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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로베니아/크로아티아 여행기(2편) (1)

by bawooko   2017-04-21 4:18 pm

 

먼저 본 여행에 대하여 언급하기 전에 오지리와 한국이 다른 교통 규칙에 대한 것을 두 가지만 언급하고 본문으로 들어갈까 한다.

한국을 비롯한 세계 여러 나라에서는 요사이 자전거 타기가 유행이다. 사이클을 자동차의 트렁크 뒤 외부에 매달고 한강으로 나와서 자전거를 타는 사람을 많이 보게 된다. 자전거를 매달면 자동차 뒷 번호판이 가리게 마련이다. 한국은 아직까지 이를 문제 삼지 않지만, 오지리를 비롯한 유럽의 일부 국가들은, 뒤에 자전거 거치대를 만들 때 자전거랑 거치대가 차량 번호판을 가리기 때문에 기존 번호판 외에 별도의 차량 번호판을 추가로 거치대에 부착하여야만 자전거를 매달고 다닐 수 있도록 법규로 되어 있다.

 


또 한 가지는, 한국은 눈이 많이 오는 동절기에 차량 운전자들이 안전을 위하여 스노우 타이어를 자발적으로 알아서 갈아 끼고 다닌다. 그러나 오지리는 법규상으로 강제 사항이다. 매년 10월 1일부터 이듬해 3월 말일까지는 동계용 타이어로 반드시 교체해야 하고 위반 시 범칙금을 내야만 한다.  그래서 9월 하순 쯤 부터 동월 말일까지와 이듬해 4월 달이 되면 이 나라의 타이어 샵들은  날짜를 예약하고 지정된 일시에 가야만 타이어를 교체할 수 있을 정도로 대목이 되는데 우리 집도 무려 8일을 기다린 끝에야 겨우 교체를 하고 금번 관광에 나설 수 있었다. 오지리는 어제까지 한 낮 기온이 27 도까지 올라갔는데 글을 쓰는 오늘(4월 20일) 폭설이 거의 하루 종일 내려서 4 cm 정도 쌓였다. 날이 밝으면 금방 녹을 것이다.  변화무쌍한 날씨다.

 

 

 

이제 본론으로 들어가서 여행을 시작하고자 한다.

 

우리 가족 6 명은 4월 10일(월) 0910 분에 7인승 SUV 에 몸을 싣고서 비엔나 자택을 출발하였다. 전날 미리 탱크에 기름을 가득 채워 놨으니 재급유 없이 850 km 정도는 달릴 수 있다. 운전은 언제나 딸애의 몫이다. 지난 번 크루즈 여행 시 이태리를 갈 때와 마찬가지로 슬로베니아로 갈 때도 오지리의 남부 도시 그라츠(GRAZ) 까지는 같은 고속도로를 달린다. 구글 지도는 비엔나에서 그라츠까지 3+52 분이 나오는 것으로 나왔다. 웃고 떠들면서 손녀의 재롱을 보느라고 금방 시간이 지나가는 것 같았다. 그라츠에서 90 여분을 더 달리니 슬로베니아와의 국경 검문소에 도달하였다.

 

 

오지리와 슬로베니아 국경선 사이에는 두 나라를 가르는 긴 터널이 가로놓여 있다. 자동차로 10 여분 남짓을 달려야 했던 긴 터널은 최근에 완공된 것 같았다. 터널 공사비를 벌충하려는 것인지 몰라도 터널 통행료로 7 유로를 받았다. 같은 유럽 연합 국경선이어서 그런지 오지리 쪽에서 출국사열을 위한 여권 검사는 아예 없었고 슬로베니아 검문소에서만 여권 검사를 하는 것이었다. 6명의 여권을 걷어간 국경수비대원이 자동차 실내까지 손전등을 비추며 샅샅이 검색하는 것이었다. 맨 뒷좌석을 점거한 손자 녀석은 검문소인줄도 모르고 누워서 줄곧 잠을 자다가 일어나보라는 수비대원의 확인에 놀라서 잠에서 깨어났다. 여권에 입국 스탬프를 꽝꽝 찍더니 드디어 통과다. 200 미터도 못 가서 다시 검문소 비슷한 것이 나왔는데 알고 보니 슬로베니아 고속도로 톨 게이트이었다. 슬로베니아 내에서 고속도로 이용료 7일권을 15 유로에 구매하고 앞 유리에 부착하였다. 이제 드디어 슬로베니아로 진입하게 된 것이다. 두 나라는 같은 유로 국가이기 때문 국경 통과 절차가 까다롭지는 않지만 그럼에도 혹시라도 이 검문소를 통하여 걸어서 오지리로 밀입국하는 것은 너무나 긴 터널 때문에 도저히 불가할 것이라는 느낌이 팍 왔다. 그러나 국경에 군대를 배치하지 않는 두 나라이기 때문에 마음만 먹으면 이 곳이 아니라 다른 지역을 통하여 밀입국이 가능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EU 국가간에는 노동력이 자유 이동이 가능하기 때문인지 오지리에도 건축이나 토목 공사장 같은 곳에는 동구권에서 온 노동자들이 많이 종사하고 있다.

 

슬로베니아는 앞에서도 소개 드린 것처럼 오지리에서 크로아티아로 가려면 지리적으로 피할 수 없고 반드시 경유해야 하는 나라다..

 

구 유고 연방에서 떨어져 나온 7 개의 국가 중 하나인 슬로베니아는, 남서 쪽으로 아드리아(Adria) 해와 접해 있고 국경이 맞닿는 이웃나라들로는 이태리, 오지리, 항거리, 크로아티아와 접해있는데, 국토의 면적은 한반도의 1/11 정도인 20,273 km2 이고 인구는 206만명으로 실로 조그만 나라다. 대부분의 국토가 산악 지형으로 전 국토의 절반 이상이 숲으로 덮여 있고 해양성 기후인 아드리아 해 연안을 제외하고는 대륙성 기후인데, 종족 구성은 슬로베니아 계 83 %. 기타 세르비아 계를 비롯하여 크로아티아 계 등이 소수 민족으로 혼재되어 있다. 종교는 가톨릭이 57 %, 이슬람이 2.4 %, 나머지는 대부분 종교가 없으며 수도는 내륙 도시 벨레네다. 세르비아의 재 침공을 걱정하는 슬로베니아는 2004년도에 NATO 에 가입하였고 경제적으로도 자본주의 체제로 전환하고 구 유고 연방 7 개국이 모두 EU 에 가입 신청을 냈지만, 이 나라가 최초로 적격 판정을 받아서 2010년도에 EU 회원국이 되어 통화까지도 ‘ 유로 ‘ 로 전환하여 현재 통용 중이다. 유고 연방의 나머지 6 개국 중 얼마 전에 크로아티아가 EU 회원국이 되었으며 나머지 5 개국은 정 회원국의 전 단계인 준 회원국이거나 심사에 계류 중인 상태이며, 세르비아의 경우는 나머지 6개국의 반대와 서방과의 갈등이라는 정치적 이유(반 서방, 친 러시아 정책)때문에 가입이 보류된 상태인데 언제나 가입 승인이 날지 이 나라 국민들은 초조해 하고 있다. 국체(國體)는 대통령이 존재하는 양원제에 의한 의원 내각제를 채택하고 있으며 자동차의 주행 방식은 한국과 같은 우측 통행이고 전압은 한국과 같은 220 볼트 방식이다.  

 

우리는 냉전 체제하에 있던 동구권 국가들은 전부 가난하고, 심지어 어떤 한국인은 동구권 국가 국민들을 피골이 상접했다는 식의 극단적인 표현을 한 것을 본 적이 있다. 과연 그런지가 궁금했다. 정말 경제가 엉망이고 가난에 찌든 나라를 서구나 북구라파 선진국들의 주축이 되어 만들어진 EU 에 어떻게 가입할 수 있었는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어서 이 나라의 경제 상황을 찾아봤더니 1인당 국민소득(GDP)이 US $22,200 (2017 년 추정 PPP 기준)로 세계 38위(대만 다음 순위)로 나와 있으며 필자가 현지를 방문한 체감 지수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따라서 일부 한국인들이 생각하는 가난에 찌든 동구권이란 고정관념은, 냉전 시기의 무력한 사회주의 경제체제하의서의 옛날 얘기라면 몰라도 EU 회원국까지 되고 슬라브 족 국가들 중에서 가장 윤택하며 명목상 GDP가 US $ 30,870로 체코에 이어 두 번째인 이 나라는 경제적으로도 우리나라의 문턱까지 추격하는 수준에 와 있는데 피골의 상접할 정도의 가난 운운하는 것은 최근에 해당 국가에 가보지 않아서 현지 실정이 어두운 사람의 그릇된 선입견이 아닐까 싶다.

 

 

슬로베니아지도

 

 

 

 

슬로베니아는 `1992년도에 남북한이 공히 경쟁적으로 독립국가로 승인하고 외교관계를 체결하였으며, 또한 주재 대사는 남북한 각각 오지리 대사가 겸직하는 것까지도 두 나라가 닮았다. 반면에 슬로베니아 역시나 서울이나 평양에 상주 공관을 두지 않고 있으며 따라서 주(駐) 한국 대사는 일본 주재 대사가, 주 북한 대사는 중국 주재 대사가 겸임하고 있다.  

 

 

 

 

 

 

다시 여행 일정으로 되돌아간다.

 

국경 검문소를 통과한 후에 달리는 차 창가에 봄이 벌써 한창인 슬로베니아는 가도 가도 숲으로 이어지는데 간간이 보이는 자그만 마을들에 들어선 집들은 오스트리아와 비슷한 건물 양식인데 다만 오지리 건물들이 좀더 크고 잘 관리되어 원색적인 색감이 잘 드러나 있는데 반하여 슬로베니아는 오지리에 비해서 작은 건물도 더러 있었으며 말쑥한 건물들 가운데 더러는 칙칙한 색깔에서 구분이 되었다. 우리는 국경에서 한 시간쯤 달려서 우리가 하루를 묶을 블레드(Bled) 란 호반 도시에 도착하였다. 한 눈에도 관광지인 이 군소 도시의 3성급 호텔은 모텔 수준이라고 하는 것이 맞을 것 같다. B & B(Bed & Breakfast) 베이스로 2인실은 1 박에 70 유로, 방 두개 짜리 4 인실은 100 유로인데 냉장고와 전기 드라이 등 구색은 갖춰져 있고 방이 깨끗하기는 했지만 방 간의 방음 상태가 썩 좋지 않고 회전문 식의 샤워실이 너무 비좁은 것, 기대했던 커피 포트가 없는 것은 살짝 아쉬웠다. 객실에서 블레드 호수가 내려다 보이고 발코니에도 안락 의자가 구비되어 바깥 전경을 앉아서 볼 수 있고, 방에 비치된 TV 는 LG 제품이니 타향에서 보게 되는 한국의 상징이 반갑기 그지 없었다.

 

 

 

 

블레드 호수(Bled Lake)

 

 

 

 

Lake Bled 호수 Bled Lake

 

 

  

 

우리는 블레드 호수가 내려다 보이는 노천 식당에서 햄버거 스테이크로 늦은 점심 식사를 하였다. 햄버거 스테이크는 프렌치 프라이와 디저트로 나오는 케익 포함 1인당 16,000 원(와인, 맥주, 콜라 등 음료수는 별도인데 잔당 5천원 정도) 이었으니 팁을 포함하면 19,000 원 정도이었다. 알프스 자락을 따라 내려온 호수 물은 속이 전부 드러날 정도로 투명하고 맑았으며 한국에서는 보기 드문 어종을 포함 두세 종류의 고기들이 군집하여 유영을 하고 있었다.

 

딸 내외는 아기 때문에 숙소로 먼저 들어가고 아내와 나는 소화도 시키고 운동도 할 겸 블레드 일대에서 이름을 날리는 블레드 성곽을 등정하기로 했다. 호수에서부터 높이 300 m 정도의 40 도 정도로 경사진 산등성을 15 분 정도 가쁜 숨을 몰아쉬며 올라가니 성()은 산 정상에 위치하고 있었다. 우리가 등정한 반대편으로 관광객들이 방문을 용이하도록 포장된 도로를 따라 관광버스가 수시로 올라가고 내려가고 있었다. 지나치게 복잡하지는 않았으나 꽤 많은 관광객들의 대부분은 중국인들이나 아니면 어김 없이 한국인 관광객들이었다.

 

한국인들의 관광 수준이 근래 들어 많이 향상된 관계로, 과거에는 인적이 안 보여도 소란스러운 한국인 주부들의 떠드는 소리만 들어도 한국인임을 식별할 수 있었으나 요사이는 대화도 조용조용하게 하는 관계로 멀리서 알아보기는 어렵고 가까이 가서 얼굴 생김새나 복장들을 봐야만 알아볼 수 있는 반면에, 중국인들은 좀 과장하면 5 리 밖에 있어도 그 소란스러움이나 때론 이해하기 힘든 행태 때문에 쉽게 구분이 되는 데 그 날도 내 추측을 저버리지 않았다.

 

성곽까지 올라왔으나 성문에서 입장료를 받기 때문에 우리는 등산에 만족하고 성 안으로는 들어가지는 않고 이번에는 차량이 다니는 포장도로를 따라서 천천히 걸어서 내려오는 데 뒤에서 따라오는 버스들이 급경사의 비좁은 도로에서 우리들을 받아버리지나 않을까 무척이나 경계하면서 내려왔다.

 

호텔 프런트 데스크에는 4 유로를 내면 2시간 동안 자전거를 대여해준다는 안내 표시가 있었는데 여기서 대여한 자전거를 타고 험준한 산길을 젖 먹던 힘까지 다하여 올라갔다가 시속 50 km 이상으로 내려오는 자전거도 무척이나 위험했는데 이런 모험을 즐기는 수십 명에 달하는 바이커 중에 동양인은 없고 남자든 여자 든 전부 서양인들이었다.

 

물론 우리처럼 개별적으로 이 곳까지 관광을 오기보다 그룹 투어로 온 관계로 개인적인 일정을 쪼개어 자전거를 탈 시간이 없는 측면도 있겠지만, 한국인들은 앉아서 술을 마시거나 고스톱은 치더라도 객지에 여행 와서 까지 자전거를 탈 정도로 동적(動的)인 활동을 즐기지 않는 성향과도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언제부터 한국인들이 동 구라파까지 관광 영역을 넓혔는지 모르지만, 현지 상인들은 한국인과 중국인을 기가 막히게 구분하여, 한국인들이 지나가면 서툰 한국어로, 중국인에게는 중국어로 호객행위를 하는 것을 보니 절로 웃음이 나왔다.

 

그나 저나 슬로베니아에 오는 관광객은 한국인들과 중국인들 뿐일 정도로 두 나라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엉뚱한 생각까지 하게 되었다.

 

싸드 배치에 대한 보복 조치로 중국 정부당국으로부터 한국 관광을 금지 당한 중국인들의 탈출구로, 반면에 중국에 가면 반한 감정을 가진 중국인들에게 테러라도 당할지 모른다는 두려움으로 발길을 돌린 한국인들이 공교롭게도 동유럽에서 원수는 외 나무 다리에서 만난다고 동시에 몰려들게 된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우리가 블레드 호수 주변의 산책로를 따라서 90 여분 동안 등정과 산책을 하다가 아이스크림 가게도 겸업을 하는 노천 카페 앞을 지나게 되었는데 아내의 눈길이 머무는 곳을 보아하니 아이스크림 통이었다. 푸짐한 크기로 하나 안겨주려는 데 아내가 서툰 영어로 ‘ Small size please ! ‘ 하고 말해 버린다. Please 를 쓰면 서툰 영어도 전부 용서된다고 내가 말해준 이후로, 아내는 매번 말할 때마다 Please 만은 양념처럼 잘도 갖다 붙인다. 아이스크림 가격은 1.5 유로이니 한국과 대동소이하지 않을까 싶다. 그 때 갑자기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비가 멈출 때까지 처마 밑에 카페의 의자를 끌어다 앉아서 비를 감상하며 아내가 아이스크림을 맛있게 먹는 것을 보는데 블레드 성곽에서 만났던 한국인들 15명 정도 단체 관광객이 버스에서 내리더니 가이드의 안내에 따라서 호수가 물놀이를 위하여 보트를 타고 나가는 것이었다.

 

늦은 점심을 먹은 관계로 저녁 생각이 없어서 저녁 끼니를 걸렀더니 늦은 밤이 되니 배가 출출하여, 가지고 온 바나나와 귤을 먹어도 여전히 도움이 안 되었다. 저녁 7시가 넘으면 모든 식당이 문을 닫아버리니 매식은 불가하다. 커피라도 한잔 마셔서 당분을 섭취하면 허기가 좀 완화될 것 같아서 미리 준비해간 막대 커피를 마실까 하고 커피 포트를 빌리려고 프런트 데스크로 내려갔다. 오전에 우리를 맞은 직원은 영어가 유창한 여성이었는데 야근을 하는 남자 직원은 거의 영어를 못하는 수준이었다. 커피 포트를 빌려달라고 말했더니 복사기를 가리킬 정도니 할 수 없이 볼펜을 달라고 해서 그림을 그려서 보여주고서야 알아들었지만 커피포트는 없다는 것이었다. 커피 자판기도 없는 데 커피를 마시고 싶으면 어떻게 하느냐고 물으니 호텔 내 카페에 순간 온수기 통에 뜨거운 물이 나온다고 했다. 큼직한 머그 잔에 굉장히 뜨거운 물을 가득 담아서 티 스푼까지 빌려줘서 맛있는 심야 커피를 마실 수 있었다. 

 

하루에 두 잔 정도 마시는 커피이니 카페인 중독은 아닐 것 같은데, 커피도 나의 단잠을 막지는 못했다. 푹 자고 일어나니 날이 밝아오고 있었다. 너무 일찍 샤워를 하여 옆방의 취침을 방해하지 않도록 해가 뜨기 직전의 이국 땅의 호반 풍경을 바라보며 발코니에 한참을 앉아서 이 생각 저 생각에 잠겨보다가 방에 들어가서 TV 를 켰다. 위성 안테나가 없는 3 성급 호텔에서 나오는 채널은 로컬 방송 10 여 개가 고작이고 그나마 BBC 나 CNN, 혹은 FOX 등 영어 방송은 아무 것도 잡히지 않았다. 샤워를 마치고 출발 준비까지 마친 우리 일행은 호텔 식당에서 맛있는 뷔페 식 아침 식사를 하고 다음 여정이 있으니 9 시쯤에 호텔을 나섰다.

 

 

  • 3 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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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오해가 있으신데.
    유고 연방이 갈라질 당시의 1980년대 정치,경제적 상황을 피골상접이란 표현을 한 것이고.
    근래들어 자유민주 자본주의를 채택한 그들이.구 공산주의 체제에 비할바 없는 발전을 이루었다는 것은 잘 밝혀진바 있습니다.그럼에도 아직 러시아 계열에 붙어있는 나라들은 사정이 당시보다 크게 나아진 것이 별로 없는 것으로 알고 있고요.그 주축인 세르비아는 옛 알렉산더의 마케도니아의 영광에 비교한다면 ” 피골상접”이란 표현이 그리 틀리지도 않을 것입니다.

    2017-04-21 05:17:59