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분석

장성택 처형 1년, 북한의 권력과 이권 변동 (1)

by 주성하기자   2014-12-21 5:37 pm

                              장성택 처형 1년,북한의 권력과 이권 변동

 

                                                                                         박영자(북한연구센터 부연구위원)

 

장성택 처형(’13.12.12)은 지난 1년간 북한 대내외에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 이는 김정은 수령독재 시스템 구축 과정에서 전개된 권력투쟁과 이권투쟁의 결과이며, 이와 연동된 대내외 정책 갈등의 결과이다. 따라서 장성택 처형 1년을 평가하고 2015년을 전망할 필요가 있다.

 

북한에서 장성택 계열 숙청 및 핵심엘리트 정비가 3단계로 이루어진 듯 보인다. 1단계는 2013년 12월~14년 4월 중순, 2단계는 2014년 4월 말~7월 말, 3단계는 2014년 8월 ~12월 현재까지이다.

 

본 고에서는 각 시기별 특징을 평가해 보고 북한의 권력과 이권 지형의 변동을 다룬다.

 

숙청과 정비의 3단계 양상 및 특징

 

1단계는 2013년 12월~2014년 4월 중순이다. 2월까지 장성택의 당행정부와 평양시 건설사업 라인, 친인척 및 측근 인맥, 광물 등 내각 소속 주요 이권 분야 측근 중심으로 집중적 숙청이 진행되었다.

 

이어 김정은은 핵심엘리트들의 사상검열 및 충성맹세를 받아내며 장성택 숙청 후과를 최소화하는 방향에서 1단계 숙청작업을 마무리한 후, 김정은 체제 첫 대의원인 제13기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선거 및 1차 회의(2014.4.9.)를 개최하였다.

 

이 시기 주요 특징은 첫째,장성택 계열을 대체하기 위한 당과 군에 신진실세 전면화(당조직지도부와 군부 정보계 핵심엘리트), 둘째, 핵심정책과 연동된 고위직의 권력지속(당비서 국가기구 보위부 핵심엘리트), 셋째, 대외 대남 라인 사상검열 후 1차 정비, 넷째, 연루자 숙청(군부,보안부 중심)이다.

 

경제정책과 관련해 주목할 인물은 박봉주와 새로운 내각 구성원이다. 박봉주 내각 총리는 장성택 측근으로 알려졌으며 장성택 재판시 눈물을 흘리며 보고했었다. 그는 재신임 받아 숙청대상으로 분류되지는 않았으나 힘이 약화되었다.

 

박봉주는 2002년 7 1조치 이후 2012년 6 28방침 등으로 드러난 내각주도형 경제발전이라는 개혁드라이브를 주도할 수 없는 것으로 보인다. 이를 증명하듯 4월 8일 조선중앙TV에서 그가 “당의 유일적 영도체계를 더욱 철저히 세우고 국방위원회의 명령 지시를 무조건 접수하고 제때 어김없이 집행하는 강한 혁명적 질서와 규율을 확립해야 한다”고 보고하는 모습이 반영되었다.생존을 위해 자신의 신념을 내려놓은 듯 보인다.

 

광물자원 등 장성택이 관장하던 핵심 이권 사업과 관련된 금속공업상, 석탄공업상, 채취공업상, 상업상 등 내각 핵심엘리트들이 교체되었다. 또한 제13기 1차 대의원대회에서 내각 부총리를 4명으로 축소 임명한 후, 4월 30일 이후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위원장 김영남) 정령으로 부총리 3명이 추가 임명되었다.

 

이러한 인사변화는 내각총리 박봉주의 입지가 현저히 약화된 것이 반영된 듯하다. 그는 내각 수장으로서 경제행정 정책을 주도하는 엘리트가 아닌 ‘보신형 방관자’로 자리 잡은 듯 보인다.

 

2단계인 2014년 4월 말~7월 말 2차 정비가 이루어졌다. 인민군 창건일을 기념하는 김정은의 군 현지지도와 함께, 2014년 4월 26일 당중앙군사위원회 확대회의가 개최되었다.

 

주요 결정은 첫째, 조직문제 토론결과로 총정치국장이 최룡해에서 황병서(대장에서 차수로 승격)로 교체되었다.

 

둘째, 군대 정치기관들의 기능과 역할 강화이다.“정치기관들은 당의 의도에 맞게 군사사업이 성과적으로 진행되도록 정치사업”을 진행하라는 결정이다.

 

셋째, 훈련과 전투력 강화이다.“당정치사업의 화력을 싸움준비완성에…훈련을 생활화, 습성화, 체질화”할 것을 결정하고 이 회의의 의의를 “인민군대의 전투력을 비상히 강화하는데서 중요한 계기”로 정리하였다.

 

최고인민회의(4.9)를 통한 조직정비가 이루어진지 17일 밖에 지나지 않아 개최된 이 회의는 장성택 계열 2단계 정비의 신호탄으로 볼 수 있다. 이후 김수길(평양시 당책임비서) 등 군에서 성과를 인정받은 인물이 당의 핵심엘리트로 신임되었다.

 

또한 군수산업이 발전한 자강도 인민위원장 출신 김덕훈 등 4월 30일~6월간 내각 부총리가 3명(김덕훈, 임철웅, 최영건)이나 추가 임명되었다.

 

그리고 무역성에 합영투자위원회와 국가경제개발위원회를 통합한 후 대외경제성으로 개편(6.18)하는 등 내각에 상당한 변화가 이루어졌다.

 

중앙엘리트 중심으로 2단계 장성택 숙청 여파를 조정하면서 주로 군부와 군 관련 당엘리트를 정비하기 시작하였다. 외형적으론 김정은이 현지지도를 통해 육해공군 핵심 수뇌부들을 집결시켜 수영이나 비행 등을 명령하며 충성도를 실험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 2단계 정비 결과로 인민무력부장이 현영철로 교체(6.25), 윤정린 회위사령관 대장에서 상장으로 강등(6.5), 충성도가 검증된 오금철 외 육해공군 수뇌부 7명에게 군사 칭호(7.26) 명령이 하달되었다.

 

3단계는 2014년 8월~12월 현재까지이다. 군부기강 잡기를 일 단락한 7월 말 이후 당간부 기강 잡기에 나섰다. 대표사업이 7월 31일 시작된 전국 당간부들의 백두산 답사행군이다.

 

그리고 당창건 기념일을 기점으로 김정은에 대한 충성검열이 진행되었다. 10월 7일 노동신문 논설, “우리 당의 통일단결은 억척불변하다”에서 “혁명적 원칙, 비타협적인 투쟁으로 현대판 종파분자들을 단호히 적발숙청했다”며 장성택 계열 숙청을 언급하고, 이는 “수령의 사상과 영도에 도전하는 불순이색분자들을 무자비하게 죽탕쳐버리려는 혁명적 기개”라 하였다.

 

3단계 정비의 핵심 대상은 당기관에서 실무를 총괄하는 중견엘리트들이다. 9월 당내 조직지도부와 선전선동부 부부장급 이하 간부 20여명이 반당종파행위 부패혐의로 처형되었고, 10월 중앙당 과장 3명과 그 부하 7명 등이 평양 교외 강건종합군관학교에서 총살되었다.

 

김정은의 지시 방침 관철사업을 소홀히 했고 비밀 사조직을 만들었다는 죄목이다. 또한 해주시당 책임비서 등 황해남도 지역간부 몇몇을 비사회주의 검열로 처형하는 등 당과 공안계 간부들에 대한 정비가 진행 중이다.

 

이를 설계한 세력은 조연준을 중심으로 한 조직지도부 중앙과 김기남 최태복 김영남 오극렬의 원로연합이며, 숙청자 명단 작성에 최룡해 세력이 기민하게 움직인 것으로 보인다.

 

최룡해는 장성택 후임으로 국가체육지도위원장에 임명(9.24)되었고, 10월 4일 인천아시아게임 폐막식 때 남측을 방문하여 실세임을 드러냈다. 10월 말부터는 김정은 현지지도 시 황병서보다 먼저 호명되기 시작했으며, 11월에는 러시아행으로 김정은의 밀명을 수행하는 최측근임을 드러내었다.

 

김정은이 발목부상 등으로 40여 일간 잠행한 사이 또 다시 주요한 권력 변화가 있었다. 이 3단계 숙청을 실행한 세력은 김원홍의 국가안전보위부이다. 보위부는 2013년 8월 김정은이 김원홍에게 보위사업을 강화하라며 개인 통치자금을 지급한 후 독일제 도청기를 사들여 노동당 간부 등을 정밀감시하기 시작하여, 지난 1년 간 핵심엘리트들에 대한 미행 및 감시시스템을 강화하였다.

 

이 과정에서 기존에 보안부 및 인민무력부와의 갈등이 상당했던 보위부의 권력과 이권이 강화되었다. 나아가 로열패밀리의 사생활까지 지원 및 관리하는 데에 다른 기관의 간섭을 받지 않던 당 서기실을 검열하는가 하면, 조직지도부 산하 특별수사기관(5과)으로 중앙당 간부들을 감시하던 창광안전부 업무를 인수하였고, 국제전화 통제를 구실로 체신성 소속의 국제 통신국을 넘겨받아 외화벌이를 확장하였다.

 

권력 지형의 변화

 

북한의 핵심엘리트를 출신성분으로 구분하면, 첫째, 백두혈통의 로열패밀리, 둘째, 이들과 함께 권력을 차지한 만경대 혁명학원 출신 등의 빨치산 혈통, 셋째, 국가유공자 노력영웅 6.25전쟁 전사자 가족 등으로 분류할 수 있다.

 

장성택 처형 1년이 이들 각각에 미친 영향 및 장성택 계열 숙청으로 인한 세대교체 흐름이 중요하다. 이 요인들은 북한의 권력변동에 중요한 함의를 가지기 때문이다.

 

첫째, 로열패밀리의 약화이다. 방계라 할지라도 백두산 3대 장군(김일성 김정숙 김정일)의 적통을 잇는 김경희의 남편인 장성택의 처형과 그 친인척이 숙청됨으로써 정통 로열 패밀리가 약화되었다. 김경희의 가계 내 영향력이 지속된다고 할지라도 더 이상 그녀는 현장에서 이들을 보호할 수 없다.

 

또한 혼인관계로 로열패밀리에 편입된 방계세력은 장성택 숙청 1년을 경험하며 공개적인 정치력을 발휘하기 어려운 상황이 되었다. 김정일의 마지막 아내역할을 한 김옥도 자취를 감추었고 그녀의 아버지 당 재정경리부 부부장 김효 역시 13기 대의원에 포함되지 못하고 직위 해제되었다.

 

김여정이 김경희와 유사한 역할을 부여 받으며 측근에서 김정은을 보좌한다고 해도 그녀의 경륜 및 인적 네트워크는 상당히 부족하다. 최근 김여정이 김정은 개인통치 자금을 관리하는 당39호실 간부와 결혼했다는 설과 이들이 김정일시대 김경희 장성택 부부 역할을 할 것이라는 설이 있으나, 그 역할모델의 비참한 최후를 볼 때 이를 전망하기가 쉽지 않다.

 

또한 김설송이 북한 권력내부에서 벌어지는 권력재편의 중심에 있다는 설이 있으나,김정은의 배다른 누나인 그녀가 김경희처럼 현장권력을 주도하기는 어렵다. 김정은의 배다른 형인 김정남이나 친형인 김정철 역시 김정은이 후계자가 되는 순간에 숨어 살아야 하는 처지가 되었는데, 장성택 처형은 이들이 권력무대에서 더 멀어질 것을 강제하였다.

 

둘째, 빨치산 혈통 내 권력투쟁이 치열해지는 구도이다. 빨치산 혈통의 재생산 기지인 만경대 혁명학원 출신을 중심으로 이루어진 이들은 정치국 상무위원, 위원, 후보위원이자 당비서국 등에서 핵심적 역할을 하며 당 정 군에 핵심 요직에서 겸직을 하고 있다.

 

이들은 로열패밀리에 비해 그 규모가 월등하며, 80대 중반의 김기남(당 선전선동부 비서), 최태복(당 과학교육 비서 최고인민회의 의장), 오극렬(국방위 부위원장) 등 3대에 걸쳐 북한체제를 운영했던 이들이 권력구심을 유지하고 있다.

 

또한 6~70대에 최룡해, 김평해(당 간부부 비서), 태종수(당 총무부장) 등이 당을 중심으로 군과 내각에 세력을 가지고 4~50대 중견세력을 포섭하고 있다.

 

같은 만경대학원 출신 장성택이 처형된 후 이들이 생존보장과 이권쟁취를 위해 격렬한 권력투쟁을 하더라도, 전체로서 이들의 영향력은 로열패밀리에 비해 상승하였고 정치적 기회도 열린 상태이다.

 

한편 이들과 연합하면서도 김정은의 특별 지시를 수행하며 이들을 견제하는, 로열패밀리에 대한 충성도가 높고 신중한 것으로 평가되는 80대 김영남, 70대 조연준, 60대 황병서 등이 이 권력투쟁의 한 축에 있다.

 

셋째, 새로운 기회구조를 맞이한 국가유공자 노력영웅 6.25전쟁 전사자 가족 혈통이다.이들은 건국 후 인정받은 북한의 핵심계층 출신으로 경제, 과학기술, 군사 분야에서 능력을 발휘하며 자신의 커리어를 구축하고 있는 엘리트들이다.

 

이들은 로열패밀리 및 빨치산 세력들과 달리 자신들이 북한 정치체계에서 도달할 수 있는 한계를 알기 때문에, 특히 무역회사, 현장 군부, 과학기술 분야, 재정경리 분야, 교육 분야 등에서 실력을 키우며 인정받으려 상당한 노력을 한다.

 

이들은 크게 김정은 등 로열패밀리에 의해 발탁된 이들과 빨치산 혈통의 당 정 군 간부들에 의해 발탁된 이들로 구분할 수 있다. 이들 중 장성택 처형 후 숙청된 이들도 있으나, 다수는 그들이 제거되고 공백이 된 직위와 이권에 접근하기 위해 당 정 군에서 ‘후견의 사다리’를 쫒으며 맹렬히 활동하는 것으로 보인다.

 

장성택 계열 정비로 최소한 핵심엘리트 50여 명이 처형되었다. 1단계 정비과정에서만 200여 명의 중앙간부와 1천여 명의 지역간부들이 숙청되었다. 이 과정에서 주요 직위들에 공백이 많고,이로 인해 뇌물을 주고 직위를 사는 매관매직이 성행하게 되었다.

 

넷째, 세대교체에 중요한 영향을 끼쳤다. 장성택 계열이 거느렸던 ‘행정-대외무역 -건설-체육-외화벌이’ 분야 등에 노련한 전문가들이 교체되면서 상당한 직위에 공백이 발생하였다.

 

직위교체 과정에서 김정은의 코드에 맞추기 위해 3~40대 실무담당자들 중 좀 더 젊고 참신한 엘리트들이 중견간부로 충원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2013년까지 당 정 군 핵심간부 평균연령이 70대 초반인 북한 권력구조에, 50대가 내각 부총리나 군부실세로 충원되는 등 세대교체 흐름이 강화되었다.

 

대표적으로 리영길 인민군 총참모장(2013.8. 임명),국방위와 당중앙군사위 위원인 장정남(인민무력부장직은 2014.6.25. 현영철로 교체), 61년생인 김덕훈 내각 부총리(2014.4.30. 임명) 등이다. 2014년 5월 5일노동신문정론 “젊어지는 시대”에는 김정은 정권의 세대교체 의지가 강하게 드러났다.

 

이권 지형의 변화

 

2012년 리영호 숙청이후 장성택의 당행정부가 가져갔던 상당한 군 이권사업을 포함해 광물, 건설, 상업, 대외 무역 관할 분야 등에 이권 회수가 진행되었다. 이 이권은 주로 군부, 보위부, 김정은 통치자금 등으로 재분배 되었다. 그리고 자금의 주요 출처인 북중 거래가 위축되었다.

 

두드러진 특징은 다음과 같다.

 

첫째, 장성택 계열 ‘승리무역’의 해산 및 재편이 이루어졌으며, 중국 투자자들 사이에 북한 리스크가 커졌다. 장성택이 생전에 장악하고 있던 ‘승리무역회사’가 해산된 뒤 재분배되었다.

 

재편과정에서 대부분의 회사가 군에 귀속됐고 일부는 김정은 통치자금 부서로 옮겨졌으며, 승리무역회사 간부가 교체되고 관계자들에 대한 검열이 진행되었다.

 

승리 무역을 통해 거래하던 다수 중국인 대북 무역상들이, 승리무역 해체로 기간 외상으로 처리 했던 대금을 못 받는 등의 재정적 손실과 함께 중국 비즈니스계에 중요한 꽌시(關係)에 타격이 왔다.

 

대북 신뢰도가 약화되고 리스크가 커져 북한의 저렴한 노동력 등에 접근 하고자 했던 중국 투자자들이 관망세로 돌아섰다. 그리고 9~10월 사이 북한 전체 외화벌이 기관들에 대한 조직검열과 경영회계 실사가 이루어졌다.

 

중국에 나와 있는 외화벌이 사장들이 모두 북한으로 불려 들어갔는데 다시 나올 때는 소속이 달라지는 등 정비되었다. 그 의도로 김정은 통치자금 확보설이 유력하며, 새로 정비된 외화벌이 체계 중심인물로오극렬(국방위 부위원장)이 거론되고 있다.

 

둘째, 이권 재분배의 가장 큰 수혜기관은 군부이다. 장성택 영향력 하에 있던 건설 및 원료 공장 등을 주로 군부에 재분배하며 김정은에 대한 충성심을 고조시키려 했다. 대표적으로 장성택 판결문에도 언급된 남포시 천리마구역 강선에 있는 천리마 타일공장이다.

 

김정은이 이 공장을 직접 시찰한 후 공장이름을 바꾸고 운영권을 군대에 주었다. 또한 장성택 계열이 장악했던 승리무역회사 계열사로 추정되는 천지윤활유공장을 연일 선전하며, 경제행정 분야에서 숙청의 정당성을 강조하는 한편 이권 재분배 후 성과를 내는 공장의 모습을 부각시켰다.

 

군부 다음으로 앞서 다룬 보위부와 김정은 통치자금 관리 분야가 수혜 기관이다. 이에 반해 북중교역, 장마당, 비사회주의 검열이라는 주요 이권에 있었던 행정, 검찰, 보안 기관은 이권이 약화되었다. 이와 연계되어 있던 박봉주의 내각 또한 수혜에서 멀어졌다.

 

셋째, 외자유치와 경협을 총괄하는 ‘대외경제성’ 출범(6.18) 및 북중교역 양상이다. 장성택의 대외무역 라인정비와 이권회수 과정에서 이루어진 기구조정이다. 상과 부상은 리룡남, 리광근으로 이 분야 인물로 재신임되었으나 이들은 지재룡 주중 북한대사와 같이 보신형 충성행보를 보이고 있다.

 

북중교역은 우선 기존 합의가 북측에 의해 부인되며 2012년부터 추진해온 이익잉여 처분 등 경제개선 조치가 효과를 보지 못하고 있다. 또한 중국기업이 장기사용권을 보유한 것으로 알려진 나선 경제특구 부두시설에 대해 북한당국이 4월 경 중국에 빌려준 적이 없다며 전면 부인하였다.

 

다음으로 외화유입 축소이다. 대규모 무역거래가 위축되고 특구에 대한 기대감도 약해진 상황에서 3차 핵실험후 강화된 대북제재도 북한에 타격을 주었다. 중국은 외부에 알려진 제재 외에 한때 북한으로 가는 자국민의 현금소지량까지 제한하기도 했다.

 

또한 황금평 특구 등 장성택이 주도한 특구개발 사업의 동력이 약화되었다. 중국자금으로 건설해 중국언론이 10월 개통을 보도하기도 한 신압록강대교 개통이 북측 요구로 이루어 지지 않고 있다. 그리고 무연탄과 각종 광물 등 큰 자금을 움직이는 교역이 줄어들었다.

 

그러나 일단의 이권재편이 이루진 하반기부터 북중교역이 복구되고 있다. 3~6월 중단된 무산광산 배급이 7월 재개되어 김정은에 대한 민심이 좋아졌으며, 7월 혜산광산에서도 배급이 이뤄졌고 6 28방침의 일환으로 인상된 월급5)에 가까운 현물이 지급되었다.

 

한편 단둥 등 북중접경지역 대북사업가들은 북한 물동량의 회사이름(소속)만 바뀐 채 사장 운전수 등 거래현장의 인물 변화는 별로 없다고 한다. 더불어 북한의 재정 통치자금 흐름에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즉, 러시아 중동 동남아 지역에 자금원을 확장하고 있다.

 

총체적 진단과 2015년 전망

 

2014년 12월 현재 북한의 권력체계를 2012년 김정은 집권 초기와 비교해 총체적으로 진단할 때, 장기적 구조적 시각에선 불안정성이 증대하였다. 특히 장성택 처형 1년간 북한 정치시스템의 불안정성과 복잡성이 커졌다.

 

권력과 이권 투쟁의 심화, 보신주의 행태 강화, 세력 간 생존과 실리를 위한 이합집산 증대, 불신과 불안 증대 등 때문이다. 그러나 단기적 현상유지적 시각에서 김정은 개인독재 집권 상황은 3년 전 보다 개선되었다. 최소 한국의 현 정부 임기가 끝나는 3년 이내 김정은은 북한의 독재자로 존재할 것으로 보인다.

 

지난 20년 이상 시장화 과정에서 구축된 ‘국가가 없이도 살 수 있게 된 북한주민들의 생존능력,‘수령과 소수지배 연합의 공생관계’, ‘권력층 사이에 김정은을 대신할 수 있는 인물의 부재’, ‘다수 북한주민들에게 새로운 대안사회로 인식되는 이상모델의 부재, 그리고 김정은의 통치에 유리한 대외 대남 환경 등 때문이다.

 

당창건 70년 한국전쟁 발발 65년인 2015년에, 김정은은 정치구조적 불안정성을 줄이기 위해 세력 간 ‘견제와 균형 체계’를 구축하려 할 것이다. 북한사회에 ‘반미 반제 주체’ 라는 정체성을 대규모 행사시 각인시키고 ‘150일 전투식’ 집단동원을 시도할 수 있다.

 

경제적으로 중요한 개혁개방 조치를 취하기는 어렵다. 미중 미러 중일 한일 갈등 상황들을 동시 활용하고 ‘핵위협과 평화공존’을 동시 제기하며 대외 대남 정책에 강온양면술을 동시에 펼칠 듯하다.

 

또한 한 미 중의 북핵연대를 견제하기 위한 도발 및 무조건적 6자회담 개최 등 대화제의와 물밑협상을 동시에 전개할 수 있다. 특히 하반기 10월 당창건 70년 행사를 기점으로, 최소한 은하 4호 발사나 최대한 4차 핵실험 가능성이 있다.

 

이 상황에서 주목할 포인트는 김정은 정권 정책결정 체계의 불안정성이 장성택 숙청이후 증대된 북한의 권력과 이권 구조변동과 연결되어 있다는 점이다. 김정은의 통치행태를 보면 시기와 국면에 따라 주요 요소들의 영향력이 달라지고 정책결정 주체들 간 세력관계도 급변하고 있다.

 

‘김정은식 수령독재’ 시스템이 제도화되지 못했고, 이 과정에서 새로운 기회를 맞이한 북한의 행위자들이 이전투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북한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를 포괄하는 총합적 시각에 기초하여 거시와 미시를 연결하는 정책설계가 필요하다. 겉으로 드러나는 것 외에 미시적 영역에서 숨어있는 전략수립도 중요하다. ⓒKINU 2014

 

※ 이 글의 내용은 집필자의 개인적 견해이며, 통일연구원의 공식적 견해가 아님을 밝힙니다.

카테고리 : 전문가분석
  1. 격변

    장성택 처형후 북한내 권력지형이나 이권의 향방에 대해 종합적으로 이해하는데 도움이 됩니다.
    그러나 미래 예측에서 김정은의 권력 기반이 장기적으로는 불안정하지만 3년 이내는 안정적이라는 단정은 동의하기 어렵군요. 특히 그 배경에서 북한의 대내외 환경이 김정은 통치에 유리한 조건이라고 본 것은 납득할 수 없는 해석입니다. 이런 진단은 마치 북한 체제를 압박할 수록 체제 공고화에 도움을 준다는 논리에 근거하는 오류를 범하는 것입니다. 체제는 외부 압력에 무한 응집력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임계점에 달하면 자체 분열과 원심력이 발생한다는 조직의 또 다른 원리를 무시한 것입니다. 내부 권력의 이합집산 현상에서 또 하나 지적하고 싶은 것은 바로 로얄 패미리와 빨치산 후예들의 결합입니다. 로얄패미리 역시 세대 교체를 통해 김정은의 친위그룹으로 권력분점에 참여하고 있다고 볼 때 로얄패미리 만의 힘이 부족한 경우 어느 그룹과는 손을 잡게 마련입니다. 현재로서는 오극렬의 군부 원로와 그들의 후세들이 김정은 혈족들과 손을 잡고 이권을 장악하고 있는 듯 합니다. 이 과정에서 당 조직지도부의 실세들과 견제와 알륵이 발생할 소지가 있는데 김경옥 실권설이 바로 세력 다툼의 산물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또 하나 주목할 것은 내각의 영향력이 축소된 점입니다. 이는 그 동안 내각이 추진했던 개혁조치가 별무성과가 되리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미 당초 약속했던 성과 배분이 거의 무산되었다는 보도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는 체제 이완의 배경이 됩니다. 아무리 폭압적인 전체주의 탄압이라 하더라도 민심의 이반은 체제 균열의 결정타가 됩니다. 민중 혁명이 불가능하다고 해서 체제 안정을 장담하는 것은 속단입니다. 대외 환경은 더욱 북한 체제에 직접적인 위협이 되고 있습니다. 내부적으로는 체제 이완이 진행되고 대외적인 압박 강도가 임계점을 넘을 때 과연 4차 핵실험이나 테러 도발이 체제 안정을 담보할 수 있을까요? 향후 3년 후에도 김정은의 권력이 온존할 확률 보다는 그 이전에 북한은 급변할 가능성이 더 크다는 판단이 설득력이 있습니다. 다만 우리가 과거처럼 북한 김정은 체제의 명줄을 이어주는 짓을 하지 않는다는 전제가 필요하겠죠.

    2014-12-22 06:53: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