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마도 곳곳에 서린’조선통신사’

카테고리 : 흥미로운 아시아 | 작성자 : [뭉게구름]

조선 통신사(朝鮮通信使)는 조선이 일본’ 에도 막부’에 파견한 대규모 사절단을
지칭하는 명칭 통신사(通信使)라고도 한다.
임진왜란 이전까지는 회례사(回禮使), 보빙사(報聘使),
경차관(敬差官) 등의 명칭을 사용하였다.

임진왜란 이전의 통신사는 명나라라는 동일한 사대국을 가진
동등 외교 관계의 국가로서 파견하는
외교 사절로, 왜구의 단속 요청, 대장경의 증정 등을 주 임무로 삼았다.
전쟁이 끝난 뒤 조선은 일본과의 외교관계를 끊었으나,
도요토미를 대신하여 들어선 ‘에도 막부’는
쿠가와 이에야스가 쓰시마 번을 통해서 조선과의 국교 재개를 요청해 왔다.
조선은 막부의 사정도 알아보고, 왜란 때 끌려간 포로들을
쇄환하기 위해 일본의 요청을 받아들여 1607년(선조 40년)에 강화를 맺었다.
그에 따라 1607년부터 1624년까지 3회에 걸쳐 ‘사명당 유정’을 비롯한 사절을
회답 겸 쇄환사(回答兼刷還使)라는 이름으로 파견하였는데, 이들의 주 임무는 일본과의 강화와
그 조건 이행의 확인, 일본의 내정 탐색, 조선인 포로 및 유민 송환 등이었다.
그 뒤 조·일 국교는 형식상 조선이 한 단계 높은 위치에서 진행되었다.
일본 사신의 서울 입경은 허락하지 않고 동래의 왜관에서 실무를 보고 돌아가게 하였다.
일본은 조선의 예조참판이나 참의에게 일본 국왕의 친서를 보내와
사신 파견을 요청해 오는 것이 관례였다.
이에 따라 일본은 60여 차에 걸쳐 차왜(差倭 : 일본에서 보내는 사신)를 보냈으나,

위사진2/아래사진/한국전망대/조선국 역관사 순난지비는 서기1703년 2월5일 부산서 출발하여
이곳 대마도로 오던배가 와니우라 에서 침몰했다
선박3척,역관사108명,대마도선원4명,합계112명
죽은 역관사들의 영혼을 위로 하기위해
고국인 한국의 부산이 보이는 언덕위에 서기1991년 3월20일 건립했다.

조선은 1607년부터 1811년에 이르기까지 12회에 걸쳐 일본에 통신사를
파견하여 약 250년간 평화관계를 지속했다.
 대략 4~5백 명의 통신사 일행을 맞이하는 데 1,400여 척의 배와 1만여 명의 인원이
 일본 측에서 동원되고 접대비는 한 번(藩)의 1년 경비를 소비할 정도로 성대하였다.
통신사 행렬이 한양에서 에도까지 왕복하는 데 6개월에서 1년 정도가 소요되었는데,
배로 부산에서 오사카에 이르고, 다음에는 육로로 갔다.
조선 통신사가 일본에 남긴 유산으로는 당인의 춤(唐人誦),조선 가마,
필담창화(筆談唱和)의 시문(詩文) 등을 들 수 있다.
아울러 일본으로부터 고구마,고추,토마토,구리 등이 조선에 전래되었다.

 

2 thoughts on “대마도 곳곳에 서린’조선통신사’

  1. enock kim

    왜왕을 알현하려고 조선통신사가 진상품을 올리려고 왔다고 써있는것은
    아닌가요?

  2. kims21c

    조상의 나라를 능멸한 왜늠들의 죄를 왜왕 8족을 멸하여 갚아도 시원치 않을 것이다….유럽인들은 “스미마센”을 연발하는 일본을 예의바르다고 보는데 이는 착각. 길에서 어깨만 부딪쳐도 끝까지 따라오며 사과하는 것은, 예고없이 뒤통수치거나 복수하는 근성이 배어있어서, 후환이 두려워하여 그러는 것인줄 유럽인이 어찌 알겠는가? 전세계에서 우리나라만 왜늠을 깔보고 비하하는 것은 근본근성을 가장 잘 알기 때문으로 지극히 당연한 것이다. 유럽인은 전쟁시 선전포고를 하지만, 왜늠의 진주만폭격을 보라. 자신의 죄를 부인하는 아베를 보라. 백제가 세운 나라이지만 자신들의 역사를 조작하여 소설역사를 쓰지않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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