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교회를 망치는 악의적인 비방은 사라져야 한다
[2011-03-12
11:15:07]
박윤식 목사의 구속사 시리즈가 한국 교계뿐만
아니라 전세계적으로 신선한 충격을 주고 있다.
그의 책은 오직
성경중심의 해석과 구속사적인 해석으로 많은 사람들을 예수 그리스도와 성경 앞으로 인도하고 있다.
그의 책에 추천사와
서평을 쓴 분들은 자신들의 신앙 양심과 목숨과도 같은 학자로서의 명예와 학문성을 걸고 글을 쓴 것이다.
그들의 찬사는 이
책이 얼마나 하나님의 역사에 큰 일을 하고 있는 지를 대변해 준다.
그러나 최근 한창덕
목사는 박윤식 목사의 책에 대하여 건전한 비판이 아닌 악의적인 비방과 인신공격까지 불사하고 있다.
이것은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를 가로막는 처사에 불과하며 성도들의 눈을 가려서 구속사 시리즈를 읽지 못하게 하려는 의도이다.
이에 본 지에서는
그의 글에 나타난 문제점들과 진위 여부를 살펴보고자 한다.
1.
반구속사적이라는
견해에 대하여
한창덕 목사는 구속사 시리즈가 반구속적인
책이라고 주장한다.
그는 구속사 시리즈는
성경의 인물들의 좋은 점만을 부각시킴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고 있기 때문에 반구속사적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구속사
시리즈에는 성경의 인물들의 좋은 점뿐만 아니라 부정적인 모습도 여러 곳에서 기술하고 있으며,
거기에 그치지 않고
하나님의 은혜와 영광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에게로 연결시키고 있다.
이러한 내용이 엄연히
책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없다고 말한 한창덕
목사는 책을 제대로 읽지 않고 비방한 것이 분명하다.
구속사 시리즈를 편견없이 제대로 읽어본
사람이면 누구나 그 내용이 너무도 구속사적인 책이라는데 동의하게 될 것이다.
(1)
성경의
인물들의 부정적인 모습에 대한 기술
구속사 시리즈에는 이러한 경우가 여러 곳에
나오지만 그 중에 대표적인 케이스만 뽑아보면 다음과 같다.
‘그러나 여호와께 묻지 않은
여호수아는,
위장하고 찾아온
기브온 족속에게 속아 화친 조약을 맺는 큰 실수를 범하게 되었습니다‘(창세기의 족보,
32페이지).
‘데라의 신앙이란 것은 조상의 신앙을 자랑할
뿐,
정작 자신의 조상이
물려준 신앙을 팔아먹고,
우상숭배에 깊이 빠져
신앙의 뿌리까지 완전히 흔들리는 수준이되고 말았습니다(수 24:2)’(창세기의 족보,
236-237페이지)
‘그러나 이러한 약속을 받고
1년도 채 지나기 전에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말씀보다 부인 사라의 말을 듣고,
하갈을 첩으로 취하는
중대한 실수를 범하였습니다(창16:2).
이 일로 인하여 후에
아브라함의 가정은 큰 불화를 겪어야만 했습니다.’(잊어버렸던 만남,
104페이지)
‘횃불 언약을 체결하기 직전에도 아브라함은
다메섹 엘리에셀을 자신의 후사로 삼으려는 어리석은 생각을 한 적이 있습니다(창15:3).
하나님의 뜻을
인간적인 방법으로 성취하려 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하나님의 방법을 통해서만 이루어지며,
결코 인간적인
방법으로는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사55:8-9)’(잊어버렸던 만남 105페이지)
‘다윗은 이기적인 마음으로 거짓말을 한
것입니다.
…. 이처럼
다윗의 거짓말은 무고한 사람들의 피를 많이 흘리게 하는 빌미가 되고 말았습니다‘(언약의 등불,
315페이지)
‘다윗은 아침도 아니고 저녁 때에 침상에서
일어나 한가하게 왕궁 지붕 위를 거닐 정도로(삼하 11:2上),
영적으로 나태한
상태에 빠져 있었습니다.
이처럼 영적인 나태와
게으름은 범죄의 통로가 되고 말았습니다(잠 19:15)’(언약의 등불,
356페이지)
‘그러나 솔로몬은 성전을 짓고 나라가
부강해지자 이방의 많은 여인들을 처첩으로 두면서 타락하기 시작하였고(왕상 11:1-3),
이들은 솔로몬으로
하여금 마음을 돌이켜 다른 신을 섬기며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를 떠나게 하였습니다(왕상 11:3-4).
이에 여호와께서
저에게 진노하시고 거듭 경고하셨지만 솔로몬은 회개하지 않았습니다(왕상 11:9-11).
결국 솔로몬의 범죄로
말미암아 솔로몬 사후에 나라는 두 개로 분열되었습니다.
솔로몬의 범죄는 국가
분열의 직접적인 원인이 되었습니다.’(신비롭고 오묘한 섭리,
58페이지)
‘그러나 르호보암은 백성들의 고충을 헤아리지
않고,
도리어 백성과
장로들을 무시하고 하찮게 생각함으로써 결국 나라를 분열시키고 말았습니다.’(신비롭고 오묘한 섭리,
145페이지)
‘여호아하스는 3개월간의 짧은 통치를 하면서 그 열조의 모든
행위대로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였습니다(왕하 23:32)’(영원한 언약의 약속,
214페이지)
‘여호아하스의 악행에 대하여 성경에는 자세히
기록하고 있지 않으나,
그 모든 것을
함축하여 "여호아하스가 그 모든 열조의 모든 행위대로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였더니"(왕하 23:32)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3개월이라는 짧은
통치 기간 중에 열조들이 행했던 모든 악을 행함으로써 나라의 앞날을 어둡게 만들었던 것입니다.’(영원한 언약의 약속,
224페이지)
(2)
구속사
시리즈에는 성경의 인물들의 신앙을 하나님의 은혜와 영광,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에게 연결시키는 곳이 여러 곳에 등장하고 있다.
한창덕 목사는 구속사 시리즈는 예수
그리스도와 연결되지 않고 있다는 식으로 말하고 있으나,
구속사 시리즈에는
성경의 인물들을 예수 하나님의 은혜와 영광과 연결시키며 나아가 예수 그리스도와 연결시키는 내용이 여러 곳에서 기술하고 있다.
이렇게 명백한 기록이
엄청나게 많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것을 없는 것처럼 말하는 것은 책을 폄하시키는 비양심적 태도일 뿐이다.
‘야렛의 손자 므두셀라는 할아버지 야렛보다
7년을 더 살아 최장수 인물로
꼽힙니다(969세).
그것은 경건한
자손들이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특별한 혜택이요,
이 땅에서 누린
최고의 축복이었습니다.’(창세기의 족보,
150페이지)
‘이렇게 게난은 그가 받은 은혜를 기념하여
그의 아들의 이름을 "마할랄렐"이라고 지음으로써 하나님께 영광
돌리고,
많은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살아 계심을 증거하고자 했을 것입니다.
은혜를 받아서 그
은혜를 맛보고 체험한 사람은 은혜를 주신 하나님을 증거하지 않을 수 없고 찬양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행 9:22,
18:5, 28, 요
1:41)’(창세기의 족보 148페이지)
‘하나님께서 라헬을 생각하여 주심으로
7년 동안 닫혀 있던 라헬의 태가 열리는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사무엘의 어머니
한나는 하나님께서 생각하여 주심으로 세 아들과 두 딸을 낳았습니다.’(잊어버렸던 만남,
136페이지)
‘당시 세상 사람들은 기근이 점점 심해질수록
요셉에게로 가야만 죽지 않고 살 수 있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오직
예수님만이 기근 속에서 세상 사람들을 구원할 유일한 분이며(행4:12),
인류가 걸어가야 할
유일한 길이요,
세상의 생명을 위한
유일한 양식이십니다(요14:6,
6:51). 기근
때에 요셉에게로 나와야만 살 수 있었듯이(창41:56-57),
세상 끝날에도
"오직
예수"께로 더욱더
가까이 나와야만 살 수 있습니다.’(잊어버렸던 만남,
380페이지)
‘에훗의 통치 기간 80년은 사사 시대 중에서 가장 오랜 평화의
기간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은 에훗의
통치 속에서 자유와 평화를 마음껏 누리며 살 수 있었으니 모두가 하나님의 각별하신 은혜였습니다.’(언약의 등불,
225페이지)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연약한 인간 아브라함
때문에 땅의 모든 족속이 복을 받는다고 말씀하신 것이 아니라,
아브라함 안에서
아브라함의 자손으로 오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땅의 모든 족속이 복을 받는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언약의 등불,
58페이지)
"야곱은 형 에서가 가졌던 장자권과 축복을
사모하였습니다.
그리하여 그 이름대로
형이 가졌던 장자의 자리에 ‘대신 들어앉은 자‘가 되었습니다.
야곱이 오직 하나뿐인
장자권과 그 축복에 온 정신 온 마음이 집중되어 있었듯이 우리도 예수 그리스도와 그분이 주시는 영생과 천국의 기업을
소망하면서,
거기에 마음을
집중하고 정성을 다하고 부단한 노력과 힘을 기울여야 합니다(마 11:12)"(언약의 등불,
143페이지).
"이렇게 웃시야는 나라를 강성하게 만들어 남
유다에서 유례없는 번영을 이루었습니다.
그 이유를 역대하
26:15에서는 ‘기이한 도우심을 얻어
강성하여짐이더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기
‘기이한 …
얻어‘는 히브리어 한 단어로
‘팔라‘인데,
이것은
‘구별하다,
경이롭다,
너무도
높다‘라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웃시야는
인간의 머리로 도저히 생각할 수 없는 신비한 도우심을 받아 강성해진 것입니다."(신비롭고 오묘한 섭리,
187페이지)
‘북 이스라엘은 약 208년 동안 19명의 왕이 아홉 번이나 왕조가 뒤바뀌는
속에서 끊임없는 반역과 모반을 거듭하면서 주전 722년 앗수르에게 멸망을
당하였습니다.
그러나 남 유다는
20명의 왕이 다윗의 한 왕조를
유지했으며,
이것은 다윗의
후손으로 오시는 메시아의 길을 닦는 하나님의 구속사적 경륜 속에서 이루어진 것입니다.’(신비롭고 오묘한 섭리,
60페이지)
‘요셉의 두 아들이 각각 에브라임
지파,
므낫세 지파로
독립적인 지파를 형성함으로 결국 요셉은 두 배의 몫을 받은 셈이 된 것입니다(대상5:1-2,
겔47:13).
그리하여 요셉은
하나님의 주권적인 역사로 전 이스라엘 백성 가운데 가장 큰 축복을 받았습니다.’(영원한 언약의 약속,
188페이지)
‘마태복음 족보는,
예수 그리스도가
아브라함의 한 자손으로 오신 메시아라는 사실을 온 천하 만민에게 힘있게 선포하고 있습니다(마1:1).
예수 그리스도는
"약속하신
자손"(갈3:19)이며,
그분을 믿는
믿음으로써 영적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는 것입니다.
전 세계 모든 만민은
예수 그리스도께 속하기만 하면,
곧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고 나아가 아브라함과 함께 복을 받습니다(갈3:9).’(영원한 언약의 약속,
408페이지)
(3)
구속사
시리즈에 나온 ‘구속사‘에 대한
기술
박윤식 목사의 책에는 구속사를 강조하는
내용이 다수 기록되어 있다.
그런데 박윤식 목사의
책을 반구속사적이라고 평가한다면 이것은 인격매도일 뿐이다.
"’구속사‘란 바로 이러한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중심으로 죄인들을 구원하는 전 역사를 말합니다.
좀 더 폭넓은
의미에서 ‘구속사’를 정의하자면,
인류의 시조 아담과
하와의 타락으로 잃어버렸던 낙원의 회복을 위해 인류와 만물을 새롭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경륜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계21:5)."(창세기 족보,
38페이지)
"구속사의 정점에는 누가
계십니까?
정점은 문자적으로
‘맨 꼭대기,
최고
지점‘이라는 뜻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바로
성육신하신 예수 그리스도가 구속의 절정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구속 경륜은 예수님의 십자가에서 온전히 공개되고 거기서 성취되었기 때문입니다."(창세기의 족보,
43페이지)
"이 땅에서 펼쳐지는 모든
역사는,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진행되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성취되며,
예수 그리스도가 다시
오심으로 완성될 것입니다.
성경은 이러한
구속사의 주인공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켜 ‘하나님의 비밀’이라고 하였습니다(골 2:2)"(잊어버렸던 만남,
30페이지)
"성경은 언약에서 언약으로 이어진 구속사의
기록이며,
‘구원을 약속하는
언약서‘라고 할 수 있습니다."(언약의 등불,
43페이지)
"신구약 성경 66권 전체를 관통하는 중요한 주제는 창조주
하나님의 절대 주권과 섭리,
타락한 인간의
‘구원‘(救援,
salvation)과
회복이며,
이 구원을 위한
방도와 근거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말미암은 ‘구속‘(救贖,
redemption)입니다.
죄인의 구원과 전
피조 세계의 회복을 위해 하나님께서 죄인 된 인간과 시공간 속에 함께하시며 섭리해 오신 전 인류의 역사,
그것을 통틀어
‘구속사‘라고 합니다."(신비롭고 오묘한 섭리,
29페이지)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구속사는 하나님의 작정된 경륜 속에서 진행되고 마침내 완성됩니다‘(신비롭고 오묘한 섭리,
30페이지)
"구속사란 창세 전부터 정하신 하나님의 작정에
따라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을 중심으로 타락한 죄인들을 구원하는 전 역사를 가리킵니다.
구속사의 중요한
주제는 크게 ‘창조‘와 ‘타락‘과 ‘구원‘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창조와 타락과 구원의 역사
속에서,
중단 없이 전진하는
하나님의 구속사를 이어 온 것은 하나님의 언약입니다.
말하자면 하나님의
구원 역사를 시대마다 연결시켜 주고 있는 고리가 언약과 그 언약의 성취인 것입니다"(영원한 언약의 약속,
33페이지)
2.
경건의
족보,
믿음의
족보로만 본다는 견해에 대하여
한창덕 목사는 구속사 시리즈는 성경의 모든
족보를 경건의 족보,
믿음의 족보로만
본다고 주장한다.
므낫세와 여호람을
예로 들면서 이들은 불신앙의 사람으로 족보에 올라갔는데,
어떻게 성경의 모든
족보가 믿음의 족보가 될 수 있느냐고 비판한다.
그러나 이것은 잘못된
비판이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구속사 시리즈는
성경의 족보에 나오는 인물들의 신앙뿐만 아니라 그들의 불신앙까지도 분명하게 소개하고 있기 때문이다.
성경 족보에 나오는 모든 인물들이 다
경건하기 때문에 족보에 올라가는 것은 아니다.
비록 불신앙적인
인물들도 있지만 하나님께서는 처음 그들의 조상들과 맺으신 언약이나 당사자의 회개를 통하여 그들을 족보에 올리신 것이다.
박윤식 목사의 책에는 분명하게
‘여호람’과 ‘므낫세’의 불신앙의 모습에 대한 기록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없다는 식으로
주장하는 것은,
책을 비방하고
헐뜯으려는 의도로 밖에 볼 수 없다.
‘여호람‘에 대하여 박윤식
목사는,
‘첫째,
여호람은 선한
아우들을 무참히 살해했습니다.
둘째,
여호람은 아합의
집처럼 행하였습니다(왕하 8:18),
셋째,
여호람은 엘리야
선지자의 경고를 듣고도 회개하지 않았습니다.
넷째,
.여호람은 창자에
중병이 들어 죽었습니다‘(신비롭고 오묘한 섭리,
179-182)라고
기술하면서 그의 불신앙을 낱낱이 공개하고 있다.
그런데 왜 이렇게
악한 여호람이 족보에 들어갈 수 있었는가?
박윤식 목사는 ‘신비롭로 오묘한 섭리‘
181페이지에서
‘여호람의 죄는 멸망받을 수밖에 없는 심각한
죄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남
유다를 멸망시키지 않으신 것은,
다윗으로 더불어
언약을 세워 그 자손에게 항상 등불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기 때문입니다(왕하 8:19,
대하
21:7).’라고 밝히고 있다.
또 같은 책
402페이지에서 "남 유다 왕 여호람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여호람은 아합의 딸
아달랴와 결혼하여 여호와의 보시기에 악을 행하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다윗의 집을 멸망시키지 않으신 것은 다윗과 그 자손에게 항상 등불을 주겠다고 약속하셨기 때문입니다(왕하 8:19,
대하
21:7)."라고 기록하고 있다.
그러므로 박윤식
목사가 ‘여호람’을 믿음의 사람으로만 보았다는 한창덕 목사의
비판은 전혀 근거가 없는 것이다.
또한 ‘므낫세‘에 대하여 박윤식
목사는,
‘첫째,
므낫세는 역대 왕
중에 가장 사악했습니다.
둘째,
므낫세는 통치 말년에
회개하였습니다‘라고 기술하고 있다(신비롭고 오묘한 섭리,
228-230페이지).
이어
‘회개할 때 과거에 범죄했던 모든 것을
잊어버리고 기억지 않으시는 하나님의 무궁한 사랑은,
므낫세까지도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에 올라가게 하시는 은혜를 베푸셨습니다.’라고 기술함으로,
비록 므낫세가
불신앙의 소유자이지만 회개함으로 에수님의 족보에 올라갔음을 밝혔던 것이다.
따라서 박윤식 목사가
‘므낫세’를 믿음의 사람으로만 보았다는 한창덕 목사의
비판은 전혀 근거가 없는 것이다.
둘째,
구속사 시리즈는
성경의 족보가 일차적으로 혈통을 나타내는 족보임을 인정하고 있으며,
더 나아가 믿음의
혈통을 보여준다고 기술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창덕 목사는 박윤식 목사가 족보를 믿음의
족보로만 보고 혈통적 족보로 보는 않는 것처럼 생각하는 듯하다.
그러나 박윤식 목사의
책에는 족보가 혈통을 나타내는 족보라는 사실이 기본적으로 전제되어 있는데 아래 내용을 살펴보면 확실하다.
‘마태복음 1장 족보는 예수님의 육적 혈통이나 자손들을
보여 주는데서 그치지 않고,
구속사적으로 여자의
후손이 이 땅에 오시기까지 믿음의 혈통을 보여 주는 데 더 큰 의미가 있습니다.’(언약의 등불,
75페이지)
‘성경에 나오는 족보는 일반적으로 조상적부터
내려오는 계통을 나타냅니다.
성경에 나타나는
족보는,
개인적인 혈통 또는
가족,
씨족,
지파,
민족 등과 같은
집단들의 친족 관계를 이름에 따라 순서 있게 기록해 놓은 것입니다.’(영원한 언약의 약속,
99페이지)
‘역대기의 족보는 바벨론에서
70년간 포로생활을 마치고 돌아온 귀환자들에게
그들의 역사적 혈통적 뿌리와 언약 백성의 정체성을 재확인시켜 줌으로써 새로운 "이스라엘 재건"의 사명을 깨우쳐 주는 역할을
하였습니다.’(영원한 언약의 약속,
104페이지)
박윤식 목사는 일차적으로 성경의 족보가
혈통을 나타내는 족보임을 인정하면서 동시에 혈통적 족보 이상의 믿음의 족보,
언약의 족보임을
기술하고 있다.
따라서 구속사
시리즈가 이러한 문제로 비난받을 하등의 이유가 없는 것이다.
3.
한창덕
목사는 족보로 연대 계산을 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창세기 5장과 11장의 족보로 연대계산을 주장하는 학자들이
많이 있다.
그들이 연대 계산을
할 수 있는 근거는 다음과 같다.
첫째,
창세기
5장과 11장의 족보에는 연대적인 공백이 없다고 보기
때문이다.
둘째,
각 인물들이 몇 살에
아들을 낳고 몇 살에 죽었는지가 명백하게 기록되어 있기 때문이다.
셋째,
성경의 기록과
일치하기 때문이다.
창세기
5장과 11장의 족보는 역대상 1장의 족보와 일치하며,
또한 마태복음
1장과 누가복음 3장의 족보와 일치한다.
한가지 일치하지 않는
인물은 누가복음 3:36에서 아르박삿과 셀라 사이에 나오는
‘가이난‘이다.
그런데 이 문제를
박윤식 목사는 창세기의 족보 209페이지에서 명쾌하게
해석하였다.
유대인들 랍비의 성경에 대한 해석 가운데
가장 권위 있는 "Seder
Olam"에서는
족보를 통하여 연대를 계산하고 있다.
제임스
어셔(James
Ussher) 역시
아담부터 노아까지 연대에 공백이 없음을 인정하면서 족보를 통해 연대를 계산하고 있다.
Henry
M. Morris도
아담부터 노아까지의 족보에 어떤 공백도 없다고 하면서 연대를 계산하고 있다.
Travis
R. Freeman은
‘창세기 5장과 11장 사이에 연대적 간격이 있다는 견해를
뒷받침할 근거는 부족하다.
고대 족보 중 중간에
간격이 있는 족보가 있다는 것은 모두 인정하나,
셋의 계보와 셈의
계보에 연대적 공백이 있다는 견해를 뒷받침 할 올바른 증거는 아직 제시되지 않았다’고 논증하였다.
또한 그는
‘여러 현대
신학자들은 창세기 5장과 11장의 아담부터 아브라함까지의 족보에 나오는
이름과 숫자가 빠짐없이 정확히 일치한다고 주장한다.
그들은 성경에 나오는
족보 중에는 몇몇 이름이 생략된 족보가 있는 것도 사실이나,그렇다고 모든 족보들이 다 생략되었다고는 볼
수 없으며,창세기 5장과 11장의 족보만은 그 법칙에서 제외된다고 말하고
있다.’라고 주장하였다
그러므로 ‘족보를 통해서 연대를 계산할 수
없다‘라는 한창덕 목사의 주장은 하나의 견해일
뿐이며,
그것은 남을
비방하거나 남의 책을 금시하는 절대적 기준은 될 수 없는 것이다.
4.
신명기
32:7과
예레미야 6:16의 비판에
대하여
한창덕 목사는 구속사 시리즈의 두 기둥은
신명기 32:7과 예레미야 6:16이라고 주장하며,
두 구절은 조상들의
신앙을 본받으라는 뜻이 아니라,
본받지 말라는
뜻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것은 너무
극단적인 해석이다.
조상들이 살았던 ‘옛날‘
속에는 조상들의 좋은
점도 나쁜 점도 있다.
우리는 좋은 점은
본받고 나쁜 점은 그렇게 하지 말아야 하는 본으로 삼아야 하는 것이다.
박윤식 목사 역시 ‘옛날‘
속에 조상들의 좋은
점 뿐만 아니라 불신앙의 과거도 있음을 여러 번 지적하고 있다.
‘신명기
32장은 이스라엘의 배반과
타락,
그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라는 암울한 주제를 담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노래에
담긴 진정한 뜻은,
선민을 향한 하나님의
한없으신 사랑과 긍휼의 약속입니다.’(창세기의 족보 22페이지),
"구체적으로 옛날
에덴 동산에서 있었던 아담과 하와의 타락,
가인의 끔찍한 살인과
그 후예들의 불신앙적인 행동들,
노아 당시 죄악이
관영한 세대의 모습,
바벨탑을 쌓던
인간들의 교만 ….등이 모세가 염두에 두었던 기억해야 할
‘옛날‘입니다"(창세기의 족보 23페이지)라고 기술하고 있다.
그러므로 신명기 32:7로 박윤식 목사의 책 전체를 마치 성경을
왜곡하고 조작된 책인 것처럼 비방하는 것은 완전히 박윤식 목사를 모함하는 것임에 틀림없다.
한창덕 목사는 예레미야
6:16의 ‘옛적 길 곧 선한 길‘에 대한 해석을 가지고 박윤식 목사의 책을
조합과 조작된 책이라고 몰아세운다.
그의 지적대로
‘선한 길‘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인도하신
율법‘을 가리킨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것을 옛적 길로 표현하신 것은,
옛 과거의 역사속에서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도하셨음을 나타내는 것이다.
그 옛 역사에서 사람은 때로는 선하기도 하고
때로는 악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일관되게 선하신 말씀(율법)으로 인도하셨던 것이다.
박윤식 목사가
강조하려는 것은 인간의 모든 길이 선한 길이었다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역사속에서
행하신 하나님의 모든 행하심이 선하신 말씀(율법)의 길이었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박윤식 목사는
신명기 32:7을 해석하면서 "옛날은 히브리어로 ‘예모트 올람‘인데,
단순히 지나간 과거가
아니라,
하나님의 선하신 그
말씀이 역사속에서 성취된 흔적있는 과거"라고 기술하였던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선하신 말씀의 길속에서,
선한 사람의 역사는
취하고 악한 사람의 역사는 버려야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 부분에
대한 박윤식 목사의 해석은 하등의 비난받을 이유가 없는 것이다.
5.
한창덕
목사가 학문적 발전을 위해 건전한 비판을 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 아니다.
그러나
그의 글에는 건전한 비판을 넘어선 비방으로 가득 차 있다.
(1)
책에 있는
내용인데도 그것을 읽지 않고,
책에는
그러한 내용이 없다고 주장한다.
그는 성경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부정적인
모습의 예로 모세가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고 반석을 친 사건을 예로 들면서 박윤식 목사의 책에는 이러한 내용이 없다고
주장하였다.
그런데 박윤식 목사의
책 ‘잊어버렸던 만남‘의 314-315페이지에서는 ‘하나님께서는 분명히 반석을 명하여 물을 내게
하라고 명령하셨음에도 불구하고,
모세는 자기 고집
속에서 반석을 두 번이나 침으로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고 말았던 것입니다(민 20:8-12).
마음이 강퍅한 자는
절대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는 것을 사술의 죄와 같다고 하였습니다(삼상 15:23)’라고 모세의 불신앙적인 모습을 매우
적나라하게 성경에 있는 그대로 기록하고 있다.
이렇게 분명히 기록되어 있는 내용을 없다고
하면서 비판하는 것은,
책을 아예 읽지 않은
증거요 나아가 의도적으로 책을 폄하하려는 불순한 의도로밖에 볼 수 없다.
(2)
비방과
폄하,
허위사실
유포,
음해,
저자에
대한 명예훼손으로 가득차 있다.
한창덕 목사는 구속사 시리즈를
‘비성경적인 금서‘
‘절대로 추천해서는
안 될 금서‘
‘악서‘
‘반구속사적인
책‘이라고 말하고 있다.
더 나아가
‘미끼나 속임수처럼
보인다‘
‘교묘한 그 무엇이
있다‘
‘뻔뻠함의
극치‘
‘술타기
수법‘이라고 인신공격을 서슴치 않고
있다.
또한
‘엉터리처럼 보인다‘
‘그가 정말 이 책의
저자일까‘라고 말하면서 다른 사람들에게 의구심을
자아내게 만들고 있다.
이것은 건전한 비판을
넘어선 것으로 인신공격이나 악의적인 비방에 해당되는 것이다.
차제에 한국 교계에 이러한 인신공격과
비방성의 글들은 다 사라지고 건전한 비판과 학문적 토론이 이루어지기를 소망한다.
더 나아가 박윤식
목사의 신앙과 학문성에 대한 객관적인 검토를 통해서 그의 성경보수적이고 개혁주의적인 신앙이 올바로 평가를 받고,
남은 생애 한국
교회를 위하여 더욱 크게 일할 수 있는 길이 열리기를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