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남한 언론에 뿔난 3가지 이유

This gallery contains 11 photos.

4월 20일 서울의 동아일보를 비롯한 일간지 1면에는 한국의 국방부가 제공한 사진이 실렸다. 우리 기술로 개발한 탄도 미사일과 크루즈 미사일이 발사되는 모습을 촬영한 동영상과 사진이다. 국방부 정책기획관인 신원식 장군은 “군은 현재 북한 전역의 어느 곳이나 즉각 타격할 수 있는 세계 최고 [...]

More Galleries | 댓글 2개

새누리당과 민통당이 점퍼 색깔을 바꾼 이유

This gallery contains 4 photos.

  얼마 전 중학생들 사이에 노스페이스 계급이 존재한다는 뉴스가 있었습니다. 어른들 사이에서야 옷의 가격과 브랜드로 그 사람의 인격(?)을 구별하는 것이 이미 오래된 이야기지만 이제는 중학생들도 입고 있는 옷에 따라 사람을 구별하는 시대가 된 것입니다. 정치권도 이제는 옷에 신경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

More Galleries | 댓글 4개

한 까까머리 대학생과의 우연한 만남

This gallery contains 5 photos.

  그를 만난 건,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그의 얼굴을 사진으로 찍은 것은, 지난 5월 24일 국회 정론관에서였다. 정론관이란 국회에서 국회의원들 또는 사회단체들이 출입기자들을 상대로 기자회견을 하는 곳이다. 민주노동당 이정희 의원과 몇몇의 대학생들이 정부에 반값 등록금을 요구하는 기자회견이었다.   두 번째로 [...]

More Galleries | 댓글 1개

강재섭의 폴라티, 손학규의 넥타이

This gallery contains 5 photos.

미국 정계에는 스핀 닥터(spin doctor)라는 직업이 있다고 한다. 정치인의 주위에 있는 정치홍보 전문가를 말한다. 돌리다, 비틀다를 뜻하는 단어(spin)가 의미하듯이 부정적 어감도 갖 고 있다. 홍보 전문가가 정치에 관여하는 이유는 여론이라는 생물이 외부의 자극에 의해 어느 정도 움직일 수 있다고 믿기 [...]

More Galleries | 댓글 남기기

지진과 쓰나미, 원전 사고를 찍고 있는 일본의 촬영기자들에 대한 연민

일본 대지진은 사진기자인 나에게 “카메라는 무엇을 할 수 있는가”에 대한 고민을 하는 계기가 되었다.
진도 8.8의 강진과 뒤이은 쓰나미와 원전 사고로 일본은 그야말로 공포의 도가니에 갇혀 있는 듯하다. 역사상 다섯 번째, 일본 역사상 최대 규모의 지진은 예전과는 다른 공포감을 주고 있다.

지난 1995년 한신 대지진때와 달리 이번에는 카메라가 대중화되고 인터넷 속도가 빨라지면서 우리를 비롯한 세계는 일본의 재난을  실시간으로 보고 있다.  궁금한 것도 없고 더 이상 보고 싶은 것도 없을만큼 생생하다. 생생한만큼 공포감도 크다.

재난이 생중계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일본은 첨단기술을 이용해 자국의 재난 상황을 전세계에 노출시키고 있다. 첫 지진이 발생한 3월 11일 금요일 오후 서울의 TV를 통해 처음 본 일본의 모습은 충격적이었다. 건물을 휘감으로 돌진하는 검은 해일의 모습을 일본 공영방송 NHK 카메라맨은 헬기 위에서  촬영하고 있었다. 영화에서나 보아야 할 죽음의 순간들이 화면 곳곳에 들어가 있었다. 물론, NHK의 편집자들은 자극적인 장면들을 삭제한 후 내보냈을 테지만 모든 죽음을 감출 수는 없었다.

동아일보가 수십년간 교류하고 있는 일본 아사히 신문의 경우, 사진기자들이 매일 공항으로 출근해 만일의 상황에 대비한다. 특별한 상황이 없으면 아무 일도 안하고 퇴근하는 근무조도 있는 것이다. 일본 언론의  이런 근무 형태 때문에 일본 재난은 모든 순간이 기록될 수 있었다. 더구나 최첨단 촬영장비는 고해상도의 화면을 시청자들에게 제공하고 있다. 

이번 재난은 불가항력적이다. 카메라는 제대로 역할을 한 것일까? 일본 NHK의 방송화면은 일본 시민들이 신속하게 대피하는데 역할을 했을까? 아이티 지진에서 22만명이 피해를 입었다는데 일본이 그나마 4~5만여명의 피해를 입었던 데에는 카메라의 역할이 있었던 게 아닐까?

멀리 떨어져 있는 나도 이런 고민을 하는데, 그 현장에서 더구나 생사기로에 선 자국민의 모습을 목격해야 했던 일본 촬영기자들과 사진기자들은 더더욱 큰 고민을 하지 않았을까 싶다.  건물 위에서 SOS를 외치며 절박한 상황에 빠진 그들에게 카메라맨은 빵을 던져줄 수도, 물을 던져 줄수도 없어 안타까왔을 것이다. 카메라 뒤에 있는 그들의 눈물과 찢어지는 가슴을 느낄 수 있다.

카테고리 : 미분류
태그 : , , , , , , | 댓글 남기기

김정일 사진은 어떻게 찍는걸까

북한에서 찍는 사진 중에 독특한 사진이 있다. 김정일과 군인들이 함께 찍는 기념사진이다.

우리나라 대통령도 군인들과 기념사진을 같이 찍는다.

AP07DB307082C167000.JPG

하지만 북한의 기념사진은 규모 면에서 상상을 초월한다. 오늘은 김정일이 등장하는 집체 사진의 특징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고자 한다. 

우선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맨 앞줄 정중앙에 선다. 그리고 그 옆과 뒤로 수백 명의 군인들이 도열한다. 군인들은 한 줄에 20여명 정도 서고 그런 줄이 뒤로 10여 줄 이상 된다. 적게는 100명에서 많게는 800 명 정도의 인원이 등장한다. 집체 사진은 한 달에 서너 번 씩 신문에 게재된다.

AP07DB307082D29F002.JPG

신기한 것은 수백 명의 사람들이 함께 찍는 사진이지만 어느 누구의 얼굴도 옆 사람 얼굴에 의해 가리거나 그림자에 묻히지 않는다. 앞줄과 옆줄의 간격을 자로 잰 듯이 정확하게 함으로써 가능하다. 결혼식장에서 기념사진을 찍어 본 여러분들이라면 이 상황이 얼마나 어려운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결혼식에서 100명 정도의 사람이 함께 찍으면 꼭 얼굴이 가려지거나 눈을 감는 사람이 있지만 북한 사진에서는 그런 일이 없다.


AP07DB307082D4D004.JPG

우선 눈을 부릅뜰 정도로 카메라맨에게 시선을 집중시킨 채 촬영이 이뤄진다는 것을 추론할 수 있다. 그만큼 카메라맨 말고 등장인물들 역시 신경 써서 사진 찍는다는 점이다. 사진을 함께 찍는다는 것은 ‘영광스러운’일이기 때문이다. 아무나 사진에 등장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선별과정을 거친다.

철저한 준비 속에서 촬영이 이뤄진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촬영에 필요한 소품이 있다. 한 장의 사진을 위해 계단식 연단과 대형 구호판이 동원된다. 가장 중요한 소품은 연단이다. 연단은 대략 5줄부터 16줄 정도까지이다. 연단은 철을 용접해 만들었으며 맨 앞줄에는 나무 합판이 쳐져 있는데 흰색 페인트로 칠해져 있으며 가로 선이 길게 이어져 있다. 상자들이 배치되기도 한다. 연단의 상태가 항상 깨끗하지는 않다는 점에서 재활용되는 것으로 보이며 그렇다면 김정일의 기념사진 촬영을 위해서
대형 트럭이 함께 움직이고 있을 가능성이 있다.


AP07DB307082D241006.JPG

구호판이 붙어 있는데 구호판은 4개~9개의 쇠기둥에 붙어 있다. 건강이상설 이전에는 주로 “경애하는 최고 사령관 김정일 동지를 위하여 복무함”이었지만 건강이상설 이후에는 “위대한 김정일 동지를 수반으로 하는 혁명의 수뇌부를 목숨으로 사수하자”로 통일되었다.

김정은의 등장 이후부터는 “ 당중앙위원회를 목숨으로 사수하자”로 바뀌었다.

김정일의 자리는 어디일까?

그는 제일 앞줄에 의자를 놓은 채 앉기도 하고 의자 없이 서기도 한다. 중요한 것은 정 가운데에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정 가운데는 촬영 행사 전에 이미 표시(Royal Mark)를 해둔다. 주로 빨간색 테이프로 표시한다. 김정일은 표시가 된 곳에 와서 서면 된다. AP07DB307082E2E008.JPG

나머지 사람들도 사전에 인원파악이 된다면 서로 엇갈리게 배치해서 얼굴이 가리지 않도록 할 수 있을 것이다.

카테고리 : korea.jpg
태그 : , | 댓글 1개

왜 우리는 사진을 찍을 때 ‘김치’를 외칠까?

“왜 신문에는 우리가 실생활에서 보는 것보다 더 많은 웃음이 보일까?   신문사 사진기자로 15년 동안 일하면서 갖고 있는 의문 중 하나가 바로 “왜 사진을 찍을 때 피사체는 웃고 있어야 하는가” 이다. 굳이 예를 들 필요도 없이 우리나라 신문에 실리는 사진 [...]

More Galleries | 댓글 남기기

칠레 광부 33인의 생존을 기원합니다.

지금은 강원랜드로 더 유명한 강원도 태백과 정선.

이곳에는 지금도 탄광의 흔적이 남아 있습니다.

 

석유와 가스가 일반 가정의 난방 에너지로 보편화되기 전 연탄은 서민, 아니 국민
모두에게 없어서는 안되는 생필품이었습니다.

그리고 연탄의 원료인 석탄을 캐기 위해 광부들은 지하 수백, 수천미터까지 들어갔습니다.

AP07DAA0D051945005.JPG생명을
담보로 한 극한 작업이었을 것입니다.

70년대와 8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갱도가 무너져 광부들이 매몰되었다는 것은
신문과 방송을 통해 종종 봐야했던, 가슴 아픈 뉴스였습니다.

 

오늘….

칠레 산호세 광산에 매몰되었던 광부들이 속속 구출되고 있습니다. 69일 만입니다.
감동적인 뉴스입니다.

CNN을 통해 생중계되는 구출 현장 화면을 보면서 한편으로 우리 사회의 슬픈 뉴스가
떠올랐습니다.

 

동아일보 Data Base에서 옛날 사진을 찾아보았습니다.

탄광에 갇힌 남편을 기다리는 아내의 사진에서 석탄만큼 까맣게 변했을 애간장이
느껴집니다.

 

칠레 구조 현장에서 진가를 발휘하는 현대 과학의 힘에 찬사를 보내며,

마지막 생존자까지 지상으로 무사히 올라오시길 지구 반대편에서 그리고 당신들과
비슷한 경제 발전의 과정을 거쳤던 나라에서 기도합니다.  

 

AP07DAA0D05152EC000.JPG.

강원도 도계탄광 매몰 사고. 1970년 12월 10일. 가족들이 사고 현장 앞에 모여있다.

 

 

AP07DAA0D051739A003.JPG

고한 동고광업소 가스폭발 사고 (73.11.24) – 남편의 생사를 초조하게 기다리는
광부의 아내들.

 

AP07DAA0D051A133012.JPGAP07DAA0D051A31013.JPG

AP07DAA0D051A2B9014.JPG

문경 은성탄광 화재사고 (79.10) – 28일 오전 9시50분, 열기와 가스속에서 최초로
구출돼 나오는 민창식씨.

 

AP07DAA0D051C119016.JPG구봉광산
광부매몰사고 (67.8.22) – 생존자 양창선(楊昌善)씨가 재생의 밝은 웃음을 지어보이고
있다. 게재지  동아일보 일자  1967/09/07 게재여부   게재

카테고리 : korea.jpg
태그 : , , , , , | 댓글 남기기

북한은 김정은의 얼굴을 언제쯤 공개할까?

 

필자는 2004년부터 5년간 북한 김일성과 김정일 사진에 대한 연구를 했다. 그 과정에서 필자는 북한의 사진 특히 최고 지도자의 사진이 다른 나라와는 완전히 다른 특징이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지도자의 얼굴 보여주기와 관련한 북한의 전략은 아주 정교하다. 오늘 이야기는 3대 세습의 대상으로 알려진 김정은의 초상화에 관한 이야기이다. 

AP07DA81008383C7017.JPG

여러 정황을 볼 때 북한이 김정일의 셋째 아들 김정은을 후계자로 내정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아직 북한은 김정은의 얼굴을 공개하지 않고 있다. 우리가 보아온 김정은의 어릴적 사진들은 북한이 공개한 것이 아니라 일본과 한국 취재진들이 외국에서 입수한 것들이다.

AP07DA8100901FE021.JPG

이런 가운데 최근 한 대북 단파 라디오 방송은 북한이 “김정은의 배지와 초상화를 대량 제작해 놓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 방송은 ‘북한 고위급 소식통’을 인용, “북한 만수대창작사 1호 창작실이 올해 4월 말 상부의 지시를 받아 김정은 초상휘장(배지)와 초상화를 대량 제작했다”며 “이르면 대달 당대표자회에서 일부 고위 간부들에게 김정은 배지를 선물로 나눠줄 수 있다”고 말했다. 이 방송은 또 “김정일 초상화는 김정일이 후계자로 공식화된 1980년대 초반부터 공식사용된 것으로 알려졌다”면서 “김정일 배지의 경우 김일성이 사망한 1994년부터 공식 허용됐지만 일부 간부들만 달았고, 일반 주민들은 현재도 김일성 배지를 주로 단다”고 덧붙였다.

김정은의 초상화… 만약 이 보도가 사실이라면 1983년 또는 1982년 1월 8일생인 김정은의 한국 나이 28세 또는 29세에 초상화가 만들어진 것이다.

29살의
초상화?

 

북한 신문은 1912년생인 김일성 주석의 한국 나이 57세였던 1968년 1월 1일 그의 초상화를 처음 게재했다. 이 초상화는 정면을 응시하고 있으며, 김정일의 지시로 만수대 창작사 소속 작가들이 그린 것으로 알려져 있다. AP07DA81009048F023.JPG

(왼쪽부터
1968년, 1969, 1980년대, 1994년 사망 당시 부고 기사)

1968년
이후 김일성은 공식적인 행사 사진 이외에는 초상화의 형태로 신문에 게재된다. 58세였던 1969년 초상화를 다시 제작하는데, 이번에는 정면보다 약간 오른쪽 얼굴을 보여준다. 58세 초상화는 김일성이 1994년 83세의 나이로 사망할 때까지 약 25년간 변하지 않고 사용되었다.

AP07DA8100904174025.JPG

 

그의 초상화는 사망 후 공훈예술가 윤형섭과 리석남에 의해 다시 그려져 오늘까지 이어지고 있다. 김일성 초상화 version 3.0은 ‘태양상’으로 불리운다.

 

 

 

AP07DA8100836159015.JPG

김정일의 초상화는 1997년 10월 9일자 북한 신문에 처음 등장한다. 아버지에 대한 3년 상이 끝난 후 당 총비서로 추대된다는 공식 선언이 있은 다음날이었다. 이 시점은 김일성 사망 3주기가 지났다는 정치적 의미 뿐만 아니라, 1941년생 또는 1942년생으로 알려져 있는 김정일의 나이가 환갑을 향해 가고 있던 56세 또는 57세 무렵이라는 의미 또한 갖고 있다. 최고 지도자의 사진 대신 젊은 시절의 초상화를 싣는 것은 얼굴에 나타난 건강상태를 대내외적으로 알리지 않으려는 노력으로 해석될 수 있다. 김정일의 초상화는 아직까지 바뀌지 않은 채 1997년 version이 통용되고 있다.

조심스런 추론이지만, 북한이 김정은의 초상화를 나이 서른이 안 된 이 시점에 벌써 공개할 가능성은 높지 않다고 본다. 그것은 초상화와 사진을 권력의 크기로 인식하는 북한 사회의 특성 때문이다. 김정은의 초상화가 공개되고 배포된다는 것은 곧바로 북한의 권력이 김정일에서 김정은으로 옮겨갔다는 것으로 받아들여질 수도 있다. 김정은의 얼굴은 좀 더 기다려야 할 것 같다.

 또 위의 보도에서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만수대창작사에 있다는 ‘1호 창작실’이라는 용어이다. 북한에서 ‘1호’는 최고지도자를 지칭한다. 1호 방송원은 김정일의 동정을 보도하는 아나운서를 말하고 1호 열차는 그가 타는 열차, 1호 사진은 최고 지도자의 얼굴이 찍힌 사진을 말한다. 하지만, 이런 용어는 북한 인민들 사이에서 보편적으로 사용되는 용어이지 공식적인 호칭은 아닌 것으로 알려져 있다. ‘1호 창작실’이라는 표현은 그래서 좀 더 사실관계를 확인할 필요가 있다고 여겨진다.  

 

카테고리 : korea.jpg
태그 : , , , , , | 댓글 1개

한상렬 목사 그리고 문익환 목사

불법
방북한 한상렬 목사가 내일 15일 판문점으로 귀환하겠다고 합니다.

목사의
불법 방북은 이번이 처음이 아닙니다. 21년전인 1989년 3월 문익환 목사님이 평양
땅을 밟았습니다. 그리고 문 목사는 김일성 주석과 함께 ‘사회주의식 포옹’을 나눴습니다.
공영방송 등을 통해 전해진 포옹 모습에 국민들은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AP07DA80E01297E000.JPG

1989년 3월 27일
평양 주석궁에서 문익환 목사가 김일성 주석에게 한길사에서 펴낸 <우리말 갈라사전)을
전하며 ‘남북한 통일사전’ 편찬을 제안하고 있다.

 

 

이번에도
많은 국민들이 한 목사의 사진을 보고 충격을 받고 있습니다. 아래 사진은 북한이
촬영해 외부 세계로 보낸 사진입니다. 판문점 북측 지역에서 남쪽을 살펴보고 있는
모습입니다.

AP07DA80E0201350008.JPG

지난달 12일 당국의
허가 없이 방북해 계속 머물고 있는 한상렬 한국진보연대 상임고문(왼쪽)이 13일
판문점에서 북한 군인의 안내를 받으며 남쪽을 바라보고 있다. 평양=조선중앙통신
연합뉴스

 

 

개인적으로
이번에 방북한 한상렬 목사를 만난 적이 있습니다. 2003년 평양에서 였습니다.

민화협,
7대 종단, 통일연대로 구성된 `2003 민족공동행사추진본부`와 북측 민족화해협의회가
공동주최한 `평화와 통일을 위한 8.15 민족대회` 본행사를 취재하기 위해 평양에
갔을 때였습니다. 아래는  제가 찍은 사진입니다.

AP07DA80E012D1B4002.JPG

 2003년 8월
15일 평양 능라도 공원에서  한상렬 목사가 통일에 대한 견해를 밝히고 있다.

 

한상렬
목사는 그 때 흰저고리를 입고 있었습니다. 문익환 목사님도 저고리를 흔히 입                  AP07DA80E012F62004.JPG

 

 


다니셨습니다. 그날 평양 능라도 공원에서 한목사의 연설을 들으면서 제가 강한 인상을
받은게 있었습니다. 한 목사의 목소리였습니다. 굉장히 호소력 있는 목소리였는데 누군가와
많이 닮아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1987년 이한열 열사의 시청 앞 장례식에서 문익환
목사가 민주화 운동 과정에서 사망한 열사들의 이름을 부르며 오열하는 그 현장 장면과

겹쳐져 들렸습니다.

 

목회자의
한 길을 걷던 두 명의 목사님은 느지막이 현실에 눈을 뜨고 체제에 도전한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갖고 있습니다.  문익환 목사님의 방북을 통해 우리 사회는 냉전의
한 모서리가 깨져나가는 충격에 휘청했습니다. 그리고 그 댓가로 문익환 목사님은
감옥에 갇히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한상렬
목사님 역시 감옥에 갇혀야 한다는 비슷한 운명을 앞두고 있다고 보여집니다. 하지만,
문익환 목사에게 붙어다니는 ‘분단시대의 통일꾼’류의 수식어를 붙일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문익환
목사님은 당시 김일성 주석과 2차례 만나 8시간 동안 통일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한상렬 목사님은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사진을 찍지 못하고
돌아왔습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주성하 기자의 블로그에 재밌는 분석이 올라가있습니다.(/nambukstory/34818)제
생각도 비슷해서 따로 쓰지는 않겠습니다.

 

15일인
내일 우리 사회는 광복절을 기념하기 보다는 한상렬 목사 문제로 갈라진 우리 사회의
극한 세력들의 목소리 높이기 경쟁을 보아야 합니다. ‘한상렬 목사를 지지하는 기독교
모임’과 ‘고엽제 전우회’ 등이 각각 임진각과 판문점 주변에서 집회를 할 예정입니다.
남북통일은
고사하고 남남분열이 반복되는 것을 보면서 착잡한 마음입니다.

문익환
목사님은 불법 방북 때문에 감옥에 갔다가 1년 6개월 가량 지난 1990년 10월 석방되셨습니다.

AP07DA80E0209246012.JPG◆석방된
문익환 목사 -형집행 정지로 석방된 문익환 목사가 1990년 10월 20일밤 10시반경
서울 종로구 충신동 전민련사무실에 부인 박용길장로와 함께 들어서면서 환영 나온
인사들에게 손을 흔들며 환한 표정을 짓고 있다/동아일보 오강석 기자

 

 

카테고리 : korea.jpg
태그 : , , , , , , , | 댓글 79개
페이지 1 의 3|1|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