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강제일교회 성서유물박물관 전시물 소개 – 가나안 통모양 향수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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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02월 14일 평강제일교회 남선교회 주보 오벧에돔 – 삶의지혜

 

설 연휴 부모님 건강 진단하기

 

키가 예전보다 작아 보이면

뼈 이상으로 나타나는 질환을 의심한다. 관절의 연골이 파괴되어 염증이 생기는 퇴행성관절염일 수 있다. 주로 무릎에 발생하고, 부친보다 모친에게서 발생하는 경우가 많다. 퇴행성 척추질환이나 골다공증도 척추를 구부정하게 하여 키를 작게 한다. 부모님이 바로 눕지 못하고 옆으로 새우잠을 자면 이 질환을 의심할 필요가 있다.

 

몸무게가 눈에 띄게 줄어 보이면

6개월 동안 5kg 이상 또는 평소 체중의 약 10% 이상 줄면 다양한 질병이 예상된다. 기존의 당뇨병 등 만성질환이 악화되었거나, 새로운 만성질환의 발병 가능성이 많다. 암의 경우도 정상세포가 써야 할 에너지를 암 덩어리가 빼앗아 가기 때문에 체중이 감소한다.

 

인지기능이 떨어지면

1분 이내에 동물 이름을 아무 거나 10개 이상 대지 못하면 치매를 의심할 필요가 있다. 과일이나 채소 이름으로 바꿔서 게임 하듯 테스트할 수 있다. 그리고 의자에 앉은 상태에서 팔의 힘을 안 쓰고 다리와 허리힘만으로 일어나서 3미터 거리를 왕복할 때 20초 이상 걸리면, 인지기능 장애나 관절염을 의심할 필요가 있다.

 

TV 자막을 군데군데 보지 못하면

망막의 모세혈관이 막힌 당뇨병성망막증일 가능성이 많다. 한쪽 눈을 가리고 바둑판처럼 가로 선과 세로 선이 교차하는 모눈종이를 봤을 때 선이 휘어 보이면 망막의 중심부에 위치한 황반에 문제가 생긴 것이다. 그리고 사물이 뿌옇게 보이고 어두운 실내에서도 눈이 부시다면서 형광등을 잘 켜지 않으면 눈의 수정체가 혼탁해지는 백내장일 수 있다.

 

불안한 걸음걸이를 보이면

차만 타면 어지럽고 멀미가 난다며 힘들어하시는 부모님. 평소 차를 많이 타지 않은 탓에 차의 움직임에 익숙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때는 머리를 똑바로 들고 눈을 감은 자세로 안정을 취하면 증상이 호전된다. 단, 차에서 내려서도 어지러움을 호소하고 걸음걸이가 불안하다면, 귀 이상으로 오는 어지럼증을 의심해 봐야 한다. 노화가 진행되면 몸의 기능이 떨어지는데, 특히 균형을 잡아 주는 전정기관의 기능이 떨어진다. 이는 내이(속귀)에 있는 감각세포와 여러 신경세포들이 60세를 전후로 급격히 감소하기 때문이다. 노인의 어지럼증은 무엇보다 정확한 원인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 귀의 어느 부위에 문제가 있는가에 따라 치료법이 다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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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02월 21일 평강제일교회 남선교회 주보 오벧에돔 – 말씀요약

 

다메섹 도상의 하늘의 빛과 주님의 음성

 

(행9:1-9)

 

서론: 기독교 역사상 가장 위대한 인물 중 하나였던 사도 바울은 평생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삶을 살았고, 그 결과 전 세계에 하나님의 말씀이 전파되게 하는 데 크게 기여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위대한 바울 이전 사울의 모습은 기독교를 가장 심하게 핍박했던 사람 중 하나였습니다.

어떻게 해서 핍박자에서 위대한 전도자로 변할 수 있었는지 그 비결을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본론

 

I대지: 핍박자 사울 – 그것은 빛의 체험이 없는 자의 모습입니다

바울이 되기 전의 사울, 다시 말하면 다메섹 도상에서 빛의 체험과 주님의 음성을 듣는 체험이 있기 전의 사울은 한 마디로 살기가 등등하여 예수 믿는 자들을 잡아 가두는 핍박의 대열에서도 가장 선봉에 섰던 인물입니다. 그는 난 지 8일 만에 할례를 받고, 철저한 유대교 교육을 받은 바리새인 중의 바리새인이었으며, 다소(Tarsus)대학 출신으로서 학문적으로도 뛰어난 실력자였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인간적인 장점들도 그가 신앙의 눈을 뜨지 못했을 때는 오히려 기독교를 핍박하고 하나님을 대적하는 교만의 자리에 서게 하는 원인이 되고 말았습니다.

이처럼 사도 바울이 뛰어난 학문적 실력과 종교적 경건성을 지니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가시채를 뒷발질하듯(행26:14) 오히려 하나님을 향해 대적하게 된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것은 바로 사울의 가슴속에 빛의 체험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묵시와 비전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은 빛의 체험이 없이는 온전히 하나님의 사람이 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위한 그릇이 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참성도에게는 꿈이 있어야 합니다.

 

II대지: 참성도는 공의에 입각한 꿈을 가져야 합니다

잠29:18에 “묵시가 없으면 백성이 방자히 행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묵시’란 말은 다른 말로 하면 ‘꿈’ 또는 ‘비전’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인생을 크게 ‘꿈이 있는 인생’과 ‘꿈이 없이, 되는 대로 살아가는 인생’으로 구별하고 있습니다.

출애굽 시 모든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약속대로 가나안 땅에 들어가고자 하는 ‘꿈’을 가졌지만, 그 꿈을 실현한 사람은 여호수아와 갈렙 두 사람뿐입니다. 이들 두 사람만이 하나님의 공의에 입각한 꿈을 꾸고 그것을 이루기 위해서 모든 어려운 난관을 극복하고 드디어 성취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역사의 역대 위인들의 생애를 봐도, 그들의 가슴속에는 남이 알지 못하는 눈물겨운 고생이 있었지만, 먹지 못하고 입지 못하는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말씀을 품고 기도하는 가운데 위대한 뜻을 품었기 때문에 결국에는 잘되었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 또한 이들처럼 신앙의 꿈을 가져야 합니다. 신앙의 꿈을 가진 사람은 현실의 고통과 어려움을 부끄러워하지 않습니다. 그들에게는 현실보다 미래가 더욱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요엘 선지자는 “성령이 임한 결과 늙은이는 꿈을 꾸며 젊은이는 이상(異像)을 볼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욜2:28). 여기서 ‘꿈을 꾼다’는 말은 ‘이상(異像)을 본다’는 말이며 ‘이상(異像)을 본다’는 말은 ‘비전을 품는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의를 알지 못하고 자기 의를 위해 열심을 내었던 사울의 가슴속에는 이처럼 신앙적인 꿈, 공의에 입각한 꿈이 없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강권적인 은혜의 역사로 다메섹 도상에서 빛의 조명을 통해 그에게 신령한 비전, 꿈을 체험하게 하셨던 것입니다.

 

III대지: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자아를 발견했습니다

다메섹 도상에서 빛으로 찾아와 주신 하나님. 그 빛의 조명을 받은 사울은 그 때에야 비로소 자기 자신을 알기 시작했습니다. 과거 자신의 욕심과 욕망의 꿈에 눈이 먼 눈에서 비늘이 벗겨지고서야 사울은 진정한 자아를 발견했습니다.

이 빛 안에서 진정한 자아를 발견했던 사도 바울은 이제 과거의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으로써(빌3:8) 그리스도 안에서의 새로운 삶을 출발하고 있습니다. 그는 이제 자신을 가리켜 “만삭되지 못하여 난 자 같은 내게도”(고전15:8)라고 고백함으로써 겸손의 극치를 보여 주고 있습니다. 또한 엡3:8에서는 “모든 성도 중에 지극히 작은 자보다 더 작은 나”라고 하였고, 딤전1:15에서는 자신을 가리켜 “죄인 중에 괴수”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사도 바울은 다메섹 도상에서의 빛의 체험이 있은 후에 주 안에서 새롭게 자아를 발견하고 겸손한 고백을 하였을 뿐 아니라, 이제는 주님을 위해 평생 동안 자신을 돌보지 않고 온갖 핍박과 박해를 이겨 내며 헌신했던 충성된 일꾼이었습니다(고후11:23-27). 그래서 바울의 생애 마지막에 남은 것은 다 떨어진 외투 하나와 낡은 성경책뿐입니다. 그에게 훈장이 있다면 온갖 오해와 핍박으로 입은 상처입니다.

하지만 바울은 다메섹 도상에서의 빛의 체험과 이를 통한 신령한 꿈을 간직하고 있었기 때문에 매사에 감사하며 충성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결론: 자기에게 주어진 모든 사명의 길을 완주한 사도 바울은 이제 자기 앞길에 남은 의의 면류관을 소망하며, 자기에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 그 면류관이 주어진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딤후4:7-8). 우리 또한 사도 바울처럼 하나님의 영광의 빛에 생포돼서 신령한 꿈을 품고, 이를 이루기 위해 달려가는 가운데 마침내 의의 면류관을 다 받는 축복된 역사가 있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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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02월 21일 평강제일교회 남선교회 주보 오벧에돔 – 삶의지혜

 

좋은 채소는 좋은 토양에서

 

사람의 몸을 구성하고 있는 원소는 약 54종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 중에서 산소(65%), 탄소(18%), 수소(10%), 질소(3%)를 제외한 나머지 50여 종의 원소는 모두 미네랄(무기질)입니다. 이 미네랄은 무게로 볼 때 체중의 20분의 1 정도인 3㎏을 차지하고 있으며, 신체 구성 성분의 5%에 불과합니다. 그리고 인체를 구성하는 미네랄 중에서 7가지(칼슘, 인, 칼륨, 유황, 나트륨, 마그네슘, 염소)를 제외한 나머지 43종이 차지하는 비율은 불과 전체 원소의 0.04%밖에 되지 않지만, 이 미량미네랄이 수행하는 역할은 신비스러울 정도로 다양합니다.

 

이 미네랄은 대부분의 비타민과 함께 우리 몸에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모두 외부에서 공급받지 않으면 안 됩니다. 즉 식품에서 섭취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이 소중한 미네랄을 아주 풍부하게 함유하고 있는 것이 채소입니다. 그런데 ‘채소 속에 어느 정도의 영양소를 함유하고 있는가’ 하는 문제는 ‘그 식물이 자라나는 토양 속에 어떤 종류의 성분이 함유되어 있는가’에 관계가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토양의 많은 광물질 속에 포함되어 있는 미네랄이 물에 녹아 있는 것을 식물이 뿌리를 통해 흡수하게 되는 것입니다.

 

흔히 “생수를 마시면 좋다”고 하는 이유는 토양 속에 온갖 광물질이 함유되어 풍부한 미네랄이 녹아 있기 때문입니다. 각종 미네랄이 풍부하게 함유된 물을 마시고 사는 지역에서는 암이나 심장병 등으로 죽는 사람이 적다는 사실이 보고 된 바 있습니다. 산골짜기에 위치한 장수촌에서 마시는 생수가 모두 미네랄이 풍부한 물이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유의해야 할 것은 토양 속의 광물질 성분이 각 지역마다 다르다는 점입니다. 토양 속에 미네랄이 풍부하지 못한 지역에서 자란 식물은 미네랄 성분이 적습니다. 다시 말하면, 칼슘, 철, 아연, 크롬, 셀레늄 등 건강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미네랄들은 다 원소이므로 식물체내에서는 합성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토양에서 부족하면 자연히 식품(식물)에서도 부족하게 되는 것입니다.

 

또 재배식물을 계속 생산해 내는 토양은 식물이 원하는 양분이 고갈되어 가고 있는 죽은 땅입니다. 그래서 유기농법에서는 객토를 하고 퇴비를 넣고 해서 토양을 보강합니다. 토양에서 흡수한 식물의 양분은 인간들에게 긴요한 식품으로 환원시켜 주고 있으므로, 건강한 토양에서 자라는 식물일수록 풍부한 영양소를 제공해 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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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02월 21일 평강제일교회 남선교회 주보 오벧에돔 – 컬럼

 

절호의 기회(a golden opportunity)

 

세월을 아끼라”는 말씀이 성경에 두 번 반복됩니다(엡5:16, 골4:5). 사도 바울이 에베소와 골로새 교회 성도들을 권면하면서 하나님의 뜻을 위한 시간 관리를 강조하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이 말씀은 “값을 주고 기회를 사라”는 뜻도 있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참고로, [공동번역]성경은 본문을 “주어진 기회를 잘 살리십시오.”라고 표현합니다. 여기서 ‘기회’는 우리가 흔히 쓰는 찬스(chance)가 아닙니다. chance(운, 우연)는 ‘떨어지다’라는 의미인 라틴어 cadere에서 유래했습니다. 떨어지는 것은 ‘좋은 것’일 수도 있지만 ‘위험’일 수도 있는 것입니다.

 

영어성경(NIV)은 본문의 ‘기회’를 opportunity로 표현합니다. 이 말은 항상 ‘좋은 기회’만을 의미합니다. 찬스(chance)처럼 ‘우연한 기회’가 아니라 ‘땀과 눈물로 인내하여 얻는 기회’를 말합니다. 기회(chance)는 인생을 장밋빛으로 바꿀 수 있지만, 기회(opportunity)반드시 그렇게 만듭니다.

 

기회(opportunity)는 라틴어 ‘옵 포르투’(ob portu)에서 유래했습니다. 이 말은 ‘항구에 입항하려는 배가 기다린 끝에 밀물을 만난 순간’이라고 합니다. 이 기회를 놓치게 되면 한참 동안 다른 밀물을 기다려야 합니다. 따라서 기회(opportunity)에는 ‘세월을 아낀다’라는 의미가 자연스럽게 포함되어 있습니다.

 

셰익스피어도 기회(opportunity)의 의미를 배경으로 이렇게 썼습니다. “인간의 삶에는 간조와 만조가 있소. 만조의 물결을 타면 큰 행운으로 이어질 수 있지만, 놓치면 삶의 항해가 얕은 여울에 빠져 비극으로 점철될 것이오. 대해를 향해 나아가려면 지금 밀려오는 만조의 물결을 붙잡아야만 하오.”(줄리어스 시저 4막 3장)

 

지금까지 ‘기회’의 의미를 살펴본 이유는, 평강의 권속들이 현재 영적 기회(opportunity)인 말씀의 만조를 만나고 있기 때문입니다. 박윤식 목사님께서 저술하신 [구속사시리즈]를 통해 하나님의 말씀이 만조를 이루고, 그 물결이 우리 앞에서 출렁이며 동서남북 사방을 덮고 있습니다. 지금은 그 만조의 물결에 삶의 항해를 맡길 절호의 기회(a golden opportunity)입니다.

 

유대 격언에 “기회가 있었음에도 선을 행하지 않는 것은 악을 행하는 것이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기회를 놓친 결과에 대한 교훈입니다. 평강의 권속들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만조를 이루고 있는 물결 앞에서 결코 주저할 수 없습니다. 민첩하게 돛을 높이 올려 삶의 항로를 그 물결 위에 올려놓아야 합니다. 그러면 성령의 바람이 우리의 삶을 소원의 항구로 안내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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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02월 21일 평강제일교회 남선교회 주보 오벧에돔 – 기고

 

참 예배를 드리는 현장들

 

차마 소리 낼 수 없는 예배 : 북한의 지하교회 성도들이 기도회를 갖고 있을 때다. 성경이나 찬송가가 없기 때문에 종이쪽지에 성경구절을 적어 돌려 가며 읽고 입만 벙긋벙긋하면서 찬송을 부르고 있었다. 어느 날 노동당 반장이 들어오는 줄도 모른 채 소리 없이 성경을 읽고 기도하며 찬송을 불렀다. 반장이 다가와 소리쳤다. “동무들! 무엇하고 있는 거요?”

 

그 때 한 대담한 여공 성도가 “우리는 지금 독보회(공산당 정책을 연구하는 모임)를 하고 있소. 동무도 같이 앉아서 안 하시려오?”라고 했다. 반장은 한참 서성거리다가 “동무들이나 많이 하쇼” 말하고는 가 버렸다. 그 순간 이들은 반장의 눈을 어둡게 하여 지켜 주신 하나님께 눈물로 감사했다.

 

그들은 때로는 눈을 뜨고 기도 드리기도 한다는 것이다. 이토록 생명을 걸고 드리는 성도들의 예배와, 많은 교인이 모였으나 마음은 세상에 가 있는 형식적인 예배가 있다면 하나님은 과연 어느 것을 기쁘게 받으시겠는가? 우리는 자유롭게 하나님을 경배하고 찬양하는데도 이를 소홀히 한다면, 분명히 그 때를 그리워하는 날이 올 것이다.

 

마지막 예배라고 생각하며 : 소련 공산치하에서 벗어난 러시아의 어느 교회에서 있었던 일이다. 주일예배가 3시간 동안 진행되었다. 그러나 성도들은 자리에서 한 명도 이탈하지 않았고 지루한 기색도 없었다. 함께 예배드린 미국 목사가 놀라서 묻자 이렇게 대답했다.

 

몇 년 전만 해도 신앙공동체로서 함께 모여 예배를 드리는 게 허용되지 않았고, 발각되면 모두 감옥에 들어갔지요. 지금 공개적으로 예배를 드릴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너무 행복해요. 그리고 어떤 앞날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지 장담할 수 없기 때문에, 주일마다 이렇게 자유롭게 예배드릴 수 있는 마지막 날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예배를 중단하고 싶은 마음이 없는 겁니다.”

 

매순간을 예배로 이어 가는 삶 : 18세기 프랑스 성직자인 장 피에르는 ‘매순간을 예배로’ 사는 태도가 거룩함에 이르는 지름길이란 사실을 깨달았다. 그는 “일분일초마다 하나님 나라가 들어 있고 하늘의 양식을 내포하고 있으므로, ‘하찮은 순간’이란 존재하지 않는다”라고 강조한다.

 

그리고 ‘거룩’과 ‘세속’을 구분하지 말아야 한다고 가르친다. “거룩한 일인지 묻지 말고, 거기에 담긴 하나님의 손길만을 찾으라.”고 한다. 그리고 ‘시간’ 자체를 ‘역사’라고 평가한다. ‘시간’은 ‘하나님의 역사(役事)를 기록하는 역사(歷史)’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주님이 은혜를 베푸시는 자리는 지금 서 있는 바로 그 곳이라는 사실을 일깨우며 ‘매순간의 예배’를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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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02월 14일 평강제일교회 주일 예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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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강제일교회 성서유물박물관 전시물 소개 – 목이 긴 작은 물항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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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02월 07일 평강제일교회 주일 예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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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02월 14일 평강제일교회 남선교회 주보 오벧에돔 – 말씀요약

 

예수님만 바라보고 믿고 살자

 

(롬14:5-12, 고전2:1-5, 히12:2)

 

서론: 살아 계신 하나님은 인격적인 하나님입니다. 새로운 2000년도는 살아 계셔서 말씀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며 사는 한 해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이것은 사도 바울이 성령에 충만하여 로마에 있는 모든 신자를 향해서 전해 주신 성령의 음성이요 하나님의 간절한 바람이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롬14:6이나 8절 말씀과 같이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는” 한 해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이는 우리의 모든 삶의 목적과 중심이 주 예수와 일치해야 함을 뜻합니다.

 

본론

 

I대지: 생사의 목적으로서의 예수 그리스도

세상에 살고 있는 모든 시대와 모든 장소에서 그리스도인들은 필연적으로 예수님께 속하여 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필연적으로 예수에게서 출생했고, 예수 안에서 살아야 하며, 예수 안에서 먹고 마시고 입으며, 죽음까지도 예수 안에서 맞이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야말로 우리에게 필연적인 주(主)이십니다. 우리 자신들은 절대 목적이 될 수 없습니다. 오직 예수님만이 만왕의 왕이며 우리의 목적이신 것입니다.

 

그러면 왜 예수님께서 우리의 생사의 목적이 되실까요?

 

1) 이미 우리는 주의 것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롬14:8에 보면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대로, 예수님은 우리의 삶과 죽음을 처리하시고 인도하시는 분이며(계5:9), 우리의 금세와 내세까지도 십자가를 통해 다 해결하시는 가운데 당신의 완전한 소유로 삼으셨습니다. 그러므로 갈2:20 말씀과 같이 “우리가 사는 것은 예수를 믿는 믿음”으로 사는 것입니다.

 

2) 예수님만이 부활의 주이시기 때문입니다.

롬14:9 말씀에서 “그리스도께서 죽었다가 다시살으셨으니 곧 죽은 자와 산 자의 주가 되려 하심이라”라는 내용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 주님께서는 우리의 죽음을 완전히 해결하셨습니다. 사망의 권세를 깨뜨리고 영광의 승리의 부활을 하셨기 때문에 예수님만이 우리의 삶의 목적이 되십니다.

 

나라 안팎으로 얼마나 많은 소리가 있습니까? 그러나 세상의 소리는 전부 죽음의 소리요,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걸어가는 괴로움과 한숨의 소리입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에서만 참평안과 생명의 소리가 들려 오고 있습니다. 그분만이 부활의 주이시므로 불가불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이 되셨습니다(엡1:21).

 

3) 예수님만이 심판의 주체이시기 때문입니다.

롬14:10-11을 볼 때 “형제를 함부로 판단하지 말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모든 인류가 다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무릎을 꿇을 날이 오기 때문입니다(고후5:10).

 

그러므로 우리는 형제를 비판하거나 판단하기 전에 그분을 위해서 기도해 주고 원수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대할 뿐입니다. 오직 예수님만이 모든 인류를 심판하실 주체이신 분입니다.

 

II대지: 생사의 수단으로서의 예수 그리스도

예수님이 우리의 삶의 목적이라면, 그 목적을 성취하기 위한 수단으로서 성도들의 행동 강령은 오직 예수 중심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한 삶은 과연 어떠한 삶을 가리키는 것일까요?

 

1) 예수 그리스도만을 믿는 삶을 뜻합니다.

요6:29에 예수께서 “하나님의 보내신 자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니라”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살아가야 할 뿐 아니라, 우리의 길과 진리와 생명이신 예수, 나아가, 부활하신 예수, 구원이신 예수, 영생이신 예수를 믿어야 됩니다.

 

2) 예수를 위해 환난과 고난을 감수하는 삶을 말합니다.

마5:10-12에 예수께서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하셨습니다. 예수를 위한 핍박은 죄인인 우리에게 영예요 자랑이며 축복이 되는 것입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예수님의 이름을 위하여 능욕 받는 일에 합당한 자로 여기심을 기뻐할 정도로 예수를 위해 받는 환난과 고난을 감당했습니다(행5:41).

 

3) 예수를 위해서 자기 십자가를 지는 삶입니다.

마10:39에 예수께서 “자기 목숨을 얻는 자는 잃을 것이요 나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잃는 자는 얻으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사람은 예수님 때문에 부모와 처자와 친구까지도 빼앗김을 당하고 고난을 당하지만, 금세와 내세의 축복이 약속된 자들입니다(막10:29-30).

 

4) 예수의 이름을 시인하는 삶입니다.

마10:32에 예수께서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시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저를 시인할 것이요”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께서 ‘나의 삶의 주체’가 되신 사람은 어떠한 위협에도 굴하지 않고 아리마대 요셉과 같이 담대하고 당당하게 주님의 이름을 시인하는 삶을 살 수가 있는 것입니다.

 

5) 주님의 이름을 나의 전부로 삼는 삶입니다.

예수의 이름만이 세계를 제압할 수 있고, 예수의 이름만이 세계를 걸머지고 하나님 앞으로 힘차게 달려갈 수 있기 때문에, 예수의 이름은 기적을 울리며 전 세계를 싣고 달리고도 남음이 있는 기차와도 같습니다.

 

결론: 21세기 새로운 천년에는, 시대를 분별하는 지혜를 통해 역사의 흐름을 읽는 가운데, 교회의 갈 길과 할 일을 분명히 깨달아 감당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 성경을 보는 가운데 말씀대로 살아야 합니다. 기도로 무장하는 가운데 주의 날을 예비해야 합니다.

 

그것은 회개와 각성을 통해서만 이루어집니다. 그래서 하나님 중심, 말씀 중심, 교회 중심의 삶을 통해 21세기를 대처하는 슬기로운 성도님들의 삶이되기를 바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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