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로 엄마 이야기

 처음
써 본 내러티브 리포트. 인터뷰 하면서 여러 번 눈물이 나왔다.

 

  ‘로로’(9)는 초등학교 3학년 여자아이다. 만화 캐릭터 ‘뽀로로’를 닮았다고 해 ‘로로’라는 별명이 붙었다. 어느 날 교회에서 친구가 물었다.

 “너는 아빠 없어?” 

 “응, 없어. 근데 아빠 있는 게 중요한 거야?” 

 “중요하지!”

 “난 하나도 안 중요해.”

  그날 로로는 집에 와서 엄마에게 물었다. “아빠 있는 게 중요한 거야?”

 “어떤 애들한테는 중요할 수 있지만 다 그런 건 아냐. 근데 아빠란 존재는 중요하지.”  

●“엄마, 미혼모가 뭐야?”

  로로는 언젠가 책을 읽다가 ‘미혼모’라는 단어를 봤다. 책에 소개된 가족관계가 자신과 비슷하다고 느껴 그날 엄마에게 물었다. 

 “미혼모가 뭐야?”

 “결혼 안 하고 아이 낳아서 기르는 사람.”

 “엄마랑 이모들(미혼모 생활시설에서 만난 사람들)은 다 결혼 안 하고 아이 기르는데, 죄다 미혼모야?”

 “응.”

 “어쩐지!”

  로로는 이제 자신에게 아빠가 없다는 사실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것 같다. 그래도 엄마 최유선(가명·34) 씨는 혹시 로로가 밖에서 이 때문에 상처받는 일이 생길까 봐 이런 말을 한다. “엄마가 죄 지은 건 아니지만 친구들에게 그 얘긴 안 했으면 좋겠어.엄마한텐 아픈 얘기거든….”

  그래서 로로는 가끔 거짓말을 한다. 친구 엄마가 “아빠는 어디 계시니”라고 물어보면 “아빠는 일해요”라고 대답한다.

●집-학교-집-병원…영그는 간호사의 꿈

  유선 씨를 만난 것은 7일 오후 5시 서울의 한 주택가에서였다. 분홍 후드티와 청바지를 입은 그는 키가 179cm로 훌쩍 크고 마른 체형이었다. 배낭을 멘 채 자전거를 타고 골목에 나타난 그는 학교에서 수업을 마치고 오는 길이라고 했다. 그는 현재 3년제 간호전문대에 다닌다. 디자이너가 꿈이었지만 접었다. 과로로 쓰러지고 나서 의사가 “무거운 것을 들지 말라”고 했기 때문이다.

  그를 따라 들어간 집은 작은 방과 작은 부엌이 전부였다. 집안에선 커다란 풍선과 강아지 인형이 굴러다녔고, 냉장고에는 알록달록한 종이접기가 붙어 있었다.

  학교에서 돌아온 로로가 친구와 함께 책을 보면서 놀고 있었다. 엄마를 본 로로는 어리광을 피우고 싶어 했지만 유선 씨는 아이와 같이 있을 시간이 없다. 인근 병원으로 아르바이트를 하러 가야 했기 때문이다. 그는 아이 간식을 챙겨 주고는 다시 가방을 걸쳐 멨다. 오후 6시부터 10시까지 병원에서 입원 접수 등의 일을 한다. 집에 오면 오후 10시 반. 학교 공부를 마치고 오전 2, 3시가 돼서야 잠을 잔다. 학교 수업은 다음 날 9시에 시작한다. 학교를 다니면서 그의 일상은 몇 년째 이런 식으로 계속되고 있다.

●딸 낳던 날 들은 건 축하 대신 한숨

 ‘로로 아빠’가 됐어야 하는 유선 씨의 남자친구는 부잣집 막내아들로 태어나 여리게 자란 동갑내기였다. 대입에 낙방하고 재수할 때 만나 3년 동안 사귀었다. 임신 사실을 처음 알렸을 때 그의 표정은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공포’ 그 자체였다.

  유선 씨는 “애 아빠가 되어야 할 남자가 남편 자격, 아빠 자격이 없는 남자란 사실을 임신 후에야 알았다”고 했다. 그는 가끔 전화를 했는데 오히려 자기가 힘들다고 징징댔다. 남자친구와 연락을 끊었다. 그러면 찾아올 거라고 믿었다. 애 아빠니까.
그런데 소식이 없었다.  

  주변 사람들은 헤어지고 낙태한다, 헤어지고 출산한다, 출산하고 결혼한다 등 세 가지 안을 제시했다. 어느 것도 쉬운 선택이 아니었다. 그는 결국 두 번째 안을 선택했다.   

  그의 부모는 “아이를 지우라”며 펄쩍 뛰었다. 출산을 고집하자 부모는 동네사람들이 알까 봐 이사까지 했다. 불같은 성격의 어머니는 지금도 그를 이해하지 못한다. 그는 현재 부모와 사실상 의절한 상태다.

  유선 씨는 25세가 되던 2001년 서울 서대문구 소재 애란원(미혼모 생활시설)에 혼자 들어가 아이를 낳았다. 출산 당일 ‘축하 인사’가 아닌 ‘한숨 소리’와 ‘위로’의 말이 들렸다.

  아이를 혼자 기르기로 결심한 후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견뎌야 했다. 처음엔 창피해서 2주 동안 애란원 건물 밖으로 한 발짝도 안 나갔다. 아는 사람을 만날 수도 있다는 두려움 때문이었다.

  애란원에서 7개월을 보내고 2000만 원짜리 전세를 얻어 지냈다. 아기와 단둘뿐이었다. 직장 생활을 하면서 모아둔 돈을 조금씩 썼다. 아이가 어린이집에 갈 나이가 되자 전문대에 입학해 디자인 공부를 시작했다. 디자이너의 꿈을 이루고 싶었다.

  학교 갔다 와서 아이를 재우면 오후 9시였다. 그때부터 오전 1시까지 공부했다. 다시 오전 1시부터 아르바이트를 했다. 옷감을 바느질해 장식을 다는 아르바이트였다. 잠자리에 드는 시간은 오전 3시. 3, 4시간 눈을 붙이고 일어나야 했다. 방학 때는 청소일 책방 아르바이트 등 닥치는 대로 일했다. 돈을 벌어야 했기 때문이었다. 2년 동안 그렇게 살면서도 등록금이 아까워 공부를 악착같이 했다. 1등은 늘 그의 몫이었다.

●‘미혼모’ 밝히는 순간 합격은 취소되고…

  하지만 미혼모 신분에 취직은 쉽지 않았다. 대학을 졸업한 2005년 겨울, 디자인 관련 중소기업에서 면접을 봤다. 연봉 이야기도 거의 다 끝날 무렵 주저하다 말을 꺼냈다.

 “말씀드려야 할 게 있는데요. 제가 아이를 혼자 키워요. 미혼모예요.”

  순간 50대 남자 사장의 얼굴이 심하게 구겨졌다.

 “그런 건 처음에 이야기했어야지. 괜히 내 시간만 뺏었잖아.”

  소리 지르는 사장을 두고 그냥 뒤돌아 나왔다. 대개 이런 식이었다. 최종 면접까지 갔어도 미혼모임을 밝히면 나중에 이런 전화가 걸려왔다. “우리 회사에 어울리지 않는 분인 것 같습니다. 출근하지 않아도 됩니다.” “사람이 필요하긴 했는데, 회사가 안 뽑기로 최종 결정을 했습니다.”

  그렇게 아홉 번의 면접을 치렀다. 결국 미혼모란 사실을 속이고서야 중소기업에 취직할 수 있었다. 연봉 1800만 원. 괜찮은 조건이었다. 그런데 간신히 취직한 회사에서 보험 때문에 필요하다며 호적등본을 가져오라는 연락이 왔다. 인사 담당 여직원에게 “혹시 사장님이 보지 않으면 비밀로 해 달라”고 부탁했다. 여직원은 “나만 알고 있겠다”고 했고, 그 직원은 끝까지 비밀을 지켜줬다.

  6개월 후, 여느 때와 다름없는 월요일 아침. 세수를 하고 머리를 감으려고 몸을 숙이다 뒤로 주저앉았다. 어마어마한 통증이 느껴졌다. 119에 실려 병원으로 향하는 구급차 차창 밖 풍경은 너무나 평온해 보였다. 그렇게 정신을 잃었다.

  깨어나 보니 중환자실이었다. 며칠의 시간이 흘러가 있었다. ‘대동맥 박리’(심장과 연결된 대동맥 내부가 찢어지며 분리되는 것)였다. 의사는 “죽음의 문턱까지 갔다 왔다”고 했다.

  갑자기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죽고 싶었는데, 세상이 너무 버거워서 매일 죽기를 바라면서 살고 있었는데. 얼마나 더 이 험하고 힘든 세상을 살아야 하나….’ 아무도 그 눈물의 진짜 의미를 알지 못했다.

  그는 병실 침대에서 생각의 여행을 떠났다. 아픈 이름 ‘미혼모’를 다시 떠올렸다. 세상은 마치 자신이 지구의 공기를 마시는 것조차 아까워하는 것 같았다. 그래서 자신이 ‘살아도 되는 사람’임을 증명하기 위해 뭐든지 열심히 했다. 그리고 다른 한편으론   스스로를 죄인 취급하고 있다는 사실을 들키지 않기 위해 ‘거짓, 당당함, 노력’이라는 가면을 쓰고 살았다는 생각에 다시 눈물을 쏟았다.

  그때 그는 신의 음성을 들었다. “인정받기 위해 노력하지 않아도, 사랑받으려 애쓰지 않아도 네가 어떤 모습이든 네가 무슨 일을 하든지 나는 항상 네 옆에 있다.”

  이 사건을 겪고 나서 그는 많이 달라졌다. 바쁘고 고된 삶은 바뀌지 않았지만 우선 아이를 대하는 태도가 달라졌다. 전에는 딸이 ‘아빠 없으니까 저렇지’라는 말을 듣지 않도록 아이를 많이 혼냈었다. 혹은 딸이 ‘애어른 같다’ ‘의젓하다’란 말을 들으면 괜히 ‘미혼모의 딸’이라는 사실이 드러날까 봐 조바심이 나곤 했다.

  그렇지만 크게 아프고 나서 그는 딸에게 관대해졌다. ‘아이와 함께 행복한 시간을 많이 보내야지’라는 생각에 쉬는 날이면 아이와 공영 도서관에 가 하루 종일 지냈다. 도서관에선 3000원에 돈가스가 점심으로 나오고 만화영화도 공짜로 보여 준다. 모녀에게 ‘큰 행복’을 주는 곳이다.

  

●“엄마, 저를 낳아주셔서 고맙습니다!”

  딸아이는 밝게 자라 줬다. 5월 8일 어버이날, 로로가 엄마에게 뭔가 내밀었다.

 “엄마, 내가 선물 줄 거 있어.”

 “뭔데?”

 “학교에서 만든 거야.” 어버이날 카드다.

 “그래. 잘 만들었네, 고마워.”

  파란색 줄을 정성스럽게 친 편지지에 로로는 이렇게 썼다.

 “엄마께. 안녕하세요? 저 ○○○예요. 저를 낳아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 그러니까 공부도 열심히 할게요! 학교도 열심히 다니고 엄마를 기쁘게 해드릴게요. ♡♡♡”

  카드를 들여다보던 유선 씨가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얘는, 만날 낳아줘서 고맙다고 하네.” 그의 얼굴에 작은 미소가 번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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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로섬 게임

  연재 마지막회. 내 첫 연재가 끝났다.

  세달
가량 매주 한번 연재물을 쓴다는 건 정말이지 보통일이 아녔다.

  주제도 무겁고 취재도
쉽지 않았다.

  글쓰기가 어렵다는 걸 새삼 느낀다.

  아쉬움과 뿌듯함.   

 

 

신종
인플루엔자A(H1N1) 감염 이슈가 터지고 보건복지가족부 출입기자들은 ‘황금연휴’를 모두 반납한 채 거의 매일 밤 12시까지 일해야 했던 5월
초. 30대 여자 분이 연락해 왔다. “암 수술을 받은 어머니가 병원에서 치료를 제대로 받지 못해 돌아가셨다”고 했다. 퀭한 눈으로 제보자를
만났다. 그의 얼굴은 ‘반쪽’이었다. ‘잠시’ 퀭했던 기자의 눈은 댈 것도 아니었다. 제보자는 A4 용지 10장이 넘는 분량의 경위서를 보냈고,
여러 번 인터뷰도 했다. 그의 이야기는 기사에 반영됐다. 환자도 의사도 모두가 패자 그런데 기사가 나간
후 연락이 끊어졌다. ‘혹시 못 봤나’ 싶어 휴대전화에 메시지를 남겼지만 묵묵부답이었다. 시간이 지나며 그냥 그렇게 연락이 끊겼다. 이유는 대략
짐작이 갔다. 제보자는 기사를 통해 병원과 의료진이 ‘처벌’받기를 원했던 것 같다. 이름과 그간의 행적이 낱낱이 적힌 그런 기사를 원했을
것이다. 기사에는 제보자의 심정 정도만 반영됐으니 실망했을 법하다. 많은 사람이 그와 같은 심정으로 기자에게 연락해 왔다. 그들은
의료진과 병원의 이름을 강조했다. 의료계에서 추방당하길 바랐을 수도 있다. 그들의 심정을 100% 대변하는 기사를 쓰지 못한 것은 죄송스럽다.
하지만 그렇게 쓸 수 없는 상황이었다. 아직 소송이 진행 중인 경우가 대부분이었기 때문이다.또 취재를 하면서 의사도
원인을 모르거나 예측하기 힘든 사고가 적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됐다. 예컨대 관상동맥은 60, 70%가량 막혀 있어도 수술 전에는 체크되지 않다가
마취 후에야 문제를 일으킨다. 의료 사고에도 ‘회색지대’가
존재하며, 그 범위가 오히려 더 넓을 수 있다.
소송당했던 의사도 판결과 관계없이 크게 타격 입기는
마찬가지였다. 동네에서 작은 정형외과를 하는 한 의사는
“처음엔 어린애가 계단에서 굴렀다고 해 뇌출혈까지 생각하지 않았는데 점점
악화되더니 뇌출혈로 사망했다. 애초 부모가 ‘추락’이라고 말했으면 좀 더 정밀한 검사를 했을 것”이라며 “아직도 소송 생각을 하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난다”고 토로했다.
소송 없이 해결할 순 없을까 의료분쟁이 생겼을 때 ‘결과’보다는
‘과정’이 더 중요하다는 생각이 굳어져 갔다. 처음 글을 연재하기 시작했을 때도 누구의 잘못인지를 따지거나 소송에서 효과적으로 싸우는 방법에
대한 정보를 주기 위한 것은 아니었다. 웬만하면 소송까지 가지 않고 문제를 해결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었다. 소송은 마지막 선택이니까.
의료소비자시민연대 강태언 사무총장은 “지금의 의료분쟁은 환자가 나가떨어지든지 의사가 죄다 뒤집어쓰든지 해야 끝이
난다”고 말했다. 완충 지역이 없다는 얘기다. 사고가
생기면 어떻게든 덮으려고만 하는 의료진, 뭔가 속고 있다는 찜찜한 기분에 시달리는 환자, 양쪽 모두 너무 많은 수업료를 지불하고 있는 건 아닌지. 한국은
아직 ‘의료분쟁 후진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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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화기술 필요한 ‘나쁜 소식 전하기’

김윤기
씨(51·경북 문경시)는 2007년 외아들 진현 씨(당시 23세)를 잃었다. 어이없게도 치질 수술과 관련해서였다. 진현 씨는
경기 부천시의 부천대성병원에서 수술을 받았다. 수술 후 회복실로 옮기는 도중 심한 경련을 일으켰고 오후 8시경 부천 순천향대병원으로 이송됐으나
밤 12시가 넘어 중증 저산소증에 따른 뇌손상으로 사망했다.
김 씨는 “치질 수술로 사람이 죽는 게 말이
되느냐”며 집도의와 마취의를 상대로 형사소송을 제기했다. 부천지방법원은 올 초 “적절한 응급조치를 취하지 않아 환자가
사망했다”며 집도의에게 금고 6개월에 집행유예 2년,
마취의에게 금고 8개월을 선고했다. 집도의는 판결을 받아들여 항소를 포기했지만 마취의는 불복해 항소심이 진행 중이다.
2년 넘게 소송을 하고 있는 김 씨는 가장 참을 수 없는 것이 마취의의 안하무인의 태도와 말 바꾸기라고 말한다.
“처음부터 말이 안 통했습니다. 내가 한 마디 하면 스무 마디 하더군요. 법원에 제출한 진료기록도 의심스럽습니다.”
의료사고를 경험한 환자 가족들이
소송을 제기하는 이유는 정확한 사고 원인을 규명하기 위해서다. 사고 원인에 대한 병원 측의 주장을 받아들일 수 없기 때문이다. 병원 측의
무성의한 태도, 의사 측의 불손한 태도도 주요 이유로 꼽힌다.
이는 전형적인 ‘관계 맺기’의 실패다. 류화신 충북대
법대 교수는 “대부분의 의료분쟁은 의사와 환자 간 신뢰가 깨지는 데서 비롯된다”며 “의사가 환자와 대화를 피하거나 일방적으로 대화를 강행할 경우
감정대립 때문에 소송으로 가기 쉽다”고 말한다. 의료진에게 극도로 흥분된 상태의 환자 가족을 앞에 두고 이야기한다는 것은 무척
어려운 일이다. 눈을 부릅뜨고 ‘적()’을 찾는 가족 앞에 이성은 무너지기 쉽다.
그래도 의료진은 가족과 이야기를 해야 한다. 의료진의 잘못이라고, 미안하다고 해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의료진도 알 수 없는 사고가 많고, 잘못인지 여부는 2차적으로 따져야 할 문제다. 의료진은 사실을 설명해야 한다는 것이다.
배현아 이화여대 교수는 “어떤 위험이 있는 수술이었는지, 우려했던 문제 중 무엇이 발생했고 의료진은 어떤 조치를 취했는지 설명해야
한다”고 말한다. 의료사고 후에는 의료진과 환자 가족이 충분한 대화로 서로 간 오해를 좁히고 해결점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아쉽게도
국내 의사들 중에는 ‘나쁜 소식 전하기’를 위한 대화의 기술이 부족한 경우가 많다. 수술과 진단의 중요성은 강조하면서 환자와 신뢰관계 형성을
위한 대화에는 너무 무심한 것이 아닌지 뒤돌아봐야 한다.‘나쁜 소식 전하기’는 누구에게도 쉽지 않다. 죽음을 앞에 둔
경우라면 더욱 그렇다. 그러나 이 과정은 갈등을 해소하는 데 꼭 필요하다. 의료소송이 날로 증가하는 지금
더욱 절실한 과제가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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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 침대서 ‘꽈당’… 누구 잘못이 더 클까

 

병원에 입원한 환자가 화장실에 갔다가 넘어지거나 침대에서
내려오다 떨어져 뇌를 다쳤다면 환자의 잘못일까 환자를 보호하지 못한 병원의 잘못일까. 심한 알코올의존증 환자인 50대 박모
씨(경북 안동). 그는 30년 동안 매일 소주 1, 2병을 마셨다. 두 손은 덜덜 떨렸다. 그는 나들이 갔다가 갑자기 입에 거품을 물고 쓰러져
안동병원 응급실로 이송됐다. 당시 심박수, 체온, 혈압 등은 정상이었지만 혈소판 수치가 정상인의 10% 정도밖에 안 돼 작은 충격에도 출혈이
발생할 위험이 있었다. 알코올의존증 50대의 사례의료진은 발작이 언제 일어날지 몰라 일단 그를 중환자실에
입원시켰다. 침대에 누워 쉬던 박 씨는 다음 날 오후 1시경 침대에서 내려오다 앞으로 넘어지면서 보조테이블에 오른쪽 얼굴을 찧었다. 간호사는
상처에 반창고를 붙여줬다. 담당의사에게 보고하지는 않았다. 30분 후 가족이 올라와보니 호흡이 거칠고 말을 걸어도 대답이 없고 구토를 했다.
그로부터 2시간쯤 지난 후 담당의사가 왔다. 일상적 회진이었다. 보고는 그때까지 없었다. 박 씨 얼굴의 반창고를 보고 사고 소식을
들은 의사는 급히 컴퓨터단층촬영(CT)을 하고 뇌출혈을 발견하고 응급 개두수술을 했지만 너무 늦었다. 의식은 돌아오지 않았고 9개월 후
사망했다. 병원 측은 “간호사들에게 말도 안 하고 화장실에 가려다가 사고를 당했으니 환자의 과실”이라고 주장했다. 환자 가족은 “머리를 부딪쳤을
때 바로 응급처치를 하지 않은 병원의 과실”이라고 주장했다. 법원은 병원 책임을 물었다. 혈소판 수치가 낮은 박 씨는 작은
충격에도 뇌출혈이 있을 가능성이 높았는데 얼굴을 부딪쳤을 때 간호사가 담당의사에게 알리지 않아 응급처치를 받을 기회를 놓치게 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100% 병원 과실은 아니라고 봤다. 박 씨가 스스로 내려오다 사고를 당한 점, 뇌출혈이 쉽게 일어난 것은 원래 있던 알코올의존증에 의한
점 등을 들어 손해배상책임을 40%로 제한했다. 환자 가족은 7000만여 원을 배상받았다. 술에 취해 넘어져 약간의 뇌출혈로
입원했던 환자가 혼자 화장실에 갔다가 다시 넘어져 상태가 악화된 경우 법원은 병원 책임이 있다고 판단했으나 손해배상책임을 20%로 제한한 사례도
있다. 병원이 요양·지도의무 및 보호의무를 소홀히 한 책임이 있지만 보호자도 충분히 보호하지 못한 책임이 있다는 것이다. 사고원인
따라 책임 달라져병원에서 일어난 사고가 100% 병원 책임이거나 100% 환자 책임인 경우도 있을까. 일괄적으로 말하긴 힘들다.
상황별로 사고 원인이 매우 다양하기 때문이다. 다만 환자가 경련이 심한 상태라면 사고를 좀 더 쉽게 예견할 수 있으니 병원 책임이 크다고 할 수
있다. 환자가 조용히 있다가 넘어지거나 떨어졌다면 병원 책임이 줄어들 것이다. 어쨌든 치료를 받으러 간 병원에서 어이없는 사고로 상태가
악화되거나 사망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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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형부작용 무관심은 수술 안되나

21세의 K 씨(여·서울 성동구)는 얼굴을 바꾸고
싶었다. 2001년 3월 그는 서울 강남구 신사동의 한 성형외과에서 눈 앞뒤를 째고 쌍꺼풀을 만들었다. 콧대를 높이고 양쪽 볼과 윗입술에 있던
흉터도 제거했다. 수술은 잘되지 않았다. 눈 앞뒤 쪽과 쌍꺼풀 라인에 큰 흉터가 남아 보기 흉할 정도로 망가졌다. 요즘 주변에서
이런 사연을 어렵지 않게 접할 수 있다. 성형수술 부작용은 흔하다고 그냥 지나치기에는 후유증이 심각하다. 마취의사 없이 ‘대담한’
수술
요즘 성형수술은 질보다는 양과 수익성을 중시하는 분위기다. 치열한 경쟁 상황에 놓인 병·의원들이 마취사고라는 위험을 안고도
마취의사를 고용하는 대신 수술 단가를 낮춰 고객을 유치하려고 한다.상당수 성형외과는 ‘마취 전문의를 상주시키지 않아 마취사고가
난다’는 비난을 감수하면서도 마취의사를 고용하지 않는다. 마취의사를 고용하는 비용보다 사고가 났을 때 배상해 주는 것이 장기적으로 봤을 때 더
이익이 되기 때문이다.마취사고로 사망자가 생기면 병·의원은 대개 1억5000만∼2억 원의 배상금을 지불한다. 법무법인 서로에
따르면 사망했을 때보다 식물인간이 됐을 때 배상액이 더 커진다. 그러나 드물게 일어나는 일인 만큼 병·의원은 이를 방지하기 위해 투자의 필요성을
못 느낀다는 것이다.반면 성형외과들은 새로운 시술을 도입하는 데는 적극적이다. ‘힙업 성형’ ‘퀵성형’ ‘종아리 성형’ 등
신기술이 속속 선보이고 있다. 그러나 신기술이 쏟아지는 만큼 부작용 대비책은 있는 것 같지 않다. 2007년 날씬한 종아리를 원한 최모 씨는
‘종아리근육 퇴축술’을 받은 뒤 복숭아뼈 밑부분이 바늘로 찌르는 듯한 통증에 시달리다 자기와 비슷한 고통을 받는 사람들이 한둘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됐다. 최 씨는 피해자를 모아 공동 소송을 진행했고 지난해 가을, 법원이 해당 의원에 “피해자들에게 총 1억여 원을 배상하라”는 판결을
내리기도 했다.성형·피부미용 시술은 우리나라가 자랑할 만한 의료서비스로 성장했다. 정부가 의료관광 대표 상품으로 내세우는 시술
가운데 성형·피부미용은 늘 선두를 지키고 있다.보건당국 실태파악도 못해그러나 정부는 ‘성형·피부미용 강국’이라는
브랜드만 앞세웠지 이에 따르는 부작용 문제에는 제대로 관심을 기울이지 않고 있다. 성형·피부미용 시술 후 심한 부작용에 시달린다든지, 사각턱을
깎으려고 전신마취를 했다가 사망했다는 얘기가 자주 언론에 등장하지만 보건당국은 이런 일이 얼마나 많이, 자주 일어나는지 파악조차 못하고 있다.
성형·피부미용 시술자 수백 명, 수천 명 중 한 명이 부작용을 겪는다고 해서 이를 무시할 수는 없다. 불행하게도 나 자신이 그 한
명의 피해 당사자가 된다면 어쩌겠나. 끔찍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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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약 먹고 황달' 사고일까

이모
씨(29·여)는 살을 빼려고 한약을 복용했다. 복용 중 구토와 욕지기 증세가 나타났다.
소화불량이라는 생각에 잠시 복용을
중단했다. 구토 증세가 사라진 후 이 씨는 다시 약을 먹기 시작했다. 그런데 2주 후 눈 흰자위가 노랗게 변하는 황달이 생겼다. 대학병원을
찾아가니 ‘급성 독성간염’이라는 진단이 내려졌다. 한약 때문에 급성 독성간염이 생긴 것일까.
독성간염이 한약
부작용 71%
한약을 먹고 ‘약해(·약물 부작용)’가 생겼다는 호소는 한방 의료분쟁에서 가장 흔히 볼 수 있는 사례이자 뜨거운
감자이기도 하다. 1999∼2005년 한국소비자원에 접수된 한방 관련 피해사례 구제 115건을 사고 내용별로 분류해보니 약해가 27%(31건)로
1위를 차지했다. 약해를 세분해 보면 독성간염이 71%로 대부분을 차지했다.
피부장애와 위장장애가 각각 2위와
3위였다.
한약재와 독성간염 발생의 직접적인 인과관계는 정확히 알려져 있지 않다. 의사들은 “한약 복용이
급성간염을 유발할 수 있다는 것은 상식”이라고 주장한다. 이에 대해
한의사들은 “한약 복용과 급성간염은
거의 무관하다”고 반박한다. 1000여 개 한약재 중 10여 개만 빼고 나머지 대부분은 간염을 일으키는 독성이 포함돼 있지 않다는 것이
한의사들의 설명이다.
한방은 정확한 인과관계를 설명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보니 분쟁이나 소송이 상대적으로 적은
편이다. 지난해 한국소비자원에 접수된 한방 분쟁 관련 상담은 756건이지만 실제로 어느 정도 요건이 갖춰져 조사할 수 있는 건수는 21건에
불과하다. 한방 분쟁이 생길 때는 ‘설명 소홀’(부작용에 대해 환자에게 충분히 설명을 해주지 않아 환자가 약 복용을 중단하지
않음)이나 ‘주의의무 위반’(환자에게 증상이 생겼는데도 의사가 치료를 중단하지 않음)으로 과실 책임을 묻는다.
다이어트 한약을 먹은 이 씨의
경우에는 ‘설명 소홀’로 피해보상을 받았다. 한의사가 부작용이나 주의사항에 대해 상세히 설명해 주지 않아 구토, 오심이 발생했는데도 약 복용을
멈추지 않게 했다는 것이다. 또 이 씨는 한약 복용 중단 후 간 상태가 호전(간수치 50% 이상 감소)돼 약물로 인한 간 손상임을 증명할 수
있었고 약재에 간 손상을 일으킬 수 있는 ‘마황’이 들어 있었다는 점도 참작됐다.
한의사들은 “한약이든 양약이든 잘못
먹으면 간이 나빠지는데 한약만 간수치를 올리는 약인 양 몰아가는 것은 옳지 않다”고 한다. 1000여 가지 한약재 중 ‘거의 쓰이지 않는’
10가지를 뺀 990가지 한약재는 억울하다는 것이다.
같은 과실 반복 안되게 노력을 그러나
한국소비자원에 접수된 피해사례 중 독성간염을 포함한 약해가 많고 이런 피해가 지속적으로 접수되고 있는 현실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간에
문제를 일으키는 한약은 한의사가 처방한 것이 아니라 ‘○○
건강원’처럼 비전문가가 처방한
것”이라는 식의 설명은 한의계 전체를 깎아내릴 수 있다. 부작용이 생겼다면 왜 생겼는지 따져보고 앞으로 같은 과실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노력하는
모습이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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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벼운 수술때 마취사고 많은 이유는…

마취는 흔히
‘비행(
飛行)’에 비유된다. 마취를 시작하고
끝내는 것이
비행기가 이·착륙하는 것과 비슷하기
때문이다. 성공적인 비행은 안전하게 이륙해 착륙하는 것으로 끝난다. 비행 도중 조종사가 비행 상태를 제대로 살피지 않거나 완전히 착륙하기 전에
조종간을 놓아버리면 사고가 난다.
의사 ‘부주의’와 밀접한 관계마취도 마찬가지다.
수술 중 환자 상태를 제대로 살피지 않거나 마취에서 완전히 깨어나기 전에 의사가 자리를 떠버리는 순간 마취사고가 일어난다.
대형 수술이 아니라 성형수술,
치질 수술 등 가벼운 수술을 할 때
사고가 일어난다는 점도 마취사고가 ‘부주의’와 밀접한 관계가 있음을 보여준다.
권무일 경희대 의대
마취
통증의학교실 교수는 37년 경력의
마취 전문의다. 그는 “이제야 마취가 두렵고 어렵다”고 말한다.
“전공의 3년차 때 세상의 모든 마취를 다 할 수
있을 것 같았지요. 하지만 그런 자신감은 마취 사고 한 번에 모두 날아갑니다. 마취 전문의 10년차에는 누구나 한두 번쯤 마취사고를 겪게
됩니다. 아무리 경력이 쌓여도 환자 개개인에게 한순간이라도 소홀해선 안 된다는 것을 배우게 됩니다.”경험 있는 마취과 의사는 수술
도중 환자 상태를 지속적으로 체크하지 않고 수술하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 안다. 얼마 전 치질 수술을 받다가 마취사고로 사망한 40대 주부
A 씨 사건과 관련해 법원은 담당 의사에게 1억4000만 원을 배상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작은 외과를 운영하던 이 의사는 본인이 환자를
마취시키고 수술을 했다. 수술이 끝난 후 환자 상태를 살폈을 때 환자는 이미 심장이 멎어있었다.


이런 일은 대개 수면진정제와 진통제만 써도 되는 가벼운 수술일 때 일어난다. 큰
수술이라면 근육이완제까지 투여하고 근육이완제가 투여되면 자가 호흡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인공호흡
튜브를 끼운다. 하지만 작은 수술은
근육이완제 없이도 할 수 있고 자가호흡도 가능해 튜브를 끼우지 않는다. 그러다 일시적으로 혀가 기도를 막아 호흡할 수 없게 되기도 하는데 이런
때 빨리 기도를 확보하지 못하면 사고가 난다. A 씨도 심장정지와 호흡정지가 발생한 시기를 의료진이 놓쳐 사망했다.
마취 전문의들은 일반 의사들이 마취약제의 위험성을 알아야 마취 사고가 예방된다고 말한다. 권 교수는 “대부분의
마취약제는 순환과 호흡을 억제할 수 있다”며 “약물에 대한 충분한 지식을 갖춘 의사가 환자 상태를 감시한다면 마취 사고의 대부분은 방지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사고땐 마취기록지부터 챙겨야마취 사고가 일어났다고 생각할 때는 마취진료기록지부터
확보해야 한다. 마취기록지는 혈압, 맥박, 심박수와 호흡 패턴(자가호흡 여부), 산소포화도에 대한 기록이다. 수술 도중 환자 상태가 어땠는지,
의료진이 환자를 충분히 살폈는지를 보여주는 기록인 셈이다. 마취기록지가 없다면 기록을 하지 않은 것, 즉 감시를 제대로 하지 않은 것으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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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년전 수술 자리서 거즈조각이…

H 씨(28·경기
수원시 영통구)는 초등학교 6학년 때 집 근처 외과병원에서 맹장수술을 받았다. 수술이 끝나고 퇴원했다. 그 후 가끔 배가 아팠고 고교 입학
후에는 배에 뭔가 잡히는 듯한 느낌도 들었다. 그러나 “입시 스트레스 때문에 너무 신경이 과민해졌나 보다”하고 그냥 넘기곤 했다.
25세 때는 배에 있는 이물질이 좀 더 커진 듯한 느낌이 들었다. 수원 시 소재 대학병원을 찾았다. 의사는 H 씨의 배를 몇 번
눌러보고 “아무것도 없다”며 “배가 아픈 것은 신경성일 뿐”이라고 말했다.
그해 겨울 H 씨는 감기가 심하게 걸려
내과를 찾았다. 수액을 맞으며 감기 증상이 가라앉기를 기다렸다. 수액을 맞는 동안 H 씨는 화장실에 못 가 방광이 가득 차고 배가 불룩했다.
그때 의사는 H 씨의 배 표면이 뭔가에 의해 볼록 튀어나와 있는 것을 봤다. H 씨의 배를 만져본 후 “배 속에 뭔가가 있다”며 당장
초음파검사를 할 것을 권했다. 검사
결과 종양인 듯했다.
의료사고 발생 10년내 손배
청구해야
H 씨는 다시 대학병원을 찾았다. 장 간막에 있는 ‘염증성 종양’이 있어 제거해야 한다고
했다. 수술 당일 종양 제거를 위해 배를 가른 의료진은 이물질의 정체를 알고 경악했다. 이물질은 종양이 아니라
거즈 조각이었다. 초등학교 때 H 씨에게
맹장 수술을 해 준 의사가 수술 시 사용했던 거즈를 남겨둔 채 봉합을 한 것이다.
H 씨는 기가 막히고 화가 나
소송을 걸고 싶었다. 너무 오래전 일인데 소송이 가능할까. H 씨가 배 속에 거즈가 들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은 26세 때였다. 수술은
초등학교 6학년 때인 열한 살에 받았다. 무려 15년이 지나서야 알게 된 것이다. 한데 의료사고는 발생일로부터 10년 이내에 청구해야 손해배상을
받을 수 있다.
‘알게된 날’ 이후 3년이내도 소송 가능그러나 H 씨는 단서
조항이 하나 더 있는 것을 알게 됐다.
의료 사고 발생일뿐 아니라
의료사고였음을 알게 된 날로부터 3년 이내에 소송을 해도 배상받을 수 있다는 조항이었다. ‘손해를 안 날’은 단순히 손해가 발생한 것을 안
것만이 아니라 그 손해가 의료과오행위로 인한 것이라는 점도 함께 알았을 때를 말한다.
H 씨는 6개월 후 맹장수술을
했던 병원을 상대로 소송을 걸었고 승소했다. 법원은 병원 측이 위자료 800만 원을 포함해 1060만 원을 배상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의료사고가 났을 때는 소멸시효를 주의해야 한다. 그러나 시간이 오래 지났다고 낙담할 필요는 없다. 다만 일반적으로 이렇게 오래된
사건에서 승소하기는 쉽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의료사고였음을 알게 된 날로부터 3년 이내’라고는 하지만 ‘안다’는 것은 환자 측의 주관적인 뇌
활동 영역에 해당하기 때문에 그날이 언제인지를 판단하기 어렵다. 법률사무소 관계자는 “이럴 때는 ‘모를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근거로 제시하는
것이 효과적”이라고 조언한다. 의료진에게서 직접 ‘별문제 없다’는 이야기를 들었다면 가장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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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파업, 환자 생명권보다 우선하나

“파업 중이어서 수술은 안 됩니다. 입원 환자도 받을 수
없습니다.”연세대 세브란스병원 노조가 파업하던 2007년 7월 간세포 수술을 받으러 경남 마산시에서 상경한 김모 씨(62)는 원무과 직원의 말을 듣고 다리에 힘이
풀려 접수대를 꽉 붙잡아야 했다. 하루를 1년같이 무려 한 달을 기다려 온 수술이었다. 하지만 별 도리가 없었다. 서울아산병원에서 다시 수술
날짜를 잡았다. 암 수술은 오래 기다려야 한다. 수술은 8월 22일에 잡혔다. 원래 수술을 계획했던 날짜보다 40여 일이나 늦어졌다. 그사이 간
상태는 더 나빠져 세브란스병원에서 원래 계획했던 것보다 더 많은 부위를 절제해야 했다.수술 미루고 간호
안되고…
노조 파업은 예정돼 있었다. 김 씨는 그런데도 병원에서 수술 계획을 잡은 것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는 “병원의
파업 때문에 피해를 봤다”며 세브란스병원과 노조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했다. 세브란스병원 파업으로 피해를 봤다고 말하는 사람은 또 있다. 라디오
건강프로그램 작가인 김은경 씨(36·서울 용산구)는 어머니(당시 58세)를 잃었다. 어머니는 난소와
자궁을 들어내는 수술을 받고 22일 후인 7월 14일 패혈증으로 숨졌다. 김 씨는 “수술 직후에는 건강 상태가 매우 좋았는데 파업이 시작되면서
간호가 제대로 되지 않아 장 폐색이 왔고 결국 패혈증으로 사망했다”고 주장했다.병원도 파업을 한다. 병원 파업은 “환자의 목숨을
담보로 하는 파업”이라는 비난을 받지만 병원 노조도 파업할 권리는 있다. 병원 경영자도 마찬가지다. 일시적으로 사업장을 닫거나 폐업할 권리가
있다. 세브란스병원 노조는 2007년 7월 10일부터 8월 6일까지 약 한 달간 파업했다.
노조의 기본권인 파업권은 환자의 기본권인 생명권과 충돌한다. 인간의 생명에 대한 권리는 기본권
중의 기본권이다. 환자는 치료받을 권리가 있다. 이렇게 두 가지 기본권이 충돌할 때는 어떻게 해야 할까. 법원은 생명권,
건강권, 진료권에 관한 법은 근로조건 개선을 위한 파업권보다 높은 가치를 지닌 법이라고 판단했다.병원 파업권 환자 생명권법원은 간세포암 수술을 받은 김 씨 사건을 심리한 뒤 화해 권고결정을
내리면서 병원 측이 김 씨에게 1000만 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환자에게 “다른 병원을 알아보라”고 이야기하지 않았고 환자의 생명권이 침해될
정도로 파업을 이어갔다는 점을 과실로 들었다. 이 사건을 맡았던 신현호 변호사는 “병원 파업은 고래 싸움에 새우등 터지는 것과 같다”고 말한다.
어머니를 잃은 김 씨의 사건은 1년 가까이 소송이 진행 중이다. 건강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 많은 의사와 알고 지내던 김 씨는 “소송
이후 의사들의 ‘두 얼굴’을 봤다”고 토로한다. “그들은 하루아침에 태도가 달라졌다. 보상이야 재판 결과가 나오면 결정되겠지만 지금이라도 도대체
뭐가 잘못된 건지 밝혀줬으면 하는 마음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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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분쟁의 블랙박스 ‘진료기록지’

 

  선천성 심장병을 고치려다 식물인간이 되어버린 A 군.
자기공명영상(MRI) 촬영을 해보니 뇌가 망가져 있었다. 수술 후 마취에서 깨어나기 전 뇌에 산소가 제대로 공급되지 않아 치명적인 손상을 입은
것이다. A 군의 부모와 경북대병원은 이 사건을 대법원까지 끌고 갔다. 기록조작-과실 의혹
눈초리
  2008년 7월 24일 대법원은 병원 진료기록의 허점을 지적하며 사건을 고등법원에 환송했다. 환자에게 ‘저산소성
뇌손상’이 일어났는데 진료기록에 산소포화도 모니터 결과가 없으므로 이 부분을 확실히 해서 다시 판단하도록 한 것이다.  A 군은 수술
후 6일 동안 중환자실에 있었다. 병원이 제출한 진료기록에는 이 기간에 혈중 산소포화도 모니터 결과가 빠져 있었다. 뇌가 산소 부족 때문에
손상됐고 이에 앞서 산소 감소를 시사하는 임상상태가 있었을 터인데 그것을 보여주는 가장 중요한 자료가 빠진 셈이다.   자료 누락
이유는 세 가지 정도로 생각할 수 있다. 검사를 하지 않았거나, 검사를 했지만 기록을 하지 않았거나, 검사를 하고 기록도 있지만 검사 결과가
공개되면 불리해지니 누락시킨 것이다.  첫 번째 경우라면 의료과실이다. 세 번째 경우라면 진료기록 조작이므로 ‘입증 방해’에
해당한다. 두 번째 경우라면 병원이 모니터링 결과지를 찾아 제출하면 된다. 대법원은 세 가지 가능성 중 어느 것이 맞는지 고등법원에서 다시
판단하도록 한 것이다. 이 사건은 고법에서 재심 중이다.  대법원의 결정에는 ‘진료기록이 조작됐을 수 있다’는 판단이 깔려 있다. 의료인이 진료기록을
자신에게 유리하도록 바꿔놓았을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진료기록지를 접하는 대부분의 환자도 비슷한 생각을 할 것이다. “나중에 바꿔 써놓지
않았을까”라고.

  

  이는 의료인만이 진료기록의 작성·수정·보관에 대한 독점권이 있고, 따라서 남몰래 고쳐놓는 일도 가능하기 때문이다. 진료기록 조작
우려는 간혹 현실화되기도 한다. 그래서 의료소비자시민연대는 “진료기록지를 빨리 손에 넣는 것이 중요하다”고 조언한다.   만일
진료기록지가 조작됐다면 의료소송에서 승소하기는 불가능할까. 꼭 그렇지는 않다. A 군의 경우처럼 말이다. 병원이 기록 누락에 대해 설명하지
못하는 이상 A 군은 승소할 가능성이 높다.

 

  또 손으로 진료기록을 쓰는 병의원에서는 진료기록의 글자체 모양이나 크기, 문장의 위치와 형태,
필기구 특성 등을 고려해 사후 추가 기입했는지 여부를 알아낼 수 있다. 진료기록을 컴퓨터로 기입하는 ‘전자차트’라면 이런 추론이 불가능하지만
서버에 남아있는 ‘로그기록’을 확인해볼 수 있다. 기록지는 분쟁 시작이자 끝  진료기록지는 ‘의료분쟁의
시작이자 끝’으로 불린다. 중요한 만큼 진실하게 작성하고 보관하는 것이 필요하다. 진료기록지의 조작 가능성에 대해 “의료인을 부도덕한 집단으로
몰고 간다”고 항의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 이와 관련해 내과의사 출신인 이동필 변호사는 이렇게 말했다. “선량한 의사마저 피해자로 만드는
것은 바로 ‘감추고 은폐하려는’ 의료계의 관행”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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