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솔한 사랑의 읊조림 – 잉거마리

  오디오 전원을 켜고 시디를 넣었다. 1번 플레이어 재생. 방의 조명을 끈다. 패널의 불빛만이 어둠 속에서 파랗게 빛난다.이윽고 한 여자의 목소리가 낡은 스피커를 통해 비어져 나온다. 오래된 포구의 을씨년스러움, 하지만 따뜻하다. 그대로 눌러앉아 막회 한 접시에 소주잔을 비우고 싶다. 오늘 하루쯤이야 어때. 어쨌든 세상은 돌아가잖아?낯선 편안함. 유럽의 노라 존스로 불리는 잉거 마리의 목소리는 우리에게 당혹스러울 정도의 안도감을 준다. 오랜 무명의 세월을 보내고, 불과 2년 만에 노르웨이를 대표하는 재즈 뮤지션으로 성장한 사람. 그래서일까. 그녀의 목소리는 솔직하다. 어쨌든 자신이 겪어 온 인생이기에, 무엇을 노래해도 곧이곧대로 이쪽의 심장에 파고든다. 설사 거짓이라도, 그녀가 노래하면 … 글 더보기

리얼그룹을 '리얼'하게 만나기

  리얼그룹(The Real Group)을 처음 들었을 때 ‘참으로 오만한 이름이로다’ 싶었다. 자신들만이 ‘리얼’이요 다른 그룹들은 ‘언리얼(unreal)’하다는 얘기인가.물론 괜한 딴지일 뿐이다. 이들의 음악을 들으며 행복하지 않을 사람이 있을까. 구름 위에 누워 온 몸과 정신을 이완시킬 수 있게끔 만들어주는 음악이란 쉽게 만날 수 있는 게 아니다. 그런 점에서 이들은 ‘리얼’이다. 이들이 선사하는 행복감은 지극히 ‘리얼’하다.리얼그룹은 다섯 명으로 구성된 혼성 아카펠라 그룹이다(모르는 사람이 있을까). 스웨덴 스톡홀름에 위치한 왕립음악아카데미 동기동창들끼리 모여 리얼그룹을 만든 것이 1984년. 어느새 스물다섯 살이나 먹었지만, 사진에서 보듯 멤버들은 음악만큼이나 나이를 먹지 않았다.이왕 말이 나온 김에 이들이 팀명을 왜 ‘리얼그룹’으로 했는지에 … 글 더보기

바순의 밤은 따뜻했네

  중간 중간 ‘흡!’하고 빨아들이는 들숨조차 음악처럼 들린다.거친 듯, 쉰 듯하면서도 융단처럼 부드럽다. 악보 속의 빽빽한 음표들은 연주자의 호흡에 녹아 회장의 허공을 느릿느릿 떠돈다.지난 해 소노리테 공연 때도 그랬지만, 바수니스트 이지현의 연주는 틀에 박히지 않아 좋다. 격식을 내려놓지만 여전히 우아하다. 아이디어가 곳곳에서 미소를 짓는다. 직접 만나보면 시종 재치가 넘치는 사람일 것만 같다.13일 금호아트홀에서 있었던 이지현씨의 바순 독주회장을 찾았다. ‘오로지 바순!’이란 공연 콘셉트도 좋지만 무엇보다 이지현이란 이름이 반갑다. 서울예고와 한국예술종합학교 음악원을 졸업한 이지현은 독일 데트몰트 국립음대에서 학위를 받았다. 원주시향의 수석연주자로, 앙상블 디아파종과 목관5중주 소노리테 멤버로 활동 중. 한국예종, 서울예고, 건국대, 강릉대 … 글 더보기

'꽃보다 표' 당당한 전업작곡가 강은수

  기사가 나간 이른 아침, 강은수씨로부터 문자가 왔습니다.   기사 깔끔 정확 유연 감사캄사합니다. 내용도 다양하면서 압축되어 있고 재미있어요. 감사드립니다 - 강은수   지면이 부족해 쓸 말을 다 쓰지 못할 땐 눈물이 다 납니다(기자분들은 모두 공감하실 듯). 창작자에 대한 대접이 형편없는 우리나라 현실에서 클래식 전업 작곡가로 당당히 살아가는 강은수씨. 부디 이번 공연에서는 ‘꽃보다 표’로 성공하시길 기원합니다 ^^         “꽃보다 표에요.”“네? 아, 꽃남팬이시군요. 꽃보다 구준표.”“그게 아니고요. 꽃보다 표. 티켓!”강은수(49) 씨의 눈이 안경 너머로 빛난다. 무슨 얘기인지 알 것도 같다.“음악회 표를 사면 나만 손해 보는 거 같죠? 연주자와 친분이 있는데 … 글 더보기

러시아의 전설이 눈을 뜬다-볼쇼이합창단

  러시아를 알고 싶다면 러시아 사전을 구입하기보다 볼쇼이합창단의 노래에 귀를 기울이는 편이 나을지 모른다. 백문이 불여일청인 것이다.쇼스타코비치가 ‘우리나라(러시아) 최고의 합창단’이라 칭송해 마지않은 볼쇼이합창단은 1928년에 창단됐다. 올해로 81주년이니 전통을 앞세우는 어지간한 오케스트라보다 연륜이 깊다. 괜히 ‘전설’이 아닌 것이다.광활한 대지의 울림을 전하는 러시아, 아니 세계 최고의 합창단. 프로코피예프의 오라토리오를 세계 초연한 볼쇼이합창단은 음악사의 한복판에 우뚝 선 합창의 제왕이다.우리들에게 볼쇼이합창단은 뜻 깊은 인연이 있다. 88올림픽 때 ‘구소련 문화사절단’으로 초청돼 첫 내한공연을 가졌다. 당시 국내 음악팬들은 말로만, 음반으로만 듣던 이들의 깊고 풍부한 하모니에 가슴을 녹이며 혀와 귀를 내두르지 않을 수 없었다.5월 17일 볼쇼이합창단이 다시 … 글 더보기

클래식에 물드는 구로의 봄

  구로의 봄이 클래식에 물든다.구로아트밸리예술극장이 5월을 맞아 ‘클래식 4종세트’를 선보인다. 하나같이 놓치기 싫은 ‘중독성’ 강한 공연들이다.5월 12일 화요일에는 이구데스만과 주형기의 ‘클래식 코믹 퍼포먼스’로 4부작의 문을 연다. 타이틀에서 풍기듯 클래식의 엄숙주의에 대한 발칙한 도발이다.연주회가 시작된다. 장엄한 음악이 흐른다. 바늘 떨어지는 소리조차 허용하지 않는, 숨 막히는 적막이 감도는 가운데 느닷없이 휴대폰이 울린다. 드디어 ‘광란’의 공연이 시작되는 것이다.바이올린 주자는 조율하다 잠이 든다. 피아노 연주자가 피아노 앞으로 다가가니 피아노가 잠겨있다. 황당하게도 신용카드를 넣으라고 요구한다. 진공청소기가 바이올린 연주자의 활을 삼켜 버리고, 피아니스트는 뭔가를 먹어가며 피아노를 거꾸로 뒤집은 채 연주한다.자, 여기까지. 더 이상 얘기하는 것은 스포일러의 … 글 더보기

'봄의 궁전' 왕후께서 연회를 베푸시다

  ‘새로움과 새로움이 만나면 놀라움이 됩니다’란 카피와 함께 ‘가야금과 비보이의 캐논 퍼포먼스’로 공연계에 참신한 도전장을 던졌던 숙명가야금연주단이 옛 궁중과 사대부가의 품격 높은 문화를 새롭게 재해석한 ‘봄의 궁전’으로 돌아왔다. ‘왕후, 일곱 부인의 경사를 축하하다’라는 부제가 붙었다.조선의 궁중문화가 오늘날까지 고스란히 이어졌다면, 과연 작금의 왕실 연회장에서는 어떤 음악이 연주될까. ‘봄의 궁전’은 이렇듯 소박하면서도 엉뚱한 질문을 던지며 무대의 막을 연다.옛 조선왕실에서는 특별한 경삿날이면 백성들에게 음악과 춤이 있는 잔치를 베푸는 전통이 있었다. 이를 ‘경수연(慶壽宴)’이라 하니, 곧 나라에 공을 세운 아들을 잘 키운 부모의 회갑, 칠순, 회혼례 등이 해당됐다. 한 마디로 효와 경로의 마음이 넘치는 따뜻하고 … 글 더보기

두드려라! 장고의 숲이 열리리니

  두드려라! 장고의 새로운 세상이 열리리니.한국 전통음악을 대표하는 타악기! 하면 장고다. 합주, 춤, 연희에서의 완급조절, 산조와 민요 등 독주와 노래 반주, 사물놀이와 창작음악의 중심에 우뚝 선 장고.판소리와 아쟁, 타악 연주로 주목받던 장재효는 1994년 여름, 장고의 세계성과 발전 가능성에 주목했다. 이후 국내외 정상급 연주자들과 교류하며 그 가능성을 실험해 왔고 급기야 2001년 일본 토야마 현의 세계뮤직페스티벌과 인연을 맺으며 본격적인 작품 구상에 들어가게 된다.2003년, 5개월 간 30회 이상의 워크숍을 강행하는 등 철두철미한 준비 끝에 장재효는 성공적인 일본 공연을 마쳤고, 2008년에는 독일에서 활동하고 있는 현대무용가 미나코 세키와의 공동작업을 통해 장고와 현대무용의 접합에 성공, 관객들로부터 … 글 더보기

현 위의 슈퍼우먼, 베토벤도 '화들짝'

  베토벤 소나타 전곡…하루에 연주 ‘현 위의 슈퍼우먼’ 떴다베토벤은 일평생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위한 작품으로 30여 곡을 썼다.이 중 ‘소나타’로 분류될 만한 곡은 20곡. 또 이 중에서 제대로 된 작품번호를 달고 세상에 알려진 곡은 10곡이다. 그러니까 베토벤의 바이올린 소나타! 하면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10곡이 있는 것이다.이 10곡의 베토벤 소나타에 상상초월의 도전장을 낸 인물이 있어 화제다. “전곡 연주? 가끔씩 하는 거잖아?” 입이 간지러운 분은 잠시만 참아 주시길. 다음이 중요하다. 전곡을 하. 루. 에 몽땅 연주를 한다. 오후와 저녁으로 나누어 각각 5곡씩. 장장 4시간이 족히 걸리는 대장정이다.도대체 누가 이런, 지나가던 베토벤도 … 글 더보기

우리들이 키신에 미치는 이유는?

  앙코르 10번·커튼콜 38차례그것은 3부작의 공연이었다. 두 시간에 걸친 1·2부의 본 공연. 여기에 38차례의 커튼콜과 10곡의 앙코르가 부어지며 1시간 30여 분짜리 ‘3부 공연’이 이어졌다.다시 1시간 여 걸린 사인회까지 더한다면 4부 구성의 ‘교향적 콘서트’라 해도 무방할 듯하다. 지난 2일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열린 러시아의 피아니스트 예프게니 키신(38)의 독주회 얘기이다. 연주자와 관객이 ‘환각적’극한상태까지 치달았던 이날의 공연장을 찾은 관객들은 음악사의 한 가운데 서 있었다는, 무엇과도 바꾸기 힘든 경험을 했다. 기자 역시 현장에 있었다. 이튿날 국내의 언론들은 이날 밤의 충격을 쉰 목소리로 쏟아냈다. 인터넷 게시판 역시 공연에 대한 팬들의 호평과 찬양으로 평평히 도배됐다.그렇다면 … 글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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