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의 국제기구(1)-뮤에트성의 OEC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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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리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와 유네스코(UNESCO) 등 수많은 국제기구가 본부를 두고 있는 글로벌 도시다. 비록 유럽연합(EU) 본부가 벨기에 브뤼셀에 있지만 파리는 유럽통합의 중심역할을 자부해왔다.

  최근 OECD에서 일하는 선배의 소개로 OECD 본부의 구석구석을 살펴볼 수 있는 기회를 가졌다. OECD건물이 유서깊은 프랑스의 성에 자리잡고 있다는 점도 놀랐고, 2000여 명이 넘는 사무국에 정년을 보장받은 국제공무원 신분으로서의 한국인 직원은 1,2명에 불과하다는 사실에 경악할 수 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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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왕의 애인들의 성(城)에서 세계 경제협력의 관제탑으로

  OECD 본부는 블로뉴숲 인근에 있는 ‘뮤에트성’(Château de la Muette)이다. 블로뉴숲 인근에 있는 뮤에트성은 역대 프랑스 왕들과 깊은 관계를 맺어오던 성이다. ‘뮤에트’라는 이름은 중세시절 프랑스 왕들이 숲에서 사슴사냥을 하던 곳에서 유래했다. 처음엔 왕의 사냥터 숙소였으나 이후 앙리 4세의 부인이자 ‘여왕 마고’로 유명한 마르게리트 드발루아를 위한 작은 성으로 변모했다. 루이 15세는 자신이 총애했던 정부 퐁파두르 후작부인와 뒤바리 백작부인 등 자신의 애인을 즐겁게 하기 위한 성으로도 사용됐다.

  루이 16세는 뮤에트성에서 자신의 젊은 왕비인 마리 앙뜨와네트와 함께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시기를 보냈다. 그 당시는 왕비 뿐 아니라 국민들과와도 허니문 기간이었다. 루이 16세는 왕실세를 폐지했으며, 블로뉴숲을 대중들에게 개방했다. 그는 성에 귀족이나 평민이나 똑같이 받아들였다. 전기 작가는 “왕 만세”라는 외침이 오전 6시부터 해질녘까지 좀처럼 끊어지지 않았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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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성은 2차 세계대전 당시에는
전쟁 지휘소로 사용되다가 프랑스 해방 이후에는 미군이 인수인계했다. 종전 후 미국이 유럽재건을 위한 마셜플랜을 추진하면서 1949년 이 성은 OEEC(유럽경제협의회)의 본부로 사용됐다. OEEC는 미국의 막대한 대유럽 원조금을 배분하기 위한 역할을 담당하던 기구다. OEEC가 1961년 서방 자본주의 산업화 국가들의 경제정책과 사회정책을 조율하는 기구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로 개편되면서 OECD 본부로 사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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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재 뮤에트성 옆에는 현대적인 부속건물이 지어져 대형 회의실과 수많은 크고작은 국제회의실로 사용되고 있다. 그 중 뮤에트성 본관에 있는 유서깊은 ‘로저 오크렌트룸’은 원래 대형연회실이었는데 현재는 OECD 상임대표부 회의가 열리는 방으로 사용되고 있다. 이 방에서는 각국의 장관급 인사들이 참석하는 고위급 회담이 열린다. 이 방은 오크장식과 화려한 타피스트리로 장식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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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제무대에서
다자주의에 약한 한국

 

  OECD는 30개의 회원국들의 대표부와 사무국으로 구성돼 있다. 사무국에는 이사회(회원국의 대사와 OECD사무총장이 참석하는 최고의결기관)와 200여개의 위원회, 경제국 통계국 무역국 등 10여개의 실무팀으로 구성돼 있다. 뮤에트성에 있는 사무국에는 2000명이 넘는 직원들이 근무하고 있다.  

  한국의 국내총생산(GDP)규모는 30개 OECD 회원국 중 9위에 이르고 있으며, 분담금 규모도 9번째이지만, OECD 주관 국제회의에서 한국의 영향력은 미미하다. 특히 OECD 사무국의 정규직에 진출한 한국인은 손가락으로 꼽을 만하다. 그 중 정년을 보장받은 국제공무원 신분은 1,2명에 불과하다. 

  이것은
한국의 OECD 대표부를 비롯한 국제기구에 파견된 인력들이 주로 재경부, 총리실 등
중앙부처 공무원들이기 때문이다. 이들은 대부분 3년 정도 파견임기만 때우고 한국으로
돌아간다. 한국에 돌아가면 개인적으로 ‘국제경력’을 쌓았다고 승승장구할 수 있지만,
실제로 국제기구에서 한국의 국익을 찾는 데는 도움은 되지 않는다. 반면
다른 나라의 OECD사무국 직원들은 국제기구 전문요원으로 선발돼 평생직장으로 일한다.
3년 후면 돌아갈 사람과 수십년간 일해온 다른 나라 사람들이 사무국에서 맞붙는다면
번번히 깨질 수 밖에 없다. 이것이 한국이 OECD에서 별다른 목소리를 낼 수
없는 구조적인 이유가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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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OECD는 WTO나 IMF처럼 ‘구속력’이 아니라 ‘권고’를 할 뿐이다. 하지만 회원들의 의견이 ‘만장일치’로 결정되기 때문에 한 나라가 반대한다면 그 정책은 실현되지 못한다. 다수결로 이뤄지는 국제기구와 달리 이러한 까다로운 규정하에 회의가 이뤄지기 때문에 소수의 회원들로 이뤄진 OECD이지만, 그만큼 큰 영향력을 가지고 있다.

  OECD에 근무하는 관계자는 “각 국의 대사나 장관이 참석하는 국제회의에서는 만장일치로 의견을 조율해내는 의장의 회의진행을 보면 예술적이란 말이 나올 정도”라고 말한다. 수십개의 나라의 대표가 모여 만장일치로 의견을 조율한다는 것은 웬만한 ‘multilateral’(다자적)한 감각이 아니면 할 수 없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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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나라는 이러한 국제관계에서의 ‘다자주의’에 아직 익숙해 있지 않은 상태다. 한-칠레 FTA부터 한-미, 한-EU FTA까지 “한국은 FTA의 역사를 새롭게 쓰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한편, UN이나 WTO, OECD, 6자회담 등 다자주의 협상에서는 주도권을 쥐거나 손해를 보지 않는 협상술이 부족한 느낌이다. 이것은 오랜 중국과의 관계, 분단상황이라는 한반도 특수상황 등 한국의 역사적 경험이 다자주의 보다는 1:1 관계에 익숙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21세기는 멀티의 시대인 만큼, 국제무대에서 한 가지 사건이 1;1의 결말을 내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중국의 부상이 한국에 손해만 입힐 수는 없으며, 동시에 기회이기도 하다. 중동,
남미에서 벌어진 작은 사건이 세계적으로 커다란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시대다. OECD와 같은 국제무대의 다자주의 대화채널에 한국인의 도전이 더욱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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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테고리 : Bonsoir! 샹젤리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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