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서 쓰는 평양이야기 탈북자 수기

“정착한 이 땅에서 요령없이 살고 싶습니다.” (11)

by 주성하기자   2017-05-13 1:06 pm


김영순 씨는 가족과 함께 남한에 입국했다. 하나원을 나와서 남들이 수급비를 받으며 학원에 등록할 때 하루라도 젊을 때 돈을 벌어야겠다고 작정하고 남동공단에서 일을 시작했다.

 

주변에 살고 있는 지인들이 왜 힘들게 돈을 버냐고 놀려주어도 영순 씨는 자기 뼛심으로 버는 것이 진짜 내 것이라고 말하며 아들과 자신의 노후를 위해 일을 쉬지 않고 있다.

 

하루 12시간씩 교대 근무제를 하면서 가장 어려운 것은 잠이다. 잠은 아무리 잡으려고 쫓아다녀도 잡히지 않는 검은색 운무 같다.

 

내 뼛심으로 번 돈이 진짜 내 것이다

 

영순 씨와 함께 하나원을 나오고 하나센터에서 교육을 받은 지인들은 모두 하나같이 학원에 등록했다. 하나원을 나오고 6개월간은 정부로부터 수급비가 지원되니 하나센터에서도 직업교육을 받는 것이 우선이라고 강조했다.

 

주변에는 컴퓨터학원, 도배학원, 간호조무사 학원 등 동네 탈북민들이 다니는 여러 학원이 있었다. 하지만 영순 씨는 남들이 다 학원에 다니며 수급비를 받을 때 그들처럼 학원에 등록할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남들은 혼자 와서 브로커 비용도 적었지만 영순 씨는 남들의 3배가 넘는 브로커 비용으로 남한에 왔다. 하나원을 나오자마자 빚 독촉부터 받는 것은 별로 반갑지 않았다. 영순 씨는 학원보다 일을 해야겠다고 선택했다.

 

처음에는 플라스틱 공장에서 일을 했다. 남한에 와서 처음 해보는 일은 만만치 않았다. 그곳에서 견디지 못하고 식당에서도 근무했다.

 

하루 종일 허리가 부러지도록 설거지하고 나면 손이 새하얗게 부르트고 좁은 주방 안에서 뱅뱅 돌며 일하고 집에 돌아오면 기절해서 쓰러질 때도 있었다.

 

그 당시 알고 지내던 친구가 회사에서 탈북자 직원을 구한다며 연락이 왔다. 영순 씨는 아무리 힘들어도 지금 일하는 식당보다는 나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친구의 소개로 취직하게 되었다.

 

회사는 전자 칩을 만드는 공장이었다. 몇 십 명의 직원이 생산 공정에 따라 나뉘어서 일을 하고 있었는데 그들 가운데 몇 명은 탈북민도 있었다.

 

영순 씨가 맡은 공정은 칩을 찍어내는 곳이었다. 커다란 기계가 칩을 찍어내면 칩을 들어내는 단순노동이었다. 칩을 들어내면서 불량품을 찾아 분리하는 것까지 영순 씨의 몫이었다.

 

일은 육체적으로는 별로 어렵진 않았다. 오히려 너무 쉬워 졸릴 때가 많았다. 제일 견디기 힘든 것은 야근이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야근을 해보는 영순 씨에게 야간근무는 잠과의 전쟁과도 같았다.

 

작동하는 기계 옆에서 무료하게 한 가지 동작으로 움직이다 보면 깜빡할 사이에 지옥의 어둡고 깊은 늪으로 빨려 들어가는 것처럼 위험천만한 순간이 찾아오곤 했다.

 

그런 순간에는 등골이 서늘해지고 잠은 순식간에 천 길을 도망가곤 했다. 하지만 그것도 순간이었다. 다시 똑같은 동작이 반복되고 어둠이 깊이 내려오면 영순 씨는 다시 잠을 쫓아내려고 사투를 벌여야만 했다.

 

잠은 아무리 잡으려고 쫓아다녀도 잡히지 않는 검은색 운무 같았다. 하루 12시간을 서서 일하다 보면 종아리 밑으로 발이 퉁퉁 부어올랐다. 처음에는 그러다 낮겠지 하고 내버려 두었다.

 

하지만 아픔이 지속되고 통증이 심해지자 병원을 찾아갔다. 병원에서는 서서 일하면 안 된다며 의자에 앉아서 일을 하거나 최소한 4시간에 한 번씩은 자세를 바꾸어 앉아주거나 일어서 주어야 한다고 경고했다. 영순 씨는 쉬는 날에는 무조건 병원에 다니며 치료를 받곤 한다.

 

회사에서 처음 일 할 때는 언어소통이 어려워 작은 오해가 있기도 했다. 하지만 평시 밝고 긍정적인 성격인 영순 씨는 언니들에게 싹싹하게 북한 말을 소개했다.

 

북한 사투리를 들은 한 언니는 영순 씨의 언어가 강원도 말과 비슷하다고 말하는가 하면 다른 언니는 옛날 할머니가 쓰던 사투리를 듣는 것 같다며 친근감을 표시했다.

 

힘들게 일하며 한국 사회에 정착해가는 영순 씨에게 일부 탈북민은 왜 어리석고 힘들게 사냐고 손가락질하며 이렇게 유혹한다. 아픈 다리를 끌고 병원에 찾아가면 6개월짜리 진단서를 끊어준다,

 

그거면 일하지 않아도 나라에서 기초수급자로 인정해주고 돈을 준다, 학원에 다니면 자격증을 받을 때까지 정부에서 돈을 준다, 일하지 않아도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은 얼마든지 있다.

 

하지만 영순 씨는 자기 자신과 국가를 속여 가면서까지 비굴하게 사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나는 남들과 똑같이 세금을 내며 어렵게 산다. 세상엔 공짜가 없다. 자유의 땅에 와서까지 눈치 보며 살고 싶지는 않다. 비굴하게 목숨을 부지하며 수급자로 사는 모습을 자식에게는 더더욱 보여주고 싶지 않다. 내 뼛심으로 일해서 번 것이 진짜 내 것이고 떳떳하다고 생각한다.”

 

“북한에서 태어난 것이 부끄러운 일인가요?”

 

남편과 손을 맞잡고 일을 하는 영순 씨가 가장 신경을 쓰는 부분은 자녀교육문제이다. 북한에 있을 때에도 하나밖에 없는 아들의 교육문제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눈 부부는 탈북을 결심할 때에도 자녀의 교육문제를 염두에 두었었다.

 

남한에 오자마자 남들이 학원에 다닐 때 일자리부터 찾은 것도 빨리 브로커 비를 갚고 자식을 더 좋은 환경에서 교육하고 자식 앞에 떳떳한 부모가 되고 싶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속상할 때도 있었다. 아들이 다니는 학교는 탈북 학생을 위한 정부 지원체계가 잘 마련되어 있었다. 학교에 다니는 탈북 학생에게는 정부 지원정책이 일등으로 지급되고 특별히 관리받고 있었다.

 

그러나 이 모든 정책은 수급비를 지원받는 가정 학생에게만 해당되는 제도였다. 학교는 수급 학생들만 모아 견학을 가거나 놀이동산에 갈 때도 정부 지원금을 받는 학생들만 데려갈 수 있었다.

 

뒤늦게 이 사실을 안 영순 씨는 학교에 찾아가 탈북민이면 똑같이 지원해주든지 자격이 안 되면 비용을 따로 받더라도 다른 친구들과 같이 보내달라고 요구했다.

 

영순 씨네는 두 사람이 일을 하니 수급 지원비는 물론 자녀의 학교를 비롯한 방과 후 교실에서도 정부 지원금을 지원받을 수 없었다.

 

그 사실을 알았을 때는 자식 때문에 열심히 살아보겠다고 한 노릇이 오히려 자녀에게 돌아가는 혜택을 막아버린 게 아닌가 하는 회의감이 들기도 했다.

 

아들은 다른 아이와 차별을 당한다고 울고 있고 이런 복잡한 상황을 아이에게 어떻게 설득시켜야 할지 난감하기만 했다.

 

한 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 학교에 갔던 아들이 돌아와 이렇게 말했다.

 

“엄마, 우리 고향에 있는 형들 보고 싶어. 형들 여기 데려오면 안 돼? 그들도 여기서 공부하고 맛있는 거 먹을 수 있게 데려오면 안 돼?”

 

이 말을 듣는 순간 영순 씨는 남한에 오길 잘했다는 생각과 북에 두고 온 가족이 그리워졌다. 아들은 학교에 가면 친구들에게 자기는 북한에서 왔다고 말하고 다닌다고 했다.

 

“남들은 탈북자가 부끄럽다고 숨기고 사는데 너는 왜 자랑하고 다녀? 넌 친구들이 탈북자라고 말하는 게 싫지 않니?” 그는 아들에게 물었다.

 

그때 아들이 이렇게 말했다. “내가 북한에서 태어난 게 왜 부끄러워야 돼? 내가 북에서 태어난 게 잘못한 거야?”

 

그때 영순 씨는 말문이 막혔다. 그리고 부끄럼 없이 당당하게 살아가고 있는 아들이 자랑스러웠다.

 

영순 씨는 열심히 돈을 벌어 아들에게 필요한 교육을 시키고 좋아하는 것을 찾아 문화생활도 시켜주기 위해 더 열심히 일을 할 것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불법적인 방법으로 생계비를 유지하며 비굴하게 사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조언한다. 생계비에만 매달리지 말고 당당하게 살았으면 좋겠다.

 

노력하면 할 수 있다. 생계비는 목숨 유지만 한다고 생각한다. 사회생활에서 대인관계는 참 중요하다. 진심은 어디서든 통한다.

 

영순 씨의 꿈은 고향에 두고 온 가족과 부모를 하루빨리 만나보는 것이다. 그날을 위해 영순 씨는 오늘도 열심히 야근을 하며 내 집 마련을 꿈꾼다.

 

 

출처: 남북하나재단 발행잡지 동포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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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참,귀해보이네요.
    수많은 이땅의 잉여단백질 들이 새겨들어야 할 말입니다.

    리플작성 2017-05-13 02:54:34

  2. 감찰관

    훌륭하고 올곧은 정신의 소유자 이시다. 마치 우리들 어버이 세대의 환생을 보는 것 같다. 이런 정신이 바로 올바른
    보수의 정신이다. 맨날 징징대는 젊은 진보 문봇들과 정신이 썩어 문드러져 세금 축내는 방법에만 골몰하는 가짜 보수들 새겨들으라고 하면 보수 꼰대가 되는건가?

    리플작성 2017-05-13 05:52:33

    • mac250

      정당한 불평 마저 징징댄다고 하면….

      리플작성 2017-05-13 08:37:19

  3. 88한

    탈북자들의 한국 정착도 참 어려운 것이 현실입니다.
    점진적인 통일이 되어도 비슷한 문제가 생기겠지죠.

    갑작스러운 통일이 되는 경우 남북한 격차가 엄청난 현 상황에서는
    수 십년을 두고 해결해야 할 문제가 될 것입니다.
    경제적 위화감, 박탈감, 소외, 차별등 수 많은 갈등이 불가피하겠지요.

    군작전에 OPLAN 시나리오가 여러가지 있듯이
    남북한 정치, 경제, 사회의 연착륙을 위한 계획을 두고 대비해야 하지요.

    리플작성 2017-05-13 06:29:24

  4. 라이팅 클럽

    잠이 검은 색 운무 같이 다가왔다는 표현이 반복되고 있군요. 참으로 실감이 납니다. 영양은 부실하고, 몸은 괴롭고… 얼마나 힘들었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남은 생 부디 행복하길 기원합니다.

    리플작성 2017-05-13 09:54:36

  5. koreanamerican

    이민자만이 흘릴 수 있는 눈물이 있습니다. 열심히 사시는 이야기 잘 읽었습니다. 신의 가호가 님 앞뒤에 같이 하기를 바랍니다.

    리플작성 2017-05-13 11:33:07

  6. 진단서 있으면 공짜로 지원을 받는데도 진단서 끊지 않고 자기 힘으로 돈을 벌겠다는 생각을 가지셨군요. 헬조선을 외치면서 공짜만 바라는 한국 젊은이들이 본받아야 할 훌륭한 분입니다. 하지만 병원에는 꼭 가십시오. 건강하게 행복하게 사시길 바랍니다.

    리플작성 2017-05-14 09:16:12

  7. 통일의 꽃

    훌륭하신 분이군요! 꼭 성공하시길 빕니다..그래도 한국사회가 자본주의 극단을 달리는 서구나 일본 보다는 인간관계 면에서는 조금 나으실겁니다. 하루빨리 통일이 되어 쓸데없는 이념대결, 전쟁공포에서 벗어나서 나눔의 공평함을 실현하며 8천만 민족이 공동번영을 추구하는 그날을 기원해 봅시다!

    리플작성 2017-05-15 11:04:31

  8. neodelhi

    고생 많습니다. 부디 희망을 잃지 말고 꿈을 이루시기 바랍니다.

    리플작성 2017-05-15 04:04:17

  9. 숙연글

    응원합니다!

    리플작성 2017-05-16 09:31:41

  10. 스토니

    귀한 마음으로 사시는 분이시네요..무위도식하거나 나랏돈이든 남의돈으로 쉽게 살 궁리만하는 사람들보다 반드시 행복하게 사실거라 믿습니다..한편 그런 기회주의적인 사람들을 부추기고 세금을 허투로 쓰는 좌파정권이 나라를 말아먹을것같아 걱정입니다

    리플작성 2017-05-17 10:23: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