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 네거리,
광화문 광장이라는 표현보다는 더 익숙합니다.
최근 서울시는 광화문 광장을 복원하겠다고 수 백억원의 예산을 투입해서 대대적인 공사를 하고 있습니다.
얼마나 근사한 작품이 나올 지는 모르겠지만, 그만큼 정치와 문화의 중심지로 광화문이 갖는 상징성이 대단하다는 뜻 같습니다.
실제 한 인터넷 언론사 대표는
"광화문 근처를 버리고 상암동으로 이전을 결정한 것을 후회한다"는 발언을 하기도 했습니다.
올 여름 촛불 시위를 보고 광화문 거리의 무거움을 다시금 깨달았다는 얘기였습니다.
이순신 장군 동상, 교보문고 빌딩, 동아일보사…
광화문을 상징하는 건물들은 적지 않지요. 그런데 ”광화문 네거리”란 권력이 자리한 것을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닙니다.
임진왜란 이후엔 조선 임금이 거처하는 곳이 창경궁이었던 탓에
고종이 광화문을 복원한 이후에야 비로소 광화문 앞이 권력의 길로 자리매김 할 수 있었던 것이죠.
이후 조선총독부가 광화문을 밀어 내고 들어 앉으면서, 근대 이후에 그 경향이 더두드러졌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1950년대 후반의 광화문 네거리 사진을 보여드리겠습니다.
(*김한용 선생님은 어떤 이유에서인지 모르지만, 고집스럽게 기록용 사진을 많이 찍으셨습니다. 이런 구도의 사진을 찍기 위해서는 건물 옥상으로 올라가서 셔터를 눌러야 했을 텐데요. 비싼 필름을 사용해야 했는데, 이런 사진은 대상이 명확치 않기 때문에 기록용으로 보입니다. 정말 웬만한 언론사도 이런 사진을 소장하기는 쉽지 않은데 말입니다.)

전철이 느긋하게 광화문 네거리를 오다니던 1950년대 후반의 모습. 놀랍게도 지금은 상업지대인 곳이 대부분 공원으로 이뤄져 있습니다. 저 사진 가운데 지금 남아 있는 건물은 미국 대사관/ 문화체육관광부가 유이합니다.

사진을 조금 확대해 봤습니다. 각종 식당과 상업 빌딩으로 들어찬 저 광화문 모퉁이가 평화로운 공원이었습니다.
냉면과 불고기 간판이 인상적입니다. 행인들이 정장을 차려 입고 있는 모습도 보이네요.

저 전철은 청와대 쪽에서 내려오는 2번 전철인가 될 것입니다. 나중에 40~60년대 서울시내 전철도를 찾아놓겠습니다. ”
한-미-일 프로레스링 대회”라는 입간판도 눈에 띕니다. 아마도 일본에서 인기있던 프로레스링 영향 때문이겠죠.

그리고 언제나 옛날 사진에 등장하는 조선총독부(옛 국립중앙박물관) 모습입니다.
저는 1993년도에 본격적으로 서울 생활을 시작했는데, 당시에 이 건물을 보고 깜짝 놀랬던 기억이 있습니다. 물론 박물관 내부를 세심하게 돌아다녔던 기억도 있습니다. 이 건물의 해체 결정에 살짝 흔들리기도 했지만 이 보다 더 근사한 광화문이 새로 탄생할 것이라는 믿음을 갖고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