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에 남아 있는 쇼팽의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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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월30일은 ‘피아노의 시인’으로 불리는 작곡가 쇼팽의 장례식이
열린 날이다. 1849년 쇼팽의 장례식이 열렸던 파리의 마들렌 성당에서는 10월30일
쇼팽의 장례미사 당시 연주됐던 모차르트 ’레퀴엠’을 재현하는 음악회가
열릴 예정이라는 포스터가 붙어 있다. 당시 장례식과 관련해서는 이러한 에피소드가
전해진다.

 

   "마들렌 성당에서 열리게 된 장례식에는 쇼팽의 유언에
따라 모차르트의 ‘레퀴엠’을 연주하기로 했다. 그러나 당시 파리 대주교는 여성
성악가(모차르트 ‘레퀴엠’에서 여성 성악가의 역할은 중요하다)는 성당 관례상
노래를 부를 수 없다고 하여, 장례식은 2주나 연기된다. 이에 쇼팽의 친구이자 팬이었던
드게리 보좌 신부가 대주교를 설득하고, 결국 대주교가 양보해 1849년 10월30일 아침
11시에 장례식이 치러졌다. 검은 색 옷을 입은 군중 30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장례식에는
쇼팽 자신이 지은 ‘장송행진곡’과 ‘전주곡 4번’이 울리고, 모차르트의 ‘레퀴엠’이
연주됐다. 이날 ‘레퀴엠’에는 쇼팽의 오랜 친구이자 폭넓은 음역을 가진 여성 성악가인
폴린느 비아르도가 노래해 쇼팽의 영혼의 안식을 빌었다." (파리시청 홈페이지,
‘쇼팽과 낭만적인 파리 발라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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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리에 있는 성당 중에 유일하게 그리스 신전(파르테논)의 모양을
하고 있는 마들렌 성당. 마들렌 성당은 예수가 돌아가실 때 십자가 밑에서 성모님과
함께 있던 여성이고, 부활도 성모 마리아와 함께 처음 목격한 인물이다. 이 때문에
마들렌 성당 앞에는 늘 꽃으로 장식돼 있다.>

 

  올해  탄생 200주년을 맞은 쇼팽을 추모하는 행사는 올해
고국인 폴란드 뿐 아니라 전 세계 곳곳에서 열리고 있다. 프랑스도 올해를 ‘쇼팽의
해’로 선포하고 각종 기념 음악회와 행사를 벌이고 있다.

  쇼팽은 바르샤바에서 서쪽으로 50km 떨어진 작은 도시 젤라조바 볼라에서
1남3녀 중 둘째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인 니콜라 쇼팽은 프랑스인이었고, 어머니는
폴란드 사람이었다. ‘쇼팽과 낭만적인 파리 발라드’를 소개하는 파리시청 인터넷
사이트는 “쇼팽의 국적이 ‘속지주의’에 따르면 폴란드이지만, ‘속인주의’에
따르면 프랑스인”이라고 말한다.

 

  7세 때 쇼팽은 이미 두 개의 폴로네이즈를 작곡하고, 그의 천재성이
바르샤바에 알려지면서 귀족들의 관심을 끌었다. 11세에는 러시아 황제 알렉산드르
1세 앞에서 연주를 하는 등 일찍이 천재성을 나타내며 모차르트에 비견된다. 그가
20세 되던 해 폴란드는 러시아, 오스트리아-헝가리, 프러시아에 의해 분할됐다. 쇼팽은
1830년 11월2일 주변 사람들의 권유로 음악여행을 목적으로 고국을 떠난다. 1831년
8월 쇼팽은 독일 슈투트가르트에서 폴란드 독립을 위해 1년간 싸워왔던 ‘11월 봉기’가
실패하고, 바르샤바는 러시아에 의해 점령됐다는 비보를 듣는다. 이 때의 처절한
울부짖음과 피아노를 부술 듯 쓰여진 격렬한 분노와 절망을 담은 곳이 바로 ‘혁명
에튀드’(Etudes Op.10, No 12)이다.

  1931년 가을, 스무살의 쇼팽은 파리에 도착한다. 이 당시 파리는
세상의 모든 음악가, 화가, 작가 등 예술가들을 위한 장소였다. 파리에서 쇼팽은
세기의 예술가들을 만나고 그들과 함께 교류하며 전성기를 맞게 된다. 이 때부터
39세로 죽을 때까지 쇼팽은 18년간 고국에 돌아가지 못하고 파리를 무대로 활동했다.
그에게 ‘작곡가 쇼팽’으로서의 제2의 고향은 파리였던 셈이다. 파리 곳곳에는 쇼팽의
체취가 남아 있다. 파리시의 명물인 공공임대 자전거 ‘벨리브’를 타고 쇼팽의 흔적을
뒤쫓아가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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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소공원

  1836년 10월 쇼팽은 리스트의 애인이었던 다구 부인의 살롱에서 처음
조르주 상드를 소개받았다. 당시 쇼팽은 26세, 상드는 32세였다. 상드는 스페인의
마요르카, 프랑스 노앙 등지를 돌며 폐병에 걸린 쇼팽을 어머니처럼 헌신적으로 돌보며
쇼팽의 음악을 살려놓았다. 노앙에서 요양 당시 여름날 저녁 식사가 끝나면 쇼팽은
작곡을 하다가 상드를 위해 즉흥 연주를 했다고 한다. 쇼팽은 건강 때문에 일찍 잤고
상드는 그 때부터 새벽 5시까지 글을 썼다. 상드는 ‘내 생애의 역사’에서 쇼팽의
창작과정에 대해 자세히 기록했다.

  “그의 음악은 찾는 것이 아니라 절로 솟아나오는 것이었다. 그러면서도
그것을 써낼 때는 너무 고심을 했다. 그는 종일 방 안에 갇혀 울기도 하고 걷기도
하고 펜대를 꺾기도 했다. 한 소절을 몇 번이나 고쳐 썼고, 한 페이지를 쓰는 데
6주간이 걸린 적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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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리의 몽소공원에는 피아노를 치는 쇼팽과 그 앞에 누워 있는 조르주
상드의 동상이 서 있다. 쇼팽이 상드와 함께 지냈던 9년간 쇼팽은 폴로네즈, 발라드,
녹턴, 마주르카 등 자신의 대표작을 작곡했다. 쇼팽의 음악은 상드와 굳게 묶여 있었고,
상드와 헤어진 후 쇼팽은 죽음으로 치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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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리 ‘살 플레엘’(Salle Pleyel)

  쇼팽이 파리에 도착할 당시, 파리는 ‘음악의 수도’이기만 한 것이
아니라 또한 ‘피아노 제작자들의 수도’이기도 했다. 당시 적어도 300여 개의 피아노
제작사들이 파리에 정착했으며, 이 가운데 플레이엘(Pleyel), 에라르(Erard), 파프(Pape)
등 최고의 피아노 제작사들이 서로 테크닉을 발전시키며 경쟁을 하고 있었다. 쇼팽은
까미유 플레이엘(Camille pleyel)을 만나게 되고, 1832년 2월25일 ‘플레이엘 살롱’(Salons
Pleyel)에서 연주를 한 계기로 이후 플레이엘 피아노를 꾸준히 사용하게 된다.

  “내가 상태가 좋지 않을 때는(….), 이미 기성 음이 쉽게 발견되는
에라르 피아노를 사용한다. 그러나 영감으로 가득차고, 내 자신의 음을 찾아 낼 수
있을 정도로 충분히 강건한 상태라면, 나에게 플레이엘 피아노가 필요하다”라고
쇼팽은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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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팽이 사용했다는 플레옐 피아노>

 

  아이러니하게도 쇼팽은 많은 대중 앞에서 연주하는 것을 싫어했다.
그는 발자크, 들라크루와, 하이네 등 친구들과 귀부인들 앞에서 즉흥 연주를 즐겼다.
기막힌 피아노 연주 솜씨를 가졌지만 병약했던 쇼팽의 이러한 ‘신비주의 전략’은
귀부인들을 광적인 팬으로 만들었다. 연인이었던 조르주 상드는 그의 서신에서 쇼팽의
이런 성격을 유머스럽게 표현하고 있다.

  “쇼팽은 자신의 연주회에 대해 광고하는 것도, 사람들에게 말하는
것도 싫어하고, 하물며 관중이 있는 것 조차 원하지 않아요. 그래서 저는 피아노도
아예 소리나지 않는 무음 피아노를 사용하자고 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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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쇼팽의 마지막 집 ‘방돔광장 12번지’

   1847년 쇼팽과 상드의 9년간의 세기적인 사랑이 피날레를 맞고,
쇼팽의 건강은 더욱 악화된다. 1849년 그는 방돔 광장 12번지에 있는 햇빛이 충분히
들어오는 남향의 안락한 아파트로 이사한다. 그의 마지막 거처가 된 이 집에서 그는
미완성 작품들을 하나하나 완성시킨 후 마주르카와 녹턴에만 전념한다. 그의 마지막
곡은 폴란드를 그리워하며 작곡한 마주르카 바단조(Mazurka Op.68, No.4)이다. 죽음이
다가오는 병상에서 음악을 듣고 싶어하는 쇼팽에게 한 연주자가 쇼팽이 작곡한 음악을
연주해주겠다고 하자, 그는 “내 것 말고 더 순수한 음악, 내가 존경하는 모차르트의
곡을 쳐주시오”라고 요청했다고 한다.

  1849년 10월17일 새벽 2시경, 쇼팽은 “마토카! 모이아 비엔나 마토카!”(어머니
불쌍한 나의 어머니!)라고 말하며, 어머니의 나라 폴란드의 애달픈 운명과 그리움을
마지막으로 숨을 거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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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파리의 오페라 극장에서 가까운 방돔 광장은 나폴레옹의
아우스테를리츠 전승을 기념하는 높이 44m의 청동색 기둥이 서 있는 곳으로 유명하다.
루이 14세 때 건축가 쥘 아르두앵 망사르(1646~1708)가 설계한 방돔 광장은 향기로운
향수점으로 가득차 있다. 광장을 둘러싼 17세기 건물들은 현재 불가리, 에르메스,
크리스티앙 디오르 등 고급 부티크와 명품 보석 매장들이 차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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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쇼팽이 살던 당시에도 방돔 광장은 고급 주거지였다. 햇빛 잘 드는
곳을 찾아 이곳으로 이사온 쇼팽은 5개월의 투병 끝에 숨을 거둔다. 서른 아홉의
젊은 나이였다. 쇼팽이 운명한 방돔 광장 12번지는 지금 명품 시계 브랜드인 ‘쇼메’의
사무실이 되어 있었다. 1층에는 쇼메의 숍이 있고, 2층은 사무실인데 공개를 하지
않고 있다. 1층과 2층의 사이의 벽에 ‘1810년 2월22일 폴란드에서 태어난 프레데리크
프랑수와 쇼팽이 1849년 10월17일 이 집에서 사망했다’는 명판이 붙어 있다. 건물을
지키는 수위에게 부탁을 하니 집 안의 정원과 계단 일부를 찍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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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폴란드 도서관의 ‘살롱 드 쇼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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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쇼팽의 마지막 거처인 ‘방돔광장 12번지’의 집은 다른 곳에 복원돼
있었다. 세느 강변에 있는 ‘폴란드 도서관(Bibliotheque Polonaise)’의 ‘살롱
드 쇼팽’이다. 이 곳에는 쇼팽이 마지막으로 살던 집 내부에 놓여 있던 피아노와
의자, 집기, 사진, 영세 증명서, 편지 등이 전시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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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쇼팽의 데드 마스크와 손을 석고로 본 뜬 모형, 쇼팽의 금발 머리카락도
유리창 안에 놓여 있어 눈길을 끈다. 쇼팽의 가늘고 기다란 손가락은 금방이라도
건반 위를 거닐 며 아름다운 음악을 들려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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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페르 라셰즈 공동묘지

  마들렌느 성당에서 장례 미사를 마친 후 쇼팽의 운구는 페르 라 쉐즈로
옮겨져 안장됐다. 이 무덤에 매장될 때 쇼팽이 바르샤바를 떠나던 날 친구들이 기념으로
준 폴란드의 한 줌의 흙이 그의 시신 위에 뿌려졌다. 그래서 쇼팽의 유체는 파리의
페르 라쉐즈에 묻혀 있지만, “그는 폴란드 땅 아래 묻혀 있다”고 한다. 유해는
여기에 묻혔으나 쇼팽의 심장은 그의 유언대로 고국에 보내져 바르샤바의 성 십자가
교회에 있는 황금 단지 속에 안치됐다.  AP07DAA1406253D8026.JPG

 

  쇼팽의 무덤에는 쇼팽의 얼굴이 새겨진 메달과 하얀 대리석 뮤즈
조각상으로 꾸며져 있어 화사한 느낌을 준다. 대리석 뮤즈상은 조르주 상드의 딸
솔랑즈의 남편이던 클레상제의 작품이다. 쇼팽의 무덤 앞에는 찬미자들이 갖다 놓는
꽃이 한 시도 떨어지지 않는다. 이 무덤은 사랑하는 연인들끼리의 우편함으로도 이용되어
서로의 연락 메모를 묘비 뒤에 숨겨놓기도 한다. 탄생 200주년을 맞은 올해 쇼팽의
무덤은 폴란드 국기를 상징하는 흰색, 빨간색 장미가 수북히 놓여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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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레 루아얄 아케이드

  팔레 루아얄 아케이드에는 최고의 의복을 재단하고 장신구를 파는
고급 상점들이 있었다. 이 곳에서 쇼팽은 하얀 장갑, 모자 등 필요한 물품들을 구입했는데,
이 상점들은 쇼팽의 신체 사이즈를 지니고 있었다. 쇼팽은 비서인 줄리앙 퐁타나에게
자신이 필요한 품목을 이야기만 하면, 주문한 것들이 만들어져 쇼팽의 집으로 배달됐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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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튈르리 공원

  튈르리 공원은 쇼팽이 즐겨 산책하던 장소 중의 하나였다. 1838년
쇼팽은 루이 필립 1세에게 첫 초청을 받아 연주했으며, 감사의 표시로 왕과 황후의
얼굴이 새겨진 찾잔으로 차를 대접 받았다. 1841년 그가 두 번째로 초청을 받아 연주를
한 후에는 금 100프랑을 사례로 받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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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테고리 : Bonsoir! 샹젤리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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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3) 파리에 남아 있는 쇼팽의 추억

  1. 운영자 says:

    저널로그 운영자입니다. 이 포스트가 동아일보 10월 21일자 A2면 오늘의 동아닷컴 코너에 소개 되었습니다.

  2. 승미 says:

    쇼팽 손, 정말 가늘고 길어 보여요. 넘 예쁜걸요? ^^ 간만에 들러봤는데 읽을 거리가 많아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있어요!! (근무시간인데 ㅋ 나름 ‘해외 문화예술 탐방’으로 자체 판단하고 근무의 연장이라 주장하는 중) 잘 지내고 계시죠? 건강 잘 챙기시구요~ 자주 놀러올께요 ^^

  3. Pingback: registry cleanup progr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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