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기 수원시 팔달구의 한 주상복합 아파트 공사현장. 2008년 사업승인이 났지만 기초공사도 끝나지 않은 상태다. 저축은행 6곳이 프로젝트파이낸싱(PF) 대출로 541억 원을 빌려줬지만 회수 여부는 불투명하다. 동아일보 자료사진>
-들어가며
공적자금관리위원회는 25일 공적자금인 구조조정기금 2조5000억 원을 투입해 저축은행의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대출 부실채권 3조5000억 원어치를 사 주기로 했습니다.
공적자금은 떼일 경우 세금으로 보전해야 하기 때문에 ‘국민의 혈세(血稅)’라고 불립니다. 정부에서 ‘국민의 혈세를 동원한다’는 부담을 무릅쓰고 저축은행을 지원한 것은, 그렇지 않으면 저축은행 다수가 문을 닫을 수밖에 없는 절박한 상황이기 때문입니다.
뱅크런(대량예금인출사태)이 일어날까봐 표현은 자제하고 있지만 부동산 경기 침체로 인한 저축은행 부실은 말 그대로 ‘일촉즉발’의 상황입니다. 오늘은 부동산 PF 대출이 부실의 뇌관으로 자리 잡은 배경에 대해 얘기해보려고 합니다.
-얼마나 심각한데?

부동산 PF 대출에 대한 설명은 잠깐 뒤로 하고 이번에 발표된 금융감독원의 실태조사 결과를 볼까요? 마음의 준비를 돕기 위해 먼저 말씀드리자면 PF 부실이 심상치 않다는 것을 알고 있던 기자들조차 놀랄 정도의 결과였습니다.
실태조사 결과 저축은행의 PF 대출 12조5000억 원(지난해 말 기준) 중 사업이 제대로 진행되고 있고 사업성도 양호한 ‘정상’ 대출은 3조3000억 원으로 26.5%에 불과했습니다. 사업성은 있는데 사업진행은 예정대로 안 되고 있는 ‘보통’은 5조2695억 원으로 42.2%였고, 사업진행도 안 되고 사업성도 떨어지는 ‘악화우려’는 3조9000억 원으로 31.3%였습니다.
사업장 기준으로는 714곳 중 양호한 곳은 177곳(24.8%)에 불과했고 악화가 우려되는 곳이 289곳으로 40.5%를 차지했습니다. 쉽게 말하면 사업 장 10곳 중 4곳은 부실화되고 있다는 것이죠.
참고로, 2008년 6월 실태조사를 했을 때 저축은행 PF 대출 중 12조2000억 원 중 악화가 우려되는 대출은 1조5000억 원으로 12.4%에 불과했습니다. 당시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는 자체 계정으로 1조7000억 원의 부실 채권을 사 줬습니다. 그걸 감안하면 1년 반 사이에 부실이 4조 원이나 생긴 거죠. 저축은행 전체 자산이 80조 원대라는 걸 감안하면 어느 정도 상황이 심각한지 짐작하실 수 있을 겁니다.
-PF 대출이 뭔데?
그럼 다시 처음으로 돌아와 PF 대출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PF 대출은 한 마디로 ‘사업성을 보고 돈을 빌려주는 것’입니다. 언뜻 봐서는 대단한 게 없는 것 같지만, 사실은 획기적인 금융기법입니다.
은행에서 돈을 빌려본 분들은 아시겠지만 금융회사는 크게 3가지를 보고 돈을 빌려줍니다. 먼저 신용을 믿고 돈을 빌려주는 경우가 있습니다. 직장인 신용대출이나 마이너스 통장이 여기에 해당하죠. 신용으로 돈을 빌려주기 꺼림칙하면 담보나 보증을 요구합니다. 담보를 잡으면 돈을 못 갚을 경우 담보를 처분하면 되기 때문에 대출이 쉽고 한도도 높죠.
반면 PF 대출의 사전적 의미는 빌리는 사람의 신용이나 담보를 보지 않고 사업의 사업성만을 보고 돈을 빌려주는 금융기법입니다. 쉽게 말하면 빌리는 사람이 미덥지 않고 담보도 없더라도 괜찮은 사업이라고 판단되면 돈을 빌려주고 대신 나중에 높은 이자를 받는 것이죠. 이 기법은 1920, 30년대 미국 유전개발사업에서 도입돼 전 세계로 확산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물론 사전적 정의가 현실에서 그대로 적용되지는 않습니다. 현실에서는 아무래도 돈을 빌리는 사람이 약자인 만큼 금융회사에서는 우월적 지위를 이용해 담보를 잡기도 하고 보증을 요구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사업성을 보는 것’ 만큼은 철두철미해야 합니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그렇게 하지 않았고, 그게 결국 부실로 돌아오고 있습니다.
-근데 왜 문제가 되는 거야?
한국에서 PF 대출이 도입된 것은 외환위기 이후입니다.
외화위기 전까지 건설사들은 직접 부지를 매입하고 은행에서 돈을 빌려 아파트를 짓고 분양까지 했습니다. 대규모 건설사업에 필요한 돈을 빌리다 보니 ‘부채비율’이 높을 수밖에 없었고 이 때문에 외환위기 때 상당수가 문을 닫아야 했습니다.
아픈 경험을 가진 건설사들은 외환위기 이후 직접 부동산 개발사업을 벌이는 대신, 공사를 도급하는 쪽으로 방향을 틀었습니다. 그리고 그 틈을 타 시행사(디벨로퍼)가 부동산 개발의 주역을 맡았습니다. 시행사와 시공사가 분리된 겁니다.
자금력이 약한 시행사는 PF 대출을 ‘신종 금융기법’으로 광고하면서 이를 활용해 금융회사에서 건설사업에 필요한 돈을 빌렸습니다. 하지만 시행사가 지나치게 영세하다보니 금융회사는 △땅을 담보로 잡을 것과 △건설사의 보증을 세울 것을 요구했고 곧 이런 방식이 일반화됐죠.
한국판 ‘PF’의 문제는 바로 여기서 생겼습니다. 시공사의 보증이 개입하면서 더 이상 ‘사업 안에서 손실 분담이 이뤄진다’는 PF의 원칙이 지켜지지 않게 된 것이죠. 그래서 PF 전문가 중에는 “한국의 PF는 엄격한 의미에서 PF가 아니다”고 말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외국과 뭐가 다른데?
외국과 비교하면 한국판 ‘PF’의 문제를 좀 더 자세히 알 수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외국에서는 시행사(디벨로퍼)가 투자자를 모아 특수목적회사(SPC)를 만들면서 부동산 개발사업이 시작됩니다. 이 때 최소 20% 정도는 자기자본을 투입하는 것이 불문율입니다.
SPC에서 부지를 매입하면 인허가를 받은 뒤 금융회사에서 돈을 빌립니다. 돈을 빌릴 때 부지를 담보로 제공하고 필요하면 보증회사에서 보증을 받습니다. 시행사가 보증을 서는 경우도 있습니다.
<말하자면
이런 식입니다>
반면 한국에서는 시행사가 사업계획서를 만들고 돌아다니면서 돈을 빌리는 것이 사업의 시작입니다. ‘현대판 봉이 김선달’로 불리는 시행사들은 토지를 사면서 내야 하는 10%의 계약금조차 없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계약을 하면서 해당 부지를 담보로 제공하고 저축은행에서 계약금을 빌리는 식이죠. 이런 식으로 자기자본 없이 부지 매입과 대출을 동시에 진행하면서 인허가 과정을 밟습니다.
터를 닦는 데 필요한 돈은 시공사를 끌어들여 해결합니다. 시공사가 보증을 서면 저축은행은 이를 믿고 10억 짜리 땅에 대해 12, 13억 원을 빌려줍니다. 담보가치의 100% 이상을 빌려주는 것이죠. 부지 정리가 끝나고 분양 허가를 받으면 저축은행 대출을 은행 대출로 전환합니다. 시행사 대부분이 사업비의 1% 만큼도 자기자본이 없다보니 이처럼 보기에도 아슬아슬하고 취약한 구조를 갖고 사업을 진행하는 것입니다.
<말하자면
요런 방식이죠>
외국과 한국의 차이는 부동산 개발사업이 무산될 경우에 극명하게 나타납니다. 외국에서 부동산 사업이 무산될 경우 손실이 ‘분산’된다면, 한국은 손실이 ‘전이’되고 ‘확대’되는 것이죠.
외국에서 사업이 무산되면 SPC는 파산하고 디벨로퍼는 투자한 자기자본을 날립니다. 투자자와 금융회사는 SPC의 남은 자산을 팔아 나눠 갖고, 모자라는 돈은 보증보험에서 받거나 그냥 손실로 인식합니다. 물론 디벨로퍼가 보증을 선 경우는 디벨로퍼도 파산하겠지만 투자자와 은행의 손실은 제한적이죠. 공사를 맡은 시공사는 공사비를 떼이는 정도입니다.
반면 한국은 사업이 무산되면 시행사가 일단 망합니다. 시행사는 규모가 작기 때문에 시장에는 별 파장이 없죠. 하지만 시행사가 망하는 순간 보증을 선 시공사에게 빚이 넘겨집니다. 시공사는 공사대금을 못 받는 것은 물론 시행사의 빚도 갚아야 하는 이중 부담을 지게 되는 거죠. 과중한 부담을 못 이기고 시공사가 문을 닫으면 금융회사는 해당 사업 뿐 아니라 시공사에게 빌려준 돈을 모두 떼이게 됩니다. 점점 손실이 늘어나는 셈이죠.
-근데 왜 부실이 커진 거지?
저축은행 PF 부실이 커진 것은
물론 부동산 경기 침체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렇게까지 큰 영향을 받게 된 것에는 저축은행, 건설사, 금융 당국의 책임이 모두 있습니다.
저축은행은 시공사의 보증만 믿고 엄격한 사업성 심사 없이 돈을 빌려줬습니다. 사업 자체를 보는 게 아니라 시공사의 등급만 보고 돈을 빌려준 거죠. 연 15% 내외의 고수익에 눈이 멀다 보니 지방 건설사의 사업성 낮은 대출에도 여지없이 돈이 나갔습니다.
또 저축은행들은 주로 사업 초기 지방자치단체의 허가도 나지 않아 은행들이 대출을 꺼릴 때 돈을 빌려주는 ‘브릿지론’을 주로 담당했습니다. 지난해 말 기준으로 저축은행의 PF 대출 중 브릿지론 비율은 67.6%에 이르죠. 그만큼 리스크가 컸다는 얘깁니다.
PF대출 비중이 지나치게 높은 것도 문제로 지적됩니다. 선진국 금융회사들은 리스크가 높은 PF사업의 비중을 전체 자산의 5~10%로 제한합니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일부 저축은행의 경우 전체 대출의 80%가 PF 대출이었을 정도로 포트폴리오 관리를 소홀히 했습니다. 그러다보니 PF대출 부실이 저축은행의 목줄을 죄게 된 거죠.
한편, 시공을 맡은 건설사들은 실적을 올리기 위해 지급보증을 남발했습니다. PF 대출에 대한 보증은 회계 상 채무로 나타나지 않는다는 점도 이들의 도덕적 해이를 부추겼죠. PF 대출이 갖고 있는 리스크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금융당국의 책임도 적지 않습니다.
-공적자금을 투입하면 해결되나?
더 문제는 공적자금 투입에도 불구하고 저축은행의 PF 부실이 앞으로 더 커질 가능성이 크다는 것입니다.
2008년 말부터 1조7000억 원을 들여 한 차례 부실을 털었지만 부실 PF는 1년 반 만에 4조 원이 새로 생겼습니다. 이번에 ‘정상’ 또는 ‘보통’으로 분류됐던 PF 대출 8조6000억 원도 안심할 단계는 아니라는 거죠. 한 금융당국 관계자는 이번 조치를 ‘언 발에 오줌누기’라고 표현하더군요.
결국 관건은 부동산 경기입니다. 부동산 경기가 계속 침체되면 부지를 매입한 상태에서 분양이 미뤄지거나, 다 지어놓은 상태에서 미분양이 남게 됩니다. 이자부담을 이기지 못한 시행사가 망하고 여기에 지급보증을 선 건설사가 문을 닫으면 저축은행의 부실도 커질 수밖에 없죠. 금융당국의 한 국장은 “이번 올해 안에 부동산 경기가 회복되지 않으면 추가 부실이 불가피하다”고 말하더군요.
밑도 끝도 없이 저축은행에 혈세를 넣느니 부실 저축은행을 모두 망하게 하자는 극단적인 주장도 나옵니다. 하지만 저축은행이 문을 닫으면 5000만 원 이상을 맡긴 고액 예금자들이 피해를 입게 됩니다. 또 저축은행 몇 개가 문을 닫으면 뱅크런(예금 대량 인출 사태)가 나면서 업계 전체가 위험해질 수 있습니다. 이 경우 막 글로벌 금융위기에서 벗어난 국내 금융시스템에도 적잖은 타격을 줄 수밖에 없죠.
결국
정부가 고육지책으로 ‘공적자금 투입’을 선택하긴 했지만 저축은행발 위기는 이제 ‘시작’에 불과한
셈입니다.
사실 정부가 할 수 있는 일도 많지 않습니다. 부동산 경기가 곤두박질치는 이상 ‘백약이 무효’하니까요. 그나마 할 수 있는 일이라면 이번 부실에 대해 철저히 책임을 묻는 것과, 앞으로 한국형 PF의 부작용을 줄일 수 있는 대책을 내놓는 것 정도일 겁니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에 불과하긴 해도 안 하는 것 보다는 낫겠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