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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하, 그것이 마지막 기회였습니다. (52)

by 달래강   2017-07-06 8:23 am

마이커류님이 “김정은의 전략”이라는 제목의 글에서 북한의 핵공격을 가상한 예상을 썼는데, 마침 비슷한 주제와 시각으로 조갑제 기자가 쓴 글이 올라와 있어 소개한다. 이거 현실로 다가올 가능성이 있다. 우리는 정말로 냉정하게 김정은과 시진핑과 트럼프의 입장이 되어 한 번 생각해보자. ”희망”을 “현실”로 착각하지 말고 냉정하게 읽어보자. 다른 문제도 아닌 국가의 안보 문제다.  http://www.chogabje.com/board/view.asp?C_IDX=73432&C_CC=B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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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령도를 공격한 다음 핵카드를 꺼낸다

 

북한이 1980년대부터 핵 개발에 총력을 기울여 온 이유에 대하여 자유진영에서는 체제 유지를 위한 것이라고 단정하고, 체제를 보장해주면 핵개발을 포기할 것이라고 판단, 6자 회담, 햇볕정책, 일방적 대북(對北) 지원을 해 보았지만 실패하였다.


북한이 만난(萬難)을 무릅쓰고 핵무장의 길을 선택한 것은 핵무기로 남한을 공산화, 한반도를 통일하는 목표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목표가 북한 노동당 규약에 명시되어 있는데도 소위 전문가들은 편리한 대로 해석하였다.

 

경제력이 거의 50배나 되는 한국이 인접하고 있는 한 북한은 장기적으론 체제 유지를 할 수 없다. 남북한 체제 대결의 본질은 <민족사의 정통성과 삶의 양식(樣式)을 놓고 다투는 타협이 절대로 불가능한 총체적 권력투쟁>이므로 한반도에서 정통성 있는 국가는 하나여야 한다.

 

소위 수령 지도 체제의 영속적 유지를 위하여는 한국을 종속화시키거나 공산화하는 길밖에 없다고 판단한 김정은은 현상타파를 결심한다. 지금부터는 가상 시나리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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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백령도에 대한 포격을 명령한다. 군인 및 민간인을 포함한 수백 명의 사상자(死傷者)가 발생한다. 한국군은 여러 차례 공언한대로 원점 타격으로 보복에 나선다. 공군 전투기 수십 대가 출격, 백령도 포격을 명령한 군단 사령부와 포대를 공격, 파괴한다. 이번엔 북한 쪽에서 수많은 사상자가 생긴다.

 

다음 날 김정은이 직접 나서서 중대 발표를 한다. 요지는, “00월 00일까지, 우리를 공격한 한국군의 책임자들(국방장관, 합참의장, 공군참모총장을 특정)을 처벌하고, 손해를 배상하며, 백령도를 넘겨라. 그렇게 하지 않으면 한국의 한 도시에 대하여 핵무기를 쓰겠다”는 최후통첩이다.

 

한국과 미국 대통령이 긴급 전화 회담을 갖고 대책을 의논, 미국이 한국에 약속해온 핵우산 정책, 즉 확장된 억지 전략을 적용하기로 하였다고 공동 발표한다. 미국의 핵추진 항공모함과 잠수함이 한반도로 전개된다. 중국은 이에 대응, 해군에 동원령을 내린다. 북한은 만약 미국이 공격해오면 미국의 서부지역을 핵공격 하겠다고 선언한다.

 

이런 가운데 한국에서 핵전쟁 반대운동이 일어난다. 대규모 시위대가 평화를 외치면서 서울 시내를 점거하고, 북한의 핵공격 위협을 규탄하는 게 아니라 미국의 방어적 대응을 비판한다. 많은 국민들도 “일단 핵전쟁은 막아야 한다”면서 한미(韓美)의 강경대응에 반대한다. 갤럽 여론조사에선 70% 이상이 ‘평화를 위하여 북한의 요구를 들어줘야 한다’는 응답을 하였다.

 

○ 서울을 위하여 로스앤젤레스를 희생시킬 수 있나?

 

이런 가운데 정치권에서도 한국군의 원점 타격이 과잉 대응이었다는 비판이 강력하게 제기된다. 일전불사(一戰不辭)를 주장하는 의견은 목소리가 약하다. 이런 움직임을 지켜보던 미국에서도 의회와 언론을 중심으로 “서울을 지키기 위하여 로스앤젤레스를 희생시킬 순 없다”는 여론이 일어난다.

 

북한이 장거리 미사일이나 잠수함 탑재 미사일로 미국 본토를 核공격할 때 이를 요격할 수 있는 능력은 80%밖에 안 된다는 사실이 공개되면서 한국을 보호하기 위하여 미국인의 안전을 희생시킬 수 없다는 여론이 대세(大勢)를 이룬다. 미군 기지가 있어 북한 핵미사일 위협에 노출된 일본에서도 “제2의 히로시마를 반대한다”면서 미국의 대북(對北)응징 방침을 비난하는 대중운동이 일어난다. 미국과 한국 정부는 딜레마에 빠진다.

 

이 틈을 타서 중국이 6자 회담을 제의한다. 핵전쟁을 막기 위하여 남북한,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가 담판을 짓자는 것이다. 중국은 회담을 제의하면서 중북(中北) 접경 남쪽 50km까지를 ‘비행 및 무력사용 금지구역’으로 설정한다는 발표를 한다. 이는 미국의 공격을 피해 북한이 핵심 시설을 옮기려 할 때 피난처를 제공하겠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5개국은 회담 제안을 수락하지만 북한은 이를 거부하고 ‘우리의 요구조건을 먼저 이행하라’고 한국을 압박한다. 며칠 뒤 북한 해역(海域)에 있는 무인도에서 핵폭발이 일어난다. 북한이 잠수함에서 소형 핵폭탄을 장착한 중거리 미사일을 고각도로 발사, 낙하시키는 실험을 한 것이다. 폭발력은 히로시마 급으로 추정되었다. 한국이 가진 허술한 방어망으론 이런 고각도 비행 미사일은 막을 수 없다는 사실이 명백해졌다.

 

○ 미국 특사, 김정은에게 평화협정 제의

 

서울시민들은 공황 상태에 빠진다. 인천공항을 비롯한 국제공항은 몰려 든 출국자들로 마비될 지경이다. 核민방위 훈련을 한 번도 한 적이 없는 정부는 뒤늦게 “핵폭탄이 떨어져도 살 수 있는 방법”을 홍보하지만 불안감을 증폭시킨다. 공무원들과 회사원들의 결근 사태로 국가기관과 기업의 일상 업무는 중단된다. 예금 인출 사태로 은행도 흔들린다.

 

사병 가족들이 연일 국방부와 합참 앞으로 몰려 가서 전쟁 반대 시위를 벌인다. 드디어 “이런 위기를 부른 국방장관과 합참의장을 구속 수사하라”는 주장이 심각하게 등장한다. 그럴수록 미국의 반한(反韓) 여론이 증폭된다. 

 

미국 정부는 전직 대통령을, 한국 정부 몰래 북한에 밀사로 보낸다. 김정은을 만난 밀사는 “6자 회담에 나오라. 미북(美北) 담판도 동시에 진행하자”는 미국 대통령의 메시지를 전한다. 김정은은 강하게 나온다.

 

[우리는 핵무기를 쓸 만반의 준비가 끝났습니다. 미국이 공격하면 우리도 미국 본토를 칠 수밖에 없습니다. 미국이 한국의 국방장관을 보호하기 위하여 핵전쟁을 일으키지는 않을 것이라고 믿어요.

 

미국이 우리를 겨냥한 적대(敵對) 정책을 포기하고, 한미연합사를 해체하고, 주한미군을 평화유지군으로 바꾼다고 약속하면 회담에 나가겠습니다. 이 약속은 공개하지 않아도 좋습니다. 주한미군을 평화유지군으로 바꾼다는 데는 2000년 6월 김정일-김대중 회담에서 합의가 이뤄진 바가 있습니다. 한국을 배제하고, 미국과 북한이 평화협정을 맺는 한편 두 나라가 수교합시다. 현명한 판단을 기대합니다.]      
 
대북(對北) 밀사는 워싱턴으로 돌아와 대통령에게 보고한다. 미국 국가안보위원회 긴급 회의에서 CIA 부장은 2000년 6월의 김대중-김정일 회담 자료와 2007년 10월의 노무현-김정일 회담록을 찾아내 읽어본 결과를 보고한다.

 

김정일과 김대중이 주한미군의 성격을 남북한 사이에서 중립하는 일종의 평화유지군으로 변경, 사실상 한미(韓美)동맹을 무력화(無力化)시키는 밀약(密約)을 하였고 노무현 대통령이 김정일에게 한미동맹을 약화시키기 위하여 열심히 노력하고 있다고 말한 사실이 보고된다. 대통령 등 지도부가 격분한다.

 

미국 대통령은 부통령을 특사 자격으로 한국에 보낸다. 청와대에서 한국 대통령을 만난 미국 부통령은 10쪽짜리 메모를 펴놓고는 작심한 듯 발언을 시작하였다. 상원의원 출신인 부통령은 외교관처럼 말을 둘러대지 않고 직설적으로 이야기하였다. 발언록의 요지는 이러하였다.

 

○ ‘한미동맹관계를 전면 재검토한다.’

 

[미국 정부는 작금의 사태와 관련하여 그동안의 두 나라 관계를 리뷰하고, 한국에서 일어나는 여론의 변화를 참고하면서 동맹관계를 전면적으로 재검토하기로 하였습니다. 사태가 여기까지 온 데는 미국의 책임도 있지만 근원적으론 한국 정부와 국민들의 오랜 안보무임 승차 관행이 축적된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1994년 클린턴 행정부는 북한의 핵문제를 단번에 해결하기 위하여 영변 핵시설을 폭격하는 계획을 검토하였습니다. 검토 단계에서 김영삼 대통령이 이를 반대, 성사되지 않았습니다. 그는 서울이 북한 장사정포(長射程砲)의 타격을 받게 되니 북폭(北爆) 계획을 포기하라고 우리를 압박하였습니다. 그때 북한을 때렸더라면 핵문제는 해결되었고 아마도 북한정권은 무너졌을 것입니다. 우리의 해공군력으로 북한의 핵시설을 파괴하는 데는 많아야 수십 명 정도의 희생이 있었을 것입니다. 북한의 장사정포가 서울을 포격하더라도 한 시간만 견디면 노출된 적의 포대를 전멸시킬 수 있었습니다.

 

이 기회를 놓친 것은 유감이지만 그 뒤에도 기회는 있었습니다. 9·11 사태 이후 부시 행정부가 북한을 이란, 이라크와 함께 ‘악의 축’으로 지정, 압박할 때 한국의 김대중 정부는 무엇을 했던가요? 김정일과 만나기 위하여 현대그룹을 앞세워 4억5000만 달러의 현금을 제공하였는데 우리 정보기관의 판단으론 그 돈이 핵과 미사일 개발에 들어갔다고 합니다.

 

뿐만 아니라 김대중 대통령이 김정일과 회담하면서 주한미군의 성격을 평화유지군으로 격하(格下)시켜 유명무실하게 만들기로 밀약한 사실을 우리는 알고 있었습니다. 김대중 대통령은 그러나 평양 회담의 성과를 설명하는 자리에서 ‘김정일 위원장이 주한미군의 계속 주둔을 양해하였다. 이게 가장 큰 성과이다’고 말하지 않았던가요?

 

김정일이 양해한 주한미군은 북한을 적으로 보지 않는 평화유지군이지요. 그런 군대를 왜 미국이 한국에 주둔시키나요? 이 밀약은 사실상 한미동맹 해체 음모였다고 봅니다. 각하도 대화록을 읽어보았겠지만 노무현 대통령은 2007년 김정일을 만난 자리에서 ‘우리는 국제무대에서 핵문제가 거론될 때마다 북한의 입장에 서서 미국과 싸워왔다’는 취지의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그 한 달 뒤 청와대를 예방한 로버트 게이츠 미국 국방장관에게 노무현 씨는 ‘아시아의 평화를 해치는 것은 미국과 일본이다’고 발언하였습니다. 게이츠 장관이 회고록에서 ‘그는 약간 돈 사람이다’는 평을 남길 정도였습니다.]

 

○ ‘미국은 복수할 줄 모르는 사람을 경멸한다.’

 

한국 대통령은 미국 부통령의 너무나 직설적인 표현에 놀란다. ‘미국 사람들은 화를 잘 내지 않지만 일단 화가 나면 무섭다’는 말이 생각 났다. 수십년 간 쌓아두었던 감정을 한꺼번에 쏟아내는 듯하였다. 

 

[이명박(李明博) 대통령이 등장하면서 한미 관계는 정상화되는 듯하였으나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반대하는 대규모 시위가 일어나고 정부가 굴복하는 데 놀랐습니다. 이 사태의 핵심은 건강문제가 아니라 반미(反美)선동이었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안전하게 관리되는 미국산 쇠고기를 가장 위험한 물질로 선동하는 데 가담한 한국의 언론, 정치, 그리고 속아 넘어가는 한국인의 분별력에 우리는 놀랐습니다.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포격 때 당시의 미국 정부는 사태가 악화되는 것을 막으려 했지만 내심으론 한국군이 확실한 응징으로 북한정권의 버르장머리를 고쳐주길 바랐습니다. 북한군이 연평도를 무차별 포격, 민간인까지 죽인 그날 한국군이 공군기를 출격시키고도 폭격 명령을 내리지 않은 것은 이해하기 어려웠습니다. 주한미군 측 보고에 따르면 합참에 근무하는 한국군의 한 장교가 ‘폭격을 해야 한다’는 건의를 하였다가 상관으로부터 구타를 당하였다고 하더군요. 미국은 전통적으로 복수할 줄 모르는 사람들을 경멸합니다.

 

우리는 이명박 정부의 요청으로 한미연합사 해체 시기를 연기하였습니다. 李 대통령은 실용적인 사람이라 오바마 대통령과 사이가 좋았고 일본과도 관계를 잘 유지하였습니다만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임기 말에 왜 한일(韓日) 관계를 그렇게 관리하였는가입니다. 미국과 한국, 그리고 일본이 북핵 위협에 공동 대응하는 데 꼭 필요한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 서명을 직전에 취소한 뒤에 독도를 방문하고 그 직후 천황 폄하 발언을 한 것이 일본의 우파에 의하여 역이용되어 결과적으로 아베 정권의 등장을 돕지 않았습니까? 

 

이 반일(反日)정책을 박근혜 정부가 이어받아 우리가 놀랄 정도로 친중화(親中化) 하니 한미일(韓美日) 삼각 동맹 관계가 어렵게 되었습니다. 특히 2015년 중국의 전승절(戰勝節) 행사에 박 대통령이 자유 진영 지도자로선 유일하게 참석하는 것을 보고 배신감을 느끼지 않았다면 거짓말일 것입니다. 2016년 초 북한이 네 번째 핵실험을 하면서 박근혜 정부는 친중반일 노선에서 탈피, 사드 배치를 결단하는 등 나름대로 노력하였으나 늦은 감이 있었습니다.]

 

○ ‘사드 배치 비판자가 대통령이 되는 것 보고 경악.’

 

여기까지 말한 미국 부통령은 메모를 옆에 내려놓고는 한국 대통령을 정시(正視)하면서 “각하, 하나 궁금한 것이 있습니다”라고 했다. 대통령이 “말씀해보시죠?”라고 하자 이렇게 묻는 것이었다.

 

“북한이 핵개발을 하는데 왜 한국에선 ‘우리도 핵무장을 하자’는 이야기가 나오지 않았습니까?”

 

한국 대통령은 의아한 표정을 지으면서, “미국이 반대하지 않았습니까?”라고 했다. 미국 부통령은 비아냥조의 미소를 띠면서 입을 뗐다.

 

[국가 생존이 걸린 문제를 다른 나라에 물어보고 결정할 순 없는 것 아니겠습니까? 이스라엘도 미국의 허가를 받고 핵무장을 한 것은 아니죠. 미국 지도부는 속으로는 한국 정부가 핵무장하자는 이야기를 꺼내기를 기다렸습니다. 이스라엘 인도 같은 친미(親美) 민주 국가의 핵무장은 미국의 국가이익에 반하지 않거든요. 그래서 막지 않았습니다. 일본과 한국이 핵무장 카드를 꺼내면 미국은 그것으로 중국을 압박, 북한의 핵개발을 좌절시키는 데 이용하려고 했는데 유감이었습니다.]

 

물을 한 모금 마신 부통령은 다시 서류를 들고 설명을 재개(再開)하였다. 

 

[2016년 여름 한국에서 벌어진 사드 배치 반대 운동은 한국에 대한 미국 정부의 시각에 중대한 영향을 끼쳤습니다. 사드 배치는 적의 핵미사일을 막겠다는 것이고, 더구나 동맹국인 미국이 자국(自國) 부담으로 하겠다는데 이를 막고 나서는 세력이 그토록 강하고 더구나 여당 의원까지 가세하면서 국방장관을 시위대가 감금하는 것을 지켜보면서 한국은 과연 동맹국인가, 미국이 지켜줄 가치가 있는가 라는 회의(懷疑)가 지도부에서 확산되었습니다.

 

특히 중국이 싫어하니 사드를 배치하면 안 된다는 여론이 형성되는 것을 보고는 한국이 결국은 과거의 지정학적(地政學的) 전통으로 돌아가고 말겠구나 하는 판단을 하는 이들이 늘어 갔습니다. 미국은 군사무기 배치는 비밀로 하는데 한국이 이를 공개적으로 추진하는데도 놀랐습니다.   

 

사드 배치 반대 운동은 그 뒤에도 악영향을 끼쳐 한국이 핵미사일 방어망을 조속히 완성하는 데 실패하도록 만들었습니다. 한국군은 친북, 친중 여론을 의식하여 미국의 미사일 방어망과 연결시키지 않는 독자적인 방어망을 건설하겠다고 했지만 좌파가 지배하는 국회가 예산을 거부, 잘 아시다시피 지금 한국은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에 사실상 무방비로 노출되었습니다.

 

한때 미국 정부는 한국의 보수층에서 요구하는 대로 1990년대 초에 철수해간 전술핵을 재배치하고 이를 한미연합사의 관리하에 두어 한국이 사실상 공동사용권을 갖는 방안까지 검토한 적이 있으나 2017년 대통령 선거에서 사드 배치 비판 경력을 가진 각하가 당선되는 것을 보고는 포기하였습니다.]

 

○ ‘그것이 한국의 마지막 기회였습니다.’

 

이 순간 한국 대통령이 계면쩍은 표정을 지으면서 “대통령이 된 뒤 현실을 파악하고 나름대로 동맹 강화를 위하여 많은 노력을 하였습니다”라고 말했다. 미국 부통령은 “너무 솔직하게 말씀 드린 점 용서해주십시오. 오늘은 외교적 결례를 무릅쓰고라도 진실을 이야기해야 할 때라고 생각합니다”라면서 이야기를 이어갔다. 

 

[1994년에 이어 2017년 우리는 북핵 문제를 원천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기회를 또 다시 놓쳤습니다. 돌이켜 보면 그때가 마지막 찬스였습니다. 북한이 예상 외로 장거리 미사일과 잠수함 발사 기술을 발전시키는 것을 보고 우리도 심각한 대책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때 우리 정보기관은 북한이 핵무기를 소형화하고 미사일 기술을 발전시켰지만 아직은 실전 투입이 가능한 수준은 아니라고 판단하였습니다. 예방 공격으로 핵능력을 파괴하는 데 1년 정도의 시간이 남아 있다고 본 것입니다. 그리하여 군사작전을 구상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우리 미국의 정보가 늘 완벽하지는 않습니다. 2003년 이라크 공격 때도 후세인이 핵무기를 개발하고 있다는 오판(誤判)을 한 적이 있습니다. 만약 CIA의 북핵 평가가 잘못된 것이라면, 즉 북한이 우리의 공격을 받고도 한 두 개의 핵폭탄을 보존할 수 있고 그것으로 한국을 공격할 수 있다면, 어떻게 하느냐 하는 문제가 제기되었습니다.

 

우리는 그럴 가능성을 아주 낮게 보았습니다만 문제는 핵폭탄이란 점이었습니다. 각하도 잘 아시다시피 우리는 한국과 논의를 시작하였습니다. 한미동맹이 있는 한 미국 단독의 북한 공격은 불가능합니다. 북한의 보복 공격 가능성에 노출되어 있는 서울을 두고는 미군이 아무리 압도적 전력(戰力)이 있어도 예방공격은 불가능합니다. 

 

이때 한미 양국(兩國)은 깨닫게 되었습니다. 2016년 사드 반대 사태로 한국이 핵미사일 방어망을 완비하지 못한 것이 이럴 때 우리의 손발을 묶는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만약 사드를 비롯하여 PAC-3, SM-3 등 다층적 방어망을 건설하고 이를 미국의 MD(미사일 방어망)와 연결시켜 두었더라면 설사 북한이 얻어맞은 뒤 남은 핵폭탄으로 보복을 가해와도 대응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한국의 방어망이 허술한 상태에서도 과연 북한에 군사적 조치를 취해야 하는가로 두 나라 지도부가 고민한 사실은 각하가 잘 아시는 바입니다. 각하가 예방 공격에 가장 적극적이셨지만 이 계획이 한국 언론에 유출되는 바람에 모든 게 수포로 돌아갔습니다. 반전(反戰)시위가 일어나고 북한이 핵공격을 하겠다고 협박하는 가운데 한국 국회가 압도적 찬성으로 군사 조치 반대 결의안을 통과시키니 미국도 군사적 해결방안을 포기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각하, 그게 마지막 기회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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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바다호수

    몇해전 돌아가신 아버님이 순간 순간 말씀하시던 것이 기억이 나는데

    그중 한 말씀이

    나는 비서가 없어서 …이모양으로… 살고 있다 하시던 말씀이 생각이 나는 군요.

    자신이 등용을 한사람은 끝까지 믿어야 하는 것인데

    군과 신이 좌 사 하면서 그것을

    서로가 믿는 다는 것이 상당히 어려운 것이지요.

    한 국가의 가정살림을 이끌어 간다는 것이 어려운것 같은데

    어려운것이 아님을 요새 느낌니다.

    한나라 국가의 인구 중 1%가 그 나라의 살림을 도 맡아 하더 군요.

    미국이 아무리 강해도 1%의 엘리트 들이 전세계를 주므르고 있으니…

    대한 민국도 1%의 고급 두뇌들이 지혜를 짰으면 좋겟습니다.

    리플작성 2017-07-06 08:50:37

    • 바다호수

      오늘 우체국을 통해서 장모님 외출 신발을 한국으로 보내는데… 그 서명 란에
      어느 국가로 보내는 것이냐? 라는 것을 안내원이 다시 물어 보는데… 코레아 라고 하니
      안내 원이 알았다고 말하니

      집사람왈: 거기 남한과 북한이 있으니 기입 잘해야 해요. 북한으로 싸인 하면 안돼요.
      다른 안내원: 옆으로 퍼진 사람 말이예요?
      집사람: 아뇨…. 그 퍼진사람 말고….

      리플작성 2017-07-06 09:02:17

  2. 감찰관

    정세현이 설레발 치고 나오는 거 보면 이미 이야기 다 되있는 갑더라..

    리플작성 2017-07-06 10:23:09

  3. 격변

    이명박이나 문재인이나 대북 군사 대응을 기대할 위인은 아니라고 봅니다.
    사드 배치를 국제 정치의 협상 카드 정도로 보는 대통령이 국가 안보나 나아가서는 한반도 통일을 주도할 지혜와 판단력을 가졌다고 볼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중국에 사드 보복을 해제해달라고 애걸할 필요도 없습니다. 어차피 북핵은 미국의 주도권을 인정해야 하는 것이 현실이고 우리는 그 카드를 이용하여 중국과 북한을 압박하는 것이 현실적입니다.
    미국의 군사력 동원에 남한 정부가 오히려 앞장서 방해나 하는 것으로 보이는 한 중국이나 북한은 우리를 졸로 볼 것은 자명한 것입니다.
    이제 대북 정책의 근본적 방향을 바꿔 봅시다. 우리는 더 이상 미국의 북폭 시도를 반대만 하기 어렵게 되었다는 것을 중국이나 북한에 알리고 시급히 사드 배치에 나섭니다.
    북한 체제가 붕괴되어 수백만의 난민이 발생하더라도 우리는 북진하기 보다 강력한 휴전선 폐쇄를 선택합니다. 그렇다면 대부분의 난민은 중국으로 쏟아져 들어갈 것입니다. 우리는 아무 보상이나 대책을 내놓을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 코가 석자라고 공표할 뿐입니다.
    북한은 내부 주민들간에 아비규환의 혼란을 피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는 북한의 혹시나 있을 수 잇는 반격에 대해 철저히 원점 격파하는 공격만 합니다. 남한내 국민의 피해도 감수할 수 밖에 없다고 국민들에게 경고합니다. 사즉생의 결단만 한다면 중국도 북한도 우리를 만만하게 보지 못합니다. 사드는 협상 카드가 아니라 우리로서는 미국의 군사적 옵션 자체가 카드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문재인 정부가 사드로 미국의 군사적 옵션에 재갈을 물리므로서 대북, 대중 카드가 무력해진 것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리플작성 2017-07-06 10:44:50

    • 감찰관

      문달이 끌어내리고 격변님을 대통령으로 !

      리플작성 2017-07-06 10:52:28

    • 呵呵

      참으로 가소롭소이다^^

      보고싶은 것만 본다는 극우답게 고작 퍼 온게 극우
      그것도 태극기 부대 선동이나 해대는
      그리하여 4분의 열사르 만들어 낸 분 글을 퍼오다니요.

      하긴 눈 높이가 그러하니 그런 것만 보이는 거겠지요.
      나도 가금 조갑제 닷컴을 보긴 하는데, 말그대로 쒸래기.
      단 옳은 두 가지.
      지만원 주장대로 광주 사태때 북한군 연루는 사기라는 것.
      북한은 김일성부터 핵에 매달렸다는 거.

      달래강님.
      진심인데 댁의 소설이 조옹 거보다 훨~~~ 낳아요(칭찬 첨해 보네 ㅎ)

      리플작성 2017-07-06 10:53:54

    • 문씨의 마지막 선택의 시간이 다가오는 것 같습니다.
      등떠밀려 하기 보다는, 먼저 공격적으로 해야 합니다.맨날 대화 부터하자고 징징거려봐야.
      돼지의 몸값만 올려주는 꼴이니. 먼저 선언식으로 제안을 해야합니다.

      ‘평양에 다국적군을 주둔시켜 안보를 보장하고 동시에 핵 폐기를 진행하라. 같이 북한 경제를 중흥시키는 위원회를 만들고. 남북 철도 연결과 함께 경제개발 5개년계획을 착수 한다.
      이 제안을 모월 모일까지 받아 들이지 않는다면, 최후의 수단을 진행한다’

      ps~ 최후의 수단은 이 제안을 거부하는 순간 발표한다.

      리플작성 2017-07-06 04:58:37

  4. 한마디

    정부가 일자리 늘리는 것을 최고의 정책으로 추진한다고 해놓고,
    탈원전을 내세운 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나 ?
    당장 5만명의 일자리가 위험해졌다고 뉴스에 나온다.

    앞으로 핵연구자, 원전관련 기자재 공급업자, 건설업체 직원들은 어떻게 되나 ?
    탈원전이 활실해지면 원전에 종사하는 유능한 인력들이 도미노처럼 빠져나갈 것이다.
    정부가 앞길을 틀어막아버린 산업에 누가 일하려 하겠는가 ?
    곧바로 국내 원전관련 기술 발전은 올 스톱 될 것이다. 20여개 있는 국내원전이나 제대로 관리하고 운영할 인력이 계속 남아있을지 의문이다. 원전이 사양산업이 되어 최고의 인력들이 빠져나가면, 이로 인해 남아있는 원전에서 사고가 나지 않을지 도리어 걱정이 된다. 망해가는 산업에 누가 그렇게 많은 신경을 쏟겠는가 ?

    원전관련 산업이 잘 되어 핵공학 분야에 우수한 인재가 증가하면 핵융합산업 발전에도 당연히 유리해진다. 핵분열을 이용하는 원전은 지금 잘나가는 산업이고, 핵융합은 미래에 잘나갈 핵공학이므로 우수인재들이 몰리고 산업이 발전할 것이다, 그런데 탈원전을 하고 원전을 봉쇄하면 당연히 원전관련 인재들이 딴 길을 찾고 미래의 중요산업인 핵융합산업에 까지 영향을 줄 것이다.
    핵융합 산업은 현재 국제적으로 우리가 1~2위를 차지할 정도로 앞서나가고 있다.

    우리나라는 유일하게 안전과 효율성이 대폭 향상된 3세대 원전 건설을 성공한 나라이다.
    지구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서도 우리나라 원전사업은 지속 해나가야 한다.
    우리나라가 원전에서 빠지면 앞으로 러시아, 중국이 원전 시장을 장악하게 되는데,
    러시아, 중국이 이 지구에 안전하게 원전을 지을 것으로 보는가 ?

    오죽하면, 미국의 청정에너지 연구단체 대표인 마이클 쉘렌버거 교수 등 27명이 7.5일 문통에게 한국의 탈원전 정책을 재고해달라는 서한까지 보냈겠는가 ?
    마이클 쉘렌버거 대표는 타임지가 환경의 영웅으로 선정한 사람이고, 이 서한에 서명한 리처드 로즈라는 사람은 풀리처 수상 경력이 있는 사람이다. 이런 유명한 환경 옹호론자들이 왜 한국의 탈원전을 재고해달라고 하겠는가 ?
    이들의 서한에 따르면 한국의 원전 건설 운영은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고 한국이 원전에서 철수하면 인류를 가난과 기후위기에서 구할 에너지 공급자를 잃게 된다고 하였다.

    3세대 원전은 과거보다 안전성이 10배 이상 증가한 것으로 알고 있고, 지금 전세계 원전관련 연구자들은 방사성 폐기물을 수십년만 보관하면 되는 기술도 개발하고 있다 앞으로 계속 원전의 안전성이 더 제고되고 방사성 폐기 기술도 훨씬 높아질 것이다. 위기가 있으면 항상 도전이 따라 붙어 대응력을 높여 온게 인류의 역사다.

    일자리를 늘리자고 하면서, 이제 우리가 세계 최고 경쟁력을 얻은 원전산업을, 미국의 뮤명 환경단체마저도 반대하고 있는데 폐기하여야 하단 말인가 ?

    정부가 일자리를 늘리겠다고 하는 것은 도대체 무슨 말인가 ?
    세상이 알아서 일자리를 우리에게 나누어 준단 말인가 ?
    국민세금으로 일자리 그냥 늘리는 것이 중요하고,
    이런 세계 최고의 산업을 육성하여 최고의 일자리를 만드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는 말인가 ?

    리플작성 2017-07-06 12:19:39

    • 감찰관

      논리가 중요한게 아니라 사상이 중요하답니다…

      김대중 노무현 문달이 세놈은 대한민국을 거지 만들고 통일의 기회를 날려버린 빙딱으로 역사에 기록됩니다.

      리플작성 2017-07-06 01:00:36

    • 격변

      안보도 경제도 모순된 이념의 열쇠로는 결코 열리지 않는다는 것을 우리 국민이 깨달을 때 쯤에는 이미 엎지러진 물이겠지요. 후회해도 늦는데 틀린 답을 복기해도 여전히 틀리는 학생이 좋은 학교에 합격할리가 없습니다. 반드시 그 댓가를 치뤄야 하는 것이 정의라 할 것입니다.

      리플작성 2017-07-06 01:28:29

  5. 지나가다가

    얼마전 김종대 의원이 방송에 나와서 왈, 북한은 핵을 절대로 못 쓴다, 만약 핵을 쓰면 그로 인해 다른 나라의 응징을 받아 망한게 된다, 그러므로 핵을 못쓴다는 라고 하였다.
    참으로 어리석은 말이다.
    북한이 남한에 핵을 쏘았다고 가정하자. 그다음 북한은 남한의 항복을 요구할 것이다. 항복하지 않으면 몇발 더 쏘겠다라고 하면서.
    우리 국군이 대응으로 탄도탄이나, 순항미사일 등을 북에 쏜다고 하는 것은 그냥 코미디이다. 핵에 대하여 재래식 무기 반격은 권총들고 MLRS와 싸우는 격이다. 일본제국이 미국에게 성능도 좋지 않았던 핵 2방에 항복하였던 사실을 꼭 명심하자.

    만약 미국이 개입하려고 하면 미국에 ICBM을 날리겠다고 협박하거나 남한에 핵을 더 쏘겠다고 협박할 것이다. 그러면 미국도 방법이 없다. 자국으로 핵을 날리겠다는데, 남의 나라 한국을 왜 도우려고 하겠는가 ?

    김정은이 핵을 수십발 또는 수백발 보유하게 되고. 이판사판으로 나올 경우,
    이를 제지할 국가, 제지할 방법이 전혀 없다는 것이 참으로 슬픈 일이다.
    참으로 위험한 시대로 우리는 진입하였다.

    제발 김정은이 정상적인 사고와 정상적인 행동을 하기를 빌 뿐이다.

    리플작성 2017-07-06 12:43:54

  6. Aldo

    현재 우리의 안보 상황을 보여주는 글입니다.

    우리 안보의 가장 큰 문제는 김정은이나 핵 보다도 국민들, 특히 지도층의 안보불감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지금이라도 정신을 차리면 남한의 역량으로 김정은의 핵무장이나 적화야욕을 얼마든지 물리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 정권을 잡은 좌파가 이런 글을 읽고 정신을 차릴까요?

    그들은 북한군이 내려와서 자기들을 일렬로 세워서 나무에 묶어놓고 총을 겨누는 그 순간이 올 때까지 백일몽에서 헤어나지 못할 것입니다.

    어쨋거나 대한민국 지도층이 백일몽을 꾸며 안일한 생각에 빠져서 헤메고 있는 동안 김정은이 남한 정계 관계 언론계 그리고 군대 안에 심어놓은 조직은 대한민국을 통째로 잡아먹기 위해 물밑에서 아주 활발하게 움직이는 것이 현재 진행되는 상황입니다.

    한국인들은 어쩌다 운이 좋아서 이승만과 박정희를 만나서 좋은 시절 살았습니다만 한반도 역사에서 예외적으로 잠시 찾아온 좋은 시절은 여기까지인 것 같습니다.

    리플작성 2017-07-06 01:11:46

    • 격변

      저도 같은 비감한 심정입니다만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은 있다고 했으니 천운이 따르기만 바라고 있습니다. 악은 잠시 기세를 부리지만 결국 종말은 오게 마련이고 미명이 가장 어둡지만 새벽은 오게 된다는 자연이치를 믿어 봅니다. 인류 역사가 잠시 반동은 있어도 오랜 퇴행은 없다는 것이 진리일 것입니다.

      리플작성 2017-07-06 01:21:24

  7. 아이디(필수)

    미국 러시아도 대화와 협상 문대통령도 대화에 방점을 두고 있는거 같습니다.
    그러나 미국은 북한이 핵폐기 하지않는 이상 대화는 하지 않을것이다라고 천명 한 상태입니다.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지는 알수 없으나 ..우리에겐 빠른 판단과 행동이 중요한 시점입니다.
    핵을 인정하고 대화와 협상으로 가느냐? 아니면 응징하느냐? 지도자라면 빠른 판단과 행동이 절실히 요구되는 시점입니다.
    문대통령의 대북정책이 바뀌지않는 이상 응징은 하지 않을듯 합니다. 그러나 미 트럼프 행정부는 ? 가만히 당하지는 않겠죠.. 따라서 한미간 의견차이로 인한 한미공조는 문 대통령의 의지와 행동에 달려있습니다. 앞으로 3~6개월이 우리에겐 매우 중요한 날이 될듯합니다.

    리플작성 2017-07-06 01:57:52

    • 아이디(필수)

      미국 러시아가 아니라 …중국 러시아로 오타 수정합니다

      리플작성 2017-07-06 01:58:38

  8. 이 방에서 한 때 김가가 핵을 쏘면 본인이 확실하게 죽으므로 지구상 가장 부자인 김가는 핵을 쏘지 못할 것이라는 희망에 근거한 어이없는 주장을 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과연 그럴까요? 북핵이 한 두개도 아니고 수 십개가 있는데도 우리가 보복할 수 있을까요?

    그 순진한 생각에 찬물을 끼얹는 시나리오가 본문입니다. 본문!

    어디 본문의 예상에 대해 논리적인 반박들 해 보세요. 논리적인 반박을!

    리플작성 2017-07-06 03:10:37

    • 오성

      통일되면 북핵도 ‘우리’ 것이 된다고 우기는 자들에게서
      무슨 논리적 반박을 기대하실 수 있겠습니까?

      이런 좌파들은 북핵이 제거되지 않은 상태에서
      실현 가능한 통일이 김가왕조 주도의 적화통일 임을
      이해하지 못할 것입니다.

      리플작성 2017-07-06 04:19:18

    • 북한은 핵무기 이외에는 남한과 전력상 상대가 되지 않습니다. (생화학무기 제외) 그리고 핵무기를 사용하는 순간 한반도는 전쟁에 돌입합니다. 전쟁에 돌입한다면 북한은 한국을 이기지 못합니다. 김정은의 협박이 날로 거세짐에도 불구하고 남한사회가 매우 안정적인 상태를 유지하는 이유는 정은이가 죽음을 불사하고 전쟁을 일으킬만한 바보는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런 추론을 하는 것을 어이가 없다고 판단하는 것은 오바스런 생각입니다.

      다만, 사람은 항상 합리적 판단을 하지 않는다는 점, 특히 북한과 같은 일인 독재체제의 독재자가 약간 싸이코기질이 있다는 점 등을 감안할 때 핵 안쏜다고 손 놓고 있어서는 절대 안될 일이지요. 핵은 쏘든 쏘지 않든 그것을 보유한 것만으로도 엄청한 협상력을 갖추게 되는 겁니다. 김정은이 입장에서 다 죽어가는 나라를 지키는 유일무이한 방법이 핵입니다.

      리플작성 2017-07-08 01:32:58

  9. 으라차차

    김정은 따위가 백령도를 넘겨라, 손해배상해라, 누굴처벌해라,, 등의 개소리를 하는데 반미데모가 거릴 뒤덮고…. 갤럽조사가 70%가 넘고…. 참 망상도 여러가지여.탄핵반대 세력을 제외하고,모두 김정은 추종자로 보고싶은 망상아닌가? 다수의 국민을 적으로 돌리며 맛가는 것도 잠깐이구만. 최순실 태블릿피시가 조작된걸 믿지않으면 김정은을 환영하는 세력으로 느끼는 피해망상증세가 아닌가? 시간이 아까워 ㅣ읽다말았다.금방 타이핑을 이상하게 쳤지만 고치고싶지도 않다.이런 망상적인 글에 정성을 다해 비판하고 싶지도않다.

    리플작성 2017-07-06 05:09:56

    • 으라차차

      기레기들…..

      리플작성 2017-07-06 05:11:29

    • 동의합니다. 남한이 만약 북한 폭격의 실제적 위험에 노출되었을 때 국민들이 저런 행태를 보인다면 그건 나라가 아니지요. 대한민국이 그정도로 부실한 나라는 결코 아니라고 믿습니다.

      다만, 저런 조갑제의 가상 시나리오는 사실여부와 무관하게 우리의 현재모습을 진단해 보고 성찰하게 하는 좋은 글이라고 생각합니다.

      리플작성 2017-07-08 01:35:05

  10. LA에 핵을 얻을맞을까봐 서울을 포기하는건 아닐겁니다. 현 상황에서 북한이 핵위협를 가한다면 미국은 가차없는 응징모드로 갑니다. 이건 한국을 보호하려는 의도가 아니라 미국의 국익상 그렇게 할 수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미국이 핵우산을 접을 경우는 본문과 비슷한 대화 혹은 메시지를 주면서 주한미군철수를 단행할 때 입니다. 동맹관계가 굳건하다면 핵우산이 유효하겠지만 지금처럼 떠밀려 나간다면 뒤도 돌아볼 필요가 없겠죠. 그러면서 한국의 핵무장은 필사적으로 막을 겁니다.

    리플작성 2017-07-06 07:01:33

    • 북한이 가장 바라는 시나리오가 미국이 본토 공격 리스크를 없애기 위해 북한과 협상을 하는 겁니다. 위험한 어린애의 불장난이지만, 그게 바보같은 독재국가의 한계인걸 어떻게 하겠습니까? 다행히 트럼프는 오바마와는 달리 모호하지 않군요. 좀 더 명확하고 실용적인 트럼프가 중국을 정조준하고 있습니다.

      미국정부가 정말 중국기업에게 세컨더리 보이콧을 시행하는지의 여부가 북한의 운명을 가늠할 가장 중요한 지표가 될 것입니다.

      리플작성 2017-07-08 01:38:33

  11. 필수

    지금껏 크고 작은 북한의 도발로 인한 많은 사람들의 희생에도 불구하고 땜질식 처방으로 대응한점은 크나큰 희생으로 우리에게 되돌아 왔습니다. 가족,친구들,이웃들이 희생되었고 또다시 이런 희생은 되풀이 될것입니다.
    북한의 도발과 협박은 현재진행중이며 대화에 목메이다보면 현재, 미래에 더 많은 희생을 감수해야 하며 도발을 근원적으로 절대로 막을수 없습니다.
    북한의 도발로 또다시 수많은 희생자가 나야 정신 차리고 응징할겁니까?
    지금 이시간에도 북한은 우리를 겨냥한 핵미사일이 수십개 있으며 시간이 가면 갈수록 그 수는 엄청나게 늘어납니다.
    고모부도 잔인하게 처형하는 말그대로 독재중에 최악의 독재자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사람목숨을 파리목숨인냥 공개처형하는 적이 과연 대화로 설득 가능하고 협상해서 우리와 평화를 유지하면서 같이 살수있습니까? 문정부에게 묻지 않을수 없습니다.

    리플작성 2017-07-06 07:11:40

    • 필수

      북한 3돼지와 수뇌부는 말그대로 살인마들 입니다.

      리플작성 2017-07-06 07:20:15

  12. 미래의 정책을 결정하기 위해 현상을 분석할 때 흔히 시나리오 기법을 많이 씁니다. 조갑제씨가 만든 시나리오는 아마 최악의 경우를 상정한 것(worst case)이겠지요. 어쨌든 상당히 의미도 있고 재미도 있는 분석입니다

    그런데 만약 미군이 철수를 하는 상황까지 간다면 가장 먼저 타격을 받을 세력은 친북좌파정권입니다. 제가 이전에도 여러번 주장했지만, 문재인이가 미국에 가서 나는 사드를 반대한 적이 없다 절대 반대 안 한다. 도대체 누가 그런 소리를 한 것인가 라면서 나는 똥을 싼 적이 없다고 주인에게 항변하는 똥 싼 똥개의 행태를 띌 것이라고 예측한바 있습니다. 그리고 문재인은 미국에 가서 거짓말하는 똥개의 추태를 보여서 겨우 미국정계의 분노를 잠재우는데는 성공하였으나, 반면에 미국정계로부터 신뢰와 존경을 잃게 되었던 겁니다.

    문재인은 누구보다 잘압니다. 미국이 등을 돌리면 자신이 먼저 죽는다(즉 쫓겨난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그리고 한국민들이 비록 최근 많이 우왕좌왕하고 있지만, 북한 김정은이 실제로 핵전쟁을 선언하는 순간 한줌도 안 되는 쓰레기 종북좌파들은 지하로 숨어들고 모든 국민들이 들고 일어날 것임을 저는 확신합니다.

    국가가 위기에 빠지게 되면 어설픈 평화주의를 주장하는 유약한 친북좌파 대통령이 먼저 죽게 됩니다. 비서질 오래해서 눈치가 9단인 문재인이 그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조갑제씨 걱정대로 개판이 되지는 않겠지만, 이 나라는 정말 피곤해지는 겁니다.

    리플작성 2017-07-08 01:47:37

  13. 呵呵

    그 기사보고 울컥했습니다. 사찰관님 ^^

    리플작성 2017-07-06 11:01:16

  14. 울컥이나 야마가 돌지 않으면 인간이 아니제.

    리플작성 2017-07-06 11:18:16

  15. 논리적 반박을 할려고 해도 너가 중국을 시다바리로 여기는데 무슨 밥박을 하냐?에휴 개새끼.중국이 북한을 위해서 희생하라고 하면 넵 기꺼이 죽어드리겠습니다라고 하냐? 에휴 탈북자 새끼가.

    리플작성 2017-07-06 11:21:56

  16. 呵呵

    감찰관님 수준이야 만 천하가 다 아니 퍼 온 글 역시 안 봐도 비됴^^
    개인 블로그 글을 신뢰하는 거 보다
    정부가 쩐을 들여 만든 이런 사이트도 일별 하심이^^

    http://timf.org/memorial/memorial0104.do

    리플작성 2017-07-06 11:32:21

  17. 呵呵

    이 방 10인의 천물들 수괴 달래강님과
    10인 중 한 명이자 영원한 푸들로 충성 맹세를 한 감찰관님.

    밥이나 묵으며 댓글을 다시는 게 어떠실지.
    밥도 필요읍따!
    내게는 오직 종북! 종북 몰이가 운명이다!
    이런 생각이 들 정도로 수괴와 푸들이 화석문답을 주고 받았네요 ^^

    나는 밥묵고 왔으니 손가락 힘이 넘칠 것이니
    활기차게 시작해 봅시다^^

    아참, 오길남 물으셨죠?

    ‘연합뉴스. 오 박사는 당시 “음악가 윤이상씨가 월북을 권유하고, 탈출 이후에도 돌아오라며 협박했다”고 진술해 윤이상씨 유족 측과 진실 공방을 벌이기도 했다.

    이에 대해 오 박사는 “시간이 너무 오래 지나 뭐라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며 “윤 선생님은 당시 세계적으로 명망 있는 분이었고, 그 명망이 나의 허황한 믿음을 더 굳게 만든 것 같다”며 자세한 설명은 하지 않았다.’

    다툼의 여지가 있어 보이는뎁쇼? ㅎ

    리플작성 2017-07-06 12:58:05

  18. 呵呵

    천하의 천물 감찰관님 덕에 윤이상 기념관을 둘러 보았네요.
    정확한 연보와 생애를 알았습니다

    생각보다 훌륭한 분이었다는 깨달음.

    새삼 윤이상을 일깨워준 감찰관님 감사합니다. ㅎ (이거 오늘 칭찬이 많네요^^)

    그리고 나는 한국말 놔두고 일본말 하는 인간을 보면 정말 야마돕니다^^

    리플작성 2017-07-06 11:37:50

  19. 도망자 까까/ 김대중, 노무현 등에 대해 본문에서 거론된 “과거”는 모두 “사실(fact)”에 근거한 얘기거든?

    저거 읽고 울컥하지 않거나 야마가 돌지 않으면 인간이 아니겠쥐?
    (이거 질문 아니니 대답 안해도 되지만 저 아래 감찰관님 질문에는 대답해야지? 토끼지나 말고.)

    리플작성 2017-07-06 12:22:36

  20. 감찰관

    정부가 할 일도 없다..

    리플작성 2017-07-06 11:45:20

  21. 감찰관

    말 슬쩍 돌리지 말고 오길남 박사 가족에게 지은 죄는 어쩔건데?

    리플작성 2017-07-06 11:46:15

  22. 呵呵

    와우~~ 통영음악재단은 정말 세계에 자랑해도 될 규모군요.
    한적한 어촌도시 통영을 세계적인 음악도시로 만들 바탕으로서의 윤이상.

    이런 존경스러운 선각자를
    재 발견하게 끔 동기부여해 준 감찰관님에게 다시 감사^^

    리플작성 2017-07-06 11:48:45

  23. 까까/ 도망가지 말고 내가 멋진 대답을 알려줄께.

    [난 결과를 즐길 뿐입니다. 내게는 과정이야 어떻든, 와인 음미 그 자체, 오페라 감상 그 자체, 윤이상 감상 그 자체가 중요한 겁니다.]

    리플작성 2017-07-06 12:25:49

  24. 감찰관

    아니 평화사랑하시는 분들 다 어디 갔능교?

    리플작성 2017-07-06 12:57:51

  25. 감찰관

    말 돌리지 말고 오길남씨 가족 어째야 하냐고? 윤이상이가 무덤에서 나와서 사과라도 해야 하는 거 아냐? 왜 자꾸 말 돌리냐?

    리플작성 2017-07-06 01:02:30

  26. 呵呵

    푸들도 개라고 물고 늘어지는 제조는 있네요.
    감찰관님, 옛 다! 뼈다귀.
    그런데 찾아보니 더 나쁜 건 감찰관이네요.
    사실인양 인용한 하여 믿을 건 오길남씨 주장 하나.
    다툼의 여지가 있다고 했지요?

    이 뼈다귀는 사실관계라 좀 질기고 기니 잘 씹으시기를.

    …………………………….

    ‘통영의 딸’로 유명한 신숙자 씨의 남편인 오길남 씨가 자신의 월북에 ‘윤이상 관련설’을 주장하는 데 대해 고 윤이상 작곡가는 친필 편지를 통해 이를 부인했다.

    가 전문을 입수한 고 윤이상 씨의 자필편지 사본은 총 4쪽 분량으로 제공자에 따르면 1992년 5월 작성됐으며, 오길남 씨 주장에 대한 반박이 주된 내용이다.

    고 윤이상 씨는 ‘오길남 사건과 나’라는 제목의 자신의 편지에서 “1977년 봄에 바드고테스베르그에서 한민련 국제회의 때 나는 처음으로 오길남이란 인물을 먼 발체서 보았다”며 “그 뒤 그의 이름은 들은 바 있어도 가까이 만난 일은 없었다”고 적었다.

    그리고 1986년 11월 오길남 씨가 탈북했다는 연락을 했으며, 그때 윤이상 씨는 오 씨가 월북한 사실도, 뒤이어 탈북한 내용도 알지 못했다고 했다.

    오길남 씨는 자신의 책 ‘잃어버린 딸들, 오! 혜원 규원’에서 1985년 독일 브레멘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한 뒤, 윤이상 씨로부터 학위취득 축하와 함께 북한으로 가 지식을 활용해달라는 내용의 월북 권유 편지를 받았다고 주장했다.

    1986년 탈북 이후에도 윤이상 씨로 부터 재입북을 강요받았다면서 자신의 월북에 윤이상 씨가 관련되어있다고 강조했다.

    ▲ 고 윤이상 씨는 1992년 5월 ‘오길남 사건과 나’라는 제목의 반박 편지를 작성, 오길남 씨와 가까이 만난 일이 없었음을 주장했다. [사진-통일뉴스]

    그러나 윤이상 씨는 오히려 오길남 씨가 탈북 뒤, 자신을 만나 평양에 있는 가족들(부인 신숙자, 딸 오혜원, 규원) 구출에 협조해달라고 했다고 한다.

    윤이상 씨는 편지에 따르면 1986년 11월 저녁 전화에서 오길남 씨가 “선생님, 저를 도와주십시오. 저 가족을 도와주십시오”라며 “저는 그곳에서 살 수가 없어서 사람들을 속이고 우선, 저 혼자 도망해 왔습니다”라며 가족 구명을 요구했다.

    이에 윤이상 씨는 “그 후에 내가 이북에 영향력이 있다고 생각해서 였던지, 나를 교포 중 원로의 한사람으로 믿어서였던지, 여러 사람으로부터 전화가 수없이 걸려왔으며 그 가족의 구출을 역설하였다”고 했다.

    그러면서 “나는 나의 아내와 같이 그의 가족구출에 노력하기를 시작하였다”면서 당시 동베를린 주재 북한대사관 연락관을 찾아 오길남 씨 가족의 서독귀환 가능성을 타진했다.

    그러나 윤이상 씨는 해당 연락관과 만난 1개월 뒤 “본국의 태도는 가능성이 없다. 오길남이 조국의 체면을 매우 손상시켰다”는 답변을 들었다.

    오길남 씨의 가족 귀환을 위해 북측과 접촉한 윤이상 씨는 ‘윤이상 음악회’ 참석차 독일 하노버를 방문, 여기서 오길남 씨를 처음 만났다.

    윤이상 씨는 “나는 하노바에서 나의 음악회가 있을 때 그 곳에 살고 있는 오길남을 나의 호텔로 불렀다. 이때가 생전처음으로 나와 오길남의 단독 대면이었다”고 적었다.

    오길남은 이와 관련 자신의 책에서 하노버 대학에서 열린 연주회에 초청을 받아 12마르크를 주고 입장했다며 이 돈은 일주일간 먹고 쓸 수 있는 돈이라면서 윤이상 씨를 폄훼했다. 또한 윤이상 씨와 만나 가족 구출관련 내용을 듣고자 했으나 1987년 10월에 썼다는 부인 신숙자씨의 편지를 받았다고 했다.

    그러나 윤이상 씨의 편지에는 오길남 씨에게 부인의 편지를 건넸다는 부분은 없다. 오히려 “그의 처지에 동정하고 그를 위로하고 그 동안의 나의 이북과의 교섭경과를 설명하고 나의 호주머니에서 그에게 생활비를 보조로써 돈도 주었다”고 적혀있다.

    ▲ 윤이상 씨는 편지에서 오길남 씨 가족 구명을 위해 노력했음을 밝혔다. 그러나 당시 북한 당국에서는 오길남 씨의 가족이 돌아갈 수 없는 이유 언급, 성사될 수 없었다.
    [사진-통일뉴스]

    윤이상 씨가 오길남 씨에게 가족들의 편지를 건넨 것은 1991년 1월 중순이다. 1990년 10월 당시 고령의 나이였던 윤이상 씨는 ‘민족통일음악제’ 참석자 평양을 방문, 오길남 씨 가족의 편지를 받았으며 이후 1991년 1월 오길남 씨에게 전했다.

    평양 방문 시기와 편지를 건넨 시기가 차이가 나는 이유는 윤이상 씨의 건강문제가 원인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당시 74세였던 윤이상 씨는 건강상 문제로 음악회 참가차 방문한 평양에서 한동안 머물러야 했다.

    윤이상 씨는 “그때 나는 병으로 24시간 의사와 간호원의 호위아래 산소호흡기를 끼고 하루 세 차례 링겔주사를 맞으면서도 잠간잠간 행사에 나타나곤 했다”며 “이런 정신없는 사이에도 오길남의 가족의 면담을 요청하였으나 허사였다. 부득이 사진, 카세트 녹음을 간신히 구하여 가지고 왔다. 나의 백림(베를린) 돌아온 날자는 병 때문에 비행여행이 허락되지 않아 퍽 늘어졌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1991년 독일로 돌아온 윤이상 씨는 오길남 씨를 만나 편지와 녹음 테이프를 건넸다. 오길남 씨도 책에서 1991년 1월 21일 편지와 녹음 테이프를 받았다고 증언했다.

    그러나 편지를 받은 당시 오길남 씨는 가족의 편지와 목소리가 담긴 테이프에도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윤이상 씨는 “퍽 명쾌한 태도로 우리집에 들어온 그에게, 그에 주는 선물을 받은 그는 녹음기에서 흘러나오는 아내의 간절하고 확실한 소리, 두 딸 아이의 애절한 목소리를 듣고도 태연하였다”고 당시를 묘사했다.

    그리고 “옆에서 눈물을 흘리는 나의 아내의 태도에도 감각이 없었다. 그리고 가족사진을 보고 “왜 아이들이 못났는가”하면서 히히적 그렸다”며 “횡설수설하면서 가족에 대한 애절한 감정을 표시하지 않았다. 나는 그가 그 자리에서 통곡할 줄 알았다”고 적었다.

    그러면서 오길남 씨가 “이제 가족 찾는 것을 단념하였다”고 말했으며 이에 윤이상 씨는 호통을 치고 내쫓아, 당시 만남이 오길남 씨와의 마지막이었음을 명시했다.

    오길남 씨도 자신의 책에서 당시 상황을 그렸다.

    그의 책에 따르면 오길남 씨는 사진을 보자 “참 못생겼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윤이상 씨가 밝힌 ‘가족 찾는 것을 단념하겠다’는 발언은 나오지 않았다. 그리고 윤이상 씨가 “당신은 도와줄 만한 가치가 없소. 당신에게 실망했소. 나가시오”라는 말을 했다는 부분은 나왔다. 그러나 이 또한 윤이상 씨의 편지내용과 달리 이 자리에서 재입북을 권유받았다고 주장했다.

    윤이상 씨는 편지 말미에 “이상의 글은 나의 속임없는 진실의 전부이며, 남한 정보기관이 나에게 책임을 돌린 사항들, 즉, 1. 오가 이북갈 것을 적극 권했다. 2. 오가 이북을 탈출한 뒤 다시 돌아갈 것을 강요했다. 3. 오는 미국의 고정간첩이며 경거망동하면 가족을 몰살시키겠다고 하였다. 따위는 전적으로 정치조작”이라고 주장했다.

    또한 “나는 분단된 민족의 비극으로 인하여 한국으로부터 나 자신이 모략과 악랄한 선전에 시달려 오고 있는 사람이기에 내 능력이 다하는데까지 부당하게 곤경에 빠져있는 사람을 많이 도아왔다”며 “앞으로도 나는 정의를 위하여, 민족의 장래를 위하여, 내 힘이 필요할 때에는 힘을 아끼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 윤이상 씨는 편지 말미에 “전적으로 정치조작이며 이 이면에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엄청난 모략이 숨어있는 것이 짐작된다”고 언급했다. [사진-통일뉴스]

    윤이상 씨의 편지 내용에 비춰 오길남 씨의 주장은 앞뒤가 맞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오길남 씨는 1992년 5월 입국과 함께 거듭 자신의 월북에 ‘윤이상 관련설’을 유포하고 있다. 그러나 윤이상 씨는 오길남 씨를 알지 못하는 사이였으며 오히려 오길남 씨가 먼저 윤이상 씨를 접촉했던 것으로 윤이상 씨는 밝혔다.

    오길남 씨의 주장이 유포되는 가운데 국제윤이상협회(사무총장 발터 볼프강 슈파러)는 베를린 한인회 앞으로 서한을 보내 “비방을 직접 계속 퍼뜨리거나 예의 허위사실 유포를 용인한다면 이 모욕에 대해 소송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국제윤이상협회 임원진인 홀거 그로셥은 의견서에서 “오길남의 거짓 주장에는 윤이상을 북한 간첩이라고 비방 중상하여 덕을 보려는 정치세력이 배후로 있다는 사실을 배제하기 힘들다”며 “자신을 도와주려고까지 한 윤이상에 대해 그렇게 악소문을 퍼뜨리고 20여년 동안 조용하다가 아내와 딸을 구출한다는 명분으로 오히려 2012년 선거를 겨냥한 듯한 정치 캠페인을 벌이는 것은 개인의 단독기획만으로 힘든 일”이라면서 배후설을 제기했다.

    앞서 지난달 윤이상 씨의 부인인 이수자 씨와 딸 윤정 씨는 오길남 씨를 ‘사자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했으며 지난 11일 참고인 자격으로 출석, 조사를 받았다.

    고 윤이상 씨의 편지가 공개된 가운데, 오길남 씨의 주장이 얼마나 힘을 받을 지 귀추가 주목된다.

    [고 윤이상 씨의 편지]

    오길남 사건과 나

    윤이상

    최근 남한에서는 재서독 교포였던 오길남이 남한에 “재망명”한데 대해 한국의 전보도계가 대대적으로 취급하고, 심지어 외국까지 전파되어(미국의 텔레비 등등) 여기에 집중적으로 나 윤이상과 송두율 박사에 대해 공세를 퍼부었다.

    이와 관련하여 남한의 몇몇 언론기관에서 나의 해명에 관한 전화인터뷰를 요청해 왔으나 때마침 나는 입원 중에 있었스며 이것을 실현하지 못하였다.
    그러나 내가 실고 있는 이 베르린에는 교포수가 많으며 적어도 이 교포들에게라도 진실을 알려주기 위해 나는 자청하여 ‘한인회보’에 이 글을 싣기를 원하게 되었다.

    1. 나와 오길남의 관계
    1977년 봄에 바드고테스베르그에서 한민련 국제회의 때 나는 처음으로 오길남이란 인물을 먼 발체서 보았다. 그 뒤 그의 이름은 들은바 있어도 가까이 만난 일은 없었다.

    2. 그와의 인간적 관계
    1986년 11월 어느날 저녁에 전화가 걸려왔다. “선생님, 저는 오길남입니다. 이북에서 도망해왔습니다”하였다. 나는 그가 이북에 간 지를 전연 몰랐으며 또 도망해 왔다는 사실도 보통있는 일이 아니라 놀라서 물었다. “제가 가족을 데리고 이북에 살러갔다가 6개월전에 혼자 도망해 왔습니다” 그럼 6개월 동안 어디에 있다가 지금 전화를 거느냐고 물으니 미국과 독일의 정보기관에 갇혀 조사를 받고 이제 나왔습니다. 나는 어처구니가 없어서 당황했다. “선생님, 저를 도와주십시요. 저 가족을 도와주십시오”하고 탄원하면서 울었다. “저는 그곳에서 살수가 없어서 사람들을 속이고 우선, 저혼자 도망해 왔습니다” 그후에 내가 이북에 영향력이 있다고 생각해서 였던지 나를 교포 중 원로의 한사람으로 믿어서였던지 여러사람으로부터 전화가 수없이 걸려왔으며 그 가족의 구출을 역설하였다.

    그후 몇차례 오에게서 듣기로, 한국사람에게 이북행을 말하면 탄로날까봐 독일인 목사 한사람에게만 얘기하고 떠났다고 말하였다. 나는 나의 아내와 같이 그의 가족구출에 노력하기를 시작하였다. 동백림 주재 이북의 연락관을 찾아서 오의 가족의 서독 귀환의 가능성을 타진하고 서독 교포의 대부분의 의사가 그러니 본국에 교섭하도록 강력히 요청하였다. 그 사건을 협의차 본국에 가서 1개월후에 돌아온 그 연락관은 “본국의 태도는 가능성이 없다”고 하면서 “오길남이 조국의 체면을 매우 손상시켰다”고 말하였다.

    이와 비슷한 교섭이 몇번있은 후 나는 하노바에서 나의 음악회가 있을 때 그곳에 살고 있는 오길남을 나의 홀텔로 불렀다. 이때가 생전처음으로 나와 오길남의 단독 대면이었다. 나는 그의 처지에 동정하고 그를 위로하고 그동안의 나의 이북과의 교섭경과를 설명하고 나의 호주머니에서 그에게 생활비를 보조로써 돈도 주었다.

    1987년 9월 매년 평양에서 열리는 ‘윤이상음악제’에 참석차 구라파의 저명한 외국인 연주자와 평양에 갔을 때 오길남 가족을 서독으로 돌려보내기 위해 그곳의 최고실무책임자와 단판을 하였다. 그때 그가 나에게 한 말은

    1. 오길남은 방문차로 온 사람이 아니라 우리나라 공민이 되어 가족을 데리고 이삿짐을 크게 꾸려 왔으므로 우리 법에서 다룰 수밖에 없다.(오는 그곳에서 차관대우를 받았다고 했다)

    2. 그가 출국할 때 모든 것을 속이고 갔으며 코펜하겐 공항에서 그곳 경찰에게 그는 조선인민공화국의 간첩이라고 하였다.

    3. 그 후 미국 비밀경찰과 서독 정보당국에 6개월동안이나 취조를 받고 많은 우리나라 정보를 제공했다.

    4. 이상과 같이 오씨는 우리나라의 법의 규정에 따라 위법행위를 저질렀으므로 응당 법적인 절차를 받아야 한다. 우리나라 위신을 국제적으로 추락시켰다.

    나는 한 개인으로서 한나라의 법을 대상으로 도저히 나의 의사를 관철시킬 수 없는 한계성을 느꼈다. 그래서 할 수 없이 인도적인 의미에서 그의 가족의 소식이라도 전하도록 해달라고 해서 간신히 부인의 편지 한장을 받아와 오씨를 백림의 집에 불러 이상과 같은 이북 당국의 태도를 전달하고 부인의 편지를 주었다.

    1990년 10월 나와 나의 아내는 민족통일음악제를 위하여 평양을 방문한다. 이것을 안 오길남은 전화를 아내에게 눈물로 가족문제를 호소하였다. 아내는 그에게 책임은 질 수 없지만 가족소식이라도 가져오도록 노력하겠다고 일렀다. 그때 나는 병으로 24시간 의사와 간호원의 호위아래 산소호흡기를 끼고 하루 세차례 링겔주사를 맞으면서도 잠간잠간 행사에 나타나곤 하였다.

    이런 정신없는 사이에도 오길남의 가족의 면담을 요청하였으나 허사였다. 부득이 사진, 카세트 녹음을 간신히 구하여 가지고 왔다. 나의 백림 돌아온 날자는 병 때문에 비행여행이 허락되지 않아 퍽 늘어졌다.

    1991년 1월 중순 백림에 돌아온 우리 부부은 곧 이 기쁜 소식을 오길남에게 전하기 위해 그를 우리집으로 불렀다. 퍽 명쾌한 태도로 우리집에 들어온 그에게 그에 주는 선물을 받은 그는 녹음기에서 흘러나오는 아내의 간절하고 확실한 소리, 두 딸아이의 애절한 목소리를 듣고도 태연하였다. 옆에서 눈물을 흘리는 나의 아내의 태도에도 감각이 없었다. 그리고 가족사진을 보고 “왜 아이들이 못났는가”하면서 히히적 그렸다.

    그리고 횡설수설하면서 가족에 대한 애절한 감정을 표시하지 않았다.

    나는 그가 그 자리에서 통곡할 줄 알았다. 그러나 그는 “이제 가족 찾는 것을 단념하였습니다”고 잘라 말하였다.

    나는 그 자리에서 호통하였다. 그리고 다시는 내 앞에 나타나지 말라고 하며 쪽아내다피 하였다. 이것이 그와 내 부부와의 마지막 순간이었다.

    이상의 글은 나의 속임없는 진실의 전부이며, 남한 정보기관이 나에게 책임을 돌린 사항들, 즉 1, 오가 이북갈 것을 적극 권했다. 2. 오가 이북을 탈출한 뒤 다시 돌아갈 것을 강요했다. 3. 오는 미국의 고정간첩이며 경거망동하면 가족을 몰살시키겠다고 하였다. 따위는 전적으로 정치조작이며 이 이면에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엄청난 모략이 숨어있는 것이 짐작된다.

    나는 분단된 민족의 비극으로 인하여 한국으로부터 나 자신이 모략과 악랄한 선전에 시달려 오고 있는 사람이기에 내 능력이 다하는데까지 부당하게 곤경에 빠져있는 사람을 많이 도아왔다. 앞으로도 나는 정의를 위하여 민족의 장래를 위하여 내 힘이 필요할 때에는 힘을 아끼지 않을 것이다.

    ……….
    긴 글 읽고 나니 어떼요?
    푸들 이빨이 틀딱이라 씹기 불편하진 않으셨는지요.

    결론은 둘 중 한 명이 거짓말을 하고 있다.
    증거는 둘 이 남긴 이야기 뿐이다. 어떼요? 맞나요?

    덕분에 윤이상 심화학습을 할 수 있어 감사드립니다(두 번째^^)

    리플작성 2017-07-06 01:18:50

  27. 감찰관

    동백나무…피처럼 붉은 꽃이 피지..우연이겠지만 김일성화도 동백의 아류이지..

    근데 파독광부 간호사 기념비에는 먼저 갔었겠지? 거기도 동백 가져갔나?

    이름이 정숙이라 그런지 김성주에 대한 애정이 각별하구만.. 너무 나댄다..

    리플작성 2017-07-06 01:50:00

  28. 감찰관

    행복하게 산다는 선전을 믿어야 한다는 거냐

    리플작성 2017-07-06 02:18:44

  29. 감찰관

    까까야… 북한지방 방송이나 베껴쓰는 통일뉘우스만 보지 말고 니 좋아하는 상식적인 뉘우스를 보거라.
    [월간조선] 아내·두 딸을 북한에 두고 탈출한 오길남 박사
    조선닷컴 | 2009/09/03 09:46
    가-가+
    지난달 5일. 북한 억류 142일 만에 미국으로 돌아간 유나 리와 로라 링 기자가 비행기에서 내려 가족과 포옹하던 순간 TV로 이를 지켜보던 오길남(67)씨는 눈을 아래로 내리 깔았다. 분명 감동적인 장면이었지만 마음이 결코 편하지 못했다. 북한에 두고 와 23년째 얼굴을 보지 못한 아내와 두 딸 생각이 나서다.
    월간조선이 오길남씨를 만나 가족이 3·8선을 두고 갈라져 사는 사연을 들어봤다.
    1942년 경북 의성에서 태어나 부산고와 서울대 독문과를 졸업한 오길남씨는 1985년 독일 브레멘대학원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적지 않은 나이(43세) 였기 때문에 대학 강단에 서기 힘들어 방황하고 있을 때 작곡가 윤이상, 재독학자 송두율, 김종한 등이 찾아와 “북에 가서 조국을 위해 경제학자로 일해 볼 생각 없느냐”는 제의를 했다.
    간호사였던 부인 신숙자씨는 월북하자는 오씨의 말에 “당신은 언젠가 월북 때문에 자신의 눈을 찌르며 후회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지만 1985년 12월 두 딸과 부인을 데리고 북한으로 갔다.
    오씨 일가족은 3개월간 외부와 차단된 채 ‘세뇌교육’을 받았다. 그리고 오씨는 1986년 6월부터 11월까지 북한이 남한 내에 존재하고 있는 것처럼 위장하고 있는 한민전 산하 칠보산연락소에서 근무했다. 경제학자로서의 역할은 전혀 없었다.
    1986년 11월 초, 오씨는 “독일에 유학하고 있는 유학생 2명을 유인해 월북하라”는 지령을 받는다. 인간으로서 도저히 할 수 없는 짓이었다. 부인 신숙자씨는 “당신 자식과 마누라의 생명만 소중하냐. 유망한 젊은 부부를 데려와 도대체 어떻게 하겠다는 거냐”며 오씨의 멱살을 잡고 뺨을 때렸다.
    큰딸 혜원, 아내 신숙자, 그리고 작은딸 규원의 모습. 1991년 1월 20일, 윤이상이 가족의 육성이 녹음된 카세트테이프 한 개와 함께 전달한 가족사진 여섯 장 가운데 하나다. 그곳에는 큰딸 혜원과 둘째 딸 규원의 짤막한 편지도 들어 있었다. 편지 내용은 이렇다. ‘아빠! 나 혜원이야요. 며칠 전에 아버지와 함께 생일을 즐겁게 보내는 꿈을 꾸었어요. 아버지! 부디 몸 건강하세요! 너무 오래간만에 아빠라고 소리 내어 부르니 울음이 납니다. 아빠! 나는 규원이야요! 나는 중학교 2학년이 되었어요. 보고 싶어요, 아빠! 아버지와 만나는 날 나는 무엇을 선물할까요? 아빠, 안녕! 1991년 1월 11일 평양에서’
    신씨는 또 “우리는 죽어도 그만이다. 하지만 내 딸들이 남을 속여 지옥에 빠뜨리는 파렴치범의 딸이라는 소리를 듣게 할 수는 없다”고 외쳤다. 오씨는 “내 뺨을 때리던 아내의 손길과 떨리는 목소리가 지금도 생생하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1986년 11월 10일. 오씨는 간염에다 심근경색, 동맥경화증으로 초췌해진 아내 신숙자와 열감기를 앓고 있던 두 딸을 북한에 남기고 평양을 출발했다. 김정일과 허담의 심복인 백치완 등 북한 공작원 두 명도 따라붙었다. 11월21일, 오씨는 덴마크 코펜하겐 카스트로트공항 입국 심사대에서 공항 직원에게 구조요청 메모를 전달해 극적으로 탈출에 성공하게 된다.
    오씨는 그 후 5년 동안 독일에 거주하면서 윤이상을 만나 북한에 있는 가족을 송환해 달라고 간청했다. 윤이상은 1987년 10월과 1988년 10월 두 차례에 걸쳐 북한에 있는 부인이 쓴 편지를 건네주었다. 1991년 1월엔 아내와 아이들의 육성이 녹음된 테이프 한 개와 가족사진 여섯 장을 주며 “다시 월북하라”고 협박했다. 오씨는 결국 혼자 힘으로는 가족을 송환할 수 없다고 판단해 1992년 4월 독일주재 한국대사관에 자수했다.
    오씨는 1992년 10월 북한의 요덕수용소를 탈출한 안혁, 강철환으로부터 북에 있는 가족의 소식을 듣게 됐다. 이들은 “부인 신숙자씨와 두 딸은 요덕수용소 대숙지구에 수용돼 있고, 신씨는 몇 차례 자살을 기도하는 등 산나물을 뜯으며 인간 이하의 생활을 하고 있었다”고 증언했다.
    오씨의 가족은 최근 앰네스티가 북한의 요덕수용소를 비롯한 정치범 수용소 수감자, 행방불명자들의 명단을 파악할 때 포함 됐다. 오씨는 “솔직히 미국의 여기자 구출을 보면서 가슴이 울렁거렸다”며 “매일 죽고 싶다는 생각뿐이지만, 혹시 아이들이 살아 돌아온다는 실낱 같은 희망을 부여잡고 하루하루 최선을 다한다”고 말했다.

    리플작성 2017-07-06 05:07:50

  30. 으라차차

    가가님/윤이상과 오길남에 대한 긴 인용 잘읽었습니다.솔직히 잘 모르겠습니다만 윤이상 쪽에 진정성이 느껴집니다.하지만 쉽게 판단하지는 않겠습니다.시간을 두고 객관적인 판단을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리플작성 2017-07-06 04:56:57

  31. ㅋ, 긴 쓰레기를 붙여놓아 읽지는 않았는데.
    솔직히 말하면 이해할 수도 있는일 아닌가.뭔 개솔로 변명 하냐말이지.

    윤이상 왈…뭐,, 김일성은 우리 민족의 대안이고 친일파들이 세운 나라에선 나의 고귀한 음악에 오물을 뭍일수 없으니. 내 신념대로 북한과 교류를 했고. 부산물로 오길님이가 따라갔다.가족끼리 헤어짐은 이념과 정신에 의해 자의적으로 간 문제를 나에게 죄를 물을 수는 없지 않은가.시간이 지나면 누가 옳았다는 것이 증명될 터이니. 뒷일을 역사에 맡기도록하자.

    김일성이 옳았는지 이승만이 옳았는지 판가리의 시간이 다가오고있으니 지켜보자고.
    김일성 지지자들이 비록 오물을 뭍혀놓았지만 정의는 누구 손을 들어줄 지는 모르는일.

    리플작성 2017-07-06 05:05:49

  32. 呵呵

    사찰관… 아니지 10대 천물 중 상위에 랭크 된 천물 감찰관님.
    충분히 대답을 드렸는데 눈이 침침해서 못 읽으셨나요?

    윤이상 글에선 오박사가 버리고 온 두 따님은 시집가서 잘 살고 있던데요?
    근디 밥은 챙겨묵고 댓글 퍼레이드를 하나요?

    골방 컴 앞에 쭈그리고 앉아 주구장창 댓글만다는 사찰관님에게
    착한 며느리라도 그렇지 꼴통보수 시애비 점심 상 안 챙겨 줄 수는 없지요?

    그리고 왜 자꾸 글을 지우세요?
    써 놓고 보니 너무 나갔다, 문제 되겠다 해서 지운 건 알겠는데
    다른 글들이 엉망이 되잖아요.
    그러게 댓글도 생각하며 쓰시기 바랍니다^^

    우야등둥 밥은 묵고 하세요.^^

    리플작성 2017-07-06 06:58:02

  33. 감찰관

    지구가 좁은 우주의 천물 가가가 여태 윤이상이의 정체도 모르고 그저 좌좀들이 추앙하니까 좋아했었나 보네.. 뭐 평소에 부꾸 수준의 무식성이 증명은 된 거 였다만은 또 실망 시키네..
    반도체 구라는 언제 마저 베낄거여?

    리플작성 2017-07-06 07:48:10

  34. 감찰관

    ‘친북 논란’ 윤이상, 진보정권이 복권해주나?
    박은주기자 | 2017/07/06 18:56
    가-가+

    뛰어난 현대음악 작곡가이자 낭만적 민족주의자였던 윤이상은 이념 논쟁은 물론 ‘오길남-신숙자’ 부부의 북한행을 주선했다는 논란에 휩싸였던 인물. 문재인 대통령 부인 김정숙 여사가 첫 독일방문에서 ‘친북논란’에서 자유롭지 않은 그의 묘소를 찾고 의미있는 행동을 했다는 사실이 관심을 모으고 있다.

    독일 방문 중인 문재인 대통령의 부인 김정숙 여사가 5일(현지 시각) 베를린 교외 도시의 공원묘지를 찾았다. 작곡가 윤이상(1917~1995)이 묻힌 그 공원. 김 여사는 대통령 전용기로 윤이상의 고향인 통영에서 가져온 동백나무 한그루를 싣고 갔다. 묘지 옆에 심은 동백나무 앞에는 이라는 내용이 한글·독일어로 적힌 석판이 놓였다.

    조선닷컴 정치토크 ‘뉴스를 쪼다’는 이 문화적 행보를 짚어봤다.

    “경희대 음대를 나온 김정숙 여사가 윤이상의 묘소를 참배하고 나무를 심었다, 아름답게도 볼 수 있는 이야기에 보수층이 우려를 하고 있습니다.”
    “윤이상을 낭만적 민족주의자, 천진난만한 친북주의자 이렇게 규정하고 싶습니다. 그런 그의 성향으로 1967년 정부가 발표한 대규모 간첩단 사건인 ‘동백림 사건’의 핵심으로 지목돼 중형을 선고 받았습니다. 사실 최종심에서 간첩혐의가 인정된 사람은 없습니다. 당시 부정선거의혹을 받고 있던 박정희 정부가 이 사건으로 여론을 다른 쪽으로 유도하려 했다는 혐의를 받고 있지만, 반대로 이 사건을 ‘간첩단 조작’으로 보지는 않습니다. 수사과정에서 고문 등 인권 유린과 과장이 있었다는 점은 인정해야 합니다. 1971년 추방된 그는 이듬해 독일 국적을 취득합니다. 한국 입국이 불허되어 한국땅을 밟지 못하고 작고했습니다.”
    “무엇보다 ‘통영의 딸’ 신숙자 씨 죽음에 대한 책임론에서 자유롭지 않습니다. 재독 간호사였던 신숙자 씨 부부가 윤이상, 송두율 씨의 권유를 받고 북한으로 이주했다는 게 그 남편 오길남씨의 주장입니다. 1985년 북한으로 이주했다가 남편은 이듬해 탈북했으나, 부인과 딸은 남아서 수용소로 보내졌습니다. 북한이 2012년 사망했다고 발표했는데, 오길남씨는 윤이상의 권유가 북한행에 결정적 영향을 미쳤다고 주장합니다. 오길남씨에게 북한으로 다시 돌아가라고 종용했다는 주장까지 하고 있습니다. 물론 윤이상씨는 생전에 그 혐의를 부인했고요.”
    “음악가에게 이데올로기적 잣대를 들이대는 것이 옳은 일일까요”
    “반대로 이데올로기적 행위를 했는데 그것에 대한 책임을 묻지 않는 것에도 동의하기 어렵습니다. 이런 논란을 청와대가 충분히 인지하고도 이런 일을 했다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을지 궁금합니다.”
    “아무래도 진보정권이므로 이런 성향의 인사에 대한 일종의 문화적 복권을 꾀하는 것이 아닐까요”
    “귤 하나 외국에 가져가는 게 보통 일이 아닙니다. 그런데 나무를 가져간다? 꽤나 어려운 과정이 있었을 겁니다. 거기에는 많은 상징이 있는 것이겠죠”
    “민간에서 문화적 복권을 하는 것은 문제없다고 봅니다만, 대통령 부부 이름이 적힌 석판까지 세워두는 행위는 매우 정치적인 행위죠. 이건 진보정권의 ‘문화전쟁’의 시작이라고 봅니다만.”

    리플작성 2017-07-06 08:01:57

  35. 呵呵

    그러니까!
    천물 감찰관님 당신이 퍼 온 제목도 당신이 구라꾼임을 증명하네^^
    윤이상이 종북으로 결정되지 않았다는 제목이니까.

    “친북 논란’ 윤이상, 진보정권이 복권해주나?”
    논란이지 확정은 아니잖여.
    그건 박터지게 사우리고 하고

    당신은 윤이상씨가 오길남씨에게 못할 짓을 했다고
    잘 아는 것처럼 구라를 쳤잖아^^

    그게 아니라는 거 긴 뼈다구 글 읽었지요?

    에그~~
    놰경색으로 인하야
    학살님처럼 가가가가가가를 물고 늘어지며 도배를 하는 증상^^
    이미 중증이니 병원도 가지 마셔^^

    그리고 김상곤님 경제 부총리 축하드립니다. ㅎ

    리플작성 2017-07-06 08:12:11

  36. 고향생각

    으이그.이 놈은 저 윗동네서 당장 자기 목 따러 오게 됐는데 아직도 종북질이네.
    더럽다~~~~~~~~

    리플작성 2017-07-06 10:19:10

  37. 감찰관

    대놓고 종부기질 하고 참 세상 좋아졌다 그지?

    리플작성 2017-07-07 08:51:19

  38. 종부기 얘기가 조금 지겹네요. 여기 모여있는 대부분의 좌파들은 절대 종부기들이 아닙니다. 저능아들이 종부기는 아니지요.

    리플작성 2017-07-08 01:5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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