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이땅의 사람이 아니였다.

카테고리 : 우리나라 | 작성자 : [뭉게구름]

어떻게 나환자 들의 발에 고름 을 입으로 빨수있을까?
그것은 이땅의 사람으로는 하기 어려운 일일것이다.[손양원 목사]
일제강점하인 1940년 신사참배를 거부하다가 여수경찰서에 구금되었는데,
 8.15광복으로 출옥, 1946년에 목사가 되었다. 
애양원 교회를 지원하여 시무하던 중 1948년 여수 순천사건으로
동인·동신 두 아들을 폭도들에 의해 잃었으나,
 사태 진압 후 가해자들의 구명을 탄원하여 원수를 양자로 삼음으로써 세상을 감복시켰다.
 6·25전쟁이 일어나자, 동료와 신도들의 피난 권유를 거절하고,
행동이 부자유한 나환자들과 교회를 지키다가 공산군에 의해 총살당했다.
그의 일대기인 《사랑의 원자탄》은 영화화까지 되었다. 저서에 《산돌 손양원 목사 설교집》이 있다.

【손양원(孫良源, 1902~1950, 장로교 목사)】경남 함안 출생.
 1910년 아버지와 함께 그리스도교에 입교,
1917년 선교사 맹호은(孟晧恩)에게 세계를 받았다.
1923년 일본 스가모<巢鴨>중학교를 졸업하고 귀국, 1929년 경남성경학교를 졸업,
1934년까지 밀양·울산·부산 등지의 교회에서 전도사로 일하였다.
 다시 신학을 지망, 1938년 평양신학교를 졸업하고 여수의 나병환자들의 수용소인
애양원(愛養園) 교회에 부임하여 나환자들에 대한 구호사업과 전도활동을 시작하다.
손양원목사 순교기념관 동산에 두아들과 같이 뭍혀있다.전남 여수시 율촌면 산돌길 70-62 전화 061-682 -9634 손양원목사 기념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