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성하의 북한 이야기 탈북자 수기

고등학교 폭주족에서 대학 학과 대표까지 (17)

by 주성하기자   2017-07-15 4:23 pm

 

정봉철 씨에게 한국에 대한 첫인상은 암흑이 가득한 외계 나라에서 타임머신을 타고 다른 행성으로 온 듯한 기분이었다.

 

태어나서 그렇게 웅장하고 찬란한 곳을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멋있는 나라에서 더 이상 굶어죽거나 북송 당할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고 학교도 마음 놓고 다니면서 친구들도 많이 사귈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에 너무나도 행복했다.

 

이후 국정원과 하나원을 거쳐서 그토록 다니고 싶었던 정식 학교에 입학할 수 있었다. 그전까지 봉철 씨에게 학교란 그림의 떡과 같은 곳이었다.

 

8살 때 배가 고파서 어머니와 함께 중국으로 첫 탈북을 했고 2001년까지 2번의 강제북송을 당했다. 그럴 때마다 감옥살이나 장마당을 전전하며 꽃제비 생활을 했기 때문에 학교를 다닐 수가 없었다.

 

등교 첫날의 울음

 

처음 인천공항에서 느꼈던 행복감은 그리 오래가지는 못 했다. 14, 중학교 1학년 나이였지만 아는 글이라고는 이름밖에 쓸 줄 몰랐고 알파벳이라는 단어조차 들어본 적이 없었다.

 

남한 문화를 적응하기 위해서 두 학년을 낮춰서 초등학교 5학년에 입학을 했다.

 

그에게는 그토록 간절했던 학교였고 수도 없이 많은 죽을 고비를 넘겼기에 이까짓 학교생활 따위는 식은 죽 먹기일 것이라고 자신만만하게 여기고 첫 등교를 했다.

 

아침 조회 시간에 담임 선생님께서 학생들에게 그를 소개를 해 주었다.

 

이 친구는 북한에서 와서 부족한 점이 많더라도 많이 도움을 주라”라는 내용이었다. 쉬는 시간이 되자 대부분의 학생들이 그에게 몰려들었다.

 

그 아이들의 눈빛은 마치 외계인을 구경하는 것 같이 느껴졌다. “넌 무얼 먹고살았어?”,너는 우리나라에 왜 왔어?” 등 북한 욕을 해 보라는 아이, 싸움을 잘 하냐고 하면서 도발을 하는 아이들도 있었다.

 

그들에게 비친 봉철 씨의 모습은 초라했고 심적으로 많이 힘들었다. 마음의 상처가 아물지 않은 채 그 안에 있던 상처 부스럼은 긁고 긁어 더 큰 상처를 만들어내는 듯했다.

 

자신만만했던 남한에서의 첫 학교생활은 산산조각이 나고 말았다. 봉철 씨는 그날 밤 집에 돌아와서 펑펑 울었다.

얼마 후 학교에서 중간고사 시험을 치르게 되었다. 그때까지 시험이라는 개념조차도 몰랐고 더군다나 글을 모르니 쓸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

 

시험을 마친 후 담임 선생님께서 반 아이들 앞에서 점수를 부르기 시작했다. 곧이어 봉철 씨의 차례가 왔고 “정봉철 빵이라는 말을 듣고 반 아이들은 모두 그를 향해 웃었다.

 

그때는 쥐구멍이라도 있으면 들어가 숨고 싶은 심정이었다. 왜소한 체격에 이상한 사투리를 쓰고 공부도 못하는 그가 왕따를 당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외로움의 연속이었고 주변에서 어느 누구 하나 도움을 주는 사람이 없었다. 집에 돌아오면 힘들어하는 그를 보고 어머니께서는 학교를 그만 다니라고만 하셨다.

 

14살 아이 혼자서 감당해 내기에는 버거운 상황들이었다. 하지만 북한과 중국에서 떠돌이 생활을 하면서 가졌던 공부에 대한 열망이 있었기에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갈 수 있었다.

 

왕따와 퇴학

 

2년이라는 시간이 지나 초등학교를 졸업했다. 중학교에 입학하면서는 북한에서 왔다는 사실을 숨기고 학교생활을 시작했다.

 

초등학교를 다니는 2년 동안 사용하던 말투, 옷 입는 스타일을 바꿔 북한에서 온 티를 내지 않기 위해 나름 피나는 노력을 했다.

 

하지만 얼마 못 가서 금방 들통이 나버리곤 했다. 자기의 약점이나 결함이라고 생각하는 부분을 숨기려다가 들통이 났을 때의 그 초라함은 말로 다 표현할 수가 없을 만큼 컸다.

 

외모나 말투를 바꿀 수는 있어도 정체성은 나의 의지대로 바꿀 수 없다는 것을 그때 깨달았다.

 

공부도 못하고 체격도 왜소하고 탈북민인 그가 왕따를 당하지 않는 길은 힘을 기르는 것이라 생각했다.

 

그때부터 싸움을 하기 시작했고 몇 번 싸워서 이겼더니 주변에 친구들이 생겼다. 이전에 왕따를 당했을 때보다 덜 외로운 듯했다.

 

무리 지어 다니며 담배를 피우고 술을 마시고 밤에는 오토바이를 타고 폭주를 일삼았다. 그러면서 이렇게 생각했다.

 

이것이 진짜 자유구나

 

그렇게 나름의 자유를 만끽하며 생활을 했지만 마음은 늘 허전했다. 그래서 점점 더 자극적인 것을 원했고 그러다 보니 고등학교 2학년 때 퇴학을 당하고 말았다.

 

다른 학생들에게 피해가 간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마땅히 누려야 할 자유를 누렸을 뿐인데 왜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인지 고민을 해 보았다.

 

뒤돌아보니 그 당시 자유를 잘못 알고 있었던 것 같다. 운전할 줄 모른 사람이 자동차를 운전하면 자살행위나 마찬가지인 것처럼 진정한 자유를 누리기 위해서는 교육이 먼저 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자신의 정체성을 찾다

 

퇴학을 당한 이후 몇몇 학교를 찾아가서 전학을 요구했지만 번번이 거절을 당했다. 마지막으로 찾아간 곳이 명동에 위치한 북한 이탈 청소년 대안학교였다.

 

그곳에서는 흔쾌히 허락을 해 줘서 다시 학교를 다닐 수 있게 되었다. 어차피 같은 북한 친구들인데 무슨 적응이 필요할까 싶었지만 그곳에서도 적응하는데 시간이 필요했다.

 

북한과 중국에서 12년 남한에서 8, 그때까지 그의 정체성은 남북한 어디에도 없었다. 북한에서 태어나서 어린 시절 악몽만 떠 넘겨준 탈북민이라는 꼬리표를 증오했다.

 

남한에서 평범한 가정에 태어나 평범하게 살고 싶었지만 평범함과는 거리가 멀었던 그의 환경을 탓했다.

 

하지만 학교에서는 탈북민인 너희가 미래에 나라를 이끌어갈 사람들이라고 했다. 그리고 먼저 온 통일이고 통일시대의 주역이 될 거라고도 했다.

 

난생처음 듣는 말이었지만 기분이 좋았다. 그곳에서 2년간의 교육을 받으면서 봉철 씨는 자신의 정체성을 회복했다.

탈북자인 티를 내지 않기 위해서 말투를 바꾸고 옷 스타일을 바꾸고 외모를 따라 한다고 해서 내면까지 바뀌지 않는다는 것을 경험을 통해 알고 있었다.

 

그렇다면 이미 주어진 나의 정체성을 고맙게 받아들이고 어설프게 따라 하기보다는 나답게 살아가기로 결단했다.

 

단지 생각의 방향을 조금 바꿨을 뿐인데 그 이후의 삶들이 완전히 달라지는 것을 느꼈다. 꿈이 생겼고 삶의 방향이 그려지는 것이었다.

 

고등학교만 졸업해도 소원이 없겠다고 생각했었는데 어느새 봉철 씨는 대학에 다니고 있었다. 그리고 그만의 꿈을 꿀 수 있게 되었다. 꿈이 생기고 나니 그 꿈이 삶의 내비게이션 역할을 해 주는 것 같았다.

 

과 대표가 되다

 

대학에서의 첫 수업시간에 교수님께서 강의 도중에 이런 질문을 했다.

 

혹시 주변에 북한에서 온 사람들을 알거나 친구로 둔 학생이 있나?”

 

예상치 못한 질문에 40여 명의 학생들이 서로를 쳐다보며 어리둥절해 했다. 그때 봉철 씨가 손을 들고일어났다.

 

교수님, 제가 북한에서 왔습니다. 워낙 어릴 때 왔지만 아직도 여러모로 부족한 점이 많습니다. 그만큼 저도 노력을 할 테니 여러분께서도 귀엽게 봐 주시고 응원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라고 했더니 여기저기서 박수 소리가 들렸다.

 

이상한 일이었다. 이전에 10년 가까이 학교생활을 했지만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일이었다. ‘무슨 차이일까?’

 

차이는 딱 한 가지였다. ‘당당함예전에는 스스로가 탈북민이라는 정체성이 창피해서 어떤 모임에 가도 늘 남의 눈치를 보며 기가 죽어있거나 의기소침했었다.

 

스스로 정체성을 인정하고 탈북민답게 살아가기로 마음을 먹고 보니 그럴 필요가 전혀 없어졌다. 오히려 당당하게 자신의 정체성을 밝혔을 때 사람들은 손가락질이 아닌 박수를 쳐 주는 것이었다.

얼마 후 조리학과 대표에 도전하게 되었고 10명의 후보자 중에서 대표로 선출되었다. 학교 대표라는 타이틀 보다 더 중요했던 것은 탈북민이라는 그의 정체성이었다.

 

이 친구들에게는 내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보는 탈북민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렇다면 나를 통해서 3만 명 가까이 되는 탈북민들을 판단할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 책임감의 무게가 적지 않았다.

 

그때부터 모든 일에 솔선수범하게 되었다. 남들보다 30분 먼저 학교에 도착해서 그날 실습에 필요한 준비물들을 정리해서 급우들에게 나누어 주는 등 조교 역할을 도맡아 하게 되었다.

 

급우들과의 관계에서도 먼저 마음의 문을 열고 다가가려고 노력을 했다 그렇게 한 학기가 지나고 보니 봉철 씨 옆에는 사람도 많았고 평균 성적 또한 만점에 가깝게 받을 수 있었다.

 

우리는 통일의 주역

 

사람들은 탈북민을 먼저 온 통일’, 통일의 주역 등과 같은 과분한 수식어를 붙여 준다.

 

하지만 13년 넘게 한국에서 생활하신 그의 어머니는 지금도 밖에 나가면 자신을 강원도나 중국 조선족이라고 하신다.

 

이렇게 생각하는 탈북민이 그의 어머니 뿐만이 아니다. 주변 탈북 청소년들도 마찬가지이다. 학교나 아르바이트를 가도 탈북민이라는 사실을 밝히길 꺼리어 한다.

 

그래서 억지로 말투를 고치고 외모를 바꾸려고 애를 쓴다. 봉철 씨 또한 탈북민이라고 당당히 밝히기까지 많은 시간이 걸렸다.

 

하지만 정체성이란 억지로 누군가를 흉내 낸다고 해서 바뀌어 지는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자신도 상대방도 불편해할 뿐이다.

 

그렇다면 답은 하나라고 생각했다.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받아들이고 탈북민으로서 당당하게 살아가는 것, 이것이 통일의 주역으로 가는 첫걸음이라는 것을 한국생활 13년의 경험을 통해서 깨달았다.

 

출처: 남북하나재단 잡지 ‘동포사랑’

—————

 

(※ 봉철이의 아버지는 나와 함께 감옥생활을 했다. 나는 살아서 다시 돌아왔지만 봉철이 아버지는 정치범이란 죄로 중형을 선고받고 그곳에서 생을 마감했다. 지금 내 나이보다 더 젊었을 때였다. 보면 짠해지는 아이인데, 나는 별 도움이 못돼 미안할 따름이다. 꼭 성공해 저 하늘에서 아버지가 흡족하게 내려다 볼 수 있게 되길 기원한다.)

카테고리 : 주성하의 북한 이야기, 탈북자 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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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격변

    자신의 정체성을 인정하고 당당하게 생각하는 것은 쉽게 말해서 철이 들었다는 말입니다. 철이 들면 사리판단이 정확해집니다. 다른 사람들로 부터도 공감을 얻고 존중을 받게 됩니다. 누구든 성공의 이면에는 이런 의식의 성숙 과정을 거칩니다. 아무리 사회적으로 출세를 했더라도 철이 들지 않으면 구상유치한 인간형이 되어 타인으로 부터 진정으로 인정을 받지 못하죠. 요즘 종종 언론에 등장하는 갑질이나 진상인으로 비난받는 인간들은 이런 의식의 성숙과정이 없었던 때문입니다. 아직 학생인데 철이 든 것은 미래 성공할 인격의 소유자가 된 것입니다. 앞으로 행복하고 성공할 자격을 충분히 갖추었습니다. May God be yours !

    리플작성 2017-07-15 05:16:42

    • 격변

      구상유치를 구상유취로 바로잡습니다.

      리플작성 2017-07-15 05:18:31

  2. GarryInsight

    한국에는 73만여명의 중국동포들이 들어와 삽니다.

    중국동포들이 많이 모여 사는 동네는 지저분하고 사건사고도 많은가 봅니다. 태어나 살아온 중국이 그러니까요.

    그런데 중국동포들의 공통적인 말이 ‘우리에게 시간을 달라’ 입니다. 한국 사회에 충분히 적응해 가면서 앞으로 변할 수 있다는 거죠.

    마찬가지로 한국에 이미 온, 그리고 앞으로 언젠가는 올게 확실한 수백만명의 탈북자들에게도 ‘시간’ 이 필요할 듯 싶습니다.

    리플작성 2017-07-15 05:47:51

  3. 북벌

    아버님의 부고로 인한 어머님과의 탈북과 강제북송으로 인한 북한에서의 고초.
    탈북자라면 누구나 이런 비슷한 과정을 겪어을거라는 사실은 북한에 관심이 있는 한국 국민이라면 다들 아실겁니다.

    한국에서의 적응기간동안인 학교생활 이었지만..그걸 극복하고지금은 당당하고 정직하게 사는 봉철님.
    잘 정착하시고 성공해서 어머님과 함께 북한에서 느껴보지 못한 자유의 소중함을 간직하고 늘 건강하고 행복하게 사시길 응원 드립니다.

    리플작성 2017-07-15 05:51:00

  4. 4146521

    소수 집단이 다수 집단에 들어올 때 자신의 정체성을 어디까지 바꾸고 동화될 것인가는 항상 고민이 따르는 선택입니다.
    기존 다수 집단원은 대부분 완전한 동화 또는 배제를 원하죠.
    이전에 한국사회는 탈북자를 남한 승리를 빛내주는 트로피 정도로 생각했죠 기자회견도 하고..
    현재는 어떨까요? 생각보다 공론화되어있지는 않지만 오히려 진보권보다 보수권에서 의견이 많이 갈리는 문제입니다.

    언젠가는 얘기를 나누고 넘어가야 할 일인데.. 통일 예행연습이 어떻게 될 지 궁금하네요

    리플작성 2017-07-15 06:57:08

  5. 탈북자 수기를 읽을 때마다 평범한 삶을 산 사람은 거의 없고, 모두 가슴이 찢어지는 아픔을 겪었음을 느낍니다. 그만큼 잘못된 삶을 살 가능성도 많지만 또 그만큼 훌륭한 삶을 살 가능성도 크지요.

    남한에서는, 모두 훌륭한 삶을 사시기 바랍니다. 그게 모두 통일되었을 때 큰 자산이 될겁니다.

    리플작성 2017-07-15 07:08:49

  6. 324534623

    좀 이해가 안되는게 탈북자 분들이 조선족으로 속이는 경우가 많다고 하던데요.
    한국인들 일반적으로 탈북자보다 조선족에 대한 인식이 훨~씬 안좋습니다.
    한국인들이 조선족 하면 딱 떠올리는게 살인마 오원춘, 보이스피싱, 범죄자 이런겁니다… 하도 한국에서 범죄를 많이 일으켜서요.
    저희 회사에 조선족 직원이 있는데 뒤에서 다들 그럽니다. 쟤 조선족 조심해라 어떤 짓을 할지 모른다…
    탈북자들의 경우 조선족들처럼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범죄 사건은 많지 않았기 때문에 조선족 처럼 범죄자라는 인식은 거의 없어요.

    탈북자들을 신기하게 보기는 하지만 목숨 걸고 왔으니 동정심을 가지는 경우가 많지 (물론 이 동정심 조차도 나와는 다르다는 차별에서 비롯된 것이긴 합니다만) 조선족들은 인식 자체가 나쁩니다. 조선족이라고 속이는건 오히려 탈북자보다 더 안좋은 시선으로 보게 되니 안하시는게 낫습니다.
    그리고 조선족은 중국 국적의 외국인이고, 탈북자들은 다 한국 국적이 있는 한국인이니 조선족이라고 속이는것보단 탈북했다고 솔직히 말하고 다니세요. 직원으로 고용을 해도 중국인 조선족보단 한국인 탈북자를 고용하는게 낫다고 생각합니다.
    북한에서는 중국을 흠모 했을지 몰라도 한국인 입장에서 보면 중국은 아직도 한국에 비하면 한참 후진국이고 중국인들 무례하고 범죄 많이 저지른다는 인식이 많아서 중국인들 많이 무시합니다. 조선족보단 탈북자가 훨씬 나아요.

    리플작성 2017-07-15 07:28:21

    • 4146521

      북한이 중국보다 후진국이며 범죄율이 높습니다.
      마지막 논리대로라면 탈북자가 조선족보다 위험하겠네요?

      뭐.. 말씀하시고자 하는 내용은 알겠는데, 최소한 여성 조선족은 은근히 흔하게 보실겁니다. 식당에서요. 딱히 위험하다는 생각도 일 잘한다는 생각도 없이 싸니까 고용하곤 합니다.
      어떻게 아냐하면 제가 8년 전에 식당에서 일했거든요..
      조선족 서빙 3명 원단 중국인(연해주 출신) 주방 아줌마 1명 칼질담당 조선족 아재 하나.. 한국사람은 사장부부, 주방실장이랑 저(육절기 담당/실장 시다)뿐이었죠.

      뉴스에선 흔히 조선족 범죄니 보곤 했는데 막상 접해보니 그게 그거더군요
      칼질아재는 실장이 손톱 자르란 말을 안 하면 계속 안 자르긴 하던데ㅋㅋ

      리플작성 2017-07-15 08:19:59

    • 4146521

      사실 보통 교육수준도 중국이 낫고, 영양수준, 자본과 노동에 대한 인식수준도 중국이 더 나은 편이니 제가 단순노동에 누군가를 고용해야만 한다면. 어떤 사전 정보도 없다는 가정 하에 조선족을 고용하게 될 것 같아요. 수익 생각을 한다면요..

      리플작성 2017-07-15 08:26:00

  7. 시나리오

    이상한 일이었다. 이전에 10년 가까이 학교생활을 했지만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일이었다. ‘무슨 차이일까?’

    —-그 차이는 “당당함”의 차이라기 보다는 중고등학교와 대학의 차이도 한 원인 하는듯 합니다..

    최소한의 교양과 품격이 보장받는 성인들의 집단인 “대학”과..
    일정부분 억압과 폭력성.야만성이 존재하는..”애들”사회와의 차이가 크지요..
    대학사회 또한 부정적인 부분이 존재하지만 “최소한의 교양”이 지켜진다는 점에서
    중고등학교와 차원이 다릅니다.

    요즘은 중고등학교 에서도 학생인권때문에 .교사의 권위적인 억압.체벌. 찍힘~
    이런 부분이 많이 사라졌겠지만..
    기본적으로 중고등학교는.학생 입장에서 예나 지금이나 “선택”의 여지가 없는 “감옥”이지요.
    그럴수록 그 구성원인 학생들 상호간에도 역시 원만하고 성숙된 인간관계가 성립되기 힘듭니다.
    특히 입시공부를 포기한 중 하위권 학생들 일수록..학교는 감옥입니다.
    교실이라는 좁은 공간에서 서로 보기 싫은데도 계속 같이 있어야 되는 와중에 수반되는
    상하.좌우간 ..갈등적인 관계도..아이들을 삐뚤어 지게 만들구요.
    그 와중에 특별이 약하거나 .남다른 “약점”이 있으면 차별을 당하게 될것입니다.

    그런데 대학은 틀립니다. 일단 학생들이 자기가 선택해서 갔으며.
    .무슨 공부를 어떻게 하던 자기가 선택해서 스케줄을 짭니다..
    교수와 학생들관계 역시..중.고등학교때와는 달리
    비교도 할수 없을 만큼..인격적이고 품격이 있고요.

    학생간에도 마찬가지…자유로운 스케줄 속에서..보기 싫으면 안보면 되죠…
    오히려 너무 개인주의라서..공허함..을 느끼고 우울해 지는 친구들도 있고.
    그러니 더더욱 인간관계에서..예의와 매너가 중시됩니다..
    .모든 친구관계는 자기가 만들어 가는 것이닌깐요.

    결론적으로 일단 미성년자 시절..한국에 오신 탈북 청소년들은 어떻해서든.
    ..중고등학교 시절을 견뎌내시고 반드시 대학에 가시길 권합니다..
    스펙이 낮은 전문기술.기능 전공이라도 상관 없습니다.
    바로 사회로 나오시기 전에 반드시 대학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한국인들간의 성숙한 인관관계 경험을 가져 보신다면 사회생활의 큰 밑바탕이 될 것입니다..

    리플작성 2017-07-15 08:22:02

    • durtk

      저도 그 생각을 했습니다. 탈북민이 아니더라도 중고등학교때는 교우관계에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많지요. 차이는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느냐의 여부가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그게 철이 드는 것일수도 있고요.

      리플작성 2017-07-18 05:20:15

  8. 시나리오

    그리고 중고등학교 생활을 잘 하기 위해서 꼭 필요한 팁을 소개 드리자면..
    일단 공부는..결국 영어.수학이 밑천 입니다.
    이 과목들은 기초가 없는채로 뒤늦게 따라가면 아무리 노력해도 안됩니다
    그래서 처음부터 기초를 다지시는게 중요하고 반드시 학원의 도움을 받으십시오. ..
    학교에서 일주일에 몇시간씩 1.2년 배우는것 보다
    학원에서 두세달 만에 1년치를 배워버리는게 훨씬..효율적인 방법입니다.
    한국 학생들의 실력이란 것도 결국 방학기간 몰입적인 과외를 통한
    선행 학습의 위력일 뿐입니다.
    .
    두번째..신체적인 강함입니다.
    .인격적으로 미성숙한 아이들 세계에서 인간관계의 갈등은 결국 “폭력”으로 표출됩니다.
    왕따라는것 또한 신체적 가학행위와 맞물려 지면서.그 폐악이 극대화 되는 겁니다.
    중요한건..맞고 다니던..패고 다니던…둘다 패배자가 되는 길입니다.

    패고 다니다 보면 결국 자기도 깡패가 되고.정상적인 학교 생활을 못하게 되죠.
    그렇기 때문에 자기를 지키는데 필요한 최소한의 폭력을 통제할수 있는 수준으로
    구사할수 있는 무도나 격투기를 반드시 배우시길 바랍니다.
    설사 원래 싸움을 잘하시는 분이더라도 반드시 격투기를 따로 배우시길 바랍니다.
    싸움도 지도자 밑에서 동료들과 “운동”하면서 배워야 실전에도 효과적일 뿐더러
    타인을 존중하고 자신을 소중이 여기는 법도 배웁니다. . .

    어떤 종목의 격투기 도장이든 가셔서 ..탈북학생 이라고 밝히고..
    학교생활의 고민등을 솔직히 토로하시면
    관장..사범.들이 …학교 선생님들 보다 훨씬 더 잘 이끌어 주면서
    ..나쁜길로 빠지지 않게 멘토 역할을 해 줄수도 있습니다..
    체육관이란 곳 역시 자기들이 선택해서 “즐기기”위해서 온곳인 만큼
    사람들도 다른 어떤 곳에 비해서 비교적 여유롭고 나눌줄을 알죠…
    운동하면서 친해지는 선배나 형들은. 선생님 보다 편하고..친구들 보다 성숙되고..
    학교생활에서 못배우는 많은 것들을 선물해 줄 겁니다.
    모든 체육관이 다 그런 좋은 곳은 아니지만 동네 마다 반드시..
    실력있고 인격적으로 훌륭한 관장님이 계신곳이 한곳 이상 있습니다.

    즉..영어 수학학원과 격투기도장~~
    이곳을 적절이 이용하시면 중고딩 시절 왠만한 어려움 쯤은
    능히 헤쳐나갈수 있을 것입니다.
    물론 ..북한에서부터 문무 겸비하시고 자기 절제가 완벽하신 분들은 필요 없을 테고요.

    리플작성 2017-07-15 08:23:34

  9. 바다호수

    말안통하는 나라에서 살때는 귀머거리 장님 언챙이로 살아 가니
    바보처럼 적당히 살아도 심신적으로 편하지요.
    그런데

    귀머거리도 아니고 장님도 아니고 말을 못하는 것도 아닌곳에서 살아가면
    이건 바보도 아니고 그렇다고 못난이도 아니고 도토리도 아니고…

    심신만 잘 달련이 된다면이야.

    요새 같은 세상에서는

    남들이 생각하지 못하는 세계를 만들수가 있습니다.

    제 나이는 꺽어 져서 쌀처럼 살지만
    요새 세상은 밀처럼 살아가더 군요.

    리플작성 2017-07-16 12:45:11

  10. GarryInsight

    80년대 이후 태어난 중국의 젊은세대들은 빠른 경제성장의 혜택을 받아 건강하고 종래보다 교육수준도 높습니다.

    반면에 동 기간의 북의 젊은세대들은 대기아의 참상을 겪었지요. 그들은 미국의 원조분유라도 받아 먹은 한국의 노년세대들 보다 더 굶주리고 못 배웠는지도 모릅니다.

    북한에 남아있는 1천만에 가까운 너무 못 먹고 못 배운 젊은세대들은 향후 2세대에 걸쳐서 한국사회의 큰 부담으로 남을 전망입니다.

    리플작성 2017-07-16 05:58:51

  11. cman

    탈북 청소년들(특히 남자) 거의 대부분 남북한 문화적충격으로 몇년의 비행과 일탈을 겪고 있는데 술,담배,폭력, 절도는 기본이고 폭주 오토바이에 빠지기도 합니다. 고등학교 등교때 항상 칼을 가방에 넣고 다니는 아이도 봤습니다. 북에서는 무법천지상황에서의 방어본능으로 성인들도 칼을 지니고 다닌다는데 그런 이유때문이 아닌가 합니다. 그러나 남에서 칼을 가지고 다닌다는 것은 ‘나는 잠재적 범죄자다’라고 광고하고다니는 것이나 마찬가지니 최소한의 선은 넘지 말았으면 합니다.

    리플작성 2017-07-17 11:24:05

  12. 숙연글

    응원합니다!

    리플작성 2017-07-21 01:04:47

  13. 4146521

    아재 글에서 술냄새납니다.
    그냥 소파에 누워 TV보시며 잠들락말락하시는 게 어떨지요

    리플작성 2017-07-15 08:53: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