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광화문 거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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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래된 사진첩에서 찾아낸 옛 광화문거리는 은행나무 단풍으로 노랗게 물들었는데… (사진 위,2007년 가을에 촬영)    서울의 중심거리인 세종로를 차량중심에서 사람들이 드나들 수 있는 공간으로 바꾸고 경복궁과 북악산등을 자유롭게 조망할 수 있는 공간을 조성하기 위해 만든 광화문 광장이 조성된지 4년이 흘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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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조작의 명수들

사진은 진실을 기록하는 매체일까?

 독재자들은 사진을 조작해서 얼마나 많은 진실을 왜곡하고 국민을 속이면서
자신들의 지배구조를 강화시켰을까?

 

이탈리아의 무솔리니는 말(馬)을 무서워했으나 칼을 차고 종마에 올라탄 모습으로
권력을 상징하기위해 말위에 앉아있는 기수의 얼굴을 무솔리니로 바꿔치기 하거나
고삐를 잡고 있는 마부를 지워버렸다.

 

 

 

 히틀러의 전속사진사 하인리히 호르만은 군대를 사열하거나 대중을 감동시키는
“영웅적인 웅변가 히틀러”를 사진조작으로 재창조해 냈다

 그러나 역사상 가장 많이 사진조작에 이용(?)당한 사람은 소련의 혁명가
트로츠키였다

 볼셰비키혁명때 레닌 함께 연단에 섰던 사진들이 수없이 많았는데 숙청당한
이후 트로츠키의 모습은 소련역사에서 지워지고 레닌만 남았다

 사진조작은 특히 독재자와 공산정권이 많이 애용했다

 

                                                                                  

                                                  레닌
                                                                                    무솔리니

 

위의 왼쪽사진은 1919년 5월 모스크바붉은 광장에서 연설하는 레닌의 뒤에 추종자들이
함께 보이자 우상인 레닌만 더욱 선명하게 부각시키기 위해 배경을 깨끗이 지워버린
장면이다

 

 위의 오른쪽사진은 1934년 4월 22일 이탈리아 파시스트노동축제에서 연설하는
무솔리니의 모습을 뒷배경을 완전히 지우고 당당하게 주먹을 치켜세운 사진으로 변형시켜
“항상 믿어라. 복종하고 싸워라”라는 구호와 함께 선전 자료로 사용했다

 

 이는 파시스트나 볼셰비키가 국민들을 우민화(愚民化)하고 국제화에 대한
어떤 환상도 갖지 못하게 한 정치적인 상징조작의 대표적인 경우라고 할 수 있다.

 

 

 

소비에트 비밀경찰 총수였던 니콜라이 예코프(오른쪽 아래)가 스탈린고 함께 찍은
사진과 대숙청이후 <사진위에서> 사라졌다

 

 

 

     < 계 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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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기자 직업윤리 되돌아보게 한 수단내전 취재사진 <독수리와 어린이>

 물에 빠진 사람을 놓고 사람을 먼저 구할 것인가? 사진을 먼저 찍을 것인가? 하는
상투적인 질문은 한때 사진기자 입사시험 면접때

유행했던 질문이었다.

 

<취재와 인명보호중 어느 것이 먼저인가?>

 

 남아공의 한 신문사에서 근무하던 사진기자 캐빈 카터는 수단정부군과 인민해방군이
10년간 벌이고 있는 내전을 취재하기위해

보도통제망을 뚫고 케냐의 나이로비에서 2천 달러에 전세낸 세스나기를 타고 콩고 쪽으로 잠입했다. 50도가 넘는 사막지역을
하루

50Km씩 걸어 수단에 들어갈 수 있었다.

 그는 18개월 동안 지옥과 같은 참상을 취재하던 중 아요드지역 사막근처마을에서
뼈가 앙상한 어린이가 굶주림을 이기지 못하고

비틀거리며 걷다 쓰러지는 장면과 그 뒤에서 어린이가 죽기만 기다리며 따라다니는 대머리 독수리가 노려보고
있는 기가 막힌 광경을

보고 사진을 찍었다. 그리고 소리를 질러 독수리를 쫒아 벼렸다.

 잠시 후 어린이는 다시 비틀거리며 마을 쪽으로 걸어갔다. 그 후 어린이가 어떻게
되었는지 알 수 없었고 다시 찾을 수도 없었다.

 

 그는 “나는 충격이 스쳐간 뒤 한동안 나무그늘에 주저앉아 소리 내어 울었다
눈앞에서 죽어가는 아이들을 보면서도 아무것도 해 줄 수가

없었던 참담한 현실이
거기 있었다” 고 후에 고백했다.

 

 

 

  케빈 카터는 이 사진으로 1994년 보도사진부문 퓰리쳐상을 받았고
뉴욕타임즈는 50만 명이 사망한 것으로 추정되는 수단내전참상을

이 사진과 함께
보도했다.  

 

그러자 캐빈 카터의 비인간적인 직업윤리와 도덕성을 비난하는 여론이 쏟아졌다

 

 “사진을 찍으면서 초점 맞출 정신이 있었으면 어린이를 먼저 일으켜 안전한
곳으로 데려다 주었어야 했다”

 

 “사진기자로서는 만점일지 모르나 인간성은 빵점이다”

 

“ 퓰리쳐상은 윤리나 인간성과 무관한가?”하는 비난이 쏟아졌다.

 

뉴욕타임즈는 며칠 후 다음과 같은 이례적인 社告를 냈다

 

<기자의 보고에 의하면 어린이는 독수리에 쫒겼지만 독수리가 달아난
다음에 어린이는 다시 걷기 시작했다.

그 어린이가 식량보급소에 도착했는지는 알
수 없다>

 

 일본 아사히신문은 캐빈 카터의 취재기를 싣고 그에게  쏟아진 비난과
그의 저널리스트로서의 역할을 옹호하는 언론계의 반응을 소개했다

“그 근처에는
많은 구호 관계 자들이 있었다 그러나 캐빈 카터를 대신해 그곳에서 어떤 일이 일어났는가를
세상에 알릴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5백만 명중 2백만 명이 굶어 죽었다는 뉴스를
보고도 태 연해 했던 사람들에게 빨리 어린아이들을 구하라고 소리치게  만든
것이 바로 그의

사진 한 장이였다”  그를 옹호하는 쪽의 목소리다.

 

1994년 7월 29일 AP통신이 전송한 한 장의 얼굴사진과 그 아래 사진설명은 다음과
같다

 

<포토그래퍼 캐빈 카터, 굶주린 수단어린이와 그 뒤에 서있는 독수리사진으로
94년 퓰리쳐상 수상. 94년 7월 27일 밤 그의 픽업트럭에서 자살

사인은 일산화탄소중독
나이 33세>

 

캐빈 카터의 돌연한 자살이 그의 사진에 대한 윤리적인 비난때문인지는 확실치
않다

 

퓰리쳐상을 받은 대부분의 사람들은 결국 정신병 치료를 받게 된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왜냐하면 그들은 타인의 고통 혹은 불행을 댓가로 찬사를 받고있다는 화해할 수
없는 죄책감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의 불행을 독수리처럼 따라 다녀야 하는 사진기자의 운명

 

캐빈 카터가 그 운명의 희생자가 아니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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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작품의 표절은 "우연의 일치"와 동의어인가?

 예술은 기술이 아니고 정신이다

 창의성과 고뇌, 실험정신 없이 만들어지는 것은 진정한 의미의 예술작품이
아니다

 고전에서 대중문화에 이르기까지 남의 것을 무작정 베끼는 표절풍토는 시대와
장소, 매체와 장르를 구별하지 않고 전방위적으로 나타나는 특징을 보인다

 우리나라에서 대표적인 사진표절 사건은 1984년 중앙일보주최 중앙미술대전에서다

 대상작 ‘전철정류소’는 경향신문이 발행하는 같은해 4월8일자 ‘레이디 경향’에
서경택기자가 촬영해 게재한 ‘지하철의 보통사람들’을 캔버스에 복사하듯 옮긴 그림이다

 

사진-서경택기자의 ‘지하철의 보통사람’

 

그림-전철 정류소

 

  당연히 표절시비가 뒤따랐다

 당시 화가와 심사위원장의 말은 반 예술의 극치를 보여주었다

 "책에 난 사진을 보고 그렸다"고 뒤늦게 표절사실을 인정한 화가의
의식에서 예술가 정신의 부재를 본다면  "사진을 보고 그린 그림이 대상을
받았으니 그 기자는 영광으로 알아야 한다"고 말한 심사위원장의 망언은 이땅의
예술의 개념을 송두래째 부정한 명언(?)으로 두고두고 조롱거리가 되고 있다

소설이나 영화시나리오, 음악등에서  표절시비는 대부분 "우연의 일치"를
내세워 유야무야되는 악순환을 겪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런 악순환이 계속되는 이유는 어디있을까?

혹시 예술가 제작자들의 창조적인 능력이 부족한 것 이외에 도덕불감증 같은 악성유전자때문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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