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등’은 진주성 전투에서 통신수단으로

카테고리 : 우리나라 | 작성자 : [뭉게구름]

 

진주 남강에 유등을 띄우는 풍습은

1592년 10월 충무공 김시민 장군이3,800명의 적은
군사로 2만의 왜군을 맞아 싸울때

 

[2015,10월1일~13 축제를앞두고 유등 제작에 열중이다][2014년-촉성루에서 바라본 유등 축제 밤에 보아야 더욱 아름답다]

 

성 밖의 지원군과 군사신호로 풍등[風燈]을 올리고 횃불과 함께
남강에 등불을 띄운데서 비롯되었으며,

남강을 건너려는 왜군을 막는 군사전술과 진주성의
병사들이 성 밖의 가족에게
안부를 전하는 통신수단으로 쓰였다는데 기원을 두고있다.

 

[진주시 강남로 325번길 7-1[망경동]유등체험관전화 055-754-8100]

이듬해 전투 때
순절한 7만명의 민,관,군의 애국혼을 기리고

전통 유등놀이를 계승 보전하기 위해 오랜세월
이어져 오던 유등 풍습을

 

1949년 우리나라

지방종합예술제의 효시인 개천예술제부터

유등놀이로 정착시켰고,
2,000년부터 특화하여 진주남강유등 축제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고있다.

 

2011년 진주시 강남동이 ‘희망마을’에 선정되면서

지역주민의 공동체의식이 더욱 성장하여 2012년
9월24일 진주 유등 체험관을 개관하였다.

진주 남강유등 축제로
마을 단위의 안정적 일자리 창출밎 소득에 기여하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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