르기 때문에 한국에서 대마도 가기란 무척 쉽다. 대마도
동북쪽 해안에는 늘 한국에서 몰려온 쓰레기로 넘쳐난다. 페트병, 과자 봉지 등등..
6.25때는 시체도 수없이 떠내려왔다고 한다.

 

그러나 일본 본토에서 가장 가까운 후쿠오카에서 대마도를 가려면 거센 해류를
역류해 5~6시간 이상 배를 타고 가야 한다. 일본 사람들에게 "대마도를 아느냐"고
물어보면 거의 다 모른다. 결국 대마도가 살길은 한국 경제권 밖에 없는 것이다.

 

2003년 대마도 취재를 갔을 때 만난 대마도 시청의 우치다 히로시(內田洋) 총무기획부장은
“50km 떨어진 부산엔 400만∼500만명이 살고 있는데
150km 떨어진 후쿠오카의 인구는 200만명에 불과하다. 눈앞에 좋은 시장이 있는데 왜 한국과 교류하지 않겠는가”라고 말했다.

 

대마도는 고려시대, 조선시대까지 왜구의 본거지였다. 왜구란 단순히 일본사람이
아니었다. 한국, 일본, 중국 등지에서 쫓겨 온 범죄자나 유민들이 해적질로 살아가는
섬이었다. 대마도를 가보면 80%이상이 산지다. 농지는 거의 없다. 이들은 식량을
얻으려면 풍요로운 조선의 삼남지방을 침략할 수 밖에 없었다.

 

지금도 대마도의 최북단 히타카츠의 전망대에서 부산과 거제도를 바라보면 날씨가
좋은 날엔 눈 앞에 남해안이 나타난다. 밤에 보면 부산 광안대교의 불빛이 훤할 정도다.
왜구들은 조선의 거제도를 보면서 ‘풍요로운 대륙’으로 진출하고
싶은 꿈에 가슴을 뛰었을 것이다. (앞에 보이는 우니시마 섬은 해상자위대 레이더기지가
자리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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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4년 7월24일자 동아일보 특별기획 시리즈인 ‘우리땅 우리魂 영토분쟁 현장을 가다’에서
나는 다음과 같은 기사를 썼다.

 ***** 취재 도중 미쓰(美津)지역에서 ‘대마도에 별장을’이라는 흥미로운 벽보를 발견했다. 일본어와
한국어로 ‘대마도의 토지와 건물을 한국의 모든 분들이 구입하실 수 있습니다. 토지와 건물의 판매 가격은 2000만원부터’라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벽보에 적힌 번호로 전화를 걸어 “한국 사람인데 대마도의 농가주택을 구입할 수 있겠느냐”고 물었더니 일본인 부동산업자는
“한국의 주민등록증만 제시하면 살 수 있고 등기도 가능하며 가격은 평당 20만∼30만원대”라고 대답했다. 일본이 실효적으로 대마도를 지배하고 있는 상황에서 당장 우리가 역사적 사실을 근거로 대마도에 대한 영유권을
주장하는 것은 용이하지 않다. 그보다는 교류 활성화로 대마도를 한국의 경제권과 문화권에 편입시키는 것이 현실적이라고 할 수
있다. 이곳에서 6년째 여행 가이드를 해 온 홍관영씨의 생각도 같다. 그는 “대마도가 일본 땅이 된 이유는 척박한 땅이라고 해서
한국이 방치해 왔기 때문”이라며 “영토 분쟁보다는 경제와 문화 교류를 통해 한국과 대마도의 연을 이어가는 것이 급선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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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마도는 2004년 3월 시로 승격한 이후로 산을 깎고 온천과 골프장 등을 개발하며
한국의 자본을 끌어들였다. 당시 대마도가 속해 있는 나가사키(長崎)현은 정부에 ‘대마도 특구’ 법안을 제출했다. 이 안에는 대마도를 찾는 한국 관광객에 한해서는 비자 면제,
섬내 토지이용 및 취득 규제 완화, 고교에서의 한국어 교육 확대 등의 정책이 포함돼 있다.

 

 그런데 지난해 10월 일본 극우신문 산케이는 느닷없이 ‘쓰시마 섬이 위험하다’는 3회 특집기사를 게재했다.
대마도가 한국의 자본에 넘어가게 생겨 안보가 위험하다는 것이다.

  산케이신문은
"지난해 6월 한국인이 세운 ‘리조트
쓰시마’는 해상자위대 기지 바로 옆에 있다며 “자위대를 감시하는 것 같다”고 전했다. “10∼20년 안에 한국색으로 물들어
버릴 것”이라는 주민 경고에 ‘국가의 요충이 벌레 먹은 것같이 침식돼 간다’는 기자의 자극적 표현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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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마도가 방위의 요충지라는 사실은 대마도 지형을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대마도는 임진왜란 때 조선을 침략할 때 일본의 배가 출발한 천혜의 요새였다.
수많은 리아스식 해안이 발달한 대마도는 군함을 숨길 수 있는 잔잔한 호수같은
천혜의 선착장이 수천개나 있다. 군함을 숨겨놓고도 섬 밖에서는 전혀 보이지 않을
정도다. 일본은 러일전쟁 당시 대마도에 자국의 함대를 숨겨놓고, 러시아 함대가
지나가는 결정적인 순간에 기습해 러일전쟁에서 대승을 거뒀다.

 

  그러나 대마도는 전략적 요충지이기도 하지만, 한일 교류의 상징인
섬이기도 하다. 조선통신사가 일본 동경으로 건너갈 적에 가장 먼저 조선통신사 일행을
맞는 섬이 대마도였다.

  대마도엔 1607년부터 1811년까지 200여년 동안 12차례에 걸쳐 파견된 조선통신사의 족적이 곳곳에 남아 있다. 웬만한 절이나 관공서에는
‘조선통신사가 묵었던 곳’이라는 대리석 표지판이 세워져 있다. 매년 8월 첫째 주 주말에 조선통신사의 행렬을 재현하는 ‘아리랑 마쓰리’가
열리기도 한다.

  지금도 대마도 우체국에서는 점심시간에 "고향의 봄"이
차임벨로 울린다. 대마도에는 수많은 한국어가 그대로 남아 있고, 고려꿩 등 일본
본토에는 없고 한국에만 있는 동식물이 살고 있다.

  일본 정부가 해방 후 부산~대마도를 잇는 뱃길을 끊어 50년 이상
대마도는 우리에게 먼 점이 됐지만, 1991년 부산에서의 뱃길이 열린 후 우리에게
한층 가까워졌다. 대마도 주민들도 경제적인 발전을 위해서는 한국의 자본과 관광객이
절실한 시점이다.

 

  오자와 대표의 말처럼, 일본인이 제주도에 많은 투자를 하는 것을
막을 수 없다. 오히려 우리의 경기불황을 타개할 수 있는 좋은 제안이라고 생각한다.
한국인이 대마도에 호텔을 짓고, 일본인이 제주도에 리조트를 짓는 것은 나쁜 일이
아니다. 한일 우호의 평화의 상징이었던 ‘조선통신사의 길’을 현재에 재현하는 작업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이러한 한일간의 문화적 경제적 교류를 ‘안보적 위기’로
몰아가려는 일본 극우파의 소행은 가소롭다.

  대마도의 주민들조차 "산케이보도를 보고 지역주민들이 어이없어했다”며 “경계는커녕 일자리가 늘어났다고 반기는 주민이 많다”고
말하는 현실이다.

  대마도에 대해 ‘실효적 지배’를 하고 있는 일본은 무엇을 두려워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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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우디의 밤을 장식하는 폭주족들

   "왜 위험한 폭주를 하냐고요?"

   "지루함에 익사하기 직전인데, 다른 것은
아무 것도 할 게 없기 때문이죠"(수헤일 자누디. 27)

 

   8일자 뉴욕타임스에는 사우디 아라비아의 폭주족 문화를 소개했다.
이슬람 법으로 통치되는 왕국인 사우디 아라비아에서 주말 밤마다 도로에 폭주족의
굉음이 울려퍼진다고?  상상이 쉽지 않은 장면이다.

  그러나 공개적인 장소에서 술을 마시거나, 남녀간의 이성접촉 등
웬만한 엔터테인먼트가 모두 불법인 극도로 보수적인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자동차
폭주는 젊은이들이 유일하게 즐길 수 있는 ‘반(半) 합법적’ 일탈행위다.

  약 10년 전 이란에 취재차 가 본 경험이 있는 필자로서는 사우디의
폭주족들에게 일견 이해가 가기도 한다. 이란에서는 미혼 남녀가 길거리에서 손을
잡고 함께 걸어간다면 당장 종교경찰의 검문을 받게 된다. "결혼을 한 사이냐?"며
집에까지 전화를 걸어 확인을 한 뒤 미혼인 것으로 밝혀지면 풍속문란 사범으로
유치장행이다.

  남녀가 함께 카페나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하거나 차를 마시는 것도
불법이다. 만일 미혼 남녀가 함께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하다가 적발이 되면 경찰에
잡혀가는 것은 물론, 그 업소도 영업정지를 당한다. 그래서 이란의 레스토랑은 모두
서빙을 보는 사람들이 남자다. 집에서도 시장을 보러 나가는 것도 남자들의 몫이다.

  주류의 판매가 엄격히 금지돼 있는 이란에서는 감시를 피하기 위해
밀주를 석유통에 담아서 팔기도 한다. 오히려 이렇게 젊은이들의 공공장소에서의
유흥문화를 꽁꽁 묶어 놓다보니 부작용이 더 커질 수도 있다. 남녀가 데이트를 하면
처음부터 경찰의 눈을 피해 상대방의 아파트에서 만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지루함으로 가득 찬 세상, 종교적인 규제가 없는 ‘자동차 폭주’로라도
풀어야 겠다는 심정이 일견 이해가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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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출처
Newyork Times

 

  <<주말 밤 사우디아라비아의 홍해 근처의 도시 진다의 킹 로드
거리. 사막에서 바닷가로 이어진 도로 주변엔 수백명의 젊은이들이 몰려들어 화려하게
개조한 차량들이 내는 굉음에 열광한다. 수십대의 차량이 꼬리를 물고 다니면서 초고속
스피드를 즐기고, 도로 한 가운데에서 급회전을 하며 코너돌기를 시도한 ‘드리프트’
묘기를 펼쳐댄다.

  이러한 자동차 경주는 때때로 운전자와 구경꾼까지도 목숨을 잃게
하지만 사우디의 젊은이들에게는 가장 인기있는 스포츠이다. 사우디 법원은 2005년
드리프팅을 하다가 차량 충돌사고를 일으켜 3명의 10대 소년을 죽게 한 훼이잘 알
오태비(27) 씨에게 사형선고를 내렸다. 이후 오태비 씨는 태형 1000대, 징역 20년,
평생 운전금지형으로 감형됐다.

  이 사건 이후 사우디 경찰과 법원은 폭주행위 도중 사망사고를 낸
운전자에 대해서는 의도적 살인행위와 똑같은 형벌로 다스려왔다. 그러나 사우디
경찰의 대대적인 단속에도 불구하고 폭주족들은 경찰과 숨바꼭질을 벌이면서 요즘도
주말 밤을 새벽까지 폭주를 즐기며 꼬박 새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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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출처
Newyork Times

 

  뉴욕타임스는 "실직율이 높은 사우디 젊은 세대들에게 한 밤의
폭주는 일종의 좌절의 집단적 비병"이라고 분석했다. 이 신문은 또 사우디의
폭주족 문화가 동성애, 범죄, 이슬람 지하드 운동과도 연계돼왔다고 분석했다. 사우디의
대중가요에는 동성애와 폭주족을 연계한 내용이 많으며, 실제로 어려운 드리프트
묘기에 성공한 사람들은 구경꾼 중에서 가장 예쁘게 생긴 미소년을 자기의 차에 태울
수 있는 권한이 주어지기도 한다는 것.

  또한 수많은 폭주족 젊은이들은 나중에 이슬람 전사가 되는 경우도
많다고 소개했다.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알 카에다를 창설하고 2003년 아프간에서
전투 중 죽은 유세프 알 아이에리가 그 대표적인 인물이다.

  "사우디 젊은이의 폭주족 문화에는 더 이상 사회와 경제가 나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생각이 배후에 자리잡고 있다."

  수도 리야드에서 4년간 인류학을 연구하고 현재 미국 프린스턴대에서
강의하며 ‘사우디의 청년문화’에 관한 책을 집필하고 있는 파스칼 메노레 교수는
이렇게 말한다. 그는 "사우디 폭주족의 대부분은 최근 도시로 이주해 온 젊은
베두인들이다. 그들은 희망이 없는 생활에 자기 파괴적인 행동을 하게 된다"고
말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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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이상 사회는 나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미래에 대한 희망은 없다..

나는 오늘 이 순간을 즐기다가 죽으면 그 뿐.

이러한 폭주족 문화가 젊은이들로 하여금 극단주의적인 ‘알카에다’의 지하드(성전)에 몸을 던지게
하는 한 요인이 됐다?

 

어느 정도 논리적 비약이 있어 보이지만, 가능성이 전혀 없어 보이지는 않다.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왜 극단주의자들이 탄생하는지 한가지 예를 보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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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미술 전시장…카니발

이맘 때쯤이면 신문에는 브라질의 카니발 개막 사진이 실립니다.

카니발하면 공작새 깃털로 화려하게 치장한 육감적인 무용수들의 사진이 전부려는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외신 사진을 하나하나 꼼꼼히 살펴보다 보니 카니발에 대한 고정관념이 깨졌습니다.

직접 가서 봤으면 어떤 오페라나 뮤지컬 보다도 더욱 생생한 현대 무대 미술과 무용수의 퍼포먼스에 감동을 받았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카니발에는 브라질의 삼바 문화 뿐 아니라 각국의 고대문명부터 영화, 서커스, 현대 미술, 정치와 사회이슈, 우주전쟁까지 다양한 동시대의 문화에서 모티브가 퍼포먼스에 담겨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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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한 외계인 조각상 같은 철제구조물 속에 무용수들은 하나의 살아 있는 장식품처럼 녹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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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카락 속에 있는 황금빛 무용수들의 모습이 마치 숨은 그림찾기를 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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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댕의 조각작품 ‘지옥문’처럼 무용수들이 전체 구조물 속에 정교하게 배치돼 있어 마치 살아 있는 미술작품을 보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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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의 ‘태양의 서커스’에도 원통형 철제에 들어가 저렇게 돌아가는 무용수가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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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스타워스’의 한 장면을 방불케하는 퍼레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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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에서 튀어나온 듯한 ‘눈물이 주룩주룩’ 흘리는 해골.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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앗! ‘붉은 악마’가 카니발에?  2002년 월드컵 당시 흔히 볼 수 있었던 한국 응원단을 모티브로 한 것은 아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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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페라 ‘아이다’의 개선행진곡 장면을 연상케하는 장면. 카니발에도 이집트 노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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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파울루=AP] 브라질에서 ‘카니발의 여왕’으로 유명한 비비안 카스트로가 버락 오바미 미국 대통령의 얼굴을 자신의 몸에 그려넣어 다시한번 눈길을 잡는 데 성공했다.

  카스트로는 21일 오전 오른쪽 허벅다리에 미국 대통령의 얼굴을 그려넣은 채 퍼레이드에 참가했다. 룰라 다 실바 브라질 대통령의 얼굴은 왼쪽 다리에 그려넣었다.  카스트로의 배에는 “세일 중”(vendese)이라는 글자를 써 넣었다. 브라질이 미국에 아마존을 파는 것을 뜻하는 메시지라고 그녀는 말했다. 브라질 국민들은 미국이 자원이 풍부한 브라질을 넘보는 것에 대해 두려움을 갖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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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는 뭄바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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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16일 화요일 오후 10시. 여기는 뭄바이입니다.

현지에서 포스팅하기는 처음이네요.

뭄바이에 있는 ”로열 에코텔” 게스트하우스에서 인터넷으로 포스팅합니다.

여기에 오니까 "테러 때문에 왔냐"고 묻는 사람들이 많더군요.

그러나 테러 취재가 아닌, 인도의 방송영상산업에 대해 취재하느라 뭄바이에 왔습니다.

뭄바이는 원래 이름이 봄베이였죠.

봄베이는 인도 영화산업의 메카이고, 영화 촬영스튜디오가 몰려 있는 곳입니다.

영화배우들도 많이 살고 있다고 하더군요.

”봄베이+할리우드”가 ”발리우드”라고 불리게 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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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양을 내려다 보이는 뭄바이 바닷가에는 멋진 타지마할 호텔이 있습니다.

인도의 민족자본가 ”타타”가 영국 식민지 시절에 호텔에 들어갔다가 쫓겨났다는 이유로,

뭄바이에서 가장 전망좋은 곳에 최고급 호텔을 지었던 것입니다.

테러 이후에 타지마할 호텔은 폐쇄됐습니다. 현재 불에 탄 호텔을 보수하는 공사가 한창이더군요.

호텔 주변에는 경찰의 삼엄한 경비 속에 출입금지 줄이 쳐져 있습니다.

12월24일 크리스마스 이브에 다시 오픈을 할 예정이라고 하더군요.

 

뭄바이는 인도 민족자본가들의 메카였고, 인도 민족운동의 근거지입니다.

시내에 보니까 간디가 살았던 곳에 간디 뮤지엄이 있더군요.

타지마할 호텔 앞에 있는 영국 왕을 맞는 ”인도 문” 앞에는 독립영웅이 말을 탄채 노려보고 있는 동상이 서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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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인상적이었던 곳은 이번 테러사건에서 첫 번째 총성이 울렸던 ”레오폴드 카페”였습니다.

영국식민지 시대인 1871년 문을 연 레오폴드 카페는 뭄바이의 명소이자 개방의 상징이었습니다.

하루에도 수백, 수천명의 배낭여행객이 찾는 이 카페에는 평소에는 줄을 서서 기다렸다가 들어가는 곳입니다.

이런 곳이기에 테러범들의 첫 번째 타겟이 됐던 것이지요.

그러나 이 카페는 사건 후 사흘만에 문을 열었습니다.

가보니까 아직도 총탄 자국에 깨진 유리창이 그대로 있더군요.

원래는 길가가 보이는 창문이었는데, 셔터를 내려놨습니다.

안쪽에서만 총탄 자국에 깨진 창문을 볼 수 있었죠.

주인은 이 총탄 맞은 유리창을 갈지 않고 그대로 둘 것이라더군요.

많은 관광객들이 이 창문 앞에서 사진을 찍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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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오폴드 카페의 외부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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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오폴드 카페의 내부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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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식민지 시대 건설된 뭄바이 기차역. 우리의 서울역과 비슷하다. 세계 어디에서건, 식민지배자들은 철도역을

가장 화려하게 장식하고, 건설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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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쿠나 마타타

”No Problem”  ”하쿠나 마타타” ”문제없어~”

 

  아무리 어려운 부탁을 해도 ”No Problem”하고 대답하는 친구가 있다. 설령 자기가 잘 들어주지 못할 부탁인데도 일단 ”노 프라블럼”이다. 또한 해내지 못할 것 같이 버거운 과제도 ”노 프라블럼”하고 생각하기도 한다.

  그러나 나는 좀더 신중하다. 괜히 들어주지도 못할 부탁을 상대방에게 ”문제없다”고 장담하고, 기대하게 끔하는 것이 죄를 짓는 게 아닐까. 그래서 일단 ”힘들다”고 이야기한 다음에, 최대한 노력을 해서 부탁을 들어주려고 하는 편이다. 그렇게 되면 상대방이 기대하지 않다가 더욱 놀라면서 고마워하지 않을까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어쩌면 욕 안먹고 살아가기 위한 처세술에 불과할 뿐이라는 생각이 든다.

  내 아내는 나와 스타일이 완전히 다르다. 누군가 부탁하면 ”응, 해줄께” ”문제없어” 하고 장담부터 한다. 그리고는 부탁받은 사실 조차 까먹고 한참동안 지내는 경우도 많다. 그리고 나중에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해 힘들어하기도 한다.

  그런데, 사람들은 내 아내같은 스타일을 더 좋아한다. 설령, 수많은 장담이 허언이 될 지언정, 어려운 부탁을 할 때 진심으로 들어주면서 ”문제없어”라고 말해주는 사람이 일단은 고마운 것이다. 부탁을 하는 사람도 그 장담이 꼭 100% 이뤄지리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항상 결론은 되는 것과 아닌 것, 50대 50인 것이다.

  그런데 누군가 내 고민을 듣고, ”걱정마, 내가 노력해줄께. 아무 문제없을거야”라고 말로라도 시원하게 말해준다면 나는 큰 위로와 희망을 받을 것이다. 사람들은 결과적으로 내 부탁이 이뤄졌는지보다, 내가 부탁할 때 누군가가 내 말을 진심으로 들어줬는지를 더 기억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아프리카 케냐에서 온 지라니 어린이 합창단이 두번째 내한공연을 하는 데, 주제가 ”하쿠나 마타타”란다. 이 아이들의 해맑은 표정과 노래소리를 듣다보면 정말 ”나는 문제없어”라는 느낌을 갖게 된다.

  

 

 

▲ 영상 취재 : 전승훈 기자

 

 


26일 케냐 지라니 어린이 합창단원이 파리나무십자가합창단처럼 세계적인 합창단을 꿈꾸며 서양 클래식곡과 아프리카 전통곡을 섞은 레퍼토리로 흥겨운 무대를 연출하고 있다. 용인=김재명 기자

  《“잠보!(안녕하세요). 잘 지내셨나요. 우리는 아무런 염려 없어요. 하쿠나마타타(아무 문제없어요)!”

 

  26일 경기 용인시 기흥구에 있는 한 교회의 연습실. 케냐의 지라니 어린이 합창단 아이들이 한국순회공연을 앞두고 영화 ‘라이언 킹’에 나오는 노래인 ‘잠보송’을 부르고 있었다. 》

두번째 내한공연 갖는 케냐 ‘지라니 어린이 합창단’

이들은 ‘젬베’라는 전통북과 ‘가얌바’를 두들기고 흔들며 춤을 추면서 흥겹게 아프리카의 전통민요를 불렀다.

검은 피부에 짧은 머리카락을 곱게 땋은 아이들이 피아노 반주에 맞춰 ‘어메이징 그레이스’ ‘마더 오브 마인’ ‘고요한 밤 거룩한 밤’과 같은 크리스마스 캐럴을 부르자 서양의 어떤 소년합창단 못지않은 천상의 화음이 들려 왔다.

○ 창단 6개월 만에 대통령궁서 공연


아프리카 전통북인 ‘젬베’를 두들기며 ‘잠보송’을 연습하고 있는 어린이.

12월 3일부터 내년 1월 2일까지 한국에서 두 번째 순회공연을 갖는 지라니 합창단원들은 케냐의 나이로비 인근의 고르고초(스와힐리어로 ‘쓰레기’라는 뜻) 지역의 극빈층 아이들로 구성돼 있다. 엄청난 규모의 쓰레기 집하장 주변에는 생계를 잇는 10만 명의 주민들이 살고 있다. 부모 없이 버려진 아이들은 쓰레기 더미 속에서 굶어 죽지 않기 위해 음식물 쓰레기를 주워 먹으며 사는 경우도 많았다.

지라니 합창단은 2006년 12월 굿네이버스의 지원을 받아 바리톤 김재창(52) 씨에 의해 창단됐다. 그는 “아이들에게 인간의 존엄성을 되찾아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김 씨는 아이들에게 가장 먼저 ‘소리 지르는 법’부터 가르쳤다. 아무런 희망이 없는 빈민가의 아이들은 대부분 눈동자가 풀려 있고, 자신 없는 목소리에 동작은 흐느적거렸기 때문이었다.

지라니합창단은 창단 후 빠르게 성장했다. 2007년 6월 케냐 정부수립기념일에 대통령궁에서 공연을 한 것에 이어 지난해 말 첫 해외 공연으로 한국 공연에 이어 올해 6∼8월 미국 뉴욕, 시카고에서도 순회공연을 했다. 83명의 합창단원 중 11명을 제외하고 72명은 출생신고조차 돼 있지 않아 여권을 만드는 데도 몇 달이 걸려야 했다.

합창단 아이들은 무대 경험을 한 뒤 걸음걸이가 당당해지고 눈빛이 살아났다. 의사, 비행사, 축구선수, 음악가와 같은 꿈도 생겼다. 특히 미국 대선에서 아버지가 케냐 출신인 버락 오바마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됐을 때 합창단원들은 모두들 뛸 듯이 기뻐했다고 한다.

셀린 아코트(15) 양은 “케냐에는 많은 어린이가 병에 걸려 죽어가는데 어린이들을 고쳐주는 의사가 되고 싶다”며 “흑인인 오바마가 미국 대통령이 되는 걸 보고 나도 내 꿈을 실현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더욱 커졌다”고 말했다.

 

로렌스(15) 군은 “합창단에 들어오기 전에는 학교가 끝나면 담배를 피우고 마약을 하는 나쁜 친구들과 어울려 지냈다”며 “전에는 아무런 꿈이 없었지만 이제는 파일럿이 되고 싶은 희망이 생겼다”고 말했다.

 

○ 이번 공연 주제는 ‘하쿠나마타타’

 

  지라니 합창단의 이번 한국 공연의 주제는 ‘하쿠나마타타’다. 케냐의 전통어인 스와힐리어로 ‘아무 문제없어요’란 뜻이다. 불황의 여파로 지치고 힘들어 있을 때 슬럼가에서 희망을 키워 온 아이들이 ‘하쿠나마타타’라고 외치는 것이다. 아이들은 26일 크리스마스 캐럴 음반도 녹음한다.

  김 씨는 “‘도, 레, 미’도 몰랐던 아이들에게 합창은 세상을 향해 희망을 외치고, 스스로의 삶을 변화시키는 도구가 됐다”며 “절망한 사람들에게 새로운 도전에의 힘을 주는 검은 천사들의 노래를 지켜봐 달라”고 말했다.

서울 한양대 백남음악관(12월 22일), 경기 성남아트센터 콘서트홀(12월 30일) 등 10개 도시 순회 공연. 02-3461-7200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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