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축은행 PF 부실 '일촉즉발'


 <경기 수원시 팔달구의 한 주상복합 아파트 공사현장. 2008년 사업승인이 났지만 기초공사도 끝나지 않은 상태다. 저축은행 6곳이 프로젝트파이낸싱(PF) 대출로 541억 원을 빌려줬지만 회수 여부는 불투명하다. 동아일보 자료사진>

-들어가며

공적자금관리위원회는 25일 공적자금인 구조조정기금 2조5000억 원을 투입해 저축은행의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대출 부실채권 3조5000억 원어치를 사 주기로 했습니다.

공적자금은 떼일 경우 세금으로 보전해야 하기 때문에 ‘국민의 혈세(血稅)’라고 불립니다. 정부에서 ‘국민의 혈세를 동원한다’는 부담을 무릅쓰고 저축은행을 지원한 것은, 그렇지 않으면 저축은행 다수가 문을 닫을 수밖에 없는 절박한 상황이기 때문입니다.

뱅크런(대량예금인출사태)이 일어날까봐 표현은 자제하고 있지만 부동산 경기 침체로 인한 저축은행 부실은 말 그대로 ‘일촉즉발’의 상황입니다. 오늘은 부동산 PF 대출이 부실의 뇌관으로 자리 잡은 배경에 대해 얘기해보려고 합니다.

 

-얼마나 심각한데?

 

부동산 PF 대출에 대한 설명은 잠깐 뒤로 하고 이번에 발표된 금융감독원의 실태조사 결과를 볼까요? 마음의 준비를 돕기 위해 먼저 말씀드리자면 PF 부실이 심상치 않다는 것을 알고 있던 기자들조차 놀랄 정도의 결과였습니다.

실태조사 결과 저축은행의 PF 대출 12조5000억 원(지난해 말 기준) 중 사업이 제대로 진행되고 있고 사업성도 양호한 ‘정상’ 대출은 3조3000억 원으로 26.5%에 불과했습니다. 사업성은 있는데 사업진행은 예정대로 안 되고 있는 ‘보통’은 5조2695억 원으로 42.2%였고, 사업진행도 안 되고 사업성도 떨어지는 ‘악화우려’는 3조9000억 원으로 31.3%였습니다.

사업장 기준으로는 714곳 중 양호한 곳은 177곳(24.8%)에 불과했고 악화가 우려되는 곳이 289곳으로 40.5%를 차지했습니다. 쉽게 말하면 사업 장 10곳 중 4곳은 부실화되고 있다는 것이죠.

참고로, 2008년 6월 실태조사를 했을 때 저축은행 PF 대출 중 12조2000억 원 중 악화가 우려되는 대출은 1조5000억 원으로 12.4%에 불과했습니다. 당시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는 자체 계정으로 1조7000억 원의 부실 채권을 사 줬습니다. 그걸 감안하면 1년 반 사이에 부실이 4조 원이나 생긴 거죠. 저축은행 전체 자산이 80조 원대라는 걸 감안하면 어느 정도 상황이 심각한지 짐작하실 수 있을 겁니다.

-PF 대출이 뭔데?

그럼 다시 처음으로 돌아와 PF 대출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PF 대출은 한 마디로 ‘사업성을 보고 돈을 빌려주는 것’입니다. 언뜻 봐서는 대단한 게 없는 것 같지만, 사실은 획기적인 금융기법입니다.

은행에서 돈을 빌려본 분들은 아시겠지만 금융회사는 크게 3가지를 보고 돈을 빌려줍니다. 먼저 신용을 믿고 돈을 빌려주는 경우가 있습니다. 직장인 신용대출이나 마이너스 통장이 여기에 해당하죠. 신용으로 돈을 빌려주기 꺼림칙하면 담보나 보증을 요구합니다. 담보를 잡으면 돈을 못 갚을 경우 담보를 처분하면 되기 때문에 대출이 쉽고 한도도 높죠.

반면 PF 대출의 사전적 의미는 빌리는 사람의 신용이나 담보를 보지 않고 사업의 사업성만을 보고 돈을 빌려주는 금융기법입니다. 쉽게 말하면 빌리는 사람이 미덥지 않고 담보도 없더라도 괜찮은 사업이라고 판단되면 돈을 빌려주고 대신 나중에 높은 이자를 받는 것이죠. 이 기법은 1920, 30년대 미국 유전개발사업에서 도입돼 전 세계로 확산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물론 사전적 정의가 현실에서 그대로 적용되지는 않습니다. 현실에서는 아무래도 돈을 빌리는 사람이 약자인 만큼 금융회사에서는 우월적 지위를 이용해 담보를 잡기도 하고 보증을 요구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사업성을 보는 것’ 만큼은 철두철미해야 합니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그렇게 하지 않았고, 그게 결국 부실로 돌아오고 있습니다.

-근데 왜 문제가 되는 거야?

한국에서 PF 대출이 도입된 것은 외환위기 이후입니다.

외화위기 전까지 건설사들은 직접 부지를 매입하고 은행에서 돈을 빌려 아파트를 짓고 분양까지 했습니다. 대규모 건설사업에 필요한 돈을 빌리다 보니 ‘부채비율’이 높을 수밖에 없었고 이 때문에 외환위기 때 상당수가 문을 닫아야 했습니다.

아픈 경험을 가진 건설사들은 외환위기 이후 직접 부동산 개발사업을 벌이는 대신, 공사를 도급하는 쪽으로 방향을 틀었습니다. 그리고 그 틈을 타 시행사(디벨로퍼)가 부동산 개발의 주역을 맡았습니다. 시행사와 시공사가 분리된 겁니다.

자금력이 약한 시행사는 PF 대출을 ‘신종 금융기법’으로 광고하면서 이를 활용해 금융회사에서 건설사업에 필요한 돈을 빌렸습니다. 하지만 시행사가 지나치게 영세하다보니 금융회사는 △땅을 담보로 잡을 것과 △건설사의 보증을 세울 것을 요구했고 곧 이런 방식이 일반화됐죠.

한국판 ‘PF’의 문제는 바로 여기서 생겼습니다. 시공사의 보증이 개입하면서 더 이상 ‘사업 안에서 손실 분담이 이뤄진다’는 PF의 원칙이 지켜지지 않게 된 것이죠. 그래서 PF 전문가 중에는 “한국의 PF는 엄격한 의미에서 PF가 아니다”고 말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외국과 뭐가 다른데?

외국과 비교하면 한국판 ‘PF’의 문제를 좀 더 자세히 알 수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외국에서는 시행사(디벨로퍼)가 투자자를 모아 특수목적회사(SPC)를 만들면서 부동산 개발사업이 시작됩니다. 이 때 최소 20% 정도는 자기자본을 투입하는 것이 불문율입니다.
 SPC에서 부지를 매입하면 인허가를 받은 뒤 금융회사에서 돈을 빌립니다. 돈을 빌릴 때 부지를 담보로 제공하고 필요하면 보증회사에서 보증을 받습니다. 시행사가 보증을 서는 경우도 있습니다.

<말하자면
이런 식입니다>

 

반면 한국에서는 시행사가 사업계획서를 만들고 돌아다니면서 돈을 빌리는 것이 사업의 시작입니다. ‘현대판 봉이 김선달’로 불리는 시행사들은 토지를 사면서 내야 하는 10%의 계약금조차 없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계약을 하면서 해당 부지를 담보로 제공하고 저축은행에서 계약금을 빌리는 식이죠. 이런 식으로 자기자본 없이 부지 매입과 대출을 동시에 진행하면서 인허가 과정을 밟습니다.

터를 닦는 데 필요한 돈은 시공사를 끌어들여 해결합니다. 시공사가 보증을 서면 저축은행은 이를 믿고 10억 짜리 땅에 대해 12, 13억 원을 빌려줍니다. 담보가치의 100% 이상을 빌려주는 것이죠. 부지 정리가 끝나고 분양 허가를 받으면 저축은행 대출을 은행 대출로 전환합니다. 시행사 대부분이 사업비의 1% 만큼도 자기자본이 없다보니 이처럼 보기에도 아슬아슬하고 취약한 구조를 갖고 사업을 진행하는 것입니다.

  <말하자면
요런 방식이죠>

외국과 한국의 차이는 부동산 개발사업이 무산될 경우에 극명하게 나타납니다. 외국에서 부동산 사업이 무산될 경우 손실이 ‘분산’된다면, 한국은 손실이 ‘전이’되고 ‘확대’되는 것이죠.

외국에서 사업이 무산되면 SPC는 파산하고 디벨로퍼는 투자한 자기자본을 날립니다. 투자자와 금융회사는 SPC의 남은 자산을 팔아 나눠 갖고, 모자라는 돈은 보증보험에서 받거나 그냥 손실로 인식합니다. 물론 디벨로퍼가 보증을 선 경우는 디벨로퍼도 파산하겠지만 투자자와 은행의 손실은 제한적이죠. 공사를 맡은 시공사는 공사비를 떼이는 정도입니다.

반면 한국은 사업이 무산되면 시행사가 일단 망합니다. 시행사는 규모가 작기 때문에 시장에는 별 파장이 없죠. 하지만 시행사가 망하는 순간 보증을 선 시공사에게 빚이 넘겨집니다. 시공사는 공사대금을 못 받는 것은 물론 시행사의 빚도 갚아야 하는 이중 부담을 지게 되는 거죠. 과중한 부담을 못 이기고 시공사가 문을 닫으면 금융회사는 해당 사업 뿐 아니라 시공사에게 빌려준 돈을 모두 떼이게 됩니다. 점점 손실이 늘어나는 셈이죠.

-근데 왜 부실이 커진 거지?

저축은행 PF 부실이 커진 것은
물론 부동산 경기 침체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렇게까지 큰 영향을 받게 된 것에는 저축은행, 건설사, 금융 당국의 책임이 모두 있습니다.

저축은행은 시공사의 보증만 믿고 엄격한 사업성 심사 없이 돈을 빌려줬습니다. 사업 자체를 보는 게 아니라 시공사의 등급만 보고 돈을 빌려준 거죠. 연 15% 내외의 고수익에 눈이 멀다 보니 지방 건설사의 사업성 낮은 대출에도 여지없이 돈이 나갔습니다.

또 저축은행들은 주로 사업 초기 지방자치단체의 허가도 나지 않아 은행들이 대출을 꺼릴 때 돈을 빌려주는 ‘브릿지론’을 주로 담당했습니다. 지난해 말 기준으로 저축은행의 PF 대출 중 브릿지론 비율은 67.6%에 이르죠. 그만큼 리스크가 컸다는 얘깁니다.

PF대출 비중이 지나치게 높은 것도 문제로 지적됩니다. 선진국 금융회사들은 리스크가 높은 PF사업의 비중을 전체 자산의 5~10%로 제한합니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일부 저축은행의 경우 전체 대출의 80%가 PF 대출이었을 정도로 포트폴리오 관리를 소홀히 했습니다. 그러다보니 PF대출 부실이 저축은행의 목줄을 죄게 된 거죠.

한편, 시공을 맡은 건설사들은 실적을 올리기 위해 지급보증을 남발했습니다. PF 대출에 대한 보증은 회계 상 채무로 나타나지 않는다는 점도 이들의 도덕적 해이를 부추겼죠. PF 대출이 갖고 있는 리스크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금융당국의 책임도 적지 않습니다.

-공적자금을 투입하면 해결되나?

더 문제는 공적자금 투입에도 불구하고 저축은행의 PF 부실이 앞으로 더 커질 가능성이 크다는 것입니다.

2008년 말부터 1조7000억 원을 들여 한 차례 부실을 털었지만 부실 PF는 1년 반 만에 4조 원이 새로 생겼습니다. 이번에 ‘정상’ 또는 ‘보통’으로 분류됐던 PF 대출 8조6000억 원도 안심할 단계는 아니라는 거죠. 한 금융당국 관계자는 이번 조치를 ‘언 발에 오줌누기’라고 표현하더군요.

결국 관건은 부동산 경기입니다. 부동산 경기가 계속 침체되면 부지를 매입한 상태에서 분양이 미뤄지거나, 다 지어놓은 상태에서 미분양이 남게 됩니다. 이자부담을 이기지 못한 시행사가 망하고 여기에 지급보증을 선 건설사가 문을 닫으면 저축은행의 부실도 커질 수밖에 없죠. 금융당국의 한 국장은 “이번 올해 안에 부동산 경기가 회복되지 않으면 추가 부실이 불가피하다”고 말하더군요.

밑도 끝도 없이 저축은행에 혈세를 넣느니 부실 저축은행을 모두 망하게 하자는 극단적인 주장도 나옵니다. 하지만 저축은행이 문을 닫으면 5000만 원 이상을 맡긴 고액 예금자들이 피해를 입게 됩니다. 또 저축은행 몇 개가 문을 닫으면 뱅크런(예금 대량 인출 사태)가 나면서 업계 전체가 위험해질 수 있습니다. 이 경우 막 글로벌 금융위기에서 벗어난 국내 금융시스템에도 적잖은 타격을 줄 수밖에 없죠.

결국
정부가 고육지책으로 ‘공적자금 투입’을 선택하긴 했지만 저축은행발 위기는 이제 ‘시작’에 불과한
셈입니다.

 

사실 정부가 할 수 있는 일도 많지 않습니다. 부동산 경기가 곤두박질치는 이상 ‘백약이 무효’하니까요. 그나마 할 수 있는 일이라면 이번 부실에 대해 철저히 책임을 묻는 것과, 앞으로 한국형 PF의 부작용을 줄일 수 있는 대책을 내놓는 것 정도일 겁니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에 불과하긴 해도 안 하는 것 보다는 낫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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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금융 민영화 이번엔 될까?

  들어가며

  지방 선거가 끝나면서 금융권의 현안들이 다시 떠오르고 있습니다.

  KB금융그룹 회장 선임, KB금융지주 및 국민은행에 대한 검사 결과 발표, 저축은행 프로젝트 파이낸싱(PF) 대출 부실 대책….

  하지만 금융권에서 가장 관심을 끌고 있는 주제는 단연 ‘우리금융그룹 민영화’입니다. 어떤 방식으로 민영화되느냐에 따라 외환위기 이후 ‘제2의 금융 빅뱅’이 일어날 수 있는 만큼 모든 금융회사들이 관심을 갖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죠. 정부가 이달 중하순에 민영화 방안을 발표하겠다고 밝히면서 기대와 관심이 점차 고조되고 있는 게 느껴질 정도입니다.

  물론 회의적인 시각도 있습니다. 금융권 사람들에게
‘우리금융 민영화’라는 주제를 던지면 가장 많은 반응이 “이번에는 정말 될까?”입니다. 2001년 우리금융그룹
출범 당시부터 정부가 ‘빠른 시일 안에 민영화하겠다’고 밝혔지만 벌써 10여년이 지난 것을 떠올리며 고개를 젓는 이들도 적지
않죠. 하지만 이번에는 정부의 각오가 예전과 다른 것도 사실입니다. 오늘은 우리금융 민영화를 둘러싼 이러저런 얘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우리금융 민영화 간단사(史)

  외환위기 이전 한국의 5대 은행은 ‘조-상-제-한-서’ 였습니다. 순서대로 조흥, 상업, 제일, 한일, 서울은행이었죠. 이 중 외환위기를 거치면서 살아남은 은행은 아시다시피 하나도 없습니다.

  조흥은행은 신한은행에, 제일은행은 스탠더드차타드(SC)은행에 넘어갔습니다. 서울은행은 하나은행과 합병을 했죠. 문제는 상업은행과 한일은행이었습니다. 두 은행 모두 기업금융에 강점이 있던 은행이었지만 인수할 상대가 마땅치 않았습니다. 결국 정부는 1999년 두 은행을 합쳐 ‘한빛은행’을 탄생시켰죠. 2001년에는 여기에
평화 광주 경남은행 은행을 합쳐 우리금융지주가 출범했습니다.

  우리금융의 대주주는 처음부터 공적자금 12조8000억 원을 투입한 예금보험공사였습니다. 구조조정 과정에서 기존 주식을 완전 감자했기 때문에 초기 지분은 대부분 예보가 갖고 있었죠.

  가능한 빨리 민영화를 한다는 방침을 세우고 2002년 상장했지만 민영화 속도는 느리기만 했습니다. 사실 그럴 수밖에 없었습니다. 우리금융 민영화는 사실 누구한테도 반갑지 않았으니까 말이죠.

  예보는 우리금융 매각을 통해 국민의 혈세인 ‘공적자금’을 최대한 회수해야 할 처지입니다. 그러다보니 팔 때마다 나중에
‘너무 싸게 팔았다’는 지적을 받을까봐 매각에 소극적이었습니다. 최대 매물인 우리금융 지분을 팔고 나면 예보의 일이 확
줄고 그러면 인력과 규모를 줄여야 한다는 현실적인 문제도 있었죠.

  금융 당국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선례를 볼 때 우리금융을 민영화하면
나중에 ‘특혜논란’, ‘헐값매각 논란’, ‘졸속 매각 논란’ 등이 제기될 게 뻔했습니다. 책임지고 나설 사람이 없는 게 당연했죠. 공무원 속성 상 정부의 영향력이 유지되는 것을 은근히 즐기는 측면도 있었습니다.

  한편
우리금융 경영진도 ‘주인이 없는 상태’가 지속되길 원했습니다. 지분이 없음에도 제왕적인 최고경영자(CEO)로서 군림할 수 있었기 때문이죠.

  그러다 보니 지분을 블록세일 방식으로 대량 매각한 것은 상장 후 2년이 지난 2004년 9월(5.7% 매각)이 처음이었습니다. 3년이 지난 2007년 6월에야 5%를 더 팔았죠. 그대로 간다면 완전
매각까지 50년은 더 걸리는 속도였습니다.

  하지만 글로벌 금융위기를 거치면서 분위기가 바뀌었습니다. 황영기 회장 시절 우리금융그룹이 파생상품에 투자를 했다가 대규모 손실이 난 사실이 밝혀지면서, 주인 없는 금융회사의 문제점이 부각됐습니다. 또 “금융 산업 발전을 위해 대형은행이 필요하다”는 논의가 힘을 얻었습니다.

  진동수 금융위원장도 틈만 나면 우리금융 민영화 얘기를 꺼냈습니다. 말만 그렇게 한 게 아니라 행동도 신속했습니다. 2009년 11월에 7%, 2010년 4월에 9%의 지분을 팔아 예보의 우리금융지주 지분을 57%까지 낮췄죠. 이제 본격적으로 지배 지분 ‘50%+1주’ 매각을 논의할 상태가 된 겁니다.

-우리금융 민영화 어떻게 하나?

  우리금융 민영화를 가로막는 장애물은 크게 2가지입니다. 하나는 ‘법적인 규제’고, 다른 하나는 ‘덩치가 지나치게 크다’는 것입니다.

  먼저 금산분리 규제가 있기 때문에 산업자본은 우리금융의 지분을 9%까지만 살 수 있습니다. 국민 여론을 고려하면 외국계 사모펀드(PEF)나 외국 은행에 넘기는 것도 불가능하죠. 결국 국내 금융자본이 인수를 해야 하는데 일반 금융회사는 금융지주회사를 보유하는 것이 법적으로 금지돼 있습니다. 예외적으로 금융지주회사는 지분을 100% 가질 경우 다른 금융지주회사를 보유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미 매각한 민간 지분을 다시 쓸어 담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죠.

  덩치도 문제입니다. 우리금융그룹은 자산 기준으로 국내 최대 금융그룹입니다. 50%+1주를 사려면 4일 종가인 1만5250원 기준으로 6조 원이 넘게 듭니다. 경영권 프리미엄을 30% 정도 생각하면 인수가격이 7~8조 원에 육박하게 됩니다. 이 정도 돈을 낼 수 있는 국내 자본은 눈을 씻고 봐도 없습니다.

  남은 방법은 크게 2가지입니다. 다른 금융회사와 합병을 시키거나, 지배지분을 나눠서 파는 방법이죠.

  합병을 하면 지주회사끼리 합치고 계열사는 단계적으로 통합하면 되기 때문에 절차가 간단합니다. 정부도 우리금융 민영화를 본격적으로 진행할 때부터 ‘합병’을 염두에 뒀던 것으로 보입니다.
진동수 금융위원장은 2월 18일 국회에서 “원칙적으로 정부 보유 지분을 단순 매각하는 것이 바람직하지만 시간이 걸린다면 다른 회사와 합병하는 것도 논의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다분히 합병을 염두에 둔 발언이었죠.

  하지만 발표에 즈음해 금융위는 “모든 가능성을 열어놓고 있다”는 신중한 태도로 돌아섰습니다.

  배경은 크게 두 가지 정도로 추측됩니다. 먼저 ‘합병’을 언급하는 순간 정부의 패가 읽힌다는 것이 첫 번째 이유로 보입니다. 결과적으로 ‘합병’이 될지언정 처음부터 ‘합병’으로 가능성을 제한하면 ‘특혜시비’ 등 나중에 책임을 져야 할 일이 생길 수 있다는 것이죠. 공무원들이 절차와 책임 소재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을 생각하면 이해할 수 있는 일입니다.

  두 번째는 ‘합병으로 대형은행을 만들겠다’는 생각이 바뀌었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최근 미국에서 볼커룰을 거론하면서 은행의 사이즈를 규제하겠다고 나서는 마당에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의장국인 한국이 정책적으로 대형은행을 추구하는 것이 부담스러울 수 있다는 해석이죠.

  당사자인 우리금융그룹은 합병 보다는 분할 매각을 선호하는 듯 합니다. 주인이 없는 지배구조를 그대로 유지하면서, 정부의 입김에서도 자유로울 수 있다고 보는 거죠.

  최근 이팔성 우리금융그룹 회장은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합병이 안 될 경우’라는 단서를 달며 ‘연기금, 국부펀드, 기관투자가 등 재무적 투자자(FI) 4~5곳에 지분 5~10% 씩을 나눠 파는 방식’과 ‘5% 미만으로 지분을 쪼개 파는 완전 분산매각 방식’을 거론했습니다. 하지만 정부는 △경영권 프리미엄을 포기해야 하는 데다 △주인 없는 은행이 전체 금융 산업의 경쟁력을 높이는 데 도움이 안 된다는 점을 들어 부정적인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금융권 ‘제2의 빅뱅’ 눈앞에

금융권에서는 우리금융 민영화 이후 금융권이 어떻게 재편될 것인지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습니다. ‘분할 매각’ 방식이라면 시장에 주는 영향이 크지 않겠지만, ‘합병’ 방식일 경우 금융권의 지각변동이 불가피하기 때문입니다.

현재 국내의 4대 금융그룹은 우리금융그룹, KB금융그룹, 신한금융그룹, 하나금융그룹입니다. 이 중 우리금융그룹의 합병 대상으로는 ‘하나금융그룹’와 ‘KB금융그룹’이 꼽힙니다. 신한금융그룹은 이미 “2014년까지 더 이상의 은행 인수합병(M&A)은 어렵다”며 손을 든 상태죠.

시나리오① 하나금융은 김승유 회장의 의지가 강한 걸로 알려져 있습니다. 업계에서 1~3등과 차이가 있는 4위인 데다 갈수록 차이가 벌어지고 있어 새로운 계기가 필요하다는 절박함도 있죠. (덧붙이자면 김승유 회장은 이명박 대통령의 고대 동기입니다. 물론 이 사실이 약이 될지, 독이 될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할 대목이죠)

하나금융과 우리금융이 합병할 경우 작년 6월 기준으로 자산 373조7000억 원인 대형 은행이 탄생하게 됩니다. 합병 은행의 시장점유율은 31.6%에 이릅니다. 2위인 국민은행(267조1000억 원, 22.6%)을 100조 원 이상 앞서게 되는 것이죠. 이렇게 될 경우 합병
이후 대형은행 3곳의 치열한 경쟁이 예상됩니다.

     

    <하나은행과 우리은행이 합병할 경우.
출처: 동아일보>

시나리오② ‘세계 50위권 대형 은행이 필요하다’는 당위성이 강조될 경우 국민은행과 우리은행의 조합이 탄생할 수도 있습니다. 최근 KB금융지주 회장 후보인 어윤대 국가브랜드위원장도 한 인터뷰에서 ‘해외에서 원전 수주할 때 보증을 설 수 있는 세계 50위 정도 규모의 은행이 나와야 한다’고 강조한 바 있죠.

KB금융과 우리금융이 합병할 경우 은행 기준으로 495조8000억 원의 초대형 은행이 생깁니다. 시장점유율이 42%로 2위인 신한은행의 2배가 넘죠. 이 경우 통합은행이 시장을 주도하는 모양새가 되겠죠. 반면 하나금융그룹의 지위는 더 불안해질 수밖에 없는 조합입니다.

   

  <국민은행이 우리은행과 합병할 경우.
출처: 동아일보>

 

시나리오③과 시나리오④는 우리금융 인수에 실패한 금융회사가 외환은행을 인수할 경우 어떻게 되는지를 그려본 시나리오입니다. 물론 최근에는 외환은행이 외국계 은행에 넘어갈 가능성이 커지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우리금융을 인수하지 못한 은행이 차선책으로 외환은행을 택할 경우 금융시장에 적잖은 영향을 줄 것으로 보입니다.

    <하나은행이 우리은행과, 국민은행이 외환은행과 합병할 경우.
출처: 동아일보>

 

    <국민은행이 우리은행과, 하나은행이 외환은행과 합병할 경우.
출처: 동아일보>

-나가며

몇 년 전에도 우리금융이 마치 금방이라도 민영화될 것 같던 순간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결국 지분을 일부 파는 선에서 마무리됐죠. 이런 일을 몇 번이나 겪은 금융권 인사들은 정부에서 “민영화에 속도를 내겠다”고 말해도 대체로 심드렁한 반응을 보였습니다. 현 정부가 우리금융 조기 민영화를 외쳤을 때도 마찬가지였죠.

하지만 지난해부터 지분을 빠른 속도로 파는 모습을 보면서 저를 포함해 ‘이번에는 정말 될지 모른다’는 기대를 갖는 이들이 늘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어느새 지배 지분 매각을 눈앞에 둔 상황이 됐죠. 금융위가 민영화 방안 발표를 약속한 상반기도 이제 거의 다 지났습니다.

이달 중하순 금융위원회가 민영화 방안을 발표하는 순간부터, 우리금융을 둘러싼 금융권의 움직임이 본격화될 것으로 보입니다. 이번에도 ‘물 건너가는 것 아니냐’는 일부의 회의적인 시각을 불식시키기 위해서라도 정부가 발표를 전후해 좀 더 적극적인 움직임을 보일 필요가 있다는 생각입니다. 책임 소재도 중요하지만 일단은 일을 하고 봐야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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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링크는 후배기자가 부탁한 온라인 토론 관련 설문입니다.

추첨을
통해 영화관람권을 준다니 시간 되는 분들은 한 번씩 하셔도 좋을 듯 합니다.
>

 

http://www.realmeter.net/survey/bukyung/main3.as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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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금융 회장은 누가 될까? 관치(官治) 논란 최종 라운드 돌입

 

<강정원
국민은행장 겸 KB금융그룹 회장 대행>

 

  들어가며

  연초부터 금융권을 뜨겁게 달궜던 ‘관치(官治)금융’ 논란이 이제 막판을 향해 치닫고 있습니다. KB금융지주는 회장 선출 작업에 돌입했고 다음 달에 누가 국내 최대 금융그룹의 수장이 될지 가려지게 됩니다. 이와 별도로 KB금융과 국민은행에 대한 검사 결과도 이르면 다음 달 중 나오게 됩니다. 오늘은 KB금융과 관련한 관치
논란의 막바지 포인트를 짚어 보기로 하겠습니다.

-KB금융 회장 선출, 왜 그토록 관심이 많을까?

최근 금융권에서 가장 ‘핫’한 이슈는 KB금융 회장 선출입니다.

20일 KB금융지주 회장추천위원회(회추위)가 회장후보군 33명을 확정하면서 KB금융 회장을 향한 레이스는 시작됐습니다. 회추위는 다음 달 4일 후보를 10명 이내로 압축한 뒤 최종 인터뷰 대상자를 선정하고 6월 중순 인터뷰를 거쳐 최종 후보를 확정할 방침입니다. 불과 3주 정도 남은 셈이죠.

국내 최대 금융그룹의 수장이 새로 결정되는 것에 관심이 쏠리는 것은 당연합니다. 하지만 지금 ‘KB금융 회장’ 선출에 쏠리는 눈길은 그것만으로 해석하기에는 지나칠 정도입니다.

금융권에서는 KB금융 회장이 선출되면 우리금융 민영화 및 외환은행 매각과 맞물려 전체 금융 산업 재편이 본격적으로 진행될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KB금융도 금융 산업 재편의 주요 플레이어인 만큼 신임 회장은 중요한 역할을 할 수밖에 없죠.

국민은행은 2006년 외환은행 매각의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됐지만 론스타에 대한 ‘외환은행 헐값 매각 의혹’ 수사가 진행되면서 인수를 포기했던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 이후 외환은행에 대한 관심을 한 번도 접은 적이 없죠. 여기에 최근에는 KB금융과 우리금융의 합병설(說)까지 흘러나오고 있습니다. 올해 안에 결론이 날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신임 회장은 선출과 동시에 뉴스메이커로서 언론과 금융권의 관심을 한 몸에 받게 될 것입니다.

 

<강만수
국가경쟁력강화위원장>

-강만수 위원장은 왜 빠졌을까?

지켜보는 쪽에서는 관치(官治)금융 논란이 어떻게 결론지어질지도 관심거리입니다.  (논란의 전말은 예전 포스팅 ‘국민은행을 둘러싼 관치(官治) 논란’ /peacechaos/22714 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모르시는 분들을 위해 간단히 정리하자면 강정원 국민은행장은 지난해 말 정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사퇴하지 않고 면접에 참여했고 KB금융그룹 회장으로 내정됐습니다. 이를 빌미로 금융 당국이 강도 높은 검사를 폈고 이에 따라 강 내정자가 사퇴하자 관치금융에 대한 비판이 높아졌던 것이 올해 초까지의 상황입니다.

이와 관련해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은 2월 “오해를 만들 이유가 없기 때문에 관 출신이 가는 일은 절대 없을 것”이라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이후에 KB금융 회장은 ‘민간 출신’이라는 공식이 사람들의 머리 속에 자리잡았죠.

그런데 이달 초 임석식 KB금융지주 회추위원장이 “관료 출신도 사전에 자동 배제되지 않는다”고 말하면서 ‘그럼 관료 출신이 되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강만수 국가경쟁력강화위원장, 김석동 농협경제연구소 대표, 윤용로 기업은행장 등이 본격적으로 입에 오르내린 것도 이때부터였죠.

특히 강만수 위원장은 이명박 대통령의 최측근이라는 점에서 주목을 받았습니다. ‘개인사정으로 돈이 필요해 KB회장을 원한다고 하더라’는 그럴 듯한 소문도 돌았죠. 금융권에서는 강 위원장의 위상을 감안할 때 후보군에 포함되는 순간 선출된 거나 마찬가지라는 관측을 내놓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20일 확정된 후보군에는 강 위원장이 빠진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강 위원장과 가까운 한 관료는 “처음부터 말이 안 됐다. 돈을 바라고 그런 곳에 갈 분이 아니다”라고 하더군요. 현 정부의 성공을 위해 최근거리에서 대통령을 보좌하고 새로운 정책을 만드는 것에서 성취감을 느끼는 인물이기 때문에 위상이 깎이는 것을 감안하면서까지 민간으로 나갈 이유가 없었다는 거죠.

물론 여기에는 다른 이유도 있습니다. 한 전직 관료는 KB금융 회장 자리를 두고 “청소부 역할을 할 거면 무엇 하러 가겠냐”고 하더군요. 신임 회장의 역할 중에는 금융 당국에 도전한 강정원 행장의 거취를 결정하고, 강 행장이 6년 동안 남겨둔 흔적을 지우는 것도 있을 텐데 관료가 가서 욕먹으면서 그런 일을 하기는 싫다는 얘기겠죠.

 

어쨌든
금융권에서는 어윤대 국가브랜드위원장, 민유성 산은금융그룹 회장, 김석동 농협경제연구소
대표, 이철휘 자산관리공사 사장, 윤용로 기업은행장, 김병기 전 삼성경제연구소
사장, 박철 전 한은 부총재, 전광우 국민연금 이사장, 이화언 전 대구은행장 등이
유력한 후보로 거론되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관치(官治)금융 논란으로 비운 자리를 관료 출신이 장악하는 것에는 부정적인 편입니다. 그 인물이 누구인지 여부와 상관없이 금융시장에서 신(新)관치 시대의 개막으로 받아들여질 가능성이 높습니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규제를 강화하는 분위기라고는 해도 해외에서 한국의 금융시장을 어떻게 바라볼지를 감안하면 민간 출신이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드네요.

 

<김정태
전 국민은행장>

 

-6년
전의 잔혹사 되풀이되나

금융감독원은 2월 10일까지 KB금융 및 국민은행에 대한 본 검사를 마쳤습니다. 검사 결과가 나오는 대로 강정원 행장에 대한 제재 수위도 결정되게 됩니다.

검사를 마치고 3개월 정도가 지나면 결과가 나오는 것이 일반적인데 이번에는 좀 늦어지고 있습니다. “조직 개편으로 담당 부서가 바뀌면서 결과 발표가 늦어지고 있다”는 것이 금감원의 해명입니다. 아마 6월 말은 돼야 검사 결과가 나올 거라고 하더군요.

강 행장의 혐의는 △카자흐스탄 센터크레디트은행(BCC) 인수의 절차상 하자 △영화 투자에 따른 손실 △사외이사들의 이해상충 문제 △커버드본드 관련 손실 등입니다.

금융 당국이 강 행장의 개인적인 비위나 부도덕한 행위를 밝혀내면 강 행장은 ‘관치금융의 피해자’에서 ‘파렴치한 사기꾼’으로 전락하게 됩니다. 반면 금감원이 별다른 혐의를 발견하지 못하면 금융 당국이 금융시장에서 웃음거리가 되겠죠. 둘 다 절벽 끝에 서 있는 셈입니다.

은행장으로서 강 행장의 임기는 10월까지입니다. 하지만 임기를 채울 수 있을지 여부 역시도 검사 결과에 달려있습니다. ‘업무집행정지 처분’을 받으면 물론이고 그 다음 단계인 ‘문책경고’를 받더라도 임기를 채우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

강 행장을 더 압박하는 것은 ‘문책경고 이상의 중징계를 받을 경우 연임은 물론 3년간 다른 금융회사에서도 임원을 할 수 없다’는 규정입니다. 사실상 금융인으로서는 사형선고와 다름없는 것이죠. 실제로 강 행장의 전임자인 김정태 행장이 2004년
당국에 도전했다가 ‘문책경고’ 처분으로 금융권을 떠나야 했습니다. 6년 전의 잔혹사가 되풀이될지도 지켜봐야 할 포인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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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직 종사자도 '유리알 지갑'으로

  프롤로그

  정부는 4월부터 변호사 의사 등 전문직과 예식장, 학원 등 현금거래가 많은 업종에 대해서는 30만 원 이상 거래할 때 현금영수증을 의무적으로 발급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이들 업종 사업자들은 소비자가 요청하지 않아도 현금영수증을 의무적으로 발급해야 합니다.
발급하지 않은 사실을 신고하면 미발급 금액의 20%(최대 300만 원)을 포상금으로 주는 세(稅)파라치 제도도 도입했죠. 대신 사업자는 과태료로 50%를 내야 합니다. 

  그러면 한 달 만에 어떤 것들이 바뀌었을까요? 정말 전문직 사업자들은 모두 현금영수증을 발급하고 있을까요? 진짜 전문직 탈세가 사라졌다고 봐도 될까요? 그래서 저희는 한 달 동안의 성과를 점검해보기로 했습니다.

   (전문직 현금영수증 의무화의 배경에 대해서는 3월 25일에 올린 포스트를 참고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관련 기사는 http://news.donga.com/3/all/20100506/28119644/1
http://news.donga.com/3/all/20100506/28141455/1 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가. 적발 사례

  먼저 과태료를 납부한 첫 번째 케이스를 들여다볼까요?

  4월 초 대전의 S예식장에서는 하객 수백 명이 참석한 가운데 성대한 결혼식이 열렸습니다. 결혼식 직후 신랑과 신부 측 혼주는 각자 받은 축의금을 합쳐 결혼식 비용 1500만 원을 냈죠.
 예식장 측은 전액을 현금으로 받았지만 현금영수증을 발급하지 않았습니다. 신부 측 관계자 A 씨는 예식장이 지난달부터 현금영수증 의무 발급 업종이라는 사실을 떠올리고 다음 날 사전견적서를 첨부해 관할 세무서에 신고했죠.

  세무서는 현지조사를 거쳐 지난달 23일 예식장 측에 과태료를 부과하겠다고 통보했습니다. 예식장은 소명을 포기하고 자진납부를 선택한 뒤 지난달 말 600만 원의 과태료를 냈죠. 과태료는 원래 미발급 금액의 50%인 750만 원이지만 자진 납부했기 때문에 10%포인트(150만 원)을 깎아준 것입니다. 국세청은 조만간 A 씨에게 신고 포상금으로 300만 원을 지급할 예정이라고 하네요.

  국세청에 따르면 이 예식장 외에도 4월 한 달 동안 50여 건의 신고가 더 들어왔다고 합니다. 신고 건수는 부동산이 20건으로 가장 많았고 병원 15건, 예식장 5건 순이었다고 합니다. 병원에는 종합병원도 포함돼 있었다고 하네요.

  

 

  나. 전전긍긍하는 전문직들

  어떤 분은 50건이 너무 적다고 생각하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실제로 전문직 종사자들에게 어떻게 분위기가 바뀌었는지 들어봤습니다. 물론 당사자들인 만큼 어느 정도 가감해서 읽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변호사 A 씨 (소규모 로펌 소속)

  “아직까지는 10명 중 7~8명은 현금으로 결제한다. 그래도 과거보다 신용카드 사용비율이 늘어난 편이다. 손이 많이 안 가는 사건의 경우 착수금이 500만 원이면 부가가치세 10%를 합쳐 550만 원을 받는다. 예전에는 현금으로 받으면서 약간 깎아줄 수 있었다. 고객들도 그걸 요구했고…. 하지만 지금은 현금영수증을 발급해야 해 깎아줄 수가 없다. 깎아줄 수가 없다고 하니 신용카드로 결제하는 고객이 늘었다. 사실 변호사 업계도 요즘에는 경쟁이 치열해 못 이기는 첫 깎아줄 때도 있긴 하다. 550만 원에서 50만 원 정도 깎아줄 때도 있는데, 그래도 현금영수증은 발행해야 하니 우리 입장에서는 손해다.”

  변호사 B 씨 (대형 로펌 소속)

  “우리는 큰 회사라 회계파트에서 관련 사안을 전담하고 있다. 그래서 피부에 닿게 바뀐 건 잘 모르겠다. 하지만 얘기를 들어보면 세파라치와 신고포상제를 도입한 것이 큰 영향을 주고 있는 것 같다. 무신고 소득이 확 줄어들지 않을까. 영향은 개인변호사 사무실과 형사사건에 집중될 것이다. 형사사건의 경우 전관예우를 활용하기 위해 검찰 출신 변호사를 거액을 주고 선임서 없이 선임하는 경우가 있다. 이런 경우가 줄어들고 있는 것 같다. 사건을 가져다주고 일정액을 받는 브로커들도 위축될 걸로 본다.”

  서울시내 예식장 매니저 C 씨

  “예식장에선 축의금으로 바로 계산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현금 결제가 많다. 의무화 시행 전에도 요구하는 사람들에게는 현금영수증을 끊어줬다. 제도가 시행되긴 했지만 아직 현금영수증 발급 안하는 대신 할인을 해주는 관행이 약간은 남아 있다. 먼저 ”현금으로 낼 테니 깎아 달라“고 말하는 손님도 있다. 서로 좋기 때문에 하긴 하지만 할인은 할인대로 받고 신고해서 포상금도 받으려는 사람이 있을까봐 찜찜하긴 하다. 일부 고급 예식장들은 아예 현금 할인 없앤 곳도 있다고 하더라. 점차 현금 할인이 없어지는 쪽으로 가지 않을까 싶지만 쉽게 없어지지는 않을 것 같다.”

  최근 결혼한 D 씨

  “지난달에 서울의 한 전통 혼례식장에서 결혼을 했다. 1200만 원을 현금으로 계산하면서 현금영수증을 받지 않는 대신 할인을 해달라고 제안했다. 보통 5% 정도 할인해 주는 게 관행이라고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예식장에서는 신고하면 과태료를 내야 한다면서 거절하더라. 신고 안 한다고 해도 요지부동이어서 결국 정가를 내고 현금영수증을 받았다.”

  장례식장 관계자 E 씨

  

  “관례적으로 현금으로 지급하는 게 보편화 돼 있는데 갑자기 시행해 업계가 술렁이고 있다. 너무 갑작스런 조치라 장례식장 운영에 어려움이 많다. 기존에 현금으로 했던 분들도 다시 찾아와서 현금영수증을 끊어 달라고 하는 경우도 있다. 규모가 큰 장례식장은 나중에 문제가 될까봐 현금영수증을 발급하고 있지만 영세 업체들은 경영이 어렵다 보니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해 눈치만 보고 있다. 현금영수증을 발급하면 세금이 10~20% 늘어난다고 보면 된다. 1년 정도 유예기간을 주었으면 했는데 안 주더라.”

  치과의사 F 씨

  “큰 병원은 현금으로 결제하는 경우가 많았다. 임플란트 몇 개해서 1200만~1300만 원이 나오면 1000만 원 해줄게 현금으로 해주라 이런 식이었다. 명동이나 강남의 잘나가는 대형 병원이 그런 경우가 많았다. 이번 조치도 편법의 여지가 없는 건 아니다. 30만 원 미만으로 쪼개서 여러 번 결제하면 되는 거 아니냐. 그래도 상당부분 탈세방지에 효과가 있을 것 같다. 강남 병원들도 그렇고 일선 의사들이 상당히 긴장하고 있다. 시행 초기에 걸리면 ‘시범케이스’로 찍힐 수 있다는 부담도 있다.”

다. 현금영수증 의무화로 얻은 것

  그럼 실제로 현금영수증 의무화는 얼마나 효과가 있었을까요?

  국세청은 최근 현금영수증 의무 대상 업종의 현금영수증 발급액에 대해 샘플 조사를 했습니다. 결과는 그야말로 대박이었죠. 작년 4월 대비 현금영수증 발급액이 50% 늘어난 걸로 나온 거죠. 인플레이션과 현금영수증 제도 확산 등으로 해당 업종의 현금영수증 발급액이 매년 10%씩 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추가로 늘어난 40%는 현금영수증 의무화의 영향이라고 볼 수 있는 거죠.

  샘플 조사 결과가 믿을 만 하다고 가정하면 이렇게 계산을 해볼 수 있습니다. 지난해 현금영수증 의무화 업종 사업자 23만 명이 발행한 현금영수증은 7조5000억 원이었습니다. 올해 그보다 50% 정도 늘어난다고 가정하면 2조8125억 원 정도 늘어나는 셈입니다. (지난해 발행액이 1~12월까지고 올해는 제도를 4월부터 시행했으니까요)

  그런데 사실은 그보다 조금 더 늘어날 가능성이 높습니다. 현금영수증 의무화 대상은 4월부터 제공한 서비스에만 해당됩니다. 예를 들어 변호사의 경우 3월에 재판에서 변호를 하고 이겨서 4월에 성공보수를 받는 경우는 해당이 안 됩니다. 전문직들의 서비스가 대개 기간이 길다는 점을 감안하면 4월보다는 5월에, 5월보다는 6월에 조금 더 늘어날 것으로 추측할 수 있죠. 그래서 국세청은 올해 현금영수증 의무화로 노출되는 세금이 최소한 3조 원은 될 걸로 보고 있습니다.

  그러면 세수(稅收)는 어느 정도 늘어날까요? 몇몇 연구결과에 따르면 신용카드 사용액이 1원 늘어날 때마다 걷는 세금은 0.1원 정도 늘어난다고 합니다. 이를 그대로 적용하면 증세 없이 3000억 원의 세금을 더 걷을 수 있는 셈입니다. 이는 지난 한 해 봉급생활자 30만 명이 낸 근로소득세와 맞먹는 금액입니다. 고소득 자영업자 23만 명이 봉급생활자 30만 명 분의 세금을 더 내는 거죠.

라. 현금영수증 의무화 어떻게 대처하나

  학원 업계도 이번 현금영수증 의무화로 큰 타격을 받은 업종입니다. 그러다보니 각종 편법도 생겨나고 있다고 하네요.

  한 학원 관계자가 전해준 방법은 이렇습니다. 이 학원은 중학생 종합반에 대해 한 달에 31만 원을 받는다고 합니다. 하지만 단골일 경우에는 합의하에 2만 원 정도 깎아주면서 현금영수증을 발급하지 않고 넘어갑니다. 양 측이 합의한 거래금액이 29만 원인만큼 현금영수증을 발급하지 않아도 법적으로 문제가 없죠.

  학원가에는 세파라치 식별법도 나돌고 있습니다. 자녀 2명분의 학원비를 한꺼번에 결제하거나 학원비 3개월 치를 한꺼번에 내는 방법으로 결제액을 30만 원 이상으로 높이면서 현금영수증을 요구하지 않으면 수상하다는 식입니다.

  부동산 중개업소 중에는 아예 현금영수증 가맹점에서 탈퇴하는 사업자도 적지 않습니다. 작년 신고 수입이 2400만 원 미만이면 현금영수증 의무화에 포함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이용하는 거죠. 현금영수증 가맹점에서 탈퇴하면 영수증 발급을 최소화하면서 계속 연간 수입을 2400만 원 미만으로 유지할 수 있다는 계산입니다. 이 얘기를 듣는데 좀 얄밉긴 하더군요.

  그런가하면 현금영수증을 제대로 발급하면서도 좌불안석인 전문직 종사자도 적지 않습니다. 소득이 제대로 노출되면 갑자기 늘어난 소득에 대해 세무서에서 관심을 갖고 세무조사에 나설지도 모른다는 거죠.

 

  한의사 한 명은 “계산해보니 4월 한 달 동안에만 전년 동월 대비 1000만 원은 더 수입이 노출된 걸로 나오더라. 지난해 신고한 연간소득이 2억 원이었는데 올해는 1억 원 이상 늘어날 것 같다. 세무서에서 소득이 급증한 이유가 뭐냐고 물으면 할 말이 없어 고민”이라고 했습니다.

마. 국세청 “유흥업소도 동작 그만”

  국세청은 현금영수증 의무화의 효과가 기대 이상인
것으로 나오자 이르면 하반기부터 대상을 유흥업소, 노무사, 산후조리원으로 확대하겠다고 나섰습니다.

  유흥업소 중에는 룸살롱, 단란주점, 나이트클럽, 카바레 등이 해당됩니다. 룸살롱과 단란주점의 소득탈루율(전체 소득 중에서 신고하지 않은 소득 비율)이 70~90%에 이르는 점을 감안하면 좀 늦었다는 감도 있습니다.

  물론 유흥업소에서 현금을 주는 사람 중 상당수가 정체를 가리려고 하는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제도가 시행되면 고객이 신분노출을 우려해 현금영수증 발급을 거부할 경우에도 국세청 지정코드(010-000-1234)로 현금영수증을 발급해야 합니다.

  국세청 관계자는 “현금으로 계산한다고 할인을 해줬다가 영수증 미발급으로 적발돼 과태료와 누락된 세금을 물고 나면 남는 게 없을 것”이라면서 “유흥업소 입장에서는 신분노출을 우려해 발급을 거부하는 것인지, 아니면 신고해서 포상금을 타려고 하는 것인지 모르기 때문에 발급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자신하더군요.

 

 

  ‘유리알 지갑’으로 불리는 직장인의 처지에서 보면 현금영수증 의무화는 어찌 보면 당연한 처방입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상류층인
전문직 종사자들에게 세금을 제대로 걷기 위해 이렇게까지 해야 하냐는 서글픈 생각도 들더군요.

  물론 경제학적으로 보면 인간은 누구나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하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세금은 어떻게든 적게 내려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죠. 하지만 이번 현금영수증 의무화로 전문직 종사자들이 이것 하나만은 느꼈으면 합니다. 사회의 정당한 규율을 따르지 않을 때는, 결국 타율에 의해 규제를 받을 수밖에 없다는 것 말이죠.

  ‘왜 우리를 잠재적인 범죄자로 취급하냐’고 말하기 전에 ‘왜 사람들은 전문직 종사자 현금영수증 의무화를 환영할까’를 생각해보면 답은 나와 있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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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에 세금을 매긴다고? 은행세 A부터 Z까지

 

 

  최근 국제사회에서 은행세(Bank levy)에 대한 논의가 본격화되고 있습니다. 그러면 은행세는 무엇이고, 왜 걷으려 할까요? 오늘은 은행세에 대해 얘기해 보겠습니다.
(기사를 보시려면 20일자 경제섹션 7면 http://news.donga.com/3/all/20100419/27688785/1 을 참고하시길)

-은행세(Bank levy)가 뭔데?

은행세를 한 마디로 규정하기는 참 어렵습니다. 뚜렷한 정의나 명확한 사례가 있는 게 아니고, 최근 논의되는 과정에서 점차 모습을 갖춰가는 단어이기 때문이죠. 용어도 ‘금융위기 책임비용’, ‘오바마세’, ‘징벌세’, ‘Stability Fee’ 등 여러 이름으로 불리고 있습니다. 나라마다, 전문가마다 생각하는 은행세의 모습도 차이가 있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해를 돕기 위해 한 마디로 정리하면 ‘각국 정부가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은행에 투입한 국민의 세금을 회수하거나 금융위기가 재발(再發)하는 것을 막기 위해 금융회사로부터 걷는 돈’이라고 보시면 되겠습니다. 그래도 감이 안 오신다면 좀 더 읽어보시면 아실 수 있을 겁니다.

-왜 걷는데?

은행세를 걷는 이유는 크게 4가지입니다. (국제금융센터 보고서 ‘전세계 은행세 도입 현황 및 논의 점검’ 참고)

1) 글로벌 금융위기에 투입한 세금 회수 :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각국 정부는 은행에 막대한 공적자금을 투입했습니다. 당시에도 ‘사기업인 은행의 손실을 국민의 세금으로 덮어주는 것이 맞냐’는 논란이 있었죠. 그러나 주요 은행들이 문을 닫는 순간 한 나라의 금융시스템 전체가 무너지기 때문에 정부로서도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습니다.

그런데 올해 초 금융위기에서 조금씩 벗어나면서 ‘그 때는 어쩔 수 없이 돈을 지원했지만 이제 은행들도 경영이 정상화됐고 하니 돈을 돌려받아야 하는 것 아니냐’는 논의가 제기됐습니다. 정부가 돌려받지 않으면 결국 은행의 주주나 경영진이 국민의 세금을 나눠먹는 형식이 되는데 그건 정당하지 않다는 거죠.

2) 향후 금융위기 대비 비용 마련 : 지금까지 금융시장은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거품’과 ‘붕괴’를 반복해 왔습니다. 그리고 붕괴의 단계에 접어들 때마다 정부는 돈을 퍼부어 금융시장의 붕괴를 막았죠. 그러다 보니 “미리 금융위기에 대비할 수 있는 돈을 마련해 두자”는 목소리가 나왔습니다. 지나친 거품도 막고 붕괴가 일어날 때도 국민의 세금을 아낄 수 있으니 일석이조라는 것이죠.

3) 재정수입 확보 : 금융위기를 거치면서 각국 정부는 재정이 급속도로 악화됐습니다. 특히 ‘유럽의 돼지들(PIGS)’로 불리는 그리스, 포르투갈, 이탈리아, 스페인은 심각한 재정적자로 국제사회의 우려를 사고 있죠. 곳간을 채울 필요성이 제기되면서 각국은 세원(稅源)을 발굴하고, 복지혜택을 줄이고, 세금을 올리는 데 열을 올리고 있습니다. 은행세는 특히 금융위기 당시 수혜를 입은 금융회사들에게 걷는 돈이기 때문에 정부 입장에서도 ‘정당하게 걷을 수 있는 돈’으로 인식되고 있죠.

4) 금융회사들의 지나친 행태 규제 : 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지면서 금융회사들의 무분별한 몸집 불리기와 영업 행태가 도마에 올랐습니다. 큰 금융회사는 결국 정부가 지원해 준다는 ‘대마불사(大馬不死)’도 다시 한 번 증명됐죠. 그러자 위기가 끝나기가 무섭게 과거의 영업행태를 답습하는 금융회사들도 나타났습니다.

보다 못한 정부는 은행세를 대안으로 들고 나왔습니다. 자산이나 부채에 세금을 부과하면 지나친 몸집 불리기를 막을 수 있고, 자본 거래에 세금을 부과하면 급속한 투기성 자금 유·출입을 막을 수 있다는 거죠.

-누가 시작했나?

처음 은행세 논의를 제기한 것은 고든 브라운 영국 총리라는 말도 있지만, 구체적으로 부과 방침을 밝힌 것은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처음입니다.

 

 

<1월
14일 오바마
대통령이 백악관에서 은행세 부과 방침을 밝히는 모습. 출처: 동아일보 자료사진>

그는 1월 중순 연설에서 “국민에게 빚진 돈을 마지막 한 푼까지 거둬들이는 것은 대통령의 임무”라며 자산 500억 달러 이상인 금융회사 50곳에 세금을 매기겠다고 밝혔죠. 경제위기 극복을 위해 투입된 공적자금 7000억 달러 중 손실이 예상되는 1170억 달러를 세금을 매겨 걷겠다는 것이었죠.

구체적으로 자산 500억 달러 이상인 금융회사 50곳에 총자산에서 기본 자본과 연방예금보험공사(FDIC) 보증 예금을 제외한 금액의 0.15%를 매년 세금으로 걷겠다고 했습니다. 일단 10년간 900억 달러를 돌려받되 10년 후에도 국민의 혈세(血稅)가 다 회수되지 않으면 기간을 연장해서라도 전액 돌려받겠다는 강경한 방침이었죠.

당시 미국에서는 금융위기 때 국민의 세금을 수혈 받아 살아난 은행들이 사상 최대의 보너스 잔치를 벌이며 국민의 공분을 사고 있었습니다. 오바마 대통령은 “은행들이 수십억 달러를 보너스로 줄 자금 여력이 있다면 그들은 납세자들에게 받은 돈도 되돌려줄 수 있을 것”이라고 일갈했고 이 방침은 미국 국민들의 높은 지지를 받았습니다.

 그러자 영국, 독일, 프랑스가 뒤를 이었습니다.

  영국은 세계적으로 공통의 기준을 마련한 뒤 각국이 함께 도입하자고 한발 더 나갔습니다. 공통 기준을 만들 때 지켜야 할 8가지 원칙도 발표했습니다. △국제적인 조율이 필요하고 △수익은 해당 정부가 사용해야 하며 △시스템 위험과 관련된 모든 금융회사에 적용해야 한다는 등의 내용이었죠.

 독일은 3월 31일 은행들로부터 매년 12억 유로의 은행세를 걷어 안정 펀드를 만들겠다는 계획을 발표했습니다. 이날 크리스틴 라가르드 프랑스 경제장관은 사상 처음으로 독일 각의에 참석해 은행세 도입 방침을 지지한다고 밝혔죠.

 물론 은행세에 반대하는 나라도 있습니다. 캐나다는 다른 나라처럼 금융위기를 겪지 않은 만큼 국내 은행으로부터 세금을 걷을 생각이 없다고 밝혔습니다. 금융산업을 육성하고 싶어 하는 개발도상국 중에도 규제를 추가하는 것에 부정적인 나라가 적지 않습니다.

-어디까지 진행됐나?

은행세를 부과하겠다고 나선 각국 정부의 입장은 비슷하면서도 조금씩 다릅니다. 예를 들어 미국이 ‘공적자금 회수’에 중점을 두고 있다면 프랑스와 독일은 ‘위기를 대비한 기금 마련’에 무게를 싣고 있습니다. 영국은 국제 금융거래에 세금을 부과하는 방식을 선호하고 있지만 미국 독일 오스트리아 등은 자산이나 부채에 세금을 부과할 방침이죠.

△국민의 세금이 들어간 금융회사에게만 부과할지 아니면 모든 금융회사에 부과할지 △공적자금을 회수할 때까지 일시적으로 부과할지 아니면 영구히 부과할지 △걷은 돈을 정부 재정에 통합해 관리할지 별도 기금으로 관리할지 등을 두고도 각국의 견해는 조금씩 다릅니다.

그런가 하면 한국 정부는 ‘국제적인 논의 동향에 맞춰 신중하게 접근하겠다’면서 차분한 자세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내부적으로는 은행세가 도입되면 그동안 골칫거리였던 외화자금 유·출입을 줄일 수 있어 금융시장 안정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점을 들어 반대하지는 않고 있습니다.

원칙적으로 말하면 각국이 자신에게 맞는 은행세를 도입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럴 경우 다국적 금융회사들이 유리한 국가를 찾아다닐 수도 있고, 국제 금융자본이 한꺼번에 이동하면서 혼란을 초래할 수도 있죠. 그래서 국제통화기금(IMF)이 나섰습니다.

국제통화기금(IMF)은 23일 미국 워싱턴에서 열린 G20 재무장관회의에 금융권의 금융위기 비용 분담 방안에 대한 중간 보고서를 제출했습니다. △비예금성 부채에 세금을 부과하는 금융안정부담금 방식과 △일정 수준을 넘어서는 이익과 보너스에 세금을 부과하는 금융활동세를 제안했죠. 다만 외환거래에 세금을 부과하는 토빈세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견해를 밝혔습니다.

G20 재무장관들은 은행세 도입 여부와 구체적인 방법을 두고 격론을 벌였습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선진국과 개도국 사이의 입장 차이를 줄이지 못해 성명서에는 들어가지 못했다는 후문입니다.

-그럼 어떻게 되나?

IMF는 은행세에 대한 각국의 주장을 반영해 6월 부산 재무장관 회의에서 다시 보고하겠다고 했습니다.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은 회의 직후 “11월 서울 정상회의에서 공통분모가 확정되고 대안이 제시될 것 같다”고 말했죠.

국제적인 합의와 관계없이 이미 은행세 부과 방침을 밝힌 나라들은 자체적인 은행세 부과 방안을 계속 추진할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한국을 비롯한 상당수의 국가들은 국제공조를 지켜본 뒤 은행세 부과 방침을 확정할 방침입니다.

이제 은행세에 대한 논의의 장은 한국으로 넘어왔습니다. 뜨거운 여름이 지나면 서울에 전 세계 금융회사와 정부들의 이목(耳目)이 집중될 것입니다.

저 개인적으로는 어떤 형태로든 금융회사에 대한 과세는 불가피하다고 생각합니다. 정부가 세금을 동원해 위기 때마다 금융회사에 돈을 퍼주는 일은 이제 그만둘 때가 됐죠. 위기를 통해 배운 게 있다는 사실도 보고 싶습니다.

이제 앞으로 반 년, 국제 사회가 생산적인 논의를 통해 결론에 이를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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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으로 전통주 사 보니…규정은 50병 실제론 수백 병!

  4월부터 인터넷을 통해 안동소주, 한산소곡주 등 이름만 듣던 전통주를 살 수 있게 됐습니다. 정부가 전통주 보급의 필요성을 인정해 인터넷을 통한 전통주 판매를 예외적으로 허용하기로 한 거죠.

  정부가 그 동안 △국민 건강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 △청소년 구입 가능성 △탈세 우려 등을 이유로 인터넷 주류 판매를 엄격하게 금지해왔던 것을 감안하면 획기적인 조치입니다.

  물론 아무 곳에서나 살 수 있는 건 아닙니다. 전통주를 사이버 공간에서 팔 수 있는 곳은 우체국 쇼핑몰(mall.epost.go.kr), 농수산물유통공사 쇼핑몰(www.eatmart.co.kr), 각 제조업체의 홈페이지뿐입니다. 정부에서 관리할 수 있는 곳들로 판매처를 제한한 거죠.

  또 청소년들이 술을 사는 것을 막기 위해 성인 인증을 거치도록 했고, 1인당 하루에 50병까지만 살 수 있게 했습니다.

  그런데…… 그 규정은 잘 지켜지고 있을까요?

  판매
첫 날인 1일 제가 직접 인터넷 쇼핑몰에 들어가 전통주를 사 봤습니다. 오늘은 그 얘기를 해 보려고 합니다.

(취재 후 쓴 기사는 http://news.donga.com/Economy/New/3/01/20100403/27324483/1&top=1 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우체국
쇼핑몰은 전통주 판매 개시를 대대적으로 홍보하고 있었습니다>

  먼저 우체국 쇼핑몰 홈페이지에 들어가 로그인을 했습니다. 메인페이지에서는 전통주 온라인 판매를 기념해 세일 행사를 하고 있더군요. 왼편에 있는 ‘한국 전통주’ 코너를 클릭하면 상품리스트가 나옵니다.

  저는 고민하다 ‘함양지리산팔선주’ 360mL 3병 세트(1만2600원)을 골랐죠. 쌀을 주 원료로
하고 지리산의 약초와 오미자 등을 가미해 만든 술이라고 합니다. 17세트를 주문하니 주민등록번호를 넣으라고 나옵니다. 주민등록번호를 넣으니 공인인증서 암호를 넣으라고 하더군요. 성인인증 절차를 2단계로 만든 거죠.

 

  성인인증 절차를 통과하고 상품을 받을 주소를 입력한 뒤 신용카드로 결제를 했습니다. 국세청이 정한 한도는 ‘하루 50병’이지만 51병(3병씩 17세트)을 사도 별 문제가 없더군요. 내친 김에 ‘부안뽕주’ 375mL 5병 세트(1만8750원)를 33세트 더 주문했습니다. (그 이상 사볼까 했는데 34세트부터는 못 사게 막더군요)

 

   우체국 쇼핑몰에서만 모두 216병의 전통주를 산 거죠. 국세청이 정한 규정의 4배가 넘는 술을 샀지만 별 문제가 없었습니다. 이후에 농수산물유통공사 쇼핑몰에 가서 ‘무주구천동 산머루주’ 40병을 추가로 주문했습니다.
결국 이날 구입한 술은 모두 256병이었습니다.

 

  
 <우체국 쇼핑몰에서 이렇게 216병을 샀습니다>>

 

  그럼 하루에 50병이라는 규정은 어떻게 된 것일까요? 여기까지 읽으신 분들은 짐작하시겠지만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은 크게 두 가지 이유 때문입니다.

 ① 쇼핑몰의 문제

  먼저 제조업체들이 여러 병을 한 세트로 파는데 쇼핑몰에서 이를 한 병으로 취급한 것입니다. 관련 규정에서 정한 ‘50병’이라는 기준을 ‘50세트’로 해석한 것이죠. 우체국 쇼핑몰에 전화해서 물어봤더니 “조만간 시스템을 고쳐서 병 단위로 집계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하더군요.

  그런가 하면 농수산물유통공사 쇼핑몰도 병 단위로 집계를 할 수 없기는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래서 여기는 아예 하루에 살 수 있는 물량을 10세트로 제한해 놨더군요. (가장 많이 올라온 세트가 5개들이 세트니 50병 이상 살 여지를 원천적으로 차단한 것입니다) 여기서 문제는 1병씩 올라온 상품을 여러 개 산 사람들은 10병까지밖에 못 산다는 점입니다. 일종의 과잉 규제를 하고 있는 셈이죠. 농수산물유통공사 담당자도 역시 “조만간 시스템을 고치겠다”고 하더군요.

  ② 규정의 문제

  두 번째는 규정상의 문제입니다. 국세청의 ‘하루 50병’ 규정은 쇼핑몰과 제조업체 각각에 적용됩니다. 다른 말로 하면 쇼핑몰 2곳과 제조업체 8곳에서 각각 50병씩 500병을 사더라도
문제가 안 된다는 말이죠. (물론 아직까지 자체 홈페이지에서 전통주를 판매하는 제조업체가 많지는 않습니다)

  그럼 여기서 잠깐, 왜 국세청은 하루 50병을 한도로 제시했을까요?

  사실 50병이라는 수량에 특별한 근거가 있는 건 아닙니다. 국세청은 인터넷을 통한 주류 판매는 금지했지만 우체국을 통한 통신판매는 그 동안에도 전통주에 한해 제한적으로 허용해 왔습니다. 이 때 기준은 하루 20병이었고 추석 및 설날 전 20일 이내에만 판매 수량이 하루 50병으로 늘었죠.

  그러다 전통주 육성의 필요성이 제기되면서 지난해 7월 평일에도 통신판매 기준을 하루 50병으로 늘렸습니다. 그게 인터넷에도 그대로 적용되면서 하루 50병이 기준이 된 거죠.

  문제는 판매채널의 수입니다. 기존에는 우체국에서만 50병까지 팔았지만, 인터넷으로는 채널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수 있다는 점을 간과한 것 아닐까요? 50병씩 10곳에서 사면 500병인데 말이죠.

  다른 논점도 제기될 수 있습니다. 성인인증만 제대로 한다면 판매 수량을 제한할 필요가 있냐는 것이죠. 하지만 세금 측면에 있어서는 제한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 국세청의 설명입니다.

  술집 사장이 거래처에서 주류를 구입할 때는 세금계산서를 뗍니다. 그러면 나중에 주류를  팔아 생긴
매출을 숨길 수가 없죠. 그런데 인터넷으로 주류를 대량 구입하면 이를 술집에서 판 뒤 매출을 숨기고 세금을 탈루할 수 있다는 겁니다. (대형할인점에서 술을 많이 사면 신상명세를 적으라는 것도 마찬가지 이유에서입니다) 또 국민 보건 측면에서도 인터넷에서 술이 지나치게 많이 거래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이 국세청의 주장입니다.

  (첨언하자면 여기까지 글을 읽다가 그래, 하면서 무릎을 친 술집 사장님들은 다시 자세를 고쳐 잡으시는 게 좋을 듯 합니다. 문제점을 지적하니 국세청 관계자는 “지나치게 많은 전통주를 인터넷에서 구입한 사람에 대해서는 주류업체의 판매대장을 점검해 필요하면 탈세 여부를 조사하겠다”고 하시네요)

  국세청의 주장에도 일리는 있지만 문제는 실효성입니다. 하루 50병 이상이라는 규정에 사회적인 합의가 이뤄졌다면 인터넷에서 유명무실해지는 것은 막을 필요가 있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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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몇
가지 더 지적하자면 초기라서인지 시스템이 불안정한 모습도 적잖게 나타났습니다. 우체국 쇼핑몰은 그나마 이용할 만 했지만 농수산물유통공사 쇼핑몰은 정도가 좀 심하더군요.  결제를 하려고 하니 공인인증서를 인식하지 못한 적도 있었고, 화면에 나타난 상품을 구입하려고 클릭하니 ‘유효하지 않다’는 메시지가 뜨기도 했습니다. 이용하다 갑자기 쇼핑몰 창이 닫히는 일도 자주
생겨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얼마
후 다시 해보니 정상적으로 되더군요>

 

 

  설명이 불친절한 것도 문제라는 지적입니다. 우체국 쇼핑몰의 경우 그나마 한 페이지 이상 전통주에 대한 설명이 있어서 읽어보고 구입할 수 있었습니다. 반면 농수산물유통공사 쇼핑몰은 일부 상품의 경우 원료, 제조업체는 고사하고 용량,
알콜도수조차도 안 나온 상품도 있었습니다.

 

 

<용량도 안 나와 뭘 보고 사라는 건지 좀 황당하더군요>

 

  종류가 부족한 것도 아쉬웠습니다. 우체국 쇼핑몰에서 살 수 있는 전통주는 62종, 농수산물유통공사는 23종에 불과했습니다. 우정사업본부에 물어보니 “인터넷 통신 판매 신고증을 받은 업체들이 아직 많지 않기 때문”이라고 설명하더군요. 

 

  최근
막걸리가 외국에서도 인기라고 합니다. 막걸리의 인기도 반갑지만 개인적으로는
한국에서도 위스키, 꼬냑 못지 않은 명품 술이 하나쯤 나왔으면 하는 바람도 있습니다.
지적한 부분이 보완돼 이번 기회로 전통주의 저변을 크게 넓어질 수 있기를, 그래서
정말 세계적인 명품 술이 탄생할 수 있기를 기대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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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식장, 장례식장 현금영수증 안 주면 신고! (세파라치 정리)

 

  이번 글은 세금 분야에 대한 거지만, 재테크에도 도움이 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다음 달부터 시행되는 전문직 현금영수증 발급 의무화와 세(稅)파라치에 대한 것이니까요.

프롤로그

  이야기는 지난해 7월 시작됩니다. 기획재정부 세제실 관계자와 야외에서 저녁 식사를 하다 전문직의 탈세를 막아야 한다는 논의가 제기됐습니다. 어떤 방법이 있을지 나름대로 머리를 굴리고 있는데 동석한 선배 기자가 말을 던졌습니다.

  “세파라치 하세요. 그럼 효과는 좋을 텐데요.” 당시 세제실 관계자는 웃기만 했던 것으로 기억납니다.

  그런데 한 달 후 세제개편안이 발표된 걸 보니 관련 내용이 포함돼 있더군요. 의사, 변호사 등 전문직들이 건당 30만 원 이상 현금 거래를 할 때 현금영수증 발급을 의무화하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위반 사실을 신고하는 세파라치에게는 건당 미발급액의 20%(최대 300만 원)을 포상금으로 주기로 했습니다.
(선배 기자의 지적 때문에 관련 내용이 포함됐는지 어떤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세제개편안은 국회를 통과하면서 주요 골격이 그대로 유지된 채 4월부터 시행에 들어가게 됐습니다. 앞으로 10일 정도 남았네요.

A. 빙고. 탈세를 잡자!

  먼저
포상금 제도의 배경을 알아볼까요?

 

  글로벌 금융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각국 정부는 막대한 돈을 쏟아 부었습니다. 이제 남은 것은 빈 곳간을 채우는 것이죠. (안 그러면 그리스 꼴이 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크게 두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세율을 올리는 것과 탈세를 줄이는 것입니다.

  세율을 올리는 것은 저항이 심하죠. 반면 탈세를 잡는 것은 조세정의의 측면에서도 설득력이 있습니다.

  전문가들은 한국 지하경제의 규모를 200조~300조 원으로 추정합니다. 조세부담율을 20%로 가정하면 연간 40조~60조 원의 세금이 새 나가고 있다고 볼 수 있는 거죠. 지난해 정부의 재정적자가 관리대상수지 기준으로 51조 원이었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세금만 잘 걷었어도 적자를 흑자로 돌릴 수 있었던 셈입니다.

  미국이 지난해 스위스에 비밀계좌 공개를 요구한 것과 한국이 전문직 종사자의 현금영수증 발급을 의무화한 것은 결국 같은 맥락입니다. 한 마디로 탈세를 잡자는 거죠. 빙고.

B. 전문직 사업자 23만 명, 다음 달부터 대상

 

 

 

  포상금 제도를 이해하려면 먼저 현금영수증 발급 의무화가 어떻게 운영되는지 알아야 합니다.

  지금까지는 원하는 이들에 한해 현금영수증을 발급받는 방식이었습니다. 편의점에서 물건을 사고 나면 종업원이 “현금영수증 필요하세요?”라고 묻는 것도 이 때문이죠. 소비자가 아무 말 없이 나가면 그 뿐입니다.

  하지만 앞으로 변호사, 회계사, 세무사, 변리사, 건축사, 법무사, 의사, 한의사, 수의사 등 전문직 종사자들은 30만 원 이상 현금 거래 시 현금영수증을 의무적으로 발급해야 합니다. 고액 현금거래가 많은 부동산 중개업소, 예식장, 장례식장, 골프장, 학원도 의무발급 대상에 포함됩니다. (자세한 대상은 위의
표를 참고하시길)

  국세청 계산에 따르면 해당되는 전문직 사업자들은 23만 명 정도 된다고 하네요.

  이들 사업자들은 소비자가 요구하지 않아도 현금영수증을 발급해야 합니다. 30만 원 이상 거래에 대해서는 “현금영수증 필요하세요?” 라는 말이 사라지게 되는 셈이죠. 소비자가 그냥 지나갔다고 현금영수증을 발급하지 않았다면, 바로 신고 대상이 됩니다.

  여기서 질문 하나. 소비자가 현금영수증 발급을 거부했다면?

  전문직 사업자들도 억울한 경우가 생길 수 있습니다. 현금영수증 발급하게 번호를 불러달라고 했는데 고객들이 “현금영수증 필요 없다”며 버틸 경우에는 난감하겠죠. 연예인이 성형수술을 하면서 신분을 감추기 위해 현금 1000만 원을 주고 현금영수증 발급을 거부할 수도 있습니다. 가능성은 적지만 나중에 신고하려고 일부러 안 받는 악의적인 고객이 있을 수도 있죠.

  국세청은 이런 경우를 대비해 △소비자가 발급을 원하지 않거나 △인적사항을 확인하기 어려울 때는 국세청 지정코드 010-000-1234로 현금영수증을 발급하게 했습니다.

C. 포상금 2년 간 최대 3000만 원

  포상금은 아까도 말한 것처럼 미발급액의 20%입니다. 성형수술을 하고 1000만 원을 현금으로 냈는데 현금영수증을 발급하지 않았다면 이를 신고해 200만 원을 받을 수 있는 거죠. 다만 건당 한도는 300만 원입니다.

  또 한 사람이 연간 받을 수 있는 포상금은 1500만 원으로 제한됩니다. 포상금 제도는 2년 동안 한시적으로 운영되니 결국 한 사람이 2년 간 받을 수 있는 최대 금액은 3000만 원이 되겠네요.

  포상금을 받으려면 실명으로 신고서를 제출해야 합니다. 물론 신고자의 신상은 엄격하게 보호됩니다. 그리고 거래사실과 거래금액을 확인할 수 있는 증거서류를 함께 제출해야 합니다. 계약서가 대표적인 예가 되겠죠.

  이 때 주의할 점도 하나 있습니다. 설사 본인이 현금영수증을 못 받았더라도 전문직 사업자가 이미 국세청 지정코드인 010-000-1234로 발급을 했다면 포상금을 받을 수 없다는 겁니다. 일부러 현금영수증을 안 받고 나중에 신고하는 얌체를 막기 위한 조치죠.

  포상금을 주더라도 정부는 이득입니다. 현금영수증 미발급자에게 세금을 징수하는 것은 물론 미발급액의 50%를 과태료로 부과하니까요. 단순 계산하면 포상금을 빼고 미발급액의 30%가 정부 주머니에 들어가네요. 탈세한 돈을 정부와 신고자가 나눠먹는 셈입니다.

D. 30만 원 미만도 포상금

  그럼 30만 원 이상 거래에 대해서만 포상금을 주냐고요? 그건 아닙니다. 기존에 적용되던 현금영수증 발급 거부에 대한 포상금도 그대로 유지되니까요.

  잘 모르는 분을 위해 설명하자면 현금 거래 시 현금영수증을 요청했는데도 발급을 거부했다면 신고를 통해 발급 거부금액의 20%를 포상금으로 받을 수 있습니다. 전문직 사업자 뿐 아니라 현금영수증 가맹점이면 다 적용되는 제도로 지난해 2월부터 시행됐죠.

  (더
예전에는 현금영수증 발급을 거부한사실이 확인되면 금액에 관계없이 건당 5만 원을 줬습니다. 그런데 소액결제 신고가 집중돼 영세사업자의 불만이 커지고 전문직 종사자들이 빠져나가면서 제도를 바꾼 겁니다)

  이 경우 포상금은 건당 최대 50만 원을 주는데 한 사람이 연간 최대 200만 원까지 받을 수 있습니다. 다만 발급 금액의 20%가 1만 원 이하인 경우에는 1만 원을 주고,  5000원 미만 거래는 포상금 지급 대상에서 제외됩니다.

  주의할 점은 포상금 요건을 모두 갖췄더라도 예산이 떨어진 후에는 돈을 주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개인적으로는 좀 불합리하다고 생각하지만 현행 규정이 그렇다고 하네요. 그래서
못 받은 돈이 1억5000만 원에 달한다고 하니 이왕 신고를 하려면 빨리 하는 것도
방법일 듯 합니다. 더 자세한 내용은 http://www.nts.go.kr/civil/civil_04_07.asp 을 참고하시면 좋을 것 같네요.

 

에필로그

개인적으로는 몇 년 전 부동산에서 현금영수증을 발급해 달라고 했는데 안 해줘서 신고했던 경험이 있습니다. 당시 중개업소 사장님에게 “중개 수수료에 대해 현금영수증 발급해 주세요”라고 했더니 움찔하시더군요. 상대편 아주머니가 “나도 달라”고 하자 사장님은 “허허, 그거 안 해도 나중에 소득공제 다 됩니다”라며 지나가셨습니다.

나중에 현금영수증 없이 소득공제 하는 방법을 찾아봤더니 신고하는 방법이 있더군요. 그래서 신고를 했고, 문제없이 소득공제를 받았습니다. (현금영수증 가맹점이 아니어서인지 포상금을 못 받았던 건 아직도 좀 아쉽습니다)

누군가 정부에 내야 할 세금을 안 내면 정부는 사업을 줄이거나, 저 같은 월급쟁이가 따박 따박 내는 세금을 올려야 합니다. 특히 그 누군가가 외제차를 타고 돈을 펑펑 쓰는 고소득 전문직이라면 국민들이 눈에 불을 켜고 감시할 가치가 있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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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일저축은행은 왜 망했나?(저축은행 안전하게 이용하기)

 

<전주의
구도심에 자리잡은 전일저축은행 외관>

 

  지난 주 전주에 다녀올 일이 있었습니다. 지난해 말 부실이 커져 문을 닫은 전일저축은행 때문이었는데 이번에는 그 얘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저축은행에 돈을 맡기려는 분들은 미리 한 번 읽어보시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전일저축은행은 어떤 은행?

  저축은행이라고 하면 어떻게 생각하실지 모르겠지만 전일저축은행은 ‘전북 제일의 저축은행’ 이라는 명성을 갖고 있는 은행입니다. 1972년에 생겼는데 1980년대는 전북은행을 제치고 전북에 기반한 금융회사 중 ‘No.1′이었던 적도 있었다고 하네요. 자산은 지난해 9월 말 기준으로 1조2497억 원입니다. 수신은 1조3215억 원, 여신은 1조1069억 원입니다.

  저축은행 업계에서도 25위를 차지할 정도로 규모가 크고 역사와 전통이 있는 은행입니다. 이런 전일저축은행이 지난해 말 영업정지를 당했습니다. 당시 자기자본은 ―1583억 원이었습니다. 금융기관의 건전성을 나타내는 BIS 비율은 무려 ―11.13%였습니다. 금감원에서 저축은행들에게 BIS 비율 5%를 권고하는 것을 감안하면 얼마나 부실이 심했는지 짐작할 수 있을 겁니다.

-전일저축은행 현재 상태는?

 

전일상호저축은행 현황

설립

1972년

자산

1조2497억 원

자기자본

―1583억 원

국제결제은행(BIS) 자기자본비율

―11.13%

예금자 수

6만3722명

5000만 원 초과 예금자

3573명

자료: 금융감독원

 

  전일저축은행은 군산, 익산, 정읍, 남원, 김제에 지점을 갖고 있습니다. 지방 도시의 경우 시중은행이 얼마 안 되는 것을 감안하면 전북에는 탄탄한 지점망을 갖고 있는 셈입니다. 본점과 지점에 예금을 갖고 있는 사람은 6만3722명이나 됩니다.

  금융위원회는 지난해 말 전일저축은행에 영업정지를 명령했습니다. 영업이 정지되면 임직원의 직무집행이 정지되는 동시에 고객들도 6개월 동안 예금과 대출을 할 수 없게 됩니다. 금융 당국은 증자 등을 통해 자체 정상화를 할 수 있도록 2달의 여유를 줬습니다. 하지만 그마저도 2월 말에 끝났죠.

  선례를 볼 때 남은 것은 제3자인수와 청산뿐입니다. (피해자들은 공적자금 투입을 요구하고 있지만 정부는 형평성을 이유로 난색을 표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최근 끝난 실사에 따르면 부채가 자산보다 4500억 원 많은 상태라 선뜻 인수 의향을 밝히는 곳이 없는 실정입니다.

 

-예금자보호법에 따르면 누가 피해를 보나?

  현행 예금자보호법은 금융회사 1곳에 맡긴 돈을 예금자 1인당 5000만 원까지 보호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주의할 점은 ‘1곳 당’, ‘1인 당’ 이라는 조건입니다. 계좌 수는 몇 개든 상관이 없습니다.

  예를 들어 A씨가 자기 이름으로 4500만 원, 아내 이름으로 4500만 원, 자식 명의로 4500만 원을 갖고 있다면 1억3500만 원, 전액을 보장받을 수 있습니다. 반면 자기 이름으로만 5500만 원을 갖고 있다면 500만 원은 보호를 못 받습니다. (고위공직자 재산 공개를 보면 가족들의 명의로 4500만 원, 4700만 원 씩 넣어둔 경우를 심심찮게 볼 수 있는데 원리금을 합쳐 5000만 원까지 보호가 되기 때문에 볼 수 있는 영리한 재테크의 전형입니다)

  전일저축은행을 인수할 상대가 4월까지 나타나지 않으면 계약 이전 후 청산절차에 들어가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5000만 원을 넘게 맡긴 고객 3573명이 피해를 볼 수밖에 없죠. 이들은 파산재단에서 배당을 해 주는 돈을 예보와 나눠서 받게 됩니다. 얼마나 부실채권을 받아낼 수 있는지에 따라 다라지만 평균 초과금액의 30~40%만 받게 되는 게 일반적이라고 하더군요.

  예금자들은 그나마 5000만 원까지 돌려받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금리가 다소 높은 대신 상환 순위가 뒤로 밀리는 후순위채를 산 이들은 한 푼도 못 받을 가능성이 큽니다. 예금자가 받은 후 남는 게 있어야 후순위채권자가 받게 되는데, 예금자가 전액을 못 받게 됐기 때문입니다.

 <지난해
말 영업정지를 당한 전일저축은행 내부>

 

-그럼 예금자들은 왜 5000만 원을 넘는 금액을 맡겼나?

  저도 전주에 내려가기 전 예금자들이 왜 저축은행에 5000만 원을 넘게 맡겼는지 궁금했습니다. 하지만 가 보니 고개가 끄덕여지는 면이 있더군요.

  먼저 전일저축은행에서 만난 피해자들은 대부분 60세 이상 노인분들이었습니다. 수십 년  동안 이 저축은행과 거래하던 이들 중에는 2000년에 5000만 원이라는 예금자보호한도가 생겼다는 사실도 모르는 이들이 많았습니다. 교육수준이 낮다 보니 금융지식이 부족하고, 막일을 하느라 언론을 접할 기회가 적은 분들이었죠. 정부 고위 공직자, 한은 금감원 간부 같은 ‘룰을 만드는 사람’들이 ‘영리한 재테크’를 해 왔다는 걸 생각하면 안타깝기 그지없는 일입니다.

  여러 금융회사를 이용했다면 모르겠지만 이들 대부분은 유일하게 접하는 금융회사가 전일저축은행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전일저축은행에서라도 예금보호 한도에 맞춰 여러 은행에 나눠 돈을 맡기거나, 그게 아니라면 예금을 가족들의 명의로라도 분산해 맡기도록 유도해야 했습니다. 하지만 전일은 돈을 많이 유치하는데 급급해 이 같은 사실을 제대로 알리지 않았죠.

  그 뿐 아닙니다. 전일저축은행은 예금자보호제도의 허점을 교묘하게 이용했습니다. 피해자들에 따르면 이 저축은행 직원들은 예금을 안내할 때 ‘정부가 보호한다’고만 했을 뿐 얼마까지 보호하는지는 알려주지 않았다고 합니다. 전단지에도 ‘예금자보호법에 따라 예금보험공사가 보호한다’고만 썼죠. (물론 다른 금융회사들도 대부분 그렇게 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전액을 보호하는 것으로 오해한 사람들이 큰 돈을 맡긴 것입니다.

  피해자들이 지적하는 제도상의 문제는 또 있습니다. 60세 이상 어르신들에게 세금을 면제하는 생계형 저축과 세금우대 예금상품은 1인당 가입한도가 2008년까지는 9000만 원이었고, 2009년부터는 6000만 원입니다. 그러다 보니 전일저축은행 창구에서는 “세금혜택을 최대한 받으려면 그만큼을 맡겨야 한다”고 설득했고 적잖은 이들이 여기에 넘어갔습니다. 예금보호 기준과 세금우대 기준이 다른 것도 혼선을 부추겼다는 말이죠.

  지리적인 요인도 있습니다. 전일저축은행은 전주 공구상가와 중앙시장이 만나는 지점에 있습니다. 도청이 이전하고 신도심으로 사람들이 몰리기 전까지 그 부근이 전주의 중심이었죠. 주변 상인들이 수십 년 동안 거래한 것도 가깝다는 이유 때문이었습니다.

  더구나 지방도시에는 다른 시중은행이 많지 않습니다. 전주에는 국민은행 지점이 8개, 우리은행 지점이 4개 밖에 없습니다. 골목마다 하나씩 은행이 있는 서울과는 사정이 다른 거죠. 당연히 전일저축은행이 전주에서 갖는 위치는 다른 저축은행이 서울에서 갖는 위치와는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심리적인 것도 영향을 미쳤습니다. 지금 전일저축은행은 예전 한국은행 전주 지부가 있던 건물이라고 합니다. 튼튼하고 주차장도 넓어 인상적인 건물입니다. 신뢰의 상징인 한국은행 건물을 쓰는 데다 건물도 웅장하다 보니 피해자들은 철석같이 전일저축은행을 믿었던 겁니다.

  

  물론 피해자들의 책임이 전혀 없다는 뜻은 아닙니다. 전일저축은행은 예전부터 위험하다는 소문이 돌았고, 상당 기간 검찰과 금융감독원의 조사를 받았습니다. 피해자들은 먹고 살기 바빠 이런 소식을 못 들었지만, 사실 고객들 중에는 이러다 큰 일 날 수 있겠다 싶어 돈을 뺀 사람도 상당수 있었다고 합니다.

-저축은행을 안전하게 이용하는 방법은?

 

저축은행을 안전하게 이용하는 방법

1. 4500만~4700만 원만 맡길 것

2. 관심을 가지고 지켜볼 것

3. 잘 모르겠으면 88클럽을 선택할 것

4. 후순위채 투자는 금물

저축은행은 은행보다 금리를 더 주기 때문에 금리차이에 민감한 이들에게 호응을 얻고 있습니다. 이런 저축은행을 안전하게 이용하려면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요?

1. 4500만~4700만 원만 맡겨라!

  먼저 예금자 보호 한도 이하로 돈을 맡겨야 합니다. 원리금을 합쳐 5000만 원까지 보호되는 만큼 금융회사 1곳에 한 사람 명의로는 4500만~4700만 원 정도만 맡기는 게 안전하겠죠.

2. 관심을 가져라!

  거래하는 저축은행에 스스로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저축은행중앙회 홈페이지(http://www.fsb.or.kr)에서 경영공시를 누르고 연도와 회사를 선택하면 해당 저축은행의 경영실적을 볼 수 있습니다. 자산이 부채보다 많은지, 매출과 영업수익이 꾸준히 유지되거나 늘어나는지 등을 꼼꼼히 점검하실 것을 권합니다.

  가장 중요한 건전성을 보려면 ‘위험가중자산에 대한 자기자본비율(혹은 BIS 비율)’ 항목을 보시면 됩니다. 이 비율이 높을수록 건전한 저축은행입니다. 금융감독원은 이 비율이 5% 이하로 내려가면 부실 가능성이 있다고 평가합니다.

3. 88클럽을 선택하면 안전!

  이것저것 따져보기 귀찮고 잘 모르겠다면 ‘88클럽’을 선택할 것을 권합니다. 88클럽은 고정이하 여신비율 8% 이하, 국제결제은행(BIS) 기준 자기자본비율 8% 이상인 저축은행들을 말합니다. 정부에서 우량 저축은행으로 분류해 각종 혜택을 주는 기준을 충족하는 곳들인 만큼 상대적으로 안심해도 됩니다. 전국 저축은행 중 30여 곳이 88클럽에 포함돼 있습니다.

4. 후순위채는 금물!

  금융지식이 부족한 투자자라면 ‘후순위채’와는 거리를 둘 것을 권합니다. 부실저축은행의 후순위채는 해당 저축은행이 망하면 휴지조각에 불과합니다. 물론 7~8%의 금리가 유혹적이기는 하지만 망하면 한 푼도 돌려받을 수 없다는 점을 명심해야 합니다. 가입 기간도 5년 정도로 긴 편이기 때문에 더 조심해야 합니다.

 

 

<전일저축은행
1층에 앉아 있는 피해자들>

마지막으로 몇몇 피해자들의 가슴 아픈 사연을 들어보겠습니다. 정말이지 저도 눈물을 참느라 혼났습니다.
이 분들의 100만 원, 200만 원은 제가 생각하는 것 이상의 무게를 갖고 있더군요.

A 씨(61)

1998년까지 30년 동안 건설회사 노무직으로 일을 했다. 아들은 집을 나갔고 손자와 손녀를 키우며 산다. 안사람은 노점에서 야채를 팔다가 붕어빵을 팔다가 했다. 노무직을 그만두고 아파트 청소부로 들어가 폐지를 주우며 돈을 벌었다. 그러다 지난해 6월에 나이가 많다고 아파트에서 내보내더라.

지금까지 번 돈을 모두 전일저축은행에 맡겼다. 다 합치면 6500만 원 정도 된다. 이 중에는 아파트를 그만두고 받은 퇴직금 300만 원도 포함돼 있다. 친척들이 불쌍하다고 손녀, 손자에게 준 돈을 모았더니 각각 200만 원 씩 모두 400만 원이 됐다. 나중에 학비로 쓰려고 이 돈도 전일저축은행에 넣었다가 날리게 생겼다.

예금자보호법은 전혀 몰랐고 6000만 원까지 세금우대 된다고 해서 다 넣었다. 알았으면 집사람하고 나눠서 넣었겠지. 더 이상 손녀 손자들을 키울 자신이 없다.

B 씨(62·여)

결혼한 뒤 얼마 안 있다가 남편이 허리를 다쳤다. 그래서 생선 장사를 시작해서 38년 동안 했다. 처음에는 가게도 없어 다라이에 이고 다녔다. 매일 새벽 4시에 일어나 자식을 업고 다라이를 이고…. 그 고생은 말로 못 한다. 결국 5년 전에 퇴행성 관절염이 생겨 그만뒀다.

큰 딸이 상고를 졸업하고 전일저축은행을 5년 동안 다녔다. 그 때부터 거래를 시작했으니 벌써 20년 정도 거래했다. 다른 곳 통장 하나도 없다. 딸은 일하다 집이 곤란하니 빨리 시집이나 간다고 하면서 직장을 그만뒀다.

빗물을 받아 청소를 할 정도로 알뜰하게 살았다. 그렇게 모은 돈이 좀 되서 2007년도에 남편 이름으로 9000만 원을 맡겼다. 당시 직원이 9000만 원까지 세금 혜택을 받을 수 있다고 해서 맡긴 것이다. 이자는 연 5.3%로 높지도 않았다. 세금 한 푼이라도 덜 내려고 맡긴 거다.

3년을 기다려 올해 2월 28일이 만기였다. 찾으면 아이들에게 그 동안 못해줬던 걸 해주려고 했다. 큰 딸 결혼한 지 16년 됐는데 해준 게 하나도 없어서…. 세탁기가 거의 부서져 가는데 바꿔주려고 했다. 김치냉장고도 하나 사 주고. 아들이 전세자금을 도와달라고 해도 안 주고 모은 돈이다. 요즘은 매일매일 사는 게 생지옥이다.

C 씨(62·여)

초등학교도 못 나왔다. 시골에 시집갔다가 도시에 나와 혼자 산지가 20년이 됐다. 목욕탕 빨래도 하고 청소도 했다. 시멘트 버무리고, 밭 매고, 벽돌 나르고 안 해 본 일이 없다. 방 하나 빌려서 사는데 나중에 아이들과 함께 살고 싶어서 먹지도 쓰지도 않고 버는 대로 다 져가 맡겼다.

일을 하고 하루 3~4만 원을 받으면 여기까지 걸어와서 꼭 예금을 했다. 그렇게 해서 9500만 원을 모았다. 전세금 1500만 원을 제외하면 전일저축은행에 있는 돈이 전 재산이다. 저는 은행이니 가져다 맡기면 무조건 이자를 주는 줄 알았다. 망할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망한 것도 며칠 지나서야 알았다. 1월 4일인가 5일에 언니가 일을 데려다 주다가 “텔레비에서 전일이 부도났다고 하니 한 번 가보라”고 하더라. 큰일 났다 싶어서 달려가니 문을 닫고 사람들이 웅성웅성하고 있었다. 혼자 옷을 벗어서 내던지고 돌아왔다. 그리고 집에 와서 가슴이 답답해 병원에 입원했다. 일을 해야 먹고 사니 요즘에도 일하긴 하는데 더 이상 살 의욕이 없다. 사는 게 아무 재미가 없어졌다.

자녀들이 4명인데 먹고 살기 어려우니 다들 뿔뿔이 흩어졌다. 애들도 못 가르쳤다. 아들 딸 결혼하는데 한 푼이라도 도와주려고, 그리고 단칸방 말고 아이들이랑 같이 밥 한 끼 먹을 곳을 마련하고 싶어서 모은 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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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호아시아나는 앞으로 어떻게 될까?

<8일 산업은행은 금호 오너 일가의 사재출연계획을 발표하는 기자회견을 열었습니다.
동아일보 자료사진>

A. 금호일가, 전 재산을 내놓다

  금호 얘기를 한 번 더 해보겠습니다. 8일 금호 오너일가는 채권단의 거듭된 압박에 드디어 손을 들었습니다. 갖고 있는 모든 계열사 주식을 담보로 내놓고 처분은 채권단에 맡기기로 결정했죠. 집을 제외한 모든 부동산도 담보로 내놓기로 했습니다.

  이틀 전인 6일 민유성 행장은 산행을 마치고 작심한 듯 금호 일가를 비판했습니다. 채권단이 회사를 살리겠다고 나서고 있는데 부실 경영에 책임을 져야 할 오너 일가가 사재출연을 거부하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다는 것이지요. ‘치사하다’, ‘실망했다’, ‘어불성설(語不成說)이다’ 등 평소 듣기 힘든 단어들이 쏟아졌죠.

  민 회장은 비판을 마친 후 결정타를 날렸습니다. “7일까지 사재출연 의사를 마치라는 최후통첩을 보냈다. 만약 거부한다면 경영권이고 뭐고 없을 수 있다.” 지난해 말 구조조정계획을 발표하면서 기존 오너 일가에 3년간 보장하기로 한 경영권 보장 약속을 철회할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또 지주회사격인 금호석화를 워크아웃 대상에 넣을 수도 있다는 의시를 비췄습니다.

  채권단의 압박이 심해지자 오너 일가는 결국 사재출연에 동의했습니다. 다만 데드라인을 하루 넘기는 바람에 보는 사람을 조마조마하게 만들긴 했죠. 이렇게 동의할 걸, 오너 일가는 왜 한 달 반이나 버텼던 걸까요?

B. 형제경영의 종말

 

                                          <금호아시아나그룹의 지배구조>                                                                          

  이 스토리를 이해하려면 지난해 7월로 시계바늘을 되돌려야 합니다. 창업주의 셋째 아들인 박삼구 그룹 회장과 넷째 아들인 박찬구 그룹 화학부문 회장은 6월 말부터 7월 초까지 금호석유화학 지분을 경쟁적으로 장내에서 사들였습니다. 지분 경쟁을 시작한 것이죠.

  금호에서 형제 간 지분경쟁이 일어났다는 사실 자체가 재계에서는 화제였습니다. 금호는 그 동안 ‘아름다운 형제경영’의 모범 사례였죠. 창업주 고 박인천 회장이 사망한 뒤 네 아들은 지분을 똑같이 나눠가졌습니다. 그리고 65세가 되면 동생에게 경영권을 물려준다는 신사원칙을 지켜 왔습니다.

  하지만 지분경쟁을 계기로 아름다운 우애는 끝이 났습니다. 형제가 금호석화를 두고 싸움을 벌인 것은 금호석화가 그룹의 지주회사 역할을 해왔기 때문입니다. 금호그룹은 금호석화를 지배하는 사람이 사실상 금호산업, 아시아나항공, 대한통운, 금호타이어, 대우건설 등 모든 계열사를 지배하는 구조로 돼 있죠.

  지분경쟁은 7월 말 박삼구 회장이 박찬구 회장을 해임시키고 본인도 명예회장으로 물러나면서 막을 내립니다. 창업주의 둘째 아들인 고 박정구 회장의 장남이 박철완 부장이 박삼구 회장 편에 붙으면서 승패가 결정된 것이죠. 하지만 승패와 상관없이 이 사건은 가족 내에 큰 갈등을 가져오게 됐습니다.

  그러면 박찬구 회장은 왜 자기차례를 기다리지 않고 형인 박삼구 회장을 몰아내려고 했을까요?

  박찬구 회장은 박삼구 회장이 대우건설을 인수할 때 “무리한 인수가 가져올 휴유증이 걱정된다”며 반대했습니다. 그럼에도 박삼구 회장은 대우건설을 인수했고 그 결과로 그룹 전체가 흔들리는 상황이 됐죠. 그러자 박찬구 회장이 ‘형의 경영방침에 따를 수 없다’며 반발하고 나선 것입니다.

  박찬구 회장은 쫓겨나고 일주일 후 ‘금호그룹 임직원께 드리는 글’을 사내게시판에 올렸습니다. 그는 이 글에서 “박삼구 명예회장이 최근 무리한 인수합병(M&A)으로 금호아시아나그룹의 위기를 초래했음에도 이에 대한 책임을 지기는커녕 나를 회장직에서 몰아냈다”고 주장했죠.

C. 끝까지 버틴 일가들

  지난해 말 금호그룹은 워크아웃 계획을 발표하며 오너 일가의 재산을 담보로 제공하겠다고 밝혔습니다. 대신 채권단은 오너 일가의 경영권을 3년 동안 보장해 주기로 했죠. 재산을 담보로 제공하고 의결권을 위임하는 것은 대주주가 ‘오너’의 지위를 포기하고 ‘전문경영인’의 역할을 하겠다는 결정한 것을 의미합니다.

  채권단은 대주주 일가의 경영실적이 신통치 않으면 언제든 담보로 맡긴 지분을 처분할 권리를 갖고 있습니다. 지분을 처분한 뒤 빚을 갚으면 대주주 일가는 빈손으로 쫓겨나게 되는 구조죠.

  박삼구 명예회장은 처음부터 본인의 모든 재산을 내놓겠다고 나섰습니다. 문제는 박찬구 전 회장, 박철완 부장이었죠. 박찬구 전 회장은 ‘형의 경영방침에 반대하다 쫓겨나기까지 했는데 부실경영의 책임을 지라고 하는 것은 부당하다’며 맞섰다고 합니다. 박철완 부장도 “부실경영의 책임이 없다”고 버텼죠.

  내부적으로는 누가 금호석화의 경영권을 가질지를 두고 일가들끼리도 갈등이 있었습니다. 박찬구 회장은 금호석화의 경영권을 요구했고, 박철완 부장은 아시아나항공의 경영권을 갖고 싶어했죠. 하지만 일가들 사이에서도 감정의 골이 깊어진 터라 제대로 소통이 이뤄지지 않았다고 합니다.

  결국 기다림에 지친 채권단은 “대주주로서 지분을 갖고 의결권을 행사한 만큼 박찬구 전 회장과 박철완 부장도 책임을 져야 한다”며 압박했습니다. 계속 버틸 경우 경영권을 주지 않고, 자율협약으로 구조조정을 하기로 했던 금호석화마저 워크아웃에 편입하겠다고 을렀죠.

  8일 이뤄진 사재출연 발표는 일가들이 결국 두 손 들고 항복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날 채권단은 금호석유화학의 경영은 박찬구 전 회장과 박철완 부장이 맡고, 금호타이어는 박삼구 명예회장이 맡는다고 발표했죠.

D. 금호그룹 사실상 해체 수순

 

 

  그러면 앞으로 금호그룹은 어떻게 될까요?

  채권단의 설명에 따르면 금호그룹은 앞으로 세 개의 소그룹으로 쪼개지게 됩니다. 박찬구 회장의 금호석화, 박삼구 회장의 금호타이어, 채권단이 박삼구 회장과 협의해 경영하는 금호산업입니다.

  박찬구 전 회장과 박삼구 명예회장은 서로 경영에 관여하지 않는 조건으로 경영권을 행사하기로 했습니다. 경영을 별도로 하는 것은 물론 정상화 과정에서 금호석화가 금호타이어 지분을 매각하고, 박삼구 명예회장이 금호석화 지분을 팔아 타이어 지분을 사들여 형제 간 지분 구조를 정리한다는 계획입니다.

  금호산업은 채권단이 선임한 경영진이 경영을 하게 됩니다. 지금은 박삼구 회장이 대주주지만 경영정상화 과정에서 감자(減資)를 통해 기존 주식 수를 줄이고, 채권단의 채무를 주식으로 바꾸는 출자전환을 단행하면 채권단이 대주주가 됩니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그룹에서 빠져나오게 되죠.

  나머지 계열사도 모두 채권단의 손에 들어가게 됩니다. 아시아나항공은 현재 대주주가 금호석화입니다. 하지만 채권단은 지난해 말 금호산업이 금호석화에 매각한 지분을 돌려받겠다고 결정했습니다. 그러면 아시아나항공은 자연스럽게 금호산업 밑으로 들어오죠. 금호산업이 대주주인 대우건설은 물론, 아시아나항공과 대우건설이 24% 씩 지분을 갖고 있는 대한통운도 채권단 경영체제로 들어갑니다. 6개 주요 계열사 중 채권단이 4개를 경영하게 되는 것이죠.

  채권단은 경영이 정상화 되는대로 계열사를 하나하나 매각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대우건설은 이미 산업은행의 사모펀드(PEF)에 팔기로 했습니다. 아시아나항공과 대한통운은 당분간 금호산업 밑에 두겠다는 구상입니다. 그래야 금호산업의 가치가 올라가 워크아웃을 원활하게 할 수 있죠. 구조조정을 마친 뒤에는 매각 여부를 결정할 방침인데 결국 오너 일가가 아닌 제3자에 팔릴 가능성이 높습니다. 오너에게 우선권을 주더라도 돈이 있어야 채권단의 지분을 사들일 텐데, 이미 모든 재산을 내놓은 일가가 그만한 돈을 마련할 수는 없을 테니 말입니다.

  그나마 금호석유화학은 경영상태가 나쁘지 않은 데다 박찬구 전 회장 부자와 박철완 부장의 지분을 합치면 20%가 넘기 때문에 다시 찾아갈 가능성이 다소 있다고 보는 이들이 많습니다. 금호타이어는 박삼구 회장이 경영을 제대로 하고, 나중에 가진 모든 지분을 정리해야 가져갈 수 있겠죠.

  채권단은 당분간 금호그룹이라는 테두리를 유지할 계획이지만 결국 몇 년 후 금호그룹은 세 개의 소그룹으로 쪼개질 가능성이 큽니다. 지나친 탐욕의 대가는 이렇듯 잔인한 법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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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호아시아나, 재앙을 초래한 탐욕

 

지난해 12월 30일 김영기 수석부행장(왼쪽)과 오남수 금호아시아나그룹 전략경영본부
사장이 “국민에게 심려를 끼쳐 죄송하다”며 고개를 숙이는 모습. <동아일보
자료사진>

 

 

  오늘은 금호아시아나 그룹 얘기를 좀 해보겠습니다.

  금호아시아나 그룹이 위기에 처했다는 소식은 다 아실 겁니다. 전문용어를 논외로 하고 간단하게 말하면 대우건설과 대한통운을 무리하게 인수한 탓에 탈이 난 겁니다. 이를 두고 업계에서는 ‘승자의 저주’(외부에서 돈을 빌려 높은 가격으로 다른 기업을 인수했다가 상환 부담으로 기업 전체가 위험해지는 현상) 라는 표현을 쓰죠.

  저는 구조조정 전문가는 아닙니다. 하지만 요즘 기사들이 풋백옵션, 재무적 투자자(FI), 전략적 투자자(SI), 사모펀드(PEF) 등 각종 자본시장 용어로 점철된 까닭에 지금까지의 상황을 제대로 따라오진 못한 분들도 많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이 글은 이런 분들을 위해 최대한 쉽게 상황을 설명하려는 목적에서 쓰는 거라고 이해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1. 금호아시아나, 왜 대우건설을 인수했나?

  금호아시아나 그룹의 문제를 이해하려면 3년 전으로 돌아가 볼 필요가 있습니다. 2006년 창립 60주년을 맞은 금호아시아나그룹은 외환위기 이후 피나는 구조조정을 마치고 새로운 성장 동력을 찾고 있었습니다. 그게 바로 ‘건설’이었죠.

  당시 박삼구 회장이 사내 게시판에 띄운 글을 보시면 금호가 당시 어떤 비전을 세우고 있었는지 한 눈에 알 수 있습니다. ‘석유화학과 금융을 기반으로 건설을 주력 업종으로 키우고, 항공과 타이어를 글로벌 기업으로 육성하며, 물류와 레저를 차세대 성장 동력으로 삼겠다’

  이 때 시장에 나온 대우건설은 마치 구원의 손길과도 같았습니다. 금호산업이 건설 부문 시공능력 9위였던 반면 대우건설은 2위였습니다. 대우건설을 인수하면 금호는 단숨에 건설업계 1위가 될 수 있었죠. 그룹 순위도 11위에서 8위로 올라갈 수 있는 절호의 찬스였습니다. (물론 당시 생각이었죠)

  이런 이유로 금호는 사실상 그룹의 명운을 걸고 인수전에 뛰어들었습니다.

  당시 박 회장은 “현금 2조 원을 동원할 수 있다”고 밝혔지만 두산, 유진 등과 각축전이 벌어지면서 인수 가격은 천정부지로 올랐고 결국 금호는 6조4255억 원에 대우건설을 인수하게 됩니다. (덕분에 대우건설을 매각한 한국자산관리공사는 투입한 돈의 5배를 벌었습니다) 금호는 내친 김에 물류 분야를 차세대 성장동력으로 키우기 위해 대한통운까지 인수했죠.

 

 

 

2. 금호아시아나, 어떻게 돈을 마련했나?

  그러면 이 대목에서 2조 원을 동원할 능력이 있는 금호가 어떻게 6조 원을 마련했는지가 궁금해질 겁니다.

  금호는 이미 말한 대로 자체 자금으로 2조5000억 원을 조달했습니다. 그리고 계열사들의 차입을 통해 1조 원대의 돈을 마련했죠.

  나머지 돈은 투자자들에게 빌렸습니다. 투자자들에게는 경영을 잘 해서 3년 후 주당 3만4000원의 주가를 보장하겠다고 자신만만하게 선언했습니다. 만약에 3년 후인 2009년 말까지 주가가 그 가격에 미치지 못하면 차액을 돈으로 주겠다고까지 말했습니다. 이처럼 투자수익을 보장하겠다고 약속하는 행위를 ‘풋백옵션’이라고 하죠. 이렇게까지 말하니 투자자들도 돈을 들고 달려들었습니다.

  당시 대우건설 주가가 1만2600원이었다는 점을 감안하고 돌이켜 보면 대단히 무리한 약속이었습니다. 사실 무리한 걸로 따지면 인수 가격부터가 그랬습니다. 금호가 대우건설을 사고 지불한 6조4255억 원을 주당 가격으로 환산하면 2만6000원 정도가 됩니다. 이는 당시 주가의 2배가 넘는 돈입니다.

  대우건설 인수가 결정되는 날 금호 그룹 주가가 일제히 하락세를 보인 것은 시장이 금호의 선택을 어떻게 평가했는지 보여주는 바로미터였습니다. 당시 누군가는 대우건설의 적정 가격을 3조 원 내외라고 평가했고, 그 정도가 합당하다는 것이 시장의 평가였습니다. 하지만 지름신이 내린 오너는 시장의 평가보다 자신의 직감을 믿었고 그게 결국 재앙으로 돌아오게 됩니다.

 

지난해
7월 경영 일선 퇴진을 밝힌 박삼구 금호아시아나 명예회장 <동아일보 자료사진>

 

3. 금호아시아나, 무리한 약속의 대가

  코스피가 2000을 넘으며 주가가 거침없이 오르던 2007년 말 대우건설 주가는 한 때 3만 원을 넘었습니다. 하지만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지면서 주가는 여지없이 내리막을 타게 됐죠.

 

  투자자들과 약속한 시간인 2009년말이 다가왔지만 대우건설 주가는 계속 1만 원대 초반에서 맴돌았습니다. 그럴수록 금호그룹에 대한 불안은 커져갔고 ‘금호가 유동성 위기에 몰렸다’는 루머가 수시로 시장에 돌았습니다. 주가는 점점 더 내려갔고 계열사들의 영업에도 지장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시간이 다가오면서 금호가 투자자들에게 한 약속을 지키려면 4조 원을 마련해야 한다는 사실이 자명해졌습니다. 물론 금호는 그 약속을 지킬 능력이 없었죠. 결국 약속한 시간을 6개월 남기고 금호는 대우건설을 다시 토해내겠다고 선언했습니다.

  하지만 경기침체를 맞은 재계에는 대우건설을 사들일 만한 기업이 없었습니다. 결국 자베즈 파트너스라는 이름도 생소한 펀드가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됐죠. 하지만 자베즈는 예치금을 차일피일 미루며 성의 없는 태도를 보였습니다. 자베즈의 이런 태도에 대해 시장에서는 ‘처음부터 인수 능력이 없었던 것 아니냐’는 루머가 돌았습니다. 펀드 속성 상 여기저기서 돈을 끌어들여 인수하려고 했는데 그게 잘 안 돼 약속한 돈을 낼 수 없었다는 분석이었죠. 결국 금호는 매각을 중단하고 마지막 남은 길인 워크아웃(기업구조개선작업)을 선택했습니다.

 

 

<대우건설
최근 3년 주가 그래프>

 

 

4. 워크아웃 방안을 둘러싼 충돌

  워크아웃은 기업이 파산하는 것을 막기 위해 돈을 빌려준 채권자과 돈을 빌린 기업이 머리를 맞대고 해결 방법을 찾는 것입니다. 기업이 망하면 채권자도 어차피 돈을 못 받기 때문에 어떻게든 살려보자는 생각에서 나온 방법이죠.

  일반적으로 워크아웃은 기업 오너가 가진 돈을 모두 내 놓으면, 금융회사에서 모자란 금액을 일부 탕감해 주는 방식으로 이뤄집니다. 동시에 빌려준 돈을 주식으로 바꾸고(출자전환) 회생에 필요한 돈을 추가로 빌려주기도 하죠.

  이번에 워크아웃 대상이 된 계열사는 금호산업과 금호타이어입니다. 금호산업은 대우건설 최대주주로 투자자들과의 약속을 지켜야 하는 처지라 어쩔 수 없었고, 금호타이어는 글로벌 금융위기로 인한 자동차산업 타격 및 파업 등으로 코너에 몰린 처지였죠. 금호석유화학과 아시아나항공은 자율협약 방식으로 그룹에서 책임을 지고 구조조정을 하기로 했죠.

  1월 초 규정에 따라 채권단의 75%가 동의했고 워크아웃이 시작됐습니다. 하지만 아직 어떤 방식으로 워크아웃을 할지에 대해서는 각자 이해관계에 따라 첨예하게 부딪치고 있습니다.

  금호그룹의 주채권은행인 산업은행은 대우건설 투자가들에게 주당 1만8000원에 대우건설 주식을 사 주겠다고 제의했습니다. 하지만 약속한 3만1500원은 줄 수 없다고 했죠. (약속한 금액은 애초 3만4000원이지만 배당 등을 통해 일부를 미리 받은 탓에 다소 줄었습니다) 대신 1만8000원과 3만1500원의 차이는 일부를 탕감하고 일부는 금호산업 주식으로 바꿔 워크아웃에 같이 참여하자고 제의했습니다. 손해를 모두가 나눠서 부담하자는 제안인 셈입니다.

  반면 투자자들은 손해를 부담할 수 없다면서 새로운 안을 제시했습니다. 2조2000억 원의 신규자금을 유치하는 대신 투자자들이 금호산업, 아시아나항공, 대한통운의 경영권을 가져가겠다는 제안이었죠. 돈을 새로 투입해 누구도 손해를 보지 않고 금호를 정상화하자는 제안인데 산업은행은 “현실성이 없다”며 반대하고 있습니다. 금호도 “아시아나항공까지 내놓고 나면 그룹이 해체되는 것 아니냐”며 난색을 표하고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금호산업의 주채권은행인 우리은행은 다른 방안을 내놨습니다. 주당 1만8000원에 대우건설 주식을 사는 것 까지는 산업은행의 제안과 같지만 3만1500원과 1만8000원의 차액 중 금호산업 청산가치를 제외한 나머지는 모두 탕감하자는 것이죠. 우리은행 관계자는 “투자자들이 차액을 모두 받으려면 금호산업이 망할 수밖에 없다. 그러니 망한 걸로 간주하고 돈을 주겠다는 것이다. 가장 깔끔한 방법”이라고 주장하더군요. 이럴 경우 투자자들은 약 30% 손해를 보게 됩니다. 주식에 투자한 투자가들이 채권은행과 똑같은 권리를 가질 수 없다는 생각에서 나온 제안입니다.

  이렇게 세 가지 다른 안이 나오고 각자 자신의 안을 고집하면서 좀처럼 워크아웃이 가닥을 잡지 못하고 있는 양상입니다.

  여기에 오너의 도덕적 해이도 도마에 올랐습니다. 금호산업은 워크아웃 신청 직전 아시아나항공 주식 12.7%를 952억 원에 금호석유화학에 팔았습니다. 이를 통해 금호석유화학은 아시아나항공의 대주주가 됐죠. 아시아나항공은 포기할 수 없다는 오너의 고집 때문에 벌어진 일입니다.

  당연히 금호산업 채권단은 뿔이 났습니다. 그대로 있었으면 금호산업이 아시아나항공의 대주주로서 좀 더 높은 기업 가치를 지닐 수 있는데, 아시아나 항공의 대주주가 금호석유화학으로 바뀐 까닭에 그 만큼 기업의 가치가 낮아졌다는 것입니다. 대우건설 투자자들도 금호산업에 받을 게 있는 만큼 펄펄 뛰고 있습니다.

  952억 원은 주가대로 받은 돈이지만 일반적으로 대주주가 바뀌는 거래를 할 때는 주가대로 파는 게 아니라 경영권 프리미엄을 얹어서 파는 게 보통입니다. 채권단과
대우건설 투자자들은 “금호석유화학이 가져간 지분을 원상복구하거나 아니면 나머지 아시아나
지분을 모두 사면서 경영권 프리미엄을 지급해야 한다”면서 금호그룹을 압박하고 있습니다.

 

 

 

5. 금호아시아나, 어떻게 되나

  워크아웃이 시작되면서 지금 회계법인을 중심으로 실사단이 구성돼 금호산업과 금호타이어의 재무, 자산 등을 조사하고 있습니다. 조사 결과 기업을 계속 유지하는 게 좋다고 판단되면 어떻게 경영을 정상화시킬지를 담은 경영정상화 방안을 내놓고 채권단과 기업이 경영정상화 약정을 맺게 되죠. 약정에는 출자전환, 자산매각 등 아까 설명한 워크아웃 방안이 모두 담깁니다.

  그렇지만 기업을 유지할 가치가 별로 없다는 결론이 내려지면 다음 순서는 법정관리입니다. 법정관리마저 잘못되면 파산 외에는 도리가 없습니다.

  직면한 문제는 가능한 빨리 경영정상화방안을 도출하는 겁니다. 지난해 말 기준으로 금호산업은 자본금이 바닥나 자본잠식 상태에 빠졌습니다. 금호산업이 워크아웃에 들어가면서 계약에 따라 자동으로 풋백옵션이 무담보채권으로 바뀌었고, 이에 따라 빚이 급증하면서 자본잠식 상태가 된 거죠.

  자본잠식 상태가 되면 거래소의 상장폐지 사유가 됩니다. 상장이 폐지되면 주가는 곤두박질치고 금호산업과 채권단은 공멸(公滅)하게 됩니다. 상장폐지를 막으려면 사업보고서에 자본잠식 상태를 해소할 구체적인 계획을 첨부해야 하죠. 그러려면 경영정상화 방안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지금처럼 서로 딴 소리를 하다가는 자칫 돌이킬 수 없는 길을 가게 될까봐 걱정입니다.

  금호아시아나 사태가 알려주는 교훈은 명확합니다. ‘무리한 욕심은 파멸로 가는 지름길’이라는 것이죠. 이번 사태를 통해 이런 교훈을 배웠다는 사실을 채권단, 대우건설 투자자, 금호그룹 오너들이 함께 보여줬으면 좋겠습니다. 이렇게 큰 대가를 치르고도 아무 것도 배우지 못했다는 것처럼 슬픈 일은 없을 테니까 말입니다.

카테고리 : 알기 쉬운 경제이야기 댓글 69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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