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원철폐령 에도 살아남은 ‘병산서원’

카테고리 : 우리나라 | 작성자 : [뭉게구름]

병산서원(屛山書院)은 임진왜란 때 영의정을 지낸 서애(西厓)
류성룡(柳成龍.1542~1607년)과 그의 셋째 아들 류진(柳袗, 1582∼1635)을
배향한 서원으로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에도
살아 남은 47개 서원 중 하나로 조선시대의 대표적인 건축물입니다.
고려 말 풍산현에 있던 풍산 류씨의 사학(私學)인 풍악서당을
류성룡이 현재의 위치인 경북 안동시 풍천면(豊川面) 병산동(屛山洞)으로 옮겨와 제자들을 길러냈고
그의 사후에 제자들이 존덕사를 세우고 류성룡의 위패를 모셨으며,1863년(철종 14년)
병산이라는 사액을 받아 사액서원으로 승격되었으며 많은 학자를 배출한 곳이다.
서애 선생의 문집을 비롯하여 각종 문헌 1,000여 종 3,000여 책이 소장되어 있다.

병산서원[屛山書院]은 화산(花山)을 주산으로 하여 그 산자락 남쪽에 ‘병산이 있습니다.
‘병산(屛山)은 낙동강변에 병풍[屛]처럼 산(山)이 펼쳐져 있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입니다. 
 ’만대루’에서는 주변경관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으며,
 입교당 에서는 자연과 조화된 병산서원의 미(美)를 더욱 느낄 수 있습니다.
정문인 복례문(復禮門)은
솟을대문인 복례문의 이름은 논어의’극기복례의인(克己復禮爲人)’에서 
“자기를 낮추고 예(禮)로 돌아가는 것이 곧 인(仁)이다”라는 문구에서 따왔습니다.

병산서원의 건물들은 무심 자연 한가운데 들어가 조화를 이루면서,
선조들의 자연관이 잘 드러나 있는 한국 고대 건축물의 백미라고 합니다.
사적 제260호로 지정된 ‘병산서원’은 이런 점에서 매우 뛰어난 건축물이다.

매년 3월 중정(中丁:두 번째 丁日)과 9월 중정에 향사례를 지내고 있다.
서애 선생의 문집을 비롯하여 각종 문헌 1,000여 종 3,000여 책이 소장되어 있다.
소재지/경상북도 안동시 풍천면 병산리 30  /세계문화유산인 하회마을은 화산(花山)을 사이에 두고 ‘병산서원’ 서쪽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개관 시간/하절기(3~10월) 09:00~18:00, 동절기(11~2월) 09:00~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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