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 서울에서 쓰는 평양이야기
<7부> 기쁨조 미향의 마지막 이야기. 그리고… (211)
by 주성하기자 2010/02/02 11:16 pm
지금까지
김정일의 기쁨조라고 하면 그의 연회에 참석해 춤추고 노래를 부르는 여성들이 밤
생활까지 같이 한 것으로 알려졌는데, 지금까지 한 이야기를 들으면 진짜는 따로
있었다는 느낌이 드네요.
김정일이
무지막지한 폭군인 듯해도 그도 부하들 눈치를 많이 봅니다. 부하들에게 아주 도덕적인
지도자로 비치길 바라죠. 물론 다른 간부들이 참석한 연회장에서 춤과 노래를 부르는
여성들이 있을 겁니다.
그렇지만
김정일이 그들을 다치진 않을 거예요. 전국에서 정말 고르고 골라 뽑아서 숨겨놓은
여성들이 있는데 꼭 그럴 필요가 없거든요.
물론
전혀 그렇지 않다고 확언은 못하겠습니다만, 춤 노래를 잘하는 여성 중에는 그의
취향에 맞는 여성이 있을 확률은 높지 않을 겁니다. 가무하는 여성들은 키도 늘씬하죠.
혹 김정일에게 선택된 여성이 있다면 아마 저희랑 함께 은둔의 생활을 시작하겠죠.
그가
총애하던 보천보전자악단 가수들을 그 악단 악기 연주가들에게 시집보낸 것을 봐선
그런 여성들에게도 지킬 선은 지켰다고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지금까지
이야기를 해오면서 김정일이 지어준 미향이라는 과거 이름과 당시 함께 있었던 사람들의
이름을 밝혔는데, 괜찮은 건가요.
어차피
이 이야기를 북에서 보면 제가 누군지 다 알지 않겠습니까.
김정일의
옆에 있다가 남한까지 온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할 뿐 아니라 그럴 일도 없어요. 저
말고는 또 나오기 힘들 겁니다.
본인뿐
아니라 가족까지 최고의 대우를 받는데 탈북할 이유가 없어요. 그러니 이름을 숨기고
이런 이야기를 할 수가 없죠. 다만 5과에서 제대하면 자기 고향엔 못 가게 합니다.
앞서
말했듯이 예전에 해외 언론에 나가 제 과거 이야기를 잠깐 한 적은 있었는데, 그때는
제 이름도, 주변 인물 이름도 말하지 않았습니다.
교육받던
건물도 밝히기 싫어 대충 말했어요. 그들은 선정적인 데 관심이 많아 ‘기쁨조’나
‘만족조’가 있느냐 뭐 이런 것을 집요하게 따지는 바람에 그냥 있다고도 했습니다.
상세하게 밝히기 싫어 얼렁뚱땅 넘어간 까닭에 과장된 것이 많아요.
그러나
지금은 제가 이름까지 다 밝히고, 그냥 있었던 사실을 담담하게 이야기하는 것뿐입니다.
그렇다면
얼굴이 나가는 것은 왜 거절하십니까. 어차피 저쪽에서 다 알고 있을텐데요.
제가
이 인터뷰를 하는 이유가 뜨기 위해 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죠.
처음에
한국에 와서는 그런 생각도 있었지만 지금은 ‘과거 기쁨조 미향’으로 살고 싶지
않아요. 이제 제 사진이 나가면 성가진 일이 많아지겠죠. 주변 사람들의 시선도 달라지고요.
저는 그냥 지금처럼 사는 게 나을 것 같다는 생각입니다.
남한에
와서 연예계 데뷔할 기회도 많았죠. 배우나 감독들 중에 아는 사람도 적잖습니다.
제 과거는 모르지만 영화에 출연해달라고 집요하게 설득했던 감독도 여럿입니다.
하지만
다 거절했어요. 한국 연예계의 실상을 알아갈 수록 북한에서 살았던 제가 그 물에
적응할 자신이 없더군요.
그리고
중앙당에 있을 때 찍은 저의 10대 시절의 사진을 보셔서 아시겠지만, 지금은 그때보다
얼굴이 많이 못쓰게 됐어요. 예쁠 때 사진 찍히고 싶은 것이 여자잖아요.
또
한 가지 망설여지는 것이 있다면, 한국은 안전한 곳이 아니잖아요. 이한영 피살사건
때 보시다시피 저들은 마음먹으면 실행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요.
그래서
저도 만약의 경우까지 생각하고 있어요. 저를 없애도 제가 따로 남긴 상세한 이야기가
다 공개돼 책으로 나간다면 암살이 별 효과는 없을 거예요. 오히려 테러국가라는
이미지만 더욱 각인될 겁니다. 그렇긴 해도 굳이 얼굴을 공개할 생각은 없어요.
이
글을 읽는 독자들이 어떻게 남한에 오게 됐는지 궁금해 할 것 같아요.
사람마다
다 나름의 사연과 아픔이 있습니다. 조용히 가슴에 묻어두고 싶은 것일 수도 있죠.
그냥 아주 간단히 말씀드리면 저의 가족이 북한에선 용서 못할 역적이 돼버렸습니다.
역적의
딸을 김정일의 옆에 둘 수는 없잖아요. 미옥 언니가 저를 붙안고 ‘넌 이제 살기
힘들 거다. 다시 못 보겠구나’하면서 몹시 슬퍼했어요.
언니가
‘너 죽지 않게 내가 최선을 다할게’ 그러면서 돈도 많이 주었어요. 헤어질 때 저도
엄청 울었어요. 1997년 저는 중앙당 보위부에 갇혀서 참 오랫동안 심문을 받았어요.
그렇지만 제가 할 이야기가 뭐가 있겠습니까.
어느
날 보위부 사람이 이야기하더군요. ‘장군님 말씀에 따라 목숨만은 건졌으니 감사하라’고요.
그 순간 미옥 언니가 생각났어요.
저는
깊은 산골 오지의 혁명화 구역으로 추방돼 한동안 세상과 격리됐어요. 이해되지 않는
게 추방 나갈 때 김정일이 준 선물을 일부는 뺏지 않고 갖고 나가게 해요.
유배
중에 은인이 생겨 탈출하는 데 성공했고 그가 알려준 선을 따라 몇 달 뒤 북한을
벗어나 남한까지 오게 됐습니다.
다시
떠올리긴 싫지만 그 과정을 써도 아마 두꺼운 책 하나는 나올 거예요.
에피소드
하나 이야기할게요. 중국에서 북한 음식이 너무 먹고 싶어 북한 식당에 간 적이 있어요.
나름 안경을 쓰는 등 변장을 하고 말이죠.
그런데
그 식당에서 일하던 한 여인이 저를 자꾸 쳐다봐요. 저는 그녀가 낯은 익은데 선뜻
생각은 안 났어요. 한참을 망설이던 그녀가 제가 다가와서 조용히 ‘실례지만 혹시
아무개 아닙니까’하고 묻는 거예요. 심장이 멎는 것 같았어요.
그는
5과 시험 볼 때 나랑 함께 3차까지 올라왔고, 최종 시험 때는 같은 호텔에서도 생활했던
애였는데, 왜 중국에 나와 있는지 모르겠어요.
5과에는
뽑혀도 최종까지는 못 간 미모의 여자애들은 따로 교육시켜 호텔에 상주시키면서
외국 요인들을 접대하게 한다는 말은 들었지만, 해외까지 나와 있는 줄은 몰랐습니다.
저는
아니라고 손사래를 치곤 음식을 다 먹지 못하고 도망치듯 나왔어요. 그게 벌써 10년
넘었군요. 요즘 해외 북한 식당 종업원들은 권세 있는 간부집 자식 중에서 선발된다고
들었어요.”
남한에
오니 잘 왔다는 생각이 드십니까.
제가
오고 싶어서 온 길은 아닙니다. 운명이 이끈 것이죠.
그리고
남한에서의 삶에 대해 벌써 결론을 낼 수는 없다고 봅니다. 30대에 ‘인생을 잘 살았습니까’
하는 질문에 대답할 수 없듯이 말이죠.
잘
왔는지는 몇십 년 뒤에 대답할 문제가 아닐까요. 아마 북한에 있었다고 해도 그렇게
행복했을 것 같지는 않습니다.
나이가
들면서 점점 행복이란 별것 아니구나 하고 느끼죠. 결국 행복이란 자기가 느끼는
감정 아닌가요. 김정일과 있었던 일은 제 일생의 일장춘몽일 뿐입니다.
살아갈
날은 그 순간의 몇십 배입니다. 앞으로 아무리 힘들어도 목표와 꿈은 잃고 싶지 않습니다.
꿈이 뭐냐고요? 훗날 북한에 돌아가 부모 잃은 애들을 돌보는 고아원 원장이 되고
싶습니다.
(연재
끝)
—————————————————————
<에
필 로 그>
이
글이 공개된 뒤 어떤 곳에서 전화가 왔다.
주인공이
누군지 알려달라는 것이다.
이
여성이 입국한 뒤 조사과정에 과거를 숨겼으니 모르는 것은 당연하다.
물론
처음엔 이미 한 약속이 있어 거절했다.
그럼에도
그들은 찾아냈다.
솔직히
과거 조사 서류들만 다시 캐 봐도 누군지 딱 집힐 것이다.
그녀에게
만나자고 집요하게 전화한다.
이왕
그렇게 된 것 나의 책임도 있으니 함께 나갔다.
오갔던
그 많은 말들을 다 옮길 수는 없다.
“이것(김정일
사생활)이 주 기자님이 지어낸 것 아닙니까”고 물을 때는 모욕감마저 들었다. 진실여부가
궁금하면 본인을 조사해보면 진짜인지, 가짜인지 간단히 알 수 있을 텐데 이들은
김정일에 대해선 관심 없는 것 같다. 차라리 거짓말이었으면 했던 것은 아닐지.
불러낸
목적은 따로 있었던 것 같다.
이런
글을 쓰면 신변안전을 장담하기 어려우니 더 이상의 김정일의 심기를 건드리는 글은
나가지 않았으면 한다는 뜻을 전달한다. 다 생각해서란다.
음,
신변보호라. 나는 대상이 아니다. 하지만 북한 체제의 고위급 하수인으로 인민의
등껍질을 벗겨 먹다가 비리가 드러나 도망쳐 오면 확실히 받는다고 장담할 수 있다.
참고로 모든 탈북자들과 북한 주민들에게 죄를 짓는 이런 문제는 나도 예전부터 한번은
건드려봐야겠다고 벼르고 있는 참이다.
조용히
살라는 ‘친절한’ 권고는 긍정적인 선의의 표시로 좋게 받아들일 수도 있지만, 입
다물고 조용히 살라는 뜻으로 해석될 수도 있다. 하긴 누가 보건대 나는 약간의 힘이
생겼다고 계란을 들고 바위에 덤벼드는 주제파악 못하는 보기 안쓰러운 탈북자일
수도 있다. 삶의 지혜는 엇서지 말고 사이좋게 지내는 것이 최선이라고 귀에 속삭이건만.
이런
생각도 해본다. 남북이 정상회담 분위기를 막 만들려고 하는데, 김정일의 부도덕성을
까밝히고 자극하는 글이 그 직전에 자꾸 튀어나와 화제를 모으면 위에서 심기가 상당히 불편해지는
사람들이 좀 많을 것 같다. 하지만 반대로 김정일의 도덕성에 타격을 입히고 전 세계에
알리려는 사람들에게는 정상회담이라는 이슈가 좋은 계기가 될 수도 있겠다 싶다.
연재된
글을 읽어보신 분들은 느꼈겠지만 이번 내용은 전반적으로 매우 조심스럽다.
이미
내가 들은 내용만으로도 책이 나올 정도지만 정말 민감하고 자극적인 내용은 거의
빠졌다. 당사자가 지금은 원치 않아서였다. 다 쓴다면 파문이 엄청날 것 같다.
김정일이
가장 숨기고 싶어 하는 문제들을 공개하는 것은 큰 위험을 동반한다. 김정일의 사생활을
폭로했던 이한영의 피살사건에서 보다시피 한국은 안전지대가 아니며 이웃 일본에서도
후지모토라는 요리사가 숨어 지낸다.
그렇지만
협박이 두렵다고, 목숨이 두렵다고 물러서기에는 양심이 허락지 않는다. 다행스럽게
목숨을 부지해 살아온 북한 지식인의 사명감은 나를 늘 짓누르는 가장
무거운 짐이다.
수백
만의 백성을 굶겨 죽인 독재자가 어떻게 호화 방탕한 생활을 하는지, 이를
위해 한국에선 상상도 못할 무수한 비밀 지하궁전을 짓느라 또 어떻게 인민들의 자식들이
죽어가고 있는지. 설계도를 그렸다고 죽이고, 비밀을 누설했다고 죽이고, 사고가
나서 죽어가고…. 이런 내용은 세계에 알려져야 한다. 누군가는 목숨을 각오하고
십자가를 메야 할 것이다.
영향력
있는 언론에서 민감한
북한 관련 기사를 쓰다 보니 나는 그동안 신변 협박을 수시로 받아왔다. 그런데 이번
글은 그녀의 우려 때문에 조심조심 썼건만 나간 뒤 이전과는 다른 차원의 협박을
전달 받았다. 나는 협박받아도 상관없지만, 그녀를 생각하면 걱정스럽고 미안하다.
그러고 보니 조용히 있으라고 했던 것은 정말로 친절의 표시였던가.
그런데
며칠 뒤 나는 공개하지 말아야 할(나 때문이 아닌 그들의 체면 때문에) 일로 속임까지
당해 몹시 화가 났었다. 어두운 곳에서는 밝은 곳에서 오픈된 삶을 사는 나를 마음만
먹으면 전화통화, 이메일, 통장잔고에 결제내역까지 모두 볼
수 있겠지만, 나는 그럴 수가 없다.
어떤
음모의 희생양이 될 수도 있겠다 싶은 예감마저 든다. 그런 점 때문에 망설이다가
이런 글을
미리 적는지 모르겠다. 어쩌면 미리 말해주는 것은 정말로 친절한 행위일 수도 있겠다.
음, 그런데 손에 든 계란은 어떻게 하지.
(아래↓
손가락을 누르면 더 많은 사람들이 이 글을 보게 됩니다)






안성일
2010-03-17
진심으로 주기자님을 응원 합니다. 주기자님을 통해서 북한 인권의 실태를 조금이나마 알게 되었고 그에 관한 책도 찾아 보고 있습니다. 이렇게 7부로 연재 된 글들을 다 읽어 보았습니다만 기자님께서도 말씀하신 비하인드 스토리에 대해서 궁금함이 생기는 것은 어쩔 수 없는 것일까요?,,, 그 충격적인 이야기를 책으로나마 발간되어 북한정권의 실상을 좀 더 자세히 알게되는 기회가 찾아오길 기원합니다. 그럼 힘내세요 주기자님!!
철이
2010-03-26
에필로그….. 현제 당신의 생각과 의지를 엿볼수 있는 글이었습니다
가슴이 뭉클하네요
북한, 탈북자니, 통일이니 이런걸 다 떠나서….
‘진정한’ 의사의 히포크라테스 선서 같은… ‘목숨을 건’ 종군기자 같은… 법을 수호하는 ‘청렴한’ 경찰같은…
현실과 타협하고 양심을 속이는…. 처음 세운 뜻이 점점 빛 바래는 사람들이 많은 이 세상에서…
당신과 같은 여권을 쓴다는 제가 왠지 모르게 자랑스럽네요. (이건 좋은 의미에서 민족주인가요? ㅎㅎ)
제가 생각하는 기자 정신의 일부분을 본 듯 합니다
초지일관 하시기를 기원합니다
김무스
2010-05-03
국정원 정보수집능력이야 뭐… 마소보다 못하다는거 유명하니까… 국정원이 주장하던 김정일의 네번째 여자 김옥… 결혼했다나는 기사 나오던데 뭐야 이거… 뭐가 진짜야?… 쩝 국정원이 뭘 알까나…
박혜연
2010-05-19
게다가 북한은 섹스를 즐길만한 문화가 전무하다시피하니 그래서 고위층아들들은 주로 창광거리의 몇안되는 식당 겸 선술집에서 그곳에 일하는 봉사원이나 예쁜여배우들과 놀아나는게 추세라니까?
파랑
2010-07-09
마지막 사각지대이고 수십년간 알려지지 않았던 비밀스런 내용을 밝혀주신 이 글의 주인공과 기자님께 다시 한번 박수를 보냅니다 .
용기
2011-02-16
주기자님과 미향님 처럼 용기를 가질 수 있는 지식인이 있다는 것은 크나큰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인류의 가장 소중한 가치를 저 북녘땅에도 일궈내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이 아름답습니다. 앞으로도 좋은기사 부탁드립니다.
미스터박
2011-02-17
할말이 없네요 뭐라….
천사
2011-02-18
힘내세요!!!
수련
2011-02-18
미향씨의 용기에 응원의 메시지를 전하고 싶습니다 .인터뷰를 하기까지 참 고충이 많았을 텐데요…저역시 평양에서 태여나 5과에 등록되였던 사람입니다 아빠가 5과에 대해 잘 아시는 분이라 반대를 하셔서 결국 6학년때 가졸업을하고(북한에서는 참 보기드믄 일이죠)의대로 편입을 해서 다행이 면할수 있었지만…저희 가정도 김정일에 뼈빠지게 충성하고 결국에는 반역자로 몰려 졸지에 아빠를 뺐기고 추방당해 산골 지방에서 속절없이 버림받다가 지금은 해외에서 뿔뿔이 갈라져 살고 있는 가슴아픈 추억을 안고 있죠. 그래서 많이 공감이 가고 이글을 쓰도록 도와주신 기자분의 용기에도 박수를 보냅니다 ….아무튼 잘 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