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서 쓰는 평양이야기 탈북자 수기

신입사원 선발까지 담당하는 탈북 ‘워킹맘’ (4)

by 주성하기자   2017-09-02 12:24 pm

 

워킹맘(Working mom)이란 사회활동과 가정생활을 병행하는 여성을 이르는 말이다. 북한이탈주민의 70% 이상을 차지하는 탈북여성들에게도 낯선 용어가 아니다.

 

임신과 출산으로 인한 인사상 불이익이나 퇴사 조치는 일상다반사다. 남편이랑 육아와 집안일을 공동으로 분담하는 것 또한 ‘이상적인’ 일이다.

 

모든 어려움을 극복하고 가정과 회사일 모두 억척스레 해나가고 있는 워킹맘 박혜경(가명, 45) 실장을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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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월이라고 하지만 북방의 가을밤은 서리가 내린 듯 차가웠다. 예전 같으면 한 해 농사를 마감하느라 한창 바쁠 시간이었다. 불빛 한 점 없는 동네를 빠져나온 혜경 씨는 조선족 친척의 도움으로 무사히 두만강을 넘었다.

 

아직은 탈북이라는 용어조차 낯설던 1996년이었다. 중국에서는 연변 조선족으로 신분을 숨기고 청도에 있는 한국 기업에 취직했다.

 

그러나 대량탈북사태가 일어나면서 중국도 더 이상 안전지대가 아니었다. 엄마에게 보내려고 모아두었던 인민폐 5,000원을 브로커 비용으로 건넸다.

 

넉넉잡아 일주일이면 도착한다던 배는 공해에서 보름을 떠다니다가 한국 해경에 발견되어서야 육지로 끌려왔다.

 

악취가 풍기는 자그마한 선창에 짐짝처럼 박혀 있던 80여 명 중 탈북민은 혜경 씨가 유일했다. 2001년이었다.

 

경리 사원으로 시작하다

 

하나원에서 그가 배정받은 집은 지방에 있었다. 하루는 버스를 타려고 서 있는데 다닥다닥 붙은 전단지 중에 경리 사원을 구한다는 구인광고가 눈에 띄었다.

 

혜경 씨는 망설임 없이 그 자리에서 전화를 걸었다. 하나원에서 열심히 컴퓨터를 배워 상까지 받았겠다, 한국 기업에서 5년간 일했으니 대화도 되겠다,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몇 개월간 출산 휴가에 들어간 경리 사원을 대신하는 자리였는데 사장은 몇 마디 질문 끝에 내일부터 당장 출근하라고 했다. 그 회사에서 일한 건 6개월밖에 안 되었다.

 

혜경 씨가 탈북민임을 몰랐던 사장은 일을 잘해주어 고맙다고 하면서 자격증만 있으면 큰 회사에 가도 되겠다고 덕담까지 건넸다. 혜경 씨도 경리일 이 마음에 들었다.

 

그길로 서울로 올라와 30만 원짜리 월세를 얻고 학원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탈북민이 별로 없던 때라 정보를 얻기가 쉽지 않았다.

 

인터넷으로 국제비즈니스 학원이라는 곳을 찾아낸 혜경 씨는 학원을 찾아가 전산회계반에 등록했다. 그때부터 졸업하는 날까지 학원의 맨 마지막 퇴실자는 혜경 씨였다.

 

 처음 접하는 내용이라 어렵기도 했지만 그날 배운 것은 그날로 다 알고 넘어간다는 자신만의 원칙을 정했던 것이다.

 

그를 눈여겨보던 학원 원장은 그녀가 탈북민임을 알고는 매일 점심까지 사주며 격려했다. 1년이 지난 후, 그는 당당히 전산세무1급 자격증을 따냈다.

 

면접으로 취업에 성공하다

 

취업이 어렵다는 말을 귀에 못이 박일 정도로 들은 혜경 씨는 이력서만 100통을 준비했다. 그 100통이 다 없어질 때까지 취업을 못하면 일을 안 하겠다고 결심도 했다.

 

이력서에 탈북민임을 밝힐 것인지, 밝히지 말 것인지를 놓고도 고민하다가 밝히지 않고 일단 실력으로 가보기로 했다. 고맙게도 이력서를 넣은 회사 몇 곳에서 면접을 보러 오라는 연락이 왔다.

 

면접장에서 언제부터 출근이 가능하냐고 묻는 회사도 있었다. 처음 입사한 회사는 강남에 있는 큰 회계사사무소였다. 실력으로 당당히 취직은 했다 하지만 현장은 역시 현장이었다.

 

당시 혜경 씨는 급여 90만 원을 받는 말단 사원이었지만 경력이 화려한 선배들에게 자주 밥을 사면서 업무를 꼼꼼히 배웠다.

 

그리고 더 큰 꿈을 이루기 위해 2009년에는 고려사이버대학교 전산세무학과에 입학했고 4년을 열심히 노력해 전산세무학사가 되었다.

 

입사 초기에는 서류를 작성하는데 확인하는 시간만 반나절이 걸렸다고 한다. 하지만 지금은 30분도 안 걸 리니 일에서는 역시 전문성이 최고의 능력인 셈이다.

 

베테랑 워킹맘의 최종 목표

 

그동안 혜경 씨는 두 아이의 엄마가 되었다. 양쪽 다 부모가 안 계셔서 육아도, 가사도 고스란히 그의 몫이었다.

 

2007년에 태어난 첫째 딸은 초보 엄마를 참 많이도 울렸다. 딸은 아침엔 어린이집 문이 열리기를 기다리고 저녁엔 마지막까지 남아 있는 유일한 아이였다.

 

친구 엄마들은 다 빨리 오는데 왜 엄마만 늦게 오냐고 울면서 떼를 써 함께 눈물을 많이 흘렸다. 2012년에 둘째 딸이 태어났지만 바쁜 남편을 대신해 육아는 여전히 혜경 씨의 몫이 되었다.

 

사무실에서 하루 종일 숫자와 씨름하고 어린이집에서 딸을 찾아서 퇴근할 때면 구름 위를 걷는 듯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특히 부가세, 법인세, 종합소득세, 부가가치세를 신고하는 달이면 한 달 내내 야근을 해야 한다. 지금은 큰딸이 동생을 챙겨주지만 그동안은 전쟁 같은 나날이었다.

 

워킹맘으로 살아오면서 혜경 씨가 가장 힘들었던 때는 아이가 아플 때다. 회사에 출근 도장을 찍고는 병원에 달려가고, 다시 회사에 달려오고, 밀린 일은 퇴근시간이 지난 후 늦도록 처리 하고….

 

지금 일하는 회사에서 10년간 일해 온 혜경 씨는 일반 사원으로 시작해서 주임, 대리, 과장, 실장으로 승진했다.

 

회사 내에서도 최고 급여를 받고 소장을 대신해 신입사원 면접도 혜경 씨가 볼 때가 많다.

 

피아노를 잘 치는 큰딸은 전국 대회와 여러 콩쿠르에서 상을 타오고 학급회장으로 공부도 잘하는 데다 이제는 바쁜 엄마를 대신해 동생도 챙긴다.

 

“워킹맘으로 살면서 몸은 정말 힘들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두 가지 일에서 다 인정을 받고 있습니다.”

 

혜경 씨는 지금 공인중개사 자격시험을 준비하고 있다. 그가 세운 다음 목표는 통일 후 고향 사람들을 위해 사회복지사로 일하는 것이다. 혜경 씨는 그 목표 또한 이룰 것이 분명하다.

 

글출처: 남북하나재단 발행 잡지 ‘동포사랑’

카테고리 : 서울에서 쓰는 평양이야기, 탈북자 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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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오뚜기

    공인중개사 준비하신다구요?…….공인중개사로 성공할려면 네가지 조건중 하나가 충족이 되어야 합니다…그냥 조언해 드리는거니 부담 갖지말고 참조해주세요….
    공인중개사는 돈벌이가 보장되는 직업이 아닙니다…
    월급만 받는 공인중개사는 거의 없는 실정입니다….본인의 영업능력이 무멋보다 중요합니다..

    1.본인이 돈이 좀 있어서 목이 좋은 자리에 권리금 주고 공인중개사 사무실을 차리면 돈을 그나마 벌수 있습니다.

    2.본인이 돈이 꽤 있어서 본인돈으로 경매도 잡고 급매도 잡으면서 돌리면 충분히 많은 돈을 벌수 있습니다..

    3. 본인이 돈이 없으면 본인을 믿어주고 돈을 투자해 주는 전주(돈주)가 한명 이상 있어야 합니다…

    4.돈이 없어도 영업력이 있으면 됩니다… 중요합니다…부동산업은 구지 자격증 없어도 됩니다…
    영업력과 부지런함으로 부단히 노력하면 부동산업은 큰 결실을 줍니다

    그리고 여성분들에 유리한 직업이기도 합니다..사족을 하나 더 붙이자면 통일후 부동산업은 큰장이 설겁니다…공인중개사 따셔서 부동산업에 도전해 보는것도 통일후를 준비하는 탈북자들에게 큰 기회가 될것입니다,,,화이팅 하세요

    리플작성 2017-09-02 01:22:58

  2. 오뚜기

    이제부터는 국경부근의 함경도나 양강도 뿐만 아니라 내륙의 황해도 평안도 출신들 탈북자들도 많이 보았으면 합니다

    리플작성 2017-09-02 01:29:16

  3. Garry

    회계세무 쪽 일을 오래 했으니 계속 그 일을 하는게 유리하죠. 공인중개사는 자격증 자체보다 관련 법 등을 익혀두면 업무에 도움 된다는 차원에서 공부라는 걸 겁니다.

    리플작성 2017-09-02 01:33:34

  4. 재미한국인

    같은 이민자이기는 하나, 이 분이 저도다 더 고단한 이민 생활을 하셨던 것 같습니다. 존경스럽습니다.

    리플작성 2017-09-02 04:07: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