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들 앞에서, 혹은 자신이 속한 회사의 고위층을 모시고 ’프리젠테이션’을 해 본 사람이라면, 공감할 수 있는 명언이 있습니다.
“프리젠테이션은 영혼을 파는 일이다!”
그렇습니다. 단 10여 분의 프리젠테이션일지라도 발표가 끝나는 순간 다리에 힘이 풀리고 정신이 멍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겁니다. 어떤 이는 “밤을 새워 만들어야 하는 ‘파워포인트 작업’과 그리고 살떨리는 발표 단계가 너무 고통스럽다”고 토로하기도 합니다. 어찌됐건, MS가 만들어 낸 ‘파워포인트’라는 도구가 신인류에게 큰 짐이 되고 있는 것은 분명합니다.
IT업계에서 일하는 벤처인들에게도 이 ‘프리젠테이션’은 피해갈 수 없는 병역과도 같습니다. 이를 얼마나 잘하느냐에 따라, 수십억원의 투자자금을 쉽게 끌어올 수도 있고, 반대로 좋은 기술을 갖고도 투자자에게 어필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1월13일에 열린 ’퓨처캠프’ 행사장에서 자신만의 독특한 화법으로 프리젠테이션을 펼치고 있는 ’올라웍스의 류중희 대표(33)’. 그는 아직도 대학생 같은 차림으로 각종 세미나에 빠짐없이 참석하곤 합니다. 그의 프리젠테이션을 접해본 사람들은 한결같이 ”내 자신의 프리젠테이션을 반성하게 된다”고 한탄을 쏟아내곤 하더군요.
지난 1월11일, 웹2.0 업계에서는 아주 특기할 만한 일이 있었습니다. 세간에 진대제 펀드로 알려진 VC(벤처 캐피탈)이 한 국내 벤처에 약 37억원(400만 달러)를 투자한 것입니다. 스카이레이크인큐베스트(SIC)라는 PEF(사모펀드)와 인텔 캐피털 등이 함께 투자를 했다고 하는 군요.(자세한 내용은 여러 기사에 많이 나와있습니다)
일각에서는 웹2.0의 열풍에 편승했느니, 투자 방식이 복잡하고 3명의 CFO를 파견했느니, 하는 논란도 없지 않습니다. 그러나 일개 국내 벤처가 해외의 VC로부터 펀딩을 받는 다는 것은 사실 굉장한 일입니다. 그래서 ‘올라웍스(www.olaworks.com)에 대한 관심이 지난주에 폭증했더랬지요. 웹2.0 업계에서는 상당히 유명한 회사였지만 언론이 크게 주목한 회사는 아니었습니다.

올라웍스는 사진 등 이미지를 통한 얼굴 인식 기술을 이용해 이미지를 통한 검색의 새로운 혁명을 꿈꾸고 있습니다. 이를 통해 사진 기반의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로 확산하고 종국에서 이미지 기반의 검색광고시장을 창출하겠다는 거지요. 오늘보다 미래가 더욱 기대되는 회사입니다.
올라웍스의 성공은 류 대표의 뛰어난 프리젠테이션?
저는 지난해 봄부터, 각종 강연회를 통해서 ‘류중희 대표’를 접해왔습니다. 그의 강연은 사람의 넋을 빼어 놓는 것으로 유명합니다. 그의 압도적인 에너지 때문입니다. 그는 한 시간 강연에 150매의 파워포인트를 준비할 정도로 폭발적인 언변을 자랑합니다. 대단한 재주입니다. 진대제 펀드의 투자 소식을 접하고는, 저는 자연스레 저는 류 대표의 카리스마 넘치는 프리젠테이션을 떠올렸습니다.
물론 올라웍스의 기술이 부족하다는 얘기가 아닙니다. 이미 여러기사를 통해서 아시겠지만, 이 회사는 사진 이미지를 통한 얼굴인식 기술과, 자동 태깅 기술 분야에서 세계적인 수준의 기술력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더구나 류 대표는 KAIST 박사 출신으로 현재 같은 대학 정보미디어경영대학원 대우교수까지 맡고 있는 실력파 벤처 기업인 입니다.
하지만, 어떤 학위나 수상경력보다 벤처기업인에게는 중요한 무기는 ‘영혼을 파는 작업인 프리젠테이션’이라 하겠습니다. 류 대표의 프리젠테이션은, IT업계와 무관한 분이시라도 한 번쯤 들어봐야 하는 ’명불허전(名不虛傳)’으로 부상하고 있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류 대표의 자동태깅에 대한 강의를 듣고는 태그의 중요성에 대해서 확실하게 인식을 했습니다. 이후 제 프리젠테이션도 그의 영향을 많이 받았답니다.
그런데 많이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류 대표의 빛나는 프리젠테이션의 비결에 대해서 말입니다. 그가 과학고와 KAIST의 전자/전산과 출신이라는 것은 널리 알려졌는데요. 정작 중요한 점은 널리 알려지지 않았더군요. 류 대표가 바로 1999년 SBS인기 드라마 KAIST(카이스트)에서 거의 주연급 연기를 펼진 연기자 출신이라는 사실입니다. 연기경험이 무대 위에서의 자신감으로 연결된 것일까요?
</p

1999년 최고의 청춘 드라마로 기억되는 카이스트(SBS). 당시에 이 드라마 이후에 과학고와 KAIST에 대한 인기가 폭발했더랬죠. 지금 돌이켜 보면, 이 드라마는 거의 기적과도 같은 작품 입니다. 출연진의 면면이 화려하다 못해 눈부시기 때문입니다.
일단 송지나 극본에, 주병대 PD. 그리고 주인공급으로는 불새의 주인공인 고 이은주 양, 얼마전에 이혼한 채림 씨가 있고, 이은주 양의 상대역인 김정현, 그리고 채림의 상대역인 이민우 등이 있습니다. 이휘향이나 성우 김기현, 안정훈 씨등의 중견 연기자 이외에도, 이나영, 추자현, 강성연, 심지어는 김주혁까지도 얼굴이 비칩니다. 어라! 프란체스카에 나왔던 이두일씨까지도 등장하는군요. 21세기의 주요 스타들을 키워낸 기념비적 드라마라 할 수 있습니다.
방영당시 드라마 ‘카이스트’는 ’과학’을 사랑하는 대한민국 청춘의 치열한 젊음을 세밀하게 묘사했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그런 그림이 나오게 된 배경에는 실제 카이스트 학생이 드라마에 등장한 공이 컸습니다.
그렇습니다. 류중희 대표가 바로 카이스트의 또 다른 주연이기도 합니다. 그는 드라마에서 ‘류중희’란 자신의 이름으로, 자신의 전공인 전산과 석사학생의 모습으로 열연을 펼쳤습니다. 지금 관점으로도 대단히 혁신적인 일이었죠. 그리고 맡은 배역의 비중이 작지 않았습니다.
만일 그가 ‘상아탑’의 학자를 꿈꾸었다면 드라마 출연 제의에 선뜻 응하지 않았을 겁니다. 때문에 류 대표는 ’신세대 과학자’라고 불려도 좋을 것 같습니다. 물론 내면에 그만한 끼가 있었기 때문에, 대스타들 틈 속에서 조금도 흔들림 없이 당찬 연기를 해 낼 수 있었겠죠.
저는 불행하게도 99년-2000년 당시에 카이스트를 시청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아직도 SBS홈페이지에서는 이 드라마를 볼 수가 있더군요. 그래서 정말 등장하는 지 확인해야 할 것 같아 1000원을 지불하고(500원x2편)서 인터넷으로 카이스트를 잠깐 살펴보게 됐습니다. 그런데 어느 편에 등장하지 확신이 안서더군요. 그래서 류 대표에게 도움을 청했습니다.
“류 대표님, 카이스트 몇 편을 보면, 대표께서 카이스트에 등장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을까요?”(정)
“드라마 거의 전편에 제가 다 나와요”(류)
“아 그래요? 그래도 가장 많이 나오는 편을 골라 주세요”(정)
“그럼 드라마 막판에 방영된 ’세발 자전거’편을 보세요”(류)
====카이스트58편 (2000년 3월5일 방영된 ‘세발 자전거-1)====

지금은 최고의 남자 배우로 각광받는 김주혁 씨(왼쪽)가 박사과정 생으로 나옵니다. 김정현 씨는 석사 1년차(?)이고, 그 사이를 잇는 고참 석사과정(가운데) 학생으로 류중희 대표가 출현합니다. 전산 랩에서 꽤 비중있는 배역이더군요.

놀라운 점은, 김주혁씨가 현재의 꼬장꼬장한 이미지 그대로 박사과정 생으로 나온다는 건데요. 사람이란 20대와 30대가 크게 달라지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가 생각보다 오랜 무명 생활을 거쳤다는 것도 알게 됐습니다.

가장 재미있는 대목인데요. 이휘향 교수의 지도 아래 연구원들이 발표를 하는 대목입니다. 발표자인 류중희씨가 세미나 준비를 제대로 해오지 못했군요. 그런데 건방지게도 랩의 막내인 이나영 씨가 그 틈을 헤집고 날카로운 질문을 던져버립니다.

이나영씨가 카이스트에 나온 다는 사실은 좀 낯설었습니다. 그의 극중 역할은 ‘사회성’이 전무한 범생역할이더군요. 예를 들어 지도가 있어야 학교 밖을 나갈 수 있는 ‘방향치’에다가, 인간관계도 거의 없다시피한 그런 전형적인(?) 카이스트 모범생으로 말입니다.

신기한 점은, 이나영씨가 카이스트에서 맡았던 역할의 컨셉을 지금도 갖고 있다는 점입니다. 왠지 이나영 씨는 제 3자가 쉽게 접근하기 힘든 인상입니다. 사회성이 조금은 부족한 자신만의 세계에 빠져있는 공주처럼 보이는 거지요. 이 드라마에서도 마찬가지 입니다.
한 가지 재미있던 점은 드라마에서의 질문이 “지네틱(genetic) 알고리즘이 온라인 상에서도 구현 가능한가?”라는 것이었습니다. 극의 사실성을 높이기 위한 장치였을 텐데요. 그런데 아마도 현재 올라웍스 알고리즘 가운데 일부는 이 지네틱 알고리즘이 쓰이지 않았을까요?(확인되지는 못했습니다)

위기에 몰린 류중희 대표. ‘세기말’적인 헤어스타일이 인상적입니다. 후배에게 차마 화를 내지 못하고, 토라지는 연기가 일품이더군요. 그는 후배 이나영을 위해 밤을 새워 보고서를 작성했기 때문에 제대로 세미나 준비를 할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나영은 그것도 모르고 선배에게 공격적인 질문을 해댄 거죠. 사회생활의 미숙함 때문입니다.

류중희 학생들 크게 질책하는 이휘향 교수. 그는 학생들과의 인간관계에 대해 부담을 가진 냉철한 교수로 등장합니다. 물론 학생들에 대한 애정이 깊습니다.
‘세발 자전거’ 편은 제목의 함축하는 의미가 큽니다. 낯선 인간관계과 복잡한 사회생활에 힘겨워 하는 20대 과학도들에게, 선배들이 어느 선까지 도움을 줄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이 들어가 있는 거지요. 드라마상 대사를 일부 적어봤습니다.
- “…(힘겨워하는) 학생들을 돕고 싶어요.”(이휘향)
- “아니, 그냥 놓아주세요. 20대란 자전거를 배우는 시기 아닙니까. 누가 항상 뒤에서 붙잡아 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혼자서 넘어지고 다쳐봐야 자전거를 배울 수 있는 거예요.”(학과장)
- “그럼 20대에 배운 자전거로…평생을 달려야 하는 건가요?”(이휘향)
- “허긴…평생 자전거 타는 법을 배우지 못하는 사람도 더러 있더군요.”(학과장)
이 대화가 인상적으로 들렸던 까닭은는 카이스트 주연배우였던 고 이은주 씨 때문입니다. 그는 스스로 자전거 타기를 그만둔 사람이 됐습니다. 그리고 이 드라마에 등장했던 수 많은 청춘 배우들 가운데, 어떤 이들은 이미 오래전에 스타가 됐고, 또 이제야 인기를 얻게 된 사람도 있습니다. 모두가 20대의 풋풋했던 젊음은 엷어지고, 30대에 걸맞은 다양한 삶의 지평이 펼쳐진 것이지요.
모두가 세파를 뚫고 성공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류 대표 역시 모진 현실의 마찰과 중력을 극복하고 자전거 타기를 계속해 나갈 수 있을까요? 물론 그러리라 기대합니다.


이야기가 좀 엉뚱하게 샜습니다만, 결론은 하나 입니다. 올웍스란 회사의 기술은 카이스트란 든든한 인적 구성원들이 있었기에 가능했고, 그 중심에는 류중희 대표라는 걸죽한 인물이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그는 드라마에 출연했던 배짱과 끼를 발휘해서 지금도 아주 뛰어난 프리젠테이션 능력을 발휘하고 있다는 것이지요.
(지난번 강좌에도 뒤 늦게 도착해서는 담박에 이리저리 조합해서 100여매의 프리젠테이션 자료를 만드는 모습을 선보였습니다. 정말 놀라운 순발력이라고 생각됩니다. 물론 예전의 자료 활용이 많았지만 말이죠.)
어디선가 강사 목록에 올라웍스 ‘류중희 대표’란 이름이 보이면, 꼭 참석하시길 바랍니다. 웹2.0이 무엇인지 담박에 이해할 수 없을 지는 모라도, 올라웍스가 무슨 일을 하는 회사 인지 쯤은 명쾌하게 이해할 수 있으리라 확신합니다.
정호재 기자
demia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