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
이야기
내가
고향을 떠나 온지 꽤나 오랜 세월이 흘렀지만, 그렇다고 그간에 고향을 찾지 않은 것은 아니다, 크고 작은 일이나 시간이 있으면 천리를
마다하지 않고 달려갔던 고향이다,
내가
40년 전, 어린 시절을 보냈던 고향은 경상도 영일만의 조그마한 시골 “한실”이라는 마을로써 이곳에 살면서 5 리 정도 떨어진 초등학교를 걸어
다녔다,
그
길은 언제나 흙먼지를 많이 날리거나 작은 돌멩이까지 튕기던 큰 차들이 달렸고, 우리는 고개를 외로 숙인 채 줄곧 눈을 감고서 그런 차를 피하였던
곳이 “덕골모티” 였다,
움푹
파인 구릉지와 야산으로 이루어진 그 “덕골모티”에는 전설처럼 전해져 오던 장군바위가 있었고, 우리는 그 곳에서 즐겨 놀기도 하였는데, 그 바위를
자세히 보면 정말로 울룩불룩하게 사람의 형태가 뚜렷하게 나타나 있었다,
그리고
머리 부분쯤의 위치에는 굵은 쇠막대기가 깊이 박혀 있었는데, 이는 일본 놈들이 조선의 기를 억누르기 위하여, 세상을 구할 장군이 태어나지
못하도록 쇠막대기로 맥을 끊어 놓았다는 것이다,우리 친구들은 어린 마음에도 그런 이야기가 깃든 장군바위가 안쓰러워서 손으로
쇠막대기를 흔들어 보기도 하였지만 꼼짝하지도 않았던 것이다,그런데 어느 날 그 곳을 지나가던 이름 모를 엿 장수가 쇠막대기가
있다는 말을 듣고 어떻게 했는지는 모르겠으나 용케도 그 쇠막대를 빼갔다는 것이다,
전설
같은 이야기가 사실이었는지 모르겠으나 그 후 인재라곤 별로 없었던 우리 마을에서 실제로 장군이 탄생되었고, 그 장군이 고향을 찾았는데, 어린
마음에 그 장군은 선망의 대상이 되었다.
그
전설적인 선망의 장군이 태어난 것은 순진하게도 고향의 “덕골모티”에 있는 장군바위의 효험이라고 믿게 되었는데, 그 효험의 효과가 있기까지는 이름
모를 엿장수 아저씨가 쇠막대기를 뽑았기 때문이라는 생각에 이르자 그가 너무너무 고맙기까지 하였던 것이다,
장군이
태어난 것은 변함없는 사실이며, 한번 장군은 영원한 장군이라 하겠으나
뭔지
모르게 씁쓸한 마음을 갖게 된 일이 발생한 것은 많은 세월이 흐른 후였다,
그
장군은 자신의 의도와는 다르게 이루어야 할 뜻을 다 펼치지를 못하였다는 것이다,
이쯤
되고 보니, “덕골모티”의 효험이 점점 의심스러워지기 시작하였는데, 고향에 들렸던 차에 장군바위를 둘러보니, 놀랍게도 “덕골모티”의 장군바위
다리(발)쪽의 일부분이 잘려져 나가 있었던 것이다,
그
곳에는 좁았던 도로가 넓어졌고, 아스팔트를 덮어씌운 2차선 도로가 만들어져 있었던 것이다,
나의
순진함은 또 전설을 믿기 시작하였는데, 장군의 못다 펼친 뜻이 장군바위의 훼손 때문이 아닐지 모르겠다는 생각에 이르게 된 것이다,
전설은
끝없이 살아 움직이는 것이야말로 고향을 떠나 사는 사람들에게 꿈과 용기를 줄 수 있을 것임에도 전설의 장군바위가 일부분 훼손되었음은 곧 전설이
끝나고 꿈이 사라진 것 같은 느낌으로 깊은 아쉬움에서 헤어날 수가 없었던 것이다.
이렇듯
고향이란 것을 생각해보면, 모든 사람들이 자라면서 주관적이든지 객관적이든지 간에 나름대로 순진하면서도 토속적인 이야기를 전해 들으면서 또는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서 언제나 꺼내서 볼 수 있도록 가슴에 간직하고 살아 갈 수 있는 원천이리라!지금 나는 나의 고향에 있는
장군바위도 더는 훼손됨 없이 전설이 있기 이전처럼 잘 자라나기를 바라는 것이다, 그래서 더욱
발전적인 전설이 만들어지고 보다 큰꿈과 용기가 가득하기를 기대해 보는 것이다.
*
덕골모티 : 덕골 모퉁이의 경상도 사투리임.
( 09.09.03 00:35 )
보이지
않는 영적인 세계를 향하여보이지 않은 낙락장송을 향하여 쏘아진 화살촉은 뜨겁게 타오르고
갈증이
서려 풀리지않는 애절함에많이 안타깝게 밀려드는 설레임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