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서 쓰는 평양이야기

북한의 명물 '아리랑' 공연의 뒷이야기들 (15)

by 주성하기자   2009-10-26 10:27 am

 

올해도
예외 없이 북한에선 집단체조 ‘아리랑’ 공연이 열렸다.

 

연인원
10만 명이 동원된 이 공연은 서장과 본문 1∼4장 10경 및 종장으로 구성된 1시간
20분짜리 초대형 공연물로 10월 17일까지 2달 정도 진행됐다.

 

아리랑
공연은 2002년에 처음 공연됐고 이후 2005년, 2007년, 2008년에 이어 올해는 다섯
번째 공연이다.

 

아리랑
공연과 관련해 남한의 인권단체들 속에서는 ‘아동학대’ 논란이 거세게 일고 있다.
과연 공연에선 아동학대가 일어날까. 일어난다면 어떻게 일어나고 있을 것인가. 아리랑
공연의 뒷이야기를 풀어본다.

 

하지만
북한하면 떠오르는 것이 아리랑 뿐만은 아니다. 기계와 같은 일치성을 자랑하는 군사
퍼레이드, 광적이 열광이 지배하는 군중 시위, 인간 전광판의 행진인 횃불시위 등도
북한을 상징하는 행사들이다.

 

아리랑
뿐 아니라 북한 특유의 대중행사들은 어떻게 준비되는지도 함께 살펴보려 한다. 이
글은 신동아에 게재했던 글을 부분 수정 및 보충한 것이다.

 

—————————————————————–

 

‘아리랑’공연을
말하자면 우선 북한의 집단체조 역사를 말하지 않을 수 없다.

 

북한은
 1930년에 김일성이 직접 연출했다는 ‘조선의 자랑’이라는 체조체조의 기원이라고
말하고 있다. 하지만 집단체조가 연속성을 가지게 된 것은 해방 뒤인 1946년 5월에
‘소년들의 련한체조’가 열리면서부터라고 한다.

 

1955년
광복 10주년 기념행사인 집단체조 ‘해방의 노래’에서 배경대가 처음 도입됐다.

 

이를
계기로 북한의 집단체조는 개인적 기교 위주의 양식인 ‘유럽식 마스게임’과 확연하게
차별화를 짓게 된다. 배경대는 사상 주제적 내용을 서사시적 화폭을 전시하는 방법으로
풀어나갈 수 있게 했다.

 

집단체조는
1960년대 대형화되고 입체화의 개념도 갖게 되었으나 1970년대 중반 이후 잠시 소강상태를
보이게 되었다.

 

이때는
김정일이 후계자로 확고한 지위를 차지한 뒤였다. 이때 김정일은 집단체조보다는
음악무용서사시 또는 음악무용이야기에 더 관심을 가지게 됐다.

 

북한은
음악무용서사시란 음악과 춤을 기본 형상수단으로 하여 커다란 사회역사적 사건들을
서사시적으로 반영하는 대규모의 무대종합예술형식이나 그런 작품을 말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음악무용서사시는
1958년 처음 공연됐던 ‘영광스러운 우리 조국’과 1976년 ‘낙원의 노래’, 1982년
‘영광의 노래’ 등이 대표작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1980년대 중반 이후는 북한의 관심사가 군사 퍼레이드에 옮겨졌다. 1985년 사상 최대
규모의 군 열병식이 열린데 이어 김정일의 육성이 처음 공개됐던 1992년 열병식,
1995년 열병식 등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2000년대부터 다시 집단체조의 시대가 왔다. 2000년에 아리랑의 전신인 집단체조
‘백전백승의 조선노동당’이 공연되고 이 공연이 2002년 ‘아리랑’으로 발전했다.
지금은 군 퍼레이드보다는 아리랑이 북한의 최대 주력 행사로 확실히 자리매김했다.

 

북한은
아리랑을 단순한 집단체조라고 하지 않는다. 아리랑의 장르명칭을 ‘대집단체조와
예술 공연’이라고 구분지어 놓고 있다.

 

결국
아리랑은 북한의 60년 가까운 집단체조와 음악무용서사시의 경험을 집대성한 최종
완결판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아리랑에는 어떤 사람들이 참가하는가.

 

아리랑
공연 참가자 대다수는 학생이다. 평양시 내 학교에서 이들 거의 전부를 뽑는다. 키를
맞추기 위해 각 학교에서 특정 학년을 통째로 빼서 아리랑 공연에 참가시킨다.

 

같은
학년이라도 키가 천차만별이기 때문에 실제 행사에서는 키 순서로 학생들이 배열된다.
키가 일치해야 하는 장면에는 학년에 상관없이 비슷한 키의 학생들을 전부 차출해서
훈련시키기도 한다.

 

고난도의
동작 수행을 위해 체육이나 무용을 전공하는 학생은 거의 예외 없이 차출된다.

 

학생뿐
아니라 어른 참가자도 적지 않다. 직장이나 인민반에서 몇 명씩 뽑아서 공연에 참가시키는데
서로 하겠다고 자원한다. 그 이유는 뒤에서 설명하겠다.

 

북한에서
집단체조 공연을 준비하는 기간은 약 반 년. 2009년 아리랑 훈련도 2월부터 시작됐다.
초기 훈련은 학교별로 운동장에서 진행된다.

 

참가해야
할 장면이 정해지면 조를 짜서 동작을 순서별로 하나하나 익히게 한다. 이때는 학생들이
오전에 공부하고 오후에만 훈련을 한다.

 

 

조별
동작이 완성되면 김일성광장처럼 넓은 공간에서 훈련을 하고 이후 행사 한 달 전부터는
경기장에서 전체 리허설을 진행한다. 리허설에 들어가면 수업에서 완전히 빠진다.

 

공연
기간이 두 달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학생들은 리허설을 포함해 석 달가량 수업을 받지
못하는 셈이다.

 

빠진
수업은 나중에 보충수업으로 대신하는데 매우 형식적이다. 훈련이 시작되면 수업에
전념하기 힘들다. 육체적으로 너무 힘들기 때문에 오전 공부시간에 조는 학생이 많다.

 

학교
훈련 때는 그나마 훈련강도가 좀 낮은 편이다. 그래도 한 사람이 실수하면 그 조가
함께 벌을 받는다. 벌의 강도는 선생의 성격에 따라 달라진다.

 

선생들도
맡은 조 성적에 따라 평가를 받기 때문에 자기 조를 남보다 앞서게 하려 한다. 회초리로
손바닥을 때리는 선생도 있고 부동자세를 강요하는 선생도 있다.

 

그러나
체벌은 최근에 점점 약해지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학부모의 목소리가 높아지기 때문으로
보인다.

 

훈련강도는
낮지만 학생들이 가장 힘들어하는 시기는 초기 한두 달이다. 몸이 풀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때가 지나가면 단련돼서 웬만한 고난은 견딘다.

 

7월경
수업을 떼고 전체 훈련에 들어가면 그때부터 상당한 스트레스를 받게 된다. 조별로
할 때는 화장실에 갈 일이 있으면 선생에게 말하고 빠질 수 있지만, 수만 명이 참가하는
리허설에선 빠지기 어렵다.

 

그러니
방광염에 걸리는 경우도 있지만 생각보다 많지는 않다. 물 자체를 매우 적게 먹이는데다
수분이 땀으로 배출돼 오줌이 잘 나오지 않기 때문이다.

 

방광염에
걸릴 위험이 가장 높은 학생은 오히려 관람석에서 카드섹션을 담당하는 배경대 학생들이다.
다른 종목은 자기 차례가 끝나면서 빠져나올 수 있지만 배경대는 시작부터 마지막까지
정신을 차리고 앉아 있어야 한다.

 

배경대에
동원되는 인원은 대략 1만명이다.

배경대에
뽑힌 학생들은 수십~수백 장짜리 카드책을 직접 만들어야 한다. 어디에 앉는지에
따라 개인별로 카드가 다 달라진다.

 

 

배경대에
뽑히면 학부모들이 학교에 와서 색도화지로 카드책을 만드는 것을 거들기도 한다.

 

이렇게
만든 카드책은 훈련용이다. 정식 행사용은 국가에서 행사 전에 따로 나누어준다.
훈련용과 실전용이 따로 있는 이유는 훈련 때 훼손되거나 분실되는 위험을 막기 위해서다.

 

국가에서
지급하는 카드책은 해마다 무게가 달라지지만 2009년의 경우 카드책의 무게는 평균
5.4㎏이라고 한다.

 

하지만
자체로 만든 훈련용은 무게가 좀 더 나간다. 리허설이 시작되면 카드책을 어깨에
메고 출퇴근해야 한다.

 

배경대에서
가장 중요한 자리는 중앙이다. 김일성 김정일 부자의 얼굴이 자주 등장하고 ‘설레임’
‘깜박임’ 같은 특수효과를 수시로 처리해야 하기 때문이다.

 

배경대
학생들은 주석단 뒤에서 배경대 총지휘관이 보내는 수기 신호에 따라 일제히 카드를
넘기는 훈련을 한다. 만약 실수를 해 구멍이 발생하면, 저녁 ‘사상투쟁회’에서
단단히 혼난다.

 

집단체조에
참가한 학생들은 1970년대 중반 집단체조 배경대에 참가했던 한 학생을 본받을 것을
요구받는다. 이 학생은 공연 도중 급성 맹장염이 왔지만 카드책을 마지막장까지 펼치고
쓰러졌다는 것이다. 다행히 병원에 실려가 생명은 유지했고 훗날 학생 최고의 영예인
‘김일성소년영예상’을 받았다고 한다.

 

철봉
등의 묘기를 보여주는 기계체조부 역시 매우 힘든 부류에 포함된다. 물론 고난도의
동작은 체육대학이나 체육소조의 훈련된 학생들이 주로 맡지만 하루 종일 손에 안전바를
감고 철봉을 돌다보면 골절상을 당할 확률이 높다.

 

 

훈련
도중 가장 무서운 것은 일사병이다. 땡볕에서 하루 종일 훈련을 하게 되면 쓰러지는
학생도 나온다. 하지만 조별 훈련을 책임진 선생들은 신경 쓸 여유가 없다. 노동당
입당과 같은 개인적 이해관계가 달려있기 때문이다.

 

전체
리허설에 들어가면 행사 인원을 제시간에 수송하는 문제도 중요하다. 이때는 군용트럭이
행사 차량으로 대규모로 동원된다.

 

평양
시내 무궤도전차와 궤도전차도 특별 동원된다. 행사 참가자들은 일반 정류장이 아닌
곳에 대기하고 있다가 수송용 버스를 타고 행사장으로 간다. 보통 저녁 훈련이 끝나고
돌아가는 시간은 밤 10시경이다.

 

지금은
북한도 행사 요령이 생겨서 행사 인원 수송체계가 잘 잡혀 있지만 20년 전에는 집이
멀리 있는 학생들은 밤 12시까지 훈련하고 경기장 안에서 단체로 자는 일도 많았다.
남녀가 하루 종일 함께 훈련하고 잠까지 함께 자다보니 ‘사고’도 잦았다고 한다.

 

훈련
기간에 학생들은 집에서 도시락을 싸가지고 다닌다. 학부모들이 2인1조로 돌아가면서
학급별로 국을 끓여오기도 한다. 다른 부모보다 못하면 자기 아이가 ‘왕따’라도
당할까봐 없는 살림에 장마당에 나가 육류를 사서 고깃국을 끓여가는 일이 많다.

 

국가에서
간식으로 빵과 과자 등도 공급하지만 배불리 먹을 양은 아니다. 또 집단체조에 참가하면
많이 먹지 말라고 요구받는다. 배가 부르면 나른해지고 동작이 굼떠진다는 이유에서다.

 

학급이
행사에 참가했지만 개인적으로 질병이 있는 경우엔 후방조에 소속된다. 후방조의
임무는 행사에 동원된 학생들의 소지품 지키기, 간식 받아오기, 국 날라오기 같은
심부름 위주다.

 

집이
평양에 있는 학생들은 그나마 낫다. 가장 불쌍한 학생이 대학에서 동원된 기숙사생들이다.
기숙사생들은 비닐봉지에 밥을 받아오는데 기숙사 식당에서 개별적으로 상대하기
귀찮다는 이유로 밥을 학급 또는 학과별로 인원수에 맞게 한꺼번에 담아준다.

 

기숙사
밥 양이 워낙 적은데다 학생 간부들이 그 밥을 빼내 배부르게 먹고 나서 행사장에
가져다주기 때문에 결국 한줌도 못 되는 양만 남는다. 돈이라도 많으면 장마당에서
보충할 수 있다. 하지만 돈이 없으면 집에서 다니는 ‘자가생’들의 신세를 지지
않는 한 버틸 수가 없다.

 

집단체조의
훈련 과정이 매우 혹독하기 때문에 외부 세계에는 이러한 집단체조가 아동학대의
대명사로 비치지만 정작 북한에서는 많은 성인과 학생들이 저마다 이 행사에 참가하려고
경쟁하고 있다.

 

물론
최근에는 바깥세상을 많이 알고 있는 일부 고위 간부와 부유층들이 자기 자녀를 힘든
훈련에서 빼서 후방조에 포함시키는 사례도 많아지고는 있다.    

 

(다음회에
계속)

 

(아래↓
손가락을 누르면 더 많은 사람들이 이 글을 보게 됩니다)

카테고리 : 서울에서 쓰는 평양이야기

댓글 남기기


  1. 찐삼

    주성하 기자님. 이번글도 잘 읽었습니다.
    예전에 “어떤 나라” 라는 이름의 다큐멘터리 영화를 본 적이 있습니다. 매스게임에 참가하는 두 소녀를 중심으로 구성된 내용이었는데 북한에서는 매스게임을 공산주의체제를 더욱 확고히 하기 위한 수단으로 이용하는듯한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역시 그 다큐 또한 북한의 체제를 미화시켜 외부세계에 알리는 수단이 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과연 북한의 지도층은 언제쯤에 부질없는 매스게임을 그만두고 실리를 중시하는 정치를 통해 인민들을 먹여살릴 노력을 할까요?

    리플작성 2009-10-26 02:13:20

  2. 삼발이

    잘 봤습니다. 이런 무의미한 정치적 행사에 너무나 많은 인력과 어느정도 적긴 하지만 자본이 투입되는것에 개탄을 금할수가 없군요. 국가발전보다는 체제보장에 더 열을 올린다는 느낌입니다.

    리플작성 2009-10-26 05:10:19

  3. 소악녀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리플작성 2009-10-26 08:47:07

  4. 세계인

    이명박 ; 아름다운 시를 좋아해 지난 방송에서 나눔의 시간 가여운 이들을 위하여 시를 낭송했어
    악 ; 피바다를 좋아해 피바다 그리고 전투라는 말 지난 김대중방문시 피바다가극단의 공연을 보여주었지 펖펄 뛰는 날생선을 내 이빨로 뜯어먹는 기분 대박이야

    이명박 ; 열심히 일해서 벌어놓은 재산을 사회에 기부했어 국가를 위하여 국내외 열심히 헌신하고 있어
    악 ; 내 추종자와 노리개들을 착취해서 해외에 마카오 스위스에서 룩셈부르크에 수천억에서 수조원 숨겨놓았지 내 울타리에 노리개들은 가난해야 딴 생각을 못 해 나만 즐거우면 되거든 최근에는 이탈리아에서 거부당하고 중국에서 호화요트 수백억으로 2대 사왔지 그리고 내 별장 수리하고 있거든

    김대중 ; 독재와의 말로는 비참해 죽어서까지 편치않아 꼭 심판받아 그것이 나의 신념이야
    악 ; 군대 언론을 쥐고 우상화 그리고 통제를 하면 독재는 아주 쉽거든 독재는 나의 줄거움이야
    황장엽의 강연선물 컴퓨터와 차등 장성택이 압수했지 장성택은 나의 우수한 졸개야
    추종자통제는 더 잘해야되거든

    노무현 ; 있는 별장마저 국민에게 돌려주었어
    악 ; 내 별장은 33곳이야 내 전용열차도 있지 그리고 러시아 스위스등 해외에도 있거든

    박정희 ; 쌀을 아끼려고 아침에는 보리3대7로 먹고 점심에는 칼국수를 막걸리와 농촌의 근대화를 줄기고 잘살아보자는 노래를 지었지
    악 ; 나의 우상화 무조건 복종 내배가 임신부처럼 되도록 먹었지 무슨상관 나만 좋으면 되지 300만이 굶어죽고 또 배고픔에 시달리는 노리개들 내 노리개들인데 니들이 왜 간섭이야 하지만 내 측근의 추종자들은 차별화해서 잘 먹여야 해

    히틀러 ; 동족을 위하여 유대인을 단시간내에 죽였어 악은 악이지
    악 ; 동족을 오래 피말려 죽였어

    링컨 ; 인류 국가애를 위하여
    악 ; 자기애를 위하여

    쩌뚱 ; 내가 죽으면 시신을 화장하여 홍콩 앞바다에 뿌려라
    악 ; 내 호화궁전을

    이명박 ; 핵은 위험하니 치워 핵치우면 국가 부강하게 해줄게
    악 ; 국가부강이 나와 무슨상관이야 나만 배부르고 편안하면 되거든 핵으로 내 비위건드리면 가만두지 않을 거야
    내 측근들이 황장엽같이 위기의식으로 제살길을 찾아 무너지면 모를까 내 울타리안에서는 민주화 그거 어렵거든

    리플작성 2009-10-26 09:14:21

  5. 박혜연

    하여간 대한민국 역대대통령 말은 안듣고 자기고집만 부리는 정이리의 모습! 정말 청개구리라고해도 믿겠네요?

    리플작성 2009-10-26 11:12:26

  6. 밀크티

    저도 북한의 아리랑 보고는 정말 레고조각의 일부로 보이는 아이들을 보며 안타깝더군요. 한참 먹고 뛰어놀고, 미래의 꿈을 그리며 하고 싶은게 많은 저 나이때에, 일개 부속품이 되어, 반 년 넘게 소중한 시간을 허비해야한다니.참 북한당국도 답이 없네요. 저러니, 점점 키도 안자라고 영양실조로 사람들이 죽어나가죠. 아이들만이라도, 좀 가만 내버려뒀음하네요.

    리플작성 2009-10-26 02:58:11

  7. 시나브로

    음, 맹장염 걸린 학생이 살았었군요. 전 죽은 줄로만 알았습니다만.

    리플작성 2009-10-26 03:46:58

  8. 도루왕

    어렸을때 (90년대초) 너무 어린아이들이 억지 얼굴표정을 지으며 음악에 맞게 로보트처럼 춤을추는거 보고 정말 불쌍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TV에서 그런모습 나오면 사람들은 불쌍해 하면서도 우스깡 스러워 깔깔 웃곤 했죠.. 다른나라에서는 이런 북한의 모습을 우습게 보는데 모가 좋다고 이렇게 열을 올리는지 모르겠네요..

    리플작성 2009-10-26 06:14:51

  9. VKF

    글 잘 쓰시네요. 기자님과 더불어 제가 본 북한 사람들 인상은 글 참 잘쓴다는 거 밖에 없음. ㅋㅋ 글로만 만나서 그렇지만.ㅎ

    리플작성 2009-10-26 08:41:12

  10. 박혜연

    북한 어린이들의 동영상을 보면 1970년대나 2000년대나 변함없이 로보트처럼 웃고 기계처럼 춤추면서 행동하는걸보고 제가 국민학교때 북한어린이들의 동영상을 봤는데 그때 처음에는 왠 아이들이 저렇게 가짜미소를 짓고 수령님앞에서 뛰면서 만세하는걸보고 깔깔웃음이 나왔지만 알고보니 넘넘 안쓰럽고 측은한맘이 들더군요? 아직 동심을 많이 꽃피워야할시기인데…

    리플작성 2009-10-26 09:54:02

  11. Garry

    중국은 여전히 사회주의 국가이지만, 조선족 2백만 중에 30만 이상이 남에 들어와 삽니다..그들이 돈 벌면 물가가 싸 한국서 번돈으로 중산층에 가까운 생활을 얼마간 할 가능성이 있는 중국으로 태반이 돌아가겠지만.

    북의 억압적 체재가 영구히 지속될 수 있을리 없습니다. 향후에 뇌졸증 걸린 김정일이 한 10년 뒤에 죽고 북에 중국 수준의 온건한 사회주의 국가가 들어선다면. 그리고 북 주민들의 자유가 늘면?

    인구 비례로 봐서 북 주민 2천 4백 만 중에 3백만 이상이 어떤 경로로든지 순차적으로 남한사회에 들어와 살게 될 것이라는 추정이 충분히 가능하지 않을까 합니다….그런데 북 청년 유아층의 30%는 못 먹어서 신체적 지적으로 장애가 있다는군요.

    지금 북의 애들이 잘 먹고 학교가 공부라도 해야지 어느 사회이든 정착을 제대로 할테인데, 현 정부는 2년째 비료 식량을 안줍니다. 기다리는 것도 전략이라면서, 북 주민들의 굶주림이 노골적인 최대의 대북 무기가 되었습니다. 요즘에 다시 재개되는 식량제공은 단 1만톤…북의 내년 식량 부족분은 최소기준으로 150만톤이라는데 말입니다. 중국이 도와주기는 하겠지만 말이지요.

    님힌시림들은 60년 간의 분단에 익숙해져 있어서 앞으로도 안온한 분단이 지속될 것이라 막연히 가정하고 삽니다. 북의 모든 비극은 김정일 때문이니 우리는 책임질게 없다고 편히 사는 남한 사람들, 나중에 수백만의 북의 아이들이 곧 자신들의 이웃이되고 자녀들의 배우자들이 되었음을 발견하게되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요?

    리플작성 2009-10-27 05:33:09

  12. 3463

    저도 어렸을때는 표정보고 웃었는데 지금은 섬뜩합니다. 불쌍한건 당연하구요.

    리플작성 2009-10-27 10:11:05

  13. 좆까리야

    아, 북경에서도 건국 60주년 행사한다고 북경시에 있는 모든 중학생들 죄다 버스로 지하철로 천안문광장, 인민대회당으로 어나르더라고요. 저도 그들 때문에 교통수단이라고는 택시밖에 못타고, 그날 밤 지하철로 집에 돌아가기에는 지하철역들이 죄다 문을 닫고 천안문광장 주변엔 차량도 이동하지 못하게 조치를 해서, 집에 돌아가는 거 포기하고 시내에 있는 친구집에서 하룻밤 잤습니다. 그때 정말 짜증밖에 안났는데, 북한은 더하군요.

    리플작성 2009-10-30 11:40:43

  14. 박혜연

    먹을것도 부족하고 굶어죽을판에 저런공연을 고집하는 정일이의 모습을 보고 화났거든!

    리플작성 2009-11-19 02:49:47

  15. 박혜연

    이번 8월에도 또 아리랑 대집단체조 공연을 한다던데 어디 버틸까볼까?

    리플작성 2010-05-21 12:50: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